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킨의 하루

매일 아침 함께하는 작가와의 짜릿한 데이트

pumpkinn 2021. 1. 28. 09:32

 

아침 출근 길에는 주로 음악을 듣는다. 조용한 음악보다는 밝고 경쾌한 음악을 듣는다. 비트가 신나는 음악을 듣는 이유는 지난 꿈이 뒤숭숭했던, 뭔지 모를 불안감에 일어났던, ‘기분좋음 유지하고 사무실에 들어갈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부터 나의 오랜 의식이 깨졌다. 음악 대신 작가 김영하의 팟캐스트로 대체되었음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없는 존재의 가벼움 빠졌던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고 나니 무언가 나의 조각이 떨어져 나간 그런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낀  짜릿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 몰입이 안겨준  후유증이었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사무실까지 가는 거리는 고작 30 정도. 30분에는 내가 집에서 나와 공원을 지나 지하철 역까지 가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하여 정거장을 지나 도착역에 내려서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시간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걸어서 퇴근할 있는 정도의 거리.

 

그렇게 가까운 거리다보니 대체적으로 30분이 넘는 에피소드들을 끝까지 들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깊이 스토리 속에 빠져있다가 중간에 빠져 나와야하니,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하다가 통금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하는 그런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내가 들은 에피소드는 오스터의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였다. 다시 듣는 에피소드 임에도 전에 들었을 놓쳤던 부분들이 새록새록. 듣는 내내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재밌게 듣고 있는 동안 지하철은 도착지에 다다랐고 사무실로 향해 걸어가던 나는  발길을 돌렸다. 출근 시간이 자유롭다는 사실이 감사한 순간이었다. 나는 마저 듣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계단을 오르다가 지하철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둘러있는 상가 주위를 돌았다. 에피소드를 끝까지 듣기 위해 바퀴를 돌고 나서야 나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오스터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오스터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사실인지 꾸며낸 이야긴지 알쏭달쏭한 스토리들. 속에 일어나는 우연들을 과감하게 작품 속에서 표현하는 그의 이야기들. 김영하는 분명히 지어낸 이야기일거라고 하지만, 나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고 믿고 싶고 우겨대고 싶은, 그런 엉뚱한 고집을 부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작가다. 우리네 삶은 때때로 소설보다 영화보다 소설같고 영화 같은 스토리를 안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 "음.. 뭐지? 이 잘생김은?"

 

집에 오는 길엔 카프카가 함께 했다어쩜 좋아이렇게 근사한 작가들과 아침저녁으로 데이트를 하다니.

팟캐스트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선 생각들이 춤을 춘다. 그래서 이런 글도 쓰고 싶고, 저런 글도 쓰고 싶고. 요런 글감도 떠오르고, 조런 글감도 떠오르고. 물론 건져내는 것은 별로 없지만, 이런 들썩거림이 좋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아있는 느낌.  

 

지난 한 해, 삶에 치어 나의 모든 감성과 지적 욕구는 죽어있었다. 그래서 치열하게 전투를 하듯 TV를 붙잡고 있었던 나였기에 이러한 작은 꿈틀거림이 환한 행복으로 느껴진다.

 

오래전, 가슴에 담아놓았던 나의 넋두리를 ‘블로그’라는 공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부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며 하루 일상을 올리는 공간이 되었고, 그렇게 그 조그마한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놓고는 마치 나만의 시크릿 가든인 듯  좋아라 하며 열심히 들락거리던 적이 있다.

 

오늘 아침엔 그때의 그 느낌들이 살포시 타고 올라와 내 입가에 미소를 커다랗게 그려놓았다. 죽은 줄 알았던 감성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듯한 느낌. 아마도 이 여릿여릿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  오늘을 기록하고 싶어 컴 앞에 앉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매일 아침 함께하는 매력적인 작가 김영하와의 데이트. 얼마나 짜릿한 행복인지.

여기에 커피가 빠질 수 없겠다. 내일 아침엔 좀 더 일찍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중 띤 시간에 나가 괜한 상가를 어설프게 돌 것이 아니라, 좀 일찍 나가 커피를 마시면서 호젓하게 나만의 시간을 누려야겠다는 그런 짜릿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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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Ernesto Cortazar의 피아노 연주곡를 올려본다.

Ernesto Cortazar Best Coll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