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17]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을 읽고.../ 주효숙 옮김

pumpkinn 2013. 12. 1. 06:00

 

Alberto Angela? 이름을 보고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여자야? 남자야?” 

 

작가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그 작품성과는 무관한 부분이지만, 늘 엉뚱한 데서 호기심이 발동되는 나. 그의 첫 번째 이름은 남성형인데, 뒤따라 오는 Angela는 여성형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은 궁금한 거니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별생각 없이 여성 고고학자로 생각했다. 그 어떤 미세하고도 세세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섬세한 관찰력과 색깔이나 미적인 감각을 볼 때, 나의 무의식은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문득, 어떻게 생긴 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구글을 검색했다. 나의 호기심이 게으름을 이기는 순간이다. 구글을 통해 내 검색망에 걸려든 알베르또 안젤라는 남성이었다. 이렇게 지적인 매력이 철철 넘치는 멋진 남성이었단 말이지. 

 

 

그는 1962년 4월 8일생으로 이탈리아의 유명 아나운서인 Piero Angela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미 태어나기 이전에 복권에 당첨된 행운아인 알베르토는 그런 환경 속에 어렸을 때부터 아빠의 여행에 함께 하게 되었고, 그것은 그에게 유럽 언어와 코스모폴리탄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기회가 된다.

 

그는 프랑스에서 공부를 한 후 로마의 La Sapienza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후에도 미국의 여러 대학 (콜롬비아, 하버드 등등)에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대학을 나와서는 자이레, 탄자니아 고비 사막 등을 돌아다니며 고인류학자로서 여러 나라에서 발굴작업에 임한다.

 

그 후 “디스커버리 채널”, “북서항로”, “율리시스”같은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는데 헌신한다. 니제르 사막에 관한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도둑들에게 촬영 필름을 모두 도둑맞는 어이없는 사건을 맞게 되기도 하지만, 2001년 아버지와 함께 작업한 “율리시스”는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국제 페스티벌 중의 하나인 The Flaiano Film Festival에서 TV 부문에서 상을 받는 영예를 안게 된다.

 

알베르토는 자신이 존경하는 아버지 Piero Angelo와 함께 여러 저서를 출간했는데, 저서로는 <태어나는 삶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상어>, <우주여행> 외 다수가 있다.

 

많은 저서와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 동안 그는 많은 부분을 아버지와 공동 작업을 하는데, 그 부분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들과 아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합작품, 그야말로 환상의 앙상블 아닌가.

 

알베르토와 아버지 피에로의 관계를 보면서 천재 물리학자 리챠드 파인만,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과 조니 아이브가 언뜻 떠올랐다. 그들 모두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았고 존경했으며, 자식들 성장과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알베르토의 작품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배움을 주었다. 그들의 땀과 노력으로 밝혀놓은 여러 문화들의 비밀 이야기들을 이렇게 가만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주어진 축복일 터. Grazie~!! 

이탈리아에서만 40만 부가 팔렸다는 명성을 지닌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읽어보니 알겠더라. 그럴 만도 했겠다. 

 

알베르또는 책에서 이탈리아인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거리들이 역사 속에 어떤 길이었고, 어떤 위대한 영웅이 그 길을 걸었으며, 이 포룸과 저 포룸이 생길 때 어떤 역사의 사건들이 있었는지 역사적인 사건과 함께 그대로 보여준다. 또 공중목욕탕 속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노예들은 어떤 생활을 하며 자신들의 주인들을 섬겼는지, 또 시장과 상점에선 어떤 물건들을 사고 팔렸으며 어떤 방식의 셈으로 이뤄졌는지, 심지어 밤문화까지 다른 책에서는 보기 힘든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들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묘사로 그대로  펼쳐진다.

 

 

이렇듯 흥미로운 스토리들의 향연이 알베르토의 섬세한 터치로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이탈리아인들이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와는 무관한 순수 한국 토종인 내가 읽어도 마치 로마인이라도 된 듯 자부심이 쭈악 느껴지니 말이다.

 

읽으면서 너무 재밌고 신기해서 숨을 죽이며 읽은 부분도 있었고, 모래를 씹듯 서걱거리며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로 시간을 죽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인들의 일상을 24시간을 함께하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또 있을까. 

 

고대 로마인들의 24시간 일상을 통해 그들의 삶과 풍습과 문화를 통해 너무 당연하고 사소해서 스쳐 지나갈 법한 아주 작은 사소한 것까지 보여준 알베르토의 섬세함과 예리함, 그리고 그 치밀함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얼마나 방대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했을까.

 

알베르토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로마인으로서 느끼는 자긍심, 자부심, 그리고 끓어오르는 로마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그의 로마인에 대한 지대한 자긍심을 군데군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알베르또는 작업을 하는 동안 몇 번이나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바라보았을 게다. 자기 안에 흐르고 있는 이탈리아인의 피에 자긍심을 느끼면서.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 걸려있었겠지.

 


우선 로마인들의 이름부터 시작되었다. 로마인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지는지. 

첫 번째 이름은 그야말로 자신의 이름이고, 두 번째 따라붙은 이름은 씨족 이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특징이나 성향 또는 성격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토니우스 부르투스는 멍청이 안토니우스라는 의미니 다소 부끄러운 이름이 아닌가. 

 

어쨌든, 공화정 시기에는 첫 번째 이름과 마지막 이름을 부르고, 다시 세 개를 다 부르는 것이 유행하다가 제국시대와 더불어 마지막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이름도 함께 변화를 겪은 로마시대의 이름의 역사가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아마도 내가 브라질에 사로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이름이 주로 4개로 형성이 된다. 처음 두 개의 이름은 본인의 이름, 그리고 아빠의 이름과 엄마의 성이 연이어 붙어진다. 물론 요즘은 아빠나 엄마의 성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대체적으로 4개의 이름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 엄마나 아빠의 성 중 하나를 고르고 남편의 성을 뒤에 갖다 붙인다. 한국 여성은 결혼을 해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걸 보면, 문화적 차이를 적잖이 느끼게 된다. 현실에서는 다르긴 하지만, 의외로 겉으로 보이는 한국 여성들의 입지가 좀 더 독립적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하던 놀이였던 홀짝 게임이 그것도 같은 이름으로 로마에서도 있었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탄성이 나왔다. 어떤 지역적 교류가 있지 않았어도,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류에게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나는 융이 말한 집단 무의식이 이런 데서도 나타나는 건가.

 

Par(짝수), Impar (홀수) 게임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놀이, 비슷한 풍습, 비슷한 문화 등이 있었다는 것은 놀랍다. 이렇듯 서로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문화권에서 비슷한 무언가를 발견할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곤 한다. 경이로운 일이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로마인들은 셈을 하거나 흥정을 할 때 손 모양으로 숫자를 나타내는 계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의 계산법은 책에 그림으로 상사하게 그려져 있지만, 이해가 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베다의 설명을 통해 무엇보다 1만을 넘는 숫자는 신체의 다른 부분을 활용해서 나타냈음을 알게 된다. 1만은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 손을 펼쳐서 나타낸다. 심장(30만), 배(50만), 엉덩이 (60만), 넓적다리(80만), 허리(90만), 그리고 발레리나처럼 머리 위로 손가락들을 깍지 낌으로써 100만이라는 숫자를 가리킨다 “ (P153)

 

비록 로마인들이 글을 많이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시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알았다), 이렇게 복잡한 형태로 셈을 계산할 정도였으니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던 그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기’를 뜻하는 Calculador이 바로 Calculi, 즉 돌멩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왜냐면 그때는 돌멩이로 셈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이렇듯 언어의 뿌리를 알게 되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즐거움이다.


 

고대 로마인의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노예’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특이했던 것은 노예의 다양한 역할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노예’란 집이나 농장 같은 곳에서 일을 하면서 모든 자유와 선택이 구속되고 억류되는, 주인의 재산의 일부로써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며, 결혼은 물론 그들의 생명까지도 주인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신분의 집단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부류도 있었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좀 더 다양한 부류의 노예가 있었음이다.

 

관청 소속의 공공 노예들은 대부분이 행정과 재정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 역할 덕분에 대부분이 로마 시민이 글을 모르던 시절에, 관청 소속 노예들은 읽고 쓸 줄도 알았고, 약간의 문화 소양까지 갖추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주인을 만난 노예들은 ‘해방’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부분을 설명하며 알베르토가 보여준 장면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젊은 남녀 노예를 풀어주는 나이 든 노주인의 감동적인 포옹. 하지만 모든 노예들이 그러한 특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고대 로마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인간적인 미를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바로 11시 편에 올려진 ‘노예시장’ 편이었다. 노예에게 휴식이 주어지는 제도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예에게 휴식이 주어지는 휴일인 ‘Saturnalia’,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를 기념하는 축제로 파종 시기가 끝나는 것을 축하하여 12월 중순 이후에 시작되는데, 그때는 근심 걱정 없이 축제를 즐길 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집 안에서의 역할이 뒤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인과 노예의 역할이 바뀌는 것. 주인이 노예들의 식사 시중을 들고 노예들은 약간의 자유를 즐기게 된다고 하니, 로마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역사 중에 1000년을 통치한 나라는 로마 제국이 유일하다. 바로 이런 열린 마인드를 가진 로마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리 무리한 가정은 아닐 것이다.

 

벼락부자가 된 해방 노예와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들과의 혼인 이야기는 마치 영화처럼 느껴지고. 비극적인 그림일 수도 있는 그 모두가 내게는 드라마틱하고 낭만적인 그림처럼 다가왔다.

 

알베르토가 노예 제도에 관해 언급한 현대와 고대 시대를 비교하며 보여준 객관적인 분석은 이채롭다. 고대 시대에 노예가 필요했던 이유는 지금 현대에서 세탁기나 전기밥솥, 내지는 TV나 가스 렌지 등 우리의 편리를 도와주고 있는 가전제품들이 해주고 있는 모든 일들을 노예가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랬기에 고대에는 그렇게 일상의 기본이었던 노예 제도가 시대의 변화와 함께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다.

 

물론, 그 이면에 인권 존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적 배경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제도적으로 노예가 당연시되었던 그 시대에 노예들의 역할이 가전제품과 비교 분석하여 보여준 그의 관점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고대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은 또 어떤가. 단순히 몸을 씻는 장소라 생각하는 목욕탕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을 깨는 반전 중에서도 대반전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로마 공중목욕탕이기 때문이다.

 

알베르또 안젤라의 말대로 고대 로마시대의 공중목욕탕은 로마인들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돕는 공간이었다. 그 크기와 용도의 방대함에는 나의 모든 상상이 동원되어도 아우르기 힘들다. 공중목욕탕 안에 도서관이 함께 배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비하면 열탕, 온탕, 냉탕의 구분이 되어있었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혼탕을 했다는 것까지는 그림이 그려진다. 일본도 그러니까. 그런데 목욕탕에서 스포츠 게임도 이뤄졌다는 것은 상상이 가능한 건가. 게다가 황제도 공중목욕탕을 이용했다니. 현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바디 가드를 동반하고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황당하지만 재밌는 상상이다.

 

공중목욕탕의 내부 시설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곳곳에 아름다운 프레스코 그림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곳은 목욕탕이라기보다는 마치 박물관 같은 그림이다.


 

알베르또는 책의 마지막 챕터를 호라티우스의 Carpediem으로 고대 로마인의 성(Sex)에 대해 할애했다. 이 상쯤에서 여자 노예들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데, 여자 노예들이야 역사 속에서 성의 희생양이었음은 새삼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남자 노예들의 역할 역시, 여자 노예들과 같은 역할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로마인들의 성에 대한 개념은 확실히 달랐다. 로마인들에게 성이란 신의 선물, 특히 베누스 여신의 선물이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 마땅했고, 또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로마인들을 보며 '문란'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정작 그들에게 있어서는 '신의 축복'을 마땅히 누리는 것임으로 그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것이다. 

 

문화의 지대한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지 않고서 우리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알베르또는 규칙까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는데, 그 규칙들을 읽으며 읽으며 민망하기도 했지만 지배층과 피지배층과의 괴리감이 이토록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또 없었던 듯하다. 그 은밀한 순간에도 주인을 받드는 노예들이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니, 경악스러웠다. 

 

하긴, 언젠가 읽었던 조선 역사에서도 왕이 합방할 때 역시 옆에서 상궁들이 함께하며 훈수(?)와 주문(?)을 넣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거참~

그러고 보니 로마인들 만의 특이한 상황은 아녔나 보다.


 

알베르또 안젤라, 그는 ‘보여주기’가 무엇인지 그 진수를 보여준 작가였다. 그야말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차원을 통과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고대 로마인들 사이로 여기저기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현대의 여행객이 된 나. 바로 그랬다. 마치 손을 뻗으면 만져질 듯 선명하게 그려지는 영화 같은 장면들.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는 여성인 알베르또 안젤라와 함께 이 복도 저 복도, 이 거리 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로마 시내를 둘러보았다면, 중간쯤부터는 남성이 된 알베르또 안젤라와 함께 돌아다녔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로마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가이드가 여성인지 남성인지에 따라서 그 문화가 다르게 보였다는 것은 묘한 차이가 느껴지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어느 쪽이 더 재밌고 덜 재밌고 가 아니라 함께 다닐 때의 두근거림이 달랐다. 알베르토 안젤라가 여성이라 생각하고 함께했을 때는 거친 사람들을 만날 때 느껴지는 불안감 내지는 두려움, 그리고 섬세함과 감성적인 부분이 더 감각적으로 느껴졌다면, 알베르토가 남자임을 알고 함께 다닐 때는 든든한 느낌이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 모든 상황들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그 모든 것을 책을 통해 읽고 있는 것이지 실제 상황 속에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성적인 차이를 느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로웠다.

 

오드리 헵번은 아니지만 로마에서의 휴일이 끝나고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알베르토와 함께 여행한 고대 로마인들과의 일상은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 로마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그렇게 로마에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뒤늦은 아쉬움이 나를 감싸 안았다. 

 

하긴 여행이란 함께 한 사람이 좋을 때 추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설사 내가 이 책을 먼저 읽었다고 한들 나의 온 감성을 막아놓았던 그 이탈리아 여행이 행복한 추억으로 남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로마에 다시 가야 하는 이유다.

 

알베르또는 그를 도와주고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자리를 빌려 이렇게 끝을 맺는다. 

 

"매번 쏟아내는 고대 로마에 대한 나의 열의와 이야기를 한없는 인내심으로 묵묵히 견딘 아내 모니카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던 고대 로마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가 않는다. 해만 바라보며 온전한 사랑을 바치는 해바라기처럼, 우리의 시선은 사랑하는 그것을 바라보게 되고, 천만 번 떠들어도 또 이야기하고 싶어 지는 게 사랑이니까 말이다. 

 

앙드레 보나르가 그리스에 미쳐있었다면, 알베르토 안젤라는 로마에 미친 작가다. 그렇게 미친 열정으로 불타는 삶을 사는 이들은 아름답다. 

 

알베르토의 안내를 받으며 종일을 걸어 다녔던 고대 로마의 거리. 내가 좋아하는 전통 시장도 둘러보고, 신기한 박물관 같은 공중목욕탕도 다녀보고, 밤거리의 풍경은 어떤지, 노예의 삶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물건을 살 때 바가지는 쓰지 않았는지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며 보낸 시간, 참으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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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하나 올려 볼까..? ^^

오래 전 참 많이 좋아했던 음악이다.

 

늘 추억속으로 빠져들게게 하던...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게 하던 음악...

 

Gianluca Grignani의 La mia storia tra le dit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