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열광했던 봉사자 교육 첫 수업~

pumpkinn 2016. 3. 2. 13:02

3층 강의실에서 이윤제 베드로 신부님의 '봉사자를 위한 교육 강의'가 있었다.

오늘 수업 중에 사진을 찍지 못해 지난 번 특강 때 사진으로~ ^^;;


                                                                                       2016년 3월 1일 (화요일) 

오늘 봉사자 교육 첫 수업이 있었다.

오우~!!

정말이지 열광~열광~ 열광했던 수업이었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수업이 끝나는게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속상할 지경이었다.

 

봉사자 교육이 있다고 와야 한다고 했을 때는..

신부님께서 직접 강의를 주시는 것이니, 배움이 좋아서 ~!!” 했지만,

봉사자를 위한 교리 공부겠거니..’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우선은 우리가 왜 모세오경을 배우는지..

그리고 왜 모세오경 중에서도 창세기가 가장 중요한지

하느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이 공부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가르침은 무엇인지를 전체적인 컨셉을 설명하시며

시작된 공부는 지금까지 만난 공부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내가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열광했던 바로 그 느낌 그 미침이었다.

 

우선적으로 중요시 짚으셨던 부분은 인식 전환이었다.

하느님은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애타게 바라보시고 기다리시고 축복하시는 분이라는 것.

나에게는 이미 친근한 하느님의 모습 아니던가..?

언제나 나를 감동으로 이끄시며 당신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느님..

내겐 늘 그렇게 다가오신 하느님이셨다. 뭉클했다.

 

모세오경은 우리의 잘못을 단죄하는 을 의미하는 그런 율법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며, 지켜야 할 도리라는 개념의 이라는 말씀

아하~!!가 터져 나오고.. ^^

그렇게 열광 속에 임했던 모세오경의 첫 장인 창세기 강의 중..

가슴에 떨림을 안겨주었던 가르침을 키워드로 정리해보았다. ^____^

 

1. 시간 속의 하느님 & 공간 속의 하느님


시간 속에 존재하시는 하느님과 공간 속의 하느님 부분은 내게 강렬한 떨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주로 공간 속에서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 성당에 가서, 성지에 가서, 또는 기도 방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우리인 게다.

하지만,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 모든 곳에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바로 향심기도가 공간 속의 하느님을 시간 속으로 끌어오는 기도라는 것. 늘 깨어 있음으로 늘 공간 속에 만났던 하느님을 바로 지금의 현재 시간 속에 만나는 것.. 그게 바로 관상이라는 말씀이셨다. 유태인에게 하느님은 바로 그런 시간 속의 하느님이셨다는 것은 부러움이었다.

어쩜 그들은 유목 생활을 했기에 광야 생활 속에서 늘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었으므로 정착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시간 속에서 내내 하느님을 만났을 것이라는 설명은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어 마치 사진이 찍히듯 그대로 이해가 되었다.

 

2. 그리스도교적 인간관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은 바로 창세기적 인간관이다. ,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비슷하게 만들어졌기에 인간은 하느님처럼 거룩한 본성을 지녔다. 그리고 하느님이 불어넣은 숨 때문에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 값어치가 하느님과 똑같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적 인간관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당신과 똑같기 때문에 당신이(예수님이)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직접 이세상에 오셨다는 말씀.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셨고, 그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누구인지 아신다. 우리 하나하나 구별하신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

이 말씀은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하마터면 눈물이 떨어질 뻔 했다. 내 가슴이 얼마나 쿵쾅거리며 뛰었는지. 마치 그 순간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그곳에 계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랑의 주님. 황제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 로마의 화폐가 황제의 것이듯, 하느님의 모습으로 빚어진 우리는 하느님의 것이라는 말씀은 헉~ 숨을 들이 마시게 했다.

나는 하느님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내새끼~”. 그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아들까지 보내시는 하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없이 그분을 배신하고 다른 곳을 쳐다보며 당신을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는 내 자신. 이번 공부를 통해 하느님을 더 깊이 느끼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3.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좋은 것만 보신다.' – 오상의 비오 성인


우리의 좋은 것만 보시는 하느님,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보지 않으시고, 우리가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보시는 하느님. 마치 우리가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는 것은 보지 않고 일어설 때만을 바라보며 박수 치며 감탄하듯 그런 마음으로 우리를 보신다는 것이다.

프란시스코 교황님께서 추기경이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노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그것의 의미는 하느님은 내가 하느님을 찾는 노력보다 더 큰 노력으로 우리를 애타게 찾으시고, 기다리시고, 만나길 원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지 마음을 열어드리는 것이라는 것. 우리가 고개를 돌려도 한결 같은 사랑의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와 애타게 눈맞춤을 하시려고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신게다.

이런 분을 어떻게 우리는 벌하시는 하느님으로 느낄 수가 있는 걸까?

 

4. 성경은 왜곡됨 없는 진실의 기록


우리의 역사는 사실 (Fact)’의 기록이지만, 성경의 역사는 진실(Truth)’의 기록이라는 것. 그렇기에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역사적 Fact가 각색될 수도 있다는 것. 왜냐면 성서는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검증해 내기 위해 저술된 과학적 혹은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인간에게 하느님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해 저술된 신학적 보고서 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이해시키기 위해, 하느님만을 주인공으로 제시하는 신학적 기록이기에 그 이외의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기에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엔 오류가 없다고 고백한다는 사실이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내용이지만, 오늘은 더욱 귀에 쏙 박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엔 오류가 없다라는 표현이 유독 재밌게 들리고.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 사실을 들이대며 토를 달고 발목을 붙잡는지. 믿는 우리는 이것을 Faith라고 부르는거겠지. 그것이 신앙이고 믿음이겠지.

 

오늘 내게 가슴을 콕콕 찌르며 치열하게 들어박힌 4가지 가르침을 키워드로 정리해보았다.

물론 이 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강의 속에 함께 했지만, 큰 덩어리만 기록으로 남겼다. ^^

 

집에 오는 길 우리는 내내 강의 얘기였다. ^^

남편은 요즘 하고 있는 기도와 강의 내용이 절묘하게 일치가 되어 놀라워했고,

남편도 나도 완전 강의 속에 푹 빠져 임했음에 서로 좋아라 하며

강의가 좀 더 길었어도 좋았을걸~”

다음 주 화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려~?”

너무 아쉬워하며 돌아왔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 될 것 같은 느낌~

 

오랜만에 들떠서 열광 속에 들었던 강의였다.

다음 주까지 우째 기다릴까나

기다림이 긴 한 주가 되겠다.

 

다음 주 강의 있어요?” 라는 질문을 사전에 막고자 미리 나눠주신 시간표~ 큭큭~ ^^;;

급 흝어보니 기가 막히게도 중간 고사~ 기말 고사 기간엔 모두 휴강~!! 호호~ ^^

완전 대박~!! 이렇게 기막힌 스케쥴이 또 있으랴~ ^^

 

^_____^;; 

완전 난리부르쓰 호들갑이었다~ ^^;;

그렇게도 너무 좋았기 때문~ ^^

좋으면 표현해야 하는 게 내 성격 아닌가~ ^^;;

순간의 감동으로 끝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임하자고 스스로 도닥거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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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자유 - 하연이에게...




우리가 간직해야 소중한 있다면
삶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있는
약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본다해도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있으며

비교하기 보다는 자신을 가꿔가고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믿으며
외로운 사람들 품에 안아줄 있도록
우리 속에 소중한 것을 간직하며 살아요

안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고
소중한 꿈안에 삶을 이루며
삶에 지친 사람들 찾아와 쉬어 가도록
우리 속에 누군가의 자리 남겨두며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