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얼떨결에 떠난 도보 순례 여행

pumpkinn 2022. 7. 13. 09:45

 

 

작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판데믹으로 몸도 마음도 영혼도 바닥을 기고 있을 즈음, 소피아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안부 이야기를 오랜 시간 나누었지만, 주요 요점은 아저씨와 토요일마다 하는 산행에 함께 하자는 초대였다.

 

사실, 타고난 건강 덕분에 그럭저럭 견뎌내고 있었을 뿐, 워낙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야 내 사정이니 평소 같으면 두 분이 가시는데 끼는 것 같아 정중하게 거절을 했을 것이나, 그날은 웬일인지 조심스러움을 무릅쓰고 초대를 덥석 받아들였다. 

 

‘그래, 언니 따라 산에 다니자’ 

 

그때부터 소피아 언니와 요셉 아저씨 두 분을 따라 산엘 다녔다. 우리의 산행은 Catareira에 있는 Pedra Grande. 그렇게 나의 산행은 시작되었고, 특별한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를 빼놓고는 토요일마다 산으로 향했다. 멀리 있는 남편도 잘됐다며 열심히 다니라며 응원해주니 더 신이 나서 다녔다. 그렇게 언니와 아저씨를 따라나선 지 1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잘 오르지 못해 언니랑 아저씨가 템포를 맞춰주셨는데, 점점 제법 잘 쫓아(?) 다니는 나를 보며 언니와 아저씨는 인제 산악회 들어가도 되겠다며 화이팅 넘치는 응원으로 함께 해주셨다. 그렇게 꾸준히 다니는 내가 스스로도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때 소피아 언니가 또 한 분을 초대하셨다. 나랑도 친구인 마리아. 이렇게 해서 우리 넷은 함께 팀이 되었다. 어느 날 우리는 내친김에 우리 팀 이름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고, <드림산악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름이 좀 거창해서 ‘산악회’지 그냥 달랑 우리 넷이 고작인 단란스러운 모임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소피아 언니나 요셉 아저씨, 그리고 마리아는 다른 산악회(진짜 산악회 ^^)에서 거친 산행을 하시던 분들이라 트래킹에 대한 경험이 많은 분들이었다. 하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인제 안젤리카도 제법 걸으니 연습 차원에서 도보 순례 여행을 가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 모두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꿈꾸는 팀이다 보니 곧 의견은 하나로 모아졌고, 도보 순례 여행을 다녀왔던 마리아의 정보를 바탕으로 요셉 아저씨가 도보 여행을 계획하셨다. 그냥 스치듯 나온 말이 그 자리에서 결정이 되고, 그다음 주에 우리 숙소가 정해지고, 그러고는 지난 금요일 오후에 우리는 도보 여행길에 올라 있었다. 

 

 

드림산악회팀~ 왼쪽부터, 마리아, 펌킨탱이, 소피아 언니, 요셉 아저씨

 

이번 도보 순례는 내겐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여행이었다. 매장을 접고 곧 이어진 판데믹의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숨을 쉬기까지 지난 몇 년을 꼼짝 않았던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어떤 형태를 띄었던 떠남의 설렘을 안겨주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아줌마가 집을 떠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겨우 주말 며칠을 다녀오는 짧은 여행임에도 이런저런 걸리는 일들이 많았다. 남편도 없고, 애리도 해외 출장 중이라 리예 혼자 있는데, 아무리 다 컸다 하더라도 혼자 두고 가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어디 그 뿐인가, 가기 전에 감기까지 걸려 몸도 안 좋았다. 게다가 금요일 오후 퇴근 전에 떠나기로 했기에 일도 그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다행이 몸은 온전하진 않았지만 기운은 낼 정도가 되었고, 사무실 일은 중요한 일만 정리하고 직원에게 맡겼다. 리예도 자기가 어린애냐며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주니 그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겨우 23일에 이 난리라니~ ^^;;

 

우리의 도보여행 목적지는 São Bento de Sapucaí. 미의 스위스라 불리는 Campos do Jordão 지나가야 하는 곳으로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Campos do Jordão 근처를 지날 때 목깃을 스치는 찬바람이 브라질 특유의 겨울의 운치를 느끼게 해주었다.  Santo Antonio do Pinhal이라는 곳은 정말이지 너무나 귀엽고 예쁜 도시였다. 곳곳에 자기들만의 개성으로 꾸며진 까페와 식당들이 줄을 서서 매력을 뽐내고 있었고, 마침 Festa Junina 시기라 곳곳에 색색 깃발들이 걸려 있어 여행자의 흥을 더욱 북돋웠다. 작은 도시만이 지닐 수 있는 특유의 아기자기함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왔다. 잠시 멈추고 싶었지만, 갈길이 먼 터라 가던 길을 계속 가야만 했던 우리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아름다운 풍경들에 감탄을 하며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 Campinas에서 함께 합류하기로 하신 리오바 언니로부터 숙소에 도착하셨다는 전화가 왔다. 숙소가 너무 예쁘다는 말씀에 우리는 좋아라 룰루랄라~ 환성을 터뜨렸다.

 

많이 늦은 시각이라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 하기 어려울 것 같아 도착하기 전 동네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고, 리오바 언니네 가족들을 그곳으로 오시게 했다.

 

 

 

요셉 아저씨는 여행 기획자답게 그 지역에서 소문난 맛집을 검색해오셨고, 가까운 곳에 있는 Bistrô R.C.S Vinhos, Finos로 향했다. 들어가니 멕시코 풍의 레스토랑이었다. 작지만 맛이 느껴지는 그런 곳. 이 도시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맛집이라는  요셉 아저씨의 설명에 우리 모두는 흐뭇해하고. 

 

전형적인 남미의 미소년 분위기의 Vinicius라는 청년이 서빙을 하는데, 얼굴만 잘 생긴 것이 아니라 어려보이는 나이임에도 어찌나 예의 바르고 눈썰미 있게 서빙을 하는지, 웃는 얼굴로 센스있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쉽게도 사진을 못찍었네. 첫 도착한 날은 예상 못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사흘 연속 식사를 하게 된 곳이다. ^^

 

우리가 식당에 먼저 도착하고 잠시 후에 리오바 언니와 나다니엘 아저씨, 그리고 따님인 데레사씨가 도착하셨다. 리오바 언니와 나다니엘 아저씨는 잘 알지만, 따님은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었고 이번 여행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리오바 언니가 조용하신 분위기라 나 혼자 막연히 따님도 내성적이신 분일거라고 혼자 막연히 생각했는데, 나의 상상과는 달리 밝고 잘 웃으며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너무 예쁜 분이었다. 아직 소녀티가 흠뻑 느껴지는 얼굴, 어찌나 첫인상이 좋은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암튼, 우리는 반갑다고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취향대로 음식을 시키고는 서로 음식이 맛있다며 신난다고 룰루랄라~ 훈훈한 분위기의 절정. 그날 디너의 하일라이트는 마리아가 가져온 포도주 Gran Enemigo였다.

 

나는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아주 특별하게 좋은 와인이라는 설명에 별 생각 없이 그런가부다 했는데, 마셔보니 어쩜 그리 순하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부드러운지 깜짝 놀랐다. 딱 내취향이었다. 호호호~ ^^;;

(와인 맛도 모르면서 자기 취향이란다. ^^;; 우선 쓰지 않고 맛있게 마실 수 있으니 내 취향이라는 표현은 그리 틀린 말은 아님. )

 

우리는 마시면서 와인 제목이 너무 재밌다며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까 하며 하나씩 의견을 내놓았다. Gran Enemigo (거대한 적 또는 적수, 원수, 뭐 그런 뜻이다). 아마도 너무 맛있어서 많이 마시게 되니 '웬수 같은 와인' 뭐 이런 뜻으로 지어진 이름인가?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첫날 저녁은 우아아하게~ 와인과 함께 했다. 인제 숙소로 돌아갈 시간. 주인인 Dona Ana가 어찌나 친절한지, 숙소도 예쁘고 주인의 따뜻한 성품도 마음에 들고 모든게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어째 주인의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알고보니 Dona Ana는 우리가 숙객이 아닌, 리오바 언니의 친구들인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된 상황인지 우리 방이 예약이 되어있질 않아 몰랐던 것이었다. Booking.com으로 예약을 하셨고 지불까지 끝났고 영수증까지 갖고 있는데, 정작 Dona Ana한테는 컨펌 알림이 되지 않았던 것. 아마두 연결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사람의 본 성품을 느끼게 된다. 주인인 Dona Ana는 당황스런 상황에도 침착하게 임하며 그 상황을 해결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선은 자신의 실수가 아니었음을 우리에게 증명하여 보여주고, 우리 역시 컨펌된 메시지를 증명하여 보여주고, 결국 북킹컴과 숙소와의 연계 과정에서 에러가 있었음을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도나 아나는 우리를 위해 이곳 저곳 전화를 하더니 우리 대신 다른 곳을 알아보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넣는라 바빴다. 다행히 한 곳에 빈 방이 있었고, 디스카운트까지 받아서 우리를 대신해 예약을 해주었는데, 그곳으로 가보니 아무래도 영 아니었다. 우리는 두번 생각 않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Dona Ana는 차분하게 지혜로운 기지로 우리는 그곳에서 이틀 밤을 묵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반에 Café da Manhã를 하면서. 우리 모두는 전날 밤의 사태를 떠올리며 깔깔대며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마냥 수다 떨고 있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도보 순례를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왕복 36km를 걷기에는 너무 무리이니 Paraisopolis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São Bento de Sapucaí로 걸어오자는 요셉 아저씨의 의견에 일치를 보고는 Paraisopolis엘 갔는데, 그곳에서 Sapucai로 걷는 길은 아스팔트 길이라는 생각지 못한 상황에 부딪혔다.

 

물과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사러 갔던 식당 주인이 차라리 Consolação까지 가서 Paraisopolis로 걸어오는 게 낫지 않느냐는 제안에, 우리는 만장일치로 의기투합했고, 그렇게 우리의 도보 여행은 시작되었다. 20km 라고 하니,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많이 걸어야 해서 심적 부담이 살짝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나, 언젠가 가게 될 산티아고 순례를 연습하는 거라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설렘이 함께 했다.

 

 

 

 

드디어 도보가 시작되었는데, 가는 길들이 어찌나 아름답고 예쁜지 이곳이 브라질인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 몇 키로는 길도 평탄하여 이쯤으면 충분히 걷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의 오만함이 바닥으로 떨어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 앞에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지고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다리에 모래자루를 단 듯 무거웠고, 가슴에 메운 느낌이 느껴질만큼 숨이 차올랐다. ‘그럼 그렇지 쉬울리가 없지. 순간 나는 겸손한 초보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간사한 펌킨탱이

 

걷는 동안 내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고, 애리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찍어 보내준 사진들을 떠올리며 여기도 비슷하네 좋아라 하며 걷는 길은 어찌나 행복하던지. ‘애리도 이런 느낌이었겠지, 나도 그런 느낌이겠지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가며 혼자 드라마를 찍으며 걸었다.

 

순간 순간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들을 담고 싶어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지만, 내 카메라 속에는 그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지지 않았다. ‘내탓이오, 내탓이오, 내탓이로소이다 실력이 없으면 장비가 좋아야 함은 진리다. 기회봐서 좀 더 나은 버전의 핸드폰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워서 돌아가시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간 지점쯤 생각지 못한 곳에 휴식처가 있어 잠깐 들려 화장실도 들리고 맥주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는 숨을 돌리는데, 사람 좋아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주인이 어찌나 신경을 써 주시던지 감사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 다시 길을 가는데, 목적지는 다가오는데, 앱을 보니 20km가 살짝 모자라는 게 아닌가. 아니 이럴수가!! 우리는 제 자리 걸음을 걸어서라도 20km를 채우자며 깔깔거렸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고, Paraisoplis까지 도착하고 나니 거의 21km를 표시하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Paraisoplis로의 마지막 코스는 그야말로 내리막 길이었는데,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만만찮은 힘겨움이었다. 차라리 오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살이 찌니 무릎 때문에 내려오는 것이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발가락도 앞으로 밀리니 당췌 편한 포즈가 없는 게 아닌가. 살 좀 빼라 펌킨탱이~!! 

 

그렇게 내려와서는 리오바 언니네 가족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동안 길 거리에 앉아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재밌던지. 그 동네 사람들은 그런 순례객들이 익숙한지 인사를 보내주기도 하고 어떤 아저씨는 와서 자신의 순례 경험을 한참을 이야기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 동안의 도보 순례는 끝이 났고, 브라질식 치맥을 먹겠다고 가슴 부풀어있었는데, 조그만 마을이라 그런지 식당 문은 열려있어도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허걱했다. 황당함 속에 우리는 더 헤매지 말고 어제의 그 식당으로 향했고, 고픈 배를 달래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어디 그냥 잠 들 수 있나. 다들 씻고는 거실에 나와서 수다를 떨고 나서야 잠을 청했다. 20km 도보를 해냈다는 뿌듯함에 아주 흐뭇해하면서.

 

 

 

여행 떠난다고 이런 저런 준비로 정신 없이 보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의 여행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날, Dona Ana에게 체크아웃 시간에 대해 살짝 양해를 구하고 Pedra de Baú로 향했다. 우리 숙소 뒤쪽으로 마치 만져질 듯 가까이 있는 곳이라 짧은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어 올랐는데, 가는 길이 Google이나 Pinterest에 올려진 사진에나 나올법한 그림같은 길이었다.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탄성을 터뜨리며 좋아라 했다. 우리 5-60대 아줌마 아저씨 맞어? 마치 대학생들의 캠프 여행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숙소 뒤로 보이는&nbsp;Pedra de Ba&uacute;

 

 

드디어 Pedra de Baú에 도착. 소피아 언니랑 요셉 아저씨는 60 이상의 연장자시라 입장료가 무료인데, 마리아와 나는 입장료를 내란다. 이제 1년 있음 우리도 무료다. 와우~!! (좋아해야 하는 상황 맞나? ^^;;)

 

가서 보니 여러 난이도의 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어제 많이 걷기도 했고, 또 시간에 맞춰 돌아가야 하기에 가장 난이도도 낫고 짧은 코스를 택해 올라가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니 이게 가장 쉬운 난이도 코스라면 다른 코스들은 대체 얼마나 힘들다는 거지?” 아이구야~

 

바위 산등을 타고 올라가는데, 바로 옆으로는 절벽이라 아찔했다. 도저히 옆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웃으시는 리오바 언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그 숨막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가라고 하시는데 도저히 무서워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쪽을 바라보면 몸이 그쪽으로 쏠려서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올라간 난이도 1번 코스의 목적지에 도착하니 마리아와 리오바 언니가 바위 가장자리 쪽에 앉으시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찌릿찌릿하고 배에 멀미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소리에 기어 올라가 밑에 앉았다.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을 줄이야. 역시 인간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쯤까지인지 도전해 볼만 하다.

 

 

가장 자리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마리아와 리오바 언니. 그 사이로 Pedra de Ba&uacute; 세로면이 보인다.

 

Pedra de Baú는 바로 눈 앞에 있는 듯 가까이 보이고, 그곳을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을 보니, 정말 올라가고 싶을까' 싶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맹글맹글한게 전기가 찌릿찌릿 오르는 느낌인데 말이다. '나는 그냥 보는 걸로 만족하리라. 나는 이걸로 충분히 행복해' 나를 위로하면서 내려가자시는 말씀에 뒤도 안 돌아보고 앞서 네발로 기어 내려왔다

 

재밌는 것은 그렇게 함께 다니다보면 함께 하는 분들의 몰랐던 새로운 면들을 보게 되어 놀라게 되는 일이 종종있다. 가장 놀라움을 안겨주신 분은 바로 리오바 언니였다. 전 날 걸으시면서 많이 힘들어하셨던 리오바 언니였는데 그곳 돌산에서는 그야말로 날라 다니시는게 아닌가. 얼마나 가볍게 돌산을 잘 타시던지 우리 모두 놀랐다. 그런가 하면 소피아 언니와 나, 그리고 리오바 언니의 따님 데레사씨는 많이 무서워했고, 마리아는 전날 도보 순례에서도 돌산에서도 프로였다. 요셉 아저씨와 나다니엘 아저씨는 역시 남자분들이시라 뒤에서 잘 챙겨주셨다. 우리는 인증샷을 거하게 찍고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산을 내려왔다.

 

 

 

산에 내려와 숙소로 돌아오는데, "아~ 내 핸드폰~!!" 화장실에 핸드폰을 두고 온 게 기억이 났다. 이 덤벙거림을 우짜문 좋아. 다행이 너무 멀리 오지 않아 요셉 아저씨는 스피드를 내어 다시 돌아가주셨다. 사실, 다른 건 문제가 아닌데 은행 어플이나 마켓 플레이스 어플이 모두 그 핸펀에 깔려있어 잃어버리면 골치 아플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제발 누군가 안내소에 맡겨주었기를 바라며 달렸다. 너무나 고맙게도 핸드폰은 안내소에 맡겨져 있었다. 직원이 환한 미소로 건내주었고, 내 핸펀인지 확인 하기 위해 로그인 체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맡겨주신 그분에게도 안내소 직원들에게도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이젠 정말로 숙소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핸드폰을 찾으러 돌아갔기 때문에 시간이 지연된 관계로 우리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숙소가 있는 곳은 산 속이라 오르막길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 앞에 버스가 천천히 가고 있는게 아닌가. 그 속도에 맞춰 뒤따라 올라가는데 갑자기 차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겼다. 위험했던 상황, 요셉 아저씨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핸들을 틀으셨고 차는 Pousada의 담을 부딪히고 들어가 멈췄다. 안 그랬으면 오르막길에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상황이었다. 아저씨의 기지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사실 그 상황에서 우리 놀랐던 것은 차사고 때문이 아니었다. 담이 부서진 Pousada 주인이 멀쩡한 담을 부수고 자기 마당에 반쯤 들어온 우리를 보고 화를 내기는 커녕 우리가 괜찮은지, 다치지는 않았는지, 놀라지 않았으냐며 물을 갖다주며 위로해 주는 그분들의 성품에 놀랐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도 안 다쳤으니 하느님께 감사하다며 내내 우리의 미안해하는 마음을 보듬어 주시는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이거 현실성 있는 일인가 싶었다. 이웃 사람들도 와서 괜찮은지 물어보며 Guincho를 불러주고, 숙소에 데려다 주겠다며 도움을 보여주시고. 그때 느낀 감사함을 뭐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앞서 가셨던 나다니엘 아저씨는 우리가 늦자 무슨 일이 생겼나 마침 내려오시는 중이셨고, 중간에 연락이 되어 우리를 데리러 사고 난 곳까지 오셨다. 우리 사고 상황을 전해 들은 Dona Ana는 숙소비를 지금 내지 않아도 된다고, 나중에 상파울에 돌아가서 보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어쩔줄 모르며 위로해주시고. 

 

숙소비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고, 기어코 계산을 해드리고는 나오는데 마치 받아서는 안될 것을 받는 듯 미안해하시는 모습. 마치 엄마 같은 느낌이었다. 왜 이 곳이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받았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이기도 했지만, 주인이 손님들을 그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주시는데 감동받지 않을 손님은 없을 터였다.

 

물론, 브라질 사람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브라질은 아직 많은 부분 돈 보다 사람이 먼저인 따스한 정을 많이 느끼게 하는 나라다. 내가 브라질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박 3일을 그렇게 버라이어티 하게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불이 켜져 있다. 들어가 보니  tia Maria가 집에 있는 게 아닌가.  왜 안 나갔냐고 물어보니 막내딸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가고 싶지 않아 집에 있었단다.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데 딸아이를 위해 집에 있어주다니. 어찌나 고맙고 감동이던지. Maria는 막내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었기에 딸아이에게는 두 번째 엄마 같은 존재다. 다음 주에 금요일에 나가서 쉬고 오라 했더니, 걱정하지 말란다. 자기가 있고 싶어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이래저래 여행에서도 집에서도 감동의 도가니다.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감사기도가 절로 나오는 순간.

 

2박 3일의 짧았던 여행이었지만, 참으로 재밌는 사건들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얼떨결에 떠났던 도보 순례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여행으로 함께 한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했던 너무나 즐거웠던 여행,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20 km를 걸었던 여행, 무서웠지만 돌산에 올라갔던 여행, 생각지 못한 여러 사건들이 생겼었지만 모두 깨알 같은 웃음으로 이어졌고, 아름다운 마무리로 우리에게 많은 스토리를 선물로 안겨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산행이 결정적으로 좋아지게 만든 여행이었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사건 속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끼게 해 준 짜릿한 여행이었다. 지친 영혼에 수혈을 받고 온 여행. 그랬다 이번 여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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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

이런 매력이 있구나..

도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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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Mraz의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떠나고 싶은 열망이 나를 감싸곤 했다.

때론 울컥 가슴이 들뜨기도 했다.

 

나의 행복했던 여행에 함께 했던 곡,

오늘 곡으로 함께 올려본다.

 

93 Million Miles by Jason Mr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