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20]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pumpkinn 2014. 4. 22. 11:42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리뷰

 

앞서 읽은 두 편의 비극과는 달리 <베니스의 상인>은 정말 재밌게 읽었다. (물론 그래서 희극이겠지만) 긴장감 넘치는 리듬과 모든 상황들에 있어 빙 둘러가는 멍석깔이 없이 곧바로 핵심으로 집중 공격되는 명료하면서 흥미진진한 사건전개가 읽는 이로 하여금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치 처음 읽는 소설처럼 다음엔 어떻게 이어질까? 다음에 어떤 사건으로 이어질까? 그들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등등. 읽는 동안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통찰력에 감탄했고,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식상해보일 그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익살스런 표현력은 감탄과 비탄의 한숨을 내쉬게 했다.

<베니스의 상인>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사랑에 빠진 친구 바사니오가 친구인 안토니오에게 자신이 당당한 모습으로 구혼을 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게되고, 친구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진실된 친구 안토니오는 마침 자신의 모든 재산이 여러 배에 실려 외국으로 나가있음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자, 바사니오를 위해 자신을 담보로 돈 삼천 더컷을 지독한 유대인 샤일록에게 빌리게 된다. 만약 기한내에 차용금을 갚지 못하면 가슴 살 1파운드를 내놓으라는 계약으로. 바사니오는 안토니오의 도움으로 사라앟는 그녀인 포샤에게 구혼의 기회를 얻게되고, 성품 좋고 지혜로운 바사니오는 그녀와 맺어지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안토니오. 안토니오의 물건을 실은 배가 풍랑에 맞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는 처음 계획과는 달리 기한내에 빚을 갚지 못하게 되자 소송에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되며,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소 안토니오에게 악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복수를 하고자 여러가지 자신에게 유리한 제안을 내치고, 끝까지 그의 1파운드 살덩어리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때 바사니오의 아내가 된 포샤가 박사로 변장하고 나타나 피를 흘려서는 안되면, 1파운드에서 더도 덜도 무게가 다르면 안된다는 지혜로운 판결을 내려 안토니오를 구해내는 이야기로 유쾌한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베니스의 상인>은 아주 드라마틱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희극이었다.

 

우정

<베니스의 상인>을 읽으며 가장 내 시선을 붙들어 잡은 것은 바로 우정이었다.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머리속엔 바사니오와 안토니오의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절대적인 우정은 책을 읽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두개의 질문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 너는 안토니오와 같은 친구가 있는지?

- 너는 누군가에게 (친구, 언니) 안토니오와 같은 친구인지?

나는 안토니오와 같은 친구가 있을까? 글쎄, 자신있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아마도 나는 두번째 질문에 답을 먼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안토니오와 같은 친구가 되어준 다음이어야 자신있게 이 질문을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절대로 못해라고 말할 수도 없겠고, 당당하게 난 그런 친구라고 말할 수도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만약 지금의 나에게 너의 생명을 담보로 삼아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느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나의 대답은 그럴 수 없다이다. 나에겐 가정이 있고 엄마가 필요한 두 딸이 있다. 그런데 친구를 위해 내 삶을 담보로 내어놓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나에겐 안토니와같은 그런 영웅적인 면모는 없다. 그리고 친구의 행복을 위해 나의 삶을 잃어도 그의 행복을 웃으며 바라보며 축복해줄 수 있는 그런 대그릇의 소유자가 아니다.

난 누가 나를 위해 하나 뿐인 자신의 삶을 잃는 것을 감당할 수 없고,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내 삶을 잃는 것도 싫다. 서로를 위해 함께 잘 사는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다. 물론 모든 상황이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면 좀 덜 거창하게 다가서서 삶이 아니라 경제적인 도움이라면? 이것은 상황따라 다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큰 액수여서 만약에 친구가 실수를 할 경우 내 삶에 파탄이 일어난다면, 나의 대답은 No 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액수가 설사 친구가 갚지 못해도 우리의 우정에 금이 가지 않을 만큼의 액수라면 그것은 기꺼이 도와줄 수 있다. 이부분은 언급 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빌려주라는 부모님의 말씀은 참으로 지혜로운 교훈이었다.

암튼, <베니스의 상인>에서의 서로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안토니오와 바사니오를 비롯한 서로 돕고자하는 친구들의 우정은 짠한 감동이었다. 소설 안에서만 이런 우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읽느내내 감사했고 따뜻했다.

 

사랑...

바사니오와 포셔의 사랑, 그레시아노와 포셔의 여종 네리사의 사랑, 그리고 로렌조와 샤일록 딸인 제시카의 사랑. 그들의 사랑 전개는 너무나도 빨랐고, 서로에게 사랑 표현은 너무 달콤하고 느끼해서 손이 오그라들고 속이 불편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진심이라곤 하나 없는 입술 위에서 맴도는 소리가 아니라 절절한 사랑 고백이었기에, 책이 끝나갈 무렵엔 그 손이 메쓰거리는 사랑의 고백 표현에 가슴에 맹글맹글한 느낌까지 전해져 올 정도였으니. 역시 진실이란 사람을 공감속으로 불러들이며 그들과 하나되게하는 마력을 지니나보다.

등장하는 구혼자들도 얼마나 재밌고 웃겼는지. 그리고 구혼자들이 잘못된 상자를 열었을때 지켜야 하는 약속이 참으로 엉뚱하고 무모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지혜롭지 못했기에 욕심과 텅빈 본성이 드러나는 선택을 하게되지만, 그렇다고 혼자 평생 독신으로 살라는 약속을 해야 하다니. 거참~

어쨌거나, 처음에 바사니오가 안토니오에게 도움을 청하는 그 이유가 바로 구혼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내게는 좀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유였다. 자신을 좀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 아니 좀 있어보이는 남자로 보이기위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한 사람의 삶이 왔다갔다하는 이유가 생계문제나 병때문이 아닌 구혼때문이라니. 내겐 좀 뻔스런 이유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뻔스런 이유를 기꺼이 받아주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빚까지 내어주며 마치 스스로의 죽음을 자초하는 안토니오의 모습같기도 하고.

안토니오는 진정 바사니오를 사랑하였기에 그에게 있어 구혼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했을 것이다. 단순히 결혼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안겨주는 여인을 만나는 것은 바로 그에게 삶을 주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것임을 안토니오는 알았던게다. 안토니오는 바사니오에게 단순히 돈 삼천 더컷을 빌려준 것이 아니라, 삶을 살게 한 것. 나는 바사니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에 어떻게 그런 무모한 약속을 해줄 수 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오랜 친구인 안토니오는 이미 바사니오의 품성을 이미 익히 잘 알고 있기에, 그의 인간됨돔이와 지혜를 익히 알았던바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을 그런 친구였던 것. 아마 안토니오가 반대로 그렇게 부탁을 해왔어도 바사니오는 충분히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리했을 것이다. 둘의 그런 우정이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내자신이 그런 친구가 되어주지 못하면서 그런 친구가 있는 누군가를 부러워 할 수는 없는 것.

 

포셔, 제시카, 그리고 네리사

이 책에 나오는 등장하는 세 여성 포셔, 제시카, 그리고 네리사. 그들은 모두 착하고 지혜롭고 마음이 넓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사랑 앞에서 당당했고 열정적이었고 능동적이었다. 소극적인 여성이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사랑했고, 사랑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그들은 그같은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소극적인 자세로 구걸하는 사랑이 아니라, 당당하게 내사랑을 외치는 그녀들.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들이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남편이 된 바사니오가 사랑하는 친구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 변장까지하여 나서는 포셔와 그의 여종 네리사. 사랑하는 로렌죠를 따라가며 악덕한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달아나는 제시카. 그들은 한결같이 사랑에 있어 적극적이었고 용감했고 열정적이었다.

재밌었던 것은 바로 바로 그레시아노와 네리사였는데, 포셔에게 구혼을 하러가는 바사니오를 따라간 친구 그레시아노는 바사니오가 포셔에게 구혼하는 그 막간을 이용해 네리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구혼까지 하는 아주 타고나게 타이밍을 잘 맞춘 인물이었다. 그의 급하고 격한 성격답게 사랑도 그렇게 찿은 그다. 그레시아노는 마음에 드는 여인이 나타나자 그자리에서 고백을 하고 청혼까지 하는 아주 재밌는 캐릭터로 많은 웃음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용감함과 지혜로운 기지를 발휘해 안토니오를 구해내는 장면은 완전 클라이막스였다. 알면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던 빠른템포로 이어진 재판 장면은 참으로 속이 시원하고 유쾌하고, 깔끔했다. 그녀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모델이었다. 남편을 사랑함은, 남편을 받아들임은 그 당사자 뿐만이 아닌, 그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문화도 함께 받아들이는 것임을 그녀는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 식대로가 아니라 남편이 원하는 방법을 취함으로 남편의 더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게되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여성인 것.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상대방이 원하는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대로의 방식을 취함으로 많은 갈등을 일으키며 가정이 파탄으로 치닫는지 수없이 많이들 보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과 감정의 고리들이 얽혀 벌어지는 사건이긴 하지만, 만약 포셔와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달려온 바사니오와 같은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어주고 어떤 위험도 모험도 감수하고 함께 삶을 여행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바로 그래서 바사니오가 고른 납상자에는 내 전재산을 걸고 모험을 해야한다라고 써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결혼이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하는 모험이니까.

 

종교

셰익스피어의 일생에 관한 책을 읽지 않았기에 그의 종교관에 대해서는 잘 알수 없으나, 만약 이 책이 지금 시대에 출판되었다면 상당한 이슈를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안토니오를 통해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비쳐진 예수쟁이로 표현된 기독교와 오로지 돈 밖에 모르는 거의 악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유태인 샤일록. 기독교와 유태교의 극단적인 이분법적 묘사는 카톨릭 신자인 내가 읽어도 무모한 부분이 많았고, 편협적인 것이었다.

왜그랬을까? 궁금했다. 궁금했던 이유는 인간의 삶을 여러가지 다각적인 각도에서 관찰하며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 보여주는 셰익스피어가 유독 종교적인 문제에서 그렇게 이분법적인 사고를 발휘했다는 것이 의아스러웠기 때문이다. 모든 예수쟁이들이 돈에 너그러운 것도 성품이 좋은 아니고, 모든 유태인들이 그렇게 자비도 모르는 무자비한 사람들이 아님을 그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을. 혹시 지독한 유태인으로부터 부당한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는 건 아닐까?하는 의문마저 생기고. 그당시엔(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극으로 많이들 풀어냈으니까.

암튼, <베니스 상인>만큼은 유태인들에게 필독서가 되진 않을 것 같은 느낌.. ^^

 

마치며...

역시 내겐 비극보단 희극이다. 비극 안에 흔히 출현하는, 온전히 희생의 재물이 되고도 착하기만 한 천사표도 싫고, 오로지 악녀로만 비치는 대상들도 공감이 잘 안된다. 그뿐인가 애매모호하고 우유부단 속에 마치 온 세상의 모든 슬픔은 자기 것인양, 오로지 자신만 견딜 수 없는 슬픔에 젖어있는 듯 동정을 구하는 듯한 자기 연민 속에 빠진 인물도 싫다. 인간은 모두 양면성을 지녔기에 아무리 악한 사람이어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한 어떤 이유가 있는 것. (물론 사이코들은 여기서의 언급대상이 아니다)

<베니스의 상인>은 이미 영화로도 여러가지 버젼으로 이미 여러번 보았지만, 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흥미롭게도 영화보다 책이 훨씬 더 재밌었고 감동적이었다는 것. 빠른 흐름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전개가 마치 흡입을 하듯 나의 집중력을 빨아들임으로 온전히 몰입을 하게 만들었기에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예리하고도 날카로운 깊은 통찰력에 감탄을 하면서 읽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내용에 깊이 빠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 전의 책들은 셰익스피어의 원본을 그대로 이은 운문에 충실헀던 번역이라 좀 낯설어 아무래도 몰입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연구회의 번역은 내게 익숙한 산문이라 더 쉽게 읽혀졌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서로의 장단점이 있긴 하겠지만, 어쨌든 이제까지 답습된 읽기 형태는 산문형식이라 편히 읽혀졌음에 내용에 좀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구절들..

 

P394 그중 이치에 닿는 말을 찿는다면, 두 포대의 왕겨 속에 섞이 밀알 두 알 정도라고나 할까. 또 막상 찿아낸들 수고한 대가에 미칠 수가 있겠나!

P396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보게, 지금 당장 가서 알아보게, 나도 알아볼 테니. 난 자네가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내 신용을 담보로 하건 나를 담보로 하건, 그건 개의치 않겠네.

P397 이성은 열정을 제어할 바도를 찿아내겠지만 뜨거운 열정은 차가운 계율을 뛰어넘는 법이니까. 청춘은 미친 토끼와 같아서 둔한 절름발이 지혜가 쳐놓은 그물을 뛰어넘는 법이거든.

P414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란 언제나 약속 시간보다 먼저 오는 법인데.

P414 비너스의 수레를 끄는 비둘기도 새로 맺은 사랑의 맹세를 지킬 때는 재빠르게 날지만, 이미 맺어진 사랑의 맹세를 지킬 때는 거북이 걸음이라더군!

P415 그야 만고의 진리지, 잔칫집에 왔다가 갈 때도 왕성한 식욕을 가진 채 식탁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던가? 말도 길을 처음 떠날 때는 지루함을 참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지만 같은 깅르 돌아올 때는 열심히 달리는 법이 업지 않은가? 세상사가 다 그런게 아닌가. 쫓아다닐 때는 활기찬 법이지만, 막상 손에넣으면 시들해지는 거지. 만국기를 나부끼며 항구를 떠나는 배를 보게, 마치 젊은 귀공자 같지 않은가? 창녀같은 바람의 애무를 받으면서 말일세 그런데 항구로 돌아오는 배의 모습은 마치 탕아처럼 보이는 법이지 창녀 같은 바람에 시달려 찢겨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로 말일세.

P429 시간에 무거운 추를 달아 걸음을 느리게 해놓고 잠시라도 운명의 순간을 지연시킬 수 있으면 좋을텐데.

P431 한마디로 그럴 듯한 겉모습이란 가장 현명한 사람마저 교활하게 함정에 몰아넣는 허울뿐인 진실인 게지.

P431 이제 내게 남겨진 것은 사랑뿐, , 사랑이여! 하지만 진정해야지, 이 설레는 황활한 마음을 좀 달래다오. 환희의 비를 조금만 뿌려 제발 도를 넘지 않도록 해다오. 기쁨이 지나치면 화를 불러들이는 법인데, 이 과분한 축복을 감당하기 어렵구나. 과하면 물리는 법이니, 제발 좀 덜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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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데이빗 가렛에게 빠져 몇날며칠을 그의 음악만 들으며 미친듯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데이빗이 한국에서 연주회를 가진다고...

부러우면 지는거다... -_-;;

브라질에도 꼭 한번 와주기를...


이번에 그는 영화 파가니니로 우리아게 다가온다지..?

아마도 당연한 결과일게다.

그가 14살때 연주한 니콜로 파가니니의 La Campanella는..

감정이나 해석이나 테크닉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도저시 14살 소년이 연주했다고 믿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니...

그의 아름다운 연주를 영화로라도 볼 수 있게되었음에 행복할 따름이다...


비발디의 4계중 Winter...

데이빗의 연주로 들어본다.

(넘 다정하게 부르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