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42]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고 / 김남주 옮김

pumpkinn 2017. 8. 15. 08:18

 

로맹 가리 & 진 세버그

 

내가 로맹 가리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김영하의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을 통해서다. 김영하의 굵직하고 남성적이면서도 지적인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들. 그 안엔 책이 있고 삶이 있고 사랑이 있고 증오가 있다. 피상적인 나의 삶을 깊이 생각케 하는 불편한 질문을 던져주며 고민하게 하는 김영하. 가만 생각해보니 그가 들려준 책들은 대체적으로 느와르적인 작품들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었다. 자전적 이야기라는 소개와 함께 들려준 그의 삶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는 나를 온전히 사로 잡았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그렇게 읽게 되었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산 로맹 가리에게 깊이 빠져버렸다.

 

“들키지 않는 것, 그것은 위대한 예술이다

 

과연, 로맹가리의 가면 놀이는 완벽했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조카 폴 파블로비치를 에밀 아자르로 내세워 완벽하게 숨은 로맹 가리는 혼자서 얼마나 재밌어 했을까. 로맹 가리는 그렇게 날카로운 비판 속에 자신을 몰아 붙이면서, 새로이 떠오르는 신예 작가 에밀 아자르를 높이 사는 비평가들을 보며 얼마나 비웃었을까, 아니면 씁쓸했을까..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죽어서야 밝혀진다. 로맹 가리를 형편없는 작가라고 조카의 성공을 질투하는 노망 든 노작가라고 비웃었던 비평가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가 죽고 난 후 잡지에 실린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이란 글은 로맹 가리가 죽기 전에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밝기는 글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경멸의 표출이었다.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맹 가리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마음. 미혼모였던 헌신적인 엄마부터 자신이 사랑한 여인 진 세버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독한 고독 속에 독자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경멸을 표출함으로 홀연히 떠나버린 로맹 가리를 만나고 싶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제목이 매혹적이라 읽게 된 책이었다. ‘페루’라는 남미의 엑소틱한 나라 이름도 관심을 끌었지만, 굳이 새들은 왜 페루에 가서 죽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럴까?

 

참 이상했던 것은, 그 어떤 단편도 격앙된 감정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강렬한 감동이나, 가슴 아픈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았다. 마치 독백을 하는 듯, 흑백처리 된 모노톤으로 이어지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이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서서히 늪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랄까. 나도 모르는 사이 빨려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중에 유독 내 마음에 들어와 앉은 작품들을 옮겨본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Les Oiseaux vont mourir au Pérou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읽으면서 아주 불편했다. 노골적인 표현은 하나 없음에도, 가슴이 턱턱 막혀왔다. 아내의 안전보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더 안타까워하는 남편, 그들을 바라보는 까페 주인. 결국 그녀는 다시 바다로 걸어간다.

 

'그들은 떠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까페는 비어 있었다.' (P36)

 

멍했다. 결국엔 그럴거였다. 어쩌면 그녀는 그 방법이 자신을 살리는 길이었을지 모른다. 살기 위해서 죽는 것. 어쩌면 스스로 삶을 끊고자 했던 로맹 가리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류트 le Lurth

 

류트는 16편의 짧은 이야기들 중 가장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던 작품이다. 그 당시 귀족 집안들이 그랬듯이, 그녀와 N백작과의 결혼은 집안끼리 정한 결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N 백작을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내성적인 그를 위해, 외교관에 맞지 않은 그의 그런 면이 드러나지 않게 파티나 사교모임은 그녀가 나서준다. 그렇듯 N 백작의 부인은 외교관의 아내로서 충실하고 현명한 외교관의 아내 모습을 보여준다. 자녀들에겐 엄하면서 반듯한 교육을 시키며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소명은 남편의 뒷바라지와 자녀들 교육인 듯 그런 삶을 산다.

 

‘손가락으로 현을 뜯던 그녀는 때때로 잠시 연주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곤 했다. 반시간 후 백작의 방에서 다시 음악이 울려퍼졌다. 부인은 일어나 류트를 장롱 속에 도로 넣었다. 그런 다음 돌아와 앉아 책을 집어들었다. 하지만 눈앞의 글자들이 서로 뒤섞이는 바람에. 그녀는 울지 않으려 애쓰면서 손에 책을 든 채 똑바로 앉아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P66)

 

류트의 마지막 구절은 앞에서 묘사된 그녀에 대한 그림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기위해 그녀 안에 꾹꾹 눌어놓아야 했던 사랑, 열정. 장롱 속에 꽁꽁 감춰놓았던 류트를 꺼내 연주를 했던 것도 바로 류트를 처음 배우는 남편의 형편 없는 깽깽이 실력이 하인들의 웃음거리가 될까봐 남편을 위한 배려였다. 현을 뜯는 그녀의 손놀림은 얼마나 떨렸을까.. 그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슬픔에 젖어들었을까…

 

왜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온전히 죽이며 살아야 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온갖 구설수에서 완벽하게 남편을 보호하고, 남편이 빛나게 하기 위해 자신은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여성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지난 날엔 더더욱 그랬고, 현재도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행복한 것을 억누르고, 가족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을 열망을 그렇게 억누르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가족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가족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자기 자신 행복을 느끼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은 아닐 게다. 

하지만 그때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나의 이런 생각은 살풋 모순적일 수도 있을 게다. 우리 모두가 시대에 맞서서고 사회에 맞서는 용기를 지닌 것은 아니니까. 

 

눈앞의 글자들이 서로 뒤섞이는 바람에, 울지 않으려 애쓰는 그녀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 내가 느껴졌다.

 


 

어떤 휴머니스트 Un Humaniste

 

이 작품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단지 꺼림직한 공포분위기를 한 톤 빼낸 듯한 버전으로. 장난감 공장을 갖고 있는 사람 좋은 미스터 뢰비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이 이어지자, 전쟁이 끝나면 되돌려 받을 것에 대한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자기 집의 일을 돌봐주는 슈츠부부에게 자신의 재산을 그들의 명의로 바꿔놓고 자신은 지하에 숨어 지내게 된다. 그는 인류에 대한 따뜻한 믿음으로 그들이 자기에게 보여주는 신뢰에 깊은 고마움을 느끼며 지내게 된다.

 

‘이제 칼은 겨우 말만 할 수 있을 정도다. 때때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두 부부와 인류 전체에게 품어온 자신의 믿음을 그토록 충실히 지켜준 선량한 이들의 얼굴을 감사에 찬 눈길로 바라본다. 자신의 신념이 옳았다는 만족감 속에 그는 양손에 충직한 친구들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죽어가리라.” (P77)

 

고통스런 뉴스들을 듣고 싶지 않아 라디오도 없애고, 신문도 보고 싶지 않았던 미스터 뢰비는 모든 소식을 슈츠 부부를 통해 듣게 된다. 전쟁은 끝났고 미스터 뢰비를 만나러 집에 손님들이 오지만, 그들은 뢰비가 어딨는지 모른다고 한다. 매일 아침 슈츠 부인은 싱그러운 꽃을 뢰비의 침대 맡에 꽂아 넣으며 몸을 돌려주고 자세를 바꿔준다. 그런 슈츠 부부에게 미스터 뢰비는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보낸다. 전쟁이 끝난지 이미 오래지만, 미스터 뢰비는 여전히 전쟁 속에 있으며, 자신을 숨겨주고 돌보아 주는 슈츠 부부에게 고마워하며 그렇게 행복하게 죽어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충실한' 슈츠는 미스터 뢰비의 장난감 공장을 잘 운영하여 수입을 배로 늘려놓았다. 인간의 심리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마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동안 재산이 부풀려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전쟁은 끝났고, 아무 것도 모르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미스터 뢰비에게 그냥 그렇게 전쟁 중이라고 속이면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굴러들어온 복 덩어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섬뜩하고 무서웠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끔찍한 행위들. 정직하고 충실했던 자신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을 그들. 바로 가면이 벗겨진 후 만나게 되는 우리 인간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가짜 Le faux

 

진실과 진짜 사이의 경계선, 그 안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물론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의 행동이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주인공 S는 오리지널 명화를 수집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진품과 가짜를 가려 내는 것은 최고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S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하는 아내의 외모가 성형에 의한 아름다움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과연 그는 단순히 그녀의 외모가 가짜였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단순히 그녀의 외모만으로 사랑에 빠졌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그 절정의 아름다운 외모 속에서도 거만하지 않은 수줍은 듯 겸손한 그녀의 행동이었다. 결국 그녀의 순수함, 소박함, 겸손함, 따뜻함에 이끌렸던 그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이 성형에 의한 것임을 말하지 않았다. 절대 말하면 안 된다는 부모의 말씀을 따랐다. 어쩜 자신 그 자체로는 충분히 사랑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 마음에 먼지가 살짝 꼈던 건지도 모른다. 진품은 그 어떤 거짓된 터치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S에겐  먼지를 S는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게 궁금증을 안겨주는 것은, 과연 그가 ‘진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외모였을까. 그녀의 마음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그녀에게 진품인 남편이었을까 외모만 추구한 가짜였을까. 이것은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그려놓은 상상 속의 배우자를 만들어놓고는 결혼하고 나서 이 사람이 아니라며 얼마나 후회하는지.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과 맞지 않다고 말이다. 사실 그것은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이지 원 진품의 그림이 아니었음을 우리들은 간과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렇지 않았나. 하지만, 인제는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원래의 그림이 어떤 작품인지를 배우고 알아가며 그 진하고 깊은 작품성을 만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서로 알아가면서 진품임을 확인해가며 배워가며 놀라워하는 과정. 그게 부부의 삶이 아닐까

 


 

각각의 단편 속에 있는 인물 속에는 단순히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진실들이 숨어있었다. 그의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작품의 인물 들 속에 가득했다. 로맹 가리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다들 복합적이다. 하긴, 우리 인간이 그렇긴 하다. 대의를 품고 있지만, 겨우 천장이나 뜯어내다 생선꼬리처럼 죽어가는 독일군의 모습처럼…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멍함’ 내지는 ‘불편함’이었다. 뭔가 할 말은 많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느낌 말이다. 러시아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폴랜드로 프랑스로 옮겨다니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싸우던 로맹 가리, 경멸스런 사회를 한껏 조롱하고 홀연히 떠나버린 로맹 가리의 비웃음이 그 안에 가득 묻어있었다.

 

도미니크 보나의 ‘로맹 가리’를 읽어야겠다. 좀 더 그를 깊이 만나고 싶은 느낌이다.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내 가슴 한 복판에 툭 놓여진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그의 삶을 엿보게 되고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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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쓰는데 브라이언 아담스의 ‘Straigt From your heart’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울컥~

 

만약 N백작의 부인이 이 음악을 들었더라면…

아마도..

그녀는 오열 속에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몰라….

 

I could start dreaming but it never ends

I’ve been dreaming straight from your heart…

 

마치 먼 기억 속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아련한 하모니카 소리에..

왜 그리도 눈물이 났는지.....

 

Bryan Adams의 Straight from Your Heart….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09&v=-ebtjgK8NNU

 

 

Straight From The Heart

 

  

 

I could start dreaming but it never ends
As long as you gone we may as well pretend
I've been dreaming
Straight from the heart

You say it's easy but who's to say
That we'd be able to keep it this way
But it's easier
Comming straight from the heart

Ohhhh, give it to me straight from the heart
Tell me we can make another start
You know I'll never go, but as long as I know
It's comming straight from the heart.

I see you on the streets some other time
And all my words would just fall out of line
While we're dreaming
Straight from the heart

(Chorus)
Ohhhh, give it to me straight from the heart
Tell me we can make one more start
You know I'll never go, but as long as I know
It's comming straight from the heart

Ohhhhh,
Go and leave me darling.

Ohhhh, straight from the heart
Tell me we can make one more start
You know I'll never go, but as long as I know
Give it to me now.
Straight from the heart
Tell me we can make one more start
You know I'll never go as long as I know
It's comming straight from the heart

Give it to me...ohhhhh, nooo
Ohhhh, nooo
Straight from the heart,
You know I'll never go as long as I know,
It's comming straight from the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