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이윤제 신부님의 전기 예언서 특강...

pumpkinn 2014. 1. 20. 05:11

오늘 신부님께서 어찌나 웃기시는지...

강의 내내 깔깔 댔던 것 같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삶, 기름 부음받은 이들을 존중하는 삶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___^

 

 

 

~ 특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 그니까 내가 특강을 했다는 것이 아니고, ^^;;

지난 번 모세 오경에 이어 이윤제 베드로 신부님의 전기 예언서 특강이 있었다.

이 귀한 기회를 어찌 놓치랴~ ^__^

 

루도비꼬는 재정 일때문에 함께 들어오지 못하고,

나는 애리와 함께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특강이 있는 극장으로 향했다.

 

고맙게도 어여쁜 스텔라가 자리를 찜해놓고 있었으니.. (아고 이쁜것~^^)

언니가 이런 특강에 빠질 분이 아니라 맡아놓고 있었단다.

마음 씀씀이가 어찌나 깊은지...

10살 아래 아우지만 챙기는 모습을 보면 꼭 10살 위 언니같다.

 

드디어 강의는 시작되고...

신부님은 성지 순례 중 단연 히트 작품이었던 강호동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셨다.

성지 순례를 함께 다녀온 우리는 그때 기억을 되살리며 또 다신 큰 웃음으로 답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정겹고 그리움이 더해가는 성지 순례의 기억들...

글구보니 이 아름다운 기억이 퇴색되어지기 전에 빨리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특강 주제는 앞서 말한대로 전기 예언서였다.

여호수아를 시작으로, 판관기, 룻기, 사무엘 상하, 그리고 열왕기 상하를 짚어주셨는데..

(룻기는 전기 예언서와 나란히 붙어있지만, 성문서에 해당된다고 하셨다.)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며 내가 그토록 재밌다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주시는 때문이다.

그 주제 성서에 걸친 전체 흐름을 보여주시고 맥을 잡아주신 후,

그 안에 있는 주요 사건들이나 핵심 주제들을 뽑아서 설명을 해주시기 때문에

귀에 쏙쏙 들어오며, 내가 산발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을 마치 조각맞춤이라도 하듯,

그렇게 제자리에 넣어주시는게다.

마치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책들이 자기 자리에 가서 꽂히듯,

바로 그렇게 정리 정돈을 해주시는게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내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은 전체 흐름을 잡는 것이다.

책을 정독하며 깊이 읽는 편이나, 내 성형상 나는 전체 흐름을 타기 보다는,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사건에 더 깊이 빠져드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깊은 감동을 느끼며 때때로 그 감동을 어쩌지 못하고 헐떡거리며 눈물을 흘리기도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인 독서보다는 주관적인 독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속상하도록 아쉬운 나의 부족한 점이다.

 

삼천포로 샜다. ^^;;

어쨌거나,

신부님 강의를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흐름을 잡아주시기 때문이다.

 

오늘 신부님은, 적으려하지말고,

가만히 듣다가 내 가슴에 와닿는 한 두가지 주제를 두고 마음에 담으면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 욕심쟁이가 그게 되나. 일단은 적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지메.

 

여호수아부터 시작해서 판관기를 거쳐 사무엘, 열왕기까지 이어지며

각각에 대한 설명을 주시며 강조하신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느님을 가지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고 고백한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라는 것.

우리가 그렇게 하느님 안에 머무를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로 향하게 되고,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은 많은 은총을 베풀어주시주실 것이라는 것.

그것은 상상 속의 그림이 아니라, 성경 안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단예로,

이스라엘인들이 어떻게 강적인 여리고성을 무찔렀는지...

하지만 그 조그만 아이성과의 전투에선 참패를 했는지,

필리스티아인들이 쳐들어왔을 때 계약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참패를 했는지..

우리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믿고 맡길때와 우리의 힘만 믿고 원하는대로 했을 때의 극과 극의 결과.

 

우리는 얼마나 많이 하느님의 이름을 앞세워 내 욕심을 채우려하는지.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하니님께 맡겼다고 믿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하느님이 원하는 뜻을 하느님의 방법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의 방법대로 하느님이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어쩌면, 스스로도 못느낄정도로 자기 기만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인지도 모른다.

 

신부님께서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해 치열한 반성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을때,

가슴에 쿵하며 떨림이 일었다.

 

나는 얼마나 많이, 하느님이 뜻하시는 것을 하느님 방식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어주기를 바랬던걸까..?

내가 드리는 기도 자체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딴에는 열심히 기도햇다고 생각햇을 내자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나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고 얼마나 많은 감동을 내게 안겨주셨던건가.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하는 이스라엘인들...

왕을 세워달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을 배척하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배척하는 그들의 청을 들어주라는 하느님...

 

하느님은 그런 분이신게다.

당신을 배척하는 이들의 청을 들어주며, 그도 모자라 그들과 함께 같이 걸어주시는 분.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시는 분.

 

신부님께서 이 부분을 말씀하실때 울컥했다.

우리의 하느님은 그런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광야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하여 만나를 내려주셨다.

만나가 처음엔 이스라엘 민족들에겐 기적이었지만,

40년 동안 내리는 만나는 더이상 그들에게는 기적이 아닌 일상이었다.

그랬기에 더이상 기쁨도 감사도 느끼지 못하고 불평을 하게 되는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다.

 

일상 자체가 기적임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고, 감사를 떠나 다른 것을 바라보며 불평을 하는 우리...

일상의 리듬이 깨어질때 비로소 그것이 은총이요 기적이었음을 느끼는 우리...

이 부분에 대한 말씀은 아무런 느낌없이 일상도를 사는 나에게 깊은 성찰의 화두를 안겨주었다.

 

하느님의 모든 역사 안에는 늘 함께 따라다니는 단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의 청을 들어주시고,

하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의 울부짖음을 외면치 않으시고

하느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와 함께 걸어주시며

우리에게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눈물~*)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신게다.

 

다윗이 몇 번이나 죽일 수 있었던 사울왕을 끝까지 지켜주었던 것은.

바로 하느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이유때문이었다.

우리 역시도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하고 고통을 주는 이들을 다윗이 사울에게 그랬듯이

존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말씀은 감동이었다.

 

많은 웃음과 잔잔한 감동, 그리고 번개같은 깨달음이 함께했던 시간...

말씀으로 특강 후기를 맺는다.

 

이 율법서의 말씀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을 밤낮으로 되뇌어, 거기에 쓰인 것을 모두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네 길이 번창하고 네가 성공할 것이다..” (여호수아 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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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들어도 영혼을 터치하는...

아름다운 찬양...

Here I am to Wor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