독서리뷰 187

철저히 타인이었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고 - 이정서 옮김/새움

알베르 까뮈의 은 그야말로 내게 ‘이방인’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던 책이었다. 그래서 같은 책을 반복해서 깊이 읽는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읽게 했던 책이다. 같은 책을 여러 연령대를 거쳐 읽은 느낌은 역시 달랐다. 삶의 연륜이라는 것은 이럴 때 묻어나는 것인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아마도 꼭 읽어야 하는 명작 리스트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멍했다. 한 마디로 “그래서 어쩌라고”였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20대 초반이었다. 심심하고 무료했던 어느 날 무심결에 집어든 책이었다. 지난 날 ‘그래서 어쩌라고’에 대한 기억이 또렷했기에 대체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한 건지, 중학생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

독서리뷰 2023.02.13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집 는 마치 동화를 읽듯 재밌게 읽혔지만, 그저 ‘재밌게’ 읽고 끝나는 작품은 아니었다. 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각각의 단편들은 저마다의 가르침으로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고, 10편의 스토리를 읽은 내내 나는 어떤 인물인지 성찰하게 했다. 마치 고백성사를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옮긴 이 홍대화에 따르면, 톨스토이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모든 허식을 벗어버린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네 개의 를 하나로 묶어 새로운 복음서로 편집을 했고, 자신의 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 다섯 계명을 뽑아 넣었다. 첫째, 화내지 말며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라. 둘째, 음욕으로 담하지 말라. 셋째, 어떤 약속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넷째, 악으로 갚지 말로 심판하지 말며 재판관에게..

독서리뷰 2023.02.11

[독서리뷰 163]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얼마 전, 브런치에 라는 책의 알림 글이 떴다. 저자인 황보름 작가와의 라이브 방송 소개와 함께. ‘브런치 작가님의 새로운 책이 나왔구나’ 정도로 넘겼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휴남동 서점’이라는 글자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 표지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었던 또 하나의 을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게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제목이 참 좋았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올드한 분위기에서 오는 편안함이 좋았고, 특별하게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 안에서 편히 쉬어 갈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작가 황보름도 서점의 이름을 지을 때, 첫 글자는 꼭 ‘휴’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쉴 휴,..

독서리뷰 2022.06.28

[독서리뷰 162] 불꽃같은 사랑과 파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첫 문장의 느낌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나를 비롯하여 내 주위에 있는 행복해 보이는 이들과 불행해 보이는 이들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물론 우리 모두가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도 불행도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은 찰나로, 불행은 영원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피식 시니컬한 미소가 그려졌다. 어쨌거나 이 방대한 분량의 를 한 구절의 명료한 요약으로 시작하다니, 역시 톨스토이다.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 다리아 알렉산드..

독서리뷰 2022.03.21

[독서리뷰 161]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나, 기억력이 짧은 나는 읽은 책들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내 장기 기억 속에 남기고 싶어 리뷰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읽은 모든 책들을 기록하진 못하지만, 웬만하면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가 참 어려운 책들이 있다. 책 내용이 어려워서도 두꺼워서도 아니다. 이해가 어려우면 해설 강의를 듣거나 공부를 해서라도 쓴다. 물론,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쓰지 않고 통과하는 책들이 있기는 하나, 그런 이유를 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어 하나하나 행간의 여백까지도 마치 사진으로 찍히듯 그 느낌이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와 박히는 감동의 도가니에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책들. 내 영혼을 촉촉히 적시고 심장을 두드려 그 안에 파묻히고 싶게 만드는 책들. 그런 책들을..

독서리뷰 2022.01.02

[독서리뷰 160] 방황하는 인간에 대한 위로, 괴테의 <파우스트> / 정서웅 옮김

괴테는 하도 많이 들어서 잘 안다고 착각하게 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런데 정작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그의 책을 읽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것은 멍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매번 처음처럼 웃음이 쿡 터진다. 학창 시절, 시험 때마다 단골 주제로 만나던 그저 ‘문학사에 유명한 대문호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인 괴테를, ‘매력적인 인간’ 괴테로 만난 것은 바로 요한 페터 에커만의 책을 통해서였다. 에커만의 를 읽고 괴테에게 푹 빠져 열광했던 2010년의 6월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열광했던 책이 또 있었을까. 괴테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며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에커만에게 해주던 따뜻하고 진심 어린 충고는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되..

독서리뷰 2021.11.14

[독서리뷰 159] 홍지재의 UDT The Funeral Code를 읽고..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세상 가장 서럽게 울어주던 사람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다 첫 페이지를 시작도 하기 전, 책 날개에 쓰여 있는 글을 읽고는 울컥했다. 타인의 초상집에서 자기 일처럼 울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읍비'라 했다. 저자 홍지재는 읍비가 되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서럽게 울어주는 사람’ 그 아픔을 품어주고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려면 그 마음은 얼마나 커야 할까.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 너덜너덜 해지면 누가 함께 울어줄까. 어쩌면 그 누군가들 중에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독자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책 는 첫 눈을 제대로 맞추기도 전에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내가 아는 군인들의 종류(..

독서리뷰 2021.11.04

[독서리뷰 158]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고 / 박철 옮김

세르반테스의 는 어린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굳이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에 대한 정의를 빌려올 필요도 없이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대표적인 고전 작품 중의 하나다.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일상’처럼, 오랜 시간 내 책장에 꽂혀 있었음에도 너무 익숙해져서 내 시선에 잡히지 않았던 가 어느 날 문득 새로운 색채를 띄면서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작가 김영하 때문이었다. 김영하는 여러 매체를 통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소설과 현실을 착각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돈키호테’와 ‘마담 보바리’에 대한 언급을 자주 했는데 그렇게 자주 듣다 보니 어느덧 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결국엔 책을 꺼내들 게 되었던 게다. 책을 펴자 특이하게도 서문에 앞서 이 책의 ..

독서리뷰 2021.09.24

[독서리뷰 158] 노인과 바다를 읽고 /이인규 옮김/문학동네

눈물이 북받쳤다. 폭풍이 지난 후의 고요함.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내려앉는 평화로움.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이 마지막 구절이 내게는 잔을 채우는 마지막 눈물방울 되어 넘쳐흐르고야 말았다. 우리 나이쯤 되면 굳이 말이 필요 없이 이해되고 그대로 공감되어 느껴지는 바로 그것.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84일 동안 아무것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노인이 큰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을 안겨준다. 그렇게 오랜 시간 물고기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투덜거림이 아니라, ‘오늘은 다를 것’이라며, 운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모르니 충실하게 준비를 한다. 매일매일은 새로운 하루라며 겸허히 하루를 맞는 노인의 모습은 경건하기마저 하다. 큰 물고기가 잡히길 기다리며 한없이 바다로..

독서리뷰 2021.09.07

[독서리뷰 157]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고 / 문학동네

죽음이 그저 죽음에 불과하다면 시인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잠든 사물은 어떻게 될까?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중에서 검은 꽃. 작가 김영하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누군가 만약 자신의 책들 중 한 권만 읽고 싶다면 어느 책을 추천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는 바로 이라고 했다. 과연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갈등과 혼동의 시기에 썼던 책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빨리 쓰고 싶어 책상으로 달려가게 했던 소설. 김영하는 을 쓰면서 내가 작가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이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우리는 ‘김영하’라는 작가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억지스러울까? 그 에피소드를 들은 후, 이미 오랜 시간 내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지만, 선택받지 못했던 ..

독서리뷰 202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