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93]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고...

pumpkinn 2013. 1. 25. 22:27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읽고...

 

어렸을 때 우리가 좋아라했던 노란색 미제 연필 그림이 그려져있고, Bold처리된 굵은 고딕체 로 ‘문장강화’라고 써있는 이 책은 보는 순간 마치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엄한 선생님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알아서 기어야 할 것 같은 선생님 느낌을 주는 이 책은 첫 페이지를 열기도 전에 큰 호흡을 내리 쉬게 했다.

그러나 여행으로 근 3주를 잃어버린 덕분(?)에 내겐 그런 가벼운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이 없었다. 부리나케 읽고 후기 올리고해도 축제 속도를 맞추려면 신발끈 질끈 동여매고 달려도 시원찮을 판국이었기에 더욱.

어쨌든 나는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은 의외로 재밌었고 흥미로웠다. 물론 소설처럼 신명나게 읽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 내가 갖고 있던 궁금점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맛갈스럽게 설명해주기도 했고, 평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에 의식의 질문을 달아주기도 하여 그 읽는 재미는 맛을 더해갔다.

1.

“글 쓰는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나? 그저 수굿하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무엇을 어떻게 쓸지 많이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하던 시대도 있었다. (P22) 이태준 선생은 “하던 시대도 있었다”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천재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작은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과학적인 견해와 이론, 즉 작법이 쳔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도가 아닐 수 없다.(P23)는 그의 이론에 두 손 두 발 다들고 고개 숙여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게다.

그의 새로운 문장작법에서 언급하는 부분은 내게 참 새롭게 다가왔다. “첫째,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 글짓기가 아니라 말짓기라는 것을 더욱 선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글이 아니라 말이다.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은 마음이요 생각이요 감정이다. (...)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가까운 것은 글보다 말이다.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해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 이제부터의 문장작법은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 데, 감정을 살려놓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P28)

2.

유일어를 찿으라는 소제목 밑에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 는 플로베르의 말에 이어진 모파상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나를 뜨끔하게 했다.

“우리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한 말,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찿아내야 한다. 그 찿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 된다. (P87)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그 문장에 그 글에 맞는 단어를 찿는 피곤을 피하고자 대충 다른 단어를 집어넣었더랬는지. 나의 게으름은 그런데서는 특히나 탁월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낸다. 그러니 늘 그 문장이 그 문장이요, 그 글이 그 글이었던게다. 늘 같은 느낌이라고 불평이나 할 줄 알았지, 새롭고 나만의 유일한 단어를 찿아나서는 수고는 덜고자했던 나였음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기에 모파상의 따끔한 충고 한 마디는 그렇게 나를 움찔하고 얼굴이 벌거지게 만들었던게다.

재밌는 것은 유일어를 찿기 위해선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많이 읽고 배워야 하는게다. 그리고 찿고 적용하고 써보고 느껴보고 그래서 온전히 나만의 표현을 찿아내는 것. 늘 남들이 쓰는 표현을 식상하게 빌려다 쓰는 것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것. 어렵지만 재밌는 작업이 될 것이다.

3.

이태준 선생은 참 친절하게도 각 종 문장별로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팁과 함께 예문까지 넣어놓아 그들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솔솔했다. 특히 내가 관심이 많은 수필 부분에서 그는 수필을 들어 표현하기를.

“단적이요 트여 있어서 글쓴이의 됨됨이가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이 수필이다.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그 사람의 습성, 취미, 그 사람의 지식과 이상, 이런 모든 ‘그 사람의 것’이 직접 재료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수필은 심적 나체다. (P192)

아 증말 죽고 싶었다. 그랬단 말이지. 나는 수필이란 그저 ‘펜가는대로 쓰는 글’이라고 생각하며 편하게만 느꼈지, 그렇게 적나라하게 내가 드러나는 글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게다. ‘심적나체'라니. 물론 글 속에는 아무리 숨기려해도 내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나마 여러가지 쟝르 중에서 가장 만만(?)하게 느껴졌던 것이 에세이였는데, 수필이 가진 성격이 이렇다는 것을 알고보니 깊숙히 움츠려지는게다. 그것은 다음 부분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세사 만반에 통달해서 어떤 사물에 부딪치든 정당한 견해에 빨라야 할 것이요,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P192)

나를 향해 던지는 완전 케이오 펀치였다. 역시 무식이면 용감이라고, 사람은 뭘 모를 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다시한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선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를 많이 학습시키고 성장시키고 또 그렇게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꿔야 하는지..

수필의 새로운 모습을 배우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이 아닌가 싶다.

4.

‘유일어’, ‘수필’과 함께 또 나의 시선을 붙잡았던 것은 바로 ‘퇴고’ 부분이었는데, 퇴고의 유래가 너무 인상적이기도 했고, 퇴고의 중요성은 내게 뜨끔한 가르침을 안겨주었던게다.

그렇게 ‘퇴’와 ‘고’를 고심하다 경윤 행차와 부딪혀 버린 당 시대의 시인 가도. 경윤 앞에 끌려나가서도 그것을 생각하다 사고를 냈다고 고백을 했을 정도로 그리 한 문장을 두고 깊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퇴고의 중요성은 정말이지 내 손이 오그라들게했다. 도스토예프스끼가 톨스토이를 부러워한 것도 그의 재능이 아니라 그가 얼마든지 퇴고할 시간적 여유를 가진 것이었다니,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두 말하면 숨찬 부분인게다.

그렇게 내로라하는 대문호들이 그렇게 퇴고를 열심히 했거늘, 이제 아기 걸음마를 시작하려고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나는 대체 뭐라고 그리 퇴고 작업을 멀리하는 것인지. 나 스스로가 보아도 가소로운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퇴고’작업을 하는 것을 무척 불편해한다. 한번 쓰고 대충 흝어 보고는 스스로 “걍 올리자~!!”하고는 올려버린다. (물론 책을 말하는게 아니라 블로그나 까페에 올리는 글이다..^^;; *부끄~*) 웃는 것은 되새김질을 하며 두고두고 생각하며 웃는 내가, 글을 올리고 퇴고하는 것엔 되새김질을 할 줄 모른다. 그러기에 몇 주나 몇 달 후에 다시 읽어보면 어떻게 이렇게 앞뒤 문맥도 맞지 않는 글을 그냥 올렸을까..? 왜 표현을 이렇게 했을까 하는 손이 오그라드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도 잠시~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그냥 Go~!! 이런 싸이클의 연속.

그렇다고 내가 아주 새로운 것만을 좋아해서 한가지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도 아니면서 퇴고를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은 역시 끈기나 인내의 문제일 것이다. 이미 한 것을 또 본다는 것 자체가 내겐 끈기와 근성을 요구하는 것.

암튼, 퇴고 부분은 내가 깊이깊이 성찰하고 반성해서 좋은 글로 다듬을 수 있도록 의지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5.

또 한 가지 나를 유쾌하게 넉아웃 시켰던 부분은 “될 수 있는 대로 줄이자” 부분이었다.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찿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P230)

하하하하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장롱속으로 숨고 싶을만큼 뜨끔하면서도 어찌나 웃기던지~ 하하하하~^^;; 이태준 선생의 점잖으면서도 시니컬한 유머가 나를 배꼽잡게 했던게다. ^^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 찿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사실 ‘기어이’ 찿아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첨에 그 표현을 집어넣을 때는 다 마땅히 자기 역할을 한다고 느껴지기에 넣는 것임을. 나처럼 글이 엿가락처럼 길고 많이 써 집어 넣어야 뭔가 쓴 것 같은 충족감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참 형벌과도 같은 요구가 아닐 수 없는게다. 그래도 마음에 두고 늘 인식하며 보도록 하자. 첨엔 쉽진 않겠지만 ‘퇴고’를 정성들여 하다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

6.

마지막으로,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부분은 바로 ‘띄어쓰기’와 ‘문장부호의 사용법’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띄어쓰기에 자신이 없어졌다. 띄어쓰기 부분이 아님 곳에서도 내가 너무나도 열심히 띄어쓰기를 하고 있는 것. 거의 음절 별로 띄어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라는 핑계조차 구차하다. 어쨌든 띄어쓰기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나마 나와있어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띄어쓰기는 신경이 쓰이고, 자신이 없는 부분이다. 물론 많은 부분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내가 모르는 것은 내가 인식한다고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니, 좀 더 책자를 찿아서 공부를 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가하면, 문장부호도 나는 작은 따옴표를 큰 따옴표의 성격으로 많이 표현했음이 느껴졌다.^^ 물론 어떨 때 쓰는지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착각해서 쓴 부분이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그것을 제대로 배운 것도 내겐 큰 수확이었다.

 

마치며...

이태준 선생의 ‘문장강화’은 그저 문장 작법을 가르쳐준 것만이 아니라, 그야말로 작법에 관한 모든 것을 통틀어 아우러 보여주었고, 또한 작문에 필요한 문법들을 짚어주었고, 각 문장들이 어떻게 다른 성격을 띄고 있으며, 글의 시각적인 부분과 말의 청각적인 부분을 비교해서 보여준 부분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이태준 선생 역시도 강조하고 있다. 테크닉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마음으로 쓸 때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지 느낌없는 테크닉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말이다.

역시 글이란 내 삶이 묻어날 수 밖에 없다. 이태준 선생은 ‘문장 강화’라는 다소 딱딱한 제목의 책을 쓰셨지만, 그 책에서 그의 깊은 성품와 인품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생을 알지 못하지만, 배움과 가르침에선 엄하면서도 삶에서는 따뜻한 분이심을 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책 속에 많은 배움이 있었으나, 전체를 통틀어 내게 가장 깊이 다가온 부분들과 크게 깨달음을 안겨준 부분만을 리뷰에 올렸다.

배운 것은 많은데 적용을 잘 할 수 있을지 미리 걱정부터 앞선다. 모를때야 걍 용감하게 써내려 갔건만.... 몰라서 용감할 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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