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49]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 왕은철 옮김

pumpkinn 2018. 8. 10. 11:12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 이어서 읽게 된 책은 우연하게도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였다. 부러 그리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살레시아 수녀님께서 감동이었다며 선물로 주신 책이었는데 그 타이밍이 참으로 절묘했다.

 

<연을 쫒는 아이>는 타밈 안사리의 세계사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살짝 접했던 터라 더 생생하게 읽혔다. 바로 40년간 통치해온 자히르 샤 왕을 끌어내고 사촌 동생인 다우드 한이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로 넘어가던 바로 그 격동의 시기의 이야기다.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는 아미르와 하산 두 꼬마의 우정과 삶에 관한 이야기는 빠른 템포로 이어지며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클라이막스가 도처에 깔려있는 것이 아닌데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한 호흡으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대체 무엇이 나를 그토록 이 책에 빠지게 했을까. 우선적으로 할레드 호세이니의 가슴을 울리는 감성적인 문장력 때문이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섬세하면서도 옛날이야기처럼 재밌게 흘러가는 나레이션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가 살고 있는 동양권의 문화와 놀랍도록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 나의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그들의 문화가 낯설기는커녕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느낌이 오히려 더 낯설게 다가오며 안 그래도 들썩대는 나의 호기심을 들쑤셨다. 그러면서도 그들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책 표지를 덮는 순간 가슴 메어져 오는 먹먹함이란...


 

 

 

정의롭고 당당하며 고귀한 성품의 소유자며 낭(명예) 나무스(자존심)를 중시하는 파쉬툰족인 아버지 바바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감성적인 문학소년 아미르. 하인 알리의 아들이면서 아미르와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 있어주며 아미르가 위험에 처할 때는 자신도 두려우면서도 온 몸으로 지키는 충실한 몸종이자 친구인 하산. 이 두 소년의 이야기는 그리움과 함께 끈끈하면서도 떨치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가득한 아미르의 기억을 타고 책 전체를 통해 흘러간다.

 

책은 아미르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었던 아버지의 충실한 친구 라임 칸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너는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길이 있어”라는 말과 함께 잊고 있었던 하산에 대한 기억이 마치 어제의 일인 듯 되살아 나며 깊이 묻어놓았던 죄책감을 부추긴다. 자신과 하산이 얼마나 많은 추억을 함께 나누었는지, 하산을 어떻게 배신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비겁했는지를 떠올리며 평생을 가슴 안에 담아놓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미르는 그 어두운 죄책감을 씻어내고자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한다.

 

하산은 진실되고 정직하며 충직하고 정의로운 성격을 지닌 아이였다. 바바는 하산이 비록 어리지만 남자답고 정의롭고 정직하고 충실한 그를 아꼈고 사랑했다. 그런가 하면 나약하고 순간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비겁한 행동까지 하는 아들 아미르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실망스러움이 묻어있었다. 그러한 바바의 마음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눈빛을 타고 아미르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아미르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비겁한 방법을 써서라도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자 했다. 하산을 바라보는 그 눈빛으로 바바가 자기를 바라봐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인샬라.” 나도 그를 따라서 인샬라라고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라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듯했다. 
그것이 하산과 같이 있을 때의 문제였다. 
그가 너무 순수했기 때문에 그의 옆에 있으면 내가 늘 사기꾼 같았다.

 

옆에 있으면 그가 너무 순수하고 정직해서 옆에 있는 사람은 마치 사기꾼처럼 느껴지게 하는 하산은 그렇게 맑고 순수한 아이였다. 아미르는 하산을 구하지 못하고 도망친 비겁했던 스스로의 행동에 괴로워하다 결국 하산에게 도둑죄를 뒤집어 씌워 내쫓기까지 한다. 아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묻는 바바에게 하산은 그것이 아미르의 짓인 줄 알면서도 자신이 그랬다며 아미르에 대한 마지막 충성을 다한다. 하산은 그런 아이였다.

 

 

 

 

먼 훗날, 아미르는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다는 사실을 라임 칸으로부터 듣게 되고 하산의 아들 소랍을 찾아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가게 된다. 자신이 어렸을 때 하산에게 저지른 죄에 대한 보속 행위였다. 소랍을 찾는 동안 여러 위험을 겪게 되지만 두려움에 갇히게 되면 늘 자기 합리화를 하며 도망치던 과거의 자신과 싸우면서 끝까지 소랍을 지켜낸다. 

 

그렇게 하산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아세프로부터 하산의 아들인 구해내어 소랍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가진 소랍은 침묵 속으로 꽁꽁 숨어버린다. 그런 소랍이 스스로 마음을 열기를 바라며 어렸을 때 하산이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충실함과 인내심으로 기다린다. 자신이 지난날 하산에게 했던 악몽 같은 비겁한 행동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 둘의 우정과 사랑을 클라이막스로 다다르게 했던 것도, 추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순간에도 둘 사이에 놓인 것은 ‘연’이었다. 결국 하산과 자신에게 기쁨과 고통을 모두 안겨준 매개체였던 연으로 소랍은 드디어 아미르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아미르와 하산에게도 그러했듯이 아미르와 소랍에게 연은 특별한 운명의 끈이 되어준다. 그렇게 라함의 바람대로 아미르는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젠다기 미그자라 (삶은 계속된다.)’ 그랬다. 그들에게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미르의 소랍은 하산의 충실된 사랑을 디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함성을 지르는 아이들과 함께 연을 쫓아 달리는 다 큰 남자.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판즈시르 계곡만큼 널찍한 미소를 입술에 머금고서. 나는 달렸다.”(P551)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아미르를 위해 연을 잡으러 매번 달렸던 하산. 이제는 성인이 된 아미르가 하산의 아들 소랍을 위해 달린다.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를 외치면서. 두 장면이 오버랩되어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툭 떨어졌다. 평생을 억누르며 벗어나지 못했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미르는  하늘을 펄럭이며 나는 연과 함께 드디어 자유를 느꼈을 것이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연을 따라 쫓아가는 하산이 돌아보며 기쁨에 들떠 아미르에게 외치는 소리가 마치 나를 향해 던지는 외침처럼 들려왔다.

 

 


‘연을 쫓는 아이’를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책을 읽고 보니 영화가 참으로 책에 충실하게 만들어졌음이 느껴졌다. 책에서나 영화에서나 내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바바였다.

 

가족과 사랑과 우정, 그리고 정의와 인간의 양면성이 섬세한 터치로 그려진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의 새로운 문화에 대해 알게 됨으로 아프가니스탄이란 나라가 조금 가까이 느껴졌다. 타밈 안사리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아랍권의 문화에 나는 얼마나 무지한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문화에 선입견을 갖고 있었음이 많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읽는 내내 함께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 있는지. 아프가니스탄은 원래 여성의 지위도 높았고 열린 사회였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과 탈레반의 점령으로 그야말로 아프가니스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목에 뜨거운 덩어리가 막힌 듯 통증이 느껴졌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물론 나는 전쟁을 겪지 않았고 그 처절함이 얼만큼인지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 팔아야 하는 정도라면 그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쩜 그것을 알리고자 할레드 호세이니는 이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고국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며 자신의 나라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쓰레기 같은 나라가 아니었음을. 지금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순수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전통과 문화가 한 때 있었던 나라였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미르가 소랍을 드디어 양자로 데려올 수 있게 되었고, 소랍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나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보여주며 끝났음에도 해피 앤딩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얹어놓은 듯 무거운 느낌이었다. 소랍은 그렇게 전쟁의 참상이 만연한 끔찍한 곳에서 벗어났지만 그곳에 남겨진 아이들은…….

 

 

 

탈레반 정권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참담한 기사들을 매일같이 대하며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이 떠오른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책을 연이어 올리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살면서 내게 주어진 작은 어려움에도 끙끙거리는데, 저 먼 곳에서는 이런 어려움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죽음과 매일 싸우는 곳에 어린아이들이 놓여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그들에게 평화가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

.

 

Szentpeteri Csilla - Mold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