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in De Botton

[독서리뷰 4]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Essays in Love, 1993

pumpkinn 2011. 5. 12. 00:54

2011년 5월 9일

 

<from his facebook>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리뷰

리뷰에 앞서..

불안을 시작으로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를 지나 공항에서 일주일로 이어진 다음 내게 다가온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였다. 다른 책들에 이어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였다. 그의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때마다 나는 그에게 더욱 깊이 빠져들었으니...

물론 앞서 그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알랭이 어떤 감성을 지닌 사람인지, 어떤 사고를 지녔는지,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지 물론 느낄 수 있었으나 자신의 사랑에 대한 경험을 쓴 이을 읽고나니 그와 무척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글을 쓴다. 그래서 내게는 더 동질감이 느껴지고 공감을 느낀다. 그는 자신을 쓰기 위해 수많은 철학자들 사상가들 신화들 또는 화가들 작가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준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마치 지식만찬을 배불리 먹은 듯한, 아니 배터지게 먹은 듯한 그런 포만감까지 느껴진다. (그로 인해 가끔 겉멋에 빠져 들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대화중에 그들의 이름을 거들먹 거림으로 스스로 유식해진 듯한 느낌에 취하게되니..^^;;)

감히 내가 말을 할 수 있을까마는 그의 글을 읽으며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비슷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어쩌면 이렇게 느끼는데는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과는 새끼 발가락이 닮았다는 심경으로 굳이 뭐 하나라도 닮은 듯 갖다붙이고 싶은 무의식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코드가 맞는 작가는 또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나를 미치게 하고 들뜨게 하고 열광하게 하는 작가.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에게 더 깊이 빠지게 되고, 치히로에 나오는 먹는 귀신 처럼 More and more를 외치며 그의 책을 마구 마구 더 많이 자꾸 더 읽고 싶어지는게다.

이렇듯 그는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고 깊이 알고 싶은 작가였다. 말콤 글래드웰처럼 광범위한 분야를 초월하여 넘나드는 그의 깊은 지식과 함께 그의 삶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작가로서도 알고 싶었고 사람으로서도 알고 싶어지는 그런 작가.

어쨌건, 서론이 길었지만,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당연히 우리가 하는 것은 그의 책을 읽는 것 아닌가..? 그 당연한 결과로 나는 그의 책을 자꾸만 집어들게 되는 것이다.

 

리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는내내, 내 머릿속의 클로이는 쥴리 델피로 대체되어있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이의 이미지가 여성스러우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한 고집스러움도 느껴지고 또한 개구장이 같은 모습이 어찌 그리 영화 Before Sunrise / Before Sunset 에 나온 Julie Delpy와 그리도 닮았는지.. 지적인 분위기와 백치미를 동시에 지닌 투명하고 순수한 해맑은 미소를 지닌 그녀.. 딱 쥴리 델피가 아니겠나.. 내가 영화에서 느낀 바로 그녀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 올려져 있던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도 쥴리 델피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그런 영향을 끼친 것도 같았다. 그래선지 책을 읽으면서 더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영화 Before Sunrise/ Before Sunset 이야기를 마구 하구 싶어진다. 내게 너무나도 깊고 긴 여운을 남겨준 영화. 참자~!!)

역자 정영묵의 말대로 이렇게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는 러브  스토리라는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겠다고 달려든 알랭의 용기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남의 스토리가 아닌 나의 스토리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다. 이 책이 그의 처녀작이란 것도 내게는 또 하나의 다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읽으면서 기가 막혔다. 어떻게 자신의 사랑의 감정과 그녀의 사랑의 감정을 주관적인 시선이 아니라 마치 남을 관찰하듯 그렇게 예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게 표현을 해냈는지.. 그리고 감정의 흐름과 변화의 흐름을 그렇게 마치 그표현이 아니면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단어로 명확하게 짚어내며 그려놓았는지, 한 마디로 ..’이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나는 그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그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지, 또 화가 났을 때, 생각을 할때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가 카펫에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가 어떤 사랑을 하고, 또한 사랑을 잃었을때 그는 어떤 느낌을 갖게되는지 등등을 알게됨으로 나는 마치 그를 현실에서 잘 아는 누군가처럼 느껴지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남편보다 알랭을 더 잘 알고있는 듯한 그런 느낌..어흑~ ^^;;)

그는 내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가졌다. 그는 지적이면서 윗트가 있고 그만의 시니컬한 위트에는 예리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냉철한 통찰이 묻어있다. 그런가하면 그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감성의 소유자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 그는 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이고 긍정적이다. 어떻게 그렇게 한 사람 안에 많은  재능이 부여될 수 있는건지. 그런 점에서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어쨌든 그의 눈을 통해 비쳐지는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하찮고 무의미한 것조차 일단 그의 레이다 망에 잡히면 금방 생명력을 얻게되고 그것의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우리는 그것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인양 아주 특별한 것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내가 의아스러운 것은 어떻게 그렇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열정과 감성이 동시에 한 사람 안에 공존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선지 그의 날카로운 통렬한 시니컬함에서조차 그의 따뜻함이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다. 모든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탁월한 표현력으로 그만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알랭 드 보통. 그를 아는 사람은 그를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넘어선 마력을 지닌 것 같다.

어느 날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그의 옆에  앉게 되는 그런 행운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 그런 대박 행운이 내게 다가온다면 과연 나는 한 마디 건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니면 여행 내내 싸인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 속에 갈등하다 급기야는 귀찮게 하지 말자라는 배려를 가장한 용기 없음을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될까..?

혼자 상상 속의 상상을 하며 그려보는 것. 잠시지만 내겐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나로 인한 속상함과 그의 옆에 앉았음으로 인한 행복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어쨌든, 수 많은 사랑 고백서를 보아왔지만, 자칫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어쩌고 저쩌고하는 진부할 수 있는 러브 스토리를 이렇게 만남의 순간부터 이렇게 리얼한 두근거림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고백서는 처음 읽어본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참 잘 알기도 하고 전혀 모르기도 한다. 가끔은 내 안에 느껴지는 감정의 모습이 어떤건지 몰라 표현을 제대로 해낼줄 모르는 나를 떠올리고 보면, 그의 이러한 섬세한 감정 변화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이 부럽디 부럽지 않알 수가 없었다.

알랭이 클로이에게 차이고 자살을 결심하고 그 음침한 베이스워터 로드의 작은 호텔방에 누워 고통을 호소하다가, 갑자기 그 고통을 겪으면서 무한히 지혜로워진(P247)’ 알랭이 클로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장면은 완전 압권이었다.

나는 라일락색과 녹색으로 꾸며진 호텔 방에 누워서 나 자신의 미덕과 위대함을 느끼며 흐뭇해했다. 나는 클로이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모든 것 때문에 클로이를 동정했다. 다 안다는 듯이 우울한 표정으로 싱긋 웃으며 사람들이 가는 길을 지켜보고 있는 무한한 지혜로운 존재로서나는 너무나도 온전히 알랭을 느꼈다. 스스로 어떻게 이렇게 온전히 한 사람을 그대로 그존재로서 그느낌을 온전히 내것으로 받아들이며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의아해 하면서.. 

이책은 모두 273 페이지로 이루어져있다. 255페이지쯤 이르자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클로이는 돌아오지 않은 것일까..? 왠지는 모르지만 꼭 클로이가 후회를 하고 알랭 곁으로 돌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알랭의 반응이 궁금하긴 하지만, 도저히 끝이 알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마지막 페이지부터 읽어버릴까..? 하다가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를 얼마나 외쳐댔는지 허벅지를 꼬집어댈 수 밖에 없었다. 내참 남의 사랑에 왜 내가 이 난리 부르쓰인지..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알랭이 비교 분석해준 성숙한 사랑미성숙한 사랑부분은 나에게 나였지만 몰랐던나의 새로운면을 보여주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성숙한사랑을 했다고 생각을 했다. 겉으로 드러났던 표면적인 부분은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알랭의 표현을 빌리자면, 겉으로는 성숙한 사랑으로 비쳐졌을지는 모르나 내면적으로는 미성숙한 사랑을 했던 나였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죽었던 것이었다. 죽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상징적인 죽음. 그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기 위해 나는 죽음보다 더 차갑고 슬픈 고통을 겪어내야 했는지.

대체 내가 쓴 글이 리뷰인지 알랭 찬양론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좀 더 오랜 시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이번에 내 손에 들려있는 책도 역시 알랭 드 보통의 저서이니 말이다.

 

리뷰를 마치며..

이 책이 알랭 드 보통의 처녀작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처녀작이 스무서너살즈음해서 쓰여졌다는 사실은 역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랬구나.

이 책이 약간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가지시는 독자들은 그 점 역시 젊은 패기 때문인 것으로 너그럽게 보아주시기를, 저자를 대신해서 저자가 전혀 부탁한 바 없지만 부탁드린다. (P277)

한 사람의 책을 여러권 읽다보면 말투나 표현법이 살짝 닮아지는데, 역자야 오죽하겠나. 이 부분을 읽다가 웃음이 빵 터졌다. 무척 알랭 드 보통틱한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정영묵씨의 역본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신명나게 읽지도 못했을 것이란 나의 생각에 이의를 다는 사람을 아마도 없을 것이다. ^^

그런데 알랭은 클로이와의 은밀한 관계 속에 벌어지는 이야기까지 다 썼는데, 과연 그는 클로이에게 허락을 받았을까..? 이것은 1993년에 쓰여진 처녀작이고,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1997년에 쓰여진 책이다. (아래 목록 참조) 그럼, ‘프루스트에 올려진 클로이의 사진은..? 그럼 그 책을 쓸때까지 알랭은 그녀를 못잊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후에 다시 만난것일까..? ~~ 별개 다 궁금해졌다. 근데 증말 궁금하다. 그랬을까..?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 1993)

·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1994)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Kiss & Tell, 1995)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How Marcel Proust can Change Your Life, 1997)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 2000)

·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2002)

·         불안 (Status Anxiety, 2004)

·         행복의 건축 (The Architecture of Happiness, 2006)

·         일과 기쁨과 슬픔 (The Pleasure and Sorrow of Work, 2009)

·         공항에서 일주일을: 히드로 다이어리 (A Week at the Airport, 2009)

 

근데 왜 리뷰를 끝내고 싶지 않은거지..? 무언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아직 다 쏟아내지 못한 듯한 그래서 성이 안차는 그런 느낌.. 그래도 이쯤에서 그만 마쳐야 할 것 같다.. 아쉬움은 남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다가.. – 초서

P7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만나게 될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지 못할까?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고통스러운 갈망을 해소해줄 존재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일까? 우리의 기도는 절대로 응답받을 수 없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참한 순환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에 하나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 우리가 그리던 왕자나 고주를 만나게 해준다면, 그 만남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논리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 운명의 징표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 첫 문장부터 나의 온 관심과 호기심을 훔쳐가는 알랭.. 그러게 우리가 그런 운명을 믿는다면 용서받지 못하는 것일까..? 사회적 시선으로 볼때, 그것이 용서받지 못할 수도 용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바램을 가진 자의 상황에 따라서..


P8 내 왼쪽의 승객은 해드폰을 벗고 앞쪽 주머니에 든 안전지침 카드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어쩌면 그 모습이 약간 병적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카드에는 비행기 사고가 이상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육지나 바다에 편안하고 차분하게 내리는 승객들, 하이힐을 벗어든 여자들, 능숙하게 구명 조끼에 바람을 넣는 아이들, 멀쩡한 동체, 기적적으로 불이 붙지 않은 연료.

>> 역시 이 사소한 안전지침 챡자도 알래으이 예리한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또 다시 나를 들뜸으로 몰아가는 알랭.. ^^


P10 “미안해요, 인사도 못 했네요, 나는 틀로이에요.” 그녀는 약간 형식적으로 팔걸이 위로 손을 내밀었다. 이어서 서로의 신상명세를 주고받았다. 클로이는 전시회에 참석하느라 파리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소호에서 패션 잡지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 지 1년이 되었다., 왕립 예술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요크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윌트셔로 이사했으며, 현재 (나이는 스물셋)는 이슬링턴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오우~!! 옆좌석에서 불안한 모습으로 꼼꼼하게 안전지표를 보고 있던 승객이 바로 알랭의 그녀 클로이였구나.. 이렇게 만나졌던거구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순진무구한 맑은 미소를 가진 그녀..


P10 도착하는 건 더 싫고요, 정말이지 나한테는 도착 불안 증세가 있나보요. 한참 밖에 나갔다 오면 내가 없는 동안 틀림없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내 친구들이 모두 모여 내가 밉살맞은 계짐애라고 만장일치로 합의를 봣다거나, 선인장이 죽었다거나.”

>> 하하하하~ ^^;; 넘 귀여운 클로이~ ^^ 비행기 안에서 처음 만난 남자에게 별 야그를 다 한다. 아마도 문화 차인지도.. ^^ 하긴 가끔씩 우리는 가까운 이에게보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음을 경험하곤 한다. 물론 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모를 사람이기 때문에서 오는 자유로움인지도 모르겠다.


P11 짐을 챙겨서 세관을 통과했을 때 나는 이미 클로이를 사랑하고 있었다.

>> 크억~!! ^^;;


P11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클로이를 만난 직후, 그녀를 필생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 도착하여 클로이와 나는 오후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몇 주 전에 런던 서부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함게 했으며, 가장 이상한 일이자 가장 자연스러운 일을 수행하듯 침대에서 저녁을 마무리했다.

>> 호호~ ^^


P12 나는 그녀에게서 내가 평생 서툴게 찾아다녔던 바로 그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의 웃음과 눈매, 유머 감각과 책을 고르는 취향, 불안과 지성이 내 이상에 기적적으로 들어맞았다.

>> 평생 찾아다녔던 바로 그녀를 만난 알랭. 내가 그를 만난 그 순간에 그 사람이 바로 내가 평생 찾아다니던 그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자 삶의 선물이 아닐까..


P12 클로이를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5었떤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딱 맞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회의적 태도로 운명의 문제를 생가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리 둘 다 그때까지 미신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클로이와 나는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끼던 것, 즉 우리가 서로에게로 운명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무수한 사실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을 손에 쥐게 되었다. 우리는 둘다 짝수 해의 같은 달 자정 무렵 (그녀는 오후 11 45, 나는 오전 오전 1 15)에 태어났다. 우리 둘 다 클라리넷을 분적이 있으며, 둘 다 학교 다닐 때 [한여름 밤의 꿈]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었따. (그녀는 헬레나 역이었고, 나는 테세우스의 시종 역이었다). 우리 둘 다 왼쪽 발가락에 커다란 점이 둘 있었고, 똑같은 뒤쪽 어금니에 충치가 있었다. 우리 둘 다 햇빛이 밝은 곳으로 나가면 재채기를 했으며, 캐첩 병에서 칼로 케첩을 긁어냈다. 심지어 우리의 책꼬이에는 똑같은 [안타 카레니나[ 엣 옥스포드 판이 있었다. 사소한 일들일지 모르지만, 이 정도면 신자들이 새로운 종교를 세우기에 충분한 근거가 아닐까?

>> 하하하~ 그럼그럼~ ^^

굳이 그들 틈에 끼어보자면, 내가 태어난 시각은 새벽 210분이고 클라리넷은 아녀도 풀룻을 배우겠다고 뛰어다녔던 적이 있으며, 학교 다닐 떄 [한 여름밤의 꿈] 공연에 참가한 적은 없지만 보러 간적은 있으며, 발가락 어딘가에 점이 있고, 어금니에 있는 충치를 몇 년전에 빼버렸고, 햇빛이 밝은 곳으로 나가면 재채기는 아니지만 나른한 졸음이 오고 ^^;;,  케첩 병에서 칼로 케첩을 긁어내진 않지만, 딸기잼은 칼로 긁어내며, 안나 카레니나 옛 옥스퍼드 판은 없지만, 7가지 습관 양장판은 있다. 이만하면 나도 조금 닮았노라고 억지부리며그들 틈에 끼어들만 하지 않나..? 하하하하~ ^^;;


P13 우리는 사건들에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서사적 논리를 부여했다. 클로이와 나는 우리가 비행기에서 만난 것을 아프로디테의 계획으로 신화화했다.

>> 하하하하~ ^^;; 잘나셨습니다~ ^^


P14 나중에 클로이가 한 말에 의하면, 그녀는 원래 10 30분 에어프랑스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 호텔 방을 나오려는데 가방에 들었던 샴푸 병이 새는 바람에 가방을 다시 싸느라고 귀중한 10분을 낭비했다는 것이다.

>> 운명이란 이렇게 사소함에서부터 연결되어지는 것 같다.. 샴푸 병이 쏟아지지 않았으면 그녀는 에어 프랑스를 타고 떠났을테고 그렇다면 알랭과의 운명적인 사랑의 만남은 결코 이뤄지지 않았을테니..


P15 우리 둘 다 클럽 클래스(비즈니스 클래스에 해당)로 여행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이코노미 클래스에도 191개의 좌석이 있었다.클로이는 15A 좌석을 배정받았고, 나는 순전히 우연으로 15B 좌석을 배정받았다. 클로이와 내가 옆자리에 앉을 이론적 확률은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될 확률은 계산할 수 없다고 해도)36290분의 220, 다시 계산을 해보면 164995분의 1이라고 할 수 있다.

>> 큭큭~ 클로이가 알랭에게 차지하는 그 의미와 소중함이 얼마나 큰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렇게도 클로이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녔고 만나질 수 밖에 없는운명적인 만남이었음을 보여주는 알랭...^^


P15 그러나 물론 이것은 파리와 런던 사이에 비행기가 한대뿐이었을 경우에 우리가 옆자리에 앉을 확률이다. 실제로는 여섯 편이 있었고, 우리 둘 다 이 여섯 편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하나를 골랐다. 따라서 방금 말한 확률에 앞서 말했던 6분위 1을 다시 곱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클로이와 내가 12월의 어느 아침 영국 해협을 날아가는 브리티시 항공 보잉 767기에서 만날 최종 확률이 나오는데, 그 수치는 989727분의 1이다.

>> 푸하하하하하~ ^^;; 정말 돌아가시겠다..^^ 역쉬~ 그다~!! ^^


P16 그래도 우리는 만났다. 이 계싼은 우리에게 이성적 주장들을 납득시키기는커녕,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된 것에 대한 신비적 해석을 뒷받침해주었을 뿐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엄청나게 작은데도 결국 일어났다면, 운명론적 설명에 호소를 한다고 해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 ^^


P16 나는 동전을 던졌을 때 왜 앞 또는 뒤가 나왔는지 설명해달라고 신에게 매달리지는 않는다. 그 확률이 2분의 1이기 때문이다.

>> 하하하하하하하~ ^^;; 까르르르륵~ ^^;;


P16 그러나 그것이 클로이와 내가 옆자리에 앚을 확률처럼 작은 경우일 때, 989.727분의 1이 확률일 때, 적어도 사랑 내부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을 운명 이외의 다른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우리의 삶을 바꾸어버린 만남의 확률이 그렇게 작았던 것을 아무런 미신 없이 받아들이려면 대단히 냉철한 지성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하늘에서 (3만 피트 상공에서) 운명의 줄들을 잡아당기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밖데..

>> 삶안에서 만나지는 소중한 인연에는 확률로 따질 수 없는 운명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함을 믿는 우리. 그 모습이 참 닮았다. (이렇게라도 한 다리 끼고 싶은 나..^^;;)


P17 사랑 내부의 관점에서는 삶의 우연적 성격을 목적성이라는 베일 뒤로 감춘다. 구원의 연인이 만나는 일이 객관적으로는 우연이고 따라서 가능성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천천히 펼쳐지는 두루마리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 그래야 운명적이고 싶은 우리의 아름다운 조각 맞춤에 근사한 뒷배경이 만들어지는것 아닌가..? ^^


P18 낭만적 운명론은 클로이와 내가 그런 생각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클로이가 내 삶에서 하게 되 역할을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녀의 눈이고, 그녀가 파스타에서 물기를 빼고, 머리를 빗고, 전화 대화를 끝내는 모습인데.

 

P18 나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떠 ㄴ주어진 사람을 사랑할 운명과 혼통한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클로이가 필연이라고 새각하는 오류였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우리의 사랑 이야기의 발단을 운명론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증명해준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했다는 것, 우리가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결국 우연일 뿐이라고, 989.727분의 1의 확률일 뿐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 동시에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절대적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즉 그녀에 대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 이렇게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확률적인 만남이기에 굳이 운명이란 보이지 않는 힘까지 끌어들이는 우리는. 바로 그 극적인 확률은 우리 사랑이 끝나는 날엔 바로 그저 우연이라는 교차로에서 스쳐 지나가는 교차점의 역할밖에 지니지 못하는 삶의 모순성, 느낌의 모순서으 의미 부여의 모순성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역시 날카로운 알랭의 해부..


P19사람들을 꿰뚫어보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이다. 타인의 흠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그러나 그것이 또 얼마나 무익한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꿰뚫어보는 일을 중단하고자 하는 순간적인 의지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설혹 그 과정에서 눈이 약간 먼다고 하더라도? (중략)

모든 갑작스러운 사랑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을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면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과장 덕분에 우리는 습관이 된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에게라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믿음을 가지게 된 어떤 사람에게 우리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글쎄,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분석해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다. 어느 순간 내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뿐이니까..


P20 그녀의 짐수레는 오른쪽으로만 방향을 틀려고했다. 내 짐수레에는 독자적인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 짐수레를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절했다. 짐수레가 아무리 고집스러워도 의리는 지켜야 한다면서.

 >> 하하하하~ 독자적인 의지가 없는 알랭의 짐수레.. 고집스러워도 의리는 지켜야 한다는 클로이.. 하하하하~ 그 남자의 그 여자~ ^^


P21 잠시 후 나는 클로이가 나를 향해서 걸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고통스럽고 약간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는데, 나중에 나는 그것이 그녀의 평상시 표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까르르르륵~^^;; 넘 솔직한 알랭~ ^^


P21 그녀는 언제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눈에는 곧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될 사람처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왠지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안심시켜주고 싶은 아니면 내 손이라도 잡으라고 내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 이제야 알겠다. 왜 내겐 그 시원찮은 강아지 녀석 한 마리 쫓아 다니지 않아는지를.. 이렇게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손을 잡아주고 싶은 위로의 마음이 들도록 보호본능을 자극하기는 커녕, 늘 웃음 가득하고 활달 명랑하니, 아프리카에 혼자 갖다놔도 용감 씩씩하게 잘 지낼 것 같은 내 모습이었으니 어디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나.. 에잇~!!


P22 클로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두 손이 베이지색 양모 외투의 허리띠를 만지작거리는 것(집게 손가락 아래쪽에 점이 두 개 있었다)을 지캬보았으며,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마치 너무나 자명한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깨달았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사랑스러웠다.

>> 무슨 남자가 이렇게 섬세할 수가 있는거지..? 그녀의불안해 보이는 모습이라던가, 울것 같은 표정이라던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던가.,.까지는 오케이.. 그런데 손가락 아래쪽에 점이 두개 있는 것 까지 관찰하는 알랭은 마치 클로이를 현미경 밑에 두고 보는 듯한 그런 섬세함과 완벽함과 예리함마저 느껴진다.


P22 클로이의 휴가 이야기는 지루했다. 그러나 지루함은 이제 흠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일상 대화의 세속적 논리에 따라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모든 일화를 쫓아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고 (있잖아요, 싱상한 올리브를 주는 가게가 있었어요...),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그녀의 모든 농담을, 실마리를 놓치곤 하는 모든 사유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완전히 감정을 이입하기 위하여 나 자신에게 몰두하는 것은 포기할 준비, 그녀의 모든 기억을 차곡차곡 분류 정리할 준비, 그녀의 유년의 역사가가 될 준비, 그녀의 모든 사랑과 공포를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과 몸 안에 흘러다녔을 모든 것이 곧 매혹으로 다가왔다.

>> 어흑~!! 돌아가시겠다~!!

바로 사랑의 빠진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나. 상대가 무엇을 하든 나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아무리 지루해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사랑은 이렇게 우리를 내가 평소라면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모든 준비를 완료시켜 놓는 것 같다. 늘 그래왔던 마냥..

알랭이 사랑에 빠진 모습은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과 참으로 많이도 닮았다..


P23 정말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을 용납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워하면서 어쩌면 그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끝도 없이 이상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P25 “가방 좀 검사해도 되겠습니가?” 세관 직원이 묻고는 덧붙인다. “신고할 것이 있습니까? 술이나 담배나 무기나....” 나는 오스카 와일드처럼 천재성을 발휘하여 내 사랑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 까르르르륵~ 웃다가 뒤로 넘어갔다~ ^^;;

왠지 곧 헤어지게 될 클로이와 앞으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절절한 불안감이 느껴진다.. 이 보상받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절망감, 절절함.. (아직까지는..^^)


P25일행이십니까?” 세관 직원이 물었다. 뻔뻔스럽다고 생각할까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클로이에게는 먼저 가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 절박한 알랭..^^


P25 사랑은 독특한 속도로 우리의 요구를 다시 만들어낸다. 내가 세관 통과의식에 짜증을 낸다는 것은,. 몇 시간 전만 해도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클로이가 이미 나의 갈망의 대상이라는 지위에 올랐다는 의미였다. 나는 밖에서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 11 30분에 내인생에 들어왔을 뿐인 누군가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느낌.

 >> 읽으면서도 웃음이 났고, 초서를 하면서 또 웃음이 났다. ^^ 겨우 아침 11 30분에 인생에 끼어들어온 누군가 때문에 죽을 것 같은 느낌.. ^^ 알랭의 이 기막힌 표현에 나는 그만 뻑~ 갔다. 겨우 얼마전 까지는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던 존재로 인해 죽을 것 같은 느낌.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암튼, 읽으면서 넘 웃겨서 눈물이 났다. 그 느낌을 너무 잘 알기에, 그 느낌을 너무나도 적확하고 명료한 필체로 느낌을 전달하는 알랭이 넘 웃겨서.. ^^

이렇게 차분하고 조용해보이는 남자에게 이런 불같은 열정과 정열적인 감정이 숨어있다는 사실이 더 재밌다.


P25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묘한 상실감, 슬픔을 느꼈다. 이것이 정말 사랑일까? 겨우 아침을 함께 보낸 주제에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낭만적 미망과 의미론적 우둔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게 된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최초의 꿈틀거림은 필연적으로 무지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냐 단순한 망상아니ㅑ? 시간(이 또한 그 나름으로 거짓말을 하지만)이 아니라면 누가 그 답을 말해줄 수 있을까?


P27 킹스 크로스 근처에 있는 사무실의 설계도를 완성하는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 오잉? 무슨 설계도? 설계도 하나..? 알랭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보아야겠다..


P28 내가 이만큼 부지런히 그녀의 전화번호도 불러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숫자들은 내 기억(클로이의 아랫입술의 이미지를 되풀이해 떠올리는 것이 더 보람 있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에서완전히 증발해버렸던 것이다. 그 번호가 뭐였더라..

>> 하하하하하~ 알랭이 클로이의 번호를 기억해내느라 기억나는 번호로 모든 확률로 번호를 읊어대는 부분에서 완전 죽음이었다. 어쩜 이렇지..? ^^

그의 글을 보면 차갑고 지적이고 예리하고 분석이고 해학적인 가운데 치밀하다. 그런 그가 겨우 얼마 전 자신의 인생에 끼어 들어온 클로이의 아랫 입술의 이미지만 떠올리느라 잠시 마음을 놓은 사이 기억에서 사라졎버린 클로이의 전화 번호를 떠올리느라 끙끙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재밌는지. ^^ 클로이는 바로 이런 알랭의 모습에 사랑에 빠져버린 건 아닐까..? 암튼 넘 웃겨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


P29 탐색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  장의사에도 틀로이라는 이름의 직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러다 마침내 이름을 둘러싼 혼란이 사라지고,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얼굴이 시뻘개져서 전화를 끊었다. 삶이 아니라 죽음에 다가갔으니.

>> ~ 넘 웃겨서 웃다가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까페에서 읽고 있는 지금, 옆에서 책 읽고 있던 학생에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참으려니, 더 웃기고 눈물이 정신없이 흘렀다. ~ 정말 나를 미치게하는 알랭~ ^^


P30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클로이가 며칠 뒤에 전화를 걸어왔을 때 나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오히려 준비했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양말을 널다가 기습을 당했다. 나는 침실에 있는 전화롤 달려갔다. 내 목소리에는 긴장과 분노가 담겨 있었는데, 만일 종이에 쓰는 글이었다면 나는 그것을 능숙하게 지워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글쓰기가 유혹이 된다.

 

>> 그렇다. 전화기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문 도구가 된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지 않는다. 전화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전화를 기다리는 것도 싫다. 안그래도 행동하기보다는 차라리 기다림을 택하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준비를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준비한 말을 제대로 못한 알랭.. ^^ 하하하하~ ^^

양말을 널다 기습당한 알랭.. 알랭이 빨래도 하나부다..^^ 그 사실도 재밌다..^^

암튼. 어떻게 그녀를 만난 그 순간부터 중간 과정을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섬세하게 기억하는지, 그만큼 그녀에 대한 사랑이 컸기 때문이겠지. 그만큼 소중한 클로이였기 떄문이겠지. 클로이는 얼마나 행복한 여인일까.. 그녀의 순진한 맑은 미소가 떠올랐다...^^


P31 그녀의 행동에는 우리의 동행을 예술과 건축에 대해서 지적인 토론을 할 기회 이상의 것으로 여긴다는 암시가 전혀 없었다. 순수와 공모의 중간에 걸려 있는 클로이의 모든 행동에는 나를 미치게 만드는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문장의 끄트머리에서, 그녀의 웃음의 입꼬리에서 유혹의 흔적을 찾아낸 것 같은데, 맞나? 아니면 나의 욕망이 순수의 얼굴에 투사된 것뿐일까?

>> 이렇게 고민을 하니 알랭의 머리가 벗겨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 다행스럽게도 알랭에게는 대머리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잘 어울리니, 그로서는 완전 복권 당첨된 셈이다.. ^^


P31 나는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안토넬로의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드소에 대해서 있지도 않은 뜨거운 애정을 꾸며냈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컨버스에 몰두해 있었다. 미술관의 소음과 북적거림은 까맣에 잊고 있었다. 나는 몇 걸음 뒤에서 클로이를 따라가며 그림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그림을 보는 그녀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 내가 알랭이라도 그랬을 것 같아..^^

사랑하는 그녀가 앞에 있는데 어떻게 다른게 눈에 들어올 수 있는거지..? 내가 속해 있는 그 우주를 꽉 채워 버린 사랑인데. 그녀만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걸까..?


P33 욕망 떄문에 나는 실마리들을 악착같이 쫓는 사냥=꾼이 되었다. 모든 것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낭만적 편집증 환자가 되었다. 그러나 비록 구애의 의식들 떄문에 안달을 하고 있기는 했지마는, 나는 그런 수수께끼 때문에 클로이가 독특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곧바로 우리에게입맞춤을 허락하는 사람 (우리는 곧 배은망덕해진다)이나 절대 우리에게 입맞춤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곧 그 사람을 잊어버리다)이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양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상대의 마음에 안겨 줄 줄 아는 사람.

>> 역시 머리가 좋아야 해..^^


P36그러니까 내 말은, 왜 배기 가스 냄새를 풍기고 다니고 섹스 때문에 그 애를 이용하는 그런 놈팡이하고 어울리느냐는 거에요. 만일 그 애도 섹스 때문에 그 작자를 이용하고 싶어한다면 그건 좋다 이거에요,. 하지만 그 작자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발기 지속 시간이 길지도 못해요.” “끔찍한 이야기로군요.” 나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속으로는 길다는 것이 얼마나 긴 시간을 의미할까 생가하며 마음을 졸였다.

>> 하하하하하~ ^^ 여행 중 비행기에서  만난 후 사실상 처음 만나는 두 남녀가 주고받는 이야기 주제가 참으로 거시기하기도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은밀한 부분에서 마음을 졸이는 알랭의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 실전에서의 자신을 상상하는 듯.. ^^

외국 문화기에 가능한 상황인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마음 졸이는 알랭이 넘 웃겼다. 하하하~ ^^


P37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는 모호한 신호들과 마주쳤을 떄, 이런 분명한 태도의 결여을 수줍음 탓으로 돌리는 것보다 더 좋은 설명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도 바라기는 하지만, 너무 수줍어서 그렇다고 말을 못 한다. 이렇게 자신의 유혹의 대상이 수줍어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절대 실망하지 않는다.

P40 “포도주 좀 드실래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글쎄요, 포도주 좋아하세요?” 그녀가 되물었다.

드시겠다면 난 상관없어요.”

좋으실 대로 하세요,. 원하시는 대료.”

나는 아무 쪽이나 좋은데요.”

나도 찬성이에요.”

그럼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나는 안 마시는 것이 좋겠어요,.”

그래요, 나도 별로 마시고 싶지 않군요.”

그럼 포도주는 마시지 말기로 하죠.”

좋습니다. 그럼 물만 마시죠.”

>> 하하하~ ^^ 그들의 대화가 너무 재밌다.

그들을 보니 왜려 한국인들이 더 직선적이고 저돌적이지 않나 생각도 들고.. ^^

의외다..^^


P41 클로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나의 유일한 생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내가 그녀와 공유할 수 없는 하나의 생각이었다.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이씅면 그것은 상대가 따문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 하하하하하~ 맞다~!! 절대 공감~!! ^^


P42 나는 그 순간에는 나의 말의 변비를 자작의 다변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내 말의 변비. 자작의 다변. 어ㄸ껗게 이런 표현이 가능한거지..? 그냥 씹힘없이 흡수되는 그의 표현... 예술이자 마술이다..


P42 나는 클로이에 대해서 좀더 알아내야 했다. 어떤 거짓 자아를 채택할지 알아야 진짜 자아을 버리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 하하하하하~ ^^


P45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던 그녀의 이상적인 남자에 대한 그림을 계속 재조정해야 했다. 게다가 그녀는 똑같은 점을 두고 한번은 칭찬을 했다가 조금 후에는 비난을 했기 떄문에, 나는 미친 듯이 계속 고쳐대야 했다.

>> ~ 눈물나~ 까르르르르륵~!! 그 정신없는 클로이를 사랑하는 댓가(?) 계속 미치고 있는 알랭이 너무나도 웃겨서 돌아가겠다. 알랭이 미치는게 아니라 내가 미칠지경이다. 하하하하하~ 까르르르륵~^^;;


P46 그녀의 관점이 복잡했기 때문에 나는 분열증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 메인 코스때는 지뢰가 박힌 습지를 걷는 기분이었다.

>> ^^;;


P47나는 초콜렛을 정말 좋아해요. 어떠세요? 클로이는 이렇게 묻더니 덧붙였다. “나는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전에 어떤 남자를 사귄 적이 있는데, 아까 말하던 로버트라는 사람 말이에요. 나는 그 사람하고는 한번도 편안했던 적이 없어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죠, 그러다 어느 날 모든 것이 분명해졌어요,. 그 사람이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았던 거에요, 아니 그냥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싫어했어요,. 초콜릿 바를 앞에 갖다놓아도 손도 내밀지 않을 사람이었죠,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 점이 분명해지자, 짐작하시겠지만,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도 분명해졌죠.”

>> 알랭을 미치게 할만한 참으로 독특한 그녀가 아닐 수 없다. 큭큭~ ^^ 굳이 그녀를 이해하려고 들자면, 초콜릿은 브라질 표현으로 ‘Ultima gota’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참으로 독특한 그녀가 아닐 수 없다. ^^

참고로, 나도 초콜렛을 참 좋아한다. (그녀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 가방에는 초콜렛이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이만하면 나도 알랭이 좋아할 만한 자격(?)을 갖춘 것 아닌감..?? 하하하~ ^^


P48 그러나 나는 거짓말을 했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초콜릿에 알레르기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초콜릿에 대한 사랑이 클로이와 맺어지는 데 결정적 기준이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직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은 곧 나의 모든 개인적 특징들을 버리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의 진짜 자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완벽성과 화해 불가능한 갈등관계에 이씅며, 따라서 무가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그래 맞어. 절대 공감해..


 

P48 클로이가 그것 때문에 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러나 묘하게도 그녀는 내가 초콜릿을 먹겠다고 강하게 주장하자 실망감을 드러낼 뿐이었다. 아마 캐러멜의 열등한 맛을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쩄든 그녀는 곧바로 초콜릿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결국에는 초콜릿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 하하하하~ ^^ 참으로 복잡미묘한 클로이. ^^ 확실한 연구대상이다..^^ 이런가 하면 저렇고, 저런가 하면 이렇고, 이러니 알랭이 미칠만도 했다. 여러가지로,. 그녀의 단순한 듯 순진한 듯 하면서도 이런 복잡미묘한 매력에 알랭이 여러가지 의미로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P48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 맞다.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우연이다. 우리는 우연이란 예정치 않은 그 무엇에 로맨틱한 운명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P49 가끔 여자들이 나를 유혹하려고 어떤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내가 그런 행동에 반응을 보인 적은 거의 없었다.

>> 우앙~!! 멋져~!!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 여자나 남자는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고, 멋져보이지 않을 수 없다.


P49 나는 아주 주변적인 작은 것들에 끌리는 경향이 있었다. 유혹하는 여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면에 재세우지 못하는 것들. 나는 코 밑에 약간 솜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 (...) 내 욕망은 그녀의 따뜻한 웃음, 긴 금발, 지적인 대화보다도 그 솜털이 있는 곳에 집중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 푸하하하하~!! 정말 홛당한 알랭이다~ ^^ 내가 알랭에게 이리도 끌리는 이유를 알겠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독특함..

그나저나 알랭은 어쩌자고 하고많은 사랑스런 부분 중에 하필이면 코밑의 솜털을 사랑하는 것일까..? 큭큭~ ^^


P49 그러나 내가 다름 아닌 코 밑의 솜털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다시 그 여자를 만났을 떄, 누가 전기분해 요법을 권했는지 솜털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 욕망도 (그녀의 다른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솜털을 따라서 사라져버렸다.

>> 하하하하하하~ 아고 배야~ 나 정말 미치겠어~ 하하하하~ ^^


P51 나는 그런 성숙한 태도를 보여준 나 자신을 대견해하며, 그녀의 양 볼에 입을 맞추고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아파트를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스스로 대견해하는 알랭~ 하하하~ ^^


P54 그녀는 늘 하던 일을 하듯 무심하게 내 바지 단추를 풀었다. 마치 우편함을 열거나 이불 홑청을 가는 사람처럼.

>> 푸하하하하하~!! 우아아아~^^;; 미치겠다 알랭 때문에~ ^^;; 무심한 듯 스쳐지나가듯 던지는 시니컬함이란...


P56 Ekfktj 침실에서는 연인들의 생각의 소리를 삼켜버리는 숨소리, “나는 정열에 사로잡혀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는 메시지를 확인해주는 숨소리만 들린다. 나는 키스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둘러싼 공식적 신화이다.

>> 나는 키스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하하하~ ^^ 그래 맞다. 성립되는 등식이다~ 하하하~ ^^ 그의 유쾌함이란~ ^^


P62 그녀의 거짓말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의 징후였다. 그녀는 낭만적인 것을 비웃는 데에, 감상적인 것을 배격하는 데에,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고 거리를 두는 데에 어떤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정반대였다. 이상주의적이고, 몽상적이고, 베풀려고 하고, 입으로는 죽을 쑤는 것(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이라고 배격하는 모든 것에 깊은 애착을 느꼈다.

>> 보통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표현하는 것 조차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여자를 상처받게 하는데, 알랭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뿐만 아닌, 그 뒤에 숨어있는 속내까지 헤아리고 느끼고 이해를 해주니, 클로이는 얼마나 행복한 여자인가.. 몹시 부럽구 싶었다. ~


P62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어쩐 일인지 보답을 받을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나는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집중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이 언제나 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며, 큐피드의 화살을 맞기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 그래 알랭이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나도 그렇다. 우리(?)가 그런 것은 어쩜 그것이 주는 사랑을 하는 마음이 깊은 사람들여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것이 편하고, 그것이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알랭의 표현대로 화살을 맞기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P63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

>> 하하하하~ 어찌 이렇게 비유를~ ^^;;


P65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곰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 전적으로 공감 동감이다.. 아마도 내가 짝사랑을 선호(?)했던 것은 바로 이런 자유로운 이유때문이 아녔을까..


P67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준다면, 우리는 우리자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애초에 사랑으로 몰고 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 글쎄.. 갸우뚱 거려진다..


P67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기를 갈망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꿈이 공상의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아마도 나도 마르크스주의자인가보다. 이제 알겠다. 가만보면 나역시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서 나의 사랑이 보답받기를 갈망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나의 꿈이 공상의 영역에 남아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의 정리되지 않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어찌 이리 명확히 짚어주었는지. 그래서 그런 이들은 나홀로 사랑을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고통스럽지만 자유로우니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죽을 것 같은 사랑의 고통보다는 자유로움의 구속을 더 못 견디는지도 모르겠다.


P70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같은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태의 핵심에 그 요구가 놓여 있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 보이고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감정적으로 통합되어보이고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71 몽테뉴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는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는 것을 미친 듯이 쫓아가는 욕망밖에 없다.” 아나톨 프랑스 역시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은 관례적이지 않다는 말로 같은 입장을 보여주었다, 스탕달은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것이라는 두려움을 기초로 해서만 생길 수 잇다고 생각했다. 드니 드 루주몽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가장 넘기 힘든 장애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이 정열을 강하게 불태우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따르면 연인들은 누군가를 향한 갈망과 그런 갈망을 없애고자 하는 바람 사이을 왔다갔다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사랑에 관한 현란한 말들의 향연 속에 빠져있다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P72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이 있다. 사랑이 보답을 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P72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P73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익숙해지기 오래 전부터 이미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 아마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인가 보다..^^


P74 작은 일에서 활기를 찾았다. 아주 다양한 문제들에 합의를 보았으며,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이 똑같은 경우가 무척 많았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분명한 분리의 흔적은 없지만 우리가 과거 어느 때인가 하나의 몸이었다가 갈라진 둘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예의바르지 못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다.

>> ^^


P77 입 안이 말랐다. 목덜미가 이상하게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클로이가 어떻게 그렇게 심하게 절충적인 신발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클로이가 어떤 여자인지에 대한 내 생각,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나의 아리스토파네스적인 확신에는 이 구두에 대한 열광은 들어 있지 않앗다. 우리 관계의 이런 예기치 않은 전환에 상처를 입고 혼란을 느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나의 인생으로 걸어들어와 [여학생과 수녀들이 좋아하는 수수하고 낮은 검은 구두를 신고] 나를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이런 구두에 끌릴 수 있을까?” 그러나 겉으로는 그냥 이렇게 묻기만 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아무런 속뜻 없는 말투로] “영수증은 보관하고 있어?”

>> 까르르륵~!! ^^;; 참으로 복잡한 알랭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가 좋아라 산 구두를 가지고 그녀의 정체성, 자신의 사랑의 정체성까지 흔들리며 이리 깊이 고민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웃겼다. 하긴 코밑 솜털과 사랑에 빠지는 알랭이고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암튼 참으로 독특하고 또 독특한 알랭이다. ^^


P79 우리가 첫눈에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구두나 문학에 관한 취향의 충돌로부터 자유롭다. 연주되지 않은 심포니가 음정이 틀린 바이올린이나 늦게 들어오는 플루트로부터 자유로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공상이 실제 연주되는 순간, 의식 속을 떠나니던 천사 같은 존재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자기 나름의 정신적이고 육체적으로 역사를 가진 물질적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 그렇다.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면 결코 첫눈에 사랑을 빠지는 따위는 없었을테니.. 하지만 그것도 빠져있는 동안만의 한계적인 자유로움 아닐까..? 결국 삶은 모두 닮은 꼴이니.. 앞뒤 순서가 살짝 바뀌었을지는 모르나 결국 우리는 밟아야 할 과정은 모두 밟고 지나가야 하는게 우리의 이라는 관문 아니던가..


P80 그녀와 매일매일을 산다는 것은 외국 땅의 새로운 풍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자신의 전통과 역사로부터의 이탈로 인한 혼란 때문에 이따금식 외국 혐오에 젖어드는 것과 비슷했다.

>> 너무나도 적절한 표현..^^ 어쩌면 문화가 다른 외국 땅에서 사는 것보다 더 힘든건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것은 감정이 함께 하고 느낌이 함께 하고 삶이 함께 하는 것이니 문화가 달라 이것저것 안 통하지만 그래도 집에 들어오면 내 식대로 편히 쉴수 있는 쉼터가 있는 그것보다 더 어려운게 아닌가 싶다..


P80 위협적인 차이는 중요한 점 [국적, , 계급, 직업]에서 쌓여가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의견이라는 사소한 점에서 쌓여갔다.

>> 바로 그거다. 그러기에, 너무나도 사소한 것에서 쌓여가기에 더욱 풀기가 쉽지 않는 것 같다.


P87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마음대로 살게 해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한다면 그것은 보통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살짝 보수적인 성향의 알랭이 느껴진다. 어쨌든, 알랭을 통해 루도비꼬가 느꼈을 그 감정이 느껴진다. 내가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자유롭게 두는 그것은 그에게 무관심으로 느껴졌던, 그래서 내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던 감정 상태..

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대로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면, 상대가 자유롭고 싶고 구속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유로운 방법으로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이 진실된 사랑 아닐까..?


P89 우리의 말다툼에는 사랑과 자유주의의 역설이 담겨 있었다. 클로이의 구두가 어쨌든 간에 그것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 (...) 나의 유일한 변명은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 그녀는 내 이상형이라는 것 구두만 빼면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결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 정말 골때리게 웃겨죽겠는 알랭이다. 구두만 빼면 이상형... 구두까지 포함해서 이상형으로 받아주기가 그리도 힘든걸까..? 나는 내가 스타일리쉬한 여성도 아니면서 초라하게 옷을 입는 남자는 참 싫었다. 영화배우처럼 멋지게 입지는 않아도 깔꼼하고 단정하게 그리고 학구적인 분위기로 입는 스타일을 참 좋아했다. 하지만 구두나 운동화까지 그렇게 예민하게 보았던 것 같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남편도 내 첫사랑도 옷을 아주 스타일있게 입는 편이라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암튼. 구두에 목숨거는 알랭이 웃겨죽겠다. ^^


P89 마음이 좀 넓어지는 순간이면 우리는 낭만적 사랑이 기독교적 사랑과 비슷하다고 상상하곤 한다. 너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무비판적이고 너그러운 감정, 조건이 없고, 경계도 설정하지 않고, 구두까지도 모두 사모하는 사랑.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랑. 그러나 연인들에게 말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기독교적인 사랑은 침실로의 이행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적 사랑의 메시지는 특정한 경우보다는 보편적 경우에 어울린다. 모든 여자에 대한 모든 남자의 사랑, 서로 코 고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두 이웃 간의 사랑에 어울리는 것이다.

>>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여간에~ ^^;; 사실 그것도 어디 쉬운 일인가..? 내가 볼 때는 이웃도 개인도 아니요. 혼자 있을 때 상상 속에 가능한 사랑인 것 같다. 금희님 말씀대로 혼자 있을 때는 이웃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가슴에 다 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관계 속에서는 이리도 힘드니 말이다.


P94 자유라는 이름을 얻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거나 자유를 얻으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의지에 반하여 어떤 구성원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막을 때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는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 절대적 공감~!!


P95 나와 클로이의 관계가 공포정치 수준에 이르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녀와 내가 사랑과 자유주의 사이의 선택에서 다른 관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드, 하물며 사랑의 정치인들에게서는 더욱더 찾아보기 어려운 재료를 넣어서 반죽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유머 감각이다.

>> ^___^


P96 클로이와 내가 우리의 차이 가운데 일부를 넘어설 수 있었다면 그것은 서로의 성격에서 발견되는 막다른 골목을 가지고 농담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클로이의 구두를 싫어하는 태도를 버릴 수 없었고, 그녀는 계속 그 구두를 좋아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내려가서 그 왼쪽 구드를 집어들고와 닦아야 했다]

>> 푸하하하하하~^^;; 알랭이 투덜대며 내려가 쳐박힌 구두를 찾아들고와서 닦는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나 웃긴지.. 하하하하~ ^^ 우리는 상상한다. 멋지거나 예쁜 영화배우들은 화장실도 안가는 것 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알랭과 클로이도 그렇게 우아하고 지적이기만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싸우면서 신발까지 집어던지기도 한다니 그게 넘 웃기다. 나도 신발을 던져가며 싸워보지 못했는데. ~ 클로이의 신발을 던질 수 있는 자유와 용기가 부럽다~ ^^;;

암튼, 그들도 이렇게 우리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다툼을 벌인다는 것이 무척 재밌게 느껴진다..^^ 하긴, 그가 유명작가라는 것만 빼면 우리랑 똑같은 사람아닌감~ ^^


P98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하나는 아름다움의 문제에 대해서 각기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들의 얼굴 풍경만큼이나 독창적이고 특색 있는 방식으로 매력에 관한 우리의 관념을 재규정한다.

>> 그렇다. 다른 사람은 결코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도 발견하는 마치 아름다움 탐험대처럼.. 우리는 그렇게 꼭꼭 숨어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P100 나는 우리가 함께 샤워를 할 때 비누가 그녀의 배를 따라 흘러내리다 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녀는 거울로 자신의 몸을 볼 때마다 뭔가 삐딱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 참으로 섬세한 알랭.. ^^


P100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라면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름다운 몸에는 조각가가 반드시 알아야 할 고정된 비율들이 있다면서, 아름다운 이탈리아 처녀의 몸을 600개의 단위로 나눈 뒤 부분과 부분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여 그 비율을 수학적으로 제시했다. 알베르티는 [조각론]에서 그 결과를 요약하면서, 아름다움은 모든 부분들의 조화이며, 그런 조화가 나타나는 대상에서는 모든 부분이 어떤 비율에 따라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무엇을 하나 보태거나 줄이거나 바꾸면 더 나빠질 뿐이라고 말했다.

>> 크억~!! 세상에~ -_-;; 몸을 600개로 나눠 그 조각 사이의 거리를 측정..? 내게는 경이롭게 느껴지기 보다는 살짝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녔나..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든다. 집착증세나 편집증세같은 증상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사람의 몸을 600개로 나눠 그 나뉜조각 사이의 거리를 두어 아름다운 몸인지 아닌지를 측정했을까..? 600개인지 599개인지, 또는 601개인지 제대루 나눴는지 세어보은 것만으로도 세월이 다 흘렀을 것 같은 느낌..^^;;


P100그러나 클로이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몸은 거의 모든 부분이 무엇을 하나 보태거나 줄이거나 바꾼다고 해도 자연이 이미 파괴해버린 것을 더 망칠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 하하하하~ 알랭이 그렇게 첫 눈에 반한 그 아름다운 클로이가 이토록 자신에게 자신이 없을 줄이야. 뭐 내가 그녀의 알몸을 봤어야 위로를 해주던지 말던지..^^;;


P101 눈의 언어는 말의 언어로 번역되는 것에 고집스럽게 저항한다.

>> 참 멋진 표현이다...


P101 나는 아름다움의 객관적 기준이라는 플라톤적 관념을 배격하고, 대신 미학적 판단은 결정 근거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나오는 견해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 절대적으로 공감 동감~!!


P102 클로이에 대한 나의 느낌을 더 정확하게 요약한 아름다움의 정의ㅡㄴ 스탕달이 제공해주었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 스탕달은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클로이의 얼굴이 내가 좋은 삶과 동일시하는 특질들을 암시했다. 그녀의 코에는 유머가 있었고, 주근깨는 순수를 이야기했고, 치아는 관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당돌한 태도를 암시했다. >> 그녀의 코에는 유머가 있었고코가 웃기게 생겼다는 뜻인가..? 주근깨는 순수를 이야기했고이건 이해가 가. 소녀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니.. 치아는 관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당돌한 태도를 암시했다’ – 이가 아무렇게나 지멋대로 낫다는 뜻인가..? 암튼, 알랭의 표현이 나의 장난끼 가득한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


P102나는 그녀의 두 앞니 사이의 틈을 이상적인 배열로부터의 불쾌한 일탈이 아니라, 심리적 미덕의 지표로 보았다.

>> 오우~ 너무나도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 묻어나는 표현 아닌가..^^


P103 나는 내가 플라톤주의자들보다 클로이를 아름답게 여긴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가장 흥미로운 얼굴은 대개 매력과 비뚤어짐 사이에서 동요한다. 완벽함에는 어던 압제가 있다. 심지어 어떤 싫증이 느껴진다.

>> 동감~!!


P103 어떤 빛에서나. 어느 때에나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미는 아슬아슬하게 추를 희롱한다. 자기 자신에게 모험을 건다. 비율의 수학적 규칙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고 모험에 나서서, 추로 미끄러질 수도 있는 바로 그 세밀한 곳들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듯이, 고전적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남자에게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 와우~!! 진정한 미는 아슬아슬하게 추를 희롱한다. 자기 자신에게 모헌을 건다. 비율의 수학적 규칙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않고 모험에 나서서 추로 미끄러질 수도 있는 바로 그 세밀한 곳들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오우~!! 어떻게 미와 추의 사이를 이렇듯 낭만적으로 농락하며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 어쨋든 아름다움에서 거리가 먼 나로서는 추로 미끌어질 수도 있는 바로 그 세밀한 곳들에서 매력을 발산할 경우의 수가 높은 나로서는 무척 희망적인 메세지가 아닐 수 없었다. ^^


P103 나의 상상력은 클로이의 치아 사이의 틈에서 노는 것을 즐겼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했다.

>> 우하하하하하~!! 누군가가 펌킨의 아름다움은 헝클어져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 재배치가 가능했다.” 라고 말하면 나는 기분이 좋아질까.. 나빠질까.. ? 하하하하~ 웃겨 돌아가시겠다~ ^^;; 이럴줄 알았음 내 치아도 좀 벌려놓을걸 그랬나..? ^^;; 한국에서는 앞치아가 벌어지면 복이 샌다가 치아교정으로 붙여놓기까지 하는데.. 넘 재밌는 알랭이야..암만 생각해두..^^


P104 그리스 조각상처럼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위험은 그 위태로움 때문에 보는 사람의 눈을 강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치아 사이의 틈으로부터 철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훌륭한 치열 교정 의사가 필요한 것 아닐까? 보는 사람의 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면, 보는 사람이 시선을 서둘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어쩌면 그것 역시 클로이의 매력의 한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에 관한 주관적 이론은 기분 좋게도 관찰자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어버리므로.

>> 알랭은 주체와 객체를 너무나도 당당하면서도 합당한 이유로 자연스럽게 바꾸어버리는 마술 같은 힘을 지녔다. ‘아름다움에 관한 주관적 이론은 기분 좋게도 관찰자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어버리므로  넘 멋지지 않나..^^


P107 그녀는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문제를 말하면 진짜로 문제가 생겨.”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제가 언어에서 생겨날 수 있듯이, 좋은 것들이 언어의 의해서 파괴될 수 있었다.

>> 그면에서는 나와 클로이와 전적으로 똑같다. 나도 말로 표현되어저 나오는 것이 생명력을 얻는다는 것을 굳게 또 절대적으로 믿는다. 그래서 말로 표현되는 것이서 파괴가 있을 수 있다면, 말로 표현되는 거세서 꿈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나쁜 일을 입으로 표현하면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날 것을 믿기에 두려움에 잡히곤 한다. 가끔씩 병적으로 애리와 리예에게 예를 들어 말하더라도 나쁜 예는 들지 말라고 세뇌교육을 시키다시피 한다.

암튼, 말이 씨앗된다 라는 옛 조상님들의 말씀을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지난 날의 삶을 통해 체험으로 느꼈기에..


P108 클로이가 감정적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너무 신중하여 그것을 낭만주의자의 닮아빠진 사회적 언어로 말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녀의 감정들이 나를 향하고 있었음에도 묘한 의미에서, 그 감정들은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P109 우리는 밤에 같은 침대에서 같은 책을 읽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각기 다른 데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결국 다른 책이었던 셈이다.

>> 와우에선 같은 책을 매달 한 두권씩 읽고 리뷰를 올린다. 그런데 넘 흥미로운 사실은 바로 알랭처럼 서로 다른 책을 읽은 듯한 그런 다른 감동을 가진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통해 우리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알게 되면 좀 더 자신의 성향을 알아가게 된다는 것. 재밌는 작업이다.


P110 사랑의 모든 언어는 과도한 사용으로 훼손되었다.

>> 뭔말인지 넘 잘알지..


P113 그녀는 자신이 피카딜리의 상점 진열장에서 흘린 암시에 내가 반응한 것을 기뻐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며칠 뒤에 스럭 내비쳤기 때문에 알게 되었지만] 그녀가 가리켰던 것은 빨간색이 아니라 파란색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창밖으로 몸을 던지려다가 그녀의 만류로 단념했으며, 나중에 영수증을 가지고 가서 바꾸었다]

>> 하하하~ ^^ 장난꾸러기 알랭~ ^^


P116 순간 나는 클로이의 팔꿈치 근처에 있던, 무료로 나오는 작은 마시멜로 접시를 보았다. 갑자기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기보다는 마시멜로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마시멜로가 어쨌기에 그것이 나의 클로이에 대한 감정과 갑자기 일치하게 되었는지.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말은 너무나도 남둉되어 닳고 닳아버린 사랑이라는 말과는 달리, 나의 마음 상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 같았다. 더 불가해한 일이지만, 내가 클로이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나는 너를 마시멜로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가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라고 대답했다.

>> 우하하하~! 정말 돌아가시겠다~ ^^ 그 알랭의 그 클로이~ 하긴 마시멜로하다보다 더 달콤한 말이 있을까? ~ 참 사탕하다~ ^^;; 꿀하다~ 뭐 이런~?? ^^;;

알랭이 클로이에게 왜 그토록 빠져드는지 알 것 같았다. 참 귀여우면서 순수하고 개구장이면서 독특한, 때때로 알 수 없는 부조화적인 매력을 가진 그녀. 알랭의 현미경 같은 더듬이가 그걸 놓칠리 없었다.


P119 세이프웨이 한가운데에서 클로이가 계산대에 서서 식료품을 비닐 봉투에 요령 있게 꾸려넣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때 다시 그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이런 사소한 동작에서도 매력을 느꼈다. 모든 것을 그녀가 완벽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하하하하~ ^^;; 이런 모습을 보면 알랭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성향을 가진 것 같다. 온전히 상대를 위해 존재하려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면에서 알랭은 무척  바보틱한 순수한 낭만파다. 나처럼. ^^


P119 차로 돌아가면서 나는 클로이가 식료품 사는 일을 아주 귀엽게 처리하더라고 칭찬해주었다. “멍청한 소리 말고 트렁크나 열어, 열쇠는 내 가방 안에 있어.” 클로이가 대꾸했다.

>> 우하하하하~! ^^ 꼭 루도비꼬와 나의 대화 분위기 같아서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쪽은 로맨틱하고 싶은데 한쪽은 가차없이 짤라버리는.. 하하하하~ ^^


P120 슈퍼마켓 계산대 위에서 움직이는 여자의 손에서 매력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클로이의 몸짓들은 빙산의 일각처럼 그 밑에 옪은 것을 가리켰다. 그것의 진정한 가치,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 그치..?


P120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 그래 맞아~!! 넘 정확한 표현이야~!!


P121 나는 클로이를 향한 내 뜨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해보려고 했다. 영화, , 정치와 관련하여 많은 공통점을 발견한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세속적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 하하하~ ^^ 넘 귀여운 알랭~ ^^ 하긴 이 글을 쓴 때가 23살였음을 감안하면 그는 심각할 수 밖에 없음이 느껴진다.. ^^


P121 물론 클로이가 식료품을 싸는 모습 자체에 사랑할 만한 면들이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내가 그녀의 몸짓, 세이프웨이에서 우리와 함께 줄을 섰던 사람들에게는 달리 해석되었을 수도 있는 몸지세 내가 부여하기로 결정한 어떤 것일 뿐이다.

>> 그게 사랑이니까. 어떠한 사소한 것에도 특별한 의미가 부여 되어지는 것, 사랑...


P123 그녀의 얼굴 역시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세이프웨이나 우체국에도 가면서] 일부러 애써 평범한 인간인 척하지만, 섬세하고 거룩한 생각들로 가득 찬 천사의 얼굴.

>> ~ 우짜문 좋아~ 완전히 클로이 콩깍지가 씌였어도 아주 지대루 씌여진 알랭~ ^^


P124 눈에 보이는 것은 몸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홀린 연인은 영혼 역시 그 껍질과 똑같기를 바라게 된다. 몸이 거기에 어울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를, 살갗이 표현하는 것이 속에 든 본질이기를 바라게 된다.

>>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그려놓은 상상 속의 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P124저 끔찍한 요들송 좀 끌 수 없어?| 천사가 갑자기 말한다. “무슨 끔찍한 요들송?” “저 음악 말이야” “저건 바흐잖아.” “알아, 하지만 정신없잖아. [코스코폴리탄]에 집중할 수가 없단 말이야.”

>> 푸하하하~!! 아고 돌아가시겠다~ ^^;;


P125 오아시스 콤플렉스에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 야자나무, 그늘을 본다고 상상한다. 그런 믿음의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 그런 믿음에 대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다. 간절한 요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환각을 낳는다. 갈증은 물의 환각을 낳고, 사랑에 대한 요구는 왕자나 공주라는 확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오아시스 콤플렉스가 완전한 망상인 것만은 아니다. 사막에 있는 사람은 실제로 지평선에서 무엇인가를 본다. 다만 야자나무는 시들었고, 우물은 말랐고, 오아시스는 메뚜기로 뒤덮였을 뿐이다.

 

P126 나도 비슷한 망상의 피해자가 아닐까/ [신곡]을 쓰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앉아서 [코스모폴리탄]의 별점을 열심히 읽고 있는 여자와 한 방에 단둘이 있는 나는?

>> 으아아아악~!! 나 미쳐~!! 어쩌자고 알랭은 나를 이렇게 미치게 만드는건가~ ^^;; 신곡 쓰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앉아서 코스모폴리탄의 별점을 열심히 읽고 있는 클로이를 바라보고 있는 허탈한 표정의 알랭.. 상상만해도 넘 웃겨서 돌아가시겠다.. 하하하~ ^^


 

P127 철학자는 기대감으로 마음을 졸이면서 중얼거린다. “나는 아내를 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시각적 착각에 불과할 가능성도 잇지 않을까?

>> 큭큭~ ! ^^;; 철학자의 분석~ 아고 복잡해~ ^^;;


P128 서양의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에서 플라톤은 무지로부터 지식으로 나아가는 진보를 어두운 동굴로부터 밝은 햇빛으로 나아가는 영광스러운 여정에 비유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람들은 실재를 지각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동굴 벽에 비치는 사물의 그림자를 사물 자체로 착각하는 동굴 거주자들과 같다. 사람들은 힘든 노력을 기울인 다음에야 착각을 떨쳐버릴 수 있고, 그림자의 세계로부터 밝은 햇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곳에서는 마침내 사물이 진정한 자기 모습을 보인다. 모든 우화가 그렇듯이 이 이야기에도 교훈이 담겨 있다. 진리가 늘 착각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P129 프리드리히 니체는 선악의 피안에서 마침내 핵심을 움켜쥐고 이렇게 물었다. (...) 어떤 판단이 그릇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 판단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문제는 얼마나 삶을 발전시키느냐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가장 그릇된 판단들이... 우리에게 가장 불가결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릇된 판단들을 포기하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고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 절대 공감동감이다~!!


P130 연인들은 사랑 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 참 맞는 말이다..^^ 그래서 상처를 받아도 그래서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엉뚱한 맹세를 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P130 클로이에게 구피가 정말로 존재하느냐고 물었다면, 클로이와 그 코끼리의 관계는 완전히 박살이 났을 것이다. 이 재미있는 장난감이 실제로 너와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거야., 아니며 네가 그냥 지어낸 거야? 순간 연인과 그의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비슷하게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연인에게도 네 사랑으로 꽉 채워진 이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야., 아니면 네가 싱싱한 것에 불과하냐 하는 질문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 내가 볼때 우리가 사랑에 빠질때, 종종 우리는 현실 속의 실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닌 상상 속의 대상과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쩌면 내 경우에만 그런건지도 모르겠으나..)  그 실질적인 대상이 내 눈 앞에 있지만, 실상은 그 대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그려낸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 내가 그 대상을 현실적인 그 모습 그대로 보았다고 했을때 과연 우리는 진정 사랑에 빠질 수 있기나 한걸까..? 문득 자신이 없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그에게서 보고 (그것이 지극히 평범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완벽화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우리가 그런 모습을 그려내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 상대방이 잘났고 못났고, 훌륭하고 훌륭하지 않고를 떠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그에게서 기막힌 능력으로 찾아내는 우리, 그리고 우리는 사랑한다는 착각 속에 빠지는 것. 참으로 모순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P131 사람이 미망[사랑, 자신이 달걀이라는 믿음] 에 빠져서 살 수도 있지만, 그것을 보완해주는 것 [비슷한 미망에 빠져 있는 클로이와 같은 연인., 토스트 한 조각]을 찾아내면 모든 일이 잘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미망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다. 혼자서만 그것을 믿을 때,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못할 때만 해가 된다.

>> 그래 맞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가끔은 다른이의 시선으로 볼때는 착각 속의 삶이지만, 그 사람 본인에게는 진실된, 지극히 현실적인 삶일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기에 아니라고 해서 다른이에게조차 아닌 것이라고 강요하는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P132 나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클로이는 카밀레 차에 사각 설탕이 녹는 것을 지켜보면서 말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함께 살 수는 없어. 나는 혼자 살지 않으면 녹아버리는 사람이야. 내가 너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야. 너만을 원한다는 것. 나한테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운 거야. 그러니까 이것이 전체적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내 모습 가운데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줘. 안타깝지만 나는 가방을 든 여자로 남아야 할 것 같아.”

>> 나는 한국의 문화적 관습상, 결혼 전 누구와 살아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상조차 안해본 그림이지만, 설사 내가 외국인으로 태어나 그런 문화 속에 살았다 한들 그에 대한 나의 감정도에 따라 그의 제안에 ‘Yes 또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을까..? 그것은 분명한 그 결과에 따른 책임감이 따르고, 나 스스로의 삶에 당당하게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정임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한 클로이, 그녀의 자유가 용기있게 느껴졌다. 궁금하다.


P133 그러나 그녀의 독립에 대한 크나큰 열망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떨어뜨리고 가는 일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칫솔이나 구두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조각들이었다.

>> 사랑을 하면 서로 닮아가는 우리들. 우리는 우리의 조각을 하나, , 떨어뜨리게 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의 흔적이 그곳에 남게 되니까..

표현이 너무나도 이뻐서 초서에 옮겼다.


P133 그것은 언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클로이는 나에게 그녀의 독특한 말투를 남겨두었다. (...)_ 이어서 우리 사이에 습관들이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클로이처럼 침실에서는 완전히 불을 끄게 되었고, 그녀는 나처럼 신문을 접게 되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할 때에는 소파 주위를 뱅뱅 돌게 되었으며, 그녀는 카펫 위에 놉는 것에 맛을 들였다.

>> 알랭은 침실에서 불을 완전히 끄지 않는구나.. 알랭은 카펫 위에 웁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클로이는 생각을 할 때 소파 주위를 뱅뱅 도는구나. 참 재밌는 모습이었다. 아주 예쁜 커플이었다. 나는 어떤 버릇을 가졌을까..? 다른 사람 눈에 띄어지는 버릇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P134 우리 몸은 이제 상대가 지켜본다거나 판단한다고 느끼지 않았다. 클로이는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콧구멍으로 손을 넣어쏙, 이어 장애물을 굴려 공을 만든 다음 바짝 마르고 단단해지면 그것을 한입에 삼켰다.

>> 으읔~!! 콧구멍의 장애물을 손가락으로 제거하고 굴려 공을 만든것 까진 좋았는데 그것을 말려서 입에 넣다니.. 으으으윽~ 난 손가락으로 튕겨 던져 버린다고 쓰여질 줄 알았다. 돌아가시겠다. 하하하~ ^^


P134 우리는 상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런 믿음이 없을 때 생기는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유혹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P135 내가 그녀를 티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경리부의 로이가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그녀가 머리를 빗을 때 내는 독특한 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클로이는 그녀의 시민적 신분에 속해 있고, 티지는 일반적인 사회적 영역을 넘어, 더 은밀하고 독특한 사랑의 정치를 넘어서, 좀더 유동적이고 좀더 독특한 사랑의 우리에 놓여 있었다.

>>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이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이기를 원한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대상과 내가 특별한 사이임을 증명해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너는 모르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대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게다. 나만 알고 있는 상대방의 특별한 무엇. 또는 우리만 알고 있는 우리의 특별한 무엇. 그것이 사랑이란 것이 더 이뻐보이도록 예쁜 악세서리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핑크빛 리본같은..


P135 우리는 둘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험담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는 대부분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끼리 우리의 거짓말에 바람을 쐬어주고 우리가 수행한 사회적 예의를 속죄할 수 있었다.

>> 하하하~ ^^


P138 우리는 종종 뒷공론에 탐닉했다. 함께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몰라도, 함께 싫어하는 것을 욕하는 친밀함에 비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사실 우리가 지구에 남은 단 두 명의 품위 있는 인간들이라는 결론을 내릴 지경에 이르렀다.

 >> 까르르르륵~ 하하하하~ ^^;; 그 품위 있는 두 남녀를 보며 즐거워하는 품위있는 호박~ ^^


P138 경험이란 무엇인가? 예의바른 일상을 부수고 짧은 시간 동안 고양된 감수성으로 새로움, 위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주는 것들을 목격하는 것이다. 공유된 경험이라는 기초 위에서 친밀성은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저 이따금씩 식사를 함게 하면서 생긴 우정은 결코 여행이나 대학에서 형성된 우정의 깊이를 따라갈 수 없다.

>> 그렇지. 그렇기에 우리는 절절한 그리움 속에 가장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 이들을 그리워하는게지.


P142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그리고 어쩌면 균형이 잡히지 않은] 사랑을 느낀다. 고아에겐 고아라고 일깨워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 이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나의 느낌을 이렇게 꼭 집어주면서 바로 그 느낌을 그 모습 그대로 표현해줄 때 우리는 상대방이 갑자기 우러러보이고 내가 이해받았다는 느낌에 한없이 따뜻한 기분이 되곤 한다. 내가 선생님과 와우에서 느낀 느낌은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 열광했던 여러가지 이유 중의 하나..


P143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 그렇다..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닌게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나로 부터 사랑 받는 그 사람은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 아닌가..? 누군가에게 내가 그를 사랑함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 그것처럼 벅차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서로에게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주는 것.. 후욱~ 가슴이 멎는 듯하다..


P143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인간만이 연체동물이나 지렁이와는 달리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P143 자신이 온전하다는 느낌을 얻으려면, 근처에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 때로는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P144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에서 우리를 볼 수 있는 신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차지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누가 나를 본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나를 보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신이나 짝이라면 더욱 좋다. 우리가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 자꾸 잊어버리는 [우리도 그들에 대해서 똑같이 잊어버린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다가, 마음속에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새겨두고 있는 사람의 품에서, 시야에서 사라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를 발견한다는 것은 위로가 되는 일이 아닐까?

P144 의미론적으로 볼 때 사랑과 관심이 거의 맞바꾸어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 관심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스스로 더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이다.


P145 클로이는 나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것, 나에게 수줍음이 많으며 전화로 이야기하기를 꺼린다는 것, 하룻밤에 여덟 시간은 자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는 것.

>> 요 부분만큼은 어찌그리 나랑 똑같은지.. 새끼발가락이 닮았다던 소설속의 슬픈 바보 남편처럼, 나도 그렇게 억지를 부려보고 있다. 하지만 요 세가지는 너무나도 닮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___^ 흐뭇~!!


P145 다른 사람들은 구태여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성격의 측면들을 지적하는 데에는 연인의 친밀성이 필요하다. 클로이는 내가 방어적이라거나, 비판적이라거나, 아니면 더 실감나게 신경이 곤두선 너절한 놈이라거나 굳어버린 고깃국물처럼 역겹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때도 있었다.

>> 그렇게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클로이와, 그 모든 것을 듣는 (좋든 싫든) 성숙한 인격을 가진 알랭이 부러웠다. 과연 나는 남편에게 그렇게 역겹다거나 너절한 놈이라거나 하는 표현을 쓸 수가 있는가..? (물론 속으론 그보다 더한 말도 했다..^^;;) 그렇게 자신들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을 정직하게 분노하며 내뱉을 수 있는 그들의 정직함이 부러웠고 내뱉을 수 있는 용기, 들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부러웠다.

내가 아마 그랬음 소박 맞은지 이미 오래였을게다. 물론 소박을 맞는게 두려운건 아니다. 단지 언쟁을 벌이는게 피곤할 따름이지.


P146 다른 사람들과 누리는 행복은 두 가지 종류의 과잉에 의해 제한다는 것 같다. 하나는 질식이고 또 하나는 외로움이다. 사랑의 경계에는 두 가지 해체가 있는 것 같다. 클로이는 늘 전자가 더 큰 위험이라고 생각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해. 클로이처럼. 외로움보다 더 위험한 것은 질식이야..


P146~P147 클로이의 첫 여행이야기를 읽고..

>> 넘 웃겼다. 너무나도 실감나게 표현해준 알랭. 클로이의 심리적 갈등과 공황이 너무나도 내 모습 같아서 깔깔 웃음이 터졌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것이다. 또 어쩜 그럴 것임을 이미 너무 잘 알기에 그런 여행을 시도조차 안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동경으로 남아있다. 너무 머지 않은 날에 동경으로 남아있는 이 여행을 현실 속에서 만날 것이다.

P147 클로이가 이해를 받으며 산다는 느낌이 드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위치에 이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녀가 하는 수많은 말과 행동으로부터 아주 느리게 그녀의 삶의 큰 주제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캐내기 시작했다.

>> 알랭의 클로이에 대한 사랑은 나를 감동시킨다.. 섬세한 알랭.. 그 섬세한 알랭이 그녀에게 쏟는 정성과 사랑과 관심은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는 부분이다.


P147 어느 날 아침 내 아파트에서 아침을 먹는데, 클로이가 전날 밤에 심하게 아파서 자다가 일어나 약국까지 차를 몰고 갔다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여 화부터 냈다.

>> 이럴 때 알랭은 화를 내는구나. 내 현실로 바꿔놓고 생각을 해보았다. 남편이었음 어땠을까..? 알랭처럼 깨우지 않았닥 화를 냈을까..? 아니면 곤히 자는데 깨웠다고 화를 냈을까..? 글쎄.. 별로 상상해보고 싶지 않다. ..사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테니까..-_-;;


 P149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아메바의 외벽은 탄력이 있어서 환경에 적응한다. 그렇다고 아메바에게 크기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자기 규정적인 형태가 없을 뿐이다. 부조리한 사람은 나에게서 나의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변을 끌어낼 것이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 정말 그렇지..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다 다르게 본다. 내가 그들 앞에서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그들이 내게서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있는 것인지. 알랭의 아메바 표현은 참으로 적절한 비유였다.


P150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보통 소리 없는 과정임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반응을 통해서 그것을 채낵하라고 암시할 뿐이다. 은밀하게 우리에게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P151 결국 그녀는 철학자가 믿는 딱 그만큼 엉청한 사람이 된 느낌을 받았다.

>>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내가 느꼈던 순진한 미소 속에 느껴지는 백치미의 인상은 책을 다섯권이나 썼던 런던 철학자의 작품이던건가부다. 히궁.. 그런 그녀가 알랭을 만났으니.. 삶이 그녀에게 준 축복이자 선물인게다. 복두 많어.. 히궁..


P152~153 클로이의 인격을 아메바에 비유한 부분을 읽고...

>> 둘의 대하과 참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클로에바라는 별명도 너무 재밌었다. 이 둘은 깊은 부분까지, 아주 작고 섬세한 부분까지 서로의 대화 주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서로의 느낌과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할 수 있다는 것도.. 그들의 성숙함이 부러웠다.


P154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격의 어떤 요소들만을 집어낼 수밖ㅆ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은 바비큐 꼬치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꼬치에 꽂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재밌는 꼬치놀이가 될 것 같다. ^^


P155 내가 클로이의 복잡함에 주의를 기울였다고는 하지만, 큰 부분을 생략하는 죄를 지었을 것이다. 감정이입이 부족해서 또는 성숙하지 못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가볍게 넘겨버린 것이다. 나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그러나 생략 가운데서도 가장 큰 생략을 저지르는 죄를 지었다. 그것은 내가 아웃사이더로서 클로이의 삶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내적인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지., 절대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일 뿐이었으며, 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가 존재할 수박에 없었다. 그 불가피한 거리는 우리가 결국 혼자 죽을 수박에 없다는 생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P157 우리 스스로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점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 대체로 우리가 이해받고 싶어하는 점들에 대해서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인 것이다. 클로에바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우리의 복잡성이 요구하는 대로 팽창할 만한 공간이 주어졌다는 뜻이었다.

>> 클로에바와 내가 함께 있다는 것은... ‘클로에바라고 부르는 알랭의 목소리에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정이 묻어있어 내 가슴까지 따뜻해져왔다. 클로에바= 클로이 + 아메바.. 참 잘어울리기도 하다. 안젤리카 + 아메바 = 안젤리께바.. 별로 맘에 아든다.. 그럼 펌킨은..? 펌킨 + 아메바 = 펌켄바.. 또는 펌키네바.. .. 그런데로 괜찮다.. ^^


P160 나도 그녀를 약간은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하하하하~ 어쩔수 없는 알랭~ ^^ 만약 앨리스가 이 책을 읽었다면 이 구절 부분을 읽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몹시도 궁금해졌다.. ^^


 P161 우리가 우리 짝과 얼마나 행복하든, 그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쫒는 일은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데도 왜 그것이 구속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짝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기울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왜 그것을 아쉬워할까?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늘 갈망의 요구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 그렇구나~!! 알랭의 예리하고 해부학적인 관찰은 사랑에 대한 나름의 궁금증을 편하게 해소시켜주었다.


P161 나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운이 닿지 않아 우리가 제대로 알 기회도 얻지 못했던 사람과 마주치면 우리는 낭만적인 노스텔지어에 젖는다. 다른 사랑의 이야기의 가능성과 마주치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가능한 수많은 삶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가 슬픔에 빠지는 것은 그 삶들을 다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택을 할 필요가 없는 시간, 모든 선택, [아무리 멋진 선택이라고 해도]에 따르는 불가피한 상실로 인한 아쉬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 옛날의 나라면 이러한 알랭의 생각에 분명 강하게 부정했을게다. 하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고 안하고를 떠나 지금은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P162 도시의 거리에서 나는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결국 나에게는 수수께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수백 명(수백만 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의 여자들을 종종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이 여자들을 볼 때 가끔 아쉬움에 가슴이 떨렸다.

>> 하하하하~ 열정도 좋은 알랭~ ^^


P162 그러면 이야기의 나머지를 알아내고 그 주인공에게 입을 맞출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곤 했다.

>> 우하하하하하~ 가슴이 찢어지기까지나~ 하하하하~ ^^ 알랭의 솔직함과 그 정직함이란~ 웃겨 돌아가시겠다~ ^^


P162 저녁 식사 후에 소파에서 앨리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내키지 않아서 그냥 꿈만 꾸고 말았다., 앨리스의 얼굴을 보니 내 속의 공허, 분명한 범위나 의미가 없는 공허가 떠올랐다. 어쩐 일인지 클로이에 대한 사랑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공허였다. 미지의 존재에는 거울이 달려 있어, 거기에 우리의 가장 깊은, 가장 표현할 수 없는 소망들이 모두 비친다. 미지의 존재란 방 건너편의 처음 보는 얼굴이 항상 이미 알고 있는 얼굴보다 신비하기 마련이라는 숙명적 명제와 다름없다.

P152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는 않는다. 갈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을 향할 때에는 무한정 뻗어 나갈 수가 없다.


P164 호화로운 호텔이나 궁전에 사는 사람들이 증언하듯이, 사람은 어떤 것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한동안 나는 클로이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적을 심드렁하게 여기게 되어싿. 그녀는 내 삶의 일상적인,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특징이 되어버렸다.

 >> 그렇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 호화에도 익숙해지고 빈곤에도 익숙해진다. 구속에도 익숙해지고 자유에도 익숙해진다. 결국 우리가 힘들어 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것들로부터 결별되는 것 그래서 다시 새로운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는 그 순간의 스파이크가 힘들게 하는 것 아닌가..싶은 생각..


P177 닥터 사베드라는 안헤도니아라고 진단했다. 영국 의학협회에서는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공포에서 생기는 것으로, 고산병과 아주 흡사하다고 규정한 병이었다. 스페인의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흔한 병이라고 했다. 이곳의 전원적인 풍경에 들어오게 되면 갑자기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 눈앞의 가능성으로 대두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 행복의 절정 속에 그 감동의 충격이 얼마나 치명적(?)’이었으면 그런 병까지.. ‘안헤도니아그렇게 행복에 겨워 죽겠는 병을 나도 한번 걸려봤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시니컬함에 웃음이 나왔다. ^^;;


P180 스키를 타던 방학은 [일반적으로 내 삶의 많은 부분도] 그렇게 흘러가싿. 아침의 기대, 현실에서의 불안, 저녁의 유쾌한 기억..

>> 내 삶도..


P181 현재를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갈망해온 것이 바로 이것이라는 깨달음을 두려워하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기대나 기억이라는 보호를 받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이며, 이것이 내가 살 수 있는 단 한 번의 삶 [천국의 개입은 논외로 하고] 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P182 싸우과, 삐치고, 다시 화해를 하는 과정이 끝이 났을 때는 오후 중반이었다. 둘 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울고불고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 하하하하~ 어떻게 극히 당연한 것에서 이렇게 섬세한 부분을 콕 찝어낼 수 있는거지..? 연애하는 커플만이 아니라 부부도 그렇지 않나. 울고불고 난리 법석을 떨었는데 도대체 그 난리를 쳤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는 상황.. 표현이 너무 절묘해서 웃음이 빵 터졌다~ 하하하하~ ^^


P183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말이지만, 우리는 그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싫엇기 때문에 싸운 것이다. 우리의 비난에는 복잡한 이면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무에 싫어한다. 이것은 ㅏㄴ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 어떤 사람에게 의존하는 기쁨은 그런 의존에 수반되는, 몸이 마비될 듯한 두려움에 비교하면 빛이 바랜다.

>>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무슨 의미인지 안다는 사실은 나 역시도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재밌다.


P184 우리가 소릴지르는 것을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 보기 위해서라도 그런 과정이 필요했다. 우리는 서로의 생존 능력을 시험하고 싶었다. 서로 파괴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 참 재밌는 커플이다. ^^ 건강한 커플인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알랭의 커플 사례를 보아도 냉전보다는 열전이 훨씬 건강한 방법임이 느껴진다. 지나친 열전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어 위험하지만, 서로의 느끼는바 감정을 솔직하게 터놓는 열전은 참으로 바람직한 것 같다.


P184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파스칼.

>> 인간의 모든 불행은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때부터 생겼다는 말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고, 그러다보니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하고 모든 감정으로 얽히는 것은 관게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보면 역시 불행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겼다는 파스칼의 말에 일부 동의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일부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관계 속에서 느끼는 행복도 있기 때문임을 굳이 말이 필요없을게다..


P186 사랑의 종말과 삶의 종말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의 경우에는 그래도 죽음 뒤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끝이 반드시 사랑의 끝은 아니며, 더군다나 삶의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연인에게는 그런 위안이 없다.

>> 온전히 공감하고 동감이다. 바로 그러기에 숨을 쉬고 있는 우리에겐 삶의 종말보다 사랑의 종말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적어도 새로운 사랑을 만나기 전 까지.. (그런 행운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닌게다.)


P190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재치나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네가 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눈 색깔이나 다리의 길이나 수표책의 두께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깊은 곳의 너 자신 때문이다.

>> ~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고백이 있는거야~


P191 진정한 자아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다.


P193 진실을 정면으로 보지 않으려는 충동, 생각만 하지 않으면 불쾌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 어쩌면 남편이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이런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그래서 내겐 고맙긴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우리가 진솔되게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하는 생각..


P196 증오는 사랑이라는 편지 안에 감추어진 글자들이며, 하나의 기초 위에 그 대립물과 함께 서 있다. 그녀의 짝이 자신의 목에 입을 맞추는 방식, 책장을 넘기는 방식, 농담을 하는 방식에 유혹당했던 여자는 바로 이 점들 때문에 짜증을 낸다. 마치 사랑의 끝은 그 시작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붕괴의 요소들은 그 창조의 요소들 안에서 이미 괴괴하게 전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표현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는 건지. 그저 놀랍다는 말 밖에.. 여성들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파악한 알랭. ‘마치 사랑의 끝은 그 시작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는 알랭의 표현은 너무나도 리얼했다.


P196 어떤 사람은 사랑이 난파했음에도 난파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사형 평결을 무시하면 죽음을 저지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죽음의 기호들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내가 고통 때문에 문맹이 되지만 않았다면 못 읽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 ‘내가 고통 때문에 문맹이 되지만 않았다면 못 읽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절절한 고통 속의 알랭이 느껴졌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사형 평결을 무시하면 죽음을 저지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눈을 감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으면 이 밤이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래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밤을 하얗게 지샜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와우 마지막 수업이 있는 날. 그 날이 내겐 그토록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하지만 그 마지막 밤은 지났고, 아침은 왔고, 와우 마지막 수업도 끝났다. 그리고 벌써 2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나는 이렇게 버젓이 숨도 잘도 쉬며 지내고 있다. 그때를 떠올리면 그때의 그 느낌은 희미하게 다가오고, 싸한 아픔이 피어나는 미소가 지어진다...


P198 집안 언어를 풀어놓았으나 클로이에게는 점점 낯선 것이 되었다. 아니, 부인하고 싶지 않아서 잊은 척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이 언어에 연루되었음을 부인하고 외국인인 척했다. 그녀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흠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이, 과거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말이, 갑자기 왜 화를 돋우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바뀐 것도 없는데 왜 갑자기 수많은 점에서 기분 나쁜 존재로 비난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이미 사랑의 종말이 그에 다가왔음을 알랭은 알지 못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가여운 알랭...


P200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거의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 한때 사랑했던 누군가와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될 때, 더 이상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을 느끼고, 더 이상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음을 느끼게 될 때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P202 한때 귀중하게 여겼던 대상에게 책임감만 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 유리잔 바닥에 남은 당밀 액체같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 그래... 당연한거야...

유리잔 바닥에 남은 당밀 액체같이...’라는 표현에 가슴이 아려왔다..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이 유리잔 바닥에 들러붙은 녹지않은 당밀 액체로 남아있음을..


P204 구애와 마찬가지로 떠나는 일도 과묵이라는 담요 밑에서 고통을 겪는다. 의사소통 체계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논의하기조차 힘들다. 그것은 양쪽 모두 그것을 복원하고 싶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연인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P204 꼭 누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말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말도 있는 법이다.

>> 내가 블로그를 만들게 된 내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꼭 누가 읽어주길 바래서가 아니라, 꼭 누구와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누가 보지 않아도 읽지 않아도 함꼐 공감하며 박수치며 나눠주지 않아도 단지 내 안의 느낌들 생각들을 풀어내야 할 곳이 있어야 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크릿 가든. 그래서 나는 블로그라는 것을 내 생애 처음으로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많은 소중한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귀한 인연과 마주치게 되었다, 내 안의 것을 토해내며 참으로 많이도 울었고, 많이도 웃었다. 혼자 난리 부르쑤를 추던 날이 어디 하루이틀이던가..

살아가면서 잘했다고 생각되는 많지 않은 그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나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나의 따뜻한 도피처가 되어준 나의 사랑.. 나의 블로그 Promenade..


P206 우리는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프랑스에 가려는 것이었지만, 마치 장례식 같은 분위기였다.

>> 이미 사랑이 떠나 버린 후...


P209 테러리스트적인 삐침이 구조적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아무리 사소하다고 하더라도 삐치게 만든 쪽에 어떤 잘못된 행동이 있어야 한다. 다만 가해진 모욕과 유발된 삐침 사이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화를 내게 만든 일에 비해서 많이 지나치게 세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서는 화가 잘 풀리지도 않는다.

>> 하하하하하~ 어떻게 이리도 잘 알까~ ^^ 그렇다~ 그럴 경우 대부분 우리는 정상적인 통로를 통해서는 화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피곤해지고 상황만 더 악화되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마는...^^


P209 나는 오랫동안 클로이에게 삐칠 기회를 노려왔다. 그러나 분명한 잘못도 없는데 삐치는 것은 부작용을 낳는다. 상대가 삐친 것을 모를 수 있고, 그렇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하하하하~ ^^ 이 글을 쓰는 시기가 23세 남짓 된 알랭임을 떠올리면 너무 귀엽지 않을 수가 없다. ^^ 상대가 내가 삐친 것을 알 수 있도록 합당한 이유 속에 삐쳐야 하는 절묘한 타이밍 탐구하는 알랭.. 어찌 귀엽지 않을 수가 있는지..^^


P209 모든 삐침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나중을 위해서, 좀더 고통스럽게 폭발시키기 위해서 그 일을 소게 쟁여둔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즉시 이야기했다면 풀렸을 일에 무게가 쌓이게 된다.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너그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죄책감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달라고 삐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 구구절절이 공감이 가고 맞어맞어를 외치게 하는 알랭. 난 내가 속이 좁아 그런줄 알았는데, 인간은 아마도 다들 이런 쟁여둔  감정 속에 속을 끓이게 되는가보다.


P210 내가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비난하는 것 때문에 너에게 화가 났다는 것은 나는 네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는 더 폭넓은 [그러나 말로 할 수 없는] 메시지를 상징한다.

>> 우리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의 무언의 몸짓을 읽어주기를, 내 표현뒤에 숨어있는 진짜 마음을 눈치채주기를, 내가 아니야라고 해도 실은 기인것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이런 경험을 했을게다. [그러나 말로 할 수 없는] 메시지를 수 없이 보내는 우리..

사랑을 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는 느낌...


P211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도움과 관심을 달라고 울지만, 막상 그것을 주면 거부해버린다. 말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 기막힌 표현이다. 쪽집게로 콕~찝어낸. 맞다. 삐친 사람은 복잡한 존재로서, 아주 깊은 양면적인 메시지를 아주 모호한방법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정작 그 방법으로 다가오면 외면해버리는 내 마음 나도 몰라의 지경으로 치달아버리는 것. 결국은 첨의 삐침은 나중엔 고집으로 변하여 상황을 더 악화시켜버리고 만다.


P211 클로이는 자기를 용서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다툼을 미해결로 놓아둔채 지내기는 싫다고, 즐겁게 1주년을 기념하며 저녁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클로이는 참 지혜로운 여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을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는 것. 글쎄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같이 삐쳐버리기 때문에. 나는 침묵으로 반항을 한다. 시작은 너가 먼저 했으니 나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것도 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시를 하는 것이다.


P211 나는 그녀에 대한 분노[열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분노]를 전부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합리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것은 내 진짜 불만을 말했을 때 생길 위험 때문이었다. 클로이가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내 상처는 표현하기가 무척 힘든 것이었다. 열쇠하고는 관계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그 문제를 꺼내면 바보처럼 보일 것 같았다. 결국 나의 분노는 지하로 밀어넣어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의미를 상징화하는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그 상징이 해독되는 것을 반은 기대하고 반은 두려워하면서.

>> 감정이 흘러가는 상태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지.. 바로 우리는 사랑이 점점 죽어갈때, 이런 느낌을 받곤 한다. 하지만 결코 밖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사소한 다른 것으로 문제삼고 또 상처받고 마음 아파하고, 결국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 때문에 원래의 상처에 더 깊은 상채기가 남아 더 견디기 힘든 고통 속으로 떨어지는 것.. 그것은 형벌과 같은 고통이다..


P213 낭만적 테러리스트는 말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 너한테 삐치거나 질투심을 일으켜서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겠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설이 생긴다. 만일 상대가 사랑으로 보답한다면 그 즉시 그 사랑이 더렵혀진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적 테러리스트는 이렇게 불평할 것이다. 내 강요 때문에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낭만적 테러리즘은 자신의 요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그 요구를 부정해버린다. 테러리스트는 결국 불현한 현실, 사랑의 죽음은 막을 수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 사랑의 복수심에서 오는 질투심에서 오는 심리 상태를 너무나도 기막힌 표현으로 분석해놓았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듯.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절대 강요해서도 강요되서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때는 이미 사랑은 그 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절대 그런 사랑은 순수할 수 없으며, 결국 그 사랑은 퇴색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이 사랑으로 온전히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저 사랑이 사랑 그 모습대로 흐르도록 놓아두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얼마나 깊은 고통이 따르는지.. 사랑이 떠나가도, 변해도 퇴색되어도 신음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대로 가만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순수한 사랑은 그 어떤 제스쳐도 용납되지 않는 듯. 만지면 터져버리는 물방울처럼 가만히 놓아두여야 하는 것..


P221 사랑의 거부가 종종 도덕적 언어, 옳고 그름의 언어, 선과 악의 언어의 틀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치 거부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것,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당연히 윤리의 한 지류에 속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딱지가 붙고, 거부를 당한 사람은 선의 화신이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재밌으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러게 어떻게 선과 악을 거부와 거부하지 않음의 상태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모순이다..


P222 사랑의 거부가 아무리 불행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랑을 이타성과 동일시하고 거부를 잔인성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정말로 사랑을 선과 동일시하고 무관심을 악과  동일시 할 수 있을까? 내가 클로이를 사랑하는 것은 도덕적이고, 그녀가 나를 거부하는 것은 비도덕적일까? 그녀가 나를 거부하면서 죄책감을 느낀 것은 사랑을 내가 이타적으로 그녀에게 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나의 선물에 이기적인 동기가 있었다면, 클로이도 똑같잉 이기적인 동기에서 관계를 끝내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의 종말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도덕성과 비도덕성 사이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두 충동 사이의 충돌로 나타난다.


P223 이마누엘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행동이 비도덕적 행동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고통이나 쾌락과는 관게없이 의무감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의 행동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무감에만 인도되어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는 도덕적이다. (...) 칸트 이론의 핵심은 도덕성이란 어떤 행동을 수행하는 동기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예상되는 보답에 관계없이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사랑을 줄 때에만 도덕적이다.

>>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로 그 사랑의 으미이다. 결국 나는 순수한 사랑이라고 정의하며 내가 했던 사랑은 도덕적인 사랑이었구나.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 그것이 가장 사랑다운 사랑이고 순수한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추구해왔고, 지금 역시도 그것에는 변함이 없다.

무언가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생길 때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려고 애쓴다. 왜냐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깨끗하다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P224 사랑을 주는 사람도 받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면, 이거싱 과연 도덕적인 언어를 사용할 문제일까? 사랑이 일차적으로 이기적인 동기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면 [죽 상대의 유익을 위한 마음에서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적어도 칸트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도덕적인 선물이 아니다.

>> 절대 공감 동감이다~!!


P224 비록 내 사랑에 희생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나는 순교를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경향에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 바로 그렇다. 사랑도 행복도 봉사도 그 무엇도 결국 이기적인 자기 만족에 근거하는 것 아니던가..?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사랑을 강요할 수 없고, 사랑 때문에 희생이란 단어를 쓸 수 없다. 그 모두 내가 좋아서 그 순간에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기에 내가 선택한 것 아니던가. 설사 결과가 형벌같은 고통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결국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기에 그에 따르는 고통 역시 마땅히 나 스스로가 감당해야 할 몫인게다.


P225 모든 사람은 자기를 즐겁게 하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것을 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것을 악이라고 부른다. 사랑이란 그 기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선과 악의 일반적 구별에서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가톤 하플로스,. 그냥 좋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절대 동감이다.


P225 니체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동기와 관계없이 오로지 그 유용하거나 해로운 결과 때문에 개별적 행동들을 선하거나 약하다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부르게 된 계기를 잊어버리고, 선과 악이 결과에 관계없이 자체에 내재된 특질이라고 믿게 된다.”

>> 재밌는 사실 아닌가..? 결국 선과 악은 내 개인에 따라 좌우되고 구분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네 삶에 그리도 분쟁도 전쟁도 많은 것인가부다. 서로 보는 선과 악의 관점이 모두 다르니 당연한 결과인것 같기도..


P226 나의 도덕률은 나의 욕망의 승화된 형태일 뿐이었다.

>> 대체적으로 우린 그래..


P227 분노가 비난과 결합될 수 없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다.

>> 정말 그렇다. 차라리 그럴 수 있었으면 속이라도 시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을 온전히 내가 감당하기로 했을때는 풀어낼 공간조차 잃어버렸기에 그 고통은 더 깊을 수 밖에 없는 것.. 순간적일지라도 나를 풀어 낼 수 있는 그 기회조차도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 고통의 크기가 더 커지기에 불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P227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 따라서 책임을 넘어선 일이기 때문이다.

>> 정말 그렇다..


P227 물론 사랑에서 퇴짜를 맞는 것은 원래부터 노래를 못 하는 당나귀보다 견디기 힘들다. 나에게 퇴짜를 놓은 사람이 한때는 사랑을 하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당나귀는 원래부터 노래를 부를 줄 모르기 때문에 당나귀가 노래를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삼가는 것도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에게 퇴짜를 놓은 사람은 사랑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얼마 전에, 그것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할 수 없어라는 주장의 현실성은 더욱더 소화하기가 힘들다.

>> 바로 그렇다.. ~


P228 사랑의 보답을 받을 수 없게 되자 사랑을 받고 싶다는 오만이 생겨났다. 나는 내 욕망만 가지고 홀로 남았다. 무방비 상태에, 아무런 권리도 없이, 도덕률도 초월해서, 충격적일 정도로 어설픈 요구만 손에 든 모습으로,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 이 절절한 알랭의 사랑의 구애를 읽는데 한편으로 마음이 나도 절절해지며 싸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도 그의 재치는 그 빛을 발하고...


P230 하지만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클로이가 떠남으로써 거의 모든 일에서 자신감이 흔들렸다. 나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어린애같이 삐치기 잘하는 악마가 나를 장악한 느낌이다. 그 악마는 나에게 웃음을 짓게 하고, 안심하라고 다독거린 뒤에, 바위에 메다꽂았다. 나는 이야기 속의 한 등장인물이 되었고, 그 이야기의 큰 구도를 바꾸는 것은 내 능력 범위 바깥의 일이었다. 나는 자유 의지를 믿었던 오만을 회개했다.

>> 알랭이 겪어야 했던 감정의 폭풍 사이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그대로 느껴졌다. 겪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형벌같은 고통..


P291 사랑이 오고간 것 모두가 [오는 것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가는 것은 그지없이 끔찍했다] 큐피드와 아프로디테의 게임의 노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 ~


P232 저주의 핵심은 그 저주 아래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저주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평생에 걸쳐 저절로 기록되는 그 개인 내부의 비밀 암호와 같다.

>> 후욱~ 평생에 걸쳐 저절로 기록되는 개인 내부의 비밀 암호와 같은 저주...


P233  반복 강박증 - 무의식에서 비롯된 통제 불가능한 작용. 이 작용의 결과 환자는 일부러 자신을 괴로운 상황에 가져다놓고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환자 자신은 이 원형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환자는 그 상황이 현재 이 순간에 의해서 완전히 규정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P240 인간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그 바람에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 ~ 그렇구나~ ‘사고를 가진 유일한 동물이니, 자살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일 수 밖에 없겠구나.. 넘 신기하다.. 당연한건데 마치 너무나도 새로운 것 같은 사실...


P240~241 알랭의 자살 부분을 읽고..

>> 알랭이 자살을 시도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참으로 처절하기도 했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약을 잘못 먹고 비타민 C가 거품이 되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는 그만 어이없는 웃음이 빵 터졌다. 어떻게 이렇게 코믹하게 그려놨는지. 처절함과 코믹함이 이렇게 함께 공존되어 한 구절로 쓰여질 수 있는 것인지. 웃겨서 돌아가시는줄 알았다..


P241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온 세상 사람에게, 특히 클로이에게 보여줄 수 있으려면 죽어야 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이 클로이에게 준 충격을 보고 화를 풀려면 나는 살아 있어야 했다.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햄릿에 대한 내 대답은 사는 동시에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이 얼마나 기막힌 표현인가..? 아마도 이 세상에 삶의 종말을 스스로 고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실을 조금 더 깊이 인식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을 것이다. 사는 동시에 죽어야 하는 알랭. 바로 그렇기에 죽을 수 없는 알랭. 이 기막힌 표현에 나는 정말 그야 말로 문자 그대로 기가 막혔다.


P243 고뇌에 괜찮은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런 비참한 상황을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증거 [아무리 부당한 증거라고 하더라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달리 왜 내가 이런 엄청난 괴로움을 겪도록 선택되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증거, 따라서 어쩌면 그들보다 낫다는 증거가 된다.

>> 하하하하하~ 깜찍한 알랭~ 이래서 알랭이 좋은거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떤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 내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그의 밝음이 좋은 것이다. 비록 자살을 시도했을지라도, 그의 밝음이 긍정적인 마인드가 그를 살아있게 한 것 아닌가..? ‘죽어야 하는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결국 살아야 한다로 결론 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면 죽음에는 가능성의 여지가 주어지지 않지만, ‘살아있음에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부여되기 때문...


P248 왜 나의 컴플렉스, 모든 결함과 수모를 그 정반대의 것으로 바꾸어버리는 왜곡된 심리적 술수에 예수의 이름이 붙은 것일까? 나의 고통을 젊은 베르테르나 마담 보바리나 스완의 고통과 동일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상처받은 사람들은 예수와 경쟁할 수가 없었다. 예수는 그가 사랑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약과 대비되는 순결한 미덕과 의문의 여지 없는 선을 지닌 존재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그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된 것은 단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려놓은 울 듯한 눈과 창백한 안색 때문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가 착하고 완전히 의로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배반당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신약성서가 비애감을 주는 것은 그것이 내 사랑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모든 덕을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오해받은 존재의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 어쩌자고 알랭은 나를 이리도 사로잡는 것인가..? 그의 이 참을 수 없는 해학적인 비유에 나는 정말 죽도록 웃음이 나왔다. 시침 뚝 떼고 정색한 얼굴로 진지한 모습으로 배꼽잡게 만드는 개그맨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어쩌자고 알랭은 이렇게 나를 돌아가시게 만드는건지.. 자신의 고통과 예수의 고통을 동일시하는 그의 거만함도 너무나도 귀여워 보였다. 어쩌자고 클로이는 이렇게 매력떵어리인 알랭은 지발로 차버렸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다. 윌이 그리도 매력적인 남자였단 말인가..?


P249 자신의 미덕에 대한 느낌은 고통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고통을 겪으면 겪을수록 덕은 커진다. 예수 컴플렉스는 우월감과 얽혀 있다.


P250 나는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나는 특별하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크게 이해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것이 틀림없다.

>> 하하하하~ 이건 바로 자뻑증증세의 시작이 아닌 듯싶다. ^^ 어쨌거나 이것은 건강한 사람들이 맺는 결론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세상에선 이해받지 못하지만, 실상 우리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결론. 이것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세우며 파괴하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상태다.


P250 예수 콤플렉스란 자기 방어 메커니즘에 불과했다. 나는 클로이가 나를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 어떤 여자보다 클로이를 사랑헀는데, 이제 그녀는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내가 그 견딜 수 없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처음부터 그녀가 그렇게 가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고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버림받아 절망적인 상태일 때, 옆방에서 들려오는 행복에 겨운 오르가슴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호텔 방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낼 때, 정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 자연스레 상상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라일락 색으로 꾸며진 작은 호텔방에 누워 옆방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절정인 비명소리를 들으며 자신과 클로이의 관계를 떠올리며 그럴듯하게 예수의 고통에 빗대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알랭 드 보통. 내 상상 속의 그림은 참으로 코믹해서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P252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시간표와 다이어리의 엄격한 요구에 이끌려 가지만, 마음의 자리인 영혼은 기억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노스텔지어에 젖어서 느릿느릿 뒤따라온다. 만일 모든 연애가 낙타에게 짐을 더 얹는 것이라면, 사랑의 짐의 의미에 따라서 영혼의 속도는 더 느려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의 낙타가 마침내 클로이의 기억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떨쳐버렸을 때, 낙타는 죽기 직전의 상태였다.


P252 나는 눈을 감고 살았다. 안으로 기억을 향해 있었다. 나는 그 낙타를 따라 기억의 모래언덕들 사이를 구불구불 나아가며, 가끔 매혹적인 오아시스에 들러 행복했던 시절의 이미지들을 들추며 여생을 살고 있었다. 현재는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과거만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시제가 되었다. 현재라는 것은 과거 옆에 가져다놓으면 지금은 없는 사람의 기얽을 되살려내며 나를 조롱할 뿐이었다. 미래라는 것은 더욱더 비참한 부재 상태를 의미할 뿐이었다.

>>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 형벌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는지 오로지 겪어본 사람들만이 알 것 이다. 감히 상상 속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숨을 쉬는 것 자체가 고문인 절망적인 고통. 이럴때 가장 달콤한 유혹은 바로죽음인 것. 알랭이 클로이를 잃고 느꼈을 그 고통이 어땠을지 너무나도 알 수 있었다. 내 삶의 어느 지점에.. 내게도 그런 고통의 시기가 있었음으로..

아마도 알랭이 느꼈을 고통은 내가 느꼈던 고통보다 조금 더 했을지 모른다. 그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겼다는 배신감도 함께 느껴졌을테니..


P254 일주일 가운데 우리가 관례적으로 함게 행동하던 때가 돌아오면 과거와 현재의 평행선을 고통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아침의 미술관 순례, 금요일 밤의 클럽, 월요일 저녁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물리적 세계는 내가 잊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생은 예술보다 잔인하다.

>> 잠시라고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도 그리 깊은 여운을 남기며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있게 하거늘, 일년이란 기간을 함께 하며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 일상이 되어버린 함께 하던 순간 속에 모든 것은 그대로 존재하는데 오직 그녀만의 부재로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고 그러기에 함께 했던 순간이 더욱 짙은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P255 변화의 거부는 세계가 내 영혼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거기 살든 살지 않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살아 있든 죽었든 관계없이 움직여가는 독립된 실체임을 일깨워주었다. 세상이 내 기분에 따라서 표정을 바꾸어주기를 기대할수는 없었다. 거리를 이루는 거대한 돌덩이들이 내 사랑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세상은 내 행복에 기꺼이 편의를 제공했지만, 이제 클로이는 떠났다고 해서 무너져내리지는 않았다.

>> 그래서 내게 다가온 고독이 더욱 처절하게 느껴지는 것. 사랑하는 이는 떠났는데 나 혼자 남은 그자리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은 야속할 정도로 그대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 그것이 더 깊은 외로움으로 공허감 속으로 우리를 내동댕이 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P256 그녀에 대한 생각이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그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가 살던 동네였음에도]. 근처 레스토랑에 잡아놓은 약속을 먼저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클로이의 기억이 중화되면서 역사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런 망각에는 죄책감이 뒤따랐다. 이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녀의 부재가 아니라, 내가 그녀의 부재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망각은 내가 한때 그렇게 귀중하게 여겼던 것의 죽음, 상실, 그것에 대한 배신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 나를 괴롭히는 것이 사랑하는 이의 부재가 아니라, 상대의 부재에 무관심해지기 때문이라는 것. 미칠듯한 사랑이 끝나고 난 후, 그 죽음같은 고통을 앓고 난 후에 이런 느낌은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사랑했기에, 그 사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토록 무서운 홍역을 겪어내야 했기에, 그 사랑에 대한 기억을 눈물 없이 꺼내 볼 수 있을 즈음엔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과연 이것이 사랑이었나. 어떻게 그토록 미칠듯이 사랑했던 그를 아픔없이 떠올릴 수 있나.. 하는 죄책감...


P256 나의 정체성은 오랫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로 돌아가려면 나 자신을 다시 만들다시피 해야 했다. 클로이와 내가 함께 쌓아올렸던 수많은 연상들이 희미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그렇게 사랑했는데.. 당연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없었겠지..


P257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 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 내 사랑 이야기는 얼음 덩어리와 같아서, 현재로 들고 오는 동안 차차 녹아버렸다. 그것은 마치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현대의 사건, 역사가 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중심적 세목으로 축소되어버린 사건 같았다.

>> 먹먹한 슬픔..


P261 미성숙한 사랑은 [나이와는 거의 관계가 없기는 하지만] 이상화와 실망 사이의 혼란스러운 비틀거림이며, 환희나 행복의 감정이 익사나 섬뜩한 구토의 인상과는 결합되어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마침내 답을 찾았다는 느낌이 이렇게 헤맨 적이 없다는 느낌과 공존하는 상태이다.

>> 알랭을 통해 알았다. 나는 겉으로는 성숙한 사랑을 하는 듯해보였지만, 내 안은 미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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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이 클로이를 그리는 마음은 바로..

I've got to see you again 아녔을까..?

책을 읽으면서 많이 들은 음악이기도 했지만..

알랭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인 것 같아..

 

Norah Jones I’ve got to see you..를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