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피정일지 2] 김 찬용 신부님과 함께한 브라질 피정 – 둘째날

pumpkinn 2010. 6. 8. 10:28

너무나도 엄숙하고 거룩한 분위기라 플래쉬를 터뜨릴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은혜스러웠던 시간...

 

 

성장 세미나 둘째날 2010 6 4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데.. 왠걸..

머리에 샴푸를 칠하고 비누 칠을 했는데..

세상에.. 갑자기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것..

이 추운 날..

 

우짜랴..

고양이 세수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부분부분 닦다가..

걍 찬물로 들어갔다.. (히구.. 용기두 좋아..^^;;)

 

차라리 첨부터 찬 물이 나왔음 걍 나갔을 건데..

암튼.. 이 무슨 찬물 세례인가..? 난 이미 세례 받았구만~ ^^;;

아마도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프로그램..

졸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임하라는 뜻이었나부다..

 

그렇게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룰루랄라~ 나가는데..

머리가 조금 아프기 시작하더니 종일 아팠다.. 히궁..

 

어젯밤 앉았던 자리가 명당(?) 자리라..^;;

자리를 맡아놓고 와서 느긋하게 시간맞춰 나갔는데..

오잉~ 내 자리에 누가 앉아있고 내 책이 뒤로 가있다..

평소의 나같음.. 살짝 화가 났을건데.. (내 자리에 목숨건다 난..^^;;)

분명 하느님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시려는 무엇이 있겠지.. 하는 마음에..

편한 마음으로 미사와 강의에 임할 수 있었다..^^

 

하긴.. 서로 돌아가며 좋은 자리 앉아야지..

어찌 나만 욕심 부리고 맨날 앞에 앉으려고 하나.. 그럼 안되지..

(그래두 난 공부할 때는 맨 앞에 앉아야 집중이 잘되고 몰입이 잘되기에 앞자리에 욕심을 부린다..)

 

암튼.. 오늘은 세번의 강의가 있었고...

1 강의에선 성사 생활에 대한 강의였는데..

사실 난 성사가 무엇인지.. 겨우 7성사를 읊어댈 정도지..

그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몰랐더랬다..

 

그런데.. 그동안 성사 생활에 대해 막연히 알던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심플하면서도 분명하고 알기 쉽게 가르쳐 주셨고..

참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무릎을 탁~치는 그런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한마디로 성사란.. 하느님을 나타내는 그 무엇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을 드러내시는 성사 이시듯.. (그것을 원성사라고 부른다..)

바로 내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성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거룩한 일인 성사이고 바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성사 생활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신앙인의 삶이 그러하여야겠지만, 성사 생활을..

숫자 개념을 덧붙여서 세상과 하느님을 연결시키신 부분도 흥미로웠으며..

가장 쉽고 이해 빠르게 와닿은 부분은 바로..

태어나 먹고 자라고 결혼하고 죽는 과정을 성사와 비교 셜명해주신 부분이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재밌었고 흥미로웠는지..

 

그리고 신품성사는 사제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바로 사제들을 통한 가르침을 받고 신앙을 끊임없이 키우며 교회 생활을 올바로 하는 것이 포함되고..

또한..혼인 성사는 결혼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부부라는 관계를 넘어 공동체 안에서 혼인 성사적 삶을 사는 것,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봉사하는 삶.. 바로 그것이 혼인 성사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성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든 신앙인에게 적용되는 것이고 이것을 잘 살 때..

바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성사 생활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고 분명한 설명이셨는지..

내게는 너무나도 깊은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신부님 말씀대로 성사에 대한 개념을 모르기에..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희미하게 아는 만큼의 희미한 성사 생활을 하는거구나.. 싶었다..

아니.. ‘우리가 아닌 자신이..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이어진 제2 강의는 말씀’..

그리고 세번째로 이어진 강의는 바로 상처와 용서에 대하였는데..

용서에 대한 신부님의 정의가 참으로 색달랐다..

용서란 누군가가 만든 잘못이나 상처를 묻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 씨앗으로 삼고 새로운 이름의 뜻을 피우는 것이다.

, 상처는 은총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상처는 선물이다..

 

그 상처로 인해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 한번 더 하게 되고..

그 상처로 인해 성체조배 한번 더하고..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

결국은 그 상처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을 더 찾게 되고, 더 가까워지는 것..

바로 은총의 삶을 그 상처 덕분에 살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닌가..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질 못한다는 것..

원수가 용서될 때까지 기다려서 용서를 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 모호한 말씀의 설명이 참으로 맘에 들었고, 마음에 와닿았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것은 원수인 상태에서 사랑을 하라는 것인데..

마음이 풀리기까지 기다려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글고보니 그렇다..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격려하고 그를 들어주며 사랑을 베푸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적인 사랑이다..

 

하느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하셨는데..

원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당체 누구를 사랑하겠다는 거냐며 되물을실 때는 웃음이 터졌다..

그게 그러고보니 그러네..’ 싶은거이..^^;;

 

오늘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상처 치유 예절세족례가 있었는데..

사실 나는 세족례를 들어가며.. 조금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런 부담감은 여러 번을 다녔지만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겐 상처가 없는데.. 억지로 끄집어내야 하는 오는 부담이었다..

 

나라도 왜 상처가 없겠나..

나도 상처투성이로 온 마음이 생채기 투성였지만..

지금은 화해하고 이해하고 그 상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교만에서 온 것이었고 나의 착각임을 시간이 흐르자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상처..

그것이 떠올랐던 것..

 

오빠에 대한 미안함..

결혼 전 삶에 대한 시각이 달랐던 오빠와의 관계..

오빠에게 미안했다.. 나도 상처였지만.. 오빠에게도 상처였을 것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

내가 공부를 하여 잘 되는 것이 엄마 아빠는 내가 몇 푼 보태드리는 것보다 더 행복해하실 거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

일을 해서 엄마 아빠에게 도움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오빠..

우리는 그렇게 삶에 대한 사고가 달랐다..

 

그 당시.. 나는 왜 나를 위해 삶을 투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지..

오빠의 사고를 정말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으나..

내가 오빠를 좀 더 이해하지 못한게 내겐 미안함과 아픔으로 남겨져 있을 줄 나도 몰랐다..

 

그것이 그렇게 외면된 상처였는지 나도 몰랐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앞에 앉은 언니의 발을 씻겨 드리는 순간..

오빠 미안해..’하며 터져나오는 울음은 곧 통곡으로 바뀌었고...

나의 이기적인 마음에 용서를 구했고..

오빠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그렇게 목놓아 울었더랬다..

 

그 상처가 그렇게 깊었었나..

나도 몰랐던 상처..

 

그랬구나..

오빠를 위해 기도를 자주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

 

우리는 세족례가 끝난 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그렇게 율동을 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폴짝폴짝 뛰며 춤을 추었다..

 

늘 느끼는 느낌..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빅베어 청소년 피정이 또 떠올랐다...

온 마음을 가득 채운 행복.. 사랑..

 

통회의 눈물과 치유의 기쁨이 함께 했던 참으로 은혜롭고 감사한 시간...

이렇게 우리의 피정 둘째 날은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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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 꿈이 있는 자유... 

 

삶의 작은 일에도 그 맘을 알기 원하네                                         

 

 

 

그 길 그 좁은 길로 가기 원해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며

소망 그 깊은 길로 가기 원하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 준다면


내가 노래하듯이 또 내가 얘기하듯이

 살길 난 그렇게 죽기 원하네


 

삶의 한 절이라도 그분을 닮기 원하네

사랑 그 높은(깊은, 높은) 길로 가기 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