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57]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고 / 문학동네

pumpkinn 2021. 8. 2. 07:39

1905년 5월 12일 멕시코 도착 직후 유카탄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이민 1세대들.

       

 

죽음이 그저 죽음에 불과하다면

                                                                                                                  시인은 어떻게 될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잠든 사물은 어떻게 될까?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가을 노래> 중에서

 

 

검은 꽃. 작가 김영하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누군가 만약 자신의 책들 중 한 권만 읽고 싶다면 어느 책을 추천하겠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는 바로 <검은 꽃>이라고 했다. 과연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갈등과 혼동의 시기에 썼던 책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빨리 쓰고 싶어 책상으로 달려가게 했던 소설. 김영하는 <검은 꽃>을 쓰면서 내가 작가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검은 꽃>이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우리는 ‘김영하’라는 작가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면 억지스러울까? 

 

그 에피소드를 들은 후, 이미 오랜 시간 내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이지만, 선택받지 못했던 책, <검은 꽃>을 집어 들었다. 차라리 주말에 읽기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내일 출근을 위해 책을 덮어야 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다음 날 일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엔 온통 책 생각뿐이었고. ‘이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연수는? 바오로 신부는? 멕시코에 간 조선인들은?‘ 그렇게 한 호흡으로 내려간 책이었다.

 

김영하의 문장은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대화조차도 따옴표 없이 마침표로 이어지는 문장들은 스토리 전개만큼이나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읽는 내내 나는 김영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의 목소리로 읽었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조선말, 무력한 황제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1033명의 조선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1905년 4월 4일 ‘묵서가’라 불리던 멕시코로 떠나게 된다. 손에 흙이라곤 묻혀본 적 없는 황제의 친척과 양반들, 보부상으로부터 도망친 소년, 주교의 명을 불복하고 도망치는 바오로 신부, 내시 악사, 소매치기,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군복을 벗은 군인들, 농민들, 상인들이 뒤섞여 떠난다. 

 

 

 

얼굴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해야 하는 상하적 사회적 신분을 가진 이들이 모두 제 각기의 이유로 조선을 떠라 멕시코로 떠나는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교민 하나 없는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외교부도 없어 보호도 받지 못할 나라로 오로지 희망 하나를 가지고 떠난다. 돈을 벌어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조선에 돌아와 내 땅을 가지리라.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존 마이어와 대륙식민회사에 속아 노예계약으로 팔려가고 있음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의 유카탄, 메리다주였다. 왕족이고 양반이고 일반 백성이고를 떠나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마야인들과 함께 에네켄을 잘라 묶어 내는 일이었다. 선박용 로프의 원료로 쓰이는 에네켄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과 서구 자본주의의 비약적 발전으로 말미암은 화물 운송량 증가로 품귀현상을 빚고 있었다. 죽은 자도 데려와서 일을 시키라고 할 만큼, 일손이 귀했던 그때, 언어도 통하지 않아 도망도 갈 수 없는 조선인들은 농장주들에겐 보석 같은 값싼 노동력 생산자들이었다.

 

배도 주리지 않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희망 하나로 일포드호를 타고 2달여를 고생을 견뎌냈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산도 물도 없는 드넓은 들판과 뜨거운 햇볕만이 가득한 그곳의 생활은 차라리 생활고에 힘들었어도 조선이 그리웠다. 신이 인간이 준 가장 큰 선물은 ‘적응’이라 했던가. 한국인들은 그러면서도 살아남고자 마야인들로부터 에네켄을 베는 일을 빠르게 배워가며 그곳의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가 형성이 되면 크던 작던 어디나 비슷한 무리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기득권의 앞잡이가 되어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자, 빠르게 적응하며 기회를 잡는 자. 묵묵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 적응을 하지 못하여 과거의 삶 속에 빠져 지내는 자. 또는, 우왕좌왕하는 이들의 방향을 잡아주고 지팡이가 되어주는 리더가 생기는가 하면, 그 작은 무리들 틈에 서로 없는 가운데에서도 등쳐 먹는 자까지 등장한다. 그렇게 자기 모양새대로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내게 가장 독특하게 다가왔던 인물은 연수였다. 황족의 친지 가문의 여식으로 타고난 품위와 뛰어난 미모, 그리고 열린 마인드까지 겸비한 소녀였다. 이정을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되는 연수. 사회 풍조가 많이 바뀌었다 해도, 세상이 바뀐 지금도 미혼녀가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은 많은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힘든 사회적 시선을 수반하게 되는 일이다. 하물며 100여 년 전의 조선시대에야 오죽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녀는 통역관으로 조선인들 중에서는 가장 후한 대접을 받고 있는 권영준에게 찾아가 상황 설명을 하며 나름의 생존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자신과 아이를 보호하고자 권영준의 첩이 되어 이정의 아이를 낳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권용준에게서 벗어나게 되지만 불행을 불러오는 운명의 여신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중국인에게 팔려가게 되고, 돌고 돌아 중국식당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 우연하게 그 식당에 들린 조선인인 묵묵하고 성품이 바른 박정훈에게 발견되어 구출되어 박정훈의 아내로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김영하는 이연수의 마지막을 이렇게 쓰고 있다.

 

“박정훈이 죽자 고리대금을 시작했다. 베라크루스에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큰손이 되어, 극장을 겸한 술집을 차려 무희들을 고용했다. 유흥가의 거물로 성장했지만, 어떤 자선 사업도 벌이지 않고 어떤 종교에도 의탁하지 않고, 오직 갈퀴처럼 돈을 긁어들이는 일에만 전념했다. 경찰과 행정당국은 그녀에게 매춘 알선 혐의를 적용하려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하였다.” (P366)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결말이었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삶의 잣대를 쉬이 내갈길 수 없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한 시대가 어떻게 한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지. 물론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선택이었을 것이나, 그러한 선택을 하게 한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건 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인 사랑은 이정과 했을 것이나, 그녀의 고된 삶에 쉼이 되어주고 휴식처가 되어준 것은 박정훈이었을 것이다. 기댈 수 있는 넓은 등이 되어준 인물. 

 

박정훈과 이정이 연수를 두고 나누는 대화를 읽으며 어찌 울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연수를 위해 그냥 떠나라고 하는 박정훈, 당신의 아들은 내가 잘 키우겠다고 약속하며, 혹시 혁명군을 도왔던 이유로 자기가 죽게 되면 그때 연수와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말하는 박정훈. 

 

박정훈과의 짧은 대화에 연수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여야 하는지 느끼며 연수와 아들을 위해 떠나는 이정. 그렇게 찾아 헤맨 연수를 멀리서만 바라볼 뿐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떠나는 이정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정과 연수의 사랑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애가 끓게 했다. 둘의 사랑은 절절하고 치열했으나, 그 사랑을 함께 이어가는 행복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애가 끓었다. 

 

처음 이정에 대해 읽을 때는 똑똑하고 남자다운 이정이 선교사의 조언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하여 연수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그는 엉뚱하게 멕시코 혁명군 비아의 용병으로 살아간다. 

 

나중에 연수와 아들을 찾아내지만, 그들의 행복을 위해 먼발치서만 바라보고는 조용하게 떠나는 그 뒷모습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과테말라 혁명군 마리와의 끈질긴 요청으로 과테말라 혁명군의 용병으로 함께 싸우다 삶을 마감한다. 신대한이라는 나라까지 만들지만 너무나 짧았다.

 

사실, 이정은 책 속에 가장 나의 시선을 끌었던 인물이다. 그가 영웅이 되어 무언가 멋진 일을 해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 속에 더 그의 행적을 쫓으며 읽었다. 조선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든, 미국으로 떠나 훌륭한 사업가가 되든.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고 섣부른 바람이었다. 멋진 왕자님이 백마 타고 아름다운 공주님을 구출하러 오는 동화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이밖에도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대표하는 인간상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귀한 집 자식이지만, 무능하고 자포자기한 아버지의 뒤를 밟지 않게 언어를 열심히 배우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이진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을 상황을 맞게 되지만 결국 주교에게 순종하지 못하고 도망간 멕시코에서 무당 박광수로 살아가게 되는 바오로 신부. 그러한 그의 등장과 정체성의 변신은 나에게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통역관이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깨인 마인드로 일찍이 외국어를 습득해 조선인들이 유네켄을 베며 고생을 하는 동안 호위호식을 누리는 권용준, 하지만 그의 되지 못한 성품은 결국 그를 파멸로 내몬다. 강한 생존 본능으로 멕시칸 감독보다 더 악질로 변해 그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는 최선길. 김이정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조선인들의 리더 역을 충실히 해내지만, 결국 ‘죽음의 전투’ 속에 비겁하게 야반도주하는 ‘조장윤’은 이정이 느낀 만큼이나 충격이었다. 

 

책 전체를 통해 내게 가장 비굴하고 비겁하게 다가왔던 인물은 바로 이종도였다. 등장한 많은 인물들이 보여준 행동들이 분명 잘못된 부분도 있었고, 양심에 반하는 이기적인 행동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살기’ 위해 행동했다. 하지만, 이종도는 가족을 데리고 온 상황에서도 어떠한 노력도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논어만 읽으며 어린 자식이 벌어오는 것으로 빌어먹었다. 무능한 인간의 절대적 표상이다. 내가 이 부분에 더 강렬한 반감을 느끼는 것은 나 역시 해외 이민자로서 어려운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한 숨에 달려 읽었다. 손에서 떼어낼 수 없어 숨이 턱까지 올라차도록 그렇게 한 호흡으로 읽었다. 시대도 환경도 다르지만, 해외 이민자로서 느끼는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삶은 우리들이 맞서야 하는 어려움이다. 

 

멕시코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몇 년 전, Cancun에 가족 여행을 가서 느꼈던 그들의 정서는 라틴계 문화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동질감이었다. 어쩜 그래서 이 책이 내겐 더 그렇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리뷰를 마치며..

 

해외 이민사는 내게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브라질 성당 이민사 편찬에 작은 역할이나마 함께 참여하면서, 몇십 년 전 먼저 이곳에 오신 분들의 생활상을 엿보며 고개가 숙여졌던 기억. 그분들의 고통과 수고가 있었기에, 후에 이민 온 우리들이 생활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감사함이 가득 느껴졌다. 

 

그리고 한글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했던 중남미 이민 역사 시간, 그때 처음으로 멕시코에 조선인들의 이민이 있었다는 사실과 승무 학교의 존재 등을 알았다. 그래선지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 상황 속에 더 감정이 이입되어 더 절절하게 다가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역사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같은 시대에 서로 다른 대륙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 조선의 을사조약,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혁명들. 나라는 달랐으나 민중이 원하는 목표는 같았을 것이다. 다 함께 잘 사는 나라, 사회적 지위를 떠나 존중받는 나라, 여자도 남자도 재능에 따라 존중받는 나라. 하긴 아직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이유로 때로는 투쟁하며, 때로는 받아들이며 그렇게 우리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김영하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 작업을 해야 했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방대한 역사 자료를 모으고 발췌하고 소설로 이끌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속에 파묻혀 보내야 했을지. 자료 조사를 위해 직접 멕시코에서 생활을 하며 소설의 앞부분을 썼다고 했다. 

 

문득, 왜 제목이 <검은 꽃>일까 궁금했다. 

김영하의 인터뷰 내용으로 리뷰를 마친다.

 

원고를 처음 쓰기 시작할 때부터 ‘검은 꽃’의 이미지가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검은색 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죠.
동시에 세상의 모든 꽃을 섞어야 나오는 색이기도 해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검은 꽃’이 정체성 상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책에 나오는 11명의 데스페라도(무법자), 인간 존재 일반의 운명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고.

-       김영하의 ‘검은 꽃’ 인터뷰 중에서 

 

지난 사건을 돌아보면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수많은 “If”가 줄줄이 사랑처럼 꼬리를 치고 달려든다.

만약 그때, 정부 지원이 넉넉하여 윤치호가 멕시코에 갈 수 있었다면, 그래서 조선에 그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면…

만약, 황사용과 하와이의 한인들이 계획했던 유카탄의 한인들 전체를 하와이로 집단 이주시키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성공했더라면…

 

그들의 죽음이 그저 '죽음'이 아니었고,

그들의 고통이 그저 '고통'이 아니었고,

그들의 존재가 잊혀지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졌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다.

 

김영하의 책은 <검은 꽃>은 ‘Flor Negra’라는 제목으로 포어로도 번역되어 브라질인들에게도 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