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킨의 하루

가는 날이 장날...

pumpkinn 2013. 5. 27. 10:50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IL PASTIO...

결국 옷을 얇게 입고 온 왼쪽에 테이블 사람들은 안의 자리가 나자 그리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GLA수업에서 우리는 MSG를 세워 실천해보기로 했다.

내가 세운 남은 5월의 MSG:

- 빠울리스따 걷기

- MASP 관람,

- Casa das Rosas에 커피 마시러 가기, 그리고

- Mercado Central 가기 였다.

너무 집에만 틀어박혀있는 요즘, 이렇게 MSG 계획에 집어넣으면서라도 집에서 뛰쳐나가게 할 어떤 동기가 필요했다. 지난 주엔 와우 모임이 있어서 건너뛰고, MSG를 실행하기로 한 날이 바로 토요일인 어제였다.

아침 일찍 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꼭 걸리는게 점심이다. 점심을 혼자서 먹는다는 것은 영 어색하다. 학생때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혼자 먹곤했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상황 중의 하나가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다. 커피를 혼자 마시며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왜 음식을 혼자 먹는 것은 어색한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나스스로가 만들어낸 어색함인지도 모르겠다.

창문을 열어보니 바람이 조금 차가운 듯, 나는 얇은 외투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빠울리스따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빠울리스따 쇼핑 앞에서 내려 Casa das Rosas로 향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빠울리쓰따 대로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는지. 데이트 하는 남녀들,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청년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 그리고 나처럼 혼자서 어슬렁대는 사람들 등등 그 큰 대로는 제각기 표정으로 다니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빠울리스따 대로를 건너면 바로 Casa das Rosas. 조그만 장소지만, 그곳엔 문화 장소처럼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이 그 안에선 벌어진다. 책 바자회도 열리기도 하고, 글쓰기 수업이 있는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그런가하면 스토리 텔링 시간도 있고, 책읽어주는 시간도 있다. 그 중에 어떤 프로그램도 참석해보지 않았다. 단지 언젠가 우연히 그곳에 갔다가 브라질 어린이들에게 인디언 의상을 입혀놓고는 브라질의 인디언들에 대한 생활과 보호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을 때 잠시 참관한 적이 있을 뿐이다.

어제는 아마도 책 바자회가 있었던 듯.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책상에 책을 놓고 앉아있었고, 왠지는 모르지만 많은 사진기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우선은 까페를 마시고 싶어 그곳을 지나 뜰을 가로 질러있는 까페 IL PASTIO로 향했다. 나는 그 까페를 좋아한다. 그곳에는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뭐랄까 타국에서 맞는 아침처럼 그런 조금은 낯설면서도 나를 얽매고 있는 것으로부터 해방된 자유.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그곳에 오는 독특한 분위기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내겐 매력적인 포인트다. 그들에게 느껴지는 공통점은 자유로움이다.

날이 차가워 그런지 까페 안은 꽉 차 있었고, 밖의 테이블이 몇몇 비어있었다. 내가 앉을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워 그 중에 한 곳을 골라 앉았다. 까페라떼를 큰싸이즈로 주문하고 치즈빵을 시켰는데 치즈빵이 없단다. 하는 수없지. 그냥 까페만 달라고 하고는 앉아서 책을 꺼냈다. 까페를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집에서 나올때는 머플러까지 두르고 너무 유난떠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곳에 오니 머플러가 없었으면 우짤뻔했나, 차라리 파카 잠바를 입고 올걸하는 후회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나는 오늘 이곳에서 세시간쯤 책을 읽고 MASP로 향할 생각이었는데, 세시간은 커녕 30분 앉아있기도 힘들었다. 목 뒷부분을 때리는 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급기야 머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다. 커피를 받자마자 나는 타일에놀부터 꺼내 마셨다. 평소에는 한잔의 커피를 몇 시간에 걸쳐 느릿느릿 마시는 내가 커피를 무슨 숭늉마시듯 그리 벌컥벌컥 마셨다. 좀 더 있고 싶었지만 도저히 너무 추워 아쉽지만 다음기회를 약속하고 계산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폼잡을래다 사람잡을뻔 했다.

그곳에서 나와 나는 곧장 쇼핑 빠울리스따로 향했다. 몸을 따뜻하게 덥힐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라이바가 있는3층으로 올라갔다. 세상에, 쌍파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라이바로 온건지 그 안에 개미처럼 왔다갔다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며 질릴 지경이었다.

내가 다른 사라이바보다 쇼핑 빠울리스따에 있는 사라이바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점 안에 커피숍이 있기 때문인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것이다.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내가 운이 없는 날인지 사라이바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Spicy Café가 하얀 칸막이 벽으로 막아져 있었다. 아마도 내부 공사중인 모양이었다. 

나름 야무진 계획 속에 뛰쳐나왔건만 내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이 없어 속상했다. 책이라도 좀 제대로 읽어야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앉을 곳을 찾았다. 두리번거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돌아다녔지만 역시 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내가 앉을 공간을 찿기란 쉽지 않았다. 한 세바퀴쯤 돌고 나니 저만치 앞에 빈 의자가 눈에 띈다. “네가 내자리가 될거면, 내가 너에게 갈때까지 아무도 앉지 않을껴라고 생각하며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하여 뛰고싶은 마음을 꾸욱 누르며 우아하게(?) 걸었다. 역시 내 자리가 될 운명이었던 듯.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서 지나갔지만 나 이외에 그 의자를 탐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내게 일어난 일 중 유일하게 위안이 되어준 순간이었다.

앉아서 그리스인 이야기를 꺼내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까페에 대한 그리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앙드레 보나르에게 빠져들었다.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맛갈스럽고 매력적인 이야기들로 나를 사로잡았다. 어찌나 재밌게 그리스 문명의 탄생을 이야기했는지, 그 놀라움의 연속. 또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어땠고.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와 싸우러가기 전 아내 안드로마케와의 마지막 대화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죽음을 맞으러가는 헥토르. 바로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나가는 헥토르. 아내 역시도 말릴 수 없는 사랑이었다.

책을 보면서 영화 Troy를 참 잘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었더랬으니. 영화 트로이를 보면서 얼마나 그 비겁하고 쪼잔한 좀팽이 파리스에 열받아했는지, 그 인간적이고 멋진 헥토르에게 열광했는지. 이미 영화를 보았던 터라 내게 아킬레우스는 브래드 피드로, 헥토르는 에릭 바나로, 그리고 파리스는 올란도 블룸으로 떠올려져 더욱 생생함 속에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의문이 책을 통해서 풀렸다는 것. 그것은 왜 헥토르 아버지도, 또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부인도 헬레네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었는데, 그 모두 순수한 헬레네를 시기한 아프로디테의 장난이었음을 그들은 알았다는 것.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 또한 내겐 기쁨이었다.

모처럼 밖에서 하루를 좀 보내보겠다고 나왔던 하루. 내가 계획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앙드레 보나르 덕분에 마지막 마무리를 즐겁게 할 수가 있어서 위로가 되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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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 Pastio에 앉아서 이노래를 듣고 싶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예쁘고 로만틱한 노래가 또 있을까..?

사랑에 빠져있지 않아도 사랑에 빠진듯한 느낌에 빠지게하는...

 

Ana Carolina와 Seu Jorge 가 함께 부르는 E Isso ai...

내가 좋아하는 Ana Carolina와 매력적인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너무 멋진 Seu Jorge...

환상의 듀엣의 목소리로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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