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으로

스케이트장에서의 추억...

pumpkinn 2013. 5. 20. 11:30

 

 

 

특별하게 할 줄 아는 무엇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좀 할줄 아는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것은 빙상 스케이트 타기였다. 물론 어렸을적에 말이다.

중학교때 겨울방학이 되면 일주일에 두 세번은 스케이트장에서 살았던 것 같다.

 

우리 동네에는 군인 아파트가 있었는데 정말 군인들 가족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군인 아파트라고 불렀다.

군인 아파트 입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왼쪽으로 커다란 공터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또 하나의 아파트 건물이 세워질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꽤 큰 공터가 하나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그 반이 뚝 잘라져 스케이트장이 만들어지곤했다.

 

우리 시대때 대부분의 스케이트장이 그랬듯이,

스케이트장에는 조그만 천막집 같은 것이 세워져 있고,

그 안에는 따뜻한 난로와 함께 떡뽀끼와 오뎅, 그리고 아이스크림등을 팔았다.

그리고 스케이트 날을 갈아주시는 아저씨들이 몇 분 계셨더랬다.

 

내가 군인아파트 스케이트장을 좋아했던 이유는 다른 곳보다 넓고 깨끗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아파트 안이라 위험하지도 않아 엄마는 내가 이곳엘 가는 것을 말리신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랑 갈 때도 있었고 혼자 갈때도 있었다.

혼자 가더라도 그곳에 가면 아는 친구들이 꼭 한 두명이 있기 마련이었고,

때로는 새로운 친구들이 자연스레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

 

아마도 내가 스케이트를 좀 타긴 탔던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다방구(우리때 즐겨놀던 게임)를 할때면 친구들이 나를 불러대곤 했다.

내가 술래가 되면 긴장을 했고,

내가 한편이 되면 자기들을 구해줄 친구가 한편이 된 것에 든든해했던 기억이 난다.

 

스케이트를 내가 배우게 된 것은 매원 국민학교 빙상부에 들면서였다.

그 학교에는 넓은 운동장 한켠에 스케이트장이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우리는 특별활동 시간에 그곳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연습을 했다.

그러다 여름이 되면 스쿨버스를 타고 우리 빙상부는 동대문 스케이트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특별활동으로 수업이 없던 토요일은 우리들의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특별한 날이었다.

그 뜨거운 여름날 동대문 스케이트장에 들어가면서 느껴지던 찬바람은 나를 참으로 설레게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무언가 색다른 것을 배운다는 것이 내겐 설렘으로 다가웠던 듯싶다.

 

나는 여자아이였기에 피겨 스케이팅을 했고,

우리는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무용 동작을 배웠고,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스케이트장을 쌩쌩 달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는 스케이트 타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다.

기본 동작인 한발 들고 앞으로 가기 & 뒤로가기. 동그라미 그리며 뒤로가기, 빙그르 돌기,

두 팔을 펴고 다리를 뒤로 올리는 동작등을 배우면서

나는 무척이나 열심히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뙈지였던 나는 한쪽 다리를 들다가 중심을 잃어 엉덩방아를 찧기가 일쑤였지만,

그래도 통통한 엉덩이 살이 폭신하게 받쳐주었던 듯 아프다고 징징대긴 커녕

발뒤꿈치가 까지도록 열심히 했더랬다.

내가 스케이팅을 좋아했을거라고 느껴지는 것은

싫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내 고집을 잘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스케이트와 함께하는 즐거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2학년이 되던 해 아빠는 사업에 실패하셨고 우리는 시골로 내려가야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나는 스케이트를 더 이상 탈 수 없었고, 무용이던 율동이던 더 배우질 못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다시 서울로 올라왔을 때 나는 스케이트를 다시 타기 시작했다.

물론 피겨 스케이팅이 내 꿈은 아니었다.  

단지, 스케이트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이를 하는 것이 즐거웠고 신났을 뿐.

그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빙판위를 달린다는 것이 내겐 어떤 깊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감정인지 조차도 몰랐던 것 같지만.

 

밝은 태양 아래 스케이트를 타고 쌩쌩 달릴때 내 얼굴을 스치는 찬 바람을 맞을때의 상쾌함.

롱 스케이트를 타는 이들 사이로 피겨로 속력을 내며 따라잡을 때 느껴지는 날을듯한 흥분.

내가 조금 알고 있는 율동을 가운데서 연습해볼때 부러운 듯 처다보는 시선도 싫지 않았던 것 같고.

게임을 하며 잡힐 듯 말듯 도망을 다니다가 톱날로 찍어 도끼 걸음으로 옆으로 피했을때의 통쾌함.

다방구를 놀며 술래에 잡혀 팔을 뻗고 있는 친구들의 손을 술래들을 피해 터치해줄때의 짜릿한 희열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다.

무엇에 대한 성취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는 무언가를 성취해냈을 때의 충만감 같은 것이 느껴졌더랬다.

그 느낌을 사랑했던 것 같다.

 

글구보니, 몇 년 전 브라질 쇼핑에 겨울 동안 실내 스케이트장이 생겼던 적이 있다.

너무 반갑고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나는 설레임 속에 스케이트를 빌려서 타고 스케이트장으로 들어갔다.

날이 둔해 잘 나가지도 않았지만, 그 보다는 넘어질까 겁나는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후들거리는 다리.

머쓱하고 부끄러워진 나는 몇 바퀴를 조심스레 돌고는 쓴 웃음을 지고는 나왔다.

그래..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갑자기 왜 스케이트를 탈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리운 것도 아니고,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김연아 쇼를 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한토막. 오늘 이야기로 꺼내봤다.

.

.

 

음...

그리움에 젖어 쓴 글이 결코 아니었는데...

쓰고나니 맑고 순수했던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Omar Akram - A Day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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