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63]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pumpkinn 2022. 6. 28. 06:35

 

얼마 전, 브런치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의 알림 글이 떴다. 저자인 황보름 작가와의 라이브 방송 소개와 함께. ‘브런치 작가님의 새로운 책이 나왔구나’ 정도로 넘겼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휴남동 서점’이라는 글자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 표지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었던 또 하나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게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제목이 참 좋았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올드한 분위기에서 오는 편안함이 좋았고, 특별하게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 안에서 편히 쉬어 갈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작가 황보름도 서점의 이름을 지을 때, 첫 글자는 꼭 ‘휴’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쉴 휴, 마음이 아픈 사람, 마음을 다친 사람, 일상에서 지친 사람들이 쉬어 가는 서점을 그리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이야기는 번아웃 증후군으로 잘 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과도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서점을 운영하는 영주와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취업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서점에서 임시직으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는 민준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 둘의 이야기 사이사이 커피 로스트 회사 고트빈 대표 지미, 뜨개질과 명상을 하는 정서, 영주를 바라보는 작가 현승우, 민철이와 단골손님이자 민철이 엄마인 희주, 역시 단골손님이면서 독서모임 리더를 맡게 되는 우식과 나중에 휴남동 서점의 직원이 되는 단발머리 책벌레 상수, 그리고 민준의 친구인 영화 감동 상철 등등이 그 이야기 흐름에 맛을 내고 색을 입힌다.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클라이막스 하나 없이 모노톤으로 이어진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등장인물들 역시 각자의 삶의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 안에 침몰되어 꺼이꺼이 울며불며 쏟아붓지 않는다. 담담하게 풀어간다. 그렇다고 모든 고통을 초월하고 해탈의 깨달음을 얻은 그런 초연한 분위기도 아니다. 각자 내적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하나 삶을 피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일상 속에 '오늘' 하루하루를 지켜내며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그렇게 치유해 나가는 것이다. 

 

영주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서점을 운영하며 책을 읽거나 북콘서트를 하거나 칼럼을 쓰면서, 민준은 좀 더 좋은 맛을 내는 커피를 내리는 것에 집중하며, 정서는 명상과 뜨개질을 통해, 지미는 로스팅과 영주와 민준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찾아간다. 그리고, 민철 엄마 희주는 독서클럽 리더를 맡음으로 아들바라기에서 벗어나게 되고, 아들 민철은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함으로써 질풍노도의 시기의 고민에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서점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민준이 커피를 내리고 있는 동안 구석에서 정서는 뜨개질을 하고 있고, 정서가 뜨개질하고 있는 손놀림을 바라보고 있는 민철이도 보이고, 그런 그들을 뒤로 책을 읽거나 칼럼을 쓰고 있는 영주. 그런가 하면 주별로 작가를 초대하는 북콘서트가 열리기도 하고, 강의도 열리고, 다른 쪽 방에서는 독서 모임이 분주하다. 

 

놀랍게도 얼마 전 푹 빠져 보았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느낌이 참 비슷했다. 모노톤으로 이어지는 분위기까지. 하루에 10분이라도 설레는 순간이 주어진다면 삶은 견딜만하다며 나름의 방법으로 삶과 마주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이 덤덤하게 나누는 이야기들은 그들의 ‘덤덤함’과는 다르게 내 안에 ‘치열하게’ 치고 들어왔다. 

 

분명한 정체를 알기 힘든 이 느낌을 작가 황보름은 어쩜 그렇게 섬세한 터치로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냈는지. 놀라웠다. 어렴풋이 느낌은 있으나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던 느낌의 정체를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터지는 탄성들. 책 곳곳에서 조용한 탄성이 이는 놀라움을 맛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의지나 열정 같은 말에서 의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기대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반복해서 되뇌던 이런 말들이 아니라, 몸의 감각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가 어느 공간을 좋아하는 건 이런 의미가 되었다. 몸이 그 공간을 긍정하는가, 그 공간에선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가. 그 공간에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가. (P10)

 

바로 파울로 코엘료가 말하던 ‘알레프’가 느껴지는 그런 공간일 것이다. 사라이바 서점(Livraria Saraiva)이 나에겐 바로 영주가 느끼던 바로 그런 공간이다. 

 

 

Livraria Saraiva, 2 층 내 아지트 자리를 차지하려고 뛰던 생각에 웃음이 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소설은 읽지 않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걸 영주는 서점을 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구절을 읽다가 웃음이 쿡 터졌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소설을 좋아한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소설은 기피했었다. 물론, 나름의 여러 가지 이유는 있었지만, 무언가 배울 수 있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기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얼마나 편협적인 생각이었는지. 

 

어차피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영주가 스스로 생각해낸 답이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다.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P32)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생각을 콕 집어 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정답이란 지금 이 순간의 정답이라는 것. 그 정답은 실은 오답이었고, 또다시 정답을 찾아내고를 번복하며 삶은 이어진다. 

 

정답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답만 있는 것도 아닌 것. 때로는 정답이 오답이고, 아니라고 생각했던 방법이 어느 순간에선 정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복합적인 우리의 삶은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다방향의 열린 사고로 바라보아야 함을 살아가면서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잔잔하게 나른한 오후의 햇살처럼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도 나에게 눈물을 쏟아내게 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영주가 영주의 친구이자 남편 창인의 친구인 태우와의 대화였다. 

 

“창인이가 너 글 좋대.”
“그런데 글 속에서 네가 어쩐지 슬퍼 보이더래.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한 것 같긴 한데 글은 행복해 보이지 않더래. 예전의 당차고 자신감 만땅이던 네가 사라지고 없는 이유가 혹시 자기 때문이라면 그건 싫더래. 그래서 지금 자기가 생각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대. 널 가끔 원망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힘이 들진 않는대.” (P297)

 

읽는 순간, 아무런 방어도 못하고 허를 찔린 느낌이었다. 영주와 창인의 마음이 어떤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영주도 아닌데 알 것 같았다. 미처 느낄 사이도 없이 눈물은 쏟아지고.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성숙함을 지녔구나, 멋짐이 느껴졌다. 창인이도 이해가 갔고, 영주도 이해가 갔다. 그 가운데서 창인을 편들은 둘 모두의 친구 태우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고. 그러게, 서로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만큼 덜 사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읽으면서 뜨끔했던 부분은 바로 현승우가 영주의 칼럼을 교정 보는 장면에서 피동형의 문장에 대해 교정해주는 부분이었다. 글을 발행하기 전에 맞춤법 검사를 돌리면 피동형이 많이 지적되곤 한다. 그때 알았다. 내 글에는 피동형이 많다는 것을. 

 

내가 피동형을 쓰는 이유는 영주와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님이 기다려지는 마음, 이런 애타는 마음, 이런 마음이 ‘손님을 기다렸다’에서는 느껴지지 않잖아요”

 

내가 피동형을 많이 썼던 이유였다. 어쩜 지금도 나도 못 느끼는 사이 그렇게 남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왠지 피동형을 쓰면 내 의지를 넘어선 간절함이나 절절함이 더 강하게 표현되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현 작가의 따끔한 충고를 떠올리며, 좀 더 신경을 써서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쯤에서 고백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문장 잘 쓰는 법>을 쓴 현승우 작가가 혹시 실제 인물이 아닌가 구글에서 검색을 했다는 사실이다. 

 


 

 

 

작가 황보름은 작가 자신이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민하고 흔들리고 좌절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써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나를 포함해 나와 관계된 많은 것을 폄하하게 되는 세상에서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과 꾸준함을 옹호해 주는 이야기를,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느라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를.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황보름 작가의 바람을 그대로 느꼈을 것이다. '위한다'는 이유로 어설픈 위로나 부탁하지도 않은 조언으로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잘 해낼 수 있도록 말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응원해주는 그들. <나의 해방일지>에서처럼 서로를 추앙해주는 그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주듯이, 내 주위에서 정말 좋은 분들이 함께 했구나 코끝 찡한 감사함이 일었다. 내가 힘든 상황 속에 있을 때 존재만으로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남편과 두 딸들, 오랜 시간 독서모임과 함께 이어온 언니들, 그리고 친구들. 덕분에 나의 어두운 터널을 잘 건너올 수 있었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감사한 요즘이다.  

 

음악에서 화음이 아름답게 들리려면 그 앞에 불협화음이 있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음악에선 화음과 불협화음이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생도 음악과 같다고요, 화음 앞에 불협화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거라고요.” (P132)

 

나도 어쩜 그들처럼 아름다운 화음을 내기 위해 불협화음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이 불협화음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고 끙끙거리며 스스로를 다구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거북한 불협화음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 역시 내 삶이 그려내는 화음의 한 부분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끌어안는 것, 삶이 내게 보내준 선물이다. 나이가 드는 게 싫지 않은 이유다. 감사함이 앞서는 까닭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영주처럼, 민준처럼, 정서처럼, 그렇게 내게 주어진 오늘에 정성을 다하며 다가오는 내일을 미소로 맞고 있다는 생각. 뭔지 모를 파스텔 빛깔의 포근함이 나를 가득 감싸 온다.

 

참 좋은 책을 읽었다.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 덕분에 책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착각 속에 빠져 흐뭇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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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나와 함께 했던 음악 중 한 곡을 올린다. 

요즘 미쳐라 좋아하는 John Smith의 Far too good 

출퇴근 길, 하루를 맞는 나를 미소 짓게 하며 들뜨게 만드는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