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545

이냐시오 영신수련 온라인 피정 2주차를 보내며...

예수회 정제천 신부님께서 주관하시는 ‘이냐시오 영신 수련 온라인 피정’에 참여하고 있는 요즘이다. 라는 교재로 진행되고 있는데,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피정이다 보니 브라질에 사는 나도 참여가 가능했다. 어디 나뿐인가, 세계 여러 나라에 계시는 분들이 함께 같은 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알지도 못했던 이 귀한 기회가 내게 주어졌던 것은 리오바 언니의 초대 덕분이었다. 언니의 제안에 머뭇거리지 않고 응했던 것은 죽어버린 내 신앙에 작은 불씨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바램 때문이었다. 교재에 올려져 있는 순서에 따라 읽고 기도하고 답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정제천 신부님 강의를 듣고, 각자가 속한 조에서 리더의 진행에 따라 나눔 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은 진행된다. 정제천 신부님께..

펌킨의 하루 2022.10.13

저녁노을처럼 아름다웠던 도보 여행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도보 여행을 다녀왔다. Caminho da Fé 를 떠난 것이니 실은 ‘도보 순례 여행’이란 표현이 더 옳을 것이나, ‘순례’가 들어가니 엄숙한 분위기가 묻어 있어 슬쩍 뺐다. 이번에는 조금 일찍 떠나 지난번에 눈도장을 찍어놓았던 Santo Antônio do Pinhal도 잠깐 내려서 까페도 마시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내가 문제라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들었다. 주문이 들어오면 내 일을 해놓고 가야 하니 사무실을 일찍 나가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넵!” 대답을 해놓고도 마음 한 구석은 은근 걱정이 되었다. 일을 제쳐 놓고 여행 다닐 상황은 아님을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아니까.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행 떠나는 금요일에 손님이 없어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

여행이야기 2022.10.04

겸손함을 가르쳐 준 극기 훈련 Extrema 산행

벌써 연산회에서의 3번째 산행이다. 이번 산행 목적지는 Extrema–Trilha dos Pinehiro. 나의 첫 번째 산행은 Pedra de Sapo에서였다. Sapo 코스는 힘들었지만 첫 산행이라 민폐 되면 큰일이라는 긴장 속에 쫓아다녀서 그런지 유격훈련처럼 진행된 난이도 3급의 어려운 코스였지만 기특하게도 잘 쫓아다녔다. 비록 그 후 일주일을 근육통으로 기어 다니긴 했어도 말이다. 두 번째 산행은 Águas do Vale였다. Pedra de Sapo보다는 덜 어려운 코스였지만, 의외로 내겐 힘든 산행이 되었다. 전날 저녁 역시나 일어나지 못할까 봐 잠을 설치고는 새벽 2시에 깨어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Café da Manhã 때 제대로 먹지를 못한 것도 한 몫했을 게다. 첫 ..

펌킨의 하루 2022.08.17

해병대 유격 훈련 같았던 산악회 첫 신고식

“이제 안젤리카도 좀 걸으니까 연산회 한 번 가볼까? “제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 정도면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어, 내가 초대할 게” 연산회 산악회 참여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토요일, 소피아 초대로 연산회에서 가는 산 등반에 함께했다. 는 연합 교회 신자분들의 산악회 모임으로, 아마도 ‘연합 교회 산악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소피아 언니의 권유로 언니와 Sr. Hong와 함께 Cantareira를 따라다닌 지 1년이 되었고, 처음엔 Cantrareira (연산회에서는 언덕으로 취급되는 ^^;;)도 제대로 오르지 못해 헐떡 거렸는데, 나 자신도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 1년이란 기간을 열심히 쫓아다닌 것이 훈련이 되었던 모양이다. 지난번에 다녀왔던 Paraisopolis 20km..

펌킨의 하루 2022.08.02

얼떨결에 떠난 도보 순례 여행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판데믹으로 몸도 마음도 영혼도 바닥을 기고 있을 즈음, 소피아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안부 이야기를 오랜 시간 나누었지만, 주요 요점은 아저씨와 토요일마다 하는 산행에 함께 하자는 초대였다. 사실, 타고난 건강 덕분에 그럭저럭 견뎌내고 있었을 뿐, 워낙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야 내 사정이니 평소 같으면 두 분이 가시는데 끼는 것 같아 정중하게 거절을 했을 것이나, 그날은 웬일인지 조심스러움을 무릅쓰고 초대를 덥석 받아들였다. ‘그래, 언니 따라 산에 다니자’ 그때부터 소피아 언니와 요셉 아저씨 두 분을 따라 산엘 다녔다. 우리의 산행은 Catareira에 있는 Pedra Grande. 그렇게 나의 산행은 시작되었고, 특별한 개인..

여행이야기 2022.07.13

티스토리 이전 - 소중한 추억의 조각들을 한 순간에 잃어버렸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Daum이 종료된다는 소식과 하메 Tistory 로 이전 신청 안내 알림이 떴다. 사실 Daum이 오래전 부터 종료된다는 소문이 있었던 바.. 한 때 Tistory로 옮기고 싶었지만, 한꺼번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지만.. 내 현실에 몰입하다보니 블로그 생활도 뜸해졌고 별 생각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그런데 Tistory 이전이 가능하다니.. 별 생각 없이 이전 신청을 꾸욱~ 눌러버렸다.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갔더니 Daum이 종료된다는 소식과 함께 Tistory 로의 이전 신청 안내 알림이 떴다. 사실 오래 전부터 Daum이 종료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15년이 넘게 일상을 적어온 소중한 기록들인데 없어지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에 Tistory로 옮기고 싶었지만 한꺼번..

펌킨의 하루 2022.07.11

[독서리뷰 163]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얼마 전, 브런치에 라는 책의 알림 글이 떴다. 저자인 황보름 작가와의 라이브 방송 소개와 함께. ‘브런치 작가님의 새로운 책이 나왔구나’ 정도로 넘겼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휴남동 서점’이라는 글자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 표지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치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안겨주었던 또 하나의 을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 그러게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제목이 참 좋았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올드한 분위기에서 오는 편안함이 좋았고, 특별하게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 안에서 편히 쉬어 갈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작가 황보름도 서점의 이름을 지을 때, 첫 글자는 꼭 ‘휴’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쉴 휴,..

독서리뷰 2022.06.28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오늘은 좀 일찍 사무실에서 나왔음에도 웬일인지 지하철 역에 사람들이 가득이다. 보통 이 시간에는 한가한데 아마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스피커에서 Metrô가 연착이 될 거라는 방송이 나온다. 지하철이 오는 방향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문득 오래전 지하철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떠올라 살포시 미소가 그려졌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 생각지 않게 끼어들어 행복한 그림을 그려주는 예쁜 사건. 치과를 가는 길이었다. Ana Rosa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종착역까지 가야 하기에 문에서 벗어나 좀 안쪽으로 들어갔다. 붐비는 사람들을 피해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간 곳에 어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는데, 깔맞춤으로 아이보리색 모시 양복을 입고 계셨다. 그에 어울리는 아이보리색 모자에. 그 모습이 어찌..

펌킨의 하루 2022.05.19

[독서리뷰 162] 불꽃같은 사랑과 파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All happy families are alike; each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첫 문장의 느낌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나를 비롯하여 내 주위에 있는 행복해 보이는 이들과 불행해 보이는 이들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스쳐지나갔다. 물론 우리 모두가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의 행복도 불행도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은 찰나로, 불행은 영원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피식 시니컬한 미소가 그려졌다. 어쨌거나 이 방대한 분량의 를 한 구절의 명료한 요약으로 시작하다니, 역시 톨스토이다.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 다리아 알렉산드..

독서리뷰 2022.03.21

그래도 나름 흡족했던 새해 첫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말과 새해를 혼자 맞았다. 남편은 일 때문에 먼 곳에 있고, 딸들은 여행을 떠났다. 마리아도 나가고. 온전히 혼자였던 어제오늘, 묘한 느낌이다. 난 혼자 시간 보내는 것에 익숙하다. 한창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떨어져 한국을 떠난 이후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속에 절로 터득된 익숙함인 듯하다. 하긴 고등학교 시절 앙케이트의 특기란에는 ‘혼자 잘 놀기’라고 재미 삼아 써놓곤 했던 걸 떠올리면, 그때도 혼자 잘 놀았던 것 같다. 어젯밤 남편과 딸들과 화상통화로 난리부르스를 추며 시끌벅적하게 새해 인사를 하고 맞은 새해 아침. 그래도 새해 아침이니 기도부터 드려야겠다 생각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써니가 징징거려 부엌에 가서 바나나 하나 종종 잘라서 먹이고는, 미국에 계신 엄마에게 새해..

펌킨의 하루 2022.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