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으로

옥떨메와 호박...

pumpkinn 2012. 9. 22. 22:56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나 별명 하나쯤 가졌었거나, 가지고 있을게다.

키도 작은데다 통통 (사실 통통보단 조금 뚱뚱~)하고..

3살때부터 안경을 썼던 나는 참 여러 별명을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점점 자라고 학년이 높아가면서..

나의 그 수많은 안경의 변천사와 함께 나의 별명도 그 역사를 함께했다...

 

땅꼬마: 어렸을 때 키가 하두 작아서.. (엄청 작았음. 1때 키 133cm)

돋보기: 유치원때부터 돋보기 안경을 씀

목사님: 눈이 4개여서...-_-;;

           (이건 중학교 때 야구선수 김시진이 붙여줌 와우~!! 특별하진 않지만 나름 재밌는 스토리 있음~ 큭큭~ ^^)

사감 선생: 안경쓴 모습이 못되보이는 것이 사감 선생같다고..

핑크 꽃돼지: 뚱뚱, 통통, 분홍색 옷을 입었던 어느날 내게 붙여진...

미쓰 덜렁: 하두 덤벙대구 내가 지나가는 자리는 그 곳에 있던 물건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대머리 독수리: 시험때면 머리를 하두 뽑아 가운데가 비었음..-_-;;

하하 아줌마: 하두 잘 웃어서..

지금은 빨강 머리 앤: 나의 빨강 머리때문..

          (그런데 나의 영세명이 안젤리카여서 우연히 잘 들어맞음)

 

이렇듯,  별로 마음에 안드는 별명들 일절인데...

그나마 위의 것들은 양반이다..

 

지금껏 나를 가장 슬프게했던 별명은 바로 메주였다...-_-;;

그것도 하필 나름 고고하고 도도하고 예쁘고 싶었던 여고생에게 붙여진 별명이었으니...

삶은 잔인했다.

 

그당시 나는 성당이 아닌 교회를 다녔더랬다.

대성교회를 다녔는데, 지금은 목회자 세습제로 문제로 말이 많은 요즘이지만...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했던 대성교회에서의 시간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오빠와 나는 한 살차이 연년생이었는데...

오빠는 교회 동생들을 가끔씩 집에 데려오곤 했다...

그러던지 말던지...’라고 말할 만큼 내가 온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교회에서 인기있는 남학생들이 오빠와 함께 놀러오면...

은근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내 방에 꽁꽁 숨어 밖에 나오질 않았다. 나와서 자연스럽게 같이 얘기를 해도 좋았을걸...

그때는 뭐 따지는 것도 많고 걸리는 것도 많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번은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그 친구들이 오빠 친구인척 학년 뱃지를 바꿔 달고 들어와서는...

엄마랑  함께 앉아 내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거 아닌가..?

사진을 보여주길 좋아하는 엄마는 오빠 친구들인줄 알고 어릴적 우리 사진들을 꺼내놓고는..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계시는거였다...

~ 증말~ 나는 경악을 했다...-_-;;

 

그런데 한번은 교회를 갔는데 그때 온 남자애 한명이 말을 건넨다...

 

해경아~ 너희 집에 메주가 13개더라~?”

~? 아닌데~ 11갠데~?

~ 너랑 네 동생까지~!!”

“&%#@@$##@@@” (아뜨~ 정말 욕나오는 순간~ -_-;;)

 

우리집 벽에는 메주가 매달려있었다..

장맛이 좋아야 한해가 잘된다며 엄마는 해마다 콩을 쑤셨고...

정성으로 메주를 쑤어 밧줄로 묶어서 방에다 매달아두셨다..

그렇게 해마다 메주를 쑤어 둥근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메달아놓으셨던게다..

 

그럴때마다 집에 진동하는 퀘퀘한 메주 냄새가 싫었지만...

인간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무언가..? 어떤 환경에도 적응을 한다는 것...

나는 곧 적응이 되었고, 엄마가 해마다 달아매놓으시는 메주가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노랗던 메주색이 점점 짙어지며 밤색을 띄게 되는 것...

그러다가 그 위에 곰팡이가 피는 것..

그러다가 그것이 된장이 되고.. 청국장이 되어가는 모습은 참 신기했던 것 같다..

 

내가 굳이 관심있어 바라보았던 건 아니지만...

누우면 자연스럽게 내 눈에 들어오는 메주들의 변해가는 모습들이 재밌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깊은 관심을 끌었던 건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겨우 친해졌는데...

크억~!! ~? 내가 메주같다고~?

 

차라리 어렸을 때 그런 소리를 들었으면, 그리 상처(?)가 되지 않았을께다~

여고시절엔 내가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정말 고고하고 도도하고 싶은 우리 아닌가...?

그랬던 나에게 메주라니~-_-;;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귀엽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도...

이쁘다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긴 하다..^^;;

 

심지어 엄마 말씀이 내가 태어났을 때 하두 못생겨서...

애기러 보러오신 어르신들이 빈말로라도 이쁘다는 소리를 못하시고...

똑똑하게 생겼네라고 하셨다는 말씀들을 하셨다는 이야기...

엄마의 시어머니는 내가 너무 못생겨서 너무 챙피하다고...

밖에 델고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는 이야기...

 

어쩌면 내가 외모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 공주병에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외모는 안따라주니 내공을 쌓자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물론 엄마도 내게 상처주려고 하셨던 말씀이 아니라...

그런데 크고나니 그때보단 낫다~” 라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하셨던 말씀이라...

우리 모두는 그 얘기가 나올때마다 그렇게 깔깔대고 웃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렇게 그 친구가 던진 그눔의 메주 13덕분에...

그때부터 나의 별명은 메주가 되었던게다...

 

그런데 그쯤에서 끝났음 얼마나 좋았을까..?

재수가 없으려니 마침 그때 학생 중앙이란 잡지에 옥떨메란 소설이 연재되고있었는데...

풀어쓰자면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는 뜻이었다...

메주도 열받아 죽겠는데,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라니~-_-;;

 

나의 의지와는 달리 걍 옥떨메로 업그레이드(?)가 되었던게다...-_-;;

친구들은 어찌나 나를 옥떨메라 부르며 좋아하는지... (못된~)

 

그러나...

~역시~ 인간은 적응력이 뛰어나다~

 

그렇게 싫던 별명이었는데...

떨메야~ “하며 한가득 정이 담긴 목소리로 친구들이 불러주는 그 닉이...

좋아지기 시작한게다...^^

나중엔 내 닉이 얼마나 좋은지... 내 별명이 너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는...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의 정겨운 닉...’...’ ^^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유학을 떠났다...

 

어느 날 수업 중 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수업 후 함께 반에서 공부를 하던 미국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닉이 뭐냐고..

메주를 영어로 어떻게 설명을 하나..?’

영어도 잘 안되는데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메주는 못생겨서 얻어진 별명이니 영어로펌킨정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펌킨이라고 했더니 웃겨죽는다고 뒤집어지는게 아닌가..? 우띠~-_-;;

 

그때부터 나는 ‘Pumpkin’이 되었다...

 

근데 재밌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 닉이 보통 마음에 드는게 아닌게다...^^

부르기도 좋고, 어감도 귀엽고, 깜찍(?)하고...

또 호박은 몸에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이쁜 모양새를 지니진 않았으나 푸근한 느낌이고...

친근감마저 느껴지는... 게다 영양도 가득..^^

내가 추구하는 삶과 참 닮아서 펌킨에서 내 정체성이 일치되는 느낌...^^

 

나는 늘 말해왔다..

지적이고 품위가 느껴지지만...

따뜻하고 푸근하고, 가득한 사랑이 느껴지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호박이 주는 느낌과 어울리는 이미진가 말이다...^^

 

그래서 난 펌킨이 좋다...

비록 한창 지적이고 고고하고 싶었던 여고시절 주어진 살짝 슬펐던 별명에서 이어진 것이긴 하나...

내 진짜 이름 해경보다 닉인 펌킨이 훨씬 더 나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너무나도 애착이 가는 닉이다...^^

내가 삶 속에 추구하는 그것이 닉에 온전히 그대로 묻어있으니...^^

 

호박은 애호박에서부터 늙은 호박까지 제 나름의 역할을 다한다...

호박은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다...^^

 

그것처럼 나도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어디서든 도움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필요한 영양을 가득 주는 호박...

그 어느 곳에서든 함께하며 푸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자기 역할에 충실한...

있으나마나한  계륵’같은 존재가 아닌, 없으면 빈자리가 느껴지며 그리워지는...

그런 아름다운 펌킨이고 싶다...

 

정말 펌킨다운 펌킨이고 싶다...^^

내가 얼마나 멋진 펌킨이 되느냐는 온전히 나의 몫인게다...^^

 

언젠가 나의 닉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쯤 하고 싶었다...^^

내가 왜 펌킨으로 불리길 좋아하는지...

내가 왜 이 닉을 이토록 사랑하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나의 자유주제 첫번째 이야기로 뽑았다...^^

.

.

오늘의 곡은 Bee Gees의 Holiday...

 

바로 그 시절...

내가 참으로 좋아했던 곡이다...

 

I started a joke...

Mexican Girl...

To love somebody,..등등...

밤을 새며 듣던 곡들...^^

 

오늘 비지스의 곡을 고른 것은 당연한 거겠지...^^

그때의 기억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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