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59] 홍지재의 UDT The Funeral Code를 읽고..

pumpkinn 2021. 11. 4. 12:03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세상 가장 서럽게
울어주던 사람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다 

 

첫 페이지를 시작도 하기 전, 책 날개에 쓰여 있는 글을 읽고는 울컥했다. 타인의 초상집에서 자기 일처럼 울어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읍비'라 했다. 저자 홍지재는 읍비가 되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서럽게 울어주는 사람’ 그 아픔을 품어주고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려면 그 마음은 얼마나 커야 할까. 다른 이의 아픔을 함께 해주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 너덜너덜 해지면 누가 함께 울어줄까. 어쩌면 그 누군가들 중에는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독자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책 <The Funeral Code>는 첫 눈을 제대로 맞추기도 전에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내가 아는 군인들의 종류(?)는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해병대가 다다. 아, 특공대 정도 넣을 수 있을까? 그러니 UDT라는 특수부대는 듣도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야말로 ‘듣보잡’이었다. 그랬던 UDT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재밌게도 ‘강철부대’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출장 중인 남편이 어느 날 메시지를 보내왔다. ‘강철부대’가 재밌으니 한번 찾아서 보라는 거였다. TV 프로그램엔 별 관심 없는 남편의 추천이라 더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어떤 프로그램이길래.

 

당장 Google에 들어가 강철부대를 찾았다. 이미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시점이었기에 모든 에피소드가 올려져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강철부대 시청은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반납하고 마라톤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미친듯이 빠질 줄이야. 

 

그때 알았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여러 특수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랑스럽고 든든하고 흐뭇했는지. 출연한 모든 군인들이 멋지고 훌륭했지만, 특별하게 나의 시선을 끌었던 이들은 바로 UDT였다. 물론 ‘육준서’라는 만화를 찢고 나온 매력적인 인물이 시선을 끌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나를 단번에 팬으로 만들어버린 이유는 바로 참여하는 모든 부대 군인들의 첫 만남 장면 때문이었다.

 

모든 군인들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OOO부대원들이 서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는 시점에서 뺀질대는 모습으로 농을 던지는 다소 예의 없는 행동이 불편하던 참이었다. 마침 UDT 대원들이 등장했고, 똑같이 이어지는 행동에  말 한 마디 없이 단박에 강렬한 눈빛으로 제압하고는 자신들의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가 앉는 모습이 어찌나 멋졌는지.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강철부대 전 프로그램 중 내가 뽑은 명장면 중 가장 첫 번째로 꼽힌다. 그 순간 나는 무작정 UDT의 팬이 되었고, 그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설사 그들이 꼴등으로 프로그램을 끝냈다 하더라도 (그럴 리 없었지만) 난 UDT의 열렬팬으로서 응원을 다했을 것이다. 

 

그렇게 강철부대 프로그램을 끝낸지 얼마 안되는 시점에 생각지 못한 뜻밖의 경로로 UDT 출신의 작가 홍지재의 책을 선물 받게 되었다. 삶이 던져주는 우연성은 우리를 희열을 동반하는 놀라움으로 이끈다. 이런 삶의 우연성을 나는 얼마나 사랑하는지.

 

 

 

 

책은 <The Funeral Code>를 쓰게 된 동기가 된 ‘앙꼬스러움’의 시작인 아기 고양이 앙꼬 이야기를 시작으로 왜 유디티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 그가 사랑한 진해 이야기, 삼천리를 걸어 훈련소까지 들어가는 이야기와 함께 생환훈련대와 부사관교육대대 이야기를 거쳐 유디티에서의 훈련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잔잔한 리듬으로 진행되다가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클라이막스의 연속. 마치 영화 Point Break를 보았을 때의 느낌, 또는 100미터 달리기를 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나는 마치 작가 홍지 재가 달린 길을 나도 함께 뛰어 달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벅찬 감동과 성취감이 함께 다가왔다. 

 

그렇게 구구절절 공감을 하며 읽었던 것은 그 안에서 젊은 시절의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치열한 열정으로 살아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벅찬 그리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읽는 내내 먹먹했다.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듯 눈물과 지난날의 열정이 그리워지는 아픔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나의 삶이 그 위에 오버랩되어 자꾸 나를 울먹거리게 했다. 그렇게 자꾸만 지난날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스무 살이 지나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오는 거라고

 

 

그런 거였구나, 내 나이 스무 살이 그토록 슬펐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슬펐던 나의 스무 살 생일.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는 나는 얼마나 슬펐는지,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밤늦게 들어왔던 그날, 집에서는 같은 과 친구들인 Norma와 Cristina가 기다리고 있었다. 딸 생일이라고 찾아온 친구들, 말도 통하지 않는 그들을 상대해주느라 땀 빼고 있던 엄마. 도저히 그냥 못 보낸다며 가서 저녁이라도 대접하라며 굳이 등 떠밀며 내보내던 그때 기억이 난다. 참 많이도 울었던 하루였다.

 

60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이에도 이뤄 놓은 게 없건만 그 어린 나이에 나는 무엇을 그리도 이루어 놓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걸까. 이제 막 시작이었던 나이였는데…

 

그런가 하면 진지하게 읽어가다가 생각지 못한 곳에 지뢰를 숨겨놓아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다.

수영이 가장 두려웠던 저자가 조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는 부분에서...

 

수영도 할 줄 모르는데, 첫날부터 항공복과 항공 군화와 항공 헬멧을 착용한 채로 물에 던져졌다. 수경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헬기가 불시착했는데 수경을 쓴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P64) 

 

그러게 헬기가 불시착하여 죽자살자 헤엄쳐서 살아 나와야 하는데 수경을 쓸 겨를이 어딨을까. "헬기가 불시착했는데 수경을 쓴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표현이 너무 진지해서 더 웃겼다.

 

수석을 하여 총장상을 되었던 날의 해프닝은 압권이었다. 특별한 멘트를 하고 싶었던 상장과 메달 수여식 날, 총장 앞에서 읊은 준비했던 멘트는 다소 길었던 덕분에 영원처럼 느껴졌고, 급기야 경례도 안 하고 뒤로 ‘멋지게’ 돌아버린 사건. 이후 몇 날 며칠을 이불을 차며 지냈던 저자의 ‘단상 위의 댄싱머신’ 사건을 읽다 가는 미친 듯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안 봐도 비디오!!” 말 안 해도 상상이 가는 그림. ^^;;

 

마냥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저자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싶어서 더 재밌게 느껴졌던 것 같다.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 일터. 반전의 모습이었다. 

 

 

 

 

입대 전, 저자 홍지재는 어머니, 아버지의 상을 연이어 치르고 스스로 글로벌 홈리스가 되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 그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서 자신의 검을 찾은 걸까. 그렇게 시작된 길 위에서의 삶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되고 입대 훈련소까지 이어진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국토를 가로질러 훈련소까지 야영을 하며 걸어가겠다는 계획이 놀라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떠날 수 있는 그가 가진 자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누군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관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자 한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용기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의 자유가 눈물 나게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매일같이 바뀌는 자연 풍경을 즐기며 목적지로 향하는 젊은 청춘에게 주어진 낭만은 용기를 낸 자에게 주어진 선물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위험은 도처에 숨어 있었고, 밤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고비까지 넘기며 입원까지 했던 그는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입을 수 없어 환자복을 입고 훈련소에 입대를 한다. 

 

그렇게 환자복을 입고 입대하는 그의 호기와 당당함에 또 한 번 놀랐다. ‘혼자’ 있을 때 보다 ‘함께’ 할 때 우리의 ‘다름’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중 속에서 나만의 색깔을 지키며 나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혼자일 때와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 

 

그렇게 두 다리와 건강한 정신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는 그렇게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가진 젊음이 부럽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젊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니까. 목적이 있을 때, 그 목적에 삶의 의미가 담길 때 우리는 그 어떤 고통도 역경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 나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럽게 느껴졌던 것은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열정을 조금씩 잃어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자꾸 아팠던 건지도 모른다.  

 

“점과 점을 잇는 최단 거리는 
직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는 데엔 
무한한 진통이 있었다.”

 

그러게.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많은 진통을 겪어내야 했는지.

읽는 순간 울컥함과 함께 가슴이 아려오며 싸한 통증이 느껴졌음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UDT 훈련 과정 부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UDT 훈련과정 속에 맞닥뜨리게 되는 두려움들 중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밥걸이'라 불리는 턱걸이와 '잠영'이었다.

 

용어가 재밌다. '밥걸이'는 밥을 먹기 전에 턱걸이를 해야 해서 규정 개수를 넘어야 밥을 먹을 수가 있는다. 재밌는 것은 봉에 매달려 '밥탄가'를 목이 찢어져라 부른다는 것이다. 주마다 개수는 1개씩 늘어나고, 만약 개수를  채울 시에는 축구 골대를 돌아 다시 밥걸이를 성공할 때까지, 턱걸이를 해야 하는 지옥의 순간이다. 기운이 있을 때도 못채운 턱걸이를 밥걸이로 축구장 뛰기로 힘을  후에 성공할 수가 있을까. 

 

봉 앞에서 두려워 도망치려 하는 나를 나는 가장 두려워했다. 더는 봉이 무섭지 않았다. 선착순도 무섭지 않았다. 내 안의 두려움과 맞서 싸우는 방법을 나는 턱걸이 봉 앞에서 하루 세 번 헐떡대며 배웠다. (P95)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강해진다는 것은 말로 표현하는 것조차 식상하게 느껴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수영이 가장 취약 부분이었던 저자가 

잠영에 대해 느꼈을 두려움은 어땠을까. 그로 하여금 휴가를 반납하고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게 하며 그를 훈련시킨다. 두려움이 배우게했고 성장시켰다고 말할  있겠다.

 

하지만, 그의 두려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소공포증 역시 그를 괴롭히는 두려움 중의 하나였다. 육교를 건너지 못할 정도로 고소공포증이 심한 그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번지 점프를 하며 두려움에 맞선다. 

 

그때 깨달았다. 두려움에 잠식할 시간을 내어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두려움보다 한발 먼저 스스로 떨어지는 경험을 단 한 번만 해볼 수 있다면 어떤 공포증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옥가>

 

어머니 아버지 날곱게 길러서 

UDT에 보내려고 이 자식 길렀습니까

OO 같은 훈련에도 이 몸은 살아왔건만 

보트 메고 훈련하는 올챙이 용사 라오.

 

심술궂은 교관 O들 한데 기합도 많이 받았소

배고프고 졸리워서 난 정말 못살겠어요

OO 같은 지옥주도 이 몸은 살아왔건만

24주만 지나고 나면 개구리 용사 라오.

 

올챙이 용사에서 개구리 용사가 되기까지 그들은 지옥 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강철부대 프로그램을 시청한 덕에 그들이 받는 훈련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느껴보았기에 어머니 아버지 날 곱게 길러서 UDT에 보내냐며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이 지옥가에 웃을 수가 없다. 

 

끝까지 함께 가는 그들. 자신도 죽을 듯이 힘든데 팀에서 처지는 동기를 끌어안고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어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부분이 어디 한 두 장면이었던가. 전우애처럼 끈끈한 게 또 있을까.

 

강철부대를 보지 못했다면, 책에 나오는 훈련 장면들을 그렇게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알지 못하니까. 비록 TV를 통해 보았지만, 군인들의 지독한 훈련 장면을 보았고 그들이 느끼는 극도의 고통과 아픔을 보았기에 더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부대, 모든 군인들에게 삶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재밌게도 닮은 부분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이 그랬고, 산티아고가 그랬고, 파울로 코엘료가 그랬고, 밥걸이 정신이 그랬다. 

 

나는 핸드폰 안티 유저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 핸드폰 없이도 불편함 없이 지냈다. 정말이지 현대를 사는 원시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랜 시간을 핸드폰 없이 지냈다. 그나마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어쩌다 급박한 일 때문에 직원들이 연락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지인들로부터 불평을 들어가면서도 꿋꿋하게 핸드폰을 거부했던 이유는 일상이 심플한 나에게 내가 없다고 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우선은 왓삽이나 카톡으로 홍수처럼 넘치게 보내지는 ‘좋은 글’들로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퇴근 후 주어지는 온전한 내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쓰고 싶은 이기심이 컸음이다. 

 

물론 지금은 핸드폰도 쓰고 메시지도 주고받는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시간에 대한 이기적인 성향이 조금씩 ‘함께 함’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다. 현재 업데이트된 내 버킷 리스트 1번을 차지하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는 2019년에 가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의 오랜 불경기와 판데믹으로 이곳에서 쌓아온 오랜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려진 지금으로서는 기약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꼭 이뤄질 것을 믿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룬 또 하나의 꿈을 리스트에 올리게 되겠지. 꿈은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내가 그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잡고 있는 한 꼭 이루어짐을 삶 속에 경험했으니까.

 

살짝 욕심을 부리자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를 우연히 만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내성적인 본성이 치고 올라오는 나로서는 싸인 하나 받을 용기 내기 어렵겠지만, 내 카메라에 그의 사진을 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순례 여행이 되겠지. 내가 꾸는 야무진 꿈이다. 

 

저자에게 밥걸이 정신이 주는 의미는 내게 주는 ‘헝그리 정신’의 그것과 같은 맥락이다. 굳이 “Be Hungry!!”를 외치던 스티브 잡스의 따끔한 충고를 가져오지 않아도, 헝그리 정신은 나의 에너지 원천이었다. 이것도 견뎌내지 못하면 앞으로 삶 속에 내가 무엇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를 두 주먹 불끈 쥐게 하며 운동화 끈을 동여매며 맞서게 했던 그것. 내 인생 가장 빛났던 그때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은 바로 헝그리 정신이었다. 

몇몇 비슷하다고 느낀 부분들을 키워드로 하나하나 짚어보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바로 ‘홀로’와 ‘함께’의 차이였다. 나는 늘 혼자만의 꿈을 꾸었다. 나는 혼자 하는 것을 즐겼고 좋아했지만, 저자는 언제나 ‘함께’함이 우선이었다. 혼자 가는 이보다 함께 가는 이가 멀리 가고, 서로 다른 악기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가 이 책을 쓰는 동기도 ‘내가 할 수 있었다면 너도 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주고 싶음이다. 그가 앞으로 계획하고 꾸는 꿈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가 문신처럼 마음에 새기고 다니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상을 표현하는 단어 Professional Amateurisms는 그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아마추어처럼 살게 될지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진실되기만 한다면 그저 매 순간 사력을 다하자. 최선을 다해 그 모든 방랑의 시간을 사랑하자.”  

 

그는 말한다.

“도착하기 위해 걸었다면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걷다 보니 나는 여기에 와있었다. 과정을 위한 결과. 사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끝이 아닌 과정 중에 있었다.”라고.

 

한 인간의 삶의 진실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날 것 그대로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삶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마구 뿜어져 나오는 다이돌핀에 정복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삶’이라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그 선상의 과정 중에 있다. 저자 홍지재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끝이 아닌 과정 중에 있는 것. 이 여정 속에서 그리움으로 이어질 아름다운 씨앗들을 세상 곳곳에 뿌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저자가 삶을 따라가며 참 많이도 나를 들여다보았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나를 보며 내 안에 열정이 사라진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의 목표 의식이 흐려졌기 때문임을 아프게 느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거쳐가는 과정임을 알고 있기에, 지금은 잠시 지금의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보듬어주는 배려가 필요한 때임을 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이런 나도 ‘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삶의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 

조금 있으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겠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새로운 결심을 위해 새해를 기다리는 바보가 되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잠자고 있던 나를 꿈틀거리게 만든 책, 고마운 책이었다.그가 문신처럼 마음에 새기고 다니는 르네상스적인 인간상을 표현하는 단어 Professional Amateurisms는 그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아마추어처럼 살게 될지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이 진실되기만 한다면 그저 매 순간 사력을 다하자. 최선을 다해 그 모든 방랑의 시간을 사랑하자.” 

 

그는 말한다.

“도착하기 위해 걸었다면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걷다 보니 나는 여기에 와있었다. 과정을 위한 결과. 사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끝이 아닌 과정 중에 있었다.”라고.

 

한 인간의 삶의 진실이 마음에 닿을 때 우리는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날 것 그대로 파닥파닥 살아 숨 쉬는 삶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마구 뿜어져 나오는 다이돌핀에 정복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게 삶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우리는 여전히 ‘삶’이라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그 선상의 과정 중에 있다. 저자 홍지재가 말한 것처럼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끝이 아닌 과정 중에 있는 것. 이 여정 속에서 그리움으로 이어질 아름다운 씨앗들을 세상 곳곳에 뿌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저자의 삶을 따라가며 참 많이도 나를 들여다보았다. 잊고 있던 지난날의 나를 보며 내 안에 열정이 사라진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내 삶의 목표 의식이 흐려졌기 때문임을 아프게 느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내가 거쳐가는 과정임을 알고 있기에, 지금은 잠시 지금의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보듬어주는 배려가 필요한 때임을 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질 때는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이런 나도 ‘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삶의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 조금 있으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겠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새로운 결심을 위해 새해를 기다리는 바보가 되지 않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잠자고 있던 나를 꿈틀거리게 만든 책, 고마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