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두려움과 살롬....

pumpkinn 2011. 5. 24. 10:22

 

 

 

두려움...

우리가 많이 느끼는 두려움은...

상실에서 오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시작된 이윤제 신부님의 주일 강론 말씀은..

요즘 나에게 너무나도 깊이 와닿는 강론이셨다..

 

바로 요즘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내가 갖고 있는 조그마한 것을 잃게될지도 모른다는..

아직까지 일어나진 않앗지만..

앞으로 생길지도 모르는 상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이런 많은 이들이 한번 쯤 겪게 되는 이런 일에 내가 연연해 한다는 것은..

내가 욕심이 많아졌거나, 약해졌거나.. 둘 중의 하나다...

지난 날...

이보더 더했을때도 변명 한마디 없이 웃으며 지나왔던 내가 아녔었나...

 

예수님은 왜 두려움이 없으셨을까..?

그것은 예수님은 죽음까지.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을 준비가 되어 있으셨기에..

이런 두려움이 없으셨다는 말씀...

 

그러게..

내가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 조그만 것도..

결국 하느님이 허락하셨기에 주어진 것 아녔던가...

 

이어진 말씀...

두려움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닐까요..?”

그러시면서 평화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어로 샬롬이라며..

그 어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 샬롬의 원 뜻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뜻이 있는데..

평화라는 뜻과 함께 하느님의 방문이라는 뜻도 있다는게다..

 

샬롬...

하느님의 방문....

그 뜻이 주는 느낌의 크기가 너무나도 강렬해서...

나는 너무 놀라왔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방문하셨을때..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평화를 느끼게 된다는 것..

 

바꿔 말하자면...

하느님의 부재가 바로 두려움의 상태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우리가 멀리 떨어져 나왔을 때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느님께서 멀어짐으로..

그 '멀어짐'은 공허감을 동반하고 두려움을 동반하며..

우리는 내적 죄값을 치루는 것이다...

스캇 팩 박사도 마리 요셉 수녀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참으로 의아스러운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반복해서 듣는다는 것..

 

이것은 하느님께서 책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알려주시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 물론 알고 있었다...

결코 모르지 않았다..

내가 현재 느끼는 삶의 모든 두려움은..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기에 내 영혼의 방황이었음을...

 

얼마 전 나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며 물으셨던 주님...

난 아직도 그 대답을 삶으로 보여드리지 못하고 있다...

눈은 맞추지 않고 그저 딴 곳을 바라보며 입으로만 외쳐댈 뿐...

 

오늘은 종일 성가를 들으며 일을 했다...

때때로 눈물도 콕콕 찍어대면서...

마음을 터치하는 은혜로운 성가를 들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이럴때만 찾아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래도 내가 아주 모른척했던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간간히 감사 기도도 드리지 않았느냐며 슬쩍 슬쩍 내 변명도 하면서...

 

그래선가...

오늘은 마음이 조금 덜 방황스러웠다...

덜 두려웠다..

 

꿈이 있는 자유의 임재...

내 마음의 기도와 꼭 같은 성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린다...

 

 

 

 

임재 - 꿈이 있는 자유...

 

 

 

겸손히 고개 숙여 내 마음 내려놓고 주님의 임재 앞에서..

아무런 숨김없이 나 가진 그대로 내 모습 그대로...

 

나의 가장 깊은 곳 그 곳에 불어오시는 주님의 임재 느낄 때...

비로서 알게되리 나 여기 이유를 그 의미를...

 

나의 헛된 바램과 부질한 근심 태우는 그분의 임재 느낄때..

나의 삶 변화되리 내 삶이 주님 안에 그 분은 내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