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27]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읽고 / 박명숙 옮김

pumpkinn 2009. 7. 12. 00:51

 

<순례자>를 읽는 동안 내 머릿속은 온통 혼돈 그 자체였다. 대체 이 모든 내용들이 실제 상황인건지 아니면 픽션인지, 읽는 내내 긴장감과 몽롱함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페트루스의 존재도 파울로의 경험도, 그리고 그들이 만났던 집시 악마도, 개인 악마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파울로가 자신의 검을 그렇게 절절한 마음으로 찾아다니는 동안 느낀 막막함. 그 막막함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인지,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파울로는 ‘검’이라는 목표물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을 찾아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몰랐던 것은 그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몰랐고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인제 알 것 같다. 나에게 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알지 못했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떤 것을 배우고 학습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데만 열중했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건지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배움이 좋아서 무조건 무언가를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을 뿐. 그 ‘무언가’를 가지고 나는 '어떻게' 삶에 적용하며 살아갈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을 가지고 과연 내가 내 삶 안에서 하고 싶은 게 있기나 한 건지, 나 스스로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면 내가 찾는 검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소명'이었다. 태어날 때 하느님이 내 안에 심어 놓으신 당신의 뜻, 소명. 아니, '소명'이란 단어는 너무나도 거창하다. 꿈, 하고 싶은 무엇, 꼭 하고 싶은 무엇, 안 하면 미칠 것 같은 무엇. 그것이 바로 나의 검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도 막막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안다. 어떤 목표가 있을 때 내 안의 들끓는 열망의 에너지가 얼마나 강력한 폭발력을 지니는지. 단지 환경이 다른 지금 그 나의 열망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아줄 그것이 뭔지를 모르겠다. 파울로가 검을 찾기 바로 직전에 느꼈던 느낌들. 알듯 알 듯하면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던 마음의 상태.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일까. 하고 싶은 것은 무지 많지. 너무나도 많아서 토를 달지 않고 단어만 나열해도 몇 페이지는 족히 채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의 ‘꿈이나 비전 또는 소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하나하나를 해보았을 때의 순간의 만족만 경험할 뿐, 그런 사소한 성취와 성공이 나의 꿈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나도 내 꿈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그런 모든 열망들은 돋보기가 햇빛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그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산발적이어서 나의 아까운 에너지만 분산시킬 뿐이다.


 

누군가 자신의 길을 발견했을 때, 잘못된 시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용기가 필요하다. 실망, 실패, 의기소침은 하느님이 길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들이다. - 빠울로 꼬엘

 


페트루스, 그에 대해 얘기를 안 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이성적이고 지적인 매력의 소유자 페트루스. 나도 파울로처럼 페트루스가 안내자 역할을 여러 번 했을 베테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이드 역할이 처음였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그는 왜 파울로와의 연락을 피했던 걸까. 전화번호까지 바꾸고. 어쩌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람’에선 그런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걸까. 많은 상상들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면 자주 연락을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함께 이어가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한 나로서는 가슴 한쪽에 고통마저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 대상이 고혹적인 매력덩어리 페트루스였으니 그 안타까움이 더 진하게 느껴졌던 듯싶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파울로의 막연한 짐작처럼 페트루스가 순례 여행 동안 파울로와 함께 하면서 그에게 실망을 느낀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페트루스는 평범한 일상에 가장 충실할 때 기적은 일어나고 비범함이 나타난다고 했다. 당대 가장 뛰어난 유럽의 디자이너의 한 명인 페트루스지만 그의 실제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 치열한 전쟁터 같은 패션계에서 명망 높은 디자이너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그렇게 깊고 맑은 영혼을 소유한 페트루스. 대체 그는 누구일까. 


나의 호기심은  결국 가만 있지 못하고 Fundación Prinicipe de Asturia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파울로가 말한 브라질 져널리스트 호베르또 마리뉴가 상을 받은 기사를 찾아다녔다. 호베르또 마리뉴가 상을 받은 연도를 찾으니 1986년이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을 구석구석 뒤지며 사진을 찾아다녔으나 페트루스로 여겨지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호베르또 마리뉴가 상을 받은 사진은 찾았으나, 그가 상을 받았던 것은 아녔던 듯싶다.


어쨌거나 페트루스가 파울로와 함께 하는 순례길 동안 파울로에게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나를 향한 가르침이었고 깨달음이었다. 그의 말은 마치 잠언 말씀처럼 내 가슴 깊이 파고들며 영혼을 건드리는 떨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대체 누굴까.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좀 더 오랜 시간을 나를 괴롭힐 것 같다.


 

  


처음에 나는, 책에 나오는 산티아고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인줄 알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도 어떻게 프랑스 스페인을 거처 칠레까지 '걸어서' 순례를 가는 건지 궁금해서 돌아가실 뻔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칠레의 산티아고가 아니라 갈리시아 땅에 있는 산티아고였던 것. 오~ 나의 무지함이여~!! 

 

<순례자>는 사소한 하나하나 까지도 나의 생각을 어지럽히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지뢰가 군데군데 묻혀있다가 여기저기서 폭발되곤 했다. 글을 옮긴 박명숙은 왜 ‘신’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예수님을 언급할 때조차도 그녀는 '하느님'이나 '하나님'이라는 표현 대신 ‘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God가 아닌 god로 표현이 되었던 걸까. ‘신’이라는 단어가 언급될 때마다 나는 자꾸만 그것이 자꾸만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종교적인 색채를 지우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고 해서 페트루스나 빠울로의 깊은 신앙심이 가려질 것 아녔을 것이다. 의문이 들었다.


이렇듯 쓰나미처럼 달려드는 궁금증을 그냥 넘기기엔 그 폭발력이 너무 강했다. 급기야 원본을 보고 확인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쓰여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해진 나는 책을 주문하려고 Livraria Cultura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포어 버젼이 없는게 아닌가. 이럴 수가. 의아스러웠다.스페니쉬, 불어, 영어 버전은 있는데 유독 포어 버전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스페니쉬 버전으로 책을 주문했다. 책을 주문하면서 연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라고 연발하는 나에게 딸아이가 하는 말, “엄마, 이해는 내일하고 나한테 컴퓨터 넘겨주면 안 돼?” 숙제를 한다고 컴퓨터를 쓰고 있는 딸아이를 “잠깐만~”하고 뺏고는 엉뚱한데 멈춰서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옆에서 보면서 속이 탔었나 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른 모든 언어는 '순례자'란 의미의 El Peregrino, The Pilgrim, 또는 Le peregrin 등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나, 포어 제목만큼은 'O diário de um mago' (마법사의 일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 아이구야~

 

순례자는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나의 검을 찾으러 가는 여정은 누구에게나 혼돈과 모호함의 갈등 속에서 방황한다는 것은 내게는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나침반이 정북향을 가리키면서도 떨림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목표가 분명하게 있을 때 조차도 우리는 갈등과 두려움을 겪게 된다고 했다. 하물며 아직 분명한 자기만의 정북향을 찾지 못한 나야 오죽하랴.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스스로를 다구치며 실망하거나 몰아세우지 않는다. 내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다 보면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길을 만나지 못하면 또 어떤가. 내가 걸은 그 길 안에 나의 역사가 있고 삶이 그려져 있는 바로 내가 만든 나의 길일테니.. 

 

 



초서 단상 

 

P10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내가 믿는 것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깨달음이었다. 나로 하여금 생애 첫 책인 ‘순례자’를 쓰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준 것도, 평범한 사람들의 길’을 계속 따라 걷기 위해 매일같이 치러내야 하는 나 자신과의 ‘선한 싸움’에서 존엄과 끈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날 북돋워준 것도 역시 그것이었다.


P15 RAM - 엄격함(Rigor) R, 숭배(Adoration) A, 자비(Mercy) M, 또한 왕국(Regnum) R, 어린양 (Agnus) A, 세계(Mundi) M.


P35 “산이 높다는 걸 알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P35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P40 마스터가 검을 건네주기를 거부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가 그러한 놀라운 일들을 당신에게 보여준 이유를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앎으로 난 길은 모든 이, 즉 평범한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것을 당신이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P41 “지혜로 향하는 진정한 길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해야 합니다. 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써보지 못한 검이 녹슬어버리고 마는 것과도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라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P42 “람의 첫 번째 의례는 다시 태어남을 실행함에 있습니다. 당신은 이 훈련을 일주일 동안 연속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의 첫 만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내팽개쳐둔 채 검을 찾으러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걷고자 결심한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과거에 붙잡힌 포로이기 때문에 겪은 갈등입니다. 과거에 겪은 실패 때문에 또다시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것이고, 과거에 쟁취한 것을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이죠. 그럼에도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감정이 당신에게 있었죠. 검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위험을 무릅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P46~47 빠울로의 씨앗 훈련 장면을 읽고...

 

>> 참으로 놀라웠다. 어떻게 단 한 번에 그렇게 집중과 몰입 속에 빠질 수 있는지.. 나 역시 씨앗 훈련을 해보았다. 그렇게 엎드려 있다가 살짝 잠이 드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내가 과연 그런 경험 속에 빠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잔잔해지려던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시끄러워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의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갑자기 멋쩍어진 나는 그냥 일어났다.
그렇게 놀라운 집중력으로 금방 몰입의 경지로 들어가는 빠울로 코엘료가 부럽고 또 부러웠다. 나는 주의 산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집중력이 없지도 않다. 뭔가를 배울 때나 강연을 들을 때나 영화를 볼 때의 집중력은 거의 무아지경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혼자 묵상을 한다거나 기도를 한다거나 의식을 치를 때는 나의 집중력은 가출해버린다. 왜 그러는 걸까..? 혹시, 어쩌면 나 스스로가 집중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스스로를 멋쩍게 생각하는 그것이 나의 집중력을 흩뜨려 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나를 지켜봐야겠다.


P50 “당신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난 당신이 검을 찾도록 안내하는 게 아닙니다. 검을 찾는 일은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면서 람의 의례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겁니다. 검을 찾기 위해 그걸 어떻게 적용할지는 당신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 페트로스는 여기서뿐만 아니라. 그가 책에 등장(?)하는 내내 강조하는 말이었다. 자신은 빠울로의 검을 찾도록 도와주러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닌.. 바로 순례지를 안내하면서 람의 의례들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굳이 우리 삶을 살아가는 여정이 ‘순례길’이라는 너무나도 뻔한 식상한 표현을 쓰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비슷함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닮고 싶은 훌륭한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면서도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내게 ‘답을 알려주셨으면..” 아니.. 어쩜 더 정확한 표현은 아마도 “나 대신 내 삶의 답을 대신해주셨으면..” 했던..
그런데 스승은 우리에게 삶의 답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삶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 방향을 보여주기 위해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며, 빠울로가 자신의 검을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구했듯이.. 나의 검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닌,, 누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답을 알아야 하고 나 스스로가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임이 선명한 그림으로 보였다. 내가 나에게 답을 주기를 바랐던 안일하고 이기적인 마음은 결국 비겁한 발상이었고.. 결국은 그것은 ‘내 삶을 나 대신 살아주었으면’ 하는 고통은 싫고 영광만 누리고 싶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생각이었음을.. 지금 단상을 쓰면서 다시 깨우침이 왔다.

 

P50 “여행을 하다 보면 거듭남의 행위와 관련된 실제적인 경험을 하게 되지요.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처한 겁니다. 하루는 예전보다 느리게 지나가고,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합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갓 나온 아기처럼 말이죠. 갓난아기처럼 주위의 것들에 훨씬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지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과도 더욱 가까워지게 되지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들이 베푸는 아주 작은 호의조차 몹시 기쁘게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들이 베푸는 아주 작은 호의조차 몹시 기쁘게 받아들이죠, 마치 남은 생에 내내 그걸 기억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사물의 아름다운 면만 보게 되고 살아 있음을 더 행복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언제나 사람들은 성지 순례가 계시에 이르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가고, 구하는 자에게 삶이 관대하게 베풀어주는 수많은 축복을 답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죠.

 

P51 주위의 모든 것은, 불안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평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평화는 여전히 계속 자라나고 생성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 세상은 알고 있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아가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격렬한 지진이나 태풍과 폭우 역시 자연의 여정 중에 있는 순환이라는 것을. 자연 역시 계시를 찾아 여행을 하고 이는 것이다.

 

P52 페트루스가 말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은 아무 의미가 없고, 앞으로 내가 행할 것들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 이것은 내가 지금 있는 바로 이곳, 나의 ‘현재’에 충실함으로써 내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임을 말하는 것일 게다. 어쩜 그래서 이미 과거 속의 사람이 된 빠울로 꼬엘료와 관계를 그냥 과거 속에 남겨두고 싶었던 걸까..??

 

P56 당신에겐 길을 따라 움직이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같은 길을 돌고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망만이 앞섰던 거죠.”

 

P57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 길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길이기 때문이죠. 길은 언제나 우리가 걸은 만큼 우리를 풍성하게 해 줍니다.

 

P57 삶의 목표를 가질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와 그 길을 어떻게 나아가느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나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람의 두 번째 의례가 매우 중요한 건 그래서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습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들 속에서, 너무 익숙한 것이라 무관심해진 우리가 알아보지 못했던 신비를 발견하는 훈련이죠.

 

P59 “시간은 항상 같은 리듬으로 흘러가지 않거든요, 시간의 리듬을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입니다.”

 

P60 “익숙하지 않은 속도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도록 노력하세요. 일상적인 몸짓을 다른 방식으로 행함으로써, 당신 안의 새로운 존재가 깨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하지만 결정은 결국 당신이 하는 겁니다.”

P72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요. 나 역시 그렇습니다” 페트루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신이 존재하는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 또한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도 아니지요.”

 

>> 이런 사고 논리가 나는 참 좋다. 모든 다른 이념, 다른 주장을 포용하는 따뜻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신경 곤두세우며 논박할 일인가..?? 그렇다고 하든 그렇지 않다고 하든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날 것도 아니고 안 일이 날이 일어날 것도 아니니, 결국 그 모든 것은 인간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인 것.. 페트루스의 이런 넉넉한 사고의 폭과 깊은 정신세계 참 좋다.나 역시 그런 사람이길 원한다. 노력에 의해서 의지로 그렇게 행동되는 것이 아닌, 그러한 모든 것이 이미 나 스스로의 감정에서 초월되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굳이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냥 받아들이는... 그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감정의 무공해 상태..

 

P73 역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됩니다. 회귀의 법칙이죠. 호르다 신부가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이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했을 때,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이 신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는 곳에서, 당신은 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신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 해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의 뜻이 선한 것이기만 하다면 말이죠. P74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구현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만 제외하고는. 그러므로 파괴하려고 했던 자는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죠.”

P74 “신은 복수가 아닌 사랑입니다. 그분의 유일한 징벌은 사랑의 행위를 중단시킨 사람에게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 완성하도록 강제하는 것뿐입니다.”

 

>> 이 얼마나 아름다운 벌인가.. 사랑의 행위를 중단시킨 사람에게 그것을 계속 이어나가 완성하도록 강제하는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온전한 사랑이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사전에 ‘벌이나 복수’라는 단어가 있을까.. 우리의 아픔을 보며 우리보다 더 아파하시는 사랑이신 하느님이 어떻게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벌을 허락하실까..

 

P74 “신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안에 존재합니다. 신은 우리가 느끼고 체험해야 하는 분입니다.

 

P76 당신은 속히 목적지에 도달하기만을 바랐기 때문에 처음엔 여행이 고문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이젠 그 여행이 기쁨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탐색과 모험이 주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당신은 가장 중요한 당신의 꿈들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꿈꾸기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음식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영혼은 꿈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살아가는 동안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실망하고, 충족되지 못한 욕망 때문에 좌절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요. 하지만 그래도 꿈꾸기를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죽어버리고, 아가페가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되니까요. 아주 오랜 옛날, 지금 당신 앞에 펼쳐져 있는 들판에서는 수많은 이들의 피가 흘러내렸고 정복과 수복 사이에 잔혹한 전투들이 벌어졌습니다. 어느 편이 옳고 누가 진실을 쥐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양편 모두 ‘선한 싸움’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P77 ‘선한 싸움’은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P77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 내면에 간직한 꿈들이 힘차게 꿈틀댈 때면 우린 용기백배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법을 알지 못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꿈은 유치하다거나, 실행하기 힘들다거나, 인생에 대해 몰랐을 때나 꾸는 꿈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용기인지 오기인지 구분두 못하고 달려들던 그때와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 있지 않은 지금.. 나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없는 것일까..?? 만약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내가 아는 나는 그렇게 먼산 구경하듯 가만있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야 하는 나 자신..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다릴 줄도 안다. 그것은 세월이 가르쳐준 고마운 지혜. 그 열정이 내 안에서 오랜 기다림 속에 사그라들지 않도록 지킬 줄도 안다. 단지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도록 그토록 간절히 하고 싶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순례자를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작은 변화는.. 무작정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멍하니 몽상가처럼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바보스런 내가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것 (그것은 가게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이드로 열심히 나를 준비시키면서 내게 다가오는 기회를 잡을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는데 왜 갑자기 내가 그것을 무언가 획기적인 깨달음이 있을 것처럼 그렇게 손을 놓고 마냥 기다리기만 했는지 지금에서야 살짝 의문스러웠다. 현실도피. 아니, 현실도피라기보다는 내게 정신적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와우와 함께 한 시간은 나를 재 정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휴식 휴면 상태였다. 재도약을 위한 정신적 스트레칭을 위한 기간..

 

나에게 빵을 주고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근원지인 나의 가게에 열심히 임하면서 내가 선물처럼 주어질 또 다른 기회를 잡을 것이다. 나를 준비시키면서.. 지금 내가 무언가 변화시키겠다고 리셋을 한다 해서 어떤 좋은 생산적인 결과가 올 것인가..?? 뚜렷한 목표도 없으면서.. 나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희생이 너무나도 클 것이다. 나에게 뚜렷한 목표가 생길 때까지.. 확신 속에 Reset을 감행할 수 있을 때까지 내게 주어진 것에 충실하리라. 어쩜 그것이 나에게 바로 내가 원하는 그 꿈으로의 길을 열어줄지도 모르는 것... 모처럼 느끼는 마음의 평온함이다... 지금까지 나를 갈등 속에 빠지게 했던 답을 찾은 것 같다. 내 삶의 답은 아니지만, 지금 바로 나의 현주소에 가장 맞는 답이란 생각이 든다.

 

P78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그들은 사실, ‘선한 싸움을 벌일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 어렸을 때 읽었던 시처럼 짧은 구절로 쓰인 ‘실패자와 성공자’ 란 책에서 가장 나를 치고 들어왔던 구절이 떠올랐다. 성공한 사람은 할 일을 다 하면서도 늘 무언가를 할 시간이 있지만, 실패자는 늘 바쁘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그 비유를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고 동시에 흠칫하기도 했던 기억. 그럼 나는 성공자인가 실패자인가..?? 이 비유만으로 보자면 때때로 성공자 이기도 하고, 때때로 실패자 이기도 하다. 실패자에 해당하는 ‘때때로’를 성공자 영역으로 붙들어와야지..

 

P78 꿈들이 죽어가는 두 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일상의 성벽 안에 머무르며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창이 서로 부딪치며 부러지는 소리, 땀과 먼지 냄새, 말에서 추락하는 소리, 정복의 열망으로 목이 마른 전사들의 불꽃같은 눈빛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 싸우는 사람의 심정이 느끼는 그 엄청난 희열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싸우는 그에게는 승리나 패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선한 싸움을 치르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지요.  P79 마지막으로, 그 세 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젊은 날의 환상은 내려놓고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래의 누군가 아직도 인생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원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놀라게 되는 거죠. 하지만 실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요. 우린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겁니다.  선한 싸움을 벌이기를 포기한 것이죠.”

 

>> 누군가 아직도 인생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원한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놀라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 누군가는 바로 나니까. 너무나도 안일함에 빠져 변화를 피곤해(두려움이 아닌) 하는.. 그래서 이런저런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는 것은 결국 그 깊은 곳에서는 ‘그냥 이대로도 괜찮은데..’라는 평화와 작은 성취를 가장한 안일함 속에 빠져있는 것이 바로 나의 진실된 모습였음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것이었고.. 선한 싸움을 벌이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나는 모른 척했지만, 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페트루스를 통해 그 가면이 확실하게 벗겨지며 그 진 모습이 선명히 나타났을 뿐인 것이다.

 

P80 꿈을 포기하고 평화를 찾게 되면 얼마 동안은 평온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죽은 꿈들이 우리 안에서 썩어가면서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감염시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잔인해지게 되고, 마침내는 그 잔인성을 자기 자신에게 들이대게 됩니다. 그리고 고통과 강박관념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싸움에서 만날까 봐 두려워 피했던 실망과 패배가 우리 비겁함의 결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어느 날, 죽어서 썩어버린 꿈들 때문에 더는 숨 쉴 수도 없게 된 우리는 죽음을 바라게 됩니다. 우리의 확신, 우리의 일, 그리고 일요일 한낮의 끔찍한 평화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해 줄 죽음을요...”

 

>> 내가 와우에 들어오기 전에 겪었던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의 얼굴이 바로 이것이었다. 내 안에 썩어버린 꿈들.. 그 꿈들이 내 안에서 썩어 들어가며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까지 썩게 했고 나를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몰아갔음을.. 그래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음을.. 비 오는 날 빠울리스따 거리를 방황하며 돌아다니게 했고,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했음을.. 나는 그 순간의 그 느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왜 와우를 시작하게 되었더랬는지.. 다시 내 안일한 삶의 평온함에 나를 묻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무덤임을.. 나의 정신과 영혼의 무덤임을..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직 내 삶의 목표를 못 찾았다고.. 내 꿈이 뭔지를 모르겠다고 기운 빠져하고 낙심해할 것이 아니라, 되찾은 웃음과 그럼에도 무언가 하고 싶은 열정이 내 안에 되살아났음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바로 내가 내 꿈으로 가는 길 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단지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목표물이 없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단지 좀 더 멀리 있을 뿐.. 내 길을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나의 목표물은 언젠가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고, 내가 중간에 포기를 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가다 보면 그 목표물은 좀 더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내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내가 원한 때에 나타나 주지 않았다 해서 그리 기운 빠져할 일이 무엇인가..?

 

”목표물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목표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냥 키보 드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이 그려낸 표현이지만 무척 위로가 되는 말이다.. 참 마음에 든다.. 인간은 꿈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페트루스의 말이 떠오른다. 참 감사하다. 기도가 나오지 않는 그 고통의 순간에도 기도를 멈추지 말라던 빠울로 꼬엘료에게서 받았던 위로감.. 을 여기서 또 받는 듯하다. 꿈꾸기를 멈추지 마라.. 꿈이 내 안에서 썩어가도록.. 그래서 악취를 풍기지 않도록.. 꿈을 향해 선한 싸움을 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축제 제목일 것이다.

 

P82 하지만 우리는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눈앞에 두고도 우리에게 익숙한 길만을 따라가는 것이죠.”

 

P82 “우리의 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관대 해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징벌을 가하려는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엄격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잔인 해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죄의식, 자책감, 우유부단함, 비겁함 같은 정신적인 고통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그것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육체적인 고통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야기하는 해악을 알게 될 것입니다.”

 

P84 “인간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찾아낸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우리를 떠난 누군가로 인해, 그리고 우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고통을 받지요. 혼자인 사람은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통받고,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을 예속 상태로 변화시키지요.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 정말 끔찍한 일이다. 페트루스의 사랑과 인간 사이에 이어질 수 있는 모든 관계를 이토록 씸플 하면서도 명확하게 표현한 그의 표현력이 놀라웠다.
 

P85 바라바 (Barabbas)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바르 (Bar)는 아들, ‘아바 (Abba)’ 는 아버지를 뜻합니다.”

 

P94 자신의 개인 악마가 누구인지 모를 때는 그가 대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P96 한 시인이 말했지요, 어떤 사람도 섬이 될 수는 없다고 선한 싸움을 이끌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지만, 친구가 멀리 있을 때는 고독을 자신의 중요한 무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단호하게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이 ‘선한 싸움’을 이끌어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만한 전사가 되고 말 것이고, 그 오만함은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나머지 전쟁터의 함정들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P98 자신의 사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충고를 듣고, 필요할 때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죠. 그러나 결코 그가 자신의 규칙을 지시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소년에게 했듯이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그의 얼굴과 이름을 알아야 하고요.”

 

P99 “이미지를 빌려 비유하자면, 천사는 당신의 갑옷이고 사자는 당신의 검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갑옷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인을 보호하지만, 검은 전투 중에 땅에 떨어뜨릴 수도 있고, 친구를 죽일 수도 있고 그 칼끝이 주인을 향할 수도 있습니다. 검은 거의 모든 경우에 사용될 수 있죠, 그 위에 앉는 것만 빼고는”

 

P104 낮잠을 자기 위해 걸음을 멈춰야 할 시간이었지만, 페트루스는 계속 걷기를 원했다. 그것이 자신의 너그럽지 못했던 행위에 대해 속죄하는 것이라면서. 결국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나도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야 했다.

 

>> 하하하하하~ 결국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빠울로도 그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함께 속죄를 해야 했으니.. 빠울로의 어린아이 같은 투덜거림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옮겨봤다. 그런 그의 천진스러운 솔직함이 너무 좋다. 이미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느낀 거지만.. 그의 꾸밈없고 가식 없고 척~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친근하고 편하게 느껴진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꼭 그를 만나고야 말리라.. 그리고 꼭 사인을 받고야 말리라.. 사진도 찍으리라.. 증거를 남겨야 하므로….^___^

 

P109 “사자는 물질적 세계와 관련해서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 때에만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 ‘악마’와 ‘사자’의 개념이 내게 참으로 새롭게 느껴졌다. 가끔씩 우리는 듣곤 한다. 악마와 계약을 맺어 부자가 된 사람들 이야기. 사자, 즉 악마는 물질적 세계와 관련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페트루스의 말을 빌리면 그의 힘을 빌려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꼭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악마던 사자던 그가 선하고 악하고의 의미가 아닌 어떤 역할적인 의미만을 가진 거라면.. 단지 내가 그의 권능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그의 소유물이 되지만 않는다면, 그를 나의 친구로 두면서 좋은 조언을 얻고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페트루스.. 그의 해석이 너무나도 놀라웠고, 람의 예식을 통해 자신의 사자를 만나고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 빠울로를 보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아심과 부러움이 동시에 일어났다. 나도 그 예식을 시도해보았지만, 역시 예의 같은 문제(집중하여 몰입에 빠지지 못하는)로 그를 만날 수는 없으나 어떤 환영을 보긴 한 것 같다. 물론 그것 역시 진짜 환영을 본 건지 내가 지어낸 어떤 장면을 본 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마치 지상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이야기 같은 신비로움이 함께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브라질에서 간혹 듣는 영혼을 팔아 부와 명성을 얻었다는 유명한 인사들의 이야기는 어쩜 정말 그런 것이 아닌.. 이런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사자를 내 친구로 두고 잘 이용(?)하여 물질적 도움을 받는다는 것.. 영혼을 파는 것이 아니라면 두렵다기보다는 왜려 흥미롭게 느껴져 왔다.

 

P123 “당신은 보상을 찾아서 지금 여기 있습니다. 감히 꿈을 꾸며. 그 꿈을 현실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의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검에 도달하기 전까지 확실하게 알아야 해요.

 

>> 빠울로가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듯이.. 나도 내가 배움을 가질 때 그 배움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나의 꿈과 비전과 소명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P136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끊임없이 애쓰지요,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세계관이 진실이라고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P139 “신념이 없는 팀은 자신의 조국에 승리를 안겨주지 못하는 법입니다.”

 

P145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인 여자는 세상 그리고 선한 싸움과의 모든 끈을 끊어버린 겁니다.”

 

>>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표현이다.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인 여자는 세상 그리고 ‘선한 싸움’과의 모든 끈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선한 싸움’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건가..? 물론, 자신의 역할에도 충실하면서 ‘선한 싸움’을 치러내는 멋진 여성들도 있음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여성은 좀 더 이해받는 상황에서,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와 환경과의 전쟁 속에 자신의 선한 싸움을 치러가고 있다. 각자 상황은 다를 수는 있으나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비슷한.. 자신의 역할과 선한 싸움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며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가꿔가고 있음에 그녀들이 때때로 흘려야 하는 피의 의미는 더욱더 아름답고 고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 것일까..?? 양쪽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정신없는 역할 속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떤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상황. 하지만 나는 곧 그 무형태의 그림이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리라 생각한다. 그게 보는 사람의 개성대로 따라 해석되는 추상화가 될 지라도...^^;;

 

P148 그에 의하면, 낚시는 인간과 세상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속 노력한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목표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신이 우리를 얼마나 도와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P150 누구나 에로스를 추구하는데, 자기 안의 에로스가 필로스로 변화할 때는 이제 사랑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가장 고귀한 형태인 아가페로 가기 위해서는 필로스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저지르는 오류라고.

 

>> 사랑의 가장 고귀한 형태인 아가페로 가기 위해서는 필로스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즉 필로스의 인도로 아가페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추구한 것은 필로스적인 사랑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가페로 연결되는 사랑의 통로였다는 사실은 내게 뭔지 모를 충만감이 느껴지게 했다.

 

P150 “사자가 당신을 돕긴 하지만, 사자의 영역과 당신의 소명과 당신 자신을 넘어서는 무언가 존재하는 게 있죠.” “그게 뭐죠?” ‘신성한 섬광 같은 거죠, 사람들이 운이라고 부르는 것.”

 

>> 결국 ‘운’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이며 선물이라는 뜻 같다. 사자의 영역을 벗어나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해져 있는 그분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P154 아가페는 전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경험하는 이를 소멸시키지요. 아가페를 경험했거나 느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사랑 말고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가페는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 품었던 사랑이기도 하죠, 그 사랑은 너무 커서 천체를 뒤흔들었고,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고독했던 한 사람의 생이 세상의 왕들과 군대, 제국들도 할 수 없었던 일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P155 “아가페를 경험한 이들은 오지 사랑에 소멸되기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림들을 알고 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많은 성인 성녀들이 그랬고, 순교자들이 그랬고, 또 일상의 삶 속에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 그러하시다.
과연 사랑에 소멸되기 위해서만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가끔은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정말 그런 삶을 살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맛보았던 어떤 즐거움과 편안함을 놓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아가페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내가 손을 놓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것이고 그들에겐 이미 ‘유혹 Temptation’의 의미조차 가지질 못하질 않나.

언제나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대학 시절 홍 테오필 라 수녀님께서 그렇게 나를 수녀원에 보내시려고 그렇게 집요하게 유혹(?)하셨을 때도 나는 단호했다. “수녀님, 저는 제가 세상에 올 때 하느님께서 제게 누리라고 허락하신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살다가 죽고 싶어요. 그래서 수녀가 될 수 없어요.” 정말로 그랬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수녀님께서는 그분의 사랑 안에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예수님)를 나의 남편으로 모시며 살고 싶지 않으냐며 유혹의 끈을 놓으시지 않으셨지만, 수녀님의 고집만큼이나 내 고집도 집요했음을...수녀님은 아가페를 경험하시며 살고 계신 분이셨고, 그 무아경의 행복을 내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으셨으리라. 테오필 라 수녀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참으로 아껴주셨던 수녀님..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수녀님.. 문득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P156 아가페는 소멸시키는 사랑입니다.”

 

>> 피정 때 살짝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안에 충만했던 사랑, 기쁨 그리고 충만감. 그 사랑 안에 내가 소멸된다면, 내가 없어진다면, 내 자아가 없어진다면..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게 될까..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진 인간들.. 결국 내 자아가 내 안에 생기고 스스로 내 자아에 의해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죄가 되었다는 수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P156 아가페는 사랑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휩쓸고 온갖 틈으로 스며들어와 우리 안의 공격적 성향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 모든 것을 휩쓸고 온갖 틈으로 스며들어와 우리 안의 공격적 성향을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아가페. 어떻게 하면 그것에 다다를 수 있는 걸까..

 

P174 위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선한 싸움을 이끄는 동안 이 말을 결코 잊어버리지 마세요. 또한, 공격을 하거나 도망을 가는 것도 싸움의 일부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다만 싸움에 속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에 마비된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죠.”

 

P176 “하나의 사자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자를 무찌르도록 도와주는 일은 없습니다. 이미 말했듯. 그들은 선하지도 약하지도 않으며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개를 무찌르기 위해 아스트랭에게 의존해봐야 소용없습니다.

 

P179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가장 확실한 사실인 자신의 죽음을 부인하려고 하죠. 바로 그 죽음이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을 실현하도록 용기를 부여해준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말입니다. 인간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미지의 것에 대해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제한되어 있음을 잊어버리는 거죠. 죽음을 의식함으로써,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잃을 게 없기에 더욱 용감해지고 더 멀리까지 정복해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P187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충만한 삶을 즐기는 것일진대, 나는 무엇 때문에 거절당할까 두려워하고 싶은 일을 훗날로 미루었던 것일까?

 

>> 요즘 내가 나에게 되뇌는 말이다.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나..?? 왜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는 건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게 주어진 역할과 상황 속에 가장 모두에게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만약 온전히 나 혼자라면 벌써 배낭을 메고 떠났을게다. 그 정도 용기와 무모함(?)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아니던가..
P190 내면의 거대한 평온함이 날 사로잡았고, 내 곁에 어떤 존재가 느껴졌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하지만 두려움과 상상으로 만들어낸 죽음이 아니었다. 몇 분 전 내가 경험한 그 죽음은 나의 친구이자 조언자였다. 나로 하여금 남은 삶의 단 하루라도 비겁하게 살지 않을 것을 결심하게 한, 이제부터 그는 페트루스의 안내와 충고보다 내게 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훗날로 미루는 걸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치러내야 할 싸움들을 피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며,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줄 것이다. 이제 나는 결코 어떤 순간에도, 내가 행하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분명히 말해주었다. 다른 세계로 떠나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가장 큰 죄악과 함께 가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후회라는 죄악이었다.

 

>> 좀 더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싫어했던 단어가 ‘후회’고 가장 의지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가 ‘후회’이다. 지금은 어떤가..?? 물론 그 단어를 사용하진 않으나 내 삶이 과연 그렇게 보이고 있는가 이다. 눈을 감는 순간에 ‘그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 하며 후회라는 단어를 결코 쓰지 않을 것이다.

 

P192 위대한 스승에게 검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순례자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의 한 손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검을 되찾게 되면, 검을 쥔 손이 당신 자신을 해치지 않도록 기도를 드립시다.”

 

P193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이들을 굽어보소서, 자신들은 선하나 삶이 불공평하게 대우한다고 여기고 부당한 일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들은 결코 ‘선한 싸움’을 이끌어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에게 잔인하며, 자신의 행위에서 악한 것만을 발견하며, 세상의 부당함에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그분은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는 당신의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P195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자신들이 거쳐온 수많은 왕국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 이미 수없이 경험한 죽음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 언젠가 세상이 끝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나 수없이 죽음을 경험했음에도 자신이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믿는 사람들을 더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은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당신의 말씀을 모릅니다.

 

P196 언제나 손을 벌린 채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오직 사랑으로만 악을 이기려고 하는 사람들도 측은히 여기소서, 그들은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 가지고 가거라는 당신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 처음 들어보는 해석이다. 내가 언제나 손을 버려 자비를 베풀지 못함에.. 악을 사랑으로 이기지 못하고 화로 맞섬에서 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로 느껴져 조금 놀라우면서도 왜려 인간적으로 느껴져 긴장감이 풀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결국 악을 사랑으로만 보담으려하지 말고 칼로 맞서고 당당히 싸워 이겨내라는 소린건가..?? 오로지 사랑만으로 악을 이기려고 헛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란 소린가..?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맞는 것인가..?? 예수님은 악을 소멸하고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구하기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 내놓는 사랑으로 악을 사랑으로 덮었는데...
혹시.. 내가 이 페트루스가 하고 싶은 어떤 깊은 뜻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음...

 

P306 사람들은 고행의 고통만 바치려고 하지요,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우리가 자신의 고통과 더불어 기쁨도 함께 바친다면 그분께서 행복해하지 않을까요.”

 

P207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건 그것을 실제로 적용했을 때만 의미가 있는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내가 이미 수없이 말했듯, 산티아고 순례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이라는 것을. 삶을 살아가면서 또, 순례를 하는 중에도, 지혜란 우리가 장애를 극복하도록 도와줄 때만 그 가치가 있는 겁니다. 두드릴 못이 없다면 망치는 그 존재 이유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못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지요. 망치는 목수의 손에 쥐어져 그 기능을 발휘하도록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P208 제자는 자신을 이끄는 이의 걸음걸이를 결코 흉내 내어서는 안 됩니다. 삶을 바라보고, 고난과 정복을 체험하는 각자의 방식이 잇는 것이니까요. 가르친다는 것은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운다는 것은 그 가능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고요.”

 

>> 때때로 그룹 속에 함께하면서 난감한 느낌이 들 때 ‘이럴 때 선생님이셨다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하고 선생님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곤 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물론 때때로 도움이 되긴 하였지만, 역시 나는 선생님 당신이 아님으로 매번 그렇게 운이 좋지만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쩜 그것은 바로 내가 배운 것을 온전히 소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어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나가는 것이 아닌, 스승을 ‘흉내’ 내려했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 느껴졌다.

 

P211 “일단 결심을 하고 나면, 문제는 놀랄 정도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겁니다.” P217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시장의 야채 장수도 신성한 광기의 불꽃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아가페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온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것이므로 쉽게 퍼져나갈 수 있죠.”

 

P218 페트루스는 ‘푸른 천체 훈련’을 통해 내가 아가페를 깨어나게 할 수 있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러나 그 아가페를 활짝 꽃 피우려면, 내 삶이 철저히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라도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가 일어남으로써, 비옥한 토지로 변화한 내면에 창조적인 상상력이 그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P229 종종 운명이 야기한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할 때가 있지요.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의지가 담긴 행위입니다. 일상에서 만족할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항해 싸우고자 하는 자유의사에 따른 행위, 구체적인 욕망 말입니다.

P230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나쁜 결정이 어떤 것인가를 인식하는 겁니다.” 내가 염려하는 바에 관해 말하자 페트루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 없이 또 다른 길을 살펴본 다음 결정하는 것이죠.”

 

>>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생각 없이 또 다른 길을 살펴본다.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나쁜 결정이 어떤 것인가를 인식하는 것.. 리스트에 내가 막연하게 느끼는 그 무엇까지도 적어놓고 하나하나 제외시켜나가며 무엇을 내가 가장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지를 짚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P243 나는 군단이 내 몸을 통과해 대지를 향해 내려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 아가페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군단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사랑에 의해 소멸되길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의지였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투쟁하려는 나의 의지, 저항하고 있는 내 영혼 속으로 들어간 아가페의 의지였다. 온몸이 떨려왔다.
>> 빠울로의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져 왔다. 과연 가능한 상황였을까.. 빠울로가 개를 물어뜯으며 악마와 대적하는 상황이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 영화처럼 영상이 그려졌고, 개 안에 있던 군단이 빠울로의 몸으로 들어와 빠울로를 점령하려 몸부림치고.. 빠울로는 자신 안의 아가페를 자신의 의지로 일깨워 결국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사랑에 의해 소멸되길 원하지 않는 군단을 대지로 쫓아내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그림이다..

 

P250 손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적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고 그와 어떻게 맞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검은 일격을 가하는 데 쓰일 뿐입니다. 손은 이미 그전에 승자인지 패자인지 결정되는 것이고요.

 

P251 적은 우리의 약한 면에 대한 상징입니다.”

 

P251 “그것은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승리에 대한 성급한 확신이거나, 전투가 필요 없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포기해버리려는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적은 우리에 대한 승리를 점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싸움을 시작합니다. 자만심으로 인해 우리 스스로가 무적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그때지요. 싸움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자신의 약한 면만을 방어하려고 하지만, 막상 적이 공격하는 곳은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믿고 있는 곳 말이죠,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패인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적에게 싸움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죠.”

 

P252 “전쟁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적은 우리에게 발전과 능력 발휘의 기회를 제공하지요.”

 

P252 적은 아가페를 이루는 한 부분입니다. 그는 검을 사용하는 우리의 손과 의지, 그리고 용도를 시험하기 위해 존재하죠. 그가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며 그 의도는 실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싸움을 피해 도망간다는 것은 최악의 사태인 것이죠. 싸움에서 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겁니다. 패배를 통해서는 무엇이든지 배울 게 있지만, 도망을 간다면 적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게 없으니까요.”

 

P253 순례길 위의 나무 십자가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피와 배신, 그리고 버림받음이 있었던 것이다.

 

P253 싸움에서 적을 무찌르기 위해 가장 믿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신의 현재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가장 믿게 됩니다. 바로 거기에, 진심으로 승리를 갈망하는 욕망인 아가페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분명히 밝혀두어야 할 게 있습니다. 적이 을 의미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적은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검이 칼집 속에서 녹슬지 않게 말이죠.”

 

P256 소리에는 모든 것이 씌어 있죠, 인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귀 기울여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삶이 우리에게 매 순간 아낌없이 주는 조언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만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겁니다.

P274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믿는 이들은 명령을 해야 할 순간에는 우유부단해지고, 복종해야 할 순간에는 반항적이 되지요. 명령을 내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마십시오.

 

>> 마치 나를 향한 따끔한 일침 같았다. 물론 나는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외려 때때로 내가 삶 속에 맞게 되는 원하지 않는 상황들은 모두 나의 지혜롭지 못한 행동의 결과임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단지, 나를 향한 일침으로 들렸던 것은 나는 명령을 잘 내릴 줄 모른다. 부탁도 쉽지 않다. 명령을 내리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런 종적인 관계가 주는 분위기가 싫을 뿐이다. 내가 가장 편하게 부탁을 하고 그나마 명령이라고 내리는 아이들은 바로 우리 직원들이고, 그 아이들에게도 명령이라기보다는 늘 부탁하는 어조로 말을 한다. 아마도 내 피에는 ‘명령’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에 나 역시 ‘명령’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게 부탁조가 아니라 명령조로 말하면 그냥 귀에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가 삐죽 선다. 언니 되는 분들도 마찬가지고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명령조로 말하는 이들은 정말 싫다. 그것은 어쩌면 사회 안에서 종적인 관계가 아닌 횡적인 관계 속에서 함께 하는 공동체인데 그런 어투를 사용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결여된 기본적인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친절함과 상냥함은 몸에 배어 나타나는 것.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들이라 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아닌가 싶다. 부탁을 해올 때는 얼마든지 웃으면서 들어드리지만 (상황이 안될 때는 못 들어드리지만..), 명령을 해올 때는 차가운 반응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못된 나~) 루도비꼬가 명령해올 때만 투덜대면서도 ‘절대복종’이다.. 어흑~ ^^;;


암튼.. 물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름은 당연하지만, 대체적으로 명령을 하는 것도.. 명령을 받는 것도 싫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어쩜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면 저 안에 깊은 곳에 ‘겸손하지 못함’이 깔려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건 좀 더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P278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때 비로소 배울 수 있다는 것. 함께 신비로운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당신이 의례들을 배우는 동안 나는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당신을 가르침으로써 나는 진정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이지요.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비로소 나 자신의 길을 찾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P279 우리 모두는 누군가 말해주기 전부터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삶은 매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니까요. 따라서 비밀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이번처럼 특별한 모험에 참여하게 될 경우에만 그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 깨달음을 갖는 듯하면서도 삶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하신 선생님의 깊은 뜻을 알 것만 같았다.


P300 페트루스가 내게 끈질기게 이해시키려고 했던 것, 내가 배운 것과는 반대로 중요한 것은 결과라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노력은 유익하고 필수적인 것이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 광내기로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역시 내가 배우고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상반된 주장이나, 페트루스가 무엇을 이해시키려는 것인지 그 뜻을 알 것만 같았다. 물론 과정도 중요하고, 목표까지 가는 과정을 즐기되, 좀 더 단호한 치열함으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계획했던 결과를 내라는 것 아닐까.. 성취 주의자적인 발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삶 속에서 안일함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이 처음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중간에 잊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그 꿈을 이룰 때까지 깨어있고 꼭 이뤄내어 그 꿈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안타까움 내지는 간절한 바람에서 나온 표현이 아닐까 싶다.P301 아직 더 견뎌내야 할 것이 있었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 내 검을 되찾고 비밀을 밝혀 내리라는 희망을 간직해야 했다. 누가 알겠는가? 이 어린 소녀가, 내가 이해하고 싫어하지 않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지.


P307 페트루스는 늘 강조해 말했다. 승리에 이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보상을 추구하고 기대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세상사를 잊은 채 온 신경을 내 검에 집중할 때마다, 그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나를 현실로 다시 데려왔다.

P309 사자가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고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 이 구절을 읽은 순간 너무나도 당연하면서도 그가 지닌 깊은 뜻에 웃음이 나오면서 ‘탁~!!’하고 어떤 깨달음이 왔다. 사람이 각자 그의 본성대로 행동하는 것에 내가 화를 내고 열 받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그가, 그녀가 그들의 본성대로 행동하는 것을 결국 내가 화낼 일은 아니며..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그들 모습을 받아들여야 함을, 이걸 가슴으로 느끼기까지가 이리도 힘들었던 걸까..??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성녀가 되어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이해가 되면 이해가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대로 감정을 섞지 않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P311 순례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가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오직 검이 숨겨져 있는 장소였다. 왜 그것을 찾고 싶어 했는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자문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보상만을 생각하는 데 소진되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는 그 욕망의 대상에 아주 확실한 목적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보상에 대한 유일한 동기였다. 그것이 내 검의 비밀이었다.

P311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떼어내 내가 검으로 하고자 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종이를 정성스레 접어서는 길가의 돌 아래에 넣었다. 페트루스의 이름과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 머지않아 종이는 부식되어버리겠지만, 나는 페트루스에게 상징적으로나마 전해주고 싶었다.


>> 이 구절을 읽는데 코가 시큰거려지며 눈물이 맺혔다. 빠울로 코엘료가 그 사랑의 의식의 행할 때 느꼈을 그 느낌이 그냥 그렇게 가만히 아주 잔잔하게 내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깨달음과 감동이 그렇게 물무늬가 퍼져 나가듯 그렇게 내게까지 번져온 것이다.


P322 검을 찾기 전에 저는 그 비밀을 먼저 발견해야만 했습니다. 그 비밀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 검으로, 그 검이 주는 행복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아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요.


>> 이것은 바로 나에게 하는 이야기였고 외침이었다. 내가 무엇을 배우던 나는 단지 배우는 것만이 목적이었지, 나는 그 배움으로 내 삶 속에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고인 물처럼 늘 내 안에 쌓아놓는 것만 좋아했지 그것을 풀어낼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정작 내 삶 안에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워내지 못하니 시간이 흐르면서 정작 나는 내가 내 삶 속에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도 모르게 되었던 것 같다. 방향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적어도 그 길 위에 있다는 느낌에 희망이 보이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P326 나는 인간이 매일의 삶에서 여쭈어낼 수 있는 기적을 믿었다. 높은 산보 우리들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 도전하기 위해서라고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 영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고.

P330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할 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제때 그곳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 문득 당신의 책 한 두권 달랑 읽음으로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조그만 Coreana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함을..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그가 느끼고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할 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제때 이르기 위해 빠울로 꼬엘료가 내가 있는 상파울루에 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아주 야무진 상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웃음이 나왔다.... ^^;;


P337 선택된 자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묻는 대신 마음속의 열정을 깨워줄 무언가를 실행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었고, 천국 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그 일 속에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변화를 부르고,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를 신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닿게 해주는 것은 열정이지, 수백수천의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고, ‘비밀 의식’이나 심오한 교리를 따른 입문식이 아닌,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이라고.


>> 오랜만에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프린터 A/S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소한 일부터, 거래처와의 까다로운 사안을 해결해야 하는 다소 중요한 일까지.. 일 속에 푹 빠져 지낸 하루였다. 오늘 내게 일어난 일은 주로 ‘문제’들로 중간중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안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지금 현재 내 앞에 주어진 일은 가게 일이고 가게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고 그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나에게 빵을 주고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기반을 만들어주고 또한 우리 애리와 리예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줄 수 있는 곳임으로 내게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이 안에서 열정을 내어 열심히 일하며 언젠가 내게 다가올 기회를 잡기 위해 준비를 하며 공부를 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 마음이 가벼워진다..


P339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만족스러운 급여와 심리적인 안정, 내가 익히 알고 있으며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바뀌어야 했다. 내 꿈을 좇아야 했다. 비록 그것이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실현 불가능한 것이라 해도, 늘 마음속으로는 바라 왔으나 뛰어들 용기를 내지 못했던 꼼, 그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 순간 놀랐다. 타고난 작가처럼 느껴졌고, 마치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작가였을 것 같은 빠울로 코엘료가 작가가 되기 위해 용기를 내어야 했다는 것은 내게는 너무나도 놀랍고 의아스럽고 어색하게만 들렸다. 한쪽으로는 ‘그 역시도 그랬구나..’하며 어떤 위로 감도 느껴졌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 꿈을 이루기 위해서 변화를 시작할 때 어쩔 수 없이 두려움에 쌓이며 용기를 내어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그런 그들이 그럴 정도였다면 내가 그런 것은 당연하다 싶었다. 용기... 용기... 용기...


P341 나는 항상 꿈꾸어왔던 것을 향하고 있을 뿐, 내 삶이 변화하리라는 데 대해 어떤 믿음이나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먼 훗날인 오늘, 오래전 그날 패 트루스와 함께 지나갔던 이 바에 앉아 내 아내는 책을 읽고, 나는 노트북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미래를 향해 걷고 있다. 1986년 8월 그날 오후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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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울로가 느꼈던 아가페의 사랑..The Power of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