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45]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 이종인 옮김

pumpkinn 2017. 11. 3. 12:07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죽음을 맞는 누군가에게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이란 시간은 내게도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다. 머리로만 아는 그 소중한 시간을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있을 때, 마음은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그럴 때 어김없이 다가오는 것은 공허함, 무상함. 미처 느낄 사이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나의 시간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을 읽은 것은 바로 나의 무상한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의미 있는 삶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절절함 때문이었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 허투루 보내는 나의 일상들이 귀하게 느껴질 때는 바로 죽음을 떠올릴 때다. 마치 수 백 년을 살 듯 수 많은 오늘을 낭비하고는 죽음이 불현듯 도둑처럼 찾아올 때, 의미 없이 흘려 보낸 나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다. 학생시절의 나는 마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듯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그때보단 조금 더 죽음에 가까이 와있는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쏟아버리고 있는 것일까.

 

마종기 시인은 이 책만은 도저히 빨리 읽을 수가 없어 자꾸만 손에서 내려 놓아야 했다고 고백하지만,, 나는 그와 반대로 그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한 숨에 읽어내려 갔다. 내게 주어진 만큼의 삶의 시간들은 폴 칼라니티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삶을 놓아야 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을 자아내는 성공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의과 대학원엘 진학하여 신경외과 의사로서 명성을 날리며, 젊은 과학자 상까지 수상하며 빛나는 미래가 약속된 폴 칼라니티. 하지만, 그는 어느 날 문득 자기 앞에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를 삶 안으로 맞게 된다. 그렇게 도둑처럼 슬그머니 그의 삶 안에 들어온 암은 비록 그의 삶을 흔들어놓긴 하지만, 점령하고 파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폴과 루시가 자기들에게 남겨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대하는 모습은 내겐 놀라움이었고, 그와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만약 내가 폴의 아내 루시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나는 아이를 가질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떠올렸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바라보지 않았고, 함께 하는 동안의 삶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했다. (P173)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 걸까. 나는 삶 속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일까. 어떤 의미를 지닌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나는 어떻게 그 의미를 삶 속에서 실현해내고자 하는 것일까. 내가 말하는 그 의미라는 것을 나는 진정으로 추구하며 삶 속에서 살고자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게으름은 무엇인가. 꿈과 목표라고 하는 것은 왜 분명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내 머리 속을 가득 메우는 시끄러운 생각들이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그저 생.각.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반성하지 않는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폴 칼라니티의 물음은 내게도 피할 수 없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 보고 맞닥뜨려야 하는 질문이다.

 

적어도, 폴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은 오늘을 나는 적어도 의미 없이 흘려 보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P112 메스로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면, 외과의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는 따뜻한 말뿐이다.

 

P120커다란 그릇에 담긴 비극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주는 것이 최고다. 한 번에 그릇을 통째로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P120)

 

P121정확한 것도 중요하지만, 희망의 여지는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P143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54어설프게 배우는 건 위험한 일이다.” – 알렉산더 포프 -

 

P161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란 없다.

 

P173 루시와 나는 고통을 피하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느꼈다. 몇 년 전,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삶을 이와 다르게 설명하는 건 줄무늬 없는 호랑이를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년을 죽음과 함께 보낸 후 나는 편안한 죽음이 반드시 최고의 죽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아기를 갖기로 한 결정을 양가에 알리고, 가족의 축복을 받았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했다. “

 

P178 나 자신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이 이토록 혼란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내 영혼의 대장간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벼리고 싶다.”고 생각했던 젊은 시절의 나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 영혼을 들여다보니, 연장은 너무 약하고 불은 너무 뭉근해서 인류의 양심은커녕 내 양심조차 벼리지 못했다.

 

P180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 사무엘 베케트-

 

P180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P212 그레이엄 그린은 인생은 첫 20년까지이고 나머지 시간은 그 20년을 회고하며 보내는 법이라고 했다.

 

P256 비록 지난 몇 년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때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충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을 힘겹게 맞추며, 감사와 사랑의 새로운 깊이를 탐구한 시기였다.

 

P257 육체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음에도, 활기차고 솔직하고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P258 20135월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메일로 말기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폴은 이렇게 썼다.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내가 이미 브론테 자매나 키츠, 스티븐 크레인보다는 더 오래 살았다는 거지. 나쁜 소식은 내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는 거고.”

 

 

P261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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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y Three - 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