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47]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를 읽고 / 김난주 옮김

pumpkinn 2017. 11. 15. 05:10

 

 

2015년 1월 그 더웠던 여름날, 내 가슴은 왜 그리도 추웠을까. 막을 길 없이 뻥 뚫려버린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어 읽게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코 끝 시린 감동으로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책장을 서성거리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안겨준 따뜻한 기억에 집어 든 책이 <기린의 날개>였다.

 

<기린의 날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는 전혀 다르게 전체적으로 짙은 회색 톤의 분위기였다. 도쿄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은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오는 러시아 인형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장면 속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클라이막스나 가슴 졸이는 긴장감이 있는 것도 아닌, 검정도 하양도 아닌 불분명한 회색 톤이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모노톤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딱히 재밌어 죽겠는 것도 아닌데, 손에서 놓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스토리 전개.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추리소설의 대가인지가 느껴지는 책이다. 그저 단순히 던져지는 키워드 하나로 사건의 핵심 요인들을 하나하나 추리해가는 그의 상상력이란~!!

 

 

 

 

 

어느 중년의 의문사가 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그것을 풀기 위해 똑똑하면서도 끈기 있기로 유명한 형사 가가와 사촌 동생이자 역시 형사인 마쓰미야가 한 팀을 이루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중간중간 가가 형사가 어떤 성향의 소유자인지 그의 개인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소금처럼 맛을 내주고, 죽은 다케야키의 가족사를 통해 현대 가정의 씁쓸한 모습을 엿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안에는 자기들만의 사랑의 방식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짠한 공감을 안겨준다.

 

잘못된 시각 잘못된 장소에 있었으므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는 또 하나의 피해자 후유키가 다케야키와 연결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뻔하는 스토리 전개는 너무 우연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우연성을 경험하며 살아가는지를 떠올리면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정직하고 선한 사람도 어느 순간에 삶의 내몰림 속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 그 순간의 찰나적인 선택이 엉뚱하게도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다는 것은 굳이 소설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아빠에게 반항하는 아들 유키, 함께 수영팀 선수였던 스기노와 구로사와, 그리고 보호를 가장한 이기적인 결정을 내림으로 해서 벌어지는 엉뚱한 사고로 인해 결국 두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장래가 유망한 평범한 학생들의 삶을 망치게 하는 선생 이토가와 선생. 이 모든 것은 얽히고설켰지만, 그 사건 속에 얽힌 인물들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올바른 선택을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순간의 선택이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함께 하는 이들에게까지 얼마나 무서운 폭발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관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인 우리는 그 ‘관계’라는 망 속에서 씨실과 날실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 흐트러지거나 구멍이 나지 않고 함께 온전한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사실은 든든하게도 느껴졌지만, 반면 두려움도 함께 느끼게 해주는 양면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반항하는 아들 유토의 마음을 우연히 엿보게 된 아버지 다케야키가 했던 행동이다. 신사를 찾아가 친구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모든 삶을 잃어버린 후배 요시나가를 위해 학을 접어 신사에서 기도드리는 부분이었다. 아들이 아빠에게 들켜버렸다는 이유로 그만 두자 아들의 닉네임으로 요시나가의 어머니 블로그에 계속 댓글을 달고, 신사에 받친 색깔별로 100개씩 만든 종이학을 사진 찍어 이멜로 보내주는 작업을 계속 해내는 아버지 다케야키. 비록 아버지를 무시하고 반항하는 아들이지만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아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려는 절절한 아버지의 마음은 아픔이고 감동이었다. 

 

유토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왜 에도바시 다리 위의 기린의 날개 상을 끌어안고 돌아가셨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고 바른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들의 순간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요시나가는 숨만 쉬는 인형 같은 인간이 되었음에 요시나가의 어머님을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요시나가를 위한 것이 아닌, 결국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아버지가 자기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가르침이었다는 사실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도 느꼈듯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느껴진다. 나약함 속에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고, 사랑으로 이겨나간다는 것. 그래서 이 회색적이고 우울한 이야기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결론은 우리 삶은 때때로 잘못된 선택으로 실수를 하고 고통과 상처로 얼룩지게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용서하고 보듬으며 사랑으로 이겨낸다는 ‘가르침’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나눔’.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이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영화로도 나왔다.

 

 

그냥 지나가는 한 마디~ 

 

어제 창백한 얼굴로 회사에서 돌아온 큰 아이는 심한 통증으로 배를 움켜쥐고 누웠다. 안 되겠다 싶어 병원으로 달려갔던 어젯밤. 그렇게 병원에 갈 때면 우리 부부는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이 책을 가지고 간다. 기본 5-6시간을 기다려야 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9시에 가서 새벽 3시가 되어서 나온 우리, 딸아이가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피곤과 졸음에 빠지지 않고 나를 깨어있기엔 추리소설이 딱~!! 덕분에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마치 독서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결국, 딸내미 덕분에 읽게 된 책이었다고 해야 하나..? ^^;;

 

암튼, 그렇게 읽게 된 책이었다.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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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Japan의 Tears..

춥고 배고프던 가난한 학생 시절..

낯선 땅에서의 혼자 견뎌내야 했던 외로움..

들으면서 참 많이 울었던 곡이다..

 

오늘 문득, 떠오른 곡

함께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