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으로

우체국....

pumpkinn 2013. 3. 18. 11:42

 

 

처음 이민을 떠나 친구도 없고, 언어도 모르는 낯선 이국에서 '그리움'이란걸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던 그때, 내게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곳은 바로 '우체국'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던 나는 마치 가슴에 구멍이 뚫린듯 공허감은 커져만 갔고, 공허한 마음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졌다. 인터넷도 없었고 전화도 비쌌던 그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날라치면 밤을 새며 써놓은 편지들을 가방 한가득 모아서는 우체국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우체국은 Centro라고 부르는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그곳엘 가기 위해서는 7번이나 2번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다가 과라니 호텔 앞에서 내려서는 강가쪽으로 한참을 걸어가야했다. 우체국은 고풍스런 아름다운 건물이었는데, 나는 왜 우체국이 이렇게 멀리 있는 것일까를 종종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 우체국에 도착하면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려 말도 잘 안통하고 별로 친절하지도 않은 우체국 직원에게 애써 웃음 지으며 "Certificado por favor (등기로 부탁해요)” 조심스레 한마디 하고는 내가 정성스레 이쁘게 써놓은 편지봉투에 도장이 아무렇게나 찍혀지고 있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가 우체국문을 나설라치면 괜한 설움에 울컥하곤 했다.  그렇게 우체국을 나서면 마치 소중한 무엇을 두고 가는 듯, 차마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우체국 뒤에 흐르던 강가에서 한참을 앉았다가  그리움만 남기고 돌아오곤하던 그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빛마저 서러워 눈물이 그렁대지곤 했다.

 

그때를 떠올릴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건 그렇게 온몸으로 그리움을 안고 지냈던 기억때문일게다. 매일매일이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게 유일한 즐거움이었고, 반갑게 인사해도 받지도 않던 그 무뚝뚝한 우체부 아저씨가 친구로부터 온 편지 한통이라도 갖다줄라치면 너무 기쁘고 고마워서 시원한 우유 갖다드리고는 폴짝폴짝 뛰며 편지지가 헤질때까지 읽고 읽고 또 읽곤했다. 행여 아저씨가 전해준 편지들 중에 내 편지가 들어있지 않으면 꾹꾹 눌러 참다가 결국엔 울음을 터뜨리던 그때의 기억들. 그러면 나는 그 고통스런 그리움을 편지지 속에 하염없이 쏟아내곤 했다. 그리움이라는 심해에 익사하여 죽을것처럼 헐떡거리며 밤을 하얗게 지새며 편지를 쓰던 시간들. 참으로 그리움이 많은 날들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선선한 바람. 가을이 가까이 느껴진다. 가을이되면 어김없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떠오르고, 가을 우체국앞에서를 듣다보면 역시 지독한 그리움에 숨을 쉴 수 없었던 지난 날의 기억과 함께 그 우체국이 떠오른다. 지금 그 우체국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체국에 갈때마다 떠올리던 시. 이수익의 우울한 샹송

그렇게 우체국을 좋아했던 것은, 혹시 우울한 샹송때문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대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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