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이야기

'나의 언어'에 대한 단상~

pumpkinn 2017. 3. 4. 02:24

 

                   <출처: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23A1D3A54F7904406>



 

나의 언어라는 주제의 중간고사 과제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마치 무슨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식상한 표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마음으로는 간절히 바라면서도, 나의 글은 느낌 남발이었고, 상투적인 표현들로 가득했다. 나는 그냥 글을 쓰고 싶을 뿐이지, 전문가가 아니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지내왔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계절학기로 신청한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강의 가운데 2차시 언어에 대한 수업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들어왔다. 언어가 생각과 논리를 결정하며, 사회가 소유하고 있는 국어사전의 총량이 사회의 문화수준의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내가 갖고 있는 국어사전과 언어사전의 총량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뜨끔했는지. 과연, 나의 언어 사전은, 국어사전은 얼마만큼의 두께일까. 같은 단어만 나열하는 나의 언어 사전의 두께를 상상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치 없이 백설기 떡을 먹는 가슴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나의 식상하고 상투적인 표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 책이나 시를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노트에 적어보며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했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조는 모방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좋은 글을 열심히 쫓아가다보면 나만의 고유한 표현이 나올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노력 부족인지, 오래 이어지지 못해서였는지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말뚝을 박고 서있다.

 

글쓰기에 있어 나의 습관 들여다보면, 좋은 보다는 고쳐야 부분이 많다. 놀랄 일은 아니다. 좋은 것과 고쳐야 중에 굳이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하나 언급한다면, 아무래도 지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이 아닌, 느낌이 많고 감성적인 글이다 보니 쉽게 읽혀지는 같다.

 

내가 고치고 싶은 부분은 나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군소리들이다. 너무, 정말, 무척 아주 기본이고, 함께, 암튼, 굉장히라는 표현도 자주 나온다. 그런가 하면 나는 나는 많이 붙인다. 나는 써도 되는 부분에서도 마구 남발되곤 한다. 자아의식이 강해선지 아니면 자기중심적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느 분이 나는 많이 사용한다는 말씀을 주시기 전엔 인지조차 못했던 부분이다. 그런가하면 등장하는 상투적인 표현들은 어떻고. 가지 예를 들면 감동이다, 전율이다.처럼 식상한 표현을 많이 쓴다. 물론 나도 감동 풀어 쓰고 싶다. 그런데, 되지 않는다. 전율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마저 식상한 것들뿐이다. 사소한 것에서도 전율이 이는 감동을 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고민거리가 아닐 없다. 내가 느끼는 감동과 전율을 어떻게 생생하게 표현할 있는지. 번개 맞은 느낌이다. 전기가 몸을 타고 올라갔다. 이런 표현 역시 식상하지 않은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나의 고민이고,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하나 언급하자면 형용사와 명사의 부족 현상이다. 제가 한국에 시간보다 외국에서 시간이 많아서 한국어 표현이 모자라요라고 비겁하고 초라한 이유를 갖다 붙일 있을까.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니 이미 내가 배워야 만큼의 국어는 배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일찍 책을 많이 읽었더라면 자신의 국어사전 두께를 이렇게 얇게 만들어 버리지는 않았을터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100살에도 시를 쓰시는 할머님이 계시지 않은가.

 

이렇게 찬찬히 하나하나 나의 부족함을 짚어보니, 역시 문제는 표현력 자체가 아니라 바로 나만의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문제, 게으름이 문제였음을 알겠다. 글을 쓰고 싶다. 감성이 묻어있는 논리적인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이번 계절학기로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언어력을 넓히고 싶고, 두꺼운 나의 단어 사전을 갖고 싶다.

 

언젠가 책에서 언어로 표현이 되지 않는 감정은 느낄 수가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어느 부족은 질투, 시기, 분노라는 감정이 없다고 했다. 감정을 표현할 있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는데. 그것은 내게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많은 표현의 자유를 누릴 나는 많은 것을 경험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언어의 자유가 감성의 자유고 어쩌면 이것은 삶의 자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언어에서 자유로워질 나는 진정 자유로워질 있는 아닐까. 올해 내게 던져진 치열하게 사유하고 고민해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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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슈퍼트럼프 음악은 곧 우리의 일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열광했던 곡이다.


그후로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걸까...

기억의 저편에 숨어있던 그의 음악을 오늘 꺼내어 보았다..


Supertramp - Logical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