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60] 방황하는 인간에 대한 위로, 괴테의 <파우스트> / 정서웅 옮김

pumpkinn 2021. 11. 14. 04:27

 

괴테는 하도 많이 들어서 잘 안다고 착각하게 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그런데 정작 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그의 책을 읽은 적도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것은 멍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매번 처음처럼 웃음이 쿡 터진다. 

 

학창 시절, 시험 때마다 단골 주제로 만나던 그저 ‘문학사에 유명한 대문호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인 괴테를, ‘매력적인 인간’ 괴테로 만난 것은 바로 요한 페터 에커만의 책을 통해서였다.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를 읽고 괴테에게 푹 빠져 열광했던 2010년의 6월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열광했던 책이 또 있었을까. 

 

괴테의 매력에 허우적거리며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에커만에게 해주던 따뜻하고 진심 어린 충고는 나에게 해주는 충고가 되었고, 에커만에게 설명해주던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을 나 역시 느끼고 싶어 미술관을 찾아다니던 기억. 얼마나 행복했는지. 순간 울컥해진다.

 

마침 딸아이가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되었고, 딸아이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날아가 프랑크프루트에 있는 괴테하우스에서 들뜬 감동 속에 둘러보던 추억은 삶이 내게 안겨준 선물이다. 괴테 하우스를 구석구석 둘러보며 어린 시절 괴테의 방, 청년 괴테가 책을 쓰던 곳, 그림을 그리던 공간, 서재, 그리고 괴테 집에는 정원이 없어 창문 너머로 이웃집의 정원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는 그 창문에 서서, 괴테의 마음을 느껴보기도 하며, 괴테가 느꼈을 그 느낌을 상상 속에 느끼며 함께 했었다. 마치 괴테가 옆에서 함께 걷는 듯한 뭔지 모를 두근거림 속에 얼마나 들떠있었는지. 

 

그 두꺼운 책을 기어이 가져가서는 괴테하우스 앞에서 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행여나 누가 볼세라 딸아이에게 빨리 찍으라며 벌게진 얼굴로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못 말리는 철부지 엄마~!! ^^;;

단지, 괴테에 관한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그 책은 내게 너무나 행복하고 가슴 떨리는 소중한 추억들을 안겨주었다.

 

사실 괴테가 남은 여생을 보냈던 아름다운 바이마르를 가고 싶었으나, 거기까지 욕심을 내진 못했다. 미련을 남겨두어야 또 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마음을 접었다. 산티아고 순례와 함께 내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에커만과 괴테가 듀엣으로 안겨준 잊지 못할 추억. 괴테가 죽기 한 해전에 완성된 <파우스트> 2부의 출판을 에커만에게 맡겼다는 주석을 읽으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마치 잊고 지내던 오랜 친구를 만나듯 그렇게 내 가슴은 들떴고 기뻤다.

 

 

 

 

사설이 길었다. 귀가 따갑게 들어 마치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괴테의 <파우스트>. 괴테가 좋아 죽는다고 그렇게 난리부르스를 추었던 나는 어디 가고 10년이 넘어서야 읽었다. 인간의 간사함이란.

 

<파우스트>는 괴테가 60년에 걸쳐 구상하고 집필한 희곡으로 59세에 1부가 출판되고, 2부는 괴테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전인 82세의 나이에 2부가 완성되어 출판되었다. 그만큼 괴테는 파우스트를 청년 시기부터 노년 시기까지 평생의 삶을 통해 구상하며 온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다.

 

희곡으로 쓰인 글이라 일반 소설과는 달리 쉬이 읽히지는 않았지만, ‘드디어 파우스트를 읽는다’는 설렘과 뿌듯함은 지적 자극과 함께 지적 희열을 선물로 안겨주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파우스트> 1부에서는 헌사와 무대에서의 서연에 이어진 ‘천상의 서곡’ 장에서 ‘파우스트’라는 인간을 두고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기가 시작된다. 

 

메피스토펠레스: 내기를 할까요? 
        당신은 결국 그 자를 읽고 말 겁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녀석을 슬쩍 나의 길로 끌어내리리이다.
 
 주님: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순간 멈춤!! 이 일어났다. 강렬하게 가슴을 치고 들어온 한 마디. 이토록 뜨거운 위로가 있을까. 내가 살아오는 동안 겪어야 했던 방황들, 지금도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방황들이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내 환경이 바뀌어서도 아니고, 문제가 있어도 아니라는 게다. 물론 그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요인들이지만, 본질적으로 내 방황의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내가 ‘노력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 코가 시큰거리며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마치 이 한 마디 따뜻한 위로를 받기 위해 <파우스트>를 펼쳐 들은 느낌이었다.

 

프란츠 짐作 - 천상에서 주님과 내기를 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어원이 참으로 흥미롭다.  

두 가지 정도로 살펴보자면,

 

메피스 - 히브리어로 ‘퍼진다’는 것을 의미

토펠 -  거짓말쟁이, 또는 나쁨을 의미

즉, 거짓말을 퍼뜨리는 자

 

또 다른 해석은..

Mais – 불어로 Never의 의미를 지녔고

Phis – 빛을 의미하며

Pheles – Philia는 그리스어로 ‘사랑한다, 좋아한다’의 의미

즉, ‘빛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렇게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에 어울리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운이 좋은', '행운의' 의미를 지닌 파우스트는 성경에서 ‘욥’에 비유되는데, 세상이 알고 싶어 세상의 모든 학문을 섭렵하며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지만, 알면 알수록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며 절망에 빠지는 인물이다. 

 

그때, 주님과 내기를 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절망 속에 빠져있는 파우스트 앞에 나타나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겠다고 유혹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성인 파우스트 박사가 순진하게 넘어갈 리 없다. 악마와의 계약에 대가가 없을 수는 없는 법. 대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파우스트에게 메피스토는 그의 영혼을 요구한다.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한다면,

 그땐 자네가 날 결박해도 좋아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

 

그들의 계약은 성립이 되고,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는 긴 여정의 길을 함께 떠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가장 먼저 파우스트를 데려간 곳은 곳은 라이프치히의 아우어버흐 지하 술집이다. 라이프치히는 괴테가 실제로 대학을 다녔던 도시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짓궂은 장난으로 싸움이 일어나고, 파우스트와 메피스토는 그곳을 떠나 마녀의 부엌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서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에게 마녀의 물약을 권하는데, 그 약은 30살이나 젊어지는 젊음의 묘약이다. 하지만 마녀의 물약이 왠지 꺼림칙했던 파우스트가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묻는데 돈도 안 들고 의사도 마술도 필요 없는 요법이라며 알려주는 메피스토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 들로 나가서 밭을 갈고 괭이로 땅을 파고, 자연식으로 몸보신을 하면 팔십의 나이에도 젊음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 메피스토에 말에, 그런 일은 익숙하지도 않고 괭이를 들고 싶지도 않으니 마녀의 물약을 먹겠다고 선뜻 나서는 파우스트의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육체노동이 싫은 대학자의 변명이 어찌나 궁색하게 들리던지.

 

그러면서도 파우스트의 행동에 아주 급 공감이 갔다. 내가 파우스트라도 같은 대답을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몰약으로 젊어질 수 있는데 ‘굳이’ 그런 힘든 노동을 뭐하게 할까나.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기에 바람직한 방법임을 알지만 들에서 밭을 갈고 괭이로 땅을 파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마녀의 묘약을 냉큼 받아먹고 젊어진 파우스트는 거울 속에서 한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는데 바로 그레트헨으로도 불리는 마르가레테다. 그레트헨에게 첫눈에 빠져버린 파우스트는 부던한 노력 끝에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쯤에서 파우스트와 마르가레테가 데이트하는 장면을 언급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손이 어찌나 오그라들던지. “나 잡아봐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망가며 따라가는 구성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단골 장면인 모양이다. 옛날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청춘남녀의 연애 장면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던 이 ‘나 잡아봐라’ 신을 <파우스트>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가슴이 맹골 맹골 간지러움이 느껴지고 손이 오그라드는 장면을 읽다 보니 버터를 한 사발 들이마신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즐기며 한껏 그레트헨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는 파우스트는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지 못하고 동굴로 숨어버린다. 

 

이 몸이 새라면 

이 몸이 새라면 날아가리

저 멀리 보이는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까지.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 파우스트를 그리며 노래를 부르며 그리움을 달래는데, 바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요다. 이 노래가 파우스트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거라 하니, 이 또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이 뿐만 아니라 꽃잎을 하나하나 뜯으며 “사랑해, 안 사랑해”하며 꽃잎점을 치는 것도 파우스트로 인해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파우스트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삶 속에 함께 하고 있었다니.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척 문학적인 삶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자뻑스런 착각에 흐뭇함이 느껴지기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은 불타오르게 되고, 결국엔 임신까지 하게 된다. 

순진무구하고 사랑스러운 동생의 그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그레트헨의 오빠 발렌틴은 충격과 실망에 빠지게 되는데, 그 와중에 길에서 만난 파우스트와 싸움이 붙어 파우스트의 칼에 찔려 죽음에 이르게 된다. 

 

파우스트는 사랑하는 여인의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에 고통과 좌절감에 빠지게 되고, 메피스토는 실의에 찬 그를 데리고 마녀들의 축제가 열리는 ‘발푸르기스’로 데려간다. 메피스토는 그곳에서 젊은 마녀와 늙은 마녀 할 것 없이 자신의 욕정을 풀어내며 즐기는 동안 파우스트는 그곳에서 한 영상을 보게 된다. 바로 그레트헨이 두 발이 묶인 채 감옥에 갇혀있는 모습이다.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으로 인해 삶이 무너진 모습을 보고 고통에 빠진 파우스트는 오로지 그레트헨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메피스토에게 도움을 청한다. 반대하던 메피스토는 결국 파우스트를 도와주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 그레트헨을 만나게 된다.

 

감옥에서 만난 그레트헨은 정신을 놓고 미쳐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순진했던 한 소녀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생각지 않게 아기를 갖게 되면서 고통 속에 빠지게 되고, 오빠는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의 칼에 맞아 죽고, 아기와 엄마는 자신의 손으로 죽게 만든 그 비극적인 상황을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레트헨은 차츰 정신이 들며 자신을 감옥에서 데려나가려는 인물이 사형장으로 데려가려는 간수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던 파우스트임을 알아보게 되지만, 감옥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그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순진하고 연약했던 마르가레테는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게 책임을 지며 죽음을 택하는, 성숙한 인격의 여인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심판받았소!” 메피스토의 말에 

“구원받았노라” 목소리가 천상에서 들려온다. 

 

 

 

괴테가 59세에 쓴 1부는 이렇게 끝나고, <파우스트> 2부는 그 후로 강산이 두 번이 변하고도 3년이 더 흐른 뒤 괴테가 82세가 되어서야 세상에 나온다. 2부는 이렇게 이어진다.

 

메피스토는 사랑하는 그레트헨의 고통을 보고 힘들어하는 파우스트를 휴식을 취하게 하고는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아물을 즈음  황제가 사는 궁정을 찾아간다. 황제는 자금 부족으로 병사들의 월급도 지불하지 못하고 궁정 재정 살림 역시 곤궁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다. 메피스토는 자금난을 해결해줄 수 있다며 황제에게 돈을 찍자고 제안을 하며 종이에 금액을 쓰고 황제의 사인을 하여 가치가 부여된 지폐를 만들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준다. 단지 숫자가 쓰였을 뿐인 종이가 화폐로 둔갑하여 마법처럼 자금 문제를 해결하니 사람들은 그들을 마법사라 생각하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이번엔 진짜 마법을 보여달라며 고대 그리스의 파리스와 헬레나를 불러달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메피스토는 그들의 요구대로 헬레나와 파리스를 불러내는데 헬레나를 보고 반한 이가 어디 파리스뿐이었으랴. 언제 그레트헨을 사랑했나 싶을 정도로 파우스트는 헬레나의 아름다움에 그만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런 가운데 파리스가 다시 헬레나를 납치하려 하자 파우스트가 막으려 하지만 그들은 갑자기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그녀를 잡으려고 너무 힘을 써버린 파우스트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그만 자신의 서재로 돌아가게 된다. 

 

거기서 파우스트는 자신의 제자인 바그너가 작은 인간 호문클루스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당시 사람들은 플라스크에 정자를 넣고 피와 함께 섞어 40일이 지나면 인간이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참으로 야무진 발상이긴 하나 연금술이 유행했던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생명을 창조해보고 싶은 그들의 야심 찬 시도였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의 흉내를 내는 과학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신의 모습을 따라 만든 인간이니 창조에 대한 열망과 욕망이 잠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호문클루스와 메피스토 일행은 고전적 발푸르키스, 그리스의 파르살루스 들판으로 떠난다. 그 여정 중에 호문클루스는 돌고래로 변신한 바다 괴물 프로테우스트를 만나는데, 생명 창조의 현장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함께 가다가 플라스크가 깨져 녹아 없어지게 된다. 인간의 생명 창조는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호문클루스는 거품으로 사라진다. 어쩌면 인간이 생명을 창조한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헬레나는 스파르타로 돌아가는데 시녀장을 통해 자신이 재물로 바쳐지게 될 운명임을 알게 된다. 

 

아름다움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을 독점한 자는 공유한 것을 저주한 나머지 차라리 파멸시켜 버리지요.” (P236)

 

인간으로서 신이 시기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가진 헬레나의 삶은 참으로 기구하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아름다워 납치를 당하고,  후에는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가 되지만 트로이의 파리스에게 또 납치를 당한다. 이제는 그 아름다움 때문에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헬레나는 죽음을 피해 피신을 하게 되는데 바로 파우스트가 성주로 있는 성으로 가게 된다. 거기에서 파우스트는 꿈에도 그리던 헬레나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와는 다르게 그 둘 사이에는 오이포리온이라는 아들이 태어난다. 오이포리온은 어렸을 때부터 날기를 좋아했는데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다.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에 빠진 헬레나는 ‘즐거움 다음에는 반드시 무서운 고통이 따르고, 행복과 아름다움은 늘 함께 누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진다.

 

그레트헨과도 헬레나와도 정착을 하지 못하고 깨진 파우스트는 바위산에서 위대한 일, 놀랄만한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간척사업이야말로 인간의 천지 창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기 상황에 몰려있던 황제의 군대를 구해주고 보상으로 받은 해안을 가지고 있던 파우스트는 그렇게 해서 간척사업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파우스트의 지휘 아래 메피스토가 감독이 되어 사업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간척 사업을 벌이는 곳의 언덕에 사는 두 노부부가 메피스토의 일군의 실수로 낸 불로 인해 집이 타서 모두 죽게 되는데 그들의 죽음으로 생각에 잠겨있는 파우스트에게 4명의 유령이 찾아온다. 결핍의 유령, 죄악의 유령, 곤궁의 유령 그리고 근심의 유령이다. 결핍, 죄악, 곤궁의 유령은 파우스트가 있는 방에 들어갈 수가 없지만 근심의 유령은 열쇠 구멍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결핍, 죄악, 곤궁은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없앨 수 있지만 ‘근심’은 없앨 수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란 한평생 앞을 보지 못하니, 파우스트, 당신도 이제 장님이 되세요!” 

 

근심의 유령은 이렇게 말하고는 파우스트에게 입김을 내뿜자 파우스트는 눈이 멀게 된다. 눈이 멀게 된 파우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밤이 점점 깊어가는 것 같구나. 하지만 마음속엔 밝은 빛이 빛난다. (...) 연장을 잡아라. 삽과 괭이를 놀려라. (...) 이 위대한 일 완성하는 데는 수천의 손 부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족하리라” (P360)

 

바다의 땅을 육지로 만드는 간척사업이 자신이 간절히 원했던 창조사업이었기에 마지막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파우스트가 흐뭇해하며 듣고 있는 일군들이 일하는 소리는 사실은 수로가 아닌 파우스트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 귀띔을 해준다.

 

하지만, 그 썩은 웅덩이의 물을 빼는 것이 마지막이자 최대의 공사가 될 거라며 이로써 수백만에게 땅을 마련해 주는 것이니, 밖에서는 성난 파도가 제방을 때린다 해도 안쪽은 천국 같은 땅이 될 거라며, 이 뜻을 위해 나는 모든 걸 바치겠다며 파우스트는 외친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P364)

 

이렇게 파우스트는 뒤로 쓰러지며 눈을 감는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외치는 파우스트, 드디어 메피스토와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어린 천사들이 나타나 메피스토의 정신을 흐트러 놓고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간다. 자신의 순간의 방심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공들인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기는 순간이다. 메피스토 본인의 잘못이기에 다른 누구를 탓할 수 없고 하소연도 할 수 없는 상황.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파우스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언젠가 황마리 스텔라 수녀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악마가 하느님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은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잘해서 보상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닌,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주어지는 것. 은총!

 

 

 

 

책을 읽으며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파우스트는 정승민 교수의 강의를 듣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파우스트>의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정승민 교수의 설명을 빌려 옮기면....

주님이 상징하는 것은 ‘되어 간다’, 또는 ‘변화’를 상징하는데, 파우스트는 변하고 되어감을 추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한 인간이라는 것. 그렇기에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바로 신의 섭리, ‘시간’ 변화에 관한 것들은 ‘자유의지’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것이 신이 보내준 것이 아니라, 실은 신의 장치를 빌려서 이런 허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노력’을 했고, 그렇게 노력을 한 사람에게는 신조차도 이 사람에게 화답을 한다라고 보는 것이다.

주님은 되어감이나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에 ‘시간’이 있어야 한다. 창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메피소트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시간아 멈추어라. 충분히 아름답도다"라고 말했을 때 “이제 시계침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렇듯 시간이 사라지는 게 메피스토다. 메피스토에게는 공허함, 무(無), 절대 무(無)다. 시간이 無인 것, 그것이 악마가 되는 것이라는 게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서 결국 인간은 오류를 저지르지만 실패와 오류를 통해서, 그 반복을 통해서 ‘보다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괴테의 소설을 성장 소설로 보는 이유라는 것.

 

<파우스트>는 2년 전, 중년의 나이에 시작한 공부가 끝나고, 빛나는(?^^) 졸업을 축하하며 선물로 받은 책이다. <파우스트 1>에는 아나스타시아 언니, <파우스트 2>에는 소피아 언니의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브라질의 계속된 최악의 불경기와 함께 이어진 판데믹으로 내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던 지난 2년, 눈을 맞추지 못하고 책장에 외롭게 꽂혀 있다가 이제야 내게 간택받은 <파우스트>는 이렇게 생각지 못한 시점에 방황하는 영혼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노력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라니, 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