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46]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을 읽고 / 이난아 옮김

pumpkinn 2017. 11. 12. 00:16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글은 처음이다. 그의 작품이 어떻게 내 책장에 꽂혀있는지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아마도 김영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팟 캐스트를 한창 열심히 들었을 때 구입해놓은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가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것 빼놓고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매력에 흠뻑 젖기까지는 몇 페이지면 충분했다.

 

이 낯선 작가 오르한 파묵에 빠져 공부까지 제쳐놓고 정신없이 읽어 내린 ‘하얀 성’이란 작품은 나폴리로 가던 중 터키군에 잡혀 노예가 된 이탈리아인 ‘나’와 거울을 보듯 닮은 터키인 ‘호자’의 이야기다. ‘호자’와 ‘나’가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오르한 파묵의 말이다.

 

“내가 수집한 색채로 꾸미고 단장했던 구상과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내 소설에 나오는 세계 속에서 거닐게 할 육체를 모색하도록 결정 내렸을 때, 나는 내가 호자와 이탈리아 노예를 외관상으로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 상상력의 순간적인 망설임 때문에 ‘동일성’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 같다.” (P208)

내가 좋아하는 해리슨 포드를  꼭 닮은 매력적인 작가, 오르한 파묵 ^^

 

오르한 파묵의 글에서 느껴지는 심드렁한 위트는 금방 나를 사로잡았다. 지뢰처럼 군데군데 묻어있으면서 생각지 않은 부분에서 굉음과 함께 터졌고, 그때마다 내게선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이야기 속 상황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그의 표현 때문이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듯한 그런 심드렁한 듯 무심한듯하지만 예리하게 파헤쳐져 보여지는 감성의 흐름. 그의 섬세한 터치에 그만 빠져 버린 것이다.

 

‘호자’와 ‘나’의 대화와 생각을 따라가며 읽다가 누가 누구인지를 놓쳐버리고는 다시 되돌아가 읽기를 반복하면서도 자꾸만 늪처럼 빨려 들어가게 되는 동화 같은 이야기. 특히, 오르한 파묵이 보여주는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섬세한 감정의 표현은 놀랍다. 이야기 속에 ‘호자’와 ‘나’의 감정은 자주 모호함 속에 놓이곤 하는데, 그 ‘모호함’이라는 올무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의 밖으로 나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 송곳처럼 파고드는 감정의 정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모른 채 넘어갈 수도 없는 이 정체불명의 느낌들.  모호함은 우리를 더 감정의 늪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러한 느낌들을 오르한 파묵은 아주 친절한 터치로 그 실체를 느끼게 해 준다. 

 

마치 돌돌 말려있는 ‘감정’이라는 보따리를 그의 기다란 감성적인 손가락으로 천천히 하나하나 펼쳐가며 보여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날카로운 해부라기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가 놓치고 간 그것을 따스한 터치로 보여주는 듯한 느낌. 손이 닿지 않아 긁을 수가 없는 간지러운 등 언저리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도저히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재밌어서 푹 빠져 읽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재밌어서 푹 빠져 읽었다고 말하기가 무색하게 끝까지 다 읽고 난 후 나의 느낌은 그야말로 ‘모호함’이었다. 죽음을 맞게 될지도 모르는 그 순간에 서로 옷을 바꿔 입고 터키인 ‘호자’는 ‘나’가 되어 꿈속에서조차 로망이었던 ‘나’의 고향으로 떠나고, ‘나’는 ‘호자’가 되어 그의 침대에서 잠을 잔다. 그리고 ‘호자’가 되어 터키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지만, 지난날 호자와의 추억을 그리워한다. 파묵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바꾸기를 갈망하는데, 
과연 자신의 삶이 바뀌었을 때, 
즉 ‘나’를 벗어나 또 다른 내가 되었을 때, 
그 현실에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인가. 

 

“상대방보다 더 행복한지 또는 더 불행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이들이 서로에 관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P219) – 오르한 파묵-

 

번역을 한 이난아의 글을 읽고는 모호했던 느낌이 좀 더 분명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질투를 유발하는 깊은 해석이다. ^^

“소설 속 인물 파디샤의 말을 빌리면 결국 ‘모든 삶은 서로 닮은 것’이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 혹은 삶이 유독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상대 나라에 정착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는 없다는 말이다. 이 소설에서 파묵은 이 세계의 역사는 동양이 서양이 되고 서양이 동양이 되는, 즉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만 하고 또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등장인물 등을 통해 암묵적으로 항변하는지도 모른다. (…) 중요한 것은 동양인이나 서양인이기 전에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소설 <하얀 성>은 서로 다른 세계의 두 주인공을 통해 동서양의 정체를 모색하는 동시에 이해하고자 하는 작품이며,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에 관한 자기 성찰적인 소설이다.” (P223~P224))

오르한 파묵과 이난아

 

터키 유학생활 중 우연히 읽게 된 <하얀 성>에 푹 빠져 밤을 새우고 읽었고, 그의 책을 번역하게 되고 출판 관계로 그와 연락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집필실에서 함께 번역 작업을 하는 멋진 경험까지 하게 되는 이난아. 그렇게 작가와 번역가로서 인연을 맺게 된 오르한 파묵은 몇 년 후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인연인지. 한국어로 번역되는 오르한 파묵의 모든 책은 이난아가 맞게 된다. 참으로 매력적인 인연이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책에 빠져들게 되고, 번역을 하게 되며 좋은 인연을 맺게 되는데 바로 그 작가가 노벨 문학상 작가로 선정된다는 것은 과연 현실성이 느껴지는 일일까. 아마도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확률일 것이다. 부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멋진 스토리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

 

내가 ‘이난아’라는 번역가에 대해 검색을 해본 이유는 터키어의 책을 직접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음에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영어, 독어, 불어가 아닌 제3세계의 언어들은 주로 영어로 번역된 책들을 한국어로 재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스페인어도 아니고 터키어를 직접 번역된 책이라니. 그런 호기심이 자극될 때 내가 하는 것은 구글을 두드리는 일이다. 그렇게 알게 된 이난아와 오르한 파묵의 영화 같은 만남 이야기.

 

나는 번역가의 역할을 참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원어로 읽지 않는 이상, 아무리 훌륭한 작가의 책이라도 번역가의 능력이 부족하면 한 순간에 그 빛을 잃게 되고 그 훌륭한 작품은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 작품을 읽고 깊은 감동과 배움을 얻을 때  책을  작가에 이어 바로 번역가에게 그 감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 일본에서 판매가 저조한 것은 바로 번역의 문제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번역가의 문제라기보다는 알랭 드 보통의 특유의 시니컬한 표현이 일어로 충분히 번역할 수 있는 일어적 표현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러 언어를 돌아서 오는 것이 아닌, 원어에서 직접 번역된 책은 작가의 세계를 좀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어서 그 색채가 좀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터키는 몇 년 전 성지 순례로 다녀왔던 곳이라 조금 친근하게 다가왔다. 보스포로스 해협이나 그랜드 바자르처럼 간간이 내가 아는 지명이 나올 때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에 미소가 물무늬처럼 번져 나갔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를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

워낙 전통 시장을 좋아하는 나는, 그 진기한 풍경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넋을 잃고 보고 있는데, 

누군가 친절하게 걸어온다. 한국어로...

 

"언니~ 여기 아주 싸요~ 들어와서 보세요~" 

"아, 고마워요, 다음(?)에 올게요~"

들어가서 보고 싶었지만  그룹과 모이는 시간이라 거절해야 했다.

 

화가 난 아저씨~

"언니 아냐~ 아줌마야~"

"@@#%$#@@%$#@@"

 

아저씨의 귀여운 화풀이~!! 

함께 가던 언니도 웃고 나도 웃고, 그 아저씨도 웃고.

그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웃었던~ 하하하하~ 얼마나 웃었는지~ ^^;;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가장 끝까지 남아 형제애를 보여준 나라 터키. 그곳에 갔을 때 한국말을 너무나 잘하는 터키인들이 많아 놀랐다. 터키와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때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미지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터키가 참으로 가깝게 느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오르한 파묵은 처음 전공이 건축학이어서 그런가. 훤칠한 키의 멋진 모습을 보면 건축가 분위기가 느껴진다. 것 같다. 해리슨 포드의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작가 오르한 파묵, 그가 무척 좋아졌다. 

그가 좋아진겨? 책이 좋아진겨?

아무렴 어떤가. 앞으로 그의 책을 자주 접하게 될 것 같다. 

 

         


 

터키 음악은 전혀 모르지만..

검색해서 터키 음악을 올려봤다.  ^^

터키 작가의 책을 읽었으니 예의로..^^

 

Best Romantic Turkish Musi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