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이야기

Portrait in Jazz에서 만난 '쳇 베이커'

pumpkinn 2021. 1. 18. 11:56

재즈계의 제임스 딘 '쳇 베이커'

 

책장 앞을 서성이다가 내가 뽑아 들은 책은 Jazz에 미친 두 작가 와다 마코토와 무라카이 하루키가 함께 작업한 <Portrait in Jazz>였다. 마코토는 그리고, 무라카미는 썼다.

 

<Portrait in Jazz> 

제목이 근사하다. 제목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엔 담배연기 자욱한 어두 컴컴한 재즈바. 삶의 고통, 삼키는 슬픔, 고뇌, 낭만, 열정, 사랑, 예술, 등등의 단어들이 떠올랐다. 

 

어떤 뮤지션들의 어떤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호기심에 가득 차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전류가 내 혈관을 타고 오르며 감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쳇 베이커’였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중단된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를 공유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보내드리다가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싶어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 Episode 5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들려준 재즈곡이 바로 쳇 베이커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베이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암스테르담에서의 라이브 공연으로 부른 My Funny Valentine과 스튜디오 버전으로 녹음한 곡을 들려주었다. 

 

암스테르담 공연을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한 쳇 베이커. 스튜디오 버전과는 달리 죽기 2주 전 Live 공연에서의 그의 목소리는 김영하의 표현처럼 모든 삶의 짐을 내려놓은 듯, 마치 땅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휴식을 선택했다고 했다.                       

 

제임스 딘, 프랭크 시나트라, 빅스 바이더백을 하나로 합친듯한  베이커. Siniging Trumpheter로 많은 사랑을 받은 탁월한 연주가였지만, 마약과 여성편력, 그리고 폭행 등으로 차츰 몰락의 길로 들어서고, 결국엔 유럽을 떠돌다 그렇게 혼자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다.

 

누군가는 글로 말하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말을 한다. 쳇 베이커가 그랬다. 그의 암스테르담에서의 마지막 앨범은 재즈계의 쳇 베이커의 유서였던 것이다. 

 

 

노래하는 트럼펫터 '쳇 베이커'

 

바로 며칠 전 들은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우연찮게 집어 들은 책의 첫 주인공으로 나오다니. 이런 삶이 안겨주는 우연성을 나는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럴 때는 나는 필연성을 넘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짜릿함을 느끼곤 한다.

 

내가 김영하의 팻캐스트를 다시 듣기 시작한 것도, 지금 이 순간에 이 책이 내 손에 잡힌 것도,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계획 속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가끔은 이런 억지스럽고 과장된 우연성에 나를 끼워 맞추며 혼자 열광하곤 한다. 

 

김영하의 팟캐스트를 듣기 전까지는 알지도 못했던 ‘쳇 베이커’라는 이름이 내 안에 콕 박혀 마치 지난날 사랑했던 연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내 가슴은 온통 방망이질 해대며 그리도 두드려대는 것이다. 

 

그런 짜릿함도 잠시, 나의 설레발이 너무 앞서갔던 탓일까. 김영하 때문이라고 불평하고 싶다. <책 읽는 시간>의 스타일에 푹 빠져있던 나는 무라카미에게도 그렇게 원했는지 모르겠다. 읽기도 전에 내가 그림을 그려놓고 들어가니 리듬이 삐끗거릴 수밖에.

 

나는 재즈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만날 거란 생각을 했으나 아니었다.  그 안에는 그들의 연주 기법과 무라카미가 연주를 들으며 느꼈던 아주 깊고 독특한 개인적인 감상들이 주를 이루었다. 재즈를 잘 아는 독자들은 서로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 비교감상도 하며 좋았을 것이나,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그 느낌을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재즈의 역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연주가는 아니나, 김영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쳇 베이커라는 재즈 연주가를 알게 되고, 짧은 만남 속에 느꼈던 짜릿한 전율은 텅 빈 내 마음을 채워주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하루를 김영하와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쳇 베이커와 함께 했다. 근사한 세 남성과 함께 말이다. 재즈를 좀 더 깊이 알고 싶고 느껴보고 싶다는 약간의 열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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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 My Funny Val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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