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으로

범표 운동화와 아빠...

pumpkinn 2012. 9. 27. 07:58

우리가 살았던 우이동의 우이유치원 졸업식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바로 밑의 동생 상훈이...

근데 오빠는 어디갔을까..? ^^;;

그때는 밑으로 둘은 아직 안태어났을 때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좀 극성이셨던 것 같다..^^;;

 

연년생인 오빠와 나..

당연히 오빠와 나는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먼저 깨워 일어나는 녀석은 공부시켜서 스쿨버스 태워보내고...

나중에 일어나는 녀석은 공부시켜서 일반 버스를 태워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먼저 학교에 간 걸로 봐서 그날은 내가 늦게 일어난 날이었다...

엄마와 공부를 끝내고 학교를 가려고 하는데...

내 운동화가 없다...

 

그때 우리가 신던 운동화는 진돌이라는 이름의 범표 운동화였는데...

나는 그 운동화를 참 좋아했다..

우선 진돌이라는 이름이 참 좋았다...

나랑 같은 씨라는게 괜히 좋았던 것..^^

 

그래서...

나 혼자 넌 진진돌이야..’하며 좋아했던 기억도 있다. 웃음이 나오는 장면...^^;;

사소한 것에 의미를 갖다붙이며 좋아라 하는 것은...

아마도 어릴때부터의 습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가끔씩 운동화에 그려진 진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 그림을...

마냥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렇게, 오빠 운동화도 내 운동화도 범표 운동화였다...

그때는 내가 뚱뚱해서 덩치가 컸고, 키도 얼축 비슷하고, 발도 비슷해서...

오빠와 내 신발의 문수가 같았기에 내 신발이 없으면 오빠 신발을 신었어도 되었다...

그런데, 나는 죽어도 내 신발을 신고 싶었다.

왜냐~ 더 새것이었으니까~

 

그때 나의 못말리는 고집이 시작되었다...

그런 나의 고집때문에 엄마는 늘 내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야 엄마아빠도 못 꺽으시는 고집이 꺽일거라고...

말은 씨가 되는 법...

나는 막내 며느리였음에도 나는 시부모님을 돌아가실때까지 모셔야 했다...

 

어쨌거나.

나는 땡깡을 부리며 내 신발 내놓으라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랑 암만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빨리 학교가서 내 신발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정말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맞아도 시원찮았을 것 같다..-_-;;)

 

학교 시간은 다되어가고 애는 울고불고 난리고...

아빠는 그런 나를 달래시기 위해....

내가 아빠 차를 타고 학교 가는 것을 얼마나 바라는지 아셨던 아버지...

아빠 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신다고 어우르시기까지 하셨다..

 

나는 안다...

아빠가 자가용으로 학교에 데려다주시는 것은 꿈 속에서나 바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고...

특별하게 아이들이 비쳐지는 것을 싫으셨기 때문...

그랬기에 오빠와 나에게는 아빠 차를 학교 가보는 것이 꿈이기까지 했는데...

그런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 주신다고 하는데도 싫다했을 정도니...

 

사실 아빠가 차를 태워주신다는 말씀에 솔깃하여 그쯤에서 그만두고 싶었다...

그런데 한번 시작된 땡깡이다보니 그쯤 멈추는 것이 괜히 머쓱했던 나...

결국, 아빠에게 몇 차례 매를 맞고서야 오빠 신발을 신고 학교엘 갔다...-_-;;

 

나는 늘 끝내야 할 쯤에서 끝내질 못해...

때때로 그렇게 없는 매를 사서 맞곤 했다...-_-;;

 

내가 그래선지, 나는 땡깡피우는 아이들에겐 인내심이 없다..

우리 애리와 리예도 어리광을 받아준 적이 없다...

그런 콧소리 애교 부리는 애들도 싫고...^^;;

그런 의미에선 엄하고 쌀쌀맞은 엄마였다...

 

왼쪽: 엄마가 얼마나 극성이셨는지 나타나는 부분이다...^^;; 머리 고데시키고, 부츠까지 신기고...큭큭~ ^^;;

오른쪽: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고 따랐던 아빠의 막내 동생 근이 삼춘...

당시 대학생이었던 삼춘은.. 엄마가 없으시면 전축 틀어놓고 우리 세남매를 앉혀놓고는..

춤을 보여주곤 했었다...^^ 우린 그 시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우리 다섯 남매...

지금까지 크면서 아빠에게 맞은 아이는 나 하나다...

엄마에겐  맞어봤어도 아빠는 때리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다..

나는 평생 아빠가 화를 내시는 것조차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 아빠가 나에게 손을 올리셨다면, 내가 얼마나 고집을 부렸는지 안봐도 비됴다..

 

그런 아빠는 고등학교때 까지 나의 우상이셨다..

앙케이트를 하며 친구들이 멋진 가수나 영화배우들을 이상형이나 우상으로 적을때면...

나는 우리 아빠라고 한치의 주저함 없이 쓸 정도로...

내겐 그렇게도 멋진 아빠셨던게다...

 

그런 아빠 밑에서 자랐기에 나는 모든 아빠들이, 모든 남자들이 그런줄 알았다..

그래서 결혼해서 남편이 무섭게 화를 낼때 너무 놀랬던 것...

내 남편이 그렇게 버럭남일줄이야... 하하하~ ^^;;

 

아빠를 떠올리면 아이보리색 가디건에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지적인 분위기의 남자가 내겐 그리도 매력적으로 보여지는지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을 더해갈수록...

아빠가 내게 세뇌교육하시듯 누누히 강조하시던 많은 가르침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특히,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것, 약속을 지키는 것과 책임감을 엄하게 강조하셨기에...

내 삶의 가치관에는 그것들이 기본으로 자리한다...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밝게 웃으며 인사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내게 버릇없는 아이들로 비쳐진다...

 

그리고.

내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

잘못했을 때는 깨끗이 스스로 인정하는 것...

내가 그 모든 것을 다 잘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늘 그것들은 내 의식안에 깨어있음으로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러한 삶의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하기도 했지만...

내게 또한 많은 것을 얻게도 했다...

 

살아가면서 엄마와 아빠의 가르침이...

매 순간 내가 선택의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옳은 선택을 하게 하셨는지...

또한,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남탓으로 돌리지 않음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줄일 수 있었는지...

 

고집센 딸래미를 두시어 마음 고생도 많으셨을 두 분...

두 분의 가르침에 넘 감사를 드린다...

우리 엄마가 나의 엄마시고...

우리 아빠가 나의 아빠셨음은 내겐 축복이고 삶의 선물이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아빠가 내게 해주셨던 말씀을 떠올리듯이...

우리 애리와 리예도 살아가면서...

우리 엄마는..아빠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하며 떠올렸음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그런 엄마가 먼저 되어야겠지...

.

.

 

독서리뷰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올렸던...

어린 시절...

 

그렇게 내 영혼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주었던 책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은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듯...

나에게도 그렇게 그리워지는 어린시절이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유년시절의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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