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18]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고 / 최종절 옮김

pumpkinn 2014. 4. 9. 08:27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고 - 리뷰

1.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너무나도 유명하고, 하도 많이 들어 식상하게마저 느껴졌던 햄릿. 그래서 언제든지 손을 뻗기만하면 잡힐 것 같은 책이었기에 왜려 손에 잡히지 않았던 책이었다. 그랬던 내가 햄릿에 첨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바로 에릭 부스의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을 읽으면서였다. 에릭 부스는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에서 자신이 얼마나 햄릿에 열광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가 햄릿에 깊이 심취하여 두고두고 되새기고, 또 읽고 읽으며 자신의 삶과 일치시키고자 했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언가에 그렇게 미쳤던 적이 있었던가 부러움에 쌓였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에릭이 <햄릿>을 읽으며 느꼈을 집착으로까지 느껴지는 그 열정을 나도 얼마나 느껴보고 싶었더랬지... 그랬던 햄릿이었다.

2.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독서 축제 1햄릿’. 드디어 읽었다. 만약 나에게 햄릿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우물쭈물대며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유명한 고전이고 독자들에게 지대한 사랑받는 작품이니만큼 정말 내 영혼을 흔들어대는 감동이었어요~”하고 말할 수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나는 포장된 느낌을 말하기 위해 리뷰를 쓰는 것이 아니다. 내자신과 내 리뷰를 읽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정직하게 말하자면, “슬프게도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수 밖에. 너무나도 익숙한 복수극에 관한 내용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읽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이들이 햄릿에 열광하는걸까? 읽는 내내 들었던 의문이었다.  

물론 그 안에 삶의 통찰이 느껴지는 수 많은 구절들과 어휘들이 나를 사로잡았고,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는건지 이래서 셰익스피어구나...”하며, 셰익스피어의 필력에 감탄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깊은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분명 피상적으로 읽은 나의 탓이리라. ‘햄릿을 읽고 미치는 여러 작가들이 부럽기마저 했으니. 이해되지 않는 행에 대한 주석을 함께 읽으니 읽는 흐름이 깨졌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다시 읽으면 좀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책을 읽고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했던 적도 드물었을 것 같다.

3.

스탠리 웰스는 오늘날 셰익스피어가 지닌 가치를 이렇게 말한다.셰익스피어를 좋아할 도덕적 의무는 없으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 전 세계의 사람들 수백만 명은 그에 관하여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 그를 전적으로 피하기는 어렵다. 영어에는 그의 작품들에서 유래하거나 관계있는 표현들이 가득 스며 있다. 모든 세대와 모든 쟝르의 작가와 예술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 셰익스피어는 분명 수백만 사람들에게 심미적인 즐거움이고 지적인 자극물이다. 그는 수도관 속을 흐르는 물 같은 존재다. 수도관은 닳아버릴지 모르지만, 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유인물 P7)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적어도 나는 그저 햄릿을 읽고 큰 감동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니 조금 위로가 되는 부분이었다. ^^

그런가 하면 노련하고 시니컬한 비평가 클리프턴 패디먼은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을 찿아보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아무것도 찿지 않아도 독자를 결국 뭔가를 찿아내게 된다. 그의 드라마를 재밌게 읽어 나가야지 연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의 작품은 여러번 되풀이하여 읽는 것이 필수적이다.” (유인물 P7)  내가 그 깊은 맛을 못 느꼈던 것은 겨우 한번밖에 읽지 않았기 때문임이 분명해졌다. 얼마나 자비로운 도닥임인지. ^^ 그저 재밌게 읽어 나가야지 연구하려고 하지마라는 그의 말은 내 마음을 더욱 가볍게 해주었다.

3.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세 가지 현저히 다른 판본이 존재하는 극이기 때문에, 이들 판본 사이의 차이점은 해석상의 이견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역자 최종철 교수는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창작하는 작가로서보다는 이미 있는 이야기를 재구성 혹은 재해석하는데 천재적이었다고. 

그렇게 각색된 작품이고, 세 가지 현저히 다른 판본이 존재하고, 또 번역자에 따라 달리 읽히는 햄릿. 참으로 수 많은 얼굴을 가진 햄릿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보는 관점대로 해석대로 분위기가 바뀌어질 수 있는 햄릿이기에 작가들과 배우들은 그토록 햄릿을 사랑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자신만의 햄릿을 그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4.

작품을 깊이 느끼지 못했기에 역자 후기는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즉 극단적인 행동 지연과 극당적인 행동 실천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인물이 햄릿이다. 이 밖에도 햄릿은 엘시노아 성을 찿아온 배우드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연극에 대한 커다란 관심과 깊은 지식,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는 기지와 재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 등으로 인간이 가진 거의 모든 능력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항상 양극화되어 나타나며 약극이 부딪칠 때 생기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그의 존재양식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햄릿은 우리의 반명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보편적인 사고와 행위는 있음과 없음, 선과 악, 허구와 실재,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이분법적인 사물 인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작은 햄릿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16)

5.

왕위와 왕비를 탐내어 아버지를 죽인 삼촌, 그 삼촌과 결혼한 엄마, 복수를 요구하는 선왕의 혼령. 그 틈에서 사랑하는 오필리아와의 관계도 깨지고, 그녀의 아버지를 죽이게되고, 사랑하는 그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결국 사랑했던 그녀의 오빠인 레오티즈와 결투를 하다 모두가 죽음을 맞게되는 비극.

과연 내가 햄릿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복수를 했을까? 아니면 고통 속에 죽어갔을까? 아니면 모든걸 버리고 멀리 떠났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야 복수심이 불타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 하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졌을까는 의문이다. 그 상황을 직접 맞닥드리지 않고는 상상으로는 알 수 없는 일. 게다가 남편이 죽은지 2개월만에 시동생이랑 결혼하는 엄마의 모습은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햄릿이 자신의 엄마를 보며 느꼈을 증오와 여성에 대한 가증스런 혐오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엄마인 왕비가 삼촌과 결혼하지 않았어도 그 복수의 끝은 다르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최종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유행했던 복수극을 염두에 두고 햄릿을 썼지만, 이 비극은 단순히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복수라는 행위가 인간의 존재와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 및 그 행위의 본질을 추구한다. 그 결과 존재의 모든 영역이 비극의 테두리를 이루고 있다 햄릿 아버지의 유령이 왔다고 생각되는 초자연계로부터 햄릿이 살고 있는 자연계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서 셰익스피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다. (...) ‘햄릿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은 개인과 가족과 국가, 심지어는 우주적인 차원에서까지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포괄적이다. 그 외에도 이 비극은 행동과 행동의 지연, 가짜와 진짜 광기, 허구와 실재, 이성과 열정 등의 상반되는 개념과 가치들을 대립시킴으로써 우리의 사고와 행위의 본질을 끊임없이 묻고 있다. 한마디로 햄릿은 존잴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하는 삶의 거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P218)

역자 후기를 읽으며 그제야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내가 얼마나 햄릿을 겉으로 얕게 읽어버렸는지. 셰익스피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 다시 한번 진지한 마음으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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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 by Yuhki Kuram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