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58] 노인과 바다를 읽고 /이인규 옮김/문학동네

pumpkinn 2021. 9. 7. 07:32

 

 

눈물이 북받쳤다. 폭풍이 지난 후의 고요함.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내려앉는 평화로움.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이 마지막 구절이 내게는 잔을 채우는 마지막 눈물방울 되어 넘쳐흐르고야 말았다. 우리 나이쯤 되면 굳이 말이 필요 없이 이해되고 그대로 공감되어 느껴지는 바로 그것.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

 

84일 동안 아무것도 아무것도 잡지 못했던 노인이 큰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을 안겨준다. 그렇게 오랜 시간 물고기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투덜거림이 아니라, ‘오늘은 다를 것’이라며, 운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모르니 충실하게 준비를 한다. 매일매일은 새로운 하루라며 겸허히 하루를 맞는 노인의 모습은 경건하기마저 하다.

 

큰 물고기가 잡히길 기다리며 한없이 바다로 나가는 노인. 기다리는 동안의 혹시도 오늘도 허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이지만, 그럼에도 놓아버리지 않는 희망. 결국 물고기가 나타나고 그 물고기를 잡기 위한 사투가 벌어진다. 청새치와 싸우며 상어들과 싸우며 보여주는 처절한 자신의 육체의 고통과 나약해지려는 자신의 정신과의 싸움. 자신이 가진 도구와 배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물고기지만, 그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등으로 밧줄을 팽팽하게 메고 있기에 이미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그는 위로한다. 

 

“별들을 죽이려고 애써야 하는 게 아니니 참 다행이야.” (P78) 

 

정신이 혼미해질 그는 생각한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나이답게 이 고난을 어떻게 견뎌낼지 생각해.
  아니면 물고기처럼 고통을 견디는 거라도. 노인은 생각했다.” (P96)

 

그렇게 힘들게 물고기와의 싸움에 승리하는 노인의 기쁨은 찰나의 순간으로 끝나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걸’ 바랄 만큼 상어들과의 고통스러운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아.” (P105)라고 자신의 운 없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노인은 ‘어쩌면 운이 좋아’ 상어들을 죽이고 온전히 가져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끝없이 상어들은 노인의 영광의 증거인 물고기를 차츰차츰 먹어가며 노인의 희망 역시도 야금야금 먹어간다. 첨엔 4분의 3이라도 가져갈 수 있으니 다행이고 짐이 줄어서 배가 가벼워 빨리 나아간다는 것으로 위로하고 의미를 두며 나아가지만 결국 고기는 대가리와 고리만을 남겨둔 채 앙상한 뼈만 남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 해 싸운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는 어려움 속에 처할 때면 기도를 한다. 평소에는 기도하는 신앙인은 아니지만, 예쁘게 봐달라고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외우거나 또는 외운 것처럼 쳐달라며 봐달라고 하느님과 순진한 거래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사투를 벌이며 지켜내려 했던 그것을 모두 잃었을 때 초연한 자세로 집으로 돌아가는 일 밖에는 어떤 일도 신경 쓰지 않으며 키를 조종하는 것에만 집중을 한다. 

 

우리를 어떠한 고통에서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희망’이다 히지만 어느 순간 그 ‘희망’이라는 것도 내 안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욕심을 온전히 내려놓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를 모두 잃었을 때 노인의 보여준 초연함이란.... 어쩌면 마음이 홀가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가장 나를 감동시켰던 것은 바로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을 탓하지 않으며, 매일매일은 새로운 다른 하루임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희망을 놓지 않는 산티아고 노인의 모습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충실히 지키며 결코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산티아고 노인.  자신이 그리도 간절히 원하던 무엇을 얻었을 때 그는 교만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어처구니없이 잃어야 했을 때도 그는 탓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초연함을 보여주었다. 변명도 없었고 불평도 없었고 떠벌림도 과장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누가 그를 패배시킨 것이냐는 내면의 물음에 그는 말한다. “아무도 아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P126) 그렇다. 우리 삶을 패배시키는 것은 아무도 아닌 것이다 그저 우리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인 게다. 그렇다.  단. 지. 내. 가. 너. 무. 멀. 리. 나. 갔. 을. 뿐. 이. 다.

어떤 힘든 상황에서든 항상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승화시키는 산티아고 노인.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존재 자체로 눈물이 그렁대게 하는 아름다운 영혼.

 

그렇게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산티아고 노인이지만 밀려오는 그리움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아내의 사진은 옷 밑에 놓아둔다. 자신이 힘겹게 싸울 때 소년을 떠올리며 자신이 살아있는 의미가 되어주는 소년을 그리워하는 부분에서는 어찌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있을까. 노인을 그토록 사랑하고 노인의 외로운 공간을 따뜻한 관심으로 채워주며, 사랑으로 지켜주는 소년. 깊은 상처로 피범벅이 된 노인의 손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소년을 보며 어찌 눈물을 함께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조마조마하며 읽어 내려갔던 ‘노인과 바다’의 결말은 나로 하여금 안도의 숨을 내리쉬게 했다. 혹시나 노인이 잠을 자다 죽는 건 아닐까. 마지막 부분을 읽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으나, 사자 꿈을 꾸는 그의 모습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내게 주어진 삶에 자신의 몫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 그래. 노인에게 운을 가져다주는 이는 소년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삶에 행복을 느끼게 하는 존재. 어쩌면 노인과 소년은 서로에게 그런 의미 일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 함께 한 여러 가지 의문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바로 노인의 이름이었다. ‘산티아고’. 빠울로 꼬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양치기 이름도 ‘산티아고’였다. 그리고 ‘순례자’에서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의 여정이 담겨있다. 그런데 헤밍웨이도 그 이름을 썼다. ‘산티아고’라는 이름에는 어떤 신성함이 묻어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성 야고보’를 뜻하는 것이야 알고 있지만, 혹시 그 이름이 안겨주는 또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많은 훌륭한 작가로부터 사랑받는 이름이니 말이다.

 

두 번째로는 ‘왜 이 책을 어린 중학생들에게 읽으라고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린아이들이 이 책의 의미를 얼마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지성의 수준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좀 더 삶의 연륜이 쌓이고 나야 헤밍웨이가 독자들로 하여금 느꼈음 하는 그것, 바로 헤밍웨이가 말하고자 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기다림에서 느껴지는 삶의 메타포. 물고기와 상어들과의 싸움을 보여주면서 현실과 이어지는 비유. 그리고 싸움에서 돌아오며 그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겸허한 모습이 우리 삶 속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과연 13-4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게다.

 

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은, 왜 헤밍웨이는 이렇게 강하고 인간미 넘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인간상을 우리에게 그토록 감동적으로 심어주고는 자신은 ‘자살’이라는 비겁한 행동을 취했던 걸까. 물론 글을 그렇게 썼다고 해서 글과 작가를 동일시할 수야 없지만, 그는 다분히 산티아고 노인과 닮은 부분이 많았던 작가가 아닌가. 그를 스스로 죽음을 몰고 가게 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과연 우울증이라는 병이 합당한 이유라며 갖다 붙일 수 있는 걸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산티아고 노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데, 왜 그는 삶의 끈을 스스로 놓아야 했던 걸까.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고 먹먹한 슬픔이었고, 아픔이었다.

 

 

 

대충대충 보내고 있던 요즘이어서였는지, ‘노인과 바다’는 내게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깊은 성찰을 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 산티아고 노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운 현실을 어떤 모습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승화시켰는지. 그가 매 순간 자신의 힘이 바닥으로 내쳐지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그렇게 당당하게 싸워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속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포기하지 않았는지.. 그의 모습이 안겨주는 감동이 절정에 달할수록 그만큼 나는 작아졌다.

 

과연 나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새롭게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나은 날’이 될 것임을 믿고 신뢰하며 불평하지 않고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지. 나는 내게 추구하는 목적과 꿈을 향해 그렇게 온몸과 열정과 최선을 다해 기꺼이 부딪히며 도전했는지. 그리고 내가 그것을 내 손에 쥐었을 때 나는 팔딱되지 않고 겸손되이 받아들였는지. 또한, 그것을 잃었을 때 나는 최선을 다했음에 그 모든 것을 순리대로 받아들이며 그래도 내게 아직 남겨진 그것들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느끼며 감사히 받아들이는 그런 초연함을 가졌는지. 그 모든 것이 내겐 뜨거운 감동이 함께하는 숙제였다.

 

나는 지금 내 안에서 자꾸만 울컥거리며 울먹되며 나오려 하는 눈물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정말 나는 모른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느끼는 그 거대한 감정들을 모두 글로 쏟아부어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그것. 잔잔하고도 깊은 여운이 내 안에 강렬한 불꽃이 되어 남아 있다. ‘삶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침묵’으로 가르쳐준 듯한 그런 느낌. 침묵 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깊고도 깊은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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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 중학생 때 내가 참으로 좋아하던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이 생각났다. 나중에 리메이크해서 박지윤이 부르기도 했던 ‘하늘색 꿈’. 그 곡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더랬다. 정말 어른이 되면 눈빛이 흐려지는 걸까..?  그 노래를 들으면 나는 나이가 들어도 하늘색 꿈을 가진 눈빛이 맑은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그때가 떠올라 뭉클해졌다. 그게 결심한다고 되는 일이던가..? 세상사에 시달려가며 이리저리 차이고 부대끼며 지쳐가는 동안 눈빛이 흐려지는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게지. 그래도 아직 꿈을 꿀 수 있어서 좋고, 아직 꿈을 이룰 수 있는 나이라고 착각할 수 있어 좋고, 아직 꿈을 꾸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다.

노인은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지만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하늘빛 꿈을 꾸던 어느 아이의 눈빛처럼...

 

P10 “산티아고 할아버지.”

>> ‘산티아고..’ 이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진 걸까..?  빠울로 꼬엘료의 연금술사에서도 주인공인 양치기의 이름이 ‘산티아고’였고, ‘순례자’에서 그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물론 산티아고가 ‘성 야고보’를 뜻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고 다른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 한국에서 순이 철수처럼 흔한 이름이라면 모르지만, 남미에서 그렇게 흔한 이름을 찾으라면 차라리 뻬드로나 후완이 더 많을 터. 궁금했다. 왜 유명한 작가들은 ‘산티아고’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P11 “아빠 때문에 떠난 거예요. 전 아직 어려서 아빠 말에 따라야 하니까요.”

>> 마음이 곱고 착한 소년. 할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도 자신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빠 말에 순종해야 하는.. 그래서 자신의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님에 대한 여린 아픔이 느껴졌다.

 

P11 “그래.” 노인은 말했다. “하지만 우린 믿음이 있지. 그렇잖니?”

>> 가슴 한 켠에 울림이 느껴졌다. “그래. 우린 믿음이 있지.” 믿음은 우리 삶 안에 희망을 심어주고, 우리는 또 그렇게 언젠가는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어떠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P14 “한 마리만 가져와.” 노인은 말했다. 그는 희망과 자신감을 잃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희망과 자신감이 산들바람이 불어올 때처럼 더욱 새롭게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 마음에 여린 파장이 일었다. 왜 자꾸 눈물이 나려는 걸까..?

 

P17 예전엔 연한 색인 화징에 뽑은 아내의 사진도 벽에 걸려 있었지만, 그걸 볼 때마다 너무나 외로워서 떼어버렸다.

>> 바라볼 때마다 노인을 외로움에 젖어들게 만드는 그녀. 그 잔인한 그리움을 노인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소년이 그 빈 공간을 채워주었을까.. 바다가 그 빈자리를 가득 메워주었을까...

 

P17 사실 투망은 없었다. 소년은 그걸 언제 팔았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꾸며낸 대화를 매일 되풀이했다. 노란 쌀밥과 생선이 든 냄비도 없었고, 이것 역시 소년은 알고 있었다.

>>....

 

P19 돈을 꾸는 건 바로 거지가 되는 첫걸음이거든.

>> 돈을 꾸는 것이 바로 거지가 되는 첫걸음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성향으로 나는 돈을 꾸어주는 것도, 내가 누군가로부터 돈을 꾸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거부반응이 인다. 내가 돈을 꾸어주어야 할 때면 차라리 그냥 준다는 생각으로 준다. 그렇게 줄 때는 그 돈이 없어도 내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 준다.

이것은 엄마로부터 배운 교훈이다. “절대 돈거래는 하지 마라. 특히 형제들 간에는 절대 돈을 꾸지도 말고 꾸어주지도 마라. 그냥 주어라.”였다. 이것은 돈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게 관계를 파괴시키는지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그렇게 관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기에 관계가 망가질 일은 하지 말라는 말씀. 살아오면서 엄마의 가르침이 얼마나 지혜로운 가르침이셨는지 느끼곤 한다. 내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돈 때문에 망쳐야 했는지를 너무나도 자주 보았는가.. 그래선지, 친구 사이나 서로 좋은 사이에 돈 관계가 개입되는 것은 절대 하지 않는다. 관계의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더욱 싫은 거다.. 처음부터 비즈니스 차원에서 만난 사이라면 몰라도...

 

P20 “담요는 그대로 두르고 계세요,.” 소년이 말했다. “제가 살아있는 한 할아버지가 끼니를 거르고 고기 잡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어린 녀석이 참 다부지다. “내가 살아있는 한..” 할아버지에 대한 깊고 깊은 사랑. 한없는 사랑이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아내는 먼저 갔지만, 이렇게 사랑을 가득 퍼부어 주는 소년이 있어 내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P22 할아버지한테 물도 갖다 드려야겠어, 소년은 생각했다. 비누와 좋은 수건도 말이야. 어째서 그 생각을 못했지? 거울에 입을 셔츠와 겉옷도 한 벌씩 갖다 드리고, 구두 같은 것과 담요도 하나 구해드려야겠어.

>> 마음이 얼마나 이쁜지...

 

P24 “케 바.” 소년은 말했다. “물론 유능한 어부들이 많을 테고 그중엔 훌륭한 어부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최고는 할아버지뿐이에요.”

>> 눈물....

 

P24 “고맙다. 넌 날 기쁘게 해 주는구나. 부디 우리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만큼 너무 커다란 물고기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 ^^

 

P27 노인은 밖으로 나갔다. 소년도 뒤따라 나왔다. 노인은 아직 졸려하는 소년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케 바.” 소년은 대답했다. “남자라면 해야 할 일인데요.”

>> “남자라면 해야 할 일인데요.” 소년은 크면 얼마나 멋진 청년이 될까..? 분명 따뜻하고 감성적이면서도 용감하고 강인하며 또한 책임감 강한 멋진 청년으로 자랄 것이다..

 

P31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 (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바다를 나쁘게 말하긴 하지만 그런 때도 항상 바다를 여자처럼 여기며 말했다. 젊은 어부들 가운데, 상어 같으로 한창 벌이가 좋을 때 구입한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면, 찌 대신 부표를 낚싯줄에 매달아 사용하는 자들은 바다를 남선인 “엘 마르 (El Mar)’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다를 경쟁자나 투쟁 장소, 심지어 적처럼 여기며 말했다. 하지만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큰 호의를 베풀어주거나 거절하는 어떤 존재로 생각했다. 만약 바다가 사납고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바다는 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게 노인의 생각이었다.

>> 처음 알았다. 바다를 그렇게 여성형으로도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어부들 사이에서 그렇게 표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노인은 바다를 여성으로 생각했고, 바다가 악한 행동을 한다면 그건 바다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인네처럼.

어쩌면, 노인이 그렇게 바다를 여자처럼 생각한 것은 온전히 그 속내를 알 수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따듯하게 어루만져주며 평화를 안겨주기도 하면서 심한 풍랑과 파도를 안겨주며 토라진 여자처럼 심통을 부리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겠는가 말이다. 어쨌든 재밌는 표현이었다. La Mar....

 

P33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 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어제까지는 운이 없었지만 오늘은 운이 트일지도 모르는 일. 운이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노인. 노인은 알고 있었던 게다. ‘운’이라는 것은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는 거란 사실을. 준비된 자에게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도 운은 다가온다. 단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잡지 못했을 뿐... 그 진리를 노인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정확 찌를 꽂는 노인. 그 지혜로움과 성실함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P44 “이거 굉장한 놈인데!” 노인은 말했다. “ 이 녀석 지금 미끼를 주둥이 가장자리에 물고서 그 상태로 달아나고 있어.” 그러다가 돌아서서는 미끼를 삼키겠지.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이 생각만은 소리 내서 말하지 않았다. 좋은 일을 미리 입밖에 꺼냈다가는 한순간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좋은 일을 미리 입 밖에 꺼냈다가는 한순간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이 났다. 나도 좋은 일은 미리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버릇이 있다. 물론 한순간 날아가버릴까 걱정이 되서기도 하지만, 쨘~!!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좋은 일’에서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앞으로 세우는 계획 등을 말하는 것을 무척 꺼려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때로는 내 안에 잠재한 교만함도 작용하는 것임을 느끼고는 와우를 통해 조금씩 보여주는 연습을 했다. 그래도 정말로 나 혼자 간직하고 쨘~하고 싶은 계획은 입 밖에 잘 내지 않는다. 사실 입 밖에 내고 나면 왠지는 모르지만 나의 비장한 결의가 약해짐을 느낀다. 힘이 약해져 버리는 거다. 그래서 그것을 끝내어 성취할 때까지 내 안에 온전히 간직하게 되는 것.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겠지. 교만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걸께다..

 

P48 그러다가 노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육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 상관없어. 노인은 생각했다. 언제든지 아바나의 불빛을 바라보고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해가 지려면 아직 두 시간은 더 남았으니까 아마 그때까진 녀석이 위로 떠오를 거야. 설령 그때까지 떠오르지 않더라도 달이 뜰 땐 떠오를 거야. 혹시 달이 떠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해가 뜰 땐 떠오를 거야. 나는 아직 손에 쥐도 나지 않고 기운도 팔팔해, 낚싯바늘이 주둥이에 걸려 있는 쪽은 저놈이야. 하지만 이렇게 배를 끌고 가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야. 바늘이 달린 철삿줄까지 삼킨 채 주둥이를 꽉 다물고 있는 게 틀림없어. 놈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내가 어떤 놈을 상대하고 있는지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 좋으련만.

>> 노인은 항상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며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설득하고는 현재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대처한다. 나도 조금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아니 사실 오래전엔 나도 이런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다지 그리 긍정적이진 않다. 그때의 그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노인을 보면서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P49 노인은 생각했다. 이럴 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 멋질 텐데. 그러다가 그는 생각했다. 한순간도 물고기를 잊어서는 안 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해야 돼.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절대 안 돼.

>> 우리는 목표하던 것을 바로 눈 앞에 두고서는 얼마나 많이 옆길로 새는가..? 하지만 노인은 잠시 다른 것을 떠올리다가도 자신의 온 정신을 목표물에 집중하도록 도닥거리며 자신이 지금 현재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한다.

노인만 같다면.. 우리는 결코 바로 목적지 앞에서, 목표물을 앞에 두고 길을 잃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을 것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바로 그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곤 한다... 내가 그랬듯이.............

 

P51 노인이 낚싯줄을 정리하고 작살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놈은 배 옆에서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라 암놈이 있는 자리를 한 번 바라보고는, 연보라색 가슴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활짝 펼친 채 연보라색 넓은 줄무늬를 모두 내보이며 바다로 떨어져 깊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참 아름다운 놈이었지. 그리고 끝까지 암놈 곁을 안 떠나려고 했어, 노인은 기억을 되새겼다.

>> 물고기들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그들은 얼마나 많이 그렇게 남편 물고기를 잃고, 부인 물고기를 잃고 엄마 아빠 물고기를, 그리고 자식 물고기를 잃는 것을 보고 그 슬픔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잡혀버린 아내 물고기를 떠나지 못해 그 주위를 빙빙 돌다 마침내 점프하여 마지막으로 보고는 떠나가는 남편 물고기...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P52청새치를 잡으며 본 가장 슬픈 광경이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소년도 슬퍼했지. 그래서 우린 암놈에게 용서를 빌고 도살 작업을 신속하게 끝냈어.

>> 너무나도 슬프면서도, 너무나도 웃긴 표현이었다.. ‘암놈에게 용서를 빌고 도살 작업을 신속하게..’. 돌아가시겠다...^^;;

 

P52 놈이 선택한 것은 그 어떤 덫과 함정과 속임수도 미치지 못하는 먼 바다의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 머무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놈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말이야, 이제 우린 서로 연결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게다가 우린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다. 때로는 함께 도와주고 길을 가는 좋은 인연으로, 때로는 노인과 물고기처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죽고 죽이는 관계로, 그 모든 선택은 온전히 나만의 것인 게다. 내가 선택한 삶이 온전히 나의 몫이듯이..

 

P54 “물고기야.” 노인은 다정하게, 하지만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죽을 때까지 네놈과 함께 가겠다.”

>> 왜 자꾸 눈물이 내 가슴에 머무는 건지...

 

P57 “그런 튼튼한 줄이란다.” 노인은 새에게 말했다. “아주 튼튼한 줄이지. 간밤에 바람도 하나 없었는데 그렇게 지쳐서야 되겠니? 그런데 새들은 결국 어떻게 되는 걸까?” 매들이 이런 새를 잡아먹으러 바다로 나오겠지,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새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데다 어차피 곧 매에 대해 충분히 배우게 될 것이었다.

>> 자기도 힘들면서 줄에 내려앉아 쉬는 작은 새를 보며 가여워하는 노인. 그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노인은 아내를 먼저 보낸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P57 “푹 쉬어라, 작은 새야.” 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 꿋꿋하게 도전하며 너답게 살아. 사람이든 새든 물고기든 모두 그렇듯이 말이다.”

>> 그래... 나도 꿋꿋하게 도전하며 나답게 살아야지...

 

P58 노인은 새가 어디 있나 둘러보았다. 동무 삼아 함께 있으면 좋으련만, 새는 가버리고 없었다.

>> 외로움....

 

P58 그건 그렇고 물고기가 그렇게 한 번 홱 당긴다고 고꾸라지다니 이게 무슨 꼴이람. 내가 아주 둔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 아니면 아까 그 작은 새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팔려 그런 걸 수도 있어. 이제부턴 일에 집중해야지. 그리고 힘이 떨어지지 않도록 다랑어를 꼭 먹어두어야겠어.

>> 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바르게 인지하고 스스로를 인식시키는 노인. 삶이 주는 지혜 때문인 걸까..? 아니면 타고난 단순성 때문일까..?

 

P63 노인은 바다에서는 그 누구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눈물이 났다.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할아버지가 더 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P63 바다에 나가 있으면, 언제나 태풍이 불어오기 며칠 전 하늘에서 징조를 엿볼 수 있었다. 육지에서 그걸 못 알아보는 건 사람들이 무얼 살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육지에선 사람들이 무얼 살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은, 아마도 살필 겨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바쁜 삶에 쫓기고, 이런저런 문제들 속에 치여 살피고자 하는 마음도 갖기 힘들게 되는 것. 그래서 우리는 가끔 바다에 나가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건지도...

 

P64 쥐가 나는 건 정말 싫어. 노인은 생각했다. 그건 꼭 몸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거든.

>> 쥐가 나는 것이 몸이 자신을 배신하는 것 같다고.. 그래 반항을 하는 것이긴 하다... 그 반항이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고....

 

P66 노인은 생각했다. 나도 놈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러면 쥐가 난 손을 놈한테 들키겠지. 놈이 나를 실제의 나보다 더 강한 존재로 생각하게 내버려두자. 아니, 난 그렇게 더 강해지고 말겠어. 차라리 내가 저 물고기라면 좋겠군. 노인은 생각했다. 놈의 이 모든 힘에 맞서고 있는 게 그저 내 의지와 머리밖에 없는 형편이니 말이야.

>> 노인의 이 초인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결코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는다. 마치 고통과 어려움이 닥치면 닥칠수록 더 강해지는 듯한 느낌.

 

P67 노인은 뱃머리 판자에 기대어 좀 더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 편한 자세로 취하고는 다가오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인. 온전히 자기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저항하지 않으며 순응하며 몸을 맡기는 노인. 저항하면 할수록 더 고통스러워지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가오는 고통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 때로는 덜 고통스러운 것이며, 가장 고통을 줄이는 방법임을... 노인은 알고 있었던 게다... 그는 지혜로우니까... 삶 안에서 이미 많은 고통을 겪어봤기 때문에 고통을 가장 강하게 맞서는 방법은 고통을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P67 그는 기도문을 기계적으로 외우기 시작했다. 이따금 너무 피곤해서 기도문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 기도문을 아주 빠르게 외우면 자동적으로 줄줄이 나오곤 했다.

>> 읽으면서 내 입가엔 살포시 웃음이 번졌다. 아주 재밌는 웃음이.. 내가 종종 그러기 때문이다. 카톨릭엔 외워야 하는 기도문이 많은데, 물론 그 모든 기도문을 다 외우지도 못하거니와, 내가 교회를 다니면서 외웠던 사도 신경과 성당에서 외우는 사도 신경이 뜻은 같은데 표현이 살짝 다른 것이, 때때로 그냥 천천히 외우다 보면 헷갈리는 거다. 이 건지 저건지. ^^;; 그런데 빨리 외우면 자동적으로 술술 나오는 것.. 산티아고 노인은 피곤해서 그렇다지만, 나는 왜 이러는가..? 음... 머리가 나쁜 게다. -_-;;

 

P69 나는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 놈에게 보여주고 말겠어.

>> 이런 오기와 자존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부딪히는 많은 어려움들을 얼마나 멋지게 넘어서게 하는지... 그렇게 꼭 해내고야 말겠다며 오기를 부리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오기와 뚝심은 다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P69 과거에 이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 이것이 노인과 나와 다른 면이다. 그래서 노인은 감동을 주고 거대해 보이는 한편, 나는 그저 평범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 중의 또 하나.. 가 되는 것이다..

과거에 이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노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나, 나에게는 수많은 의미를 안겨준다. 그래서 바로 지금 현실에 충실해야 하는 그 시간을 찬란했던 지난날들을 그리는 것에 낭비를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다시 증명해 보이려 하지만, 나는 지금 그것을 또 해야 한다는 것에 힘들어하고 불평하게 되는 것.

그는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는 또 같은 일을 해야 함에 힘들어하고, 반복되는 상황 속에 또 다신 찬란하고 빛났던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와 내가 달랐던 점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감동을 안겨주는 삶이지만, 내 삶은 무료하게 낭비되는 감동과는 거리가 먼 삶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과 옴과 영혼에 꼭꼭 심어 놓아야 할 것이다.

 

P74 그는 자기가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 확실히 먹으면 상대가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 그가 어떤 정신력을 가진 사람인지 여실히 나타나는 부분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온 정신과 영혼을 쏟아붓는 열정을 가진 사람. 그래서 어떤 역경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 그래서 감동을 주며 동경의 대상이 되는 그런 사람인 게다.

 

P77 해 질 녘에 너무 자극하는 건 좋지 않아. 해질 무렵은 어떤 물고기한테든 힘든 시간이니까.

>> 나는 왜 해질 무렵이 물고기들한테 힘든 시간이 되는지 모르지만, 그런 상황까지 배려하며 배는 고프지만 잡은 만새기를 가만 내버려두는 노인의 배려와 따뜻함이 너무 감동이었다...

 

P77 내일은 만새기를 먹을 거야, 노인은 만새기를 ‘도라도’라고 불렀다. 내장을 발라낼 때 조금 먹어둬야 할지도 몰라. 다랑어보다는 먹기가 힘들 거야, 하지만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는 법이지.

>> 그래 맞아. 세상엔 쉬운 일이란 없는 법이지. 그래서 누구나 저마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십자가로 지고 가는 거지.. 그러니 나만 그런 것처럼 불평하며 탓할 일도 아닌 것. 어차피 우리가 그렇게 삶을 선물로 받은 대가로 자기 몫의 십자가를 감당해야 한다면 기왕이면 웃으면서 즐겁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가야 하는 건 게야... 노인이 그 역겨운 만새기를 먹는 것처럼...

 

P78 노인이 정말로 쌩쌩한 건 아니었다. 등을 짓누르는 낚싯줄의 고통이 이미 통증의 정도를 넘어서 무감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그건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하지만 전엔 이보다 더 심한 고통도 겪었잖아. 노인은 생각했다.

>> 그는 결코 고통에 자신을 맡기며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날의 경험이 지금의 내 상황에 도움을 준다면 그는 기꺼이 과거로 돌아가 기억을 꺼내어 지금의 나에게 용기를 주며 희망을 절대 놓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P78 “저 물고기 녀석도 내 친구지.” 노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저 놈은 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굉장한 물고기야. 하지만 난 놈을 죽여야 해. 별들을 죽이려고 애써야 하는 게 아니니 참 다행이야.”

>>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함에 있어서도 노인은 감성적이고 시적이다. 재밌기마저 하다. 별들을 죽이려고 애써야 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위로하는 모습은 얼마나 순수하고 천진스러운지... 어떤 상황에서든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고통을 멋지게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산티아고 노인..

 

P79 그러다가 노인은 먹은 게 아무것도 없는 그 커다란 물고기가 불쌍해졌다. 그렇지만 이런 연민에도 물고기를 죽이겠다는 결심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다. 놈을 잡으면 몇 사람이나 먹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사람들이 놈을 먹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없지. 물론 없고말고, 놈의 행동거지와 대단한 위엄을 생각할 때 놈을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오랜 싸움을 함께하는 동안 물고기와 동지의식마저 느끼는 노인. 하지만 자기는 그 역겨운 만새기라도 먹었지만, 자신의 동료 물고기는 아무것도 먹지 못함을 불쌍해하면서도 그를 죽여야 하는 목적의식은 결코 잊지 않았다. 그 숭고하고 위엄 있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자격을 가진 자여야 한다며 물고기에 예를 표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삶을 소중히 하며, 자신의 삶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동물 모든 것을 존중하는 그의 모습을 느끼며 나마저 물고기에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그의 강함과 삶에 대한 애착. 그러면서도 우아함과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 물고기에게...

 

P79 이런 일들은 난 잘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건 다행이야. 바다에서 살아가며 우리의 진정한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말이야.

>> 정말 그래.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나 별을 죽여야 했다면 우짰을까나...

 

P91 “이런 물고기를 눈앞에 두고 기력이 다해 죽을 수는 없어.” 노인은 말했다. “놈이 마침내 아주 잘 올라오고 있는데, 하느님 제발 제가 견뎌낼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주기도문이랑 성모송을 백 번씩이라도 얼마든지 외우겠습니다. 지금 당장 외울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일단 외운 걸로 쳐주십시오. 노인은 생각했다. 나중에 꼭 외우겠습니다.

>> 진지하게 읽어 내려가다 ‘일단 외운 걸로 쳐주십시오’ 하고 부탁하는 산티아고 노인의 순수함과 맑은 천진스러움에 웃음이 빵~ 터졌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이쁘셨을까..? 아마 꼭~ 안아주고 싶었을 것 같다. 이런 순진하고 이쁜 거래는 하느님께서도 덥석 받아주실 게다. 덤으로 선물까지 얹어서...

 

P96 “물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물고기야, 넌 어쨌든 죽어야 할 운명이야. 그렇다고 나까지 죽여야 하겠냐?

>> 하하하~ 거참~ ^^ 결국 너 죽고 나 살자라는 말인데, 표현이 얼마나 웃기는지..^^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내가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_-;;

 

P96 물고기야, 네가 날 죽일 작정이구나.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너도 그럴 권리가 있지. 나의 형제여, 난 너보다 더 훌륭하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고상한 존재를 결코 본 적이 없다. 자, 어서 와서 날 죽여라. 누가 누굴 죽이든 난 이제 상관없다. 자네 이제 정신이 혼미해지는군. 노인은 생각했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나이답게 이 고난을 어떻게 견뎌낼지 생각해. 아니면 물고기처럼 고통을 견디는 거라도, 노인은 생각했다.

>> 극도의 긴장과 피로 속에 지칠 대로 지쳐 정신이 혼미하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노인의 정신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가끔은 차라리 그냥 그렇게 모른 척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고통이 극에 달할 때마다 노인은 늘 그때그때 자신의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며 그 상황을 버텨나가는 거다. 절대 삶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산티아고 노인. 헤밍웨이는 본인을 거울삼았을 터인데, 그는 왜 자살을 한 것일까..? 또다시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P97 노인은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먼 옛날의 자존심을 전부 끌어모아 물고기의 고통과 맞서게 했다.

>> 나는 모든 고통과 마지막 남은 힘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먼 옛날의 자존심까지 전부 끌어모아 맞서야 했던 상황이 있었던가..? 그렇게 처절하게 삶과 대항하여 싸우면서 나의 인간적인 존엄성과 품위를 잃지 않으며 그렇게 당당하게 맞선 적이 있었는가..? 노인만큼 에너지가 고갈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도 그렇게 멋지게 맞섰던 적이 있었다. 내가 가장 잊지 못하는 그 시절. 그래서 나는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노인의 상황을.. 노인의 몸부림을...

 

P105 그는 굳은 결의로 가득 차 있었지만 희망은 거의 품지 않았다. 이런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아. 노인은 생각했다. 그는 그 커다란 물고기를 한 번 쳐다보고는 상어가 접근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걸. 노인은 생각했다.

>> 그래. 우리에게 다가오는 너무나도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 것 같기도. 아니 어쩌면 ‘좋은 일’은 오래가는데, 그 좋은 일을 잃게 될까 봐 우리를 감싸는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좀 더 오래 만끽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굳은 결의에 가득 차 있지만 희망은 거의 품지 않는 상황. 나에게도 있었다. 그저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길 수 만 있다면 하느님께 절절한 감사기도를 드릴 것 같은 그런 상황.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섭던 그래서 밤이 영원히 가질 않기를 바라던 그런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희망을 품는 것조차 사치였던 그런 시절이 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던... 그런 고통 속에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그런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P108 물고기의 일부가 뜯겨나가자 노인은 불고기를 더는 쳐다보기 싫었다. 물고기가 물어뜯겼을 때 노인은 마치 자기 자신이 물어뜯긴 거처럼 느꼈다.

>> 아~ 너무나 나는 느낄 수 있다~ 내가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무엇이 흠이 갔을 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은 흠이 갔기에 소중한 의미가 없어져서가 아닌, 그것을 볼 때 느껴지는 고통과 아픔. 바로 그것 때문인 게다. 

물고기가 물어뜯겼을 때 마치 자기 자신이 물어뜯긴 것처럼 느낀 노인의 마음을 그 느낌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내가 물어뜯기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을게다..

 

P107 오래가기에는 너무나 좋은 일이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모든 게 다 꿈이라면,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전혀 없던 일이고 그저 혼자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있는 거라면 좋을 텐데...

>> 지난날 살아오면서 ‘차라리 모든 게 다 꿈이라면...’하고 생각할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오래가기에는 너무나 좋은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는 노인은 이미 지난날 삶 속에서 많은 상실과 좌절을 맛보았기에 그만큼 포기와 체념이 빨랐을지도 모른다...

 

P108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그래도 이렇게 되고 보니 저 물고기를 죽인 게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이제 어려운 일들이 닥쳐올 텐데 작살조차 없으니, 덴투소는 잔인하고 싸움을 잘하고 강하며 영리한 놈들이야, 하지만 난 아까 그놈보다 더 영리했어. 아니,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몰라. 그는 생각했다. 그저 내가 더 좋은 무기를 갖고 있었을 뿐인지도 몰라.

>> 강하면서도 결코 삶 앞에서 교만하지 않은 노인의 고백은 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그저 내가 더 좋은 무기를 갖고 있었을 뿐인지도 몰라’ 그가 그토록 강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의 겸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낮추는 거짓 겸손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일 똑바로 직시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겸손...

 

P108 “이보게, 늙으니, 생각일랑 집어치우게.” 노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대로 항해나 계속하게, 그러다 일이 닥치며 그때 맞서 싸워.”

>> 우리는 얼마나 많이 미리 걱정을 하며 두려움에 떨곤 하는 걸까..? 그저 내게 주어진 일상에 충실하면서 일이 닥치면 그때 맞서 싸우면 되는 것을. 얼마나 우리는 많은 시간을 아직도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미리 상상 속에 그리며 그렇게 현재 내가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리는 걸까..

 

P108 하지만 난 생각을 해야만 해. 노인은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남은 건 그것밖에 없거든.

>> 남은 건 오직 생각하는 것뿐. 그래서 생각만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노인. 과연 얼마큼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저 내가 그 상황 속에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기도가 절로 나오는 부분이었다.

 

P108 “이보게, 늙은이, 뭔가 즐거운 걸 좀 생각해보게.” 노인은 말했다. “자넨 지금 시시각각 집에 가까워지고 있어. 또 짐이 이십 킬로그램이나 줄어서 그만큼 더 가벼워졌어.”

>> 물고기를 뜯기면서도 그래도 집에 가까워지고 있고 뜯기는 바람에 고기도 가벼워졌다며 자신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면을 보며 스스로 용기를 내는 할아버지. 후욱~ 한 숨이 나왔다.. 긍정적인 마인드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내겐 그래서 더 처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라도 생각을 해야 버틸 수 있는 겨우 이어지고 있는 삶으로의 끈...

 

P109 희망을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노인은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난 그건 죄악이라고 믿어. 죄악 같은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 그는 생각했다. 죄 말고도 지금은 문젯거리가 충분하니까. 게다가 나는 죄가 뭔지도 아는 게 없잖아.

>> 그래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야. 판도라의 상자에 유일하게 남겨진 것이 희망이었잖아. 가장 안전한 곳에 숨겨 두기 위해 우리 마음 안에 숨겨놓은 그 희망.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겨진 것이 희망인데 그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야. 아니 더 나아가 죄인 거야. 우리 안에 숨겨놓은 희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거니까, 그래서 우리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니까..

 

P109 죄에 대해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더구나 죄라는 걸 내가 믿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 저 물고기를 죽인 건 어쩌면 죄였는지도 몰라. 비록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 그랬다 하더라도 그건 죄가 아닌가 싶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모든 게 죄가 되잖아. 죄에 대해선 생각하지 말자.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고 또 죄에 대해 생각하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따로 있으니까. 그 사람들더러 생각하라고 하자. 물고기가 물고기로 태어난 것처럼 나도 어부로 태어났을 뿐이야. 성 베드로도 어부였지. 위대한 다마지오의 아버지처럼 말이야.

하지만 노인은 그게 뭐가 됐든 자신이 관련된 것이면 생각해보는 걸 좋아했다. 읽을거리가 전혀 없고 라디오도 없었던지라,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래서 죄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네가 저 물고기를 죽인 건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먹을거리로 팔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넌 자존심을 위해서 그리고 어부이기 때문에 저 물고기를 죽였어, 넌 물고기가 살아 있을 때 녀석을 사랑했고, 또 죽은 뒤에도 사랑했어, 네가 녀석을 사랑한다면 죽이는 건 죄가 아냐. 아니, 오히려 죄보다 더한 것이 되나?

>> 그래 어쩜 노인의 말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죄인 그런 상황 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많은 사람을 먹이기 위해서 그랬다 하더라도 살생은 살생 아닌가.. 물론 성경에 우리가 동물을 지배하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먹을 만큼 먹는 것은 허락하고 있으나, 우리는 그 동물들이 어떤 방법을 통해 죽임을 당했는지 모른다. 처참한 사육을 당했을 수도 있고 그런 가운데 고통 속에 죽었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 먹이가 되기 위해서. 그렇다면 단지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나같이 먹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렇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

먹잇감이 아니라 삶 속에서도 마찬가진 게다. 우리들이 입는 옷들을 만들기 위해, 또는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의 공장에서는 노동 착취로 노예처럼 일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단지 내가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지 않았다고 해서 나는 죄가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옷도 입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먹이 사슬처럼 얽히고 얽힌 죄의 사슬.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모른 척할 수 있는 것일까..? 복잡하기만 하다...

 

P111 게다가 세상의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죽이게끔 되어 있어, 노인은 생각했다. 고기잡이는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일이면서 날 죽이는 일이기도 하잖아. 아냐, 날 살아가게 해주는 건 그 애야. 노인은 생각했다. 나 자신을 너무 속여선 안되지.

>> 그래. 노인을 살아있게 하는 건 고기잡이도 아니고 바로 그 소년이었다. 고기잡이가 그의 육체를 살아있게 하는지는 몰라도 그의 영혼을 살아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아이였다.. 노인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P115 “칼을 갈 숫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노인은 노 끝머리에 칼을 묶은 줄을 점검하고 나서 말했다. “숫돌을 갖고 왔어야 했어.” 갖고 왔어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보게 늙으니, 자넨 이미 그것들을 갖고 오지 않았어, 지금은 없는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걸로 뭘 할 수 있을지 그거나 생각하도록 해.

>> 우리가 일상 속에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이것 아닐까 싶다. 내가 지난날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아 지금 현재 내게 힘겨움을 안겨주고 있는 그것을 떠올리며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것. 미처 준비하지 못한 그것을 아쉬워하면 내게 닥치 현재에 온전히 임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 인간들이 매번 범하는 실수요 시행착오인 게다.

하지만 지혜로운 산티아고 노인은 자신이 자칫 그런 불평 속에 빠지려 할 때마다 자신을 흔들어 일깨우는 현명함과 냉철함을 지녔다. 지금 없는 걸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있는 걸로 뭘 할 수 있는지 그것에 집중하라며 찬물 한 바가지 끼얹으며 내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현재 상황으로 돌아오게 하며 인식시키는 것이다.

 

P116 이제 또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노인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어,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다음에 올 상어들이나 기다리자. 이 모든 게 정말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 알아, 결국 좋게 끝나게 될지?

>> 끝까지 노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희망이었다.  “혹시 알아.. 결국 좋게 끝나게 도리지..?”하면서 우리는 또다시 넘어진 땅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P117 이제 놈들한테 내가 진 셈이군, 노인은 생각했다. 몽둥이로 상어를 때려죽이기엔 난 너무 늙었어. 하지만 노와 몽둥이와 키 손잡이가 있는 한 끝까지 해볼 거야.

>> 그래. 어쩌면 노인은 상어와의 싸움에서 졌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맞서 싸운 그는 진정한 삶의 승자인 게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실패하지 않는다. 파멸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지키며 자신의 상황을 충실히 지켜냈다. 그가 잃은 것을 단지 물고기뿐이었을 뿐, 그는 삶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승자인 게다.

 

P120 그는 물고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 노인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물고기를 보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을. 자 신애 게 그토록 소중한 그 무엇이 온전히 망가진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그 마음. 그리고 비록 자신이 죽이기는 했지만 존중했던 멋지고 고귀했던 상대가 그렇게 처참해진 모습에서 느껴지는 고통. 복합적인 감정이었을게다.

 

P120 노인은 물고기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었다. 물고기가 너무나 심하게 망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반쪽자리 물고기야.” 노인이 말했다. “물고기였던 물고기야. 내가 너무 멀리 나온 게 후회스럽구나. 내가 우리 둘 다 망쳐버렸어. 하지만 너와 난 함께 많은 상어를 죽이거나 박살 내버렸지. 이봐 물고기. 넌 이제까지 얼마나 죽였니? 네 머리의 창 같은 그 주둥이는 괜히 달고 있는 건 아닐 테니 말이야.” 노인은 물고기에 대해, 그리고 물고기가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다면 상어를 어떻게 상대했을까 생각하는 일이 즐거웠다 물고기 주둥이를 잘라서 그걸로 상어 놈들과 싸울걸 그랬군,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손도끼도 없었고 또 칼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게 있었다면, 그래서 물고기 주둥이를 노 끝머리에다 매달 수 있었다면, 그 얼마나 훌륭한 무기가 되었을까? 그랬다면 물고기랑 내가 둘이서 함께 상어 놈들과 싸우는 셈이었을 텐데, 그런데 상어들이 밤중에 달려들면 이제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한다?

“싸우는 거지, 뭐.” 노인은 말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야.”

>> 반쪽짜리가 되어버린 물고기가 안쓰러운 노인. 그러면서 물고기가 자유롭게 살아있다면 상어와 어떻게 싸울까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즐거워하는 천진스러운 노인. 그러면서 끝까지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는 노인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대항하며 싸우는 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큼 아름다운지 노인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P122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운 좋게 앞쪽의 그 반을 갖고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라. 행운만 좀 따라주면 돼. 아냐, 노인은 말했다. 네가 너무 멀리 나왔을 때 넌 이미 행운을 저버린 거였어. “어리석은 생각은 그만해.” 노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키나 잘 조종해, 아직 너한텐 행운이 꽤 남아 있을지도 몰라.”

 

>> ‘너무 멀리 나왔을 때’는 우리의 욕심을 보여주지만, 이미 취한 행동을 탓하며 나무라기보다는 어차피 벌어진 상황 속에 지금 이 순간부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집중해야 하는 것. 내게 남겨진 행운을 믿으며 그렇게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가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은 너무나도 깊은 감동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때때로 욕심도 부리며 삶의 레슨을 고되게 받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또 성숙해지고 성장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에게 남겨진 행운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온전히 느끼며 만끽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원하고 꿈꾸었던 행운의 모습과 비록 다를지라도...

 

P122 노인은 생각했다. 나는 바라는 게 너무 많아. 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바라는 건 그 불빛이야. 노인은 좀 더 편하게 키를 조종할 수 있도록 자세를 바꾸려고 했다. 몸에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그는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알았다.

>> 가장 원초적이고 소박한 바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는 바라는 게 너무 많아’라며 자신의 욕심을 덜어내는 노인.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덜어내야 하는 건가..? 내 안에 가득한 꿈들. 그 꿈들은 다른 원초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욕심’으로 불려질 수도 있을게다. 꿈을 빙자한 욕심. 그 욕심을 나는 내 안에 가득 채워놓고는 꿈이라는 이름의 욕심이 하나하나 채워질 때마다 나의 영혼은 조금씩 탁해져 가는 것을 나는 정말 모르고 있었던 걸까..? 내 안에 가득한 것을 비워낼 때야 비로소 나는 진정한 꿈을 만나며 그것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내 안에 불필요한 그것들을 비워낼 때에야 나의 영혼은 빛을 발하며 나에게 꿈으로 가는 길을 보여줄 것임을 과연 나는 진정 몰랐던 것일까..?

올해는 나를 비우겠다고 해놓고선, 어느 사이 나는 또다시 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저런 하고 싶은 계획들로, 이런저런 갖고 싶은 많은 것들로... 또다시 내 안을 꾸역꾸역 그렇게 숨이 차도록 가득 채우고 있는게다.............

 

P125 노인은 자신이 이제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패배했음을 알았다. 그는 고물로 돌아가서 들쭉날쭉 부러진 키 손잡이 끝을 살폈다. 손잡이는 배 방향을 조종할 수 있을 만큼 크의 홈에 그런대로 끼워졌다. 노인은 부대를 어깨에 두르고 배를 원래 방향으로 되돌려놓았다. 배는 이제 가볍게 나아갔고 노인은 아무런 생각, 또 그 어떤 느낌도 없었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초월해 있었고 그저 집이 있는 항구에 돌아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요령 있게 배를 잘 몰뿐이었다.

>> 꿈을 쫓던 무엇을 쫓던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난 모든 것이 끝난 후 우리는 초월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성공도 실패도 위험도 그 무엇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는 모든 것에서 초연 해지는 온전히 ‘무’의 상태... 그럴 때는 ‘무(無)’가 안겨주는 선물인 평화를 맛보기도 한다..

 

P125 마치 식탁에 남은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려는 사람처럼 밤에도 상어들이 뼈뿐인 물고기를 또 공격해왔다. 노인은 이제 상어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키를 조종하는 일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느끼는 것은 오로지, 옆에 달린 짐이 이제 전혀 무겁지 않게 된 배가 얼마나 가볍게 그리고 얼마나 잘 나아가는가 하는 것뿐이다.

>>  왠지 자신에게 그토록 소중한 물고기를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상어들에게 빼앗긴 것에 대한 허탈함보다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평온함이 느껴졌을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죽을 목숨을 타해 맞서 싸웠기에 그에 대한 아쉬움도 회한도 없는 그런 평온함.. 인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그는 그렇게 소년이 있는 집으로 속히 돌아가는 것에만 집중을 하는 노인이 느껴진다..

 

P126 바람은 어찌 되었든 우리의 친구야,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항상은 아니지만 말이야. 우리의 친구도 있고 적도 있는 저 드넓은 바다도 그렇지. 그리고 침대도,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 침대는 내 친구야, 그저 침대면 돼, 그는 생각했다. 침대에 눕는다면 참 좋을 거야. 침대는 바로 네가 패배했을 때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이지. 그는 생각했다. 침대가 얼마나 편한 곳인지 난 여태껏 알지 못했어, 그런데 널 패배시킨 것은 누구지? 노인은 생각했다.

“아무도 아냐.”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 그래 아무도 아니야. 아무도 노인을 패배시키지 않았다. 노인 스스로도 그 패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단지 그는 그저 멀리 나갔을 뿐이었다. 그날따라 좋았던 바람에 실려 그저 멀리 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목표물을 잡았고 잠시 기쁨의 순간을 누렸고, 상어라는 방해물을 만났고, 죽을힘을 다해 싸웠으며, 그는 자신이 성취한 그것을 잃었으며, 이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게다. 그래.. 노인은 그저 멀리 나갔을 뿐이었다....

자신이 그리도 바라는 큰 물고기를 빼앗아간 상어를 들어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노인은 결코 그러지 않았다. 그저 멀리 나갔을 뿐이라며 겸손히 자신에게 벌어졌던 모든 상황들과 자신의 지금 현재 상황을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위대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 강하게 맞서 싸웠고 지키려 했으나 지키지 못한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과정에선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잃고 난 후엔 깨끗이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위대함을 노인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는 결코 교만하지 않은 모습으로 삶을 받아들였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쳐버린 꿈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우리에게 깊은 여운의 감동을 안겨주는 거다.

 

P127 아침에 소년이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노인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큰 유자망 어선들조차 바다로 나가지 않을 상황이었으므로 소년은 늦게까지 잠을 자고는 매일 아침 한던 대로 노인의 오두막을 찾아온 것이다. 소년은 노인이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다음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아주 조용히 오두막을 나와 커피를 가지러 갔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내내 소년은 울었다.

>> 노인을 내내 걱정과 불안 속에 기다렸을 소년. 노인의 두 손을 보며 그 고통의 시간을 온전히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소년.. 조용히 오두막을 나와 커피를 가지러 가는 길 내내 우는 소년. 그 소년과 함께 나도 울었다...

인제 소년은 노인의 희망이 되어 그렇게 함께 하겠지. 소년이 살아있는 한 노인은 밥을 굶고 바다에 나가는 일은 없겠지. 소년이 새로 가져다준 옷과 타월과 비누로 매일을 맞이하겠지.. 소년은 훌륭한 어부들은 많으나 최고인 어부와 함께 다마지오를 이야기하며, 야구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자신이 노인을 지킬 수 있음에 행복해하며 그렇게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가겠지... 그래서 또 우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그렇게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주는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스토리였다. 노인도, 소년도, 바다도, 물고기도, 그리고 드라마틱하게 스토리를 이어지게 한 상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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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떠오른 음악...

Alan Parsons Project의 Old and W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