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으로

국어 선생님, 시, 그리고 에디뜨 삐아프..

pumpkinn 2012. 11. 19. 07:08

 

 

 

국어 선생님...

 

나의 중학교 2학년 국어 선생님은 저명한 혼불작가 최명희선생님이셨다...

줄을 잘 서는 나는 선생님 복도 많았던 것 같다...

 

국민학교때의 김재양 선생님, 박종양 선생님을 비롯하여,

중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이신 지옥련 선생님...

그리고, 최명희 국어 선생님, 김경자 & 최영훈 영어 선생님...

고등학교 때의 선종율 화학 선생님,

대학때의 수학 교수님 Mr. Roger Wolf, 불어 교수님 Madame Rosent..

그리고 영어 교수님 Mr. Strauss.. 등등...

지금까지 좋은 선생님을 참 많이 만났으니 말이다...

 

최명희 선생님과의 첫 수업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가련다... 이니스프리의 호도로....”

 

그 낭랑하신 목소리로...

그렇게 교실 창가에서서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예이츠이니스프리의 호도를 암송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한다....

 

시를 읊으시고는..

이니스프리의 호도에 대한 이야기, 예이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친구와 친구의 남편분 이야기를 해주셨다...

 

함께 떠난 여행 중 점점 가까워져오는 섬을 보며 배 위에서 떠올린 이니스프리의 호도’...

그런데 친구분의 남편분께서도 같은 생각을 하셨다면서 시를 읊으셨다는 이야기...

 

그때는 그렇게 대화도 참 지적이고 낭만적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너무 얕고 말초신경 자극하는 이야기들...

가슴 깊이에서가 아닌 혀끝으로만 쏟아내는 많은 젊은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착잡해진다...

 

자그마한 키에 곱게 찰랑대는 단발머리...

낭랑한 목소리에, 늘 한껏 입가에 묻어있는 미소...

첨엔 참 못생긴 선생님이시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소녀같은 감성을 지닌 선생님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맑고 낭랑한 목소리를 지니셨는지...

나는 시인들은 모두 우리 선생님같은 목소리를 지니셨을 거라 생각했다...

 

늘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푹 빠져 시인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는 선생님....

나는 늘 생각했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선생님이 왜 노처녀이실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녀인데 말이다..

 

역시 남자들은 외모를 많이 따져..‘

나중에 후회할 것 알면서도 말이다...

어렴풋하지만 그때 알게되었 던 것 같다...

 

그래선지 좀 더 자란 나는 여자 외모를 많이 따지는 남자들을 경멸했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물론 내가 못났었기도 해서지만...

겉멋만 따지는 남자들은 속도 텅텅 비었을거란 생각이었고...

그런 속이 텅빈 녀석이 내 남자라 생각하면 끔찍했던게다...

 

그러한 나의 과잉된 반응은...

어쩌면 그때는 미처 스스로 의식하진 못했지만...

이쁘지도 않았고 매력적이지도 않았던 나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에 대한...

강렬한 보호본능적인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항상 수업 전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출석 번호 순서대로 돌아가며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하나 골라...

칠판에 적어놓게 하셨으며...

우리는 그 시를 각자 준비한 예쁜 시집에 적게 하셨다...

 

그러면 최명희 선생님은 그 시를 먼저 읽으신 다음 우리에게 읽게 하시고...

그 시의 주제와 소재, 그리고 시인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다음에야 우리는 본수업에 들어곤 하셨다...

 

또한...

매 학기마다 시집을 거두시어 가장 예쁘고 아름답게 꾸며진 시집을 뽑아 선물을 준비하셨다..

우리는 선물 때문이었던 아니었던 그렇게 열심히 시집을 예쁘게 꾸몄다...

 

재능이 많은 친구들은 시체라는 것도 나름 만들어...

때론 우아하고 멋지게, 때론 로맨틱한 분위기로, 귀여운 시체로 써내려가기도 하고...

삽화도 그려넣으며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예쁘게 시집을 꾸미곤 했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였지만..

나의 시집 노트는 한번도 예쁜 시집 노트에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으로 부터 배운 시집 꾸미기는..

나에겐, 일기장처럼 소중한 무엇으로 자리했다...

시 뿐만 아니라 책을 읽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옮겨 쓰고...

삽화를 베껴 그려넣고...

시인의 아름다운 삶 이야기, 에세이 한토막을 그렇게 배껴놓곤 하였다...

 

그랬다. 우리의 중학교 국어시간은....

그나마 내가 조금 알고 있는 모든 시들은 그때 최명희 선생님으로 부터 배운 것들이다...

 

하두 많은 친구들이 읊어대서 지긋지긋하기마저 했던, 구르몽의 낙엽부터 시작하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장콕도의 도마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애드가 알란 포우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당시 내가 참 좋아했던 시는 아뽈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였는데...

온전히 한 구절 때문이었다...

 

종은 울고

날은 저물어

세월은 가는데...

나는 이곳에 있네...

 

파리에 갔을 때 세느강을 바라보며...

그의 시를 떠올렸다...

숨막히는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그의 시를 떠올리다니....

 

누가 세느강이 더럽다고 했는가..?

누가 세느강을 보고 실망한다 했는가..?

나에게는 감동이기만 한 그림이었음을...

 

최명희 선생님...

우리를 가르치실때의 선생님과 가장 비슷한 분위기의 사진...

 

나는 왜 최명희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물론 선생님과 함께하며 배운 수 많은 시들과 함께..

언제나 소녀같은 선생님이 문득 그리워졌기 때문이었으나...

 

갑자기 왜 그렇게 그리워졌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Ne me quitte pas를 애절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부르는...

에디뜨 삐아프 때문이었다...

 

에디뜨 삐아프...

 

Nina Simone 음악을 찿다가 뜻하지 않게 발견한...

에디뜨 삐아프의 Ne Me Quitette pas...

나를 떠나지 말아요... Don’t leave me...

 

에디뜨 삐아프는 이 노래를 한번 부르고 더 이상 부르지 않았다지...

남자가 여자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그랬기에 그녀에게 이 노래는 충격이었고, 그런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다고 했다지....

 

선생님은 우리에게 시와 시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샹송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왜 샹송 가수들은 그렇게 의식처럼 까만 옷을 입는지...

왜 샹송 가수들은 몽마르뜨 언덕을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도...

 

전설적인 샹송 가수 쥴리엣 그레꼬가 유명해지기 전...

그녀는  몽마르뜨 언덕 어느 까페(or 술집?)에서 노래를 불렀고...

정말 가난했던 그녀였기에 까만 옷을 단벌신사로 입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때부터 샹송가수들은 마치 무슨 전례처럼 까만 옷을 입기 시작했으며...

몽마르뜨 언덕을 사랑하게 되었던거라고..

 

그래서 내가 파리에 갔던 이유는 온전히 몽마르뜨 언덕을 가보고 싶었음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으나... 나는 가지 못했다...

함께 간 언니의 일정에 맞춰드려야 했기에...

 

결국, 나는 파리에 갔지만, 파리에 가지 않았다...

내가 파리에 꼭 다시 가야 하는 이유.. 몽마르뜨를 밟아보기 위함이다....

 

쥴리엣 그레꼬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주신 에디뜨 삐아프와 이브 몽땅의 사랑이야기...

그 유명한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뜨 삐아프가 이브 몽땅을 어떻게 사랑하고 키워줬는지...

이름도 없는 자신을 키워주고 사랑한 에디뜨를 이브 몽땅이 어떻게 배신을 했는지도 말이다...

 

그때는 이해를 못했다..

죽일놈의 자식.. 자기를 그렇게 키워주고 그렇게 사랑했는데...

유명해지고 나니 배신을 때려..?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고 한대 더 맞아야할 놈...하면서...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침을 튀며 욕을 했더랬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도 모르는 그를...

그렇게 열을 내며 흥분해감서 죽어라고 욕을 했더랬다. 마치 내가 에디뜨라도 된 마냥...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던 순진했던 나는...

그렇게 배신자 이브 몽땅을 미워하며 그 학기를 보냈다...

그렇게 나에겐 천하에 죽일놈이 되었던 이브 몽땅....

 

아름다운 에디뜨 삐아프..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랑이란 어떤 것으로도 설명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은 아는게다...

 

누구에게는 처절하고 슬픈 사랑처럼 보여도...

정작 그 사랑을 하는 누군가는 행복하다 느껴질 수도 있는 것....

또는 다른 이에게는 행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자신은 불행할 수 있다는 것도...

 

내게 있어 사랑은 핑크 빛도 아니고 무지개 색깔도 아니다...

내게 사랑은 고통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논할때면...

내 사랑이 이루어지고 안 이루어지고를 떠나...

가슴 먹먹해지는 슬픔과 함께 고통스런 느낌이 함께 한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행복해하는 이들을 보면...

내겐 정말 사랑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아함은 행복이지만...

사랑함은 고통인 것...

 

오랜 시간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했던 해바라기 사랑 때문인지도..

나에게 사랑은 그렇게 고통이고 어둠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라일락 향기 가득한 교정에 앉아...

우리는 에디뜨 피아프와 이브 몽땅에 대해 이야기 했고...

장미 동산에 앉아 애드가 알란 포우를 이야기 하고 라이너 마리에 릴케를 이야기했다...

 

되돌아보면...

얼마나 숨막히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는지...

그때는 몰랐지만 그 모두 최명희 선생님이 안겨준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지금은 알겠는게다...

 

한창 소설 혼불에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미쳤을 때...

작가의 이름이 우리 선생님의 이름과 같아서 놀랬더랬다. 설마했다.

하지만 사진을 보았을 때, 내 몸엔 전율이 타고 올랐다...

 

우리 선생님이셨구나...

그리고 아직 한창 창작활동을 하셔 할 젊은 나이건만....

그렇게 먼저 그곳으로 홀연히 가셨구나...’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났다...

뿌듯함과 자랑스러움과 그리움과 아쉬움과 슬픔이 온통 뒤범벅된 복잡한 느낌...

 

내가 최명희 선생님의 제자로서...

내 삶의 어느 순간에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내게 축복이자 삶의 선물이었다...

 

그때의 그 시집은 아직 갖고 있다...

물론 선생님과 함께 했을 때의 시집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 만든 시집...

내게 소중한 의미가 담겨진 것들을 못 버리는 미련이 나이기 때문일게다...

 

기억이어도 좋고 추억이어도 좋다...

난 단지 음악 하나 들었을 뿐인데....

이토록 내 기억 속에 끈적대며 붙어있는 시간들이 그렇게 하나하나 튀어올라오다니....

 

겨우...

그저...

음악 하나 들었을 뿐인데...

.

.

 

Edith Piaf의 Ne me quitte pas...

어떻게 이토록 가슴 시리게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어쩜 그녀는 이 노래를 부르며 그녀의 사랑 이브 몽땅을 떠올리진 않았을지...

 

어쩌면 이브 몽땅의 당당한 이별이...

그녀에겐 이브 몽땅을 쿨하게 받아들였을지도...

자존심을 굽히는 비굴하게 구는 남자는 참을 수 없는 그녀이기에...

 

아름다운 그녀...

Edith Piaf....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Ne Me Quitte 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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