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91]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생의 수레바퀴’를 읽고 / 강대은 옮김

pumpkinn 2012. 12. 3. 09:13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생의 수레바퀴’를 읽고 - 리뷰

 

 

우리가 지구에 보내져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몸은 벗어버려도 좋아

우리의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누에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란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영혼을 해방시켜

걱정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신의 정원으로 돌아간단다.

아름다운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나비처럼 말이야.

-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가 ‘암에 걸린 아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생의 수레바퀴> 그 옆에는 흙 색깔로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고자 하는 이에게’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있다. 그녀의 삶을 담은 그녀의 마지막 에세이.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세 쌍둥이 중 900g의 그 작디작은 몸으로 동생들이 세상에 잘 나올 수 있도록 길을 내어준 맏언니 퀴블로 로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지키며 태어난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머리 모양도, 옷도 똑같이 입고 다녀야 했던 세 쌍둥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영향을 끼쳤던 걸까.  그녀는 고백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남보다 열 배의 노력을 하여 남보다 열 배의 가치가, 뭔가 생존의 가치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이 매일의 고통이었다.” (P23)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일찍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생존의 가치를 입증해야 한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녀의 강박관념은 엄마의 좁은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자기와 똑같이 닮은 다른 두 여동생과 함께하며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생존의 몸부림이 그녀의 세포 안에 박혀버린 것 아닐까. 그녀의 끈질긴 생명력은 ‘삶’과 ‘죽음’에 대한 관심으로, 생명에 관한 존엄성과 사랑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그녀의 DNA에 새겨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생명의 목적을 찾아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꼭 내 힘으로 해낼 것입니다. 
언제나 가장 높은 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20)

 

어린 퀴블러 로스는 자신이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기도 전에 삶의 비전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이미 스스로 혼자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가장 높은 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당당한 고백은 전율이 이는 감동으로 이끌었고 내 안에 심짓불을 댕겨주었다.

 


 

꼬마 엘리자베스가 폐렴으로 병실에 있었을 때 만난, 먼저 죽음의 나라로 떠나는 여자 아이와의 경험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막기 힘든 애틋한 슬픔이 함께 동반된 아름다운 감동.

그 여자 아이는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아이였지만, 그 아이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혼의 세계란 어떤 것일까. 꼬마 엘리자베스의 삶은 이때부터 죽음과 연결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하는 그래서 죽음 너머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엘리자베스. 이 삶은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이고 관문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그런 평온하게 저곳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라는 것.

 

그래선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것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실 나 스스로의 죽음이 두려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단지 내가 죽고 난 후에 남겨지는 가족들의 슬픔, 상황들이 내겐 두려움일 뿐.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엔 큰 딸아이는 대학생이고  자신의 삶을 잘 챙겨갈 수 있는 나이지만 막내 딸아이는 아직 어리니까 만약 내가 떠나야 할 때라면 조금 이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어떤가. 큰 아이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자기 앞길을 잘 챙기고 있으니 지금이라면 이르지 않다고, 이제는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역시 답은 쉽지 않다. 남편이 너무 외롭겠지. 우리 부부는 종종 이야기한다. 남편이 먼저 가야 한다고. 

 


 

퀴블러 가족. (맨 왼쪽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가 그렇게 태어날 때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의 긴장 속에 보내야 했고 가부장적인 아빠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엄마도 아빠도 참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이셨음이 느껴진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기 예수님을 찾으러 아빠와 함께 산속을 헤매는 장면이었다. 흰 눈이 반짝거리는 것은 바로 아기 예수님이 가까이에 있다는 표지라고 알려주는 아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꿈과 추억을 심어주는 얼마나 멋지고 다정한 모습이었는지. 한치의 의심 없이 믿는 순진한 아이들.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 결국 찾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환하게 불빛이 달려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아기 예수님이 켜놓은 것임을 믿고 두근대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먹먹한 감동이 이는 가운데, 우리 사랑하는 딸들에게 그런 아름다운 기억을 심어주지 못했음에 마음 한편이 싸했다.

 

엄마는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자녀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함께 노래를 하고 합창을 하며 보내는 퀴블러 가족들. 엘리자베스는 비록 노래가 안 따라줘서 설거지를 하며 부엌에서 보내지만, 원하는 노래를 신청하며 좋아라 하던 그녀.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다운 가족의 그림이다. 신기했던 것은 가족들과 함께 노래하며 함께하지 못하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투덜대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하는 그녀의 긍정성과 예쁜 마음에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지던지.

 

그녀가 매니와 이혼을 하고 떠날 때도, “이혼은 그가 한 것이지 내가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끝까지 매니를 곁에서 지켜주는 엘리자베스. 그녀의 가족에 대한 확고하고도 끈끈한 사랑은 어쩌면 이렇게 가족 사랑을 함께 나누며 자란 엘리자베스에겐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신은 똑같은 사랑을 보내준다. 죄인에게도 의인에게도 똑같이 비와 햇빛을 뿌려주듯이 사랑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모두 나의 선택이며, 그 뒤로 이어지는 행동 역시 나의 선택이라는 것.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각각의 형태로 나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고 짧게 살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세상에 나와 배워야 할 수업을 다 배웠는지. 소명이라 불리는 목적을 다 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나온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가슴 저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내면의 목소리에 온 몸으로 반응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한치의 주저함이 없었던 고집스러운 엘리자베스. 전쟁 속을 뛰어들고, 좋은 직장을 버리고 평화 지원군으로 나서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라면 그녀는 갈길이 험하고 굶주리고 고통의 연속이어도 달려갔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삶의 고통은 여지없이 따른다. 매니와의 이혼, 자신의 모든 소중한 것을 상실하게 되는 어느 누군가의 방화. 배신 그리고 병.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낸다. 사랑이 있다면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음을 그녀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경험 속에 알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지 못할 십자가는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게 주어지는 고통은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자주 힘들어하고 자주 무너진다. 나의 두려움과 불안까지 얹어놓은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서.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나에 대한 믿음 인지도 모른다. “신이 준 것이라면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 왜냐면 신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견뎌낼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결코 주시지 않으시니까.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큰 상실을 겪을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그렇게 고개 바짝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그 이유는 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고통의 순간에서도 내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하느님이 내게 깨닫게 해주고 싶은 무엇이 있을 거라는 믿음. 무엇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 거고, 내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지를 찾는 마음. 그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고 그때마다 잘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나비를 사랑한 아름다운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꿈과 소명과 사랑에 대해 그녀가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기게 자신의 꿈을 놓지 않았는지. 그녀 안에 가득한 사랑을 있는 그대로 나누어주고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나눠주고자 했는지. 그녀의 삶은 마치 이미 태어나기도 정해져 있었던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삶이 그녀를 그렇게 이끈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에 열심히 충실하고 성실하게, 온 사랑으로 기꺼이 임했던 그녀 엘리자베스.

 

"에바는 믿음, 에리카는 희망, 나는 사랑이었다. 전 세계에 사랑이 부족한 것 같던 그 시기에 나는 선물로, 명예로, 무엇보다도 책임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P53)

 

이해가 가지 않는 한 가지는 엘리자베스의 아빠는 왜 꼬마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사랑으로 키웠던 토끼 블래키를 그녀로 하여금 정육점에 갖다 주게 했던 것일까. 너무나도 잔인했고 도저히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너무 무서웠다. 그 어린 엘리자베스가 느꼈을 그 고통과 상실감과 괴로움.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지켜주지 못했음에 달라붙는 죄책감과 무력감. 내가 엘리자베스가 된 듯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너무나도 잔인했던 아빠의 명령.

 

그토록 사랑하는 블래키를 지켜줄 수 없었던 스스로의 나약함이 얼마나 싫었을까. 어쩌면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가 강해져야 함을 그때 느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그토록 고집스러울 정도로 외골수처럼 지켜나갔던 건지도.

 

어쨌든, 그것은 엘리자베스의 잠재의식 속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고, 그녀는 그에 대한 치유가 필요했었다.

비록 나는 우리 딸들이 키운 토끼를 정육점으로 갖다 주라고 하진 않았지만, 혹시나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 어떤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리거나 빼앗아버린 적은 없는지. 고의적이진 않았으나 행여 나도 모르게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나 않았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내겐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마더   테레사

 

 

참으로 오랜만에 온 몸이 따뜻해지는 책을 읽었다. 삶과 죽음에 좀 더 여유로워지는 느낌. 파닥거리며 아등바등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나는 정말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내 삶의 소중한 의미는 무엇인지. 나는 내가 지구라는 곳에 보내져해야 하는 수업을 진지하고 충실하게 임하고 있는지. 그래서 언젠가 졸업을 하고 내 몸을 벗어버릴 때가 되면 나도 그녀처럼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것인지, 나는 그 순간을 기쁘게 맞이 할 수 있을 것인지, 그 모든 질문은 내게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책. 그래서 빨리 리뷰를 써서 그 느낌을 그대로 옮겨놓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치고는 이렇게 기억 한가닥 부여잡고 느낌을 끄집어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동안 내가 느꼈던 안타까움이었다.

 

마더 테레사 다음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그녀.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 그녀의 장례식에 함께하며 나비를 날리는 류시화가 떠올랐다. 그는 보았겠지.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행복해하며 환한 미소 속에 나비 되어 은하수로 춤추러 갔는지를....

 

 

 

생의 수레바퀴를 읽다가 초서

 

 

P9 내가 아는 한, 진정으로 인간을 치유하는 것은 오직 조건 없는 사랑뿐이다.


P9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맞물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인생에 우연은 없다고 배워왔다. 내게 닥친 모든 일은 일어나야만 했기에 일어난 것이다.

>> 절대 공감이다. 그래 맞다. 우리 삶 속에 우연은 없다. 내게 닥친 모든 일은 일어나야만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그 모든 것들은 그 경험을 통해 내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삶은 내게 가르쳐주고자하는 그것을 내가 배우지 못할 때, 내가 배울때까지 반복해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그럴때는 나는 인지해야 한다. 내가 아직 무언가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말이다. 그것은 나의 길을 보여주는 고마운 표지인 것임을 이제는 나는 안다.


P11누구나 삶 속에서 고난을 경험한다. 쓰라린 경험을 하면 할수록 거기에서 더 배우고 성장한다.”


P12 역경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 그렇지. 역경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용기있게 만들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쩜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때때로는 그렇게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은 살아내는 것 아닐까..?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끊는 사람들은 그래서 우리는 비겁한사람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죽을 용기로 함 살아보지..”하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하는 것...

어떠한 순간에서도 잘 견디고 살아내주길 원하는 것. 때때로 살아가는 동안에 죽음이 얼마나 매력적인 유혹으로 다가오는지, 경험을 해보았던  결국 그것은 그들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하는 절절한 외침인지도 모르는게다.


P12 사람들은 늘 내게 죽음이 뭐냐고 묻는다. 죽음은 정말 멋진 것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죽음만큼 쉬운 일은 없다고. 오히려 삶은 가혹하다. 삶은 어렵고, 힘든 싸움이다. 삶은 학교에 다니는 것과 같다. 많은 숙제가 주어진다. 배우면 배울수록 숙제는 더 어려워진다. 집에 일어난 불은 그런 속제의 하나이자 배움의 시간이었다. 상실을 부정해도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이상, 나는 그것을 수용했다. 달리 어떻게 하겠는가?

P13과제를 다 배우고 나면 고통은 사라져 없어진다.”

P13 고난 없이 기쁨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고통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전쟁의 비참함이 없다면 나는 배웠다. 고통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전쟁의 비참함이 없다면 평화의 안락함을 알 수 있을까? 에이즈라는 질병이 없다면 인류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미움이 없다면 궁극의 목표가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P13 고난 없이 기쁨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고통 없이는 즐거움도 없다. 전쟁의 비참함이 없다면 평화의 안락함을 알 수 있을까? 에이즈라는 질병이 없다면 인류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죽음이 없다면 삶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미움이 없다면 궁극의 목표가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P13 골짜기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고 메워버린다면 자연이 새겨놓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된다.

P14 존재의 유일한 목적이 성장하는 것이라고 믿는 내게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불이 난 지 며칠 후에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가 새 옷들을 사고 다가올 일을 준비했다. 그것이 나다운 삶이었다.

>> 눈물이 났다. 그래 그게 그녀다운 선택이었다. 이미 내게 일어난 일을 끌어안고 고통속에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엘리자베스다운 행동인게다. 때맞춰 mp3에선 London London이 흘러나오고....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용기에 숨을 죽이며 빠져들었다...


P20나는 생명의 복적을 찿아내고 싶습니다.” (...)

>> 이게 어디 국민학교 6학년 입에서 나올 소린가..?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어릴때부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저 가슴 밑바닥부터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겐 참으로 놀라운 부분이었다. ‘나는 생명의 목적을 찿아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12살짜리 꼬마 아이는 과연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나는 50인 나이에도 정말 내 세포하나하나가 살아 춤출 그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말이다...


P20 언젠가는 꼭 내 힘으로 해낼 것입니다. 언제나 가장 높은 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언제나 가장 높은 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의미는 그녀는 이것을 누군가 가르쳐주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녀12년 동안의 삶 아네서 스스로 터득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대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꼬마 아이의 머리 속은 어떻게 구성되어진 것일까..?


P23 나는 언제나 남보다 열 배의 노력을 하여 남보다 열 배의 가치가, 뭔가 생존의 가치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이 매일의 고통이었다.


P28 우리는 서로 미소를 나누고 다시 졸음 속에 빠져들었다. 새로 생긴 친구가 떠나게 될 그 여행에 나는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듯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되었다. 다음 날 아침, 친구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아이가 떠난 것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 아이가 떠나기 전에 소중한 비밀을 털어놓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그 작은 아이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다. 그 아이가 더 좋은 세계로 옮겨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쏟아지는 눈물... 아무도 찿아오는 이 없는 외로운 꼬마 아이였지만, 그 꼬마 아이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혼의 세계란 어떤 것일까..? 꼬마 엘리자베스의 삶은 이때부터 죽음과 연결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게 하는, 그래서 죽음 너머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려는, 그리고 이 삶은 다른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이고 관문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그런 평온하게 저 곳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라는 것. 그래선지 나는 죽음이 무섭지 않아졌다. 순간의 느낌일지는 몰라도.


P34 아버지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는데, 흰 눈의 반짝이는 빛은 아기 예수가 바로 앞에 있다는 표시라는 말을 우리는 정말로 믿었다. 숲과 언덕을 돌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아버지의 이야기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우리 눈으로 직접 아기 예수를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 이 얼마나 이쁜 장면인지. 아빠와 함께 흰 눈이 쌓인 숲속에서 아기 예수를 찿아다니는 모습이라니. ‘흰 눈의 반짝이는 빛은 아기 예수가 바로 앞에 있다는 표시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상상력에 아름다운 추억을 그려준 아빠가 너무나도 멋져보였다. 세 쌍둥이가 아기 예수님을 찿아 열심히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P34 가족 모두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 집안에 들어서면 아기 예수가 금방까지 거실에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름답게 장식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의 모든 초에 불을 붙인 것은 예수라고 믿었다.

>> ^____^


P46 자연만큼 아름답고 관대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자연은 용서이다. 그것은 귀찮은 일로부터의 나의 도피처, 어른들의 거짓 세계와 멀어진 나의 안식처였다. 그것에서라면 진정으로 신의 손과 연결될 수 있다.


P53 에바는 믿음, 에리카는 희망, 나는 사랑이었다. 전 세계에 사랑이 부족한 것 같던 그 시기에 나는 선물로, 명예로, 무엇보다도 책임으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 너무나도 사랑스런 엘리자베스.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을 엘리자베스...


P55 아버지와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아버지가 정한 내 장래를 거부하고 있었다. 집을 나갈까 생각했다. 분명 가정부가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의 장래는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 이 느낌, 어떤 것인지 지난 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P55 나는 떠나기도 전에 벌써 향수병에 걸려 있었지만 생각을 바꾸기에는 고집이 너무 셌다. 내가 결정한 일이었다.

>> 고집스러움. 내겐 익숙한 단어다. 그 고집을 꺽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엄마 아빠는 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고집이 꺽일거라 하셨고, 나는 엄마 아빠 바램(?)대로 시부모님이 돌아가실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바래신대로 내고집을 꺽은 것은 시부모님이 아니셨다. 시부모님은 나를 편하게 해주셨다. 물론 때때로 갈등은 있었지만, 그것은 고부간의 갈등이라기 보단 그저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겪게되는 갈등이었다. 시부모님 대신 내 고집을 꺾어준 것은 이었다. 그 삶의 레슨은 혹독했고, 나는 삶이 가르치는 그 훈련 속에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그것은 나의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고집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나서야 나는 마음이 평화를 선물로 받게되었고, 가정에 웃음이 돌아왔고, 나는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엄마로써 아내로써의 역할에 기쁨으로 충실할 수 있었다.


P82 여기서도 나는 식사 당번으로 임명되었다. 말린 바나나, 기증받은 거위, 밀가루와 계란 등 그때마다 입수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맺어져 전 세계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을 기쁘게 하는 일에서 나는 무한한 보람을 느꼈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도 음식을 잘 할 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아주잠시 했더랬다. 나는 엘리자베스처럼 뛰어난 의사도 아니면서 내가 무슨 대단한 위인인마냥 음식을 할 줄도 모른다. 그리구선 온갖 합당한 이유를 다 갖다 붙인다. 부끄럽고 챙피한 일이다.


P84나의 목표는 생명의 의미를 밝히는 것에 있다.”라고 마음의 수첩에 적었던 내게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가장 깊은 교훈이 되었다.

>> 감동~ 뭉클~ 눈물~


P115 힘없이 누워 있는 세플리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미래에 기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삶은 언제나 현재에 있었다.


P118 의과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실이지만 의학에는 한계가 있다. 또 한 가지 의과대학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실은 자비심이 거의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점이다. (...) 나는 훌륭한 의사란 해부와 수술과 처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스스로 너그럽고 친절하고 섬세하고 애정 어린 인간이 되어주는 것이다.

>> 구구절절 공감 동감~!! 한국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브라질 의사는 참 친절하고 따뜻한 편이다. 물론 간혹 차가운 의사를 만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들은 참으로 따뜻하게 환자들을 대해준다. 그래서 고마움이 더 깊어지는...


P127 하지만 여기서도 또 중요한 교훈이 있다. 바라는 것이 주어질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은 항상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신다.

>> 맞아. 신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아주 우스운 것은, 때때로 우리 덜떨어진 인간들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것을 주시는데,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건지도 모르고 엉뚱한 것을 달라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애원을 하면서 내게 주어진 소중한 그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소중하다고 느낄 때 쯔음이면 이미 우리는 바보같이 너무나도 많이 필요치 않은 겪지 않아도 될 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긴,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사실인지. 혹시 하느님의 모략일까..? ^^


P130 그저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 나는 모든 죽어가는 환자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알려야 할까?”라든가 이미 알고 있을까?”라는 물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던져야 할 물음은 단하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이다.

P155 진실이 늘 최선이다.

P155 죽음은 삶의 한 부분이다.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다.

P163 면담이 끝날 즈음에는 환자의 표정에 펴온함이 보였다. 희망을 버리고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던 대부분의 환자가 새롭게 주어진 교사의 역할에서 커다란 기쁨을 찿았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고,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살아갈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P182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자유으지에 의한 자유 선택이다. 하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른다. 바로 올바른 선택, 사려 깊은 최선의 선택,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선택,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택, 인류를 향상시키는 선택을 하는 책임이다.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너는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라는 물음을 받는 것이 이 단계이다. 이만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은 없다. 생전에 최선의 선택을 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그 물음에 직면하여 알게 되는 것은, 인생에서 교훈을 배웠든 배우지 않았든 궁극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P183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고난을 겪는다. 중요한 것도 있지만 무가치해 보이는 것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우리는 선택을 통해 그것을 배운다. 좋은 삶을 살아가려면, 그래서 좋은 죽음을 맞이하려면 자신에게 어떤 봉사를 해왔는가?”라고 물으면서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목표를 선택하라고 나는 말한다.


P183 선택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이다. 바로 성장하는 자유, 사랑하는 자유이다. 삶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치료비를 낼 수 없는 죽어가는 여자들을 진료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일자리를 잃게 되더라도 나는 자신의 마음이 옳다고 느끼는 대로 선택을 했다. 내게는 그것이 좋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있읐을지 모른다. 인생은 선택의 길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삶을 사느냐는 결국 각자가 선택한다.

>> 내가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를 존경하는 이유. 어쩌면 나의 삶 전체를 바치는 성직자의 삶보다 그녀의 삶이 더 위대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녀는 자신이 챙겨야하는 가족이 있기에 그 결정엔 많은 어려움과 희생이 함께 동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되는 일이라면 더욱.


P184 어머니에게 주어진 마지막 수업이 어머니의 서투른 과목, 그러니까 보살핌을 받고 사랑을 받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었다고 깨닫기까지는 그랬다. 그것을 깨닫고부터 나는 4년 만에 그것을 가르쳐준 하느님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P185 인생은 시간과 함께 전개되지만, 교훈은 그 사람이 필요할 때에 찿아온다.

P186 최고도의 수준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면의 부정성, 못다 한 일, 내면의 까만 토끼를 꼭 없애야 한다.

P202 지구에 태어난 인간이 받은 최고의 선물은 자유 의지입니다.” 페드로는 말했다.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때 마다의 그 모든 선택 하나하나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각각의 선택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 영은 단지 지식을 제공할 뿐이고,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지 정하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P204 남의 기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일을 할 뿐이야

P211 삶에서 주어진 과제의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P216 방갈로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에너지의 존재를 느꼈다. 숙소는 본관에서 너무 멀고 전화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본관으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묵거나 모텔에 가서 잘까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은 없다고 믿는 나는 혼자 그곳에 묵게 한 것도 무슨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냥 있기로 했다.

>> 나도 그런다. 피정이나 성경 공부나 어떤 그룹 활동에서 불편한 상황이 있거나, 불편한 사람이 있어도 그냥 그에 임한다. 분명 이를 통해 내게 깨달음을 안겨줄 하느님의 어떤 뜻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인데, 그런 나의 생각은 늘 틀림이 없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내게 조금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쉽진 않지만 그나마 잘 적응해내는 것, 어쩜 이런 나의 성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218 그것이 교훈이었다. 그 뒤에 오는 환희를 재확인하기 위해 천 번의 죽음이라는 공포를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인생 그 자체처럼, 한창 시련을 통과할 때 갑자기 믿음의 문제가 찿아왔다.


P218 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지 않는다는 신에 대한 믿음, 신이 준 것이라면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

>> 그래. 우리는 경험 속에 알고 있다. 신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지 못할 십자가는 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게 주어지는 고통은 내가 이겨낼 수 있는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자주 힘들어하고 자주 무너진다.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려서.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인지도 모른다. “신이 준 것이라면 어떤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는, 나에 대한 믿음바로 그것. 왜냐면 신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견뎌낼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결코 주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으니까...

큰 상실을 겪을때마다 오뚜기처럼 일어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그녀가 그렇게 고개 바짝 처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일어날 수 있었던 그 이유. 그 이유는 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고통의 순간에서도 내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하느님이 내게 깨닫게 해주고 싶은 무엇이 있을거라는 믿음. 무엇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싶으신거고, 내가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지를 찿는 마음. 그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고 그때마다 잘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P220 하나는 신의 존재를 받아들입니다.” 라는 내 목소리였다. 또 하나의 목소리는 어디선가에서 들려왔다. “산티 닐라야라는 의미 불명의 말이었다.

P222죽어가는 환자나 아이 곁에 앉아 몇 시간이나 그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명상의 가장 높은 형태의 하나입니다.”


P222산티 닐라야는...”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음절 하나하나를 천천히 이어가면서 승리는 말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마지막 평화의 집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의 품으로 돌아갈 때 지상에서 여행의 마지막에 찿는 곳입니다.”

>> 너무나도 놀랍지 않은가..? 그녀가 들은 의미 불명의 산티 닐리라야라는 단어를 알지도 못하는 승려가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풀어준다는 것. 그것은 엘리자베스에게만이 아닌 내게도 놀라운 경험이었다. 왜냐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나도 모르는 마음이 목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나,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에, 그 책에 나오는 강사가 이 지구 반대쪽까지 날라온다던가,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시기에 다른 어떤 책 속에 또는 강연에서 또는 팟 캐스트등 서로 다른 매개체를 통해 그 책에 관한 이야기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도 아주 많이 마주치게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우연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필연적으로 느껴지기에,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는 내겐 마치 무언가를 알려주려는 듯한 표지로 느껴지기까지 한다는 것.

이번 생의 수레바퀴가 그랬다. 수녀님이 성경 공부 시간에 말씀을 하시는가 했더니, 매일 성경 묵상 부분에 신부님께서 그녀를 언급했고, 또한 어느 다른 책에서 또 그녀를 만난 것.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수녀님이 당연이 퀴블러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신부님도 마찬가지고, 다른 책에서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바로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는 그 순간의 타이밍과 일치되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인 것이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이런 삶의 우연을 나는 참으로 사랑한다.


P225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죽음은 인생에서 가장 멋지고 놀라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는 이 순간 소중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P226 죽어가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더기도 나이에 비해 훨씬 총명한 소년이었다. 몸이 쇠약해 있기 때문에 영적, 직관적 능력이 발달했던 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아이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고, 그래서 나는 부모들에게 자신들의 분노와 고통과 슬픔을 솔직하게 함께 나누라고 권한다.

P226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의 매력은 그 정직함에 있었다. 아이는 겉치레의 절차를 완전히 생략한다. 더기가 그 완벽한 실례였다.


P227 삶은 폭풍 속에서 씨앗을 뿌리는 것과 비슷했다. 흙에 덮인 씨앗은 햇빛에 따뜻해진다. 그 햇빛은 우리 모두에게 비치는 신의 사랑이었다. 누구나 배워야 할 교훈이 있고 삶의 목적이 있다.

>> 그렇다. 우리에게 신은 똑같은 사랑을 보내준다. 죄인에게도 의인에게도 똑같이 비와 햇빛을 뿌려주듯이 사랑도 마찬가지다. 단지 내가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모두 나의 선택이고 그 뒤로 이어지는 행동 역시 나의 선택이라는 것.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각각의 형태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고 짧게 살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세상에 나와 배워야 할 수업을 다 배웠는지. 소명이라 불리는 목적을 다 했는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나온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P227 아주 짧은 동안만 피는 꽃도 있단다. 봄이 온 것을 알리고 희망이 있음을 알리는 꽃이기 때문에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꽃이란다. 그리고 그 꽃은 죽는단다. 하지만 그 꽃은 해야 할 일을 했단다.

P228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어요, 자유 의지는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P233 죽음과 그 과정을 받아들인 환자는 보통 죽음이 자연히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기쁘고 초월적인 경험을 하는 것은 그때다.

P233 자살에 의해 사람은 자신을 속이고 배워야 할 교훈을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졸업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원ㄹ래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연인을 잃고 살아갈 희망이 사라져 자살한 여자는 상실의 대처법을 배우기 위해 돌아온다. 그리고 상실의 수용을 배우기까지 상실이 연속되는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P235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문제가 실제로는 하늘의 선물이다.

P274 - 오늘은 어제 한 일에, 내일은 오늘 하는 일에 좌우된다.

- 오늘 하루 자신을 사랑했는가?

- 꽃을 공경하고 꽃에게 감사했는가? 새를 사랑했는가? 산을 올려다보며 외경심을 느꼈는가?

P274 가장 좋은 의학은 가장 단순한 의학이다. “모두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서로를 동정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웁시다.” 워크숍 끝머리에 나는 늘 그렇게 호소했다. 그것은 내 모든 지식과 경험의 요약이었다. “그렇게 하면 그 선물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치유함으로써 우리는 어머니 지구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P278 딸아이는 내게 와 배워야 할 것을 모두 배우고 가르쳐야할 것을 모두 다 가르쳤다는 것을 선생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 나는 딸아이가 살아 있을 때 그리고 죽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P278 가장 가치 있는 것의 본질은 서로 나누어야 한다. 사랑하고, 함께 나누고, 다른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접촉을 주고받는 것,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는 일이 있을까..?

P282 진짜 형제자매처럼 누구나 고통에 의해 연결되고, 오로지 고난에 견디고 성장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P288 지금은 성장의 기회야.” 나는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면 성장할 수 없어. 고통은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 하늘이 준 선물이고, 목적이 있어.”

 

P296 커보키안은 고통스러워한다는 이유만으로 안이하게 환자를 안락사로 이끌고 있다. 환자가 졸업하기 전에 마지막 교훈을 배울 기회를 자신이 빼앗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 인내와 순종을 배우고 있다. 그 교훈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창조주에게는 계획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P296 나비가 고치에서 벗어나 날아오를듯 내가 몸에서 떠날 때를 정해놓은 것은 창조주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장하는 것에 있다. 우연은 없다.

P298 인내라는 이 마지막 과제는 배우기 쉽지 않다. 지난 2년 가까이, 나는 고맙게도 뇌졸증의 연속적인 발작 덕분에 완전히 남에게 의존해 생활해왔다. 매일 침대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화장실로, 다시 침대로 고투를 계속하고 있다. 나비가 고치를 벗고 날아오르듯 몸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커다란 빛에 녹아 하나가 되는 것만을 바라봤다, 영들은 되풀이 해서 시간을 친구 삼은 것의 중요성을 말해주었다. 그 같은 수용을 배울 때 이 육체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P298 우리가 지구에 보내져 배운 것에 대한 시험에 합격하면 졸업이 허용된다. 우리 몸을 벗는 것이 허용된다. 우리 몸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번데기를 품은 고치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몸을 놓아버리고, 고통도 두려움도 걱정도 없이, 아름다운 한 마리의 나비처럼 자유롭게 날아 하느님의 집으로 돌아가낟. 그곳에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며, 계속해서 성장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커다란 사랑에 둘러싸인다.

 

P299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 삶을 보람 있는 도전으로 보라. 가장 힘든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고, 정의와 공명하고 힘과 창조주의 통찰을 가져오는 선택이다.

 

 
P299 하느님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자유의지다. 우연은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에는 긍정적인 이유가 있다. 골짜기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고 메워버린다면 자연이 새겨놓은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

 

P300 삶의 유일한 목적은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과제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P300 매일 이해와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그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아름다운 음악을 듣듯이 그 소리에 귀 기울여라. 인생 최고의 보답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에서 얻을 수 있다. 최고의 축복은 늘 돕는 것에서 나온다.

 
P300 모든 사람은 같은 근원에서 왔고 같은 근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모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고난과 모든 악몽, 신이 내린 벌처럼 보이는 모든 시련은 실제로는 신의 선물이다. 그것들은 성장의 기회이며, 성장이야말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먼저 자신을 치유하지 않고는 세상을 치유할 수 없다.

 

P301 사랑이 있다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다.

>> 너무나도 강렬한 한 마디. ‘사랑이 있다면 어떤 일도 견딜 수 있다.’ 그래 맞어.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일도 견딜 수 있다. 고통도 두려움도 슬픔도 힘겨움도. 그 어떤 것도 견뎌낼 수 있다. 사랑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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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챠드 클레이더만의 'Lettre A Ma Mere'...

'엄마에게 쓴 편지...'

 

고등학생때 밤을 새워 듣던 리챠드 클레이더만의 애잔한 피아노 연주곡...

엘리자베스를 위한 곡으로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