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축제 25] 에릭 부스의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을 읽고....

pumpkinn 2009. 6. 16. 00:04

 

에릭 부스의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를 읽고...

 

 

 

 

 

에릭 부스 - 저자 조사

 

에릭 부스..그는 너무나도 많은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다. 연극 배우였고, 극작가였고, 감독었고, 사업가였고, 시민단체 리더이며, 작가이고, 그리고 지금은 쥴리어드 음대 에술 교육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많이 구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책에서 잠깐잠깐 언급되는 그의 삶을 보아도 그 삶 자체가 예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릭 부스는 참 섬세한 사람이라고 느껴졋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상속의 많은 일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가면 마치 하나하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마치 그의 눈에 띄게 되는 것은 내 삶에 생명이 주어지는 마냥 그렇게 생명력이 불어넣어지는 것 같았다. 예술가의 눈이란 그런 것일까..?? 그의 말대로 우리는 예술을 너무 멀리.. 높게.. 놓고 동경의 대상을 본다. 나 역시도 그 부류중의 한명일 것이고. 에릭 부스는 그런 우리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 에술을 우리 일상으로 끌고 내려와 우리와 함께 숨쉬게 하며 그와 익숙하게 하고 가깝게 느껴지게 해 주었다. 사소한 것에서 섬세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보여주며, 실지로 그의 경험도 들려주며 에술이 우리 일상속에 함께 있음을 보여주려 노력했고, 우리는 우리 삶 속에 묻혀있는 숨겨져있는 예술을 보았다.

 

에릭 부스는 다른 책과는 달리 강한 열망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내게는 빨간색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왜려 강한 빨강이 빠진 옅은 붉은색 정도로 느껴져오며 덜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가 말하듯 신중하게라는 표현이 바로 이쯤에 해당될 것이다. 호들갑 떨며 갑자기 전쟁터로 싸우러 나가려는 전사의 모습 아닌.. 차분히 내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를 체크하게 하는 신중함.. 아주 쉬운 것 부터.. 아주 작은 것 것 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느끼며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자그마한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그래서 정말 부담없이 무언가 하나라도 다시 재정비하여 시작할 수 있는..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어쩜 그는 많은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하면서 그들의 실패를 보았고, 또한 많은 경험이 가르쳐준 지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 해보았다..

 

에릭 부스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는 작가지만, 왠지 그의 다른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를 좀 더 잘 알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도 많은 경험을 하며 지내온 그의 삶이 책보다 더 재밌을 것 같단 생각.. 삶을 예술처럼... 내 마음에 깊이 새겨본다..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을 읽고...

 

리뷰를 시작하며..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 제목은 무척 매혹적이고 유혹적인데.. 왠일인지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았다.. 그것은 책이 재밌고 안재밌고를 떠나서 내용과는 무관하게 자꾸만 내가 읽다가 딴 생각을 하는 것.. 읽다보면 내가 무슨 내용을 읽었지..?? 하고 되돌아와 읽기를 여러번.. 뭔 생각이 그리도 많은 건지.. 왠지 갈 길이 멀게 느껴졌다. 초서는 고사하고 축제 기간동안 내가 제대로 읽어내기나 할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관찰부분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잡히기 시작했고. ‘몰입의 경지는 아니나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읽으면서 일상, 그 매혹적이 에술이라는 제목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단 생각을 했다. 에릭 부스는 그야말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 때때로 (또는 자주) 무료하고 지겹고 또는 지치게 느껴지는 일상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무채색이던 일상에 아름다운 색을 입히고, 맛을 내는지 자신의 경험과 사레를 들어 보여주었는데, 우리의 일상을 예술 작업으로 연결하며 이야기가 참 새롭게 다가왔다. 예술가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하고 글을 써야만 예술가가 아닌, 일상을 예술 작업으로 끌어내는 모두가 예술가란 에릭 부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마치 내가 점알 멋을 아는 예술가처럼 느껴져 살푼 으쓱거러보기도하며 혼자 분위기에 젖어 읽었던 시간이었다. 읽으면서 선생님의 보보의 드림레터를 읽을때의 감동이 떠오른곤 했다. 드림레터에서 선생님은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란 표현을 자주 하셨고 우리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참 많이 강조하셨더랬다. 나는 그 표현을 유독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르고.. 순간순간 그때의 감동 속에 다시 젖어들었던 시간이었다..

에릭 부스의 책에서 내가 참 좋았고 재밌게 느껴졌던 부분중의 하나는 바로....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뜻을 어원풀이로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원을 알고 나니 그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의미로 쓰여지던 것이 시대가 바뀌며 전혀 다른 의미로 변형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전혀 반대의 뜻으로 변형된 것도 있고.. 정말 깨소금처럼 고소한 맛을 주는 재미였다. 여기서 그릭 웨딩을 또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모든 단어를 그리이스어로 풀이해내던 아빠..^^ 정말 그럴듯한 풀이에 정말 그런가..?’싶은 착각까지 일으키게 하는.. 암튼.. 에릭 부스와 함께하는 어원 풀이는 내게 많은 흥미믈 불러 일으켜주었고 더 많은 단어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두번째 그의 책에서 재밌게 느껴졌고, 또 실천하고 실험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관찰부분이었다. 관찰은 에릭 부스를 통해 알기 이전에 나도 알게 모르게 심심할때 하던 것인데 그의 체계적인 설명속에 이런 깊은 관찰이 얼마나 삶을 재밌게 이끌어주는지 좀 더 깊이 알수 있었고, 그냥 겉만 보는 관찰이 아닌 에술가의 눈으로 감성가의 눈으로 관찰하고 탐함하고 세상을 읽으며 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 늘 그렇고 그런 일상을 어떻게 재밌게 즐겁게 보내며, 그 안에 묻혀버린 열망을 이끌어 낼수 있고 키울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그중의 하나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책을 읽어갈수록 점점 다져짐을 느꼈다.

열망은 우리 마음 속에 깃든 욕망이며, 형태를 드러내고 싶은 영혼의 소망이다.’ 열망의 정의가 참 맘에 들었다.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정채다.’.라고 말하는 에릭 부스.. 성공은 어떤 결과가 아닌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그의 성공의 정의는 색다르게 느껴졌고, 나에게 질문하게 했다. ‘그럼 나는 성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정채하고 있는 사람인가..?’ 성공하려고 발버둥 치면서 제자리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란 나의 주저없는 답에 웃음마저 나오기도 하고..^^

송어 이야기는 너무나도 재밌었다. 읽으면서 저절로 상상되어지는 장면을 보며 얼마나 킬킬거렸는지…^^;; 그 주인이 참 마음은 고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송어.. 다른 곳에 갖다 넣을 수도.. 또는 다른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는데.. 송어를 피해다니느라 그런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웃겼다. 마치 무슨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애저녁에 그 송어를 갖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송어가 알까봐 특공 대원처럼 기어나가는 주인을 상상하며.. 정말 이거 실지 이야길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정말 참 착한 사람이다.. 인간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송어가 인간을 자기 맘대로 부리는 폭군이 되었다는 이 모순적인 이야기.. 이 웃긴 이야기를 읽으며 참 많은 복합적인 느낌이 함께 했다.

그리고..그가 햄릿과 함께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나 또는 무엇인가에 이토록 열광하며 깊이 심취하며 그것을 내 삶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한 적이 있었나...그렇게 미친 적이 있었나..?? 에릭 부스처럼.. 그렇게 두고두고 되새기고 또 읽고 읽으며 내 삶과 일치시키고 생각하고 깨우치는 것...그런 무언가가 나에게 있었나..? 나도 그렇게 미쳐보고 싶다.

 

리뷰를 마치며..

그는 세상 만들기’, ‘세상 탐구하기’, ‘세상 읽기를 통해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예술을 끌어 들이고, 삶을 예술처럼 살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이 세가지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려했다.

나도 그처럼 그냥 무심결에 나와함께 하는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지켜보고 싶다. 그렇게 아무런 느낌없이 지나가는 일상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는지,. 얼마나 많은 감동이 숨어있는지, 얼마나 재밌는 놀이들이 묻혀있는지.. 나도 그처럼 그렇게 일상을 지켜보며 재미를 느끼며 살고 싶다는 바램이 큰 열망이 아닌 잔잔한 바램으로 다가왔다. 그가 들려준 그의 해변가에서의 실험은 무척 재밌는 경험이었다. 이야기를 읽는동안 마치 영화를 보듯 그를 따라 그의 일상에 함께 한 즐거움마저 느껴졌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와우팀에 더욱 애착이 갔다. 인제 다음 주면 끝나는 지점에서 지금.. 역시 아쉬움이 앞서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열심히 했다해도 모자란 부분있었고, 부족한 부분 있었고, 성실을 다하지 않은 부분 있었기에..  암튼.. 그가 말한 도제 제도는 바로 우리 와우를 말하는것 같았다. 믿고 따르는 스승과 제자.. 그리고 함께가는 친구들. 내 삶을 와우라는 감탄으로 채우게 될 내 삶.. 일상 속에서 나는 와우~’ 감탄을 연발하며 내 삶을 그렇게 감동으로 이어가고 싶단 강한 열망.. 이 다시 내 안에서 꿈틀거리게 한다. 내 안의 아마추어의 열망이 꺼지지 않기를.. 그래서 나도 재즈처럼 신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를 읽다가...

 

P13 예술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일상적인 삶의 연속이다. 우리 모두는 예술의 일부분으로서 예술적인 역량을 발휘하며 매일 예술가처럼 살고 있다. () 예술을 어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결과물이 아름다우면 그것이 곧 예술이다.

 

>> 내가 와우이기전에 ‘보보의 드림레터’를 읽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시던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라는 표현을 참 좋아했는데, 이 부분을 읽다가 문득 그 생각이 떠올랐다.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 그러게 나도 나의 삶을 조각하는.. 일상을 조각하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P17 art’는 동사다. 예술의 어원을 살펴보면, 본래 이 말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이란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예술은 ‘짜 맞추다’를 뜻하는 동사로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이란 일년의 경험이나 실험처럼 무엇인가를 관찰해서 얻어내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즉 예술이란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보다 확실하고 실질적인 방법인 셈이다.


P17 이 책의 목적은 예술의 본래 의미를 되찾아 일상의 삶에서 예술을 목적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앞서 제시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예술이란 우리에게 친숙하고 재미있으며 매력적인 행위이다. 다시 말해 ‘진지한 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앞으로 이어질 내용들이 자뭇 궁금하다. 어떤 ‘진지한 놀이’를 가르쳐 줄 것인지.. ^^


P18 첫째, 우리도 베토벤처럼 멋진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사무실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사리에 맞게 판단하며, 배우자나 자식에게 당신의 사랑을 알라는 것첢 무엇인가를 짜 맞추는 행위를 바로 예술 작품이다.

 

P18 둘째, 평범한 공간과 구별되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그곳이 꼭 박물관이나 공연장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내면에서 불끈 치솟는 일조의 경험, 즉 마음가짐이 바로 그러한 공간이다.


P24 그러나 수채화가 정말로 관절렴을 낫게 하는지 누가 입증하겠는가?

 

>> 푸하하하~ 표현이 넘 웃겨서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


P25 예술 행위에 몸소 참여하는 사람은 예술의 가치를 스스로 터득하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P35 예술과 마찬가지로 ‘세상 world’이란 단어도 처음에는 한층 더 폭럽고 복잡한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고대 게르만어 중에 인간을 뜻하는 ‘weraz’와 시대를 뜻하는 ‘ald’를 결합하여 ‘인간의 시대’의 신비한 면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단어의 뜻이 원래의 영적인 의미에서 멀어져 점차 세속적인 의미로 변질되었다. 시간이 ‘세상’의 의미를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셈이다.

 

P37 세상은 내적인 질서를 가진 완전체이지만 그 질서가 고정되어 있거나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은 협력 관계에 있는 두 삶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객체로서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세상에 뛰어들어 다른 것들과 맺는 관계의 삶이다. 하나의 그림이 하나의 세계일 수 있듯이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도 하나의 세계이다.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름다운 정원과 시, 그리고 사랑 등 그 범위가 좁든지 넓든지, 또 ‘예술’을 매개로 삼든지 아니든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복잡한 진실을 담고 있고 의미 있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하나의 세상이 될 수 있다.

 

P36 ‘짜 맞추다’라는 예술의 본래 의미를 고려할 때, 의미 있는 것을 만드는 행위야말로 예술의 핵심이다. 공자의 조립라인에서 생산하는 물건과 예술품을 구별하기 위해 ‘의미 있는’ 이란 수식어가 꼭 필요하다.

 

P38 세잔은 “자연과 일체화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떤 세계를 만들 때나 그대로 적용된다. 의미 있는 세계를 만들려면 자연의 하나가 돼야 한다. ‘자연’이란 단어는 라틴어 ‘natura’에서 파생됐다. 라틴어에서 ‘natura’는 원래 ‘탄생’을 뜻하는 말이지만. 사람과 사물의 내적인 속성을 듯하기도 한다. 사물의 자연은 사물의 본질을 뜻한다. 예술 행위는 이런 내적인 속성과 하나가 되고, 여러 재료를 질서있게 조합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철학을 중심으로 진실을 체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P43 ‘세상 일기 reading the world’ 란 지극히 평범한 삶의 한 부분에서 삶의 중요한 의미를 찾으려는 이러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마음가짐이 습관이 된다면 상징적 의미로 가득 찬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하다. 겉모습 뒤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고, 우리에게 있는지조차 몰랐던 능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P49 본래 기술이란 단어는 화려한 테크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기본적인 솜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실제로 기술은 내적인 능력, 즉 깜짝 놀랄 만한 재주의 근본을 의미한다. () 마음과 정신에 관련된 내적 ㅣ술이 있고, 몸과 손에 관련된 외적 기이 따로 있는 것이다. 예술에서 내적 기술은 현란한 손 기술을 이용하여 걸작을 만들어낸다. 결구 손이 혼자 하느 일이 아니라 손이라는 수단을 통해 예술의 내적 기술을 표현할 때, 그것을 예술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P51 우리 내면에 깃든 예술적 기술은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P53 예술 행위의 에너지원은 ‘열망 yearning’이다. 열망은 더 많은 것을 발는 인간의 본능이다. ‘더 많은 것’은 주로 근사치로 표현된다. 더 큰 만족감, 미지의 것에 대한 더 깊은 이해려, 향상된 직감력, 더 나은 질문에 대한 더 나은 대답………. 열망은 자연의 힘이다.

 

P54  인간에게 있어 경험이라는 시앗도 햇빛과 땅을 향해 뻗느 잠재력을 갖는다. 요컨데 미지의 씨앗도 햇빛과 땅을 향해 뻗는 잠재력을 갖는다. 요컨데 미지의 것을 추구하는 동시에 감격적인 근원을 찾아간다. 열망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성장한다. 열망은 낯선 것을 탐구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연료이다. 또한 열망이 있을 때 우리는 끈기를 유지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열망이 있을 때 비로소 개인적인 잠재력을 꾸준히 확장할 수 있다.

 

P54 누구나 나름대로 열망을 갖는다. 이름을 붙이기도 힘들고 때로는 무엇인지조차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서든지 열망이라는 자극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더 많은 것’들을 갖고자 노력한다. 그런 욕망에 귀를 닫거나 억누르며, ‘부질없는 짓’이라고 해석한다면 삶의 질이 떨어질 뿐이다. 이는 삶의 일부나 전체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P54 ‘ 더 많은 것’이란 인류가 수천 년 전부터 열렬히 받아들인 경험의 총체이기도 하다. 사랑하며 사랑 받고 싶은 욕망, 살아 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고 싶은 욕망, 신과 교감하고 싶은 욕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욕망,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고 바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열망은 우리 마음속에 깃든 욕망이며, 형태를 드러내고 싶은 영혼의 소망이다.

 

>> .. 얼마나 소름끼치는 표현인가.. 내가 삶 안에서 원하는 그 모든 것이 여기에 다 들어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고 싶은 욕망’...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끼고 싶다는 부분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래.. 그냥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난 ‘처절하게’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러게..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하느님과 교감하고 있음을.. 처절하게 느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배우고 싶고..내가 올바르게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내 몸을 불 살라 느끼고 싶은 것이다. 불 살라 재가 되었음 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내가 열정을 쏟아 붓는 것에 나를 불사르고는 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P55 영국의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 제목처럼, 열망은 ‘푸른 관을 통해 꽃을 밀어내는 힙’이다. 나는 열망을 ‘우리를 엔텔레키 entelechy’로 돌아가는 엔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엔텔레키는 “목적을 갖다.” 또는 “완벽을 구현하다.” 를 뜻하는 그리으서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지금은 “우리에게 내재된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다”를 뜻하는 말이다.

 

P55 자신의 엔델레키를 깨닫고 그 꿈을 실현하려면 예술 행위가 필요하다. 예술 행위만큼 우리를 확실하게 엔텔레키로 인도하는 매체는 없다. 종교와 지식 교육, 명상, 출세 등도 좋은 수단이기는 하지만 예술 행위만큼 포괄적이거나 강력하지 못하다. 개인의 욕구에 유연하게 대처하지도 못한다. 예술 행위만큼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아름답지도 않다. 게다가 그 모든 수단에는 예술 행위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전문적인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하든간에 거기에서 예술 행위를 찾아내고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곧잘 열망(yearning)과 갈망(longing)을 혼동한다. 갈망은 시간에 얽매이는 구체적인 육망인 반면에 열망은 마음과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심원한 욕망이다. 갈망은 무엇인가를 갖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에 가깝다.

 

P56 우리가 꾸준히 성장하려면 열망을 결코 충족시켜서는 안 된다. 열망은 충족되는 순간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을 얻는 과정이 표면적으로만 계쏙되더라도 열망은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P56 예술가는 열망을 갖는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이 잠재력만으로 탁월한 성괄르 거둔 것은 아니잖은가? 예술가는 열망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첫째, 열망의 힘을 최고로 유지하고 둘째, 그런 열정을 행동에 옮겨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낸다. 특히, 두 번째 과제에서 계획을 적절하게 추진해야 첫 번째 과제까지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술가는 잘 알고 있다. 예술의 열망은 정교하게 설계되어 크고 작은 규모로 표현된다.

 

P57 예술에서 웅대한 열망은 영웅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프로젝트 전체를 계획해서 완성하겠다는 용기, 오랜 시간이 걸려도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 어떤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끝까지 해내겠다는 결심, 전혀 예상치 못한 경우까지 모든 가능성을 조사하겠다는 열린 마음이 엿보인다.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든 예술가라면 웅대한 열망이 있어야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감동을 안겨주는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다.


P58 “우리의 열망은 감탄하는 능력과 정비례한다.!

 

>> 그럼 나도 열망이 많아야겠네~?? 감탄 감동 좀 잘하나~ ^^


P58 어린아이와 함께 지내는 특권의 하나는 아이들이 아름다운 장난감이나 초라한 강아지에게 똑같이 감탄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능력을 재발견하는 데 있다.

 

P58 스코트랜드의 극작가 제임스 배리는 일찍부터 이런 사실을 깨닫고 “천부적 재능이란 무엇인가? 자유자재로 소녀 시대로 되돌아가는 힘이다.” 라고 말했다.


P58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감탄과 점점 멀어진다. 현실 세계에서 요구하는 일도 감탄과 거리가 멀어 아예 감탄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린 듯하다.

 

>> ‘콘크리트로 감탄을 덮어버린 듯하다’라는 표현이 맘에 든다. 나는 내 감정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싶은데...


P60 감탄이 없다면 열망도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감탄은 극히 드물면서도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 두려움과 살아남겠다는 몸부림이 감탄의 표출을 억누른다. 탐닉과 분노가 감탄의 경험을 묻어버린다. 그러나 인도 밑에서 때를 기다리는 씨앗처럼 감탄은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간다.

 

P61 감탄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어린아이의 감탄은 본능이다. () 감탄은 맨발로라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다.

 

P61 감탄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거니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감탄하라고 강요할 수 없고, 누구도 우리를 대신하여 감탄할 수 없다.

 

P62 감탄의 주체는 ‘외부에’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이다. 우리가 감탄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뜻한다. 무엇인가를 알고 무엇인가를 조절한 것이다. 바로 그 기술이 중요하다. 우리는 감탄하면서 지금보다 더 큰 세계에 뛰어들며 기존의 세계를 넓혀간다. 감탄은 소유하겠다는 욕심을 버린 순수한 참여이다.

 

P62 우리에게 감탄을 안겨준 사건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감탄하던 순간은 여전히 남아 우리의 기존 관념을 바꿔놓고, 상상력과 이해력을 북돋는다. 감탄은 예술 행위를 자극하는 충동이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반응이다. 이 관계는 역으로도 성립한다. 다시 말해 예술 행위가 감탄하는 능력을 되살려내는 거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술 행위는 무척 중요하다. 예술 행위에 의식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예술가처럼 삶 자체를 경이롭게 살 수 있다.

 

P64 열망은 어떻게 생명력을 가질까? ‘감탄이 감동하는 능력을 점화시키고 열망이 예술 행위를 끌어가는 엔진이라면, ‘반응 responding’ 1단 기어쯤 된다. 우리는 지금 예술가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기술을 살펴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반응은 우리가 실제로 관찰해서 모방할 수 있는 첫 번째 행동이다.

 

P65반응하다 respond’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뒤로혹은 다시를 뜻하는 ‘re’약속하다를 뜻하는 ‘spondere’로 이루어진 합성어 ‘respondere’이다. ‘배우자 spouse’보증인 sponsor’도 약속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볼 때 반응하다답례로 약속하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반응은 자극에 따른 단순한 무릎 반사가 아니다. 토크쇼의 사회자가 던진 질문을 재치있게 받아넘기는 대답도 아니다. 반응은 개인적인 약속이고. 일조의 계약이다.

 

P65 반응 능력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부딪쳐 보겠다는 열정이다. 따라서 반응 능력에는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서 움켜쥐겠다는 대담한 열의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런 열정적인 자세로 예술가는 눈에 띄는 거의 모든 것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P66 새로운 것에 반응해서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찾아내고자 하지 않는 태도는 책임의 거부라고 할 수 있다.

 

P66 과거의 판단을 버리고, 눈앞의 것을 있는 그대로 인식해서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자세, 이런 정도의 반응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식의 반응은 우리와 예술적 재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이런 연결고리를 만드는 주체는 바로 우리이다. 연결고리는 우연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만약 연결고리로 의문을 선택했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의문일지라도 그만큼의 성취를 이룬 셈이다.

 

P67 반응이란 일조의 약속으로서 다음번에 그림을 감상할 때 그 연결고리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현대미술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약속을 깬 무책임한 행동이며, 우리 잠재 능력의 일부를 죽인 행동을 한 셈이다.

 

>>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이다. 그러기에 감히 내가 알지도 못하는 작품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표현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실은 무쉭이 탄로날까봐…^^;;) 그런데 이 구절을 읽다보니, 내가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언급을 안 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림에 무쉭한것두 서러분데...하마터면 무책임한 아줌마로 덤탱이(?) 쓸 뻔 했다.. 하하하~ ^^;;


P67 요즘 우리는 현대인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책임 의식이 부족하다고 불평하곤 한다. 심지어 불쾌하고 파괴적인 사례까지 들먹이며 그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근원을 곰곰이 추적하면, 반응하는 능력의 부족에서 모든 문제가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즉 똑바로 인식해서 약속을 맺고 약속을 지키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P67 당신이 정성을 쏟은 것을 누군가에게 건넬 때 어떤 느낌이었는가? 당신이 정성스럽게 선물을 준비했을 때, 첫 공연이나 첫 연설을 앞두고 있을 때, 아주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랐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가슴이 두근거리며 두려웠을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순간의 감정을 곧잘 숨기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금방이라도 터뜨리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긴장은 당신이 그 일에 열정을 쏟았다는 증거가 된다. 그 열정을 겉으로 드러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추상화처럼 낯선 과제에 대한 솔직한 반응을 말로 표현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P67 반응 능력이 습관이 되면 용기가 생기고, 용기는 예술 행위를 키운다. 17세기까지 용기 courage’라는 단어는 단순히 용감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분노와 영감, 경의와 겸허, 증오와 사랑을 비롯해 마음에 품은 모든 격렬한 감정을 포괄하는 단어였다. 예술 행위는 이런 넓은 뜻에서의 용기를 활용하고 계발한다.

 

P67용기는 이처럼 다른 얼굴로 위장한 책임 회피를 극복하는 원동력이다. 용기는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약속이며, 그 약속을 지키는 기술이다. 예술 행위는 무엇이든 시도하려는 용기를 준다. 우리가 하는 일에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것도 예술 행위이다. (…) 행위를 하는 중에는 모든 예술가가 연주를 위한 준비와 선택, 그리고 자신의 기술을 완벽하게 책임진다. 그들은 모든 능력을 쏟아낼 뿐,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끝까지 철저하게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용기다.

 

>>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과 용기. 여기에서도 이렇게 용기에 대해 세뇌를 당할 줄은 몰랐다. 빠울로 꼬엘료에게 그렇게 몰아세우며 다구침을 당하던 용기여기서도 용기에 대해 토해내고 있음이.. 하지만 빠울로 꼬엘료에게 꾸지람 들을 그때 내게 다가오던 용기와 에릭 부스가 내게 말하는 용기는 그 밑에 깔려있는 근본은 같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색채는 살푼 다른 느낌이다. 빠울로의 용기는 부딪히고 맞서는 용기라면 에릭 부스의 용기는 책임과 변명하지 않는 용기다.

 

빠울로가 가르쳐준 부딪히는 용기는 매 순간 기억했다. 내가 내 안으로 숨고 싶을 때, 나를 표현하고 싶지 않을 때 그때마다 깨어 있으며 용기를 내라며..표현하고 나를 다독거렸고, 행동으로 옮겼더랬다.

 

인제..모든 능력을 쏟아 내어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끝까지 철저하게 행동하는 용기.. ‘변명하지 않는 용기가 가슴에 와 닿는다.. 


P69 그들은 모자를 벗어 담 너머로 던졌다. 모자를 찾기 위해서라도 담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야 하도록 담 너머로 던져버릴 모자를 하나 쓰고 다녀야겠단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P71 앞서 언급했듯이 콩의 씨앗은 햇살을 향해 가지를 뻗고,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린다. 인간의 열망도 다를 바 없다. 인간의 열망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원대한 것을 향해 위로 뻗고, 아주 작은 것을 향해 뿌리를 내린다.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 즉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는 기술은 사물을 눈여겨보는 기술이다. 너무 단순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항상 무엇인가를 눈여겨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의 문제다. 어떻게 해야 사물을 좀 더 치밀하게 관찰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예술가들은 주의력을 기본으로 삼고, 관찰력을 섬세한 도구로 활용한다.

 

P72 워크솝에 참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시를 잘 따르고, 통찰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그 행위를 하는 동안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중요한 것으로, 요컨대 눈여겨봐야 하는 것으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P73 예술가는 그 방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들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심상을 비롯해, 내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변화를 꼼꼼하게 챙긴다. 창조적 작업이 그때부터 시작되며, 작업의 진정성이 내적 경험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경험을 관찰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반복한 덕분에 예술가들은 경험을 치밀하고 다각적으로 해석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무엇인가를 창조한다. 다시 말해 경험을 흥미로운 형태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P73 음악을 귀 기울여 듣듯이 경험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 경험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능동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적극적인 반응은 개인적인 열망에서 시작된다. 달리하면 마음과 소통하는 반응이다. 예술가는 주변에서 마주치는 것에 본능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오감으로 실험한다. 예술가는 음악을 듣는다. 그렇다면 음악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예술 행위를 하는 셈이다.

 

>> ~ 그럼 나는 예술 행위를 매일 하고 있는 거군~ ^^


P74 어떤 일에 주목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무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눈여겨보다 notice’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깨달음인지를 뜻하는 ‘noscere’에서 유래한 말이다. 인간의 무궁무진한 능력이자 미스터리이기도 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힘은 지하의 대수층에 비교되며, 그곳에서 관찰하는 힘이 시작된다. ‘주의 attention’뻗다또는 펼치다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은 자신의 역량을 확장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노력은 우리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그 때문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74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술가들도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감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살아가지만, 공허한 것을 무시하고 가치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별력을 계발한다.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을 순수한 마음으로 눈여겨보며 섣부른 판단이나 해석을 하지 않는다. 앞뒤를 살펴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동시에 찾아내는 안목이 있다. 그들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명백한 것에서도 색다르고 낯선 면을 찾아낸다. 예컨대 토마토의 새빨간 표면에서 핏줄을 찾아내고, 공손한 인사말에 감추어진 분노를 읽어낸다.


P75 당신은 이런 식으로 일상의 삶을 유심히 관찰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때로는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 나는 그런 적이 있나? ‘때로는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P82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스키니래그는 실제의 경험만으로 훈련된다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경험하는 법을 훈련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스키니래그에게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것들을 보내 그런 요구에 관련된 정보를 보내달라고 요구할 수 는 없다. 결국 스키니래그를 훈련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실제 경험이다. 우리 경험만이 그가 이해하는 유일한 명령이다.

 

P83 나는 소중한 무엇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랍게도 그때라고 말하는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경험을 종종 한다. 그때의 기쁨과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삶에서 우연의 일치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완전히 별개의 사건에서도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보면, 눈여겨봐야 할 분명한 원칙이 발견된다. 우연한 사고에도 의미가 있다. 1854년 루이 파스퇴르는 프랑스 과학원에서 행운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오직 관찰하는 자만이 그것을 잡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P83 우리는 관심의 대상을 선택할 때 신중해야 한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 삶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스키니레그는 우리 의식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고 그 자시를 따른다. 우리가 선택하는 경험과 대상의 속성에 의해 스키니레그가 길들여지는 것이다. 컴퓨터의 개척자들은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나는 반대로 최고의 것이 들어가면 최고의 것이 나온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생각으로만 그치면 스키니래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는다. 스키니래그는 실제로 경험한 자료에만 응답한다. 계획은 즐겁지만, 실천이 있어야 결과도 있다. 따라서 열심히 연구해서 당신의 관심을 끄는 것을 실천하라. 그렇게만 한다면 삶을 살아가는 방법도 자연스럽게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실천이 제일이다. 변화를 이루어내려면, 예술품을 감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예술을 아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말고 직접 예술 행위를 해야 한다, 지금보다 더 능숙해지도록 기술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스키니래그는 말만 앞세우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응답하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관심을 갖는 척해도 스키니래그를 속일 수는 없다.

 

P84 우리는 관심을 갖는 것을 닮아간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눈여겨보고, 열망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 우리의 주의를 끌며, 우리를 자극하고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극을 받을 때마다 약간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예술가처럼 전략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는 모든 것을 눈여겨 보는데서 시작한다.

대상보다 보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경험할 만한 가치를 가진 일을 겪기 마련이다. 눈여겨보는 습관이 있어야 문자 그대로 혜안이 불꽃처럼 번뜩이며, 어디에서나 가치 있는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 전혀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극을 받지 못하더라도, 모든 것이 지루하다고 불평하는 10대처럼 재미없는 곳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물론 당신의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당신의 관심을 의도적으로라도 바꿔보라. 당신이 원하는 보상을 이끌어내는 관찰의 기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P86 가장자리 edge’라는 단어는 본래 날카롭다 sharp’또는 뾰족하다 pointed’ 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 의미를 감안할 때, 가장자리란 각성제에 가깝다. 실제로 우리는 채워지지 않은 것. 변하는 것, 신기한 것, 경계에 놓인 것, 놀라운 것, 규범에서 벗어난 것, 외부 압력에 시달리는 것 등에 주의를 기울인다.

경계에 놓인 것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경계를 파악해야 그것을 다른 것과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기술구분 짓는 능력이다.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구분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에 속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가려내야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물고기는 물 밖에서 아가미를 벌렁대며 힘겨워해 본 후에야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경계가 성장을 자극하는 것이다.

 

P88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여, 창조적 행위를 하는 데 활용하라는 뜻이다. 무엇이든 밑거름으로 삼아 유익한 방향으로 이용하면 된다. 그렇다. 상황이 못마땅하고 따분하더라도 더 멋지게 일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아라.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라. 예술 행위란 바로 그런 것이다.

 

P88 열망에 사로잡힌 예술가는 눈에 띄는 것이면 무엇이든 눈여겨보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한다.

아주 간단한 달처럼 들리겠지만, 이런 습관은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찰하는 데 나래하고 수동적이지만 예술가는 관찰의 기술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활용한다. 예술가는 흥미를 끄는 것을 눈여겨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관찰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 새로운 통찰,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낸다. 요컨대 그들이 관심을 갖는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P88 예술가는 안팎을 균형 있게 관찰한다. 구체적인 세계의 사물과 사건을 대할 때나 내면의 변화를 살필 때 동일한 관심과 목적의식을 갖는다. 그들은 내면과 현실에 관심을 기울여 연결고리를 찾고, 두 세계를 이어주는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한다.

 

P89 나는 앞서 예술가들이 매력적인 것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한 개인의 매력에서 그의 복잡한 내면을 읽을 수도 있다. 따라서 매력은 내면의 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을 빼앗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며, 우리는 열망하는 대로 조금씩 변해가기 때문이다.

 

P90 예술가는 무엇인가에 푹 빠져서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 머릿속에 어떤 노래나 구절이 맴도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어떤 생각을 하루 종일 되뇌며, 그 느낌을 말로 흥얼거린 적이 없는가? 예술가는 이처럼 울렁대는 마음을 여운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표면 아래 감춰진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에 주의를 기울인다. 관찰력이 뛰어날수록 유사한 점을 쉽게 찾아낸다.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아주 작은 연결고리까지 놓치지 않고 찾아내며, 그 작은 고리에도 곧바로 주의를 기울인다.

 

P91 관찰하라. 판단하지 마라 - 하나는 관찰과 해석을 별개로 다루는 기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능력이다.

 

P92 예술가들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반응을 뚜렷이 구분 한다. 그들은 관찰만한다. , 일정한 시간 동안 눈앞에 존재하는 것만을 관찰한다. 이런 관찰의 기술은 사물을 올바로 평가하고, 정보를 축적하며, 사물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물론 예술가도 열정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한다. 다만 그들은 눈앞에 있는 것을 일단 받아들인 에 판단하고 해석한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해석하기는 하지만 의견에 불과한 주변의 설명에 흔들리지 않고, 실제 사실에 입각하여 해석한다.

 

P93 예상하는 힘을 키워라 예술가는 바르게 관찰하기 위해 예상하는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예상 expectation’ 이란 단어는 라틴어에서 주의하다 look out’을 뜻한다. 인가는 누구나 앞날을 예상한다. (…) 예상을 지레짐작전망이란 두 부분으로 나눠서 접근하는 편이 더 낫다.

 

P94 우선 지레짐작 anticipation’을 살펴보자, 예상은 우리가 관찰한 결과를 편견이나 선입견, 즉 미리 결정된 틀에 억지로 짜맞추는 단점이 있다.. 실제로 지레짐작하다 anticipate’라는 단어의 라틴어 의미는 미리 취하다.”이다. 요컨대 무엇인가를 먼저 잡아챈다는 뜻이다. 무엇인가를 기대할 때,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눈여겨 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레짐작은 발전과 성장의 가능성을 방해하고, 공허한 절반의 진실만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절반의 진실은 그럴 듯하게 보일 뿐 실제로는 진실이 아닌 허상이다.

 

P94배우가 한 장면을 백 번 동안 연기한다고 해도 등장인물에게는 그 장면이 처음이다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P95 이런 관찰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과거와 미래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고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는 자제력과 순간순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자제력과 내적 능력은 수백 번씩 공연하는 연극인들에게 꼭 필요한 기술이다. 삶의 공간에서 배우처럼 사는 사람들도, 즉 삶에서 예술가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응용하는 사람도 지레짐작하지 않고, 현재의 경험을 복잡하면 복잡한대로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예술가들의 비밀이라면 어떤 현상을 생전 처음 경험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예술가들이 어떤 현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현상을 매번 처음처럼 경험하기 때문이다.

 

P95 다음으로 전망 expectation’을 살펴보자. 예상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장점이 있다. 이런 장점은 연기 훈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예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대사를 연결하고, 어떤 일이라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보인다. 연기를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나는 이를 활성화된 백지 energized zero’상태라고 부른다. 오디션을 앞둔 배우들이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훌륭한 배우들은 초조함과 두려움, 벗겨진 살갗 등의 외적인 장애 요소를 떨쳐버리고 대사를 시작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이미 알고 잇는 것들을 잠시 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나는 이를 전망상태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기꺼이 감탄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요컨대 지레짐작이 예술 행위를 죽이는 독이라면 전망을 예술 행위를 키우는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다.

 

P99 극작가는 대본의 생명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기회를 갖고, 곧바로 제작업에 돌입한다, 짜임새 있는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행동 하나하나를 고치고 단어까지 손질한다. 극작가가 적절한 그림이 완성됐다고 만족할 때까지 이런 수정 작업은 계속된다. 극작가를 ‘play-wright’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어나 몸짓, 행동 등 살아서 꿈틀대는 원료로 완성된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점에서 마차의 바퀴를 만드는 목수 wright와 비슷하지 않은가?

 

P100 귀담아 들어라. 모든 예술은 대화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훌륭한 예술가는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고 듣는 기술에서 남다른 능력을 보여준다.

 

P100 예술가에게도 새로 시작한 작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작품을 시작한 초기 단계에서도 작품의 현재는 물론 미래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 자신이 요구하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작품 스스로 완전한 완성을 위해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P101 평범함 속의 초자연적인 현상 예술가의 관찰의 기술은 모든 것의 비밀을 열어주는 열쇠다. 나는 크리스틴에게 평소대로 차분하고 안정된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크리스틴은 내 목소리에서 하나의 독특한 세계를 찾아냈다. 비유컨대 나는 베이지색만을 보여주었는데 크리스틴은 베이지색 뒤에 감추어진 베이지색의 스펙트럼까지 찾아낸 것이다. ‘질서 order’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ordinarius’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평범한 ordinary’이라는 단어는 원래 밟아서 다져진 길을 따르다.’라는 말이었다. ‘ordinary’ 15세기에 처음 사용된 말이지만, 그 의미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보통의 폄균의, 평범한이란 뜻으로서 우리의 일상을 고스란히 집약한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라틴어 접두사 ‘extra’이나 너머를 뜻한다. 우리는 평범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에는 쉽게 눈을 돌린다. 눈여겨보는 형체 자체가 평범함을 넘어선 특별한 extraordinary 능력의 증거라고 믿는 사람이 많듯이, 안타깝게도 대부문의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소수의 전유물로 생각하며 자신에게도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예술가에게만 그런 관찰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도 예술가처럼 그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다. 즉 당신도 예술가처럼 그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다. 즉 당신의 삶에서 가치 있는 일에 정확하고 열정적으로 이 능력을 적용한다면, 자크 뤼세랑처럼 식탁이 당신을 향해 다가오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P102 평범함과 특별함이란 두 단어를 이용해 이 책을 목적을 다시 쓴다면,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능력을 충분히 키우면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신은 방의 떠날 필요가 없다. 식탁에 그대로 앉아 귀를 열어라. 귀를 기울여 들을 것도 없이 기다리기만 하라. 조용히 앉아 있으면 세상이 기꺼이 당신에게 다가와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세상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당신의 발밑에서 환희에 차 뒹굴 것이다.”

 

>> 에릭 부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내가 일상 속에 파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물줄기 밖으로 튀어나와 그 줄기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 참 재밌을 것 같았다.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늘 당연하게 느껴지던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보여지는 새로운 면들, 새로운 느낌들.. 그것들은 나에게 때로 무료하다고 느껴지는 삶에 장난스러움을 느끼게 할 것 같고, ‘재밌다라는 느낌을 갖게 할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늘 당연하게 함께 하던 일상 속에 갑자기 모든 것이 Bold로 굵게 덧칠되고, 클로즈업 되어 하나하나 나에게 달겨들며 느껴지는 펄떡이는 감동.. 떨림이 느껴지며 뭉클함에 눈물이 툭 떨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럴때면 살아있음에 감사한..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기도가 나오는..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 자주 내 삶 안에서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나의 일상 안에 그냥 무관심 속 스쳐지나 가는 것들에 대한 관찰.. 그 안의 새로운 발견.. 평범함 속의 특별함..느끼는 연습.. 나도 삶 안에서 배우처럼 살고 싶다. 연습을 하는 차원에서 관찰 일기를 써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약속은 아니고..^^

오늘 아침 가게 나오는 길 군 고구마 파는 일본 할머니가 예쁜 꽃무늬 양산을 받쳐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입술은 고운 빨간색으로 바르고.. .. 직업은 못 속여..^^;; 화장한 것부터 눈에 띈다.. ^^;;


P105 예술가의 능력은 그가 어떤 연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연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들은 항상 연장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 가방은 삶을 실질적으로 만들어가는 강력한 도구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술가들은 틈나는 대로 도구를 꺼내 창조적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연장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해서, 어떤 과제라도 능숙히 해결할 수 있다. 굳이 망치를 휘두를 필요가 없는 일도 많다. 그들은 과제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변형과 조절을 시도하고 일상의 삶이란 기회의 연속에서 그 가치를 이끌어냈다.

 

P106 열망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근원이다. 열망이 없다면 우리에게 어떤 도구가 주어져도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일단 에너지가 공급되면 모든 도구들은 제 기능을 발휘 하여 대상을 하나로 연결한다.

 

P109 예술가들처럼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는 순수한 관찰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술의 개념은 성급한 해석은 물론 눈앞에 있는 것에 마음껏 심취하면서 관찰을 뒤로 미루는 욕구를 억제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이 기술은 시각적인 정보 처리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신경 생물학적 게슈탈트 메커니즘 (gestalt mechanism – 대뇌피질에서 정보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분류 및 비교 능력) 과 모순된다.

게슈탈트란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할 때 떠오르는 일정한 패턴을 지닌 부분의 집합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의 이름을 찾아내거나 새로운 것을 포용할 수 있는 기존의 범주를 찾아내는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본능을 그대로 두면 성급한 판단과 편견으로 인해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이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는 기술과 습관을 키우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편향된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나는 이런 본능적 충동을 게슈탈트 디폴트라고 부른다.

 

P110 게슈탈트 디폴트는 우리에게 강제로 설정된 프로그램이다. 그렇다고 무시해버리면 게슈탈트 디폴트는 우리의 반응 능력까지 억누른다. 따라서 예술 행위를 위해서는 게슈탈트 디폴트를 억제하는 기술을 훈련해야 한다.

예술가는 눈앞에 존재하는 것의 구체적인 특징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때까지 과거의 지식에 비춰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짝짓기 과정을 의도적으로 중단하거나 연기하며 억제할 수 있다.

 

P111 게슈탈트 디폴트를 지배하는 능력은 우리 삶을 윤택하게 가꾸어주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우리의 기계적인 판단을 의심하거나 억제하며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에서 한 발짝도 어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게슈탈트 디폴트가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무런 판단 기준이 없다면 게슈탈트 디폴트로 인해 우리는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할 기회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 것이다.

 

P112 섣부른 판단과 해석을 억제하고, 불확실한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우리 앞에 닥친 현상을 넓은 마음으로 탐구하는 방법을 터득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 성장하며 주위에서 기쁨을 찾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황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P112 우리는 아는 것을 좋아하고, 모르는 것은 싫어한다. 이런 단순한 원칙 때문에 미지의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게슈탈트 디폴트의 힘이 커진다. 모르는 것은 불편하고 미덥지 못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보면 곧바로 아는 것으로 재해석한다. 철학자이자 미술 평론가인 아서 단토가 말했듯이 우리는 사물에 대해 나름대로 설정한 가정에 맞지 않는 것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P113 뭐든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알면 뿌듯하지만 모르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성장은 불가능하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구분 짓고, 그 둘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경험해서 배우는 역량을 크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배움을 향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무한히 광대한 세계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생산적인 방향에서 구분된다. 또 이런 깨달음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서 조사하며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그때 우리는 배움이란 예술 행위에 뛰어들어 특별한 그림을 창조할 수 있다.

 

P113 예술 행위는 미지의 것을 향해 가는 통로이다. 예술에서는 낯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조금도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되풀이하라고 권장까지 한다. 그 보상도 한없이 커서 자진해서 다시 해보고 싶을 정도다. 예술의 새 행위도 이 기술을 사용한다. 세상 만들기에서 우리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조화시켜 하나로 묶는다. 세상 탐구하기 에서는 낯선 세계의 메시지를 해석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 즐거움을 엿본다. 세상 읽기에서는 가설게임을 즐기며, 익숙한 것을 낯선 것처럼 생각하고 반대로 낯선 것을 익숙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예술가라고 모든 것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완전한 세계’, 즉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만큼 오래 살아가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P114 우리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뜨거운 열망을 품고 항상 새로운 것을 눈여겨보면서 연결고리를 찾아 관계를 맺는 데 열중해야 한다. 그런데 연결고리를 어떻게 찾아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상징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짝짓기를 통해 개인적 상징을 만들어낸다. 각각의 상징은 의미를 담고 있는 블록과 같다. 상징이 없으면 관계도 없고, 예술 작품은 물론 커뮤니케이션이나 언어도 없다. 예술은 상징이 춤추는 놀이터이다.

 

P115 기호의 의미는 구체적이지만 상징의 의미는 추상적이다. (…) 기호와 상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르다. 기호는 우리에게 정보의 수용을 요구하는 반면에 상징은 우리에게 동참을 요구한다. 즉 기호는 이해 knows와 전달 tell 에 근거하지만, 상징은 환기 evokes와 초대 invite에 근거한다. 요컨대 상징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우리를 하여금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부추긴다.

 

P116 상징 Symbol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에 명사 ‘symbollen’ 은 사교 행사를 마치고 떠나는 손님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증표로서 주인이 선물한 동전이나 반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로, 이 기념품이 그들에게는 특별한상징인 셈이다.

 

P116 동사 ‘symbollen’연결하다또는 다리를 놓다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상징이란 무엇인가에 연결하는 행위이다. 상징의 어원적 의미를 결합하면 덜 구체적인 것과 보다 의미 있는 가진 구체적인 것의 통합을 뜻하며,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눈에 띄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상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에 구체적인 것을 비유적으로 연결시켜 의미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본능적 기술이다.

상징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룰 때만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숲에 말없이 서 있는 유명한 나무처럼 우리가 발견하고 만들어가는데 참여해야 상징은 존재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상징을 만들고 함께할 때,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에 상징은 생명력을 갖는다. 상징은 우리가 관심을 보일 때마다 변한다. 관계가 지금 이 순간에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P119 상징의 가치는 상징 자체에 부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상징과 함께하는 참여의 가치도 상징자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바깥에서 상징은 넘쳐흐르지만, 우리 내면의 과정인 상징화 기술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점에서 내가 예술 행위를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징을 만들어가는 기술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예술가는 이런 기술을 발달시키는 훈련을 거듭한 덕분에 충동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관계를 맺는 수단인 형상과 글, 직관, 감정, 논리 등과 같은 다양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또한 언어의 경계까지 넘나들며 글을 음악으로, 논리를 공간으로, 몸의 충동을 시각적인 형태로 변형시킨다.

 

P119 나는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꿔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상징화는 그런 연금술적인 과정의 하나다. 예술가의 기술은 사물과 기호로 넘쳐흐르는 일상의 삶을 받아들여, 일상의 삶을 특별한 경험으로 채워가는 데 있는 것이다.

 

P124 유황이 다른 둘을 짝지을 때 은유가 만들어진다. 직유에 집착하면 상상력을 배제하고 사물을 하나의 방향에서 보기 십상이다. 반면에 은유는 선을 긋는다. 모든 차이를 빚어내는 선이다. 시인 새뮤얼 콜리의 표현을 빌면, 은유로 그어진 선은 자발적인 불신의 유보라고 할 수 있다. 이분법적 생각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는 뜻이다. ‘-거짓이란 성급한 판단이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이분법적 사고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은유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들어간다. 에릭이 정말로 기관차가 되는 세계이다.

 

P124은유 metaphor’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변화시키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요컨대 은유는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은유를 흔한 것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의 중간에 위치하며, “평범한 단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전달한다. 은유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P125 피카소도 모든 아이가 예술가이다. 어른이 됐을 때 그 기술을 되찾는 것이 예술가로 성공하는 비결이다라고 말했다.

 

P127 이런 가정 연습을 한 후에 우리 삶이 예술 행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다. 다시 말해 복잡한 예술품을 눈여겨보듯이 일상의 삶을 눈여겨보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우리 삶에서 무엇을 찰흙처럼 다루며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어떤 경우에 상대가 동료 예술가인 것처럼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해결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문제가 삶의 어떤 부분에서 제기되는가? 라는 의문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이런 만약에를 시작하며 평범한 것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P128 가정하는 힘이 방해를 받거나 억압을 받으면 경험하는 세계도 그만큼 무미건조해진다. 지루하고 폭력적이며, 억눌린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만약에로 포장된 세계를 술과 마약에서 찾는 사람도 있고 일과 음식, 텔레비전, 섹스와 같은 것에 중독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복잡하게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내면의 열망을 술병처럼 감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억누른 결과이다. 한 마디로 가정이 결여된 문화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 한다면 진정한 성장을 위해 예술 행위를 시작할 때 필요한 기술을 포기하는 셈이다.

 

P129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 모든 관계는 연결을 전제로 맺어지며, 연결은 사업상의 모임은 정글이다라는 식의 은유로 표현된다. 이러한 은유에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열망이며, 행동이 구체화될 때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 상징을 줄줄이 꿰어 이야기로 만들려는 본능적 충동은 너무 단순해서 어린아이도 쉽게 사용하지만,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본능이다.

 

P131 예술 행위는 전형적인 이야기 만들기이며, 예술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능숙한 사람들이다. 예술에 연관된 모든 훈련도 이야기라는 형식을 띤다.

 

P131 심리학자 도널드 폴킹혼은 우리는 이야기 구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정체성과 자아상을 정립하고, 이야기를 계발하고 털어놓는 과정을 통해 우리 존재를 완성해간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으므로 우리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새로운 사건이 우리 삶에 더해질 때마다 줄거리를 계속 수정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P137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은 한계 시간을 정해 놓고 일을 하거나 MTV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P138 예술가는 정답이 하나가 아닌 질문을 좋아한다. 이런 성향을 오해해서 예술가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매우 긍적적이며 최선의 질문을 찾으려고 앴을 뿐이다. 도전적이고 효율적인 질문이야 말로 세상을 한 걸음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유명한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말했듯이, 천박한 진실의 이면은 거짓이다. 그러나 심원한 진실은 그 이면까지도 진실이다.” 예술 행위에서 옳고 그름을 강요하는 질문은 천박한 질문일 뿐이다.

 

P139 좋은 질문은 올바른 이해를 위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좋은 질문과 좋은 대답을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예술 행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P145 예술 행위는 선택의 연속이라 할 수 있고, 선택은 건설적인 행위이다. 예술가는 뚜렷이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집요하게 연구하고, 대담하게 선택한 후, 그 결과를 겸허히 수용한다. 이렇듯 셰술가들은 구분과 선택의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P146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 우리 주변에는 정보와 선택 가능성이 넘친다. 텔레비전은 수십여 채널을 제공하고, 순간의 충동에 따라 어느 때라도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사방에 널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지도 않고 현명하게 행동하지도 못한다. 선택의 기술이 없다면 우리는 방향을 잃게 되고, 현상에 마지못해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기술을 갖추면, 우리는 이 시대가 제공하는 풍요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P147 직관은 일종의 통찰력이다. 어원적으로 주의 깊게 지켜보다.” 를 뜻하는 말로서 직관은 어둠과 미지의 세계에 불을 밝혀주는 내면이 불빛이다. 또한 많은 상징체계를 이용하여 말하고 생각한다. 의식의 지혜보다 직관의 지혜가 우리 열망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직관은 매우 실질적이고 확실하게 거기에 가서 이렇게 해보라!”라고 재촉하지만, 직관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질린 세속의 목소리에 눌려 잘 들리지 않는다.

 

P150 예술 행위는 논리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A에서 B까지 직선으로 달리지도 않는다. 예술 행위는 돛단배처럼 바람을 타고 움직인다. 우리도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미지의 바다에 떠있는 부표처럼 눈에 보이는 이정표를 기준으로 삼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목표에 이르는 길은 무척 구불구불하다. (…) 따라서 예술 행위는 양 극단 사이에 끼어 있어 본디부터 모순이다. 예술가는 다음과 같은 극단을 오가면서 최대한 직선으로 항해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P150 감정의 극단: 예술가는 감정의 기복과 싸워야 한다. 목표에 거의 다 도달했다는 희망과 목표가 아득하다는 절망, 즐거움과 분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는 해방감과 무엇인가 얽매인 듯한 구속감, 흥분감과 피로감, 기대감과 무력감, 무엇이든 시도해보려는 무모함과 작은 자극에도 움츠려드는 두려움, 충만감과 허탈감, 무엇과도 연결된다는 자신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호기심과 지루함이 그것이다.

 

P151 지적인 극단: 예술가는 지적 능력을 활용하지만, 지적 능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곧잘 부딪치곤 한다. 예술가는 논리적 추려ㅣ력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또한 예쑬가는 곤경에 부딪히면, 이른바 정신력을 총동원해서 두뇌만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을 해낸다.

P152 현실의 극단: 우리도 목표를 향해가는 클라크가 될 수 있다. 그런 탐험을 지적한다면 우리는 예술 행위를 하는 셈이다. 서부를 생각하고, 길의 변화에 적응하며 앞으로 나갈 길을 개척하라. 장애물을 짓밟고 탱크처럼 전진하기도 하겠지만, 때로는 길에 떨어진 작은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가는 과정에서 원칙과 효율성을 고집하면 안 된다. 앞길은 본래 예측할 수 없는 길이다. 루이스와 클라크는 산이 그들을 가로막아도 좌절하지 않았고, 그 산을 피하거나 없애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 안에서 길을 찾아냈다. 과정을 지배하려는 욕심이 최선을 방해하고, 우리를 조급하게 다그칠 뿐이다. 예술가는 무엇이 최선이고 성공으로 가는 길인지를 잘 안다.

 

P153 건설적인 낭비는 창조적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예술을 행하는 과정에는 우리는 곧잘 실수를 범하고 시간을 낭비한다. 나는 이런 현상을 건설적인 낭비 constructive waste’라고 부른다. (…) 예술가는 새로운 경계를 향해 갈 때 능률이 오르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는다. 낭비한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노력이 언제라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며 포옹하는 기술이 예술가에게는 있다. 낭비한 것이라고 여겨지던 것이 인정을 받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기술도 예술가에게는 필요하다.

 

P154 건설적인 이기심과 일반적인 이기심의 차이는 그 목적에 있다 일반적인 이기심은 욕구를 세우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기심은 욕구를 채우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생각에 파묻신다. 반면에 건설적인 이기심은 뭔가를 이루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일반적인 이기심이 자아의 빈틈을 채우려는 욕심이라며, 건설적인 이기심은 완전한 세계를 완성하여 함께 누리려는 욕심이다.

 

P155 건설적인 이기심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면 자기 몰입이나 자기부정, 소극적 태도나 공격적 태도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건설적인 이기심까지 억눌리면서 많은 사람이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울하게 살아간다. 자연스런 흐름을 쫓을 때 우리는 본래부터 건설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여서, 우리 흥미를 끄는 것에는 달려들고 공허한 것에는 등을 돌린다. 마치 아린아이처럼!

 

P155 예술 행위를 습관화시킨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어디에서나 열망과 호기심을 드러내며 쉽게 몰입한다. 이런 모습이 유치한 것일까? 오히려 나는 그런 모습을 성숙maturity’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P155 성숙은 올바른대답을 알고, 감정의 기복에도 당황하지 않는 지혜가 아니다.. 성숙은 모순과 혼돈을 너그럽게 참고 견디며, 그 안에서 성장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런 성숙은 혼란스러운 과정에서도 장기적인 목표를 꾸준히 추진하고, 세세한 부분에 몰두하면서도 포괄적인 문제를 잊지 않는 힘을 제공한다. 성숙할 때 우리는 모순된 가치와 생각을 받아들여, 그것들을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결합시킬 수 있다. 성숙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며, 부분이 전체에서 갖는 위상을 확인하면서 부분을 깊이 파고 들 수 있다. 예술가들은 예술 행위를 통해 이런 성숙을 익히고, 삶에서 겪은 문제들에 적용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추락>에서 일류 지성은 상반된 두 개념을 동시에 머릿속에 품고도 그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는 능력이다.” 라고 말하면서 성숙의 의미를 재확인하였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방식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종종 비난을 받는다. 성숙한 옛술가는 일부 지식을 고집하지만, 그 지식은 현재의 대본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근거가 된다. 예쑬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변화를 수비게 받아들이고, 삶의 불확실한 영역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런 성숙은 보람이 있고,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P157 사찰의 문에는 두 수호신이 서 있다. 험상궂게 생겼지만, 스님들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해탈의 과정을 지켜주는 수호신들이다. 그 수호신들은 사람들을 놀라게 해 쫓아내고, 용기 없는 사람들은 아예 사찰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려고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이 사찰에 들어가려면 출입문다마 험상궂게 생긴 수호신들의 위험을 견뎌내야 한다. 두 수호신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며, 험상 궂는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두 수호신의 이름은 모순혼돈이다. 겁먹지 말고 그들의 곁을 용기있게 지나가자!

 

P157 성숙한 예술가는 예술 행위를 일상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마음가짐을 계발한다. 마음가짐은 불만의 씨앗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기술이다. 어원적으로 마음가짐은 불만의 씨앗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기술이다. 어원적으로 마음가짐 attitude은 예술적인 성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라틴어 ‘aptitudio’자세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attitudine’로 발전했고, 영어에서는 17세기에 미술 비평 용어로 ‘attitude’ l기 시작했다. 이는 화가들이 당시 유화에서 사용하던 기법, 즉 풍경에 인물을 배치하는 법을 뜻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인물의 ‘attitude’는 화가가 특정한 정신 상태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물리적 위치였다. 화가들은 다른 많은 가능성을 버리고 특정한 위치를 선택해, 특별히 창조한 세계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P158 어떤 사람의 마음가짐이 유화 화가의 풍경화에 놓인 인물처럼 예술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마음가짐은 갖는 것이 아니라 실험적인 시도가 된다. 유화 화가가 풍경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를 조절하거나 아예 없애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처한 환경에 따라 마음가짐을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은유적 접근을 받아들이는 예술적 관점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이런 마음가짐을 항상 유지하면서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P159 흔히 있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P160 지금 이 순간에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현실을 외면하며 참견하지 않는 길을 택하거나 거꾸로 현실에 저항한느 길을 택할 수 있다.

 

P162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리는 반복해서 행하는 것 자체다. 따라서 우리가 내세울 것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라고 말했다. 습관에는 부정적 의미가 함축돼 있다. 습관은 어떤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뜻이므로 지루하고 재미없다. 본능을 억누르기 때문에 이 책에서 말하려는 내용과 완전히 대립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나는 습관을 적극 권장한다.

 

P163 예술가들은 습관의 내용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습관을 예술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첫째, 습관은 효율적이다. 어떤 행동이 습관화되면 우리는 더 이상 그 행동과 타협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어떤 행동에 대해 속으로라도 의혹을 품는다면 그 행동은 아직 습관이 아니다. 내적인 갈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행동은 다른 선택 가능성과 비교되는 검증 과정에 있는 셈이다. 어떤 일상적 행위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증을 받는다면 습관의 위치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 위치에 이르면 그 행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효율적으로 사용된다. 그런 습관은 우리의 미적 가치관을 드러낸다. 우리가 예술적인 삶을 살면서 동원하는 기술을 부분적으로 보여준다.

 

P164 둘째, 습관은 믿을 만하다. 습관화된 행동은 우리의 내적 조건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 마음엗 르지 않는 습관도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은 못마땅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습관은 우리의 내면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자화상이고,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못마땅하게 생각되는 습관, 예컨대 매일 아침 식사로 핫도그를 4개나 먹는 습관이 있더라도 그 습관은 당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행위다. 그러나 습관만으로 당신 자신이나 다른 사삶을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겉모습 아래 감춰진 진실을 찾아내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대체로 습관은 신뢰할 만한 충동에서 시작된다.

 

P165 습관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습관을 현상 유지의 유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습관은 혁명적 변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를 상당 부분 반영한다. EEK라서 우리는 새로운 습관을 길들여 내적 조건을 바꿔갈 수 있다, 밖에서 안으로 작용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P166 우리는 개인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열망은 무척이나 강하다,.

그러나 새로운 습관은 대리석 조각처럼 금세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습관을 조각해가는 과정은 오래된 돌덩이를 깎아 새로운 조각을 만들어가는 과정만큼이나 지루하고 힘들다. 때로는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기도 한다.

 

P166 습관은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다. 장기적인 프로젝트는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습관은 그 과정에서 우리가 균형감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침체기에 빠져들면 우리를 떠받쳐 주고, 반대로 상승기에 접어들면 우리가 우쭐대지 않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어떤 일이 습관화되면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 우리는 그 일을 계속해야 하든지 중단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상황이 힘들게 변하면 우리 습관이 계속하는 걸 막을 테니까. 우리는 그 일을 미련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없다.

 

P167 물리학자 아서 자종크도 <빛을 잡다 Catching the Light’에서 예술가와 수도자는 절제된 훈녈은 통해 자연을 자신의 일부로 승화시키고, 그 결과로 정신의 새로운 능력을 찾아간다.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경전이나 학문적 분석을 강행해야 하지만, 영혼의 힘을 새롭게 다듬어가는 실천과 일상의 노동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면서 예술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P170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지만, 나는 남자와 연자의 대답에서 뚜렷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남자는 무엇인가를 직접 하는 행위에서 만족을 얻었다고 대답한 반면에 여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지 연령과 성별, 직업을 떠나 모두가 정의한 멋진 날철저하게 만족할만한 과정에의 참여라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P171 몰입은 삶의 과정에서 그들에게 선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인 셈이다.


P171 대답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몰입이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임: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에서 몰입의 효과를 무척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처럼 여러 유명한 책에서 많이 거론된 책도 없는 듯 하다. 지금까지는 내가 아는 책이 나왔다고, 내가 아는 작가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반가와하고 기뻐하는 걸로 끝냈는데, 이번에는 이 몰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대체 내가 놓친 대목이 무엇였을까..?? 이렇게 여러 훌륭한 사람들이 거론하는 그의 책에서 나는 왜 그렇게까지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분명 내가 놓친게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도 처음보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느낌이 새롭고 감동이 컸듯이, 분명 몰입도 그러거란 생각이 든다. 와우가 끝나면 내가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을 손에 들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P173 예술가는 열망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분야의 안팎에서 경험하는 온갖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무엇을 경험하든지 선택하는 연습을 반복한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과 끝없이 교감하는데 열망을 쏟는다. 그들이 원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경험만이 찾아내는 데 점점 능숙해진다. 그 후 그들은 그런 경험을 찾아 나선다. 예술가는 전문지식을 활용해 경험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에술가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상의 행위를 폭넓게 이욯해 의미 있는 관게를 꾸준히 맺어가면서, 에술에 관련된 기술을 연마한다.

 

P174 경험이라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낸 주역은 당신 자신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행동, 도전에 응전한 당신의 기술, 그리고 몰입이다. 경험의 기술을 스키의 바닥처럼 매끈하게 다듬는다면 무엇으로라도 충만하게 채울 수 있다. 예술가는 사물과 교감하는 방법을 의식적으로 선택해서 경험한다. 우리도 에술가처럼 어떻게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무엇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라는 기술이 있으면, ‘무엇에서라도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술 행위로 멋진 날을 만들어가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P174놀이에 빠진 어린아이의 진지함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 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처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 놀아야 한다.

 

P175 우리가 놀이를 할 때 순사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일상의 규칙을 무시하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P177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공은 창조적이 만남을 전향적으로 이어주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어떤 행동이 다른 행동에 뛰어들게 만들면 그것이 곧 성공이다. 따라서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정체다. 성공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표를 향해 부단히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목표의 성취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앞으로 게속 나아간다면 계량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이미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P178 뒤늦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성공의 근원적인 정의로 돌아간다. 삶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이다.

 

P184 나는 예술 행위를 성공적으로 행하면서 터득한 4가지 기술, 즉 삶이란 큰 프로젝트를 재구성하는 기술을 이쯤에서 정리하려고 한다. 그것은 평생 학습, 감정, 아름다움의 창조, 즉흥성이다. 4가지 기술을 모두 갖출 때 재즟럼 신나는 삶이 가능하다.

 

P186 무엇인가를 깨닫고 이해하는 행위와 에술 행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나는 예술 행위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우는 과정이 곧 예술 행위이고, 에술가는 곧 평생 동안 배우는 사람이다.

 

P198 재즈 연주자들은 즉흥 연주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행운은 즉흥 연주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철저한 준비와 용기가 있을 때 더 멋진 즉흥 연주가 가능하다. 재즈 연주자들은 즉흥 연주를 더 멋들어지게 공연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습을 반복함으로써 그것이 몸에 배일 때 연주 실력만이 아니라 삶의 질까지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즉흥 연주는 순식간에 결정되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이 순식간에 결정되기 때문에 생각하거나 계획을 ㅅ울 틈도 없다. 따라서 전적으로 경험적 직관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즉흥 연주는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므로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P199 재즈처럼 신나는 삶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상의 삶에서 흥미로운 면을 발견하려는 우리의 열망이다.

 

P217 세상 만들이게는 반드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걸음쯤 뒤로 물러서서 돌아보며, 직관을 비롯한 내면의 흐름이 나름의 역할을 하도록 허요해야 한다. 성찰은 우리가 관심을 갖는 그 순간부터, 잠을 자고 상상하며 환상에 젖고, 한담을 나눌 때, 또 당면한 묹를 한 켠에 접어두고 운동을 하거나 낙서를 끄절거릴 때 무의식에서 시작된다. (…) 공상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도구다. 공상이 통찰력처럼 분명한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해줄 수는 있다. 꿈은 까마귀처럼 직선으로 날지 않는다. 나비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이런 성찰의 도구는 우리 직관이 건드리고 싶은 내면의 세게, 즉 우리가 알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세계로 들어간다.


P217 성인도 상상의 공간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하면서 내면의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 공상은 최고의 운동 중 하나다.

 

>> 멍때리기랑 공상은 같은 걸까..?? 다른 걸까...?? *갸우뚱~*


P218 세상 만들기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질문하고 선택하며 인도하는 리더십니다. 하지만 새로운 세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실히 따르는 겸손한 자세도 필요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따를 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진다. 겸손해야 작은 것이라도 혼신을 다해 이루려고 애를 쓰고, 필요한 역할을 기꺼이 수행한다.

 

P220 당신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에 부딪치면, 원고지를 메우고 무대를 꾸미는 예술가처럼 열과 성을 다해 문제에 접근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찾아낸 해결책에 자부심을 가져라. 그 해결책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신뢰하라. 그리고 한층 충만해진 삶. 돈독해진 인간관계, 새로운 모험을 향한 도약 등 부수적인 효과까지 즐겨라.

 

P222 다른 삶을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런저런 세게를 만들어라. 세상 만들기를 당신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으로 삼아라. 세상 만들기를 예술가에게 떠넘기지 말고,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지도 말라.

 

P222 간혹 엑스트라가 더 멋있고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며, 자긍심이 넘치고 집에서나 일터네서 더 재미있게 사는 ㄱ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만들기 과정에서 우리가 부수적인 효과에 현혹된다면 에술 행위를 하기는 더 어려워지고 만족감 또한 떨어진다. 요컨대 기분을 전환하려고 세상 만들기에 뛰어든다면 오히려 그 과정에서 기분이 나빠지기만 할 것이다. 그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만든다면 긍정적인 부수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사실이다.

 

P223 세상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겉으로는 괴팍스럽게 보이고, 개성이 지나치게 뚜렷하며, 매사에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는 행복한 낙관주의자다.

 

P234 머리가 움직이기 시작하려면 먼저 마음이 호기심의 속삭임을 듣고 말해야 한다.”

 

P235 에술에서 세상 탐구하기는 2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먼저 감상은 탐구와 다르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이고, 그런 횟수가 잦아질수록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러니 감성에서 얻는 느낌은 덤으로 얻는 반가운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에술을 만나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감상은 너무 불명확하고 막연한 행위여서, 감상 자체로 그치다면 예술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힘을 누리지 못한다.

 

P236 둘째. 세상 탐구하기는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P241 단순한 읽기는 없다.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은 즉흥적으로 연결하고 눈여겨보며 선택하는 행위다. 누구나 자기만의 탐구 방시이 있다. 그 방식은 내가 누구이고 내가 예술 행위를 어떻게 행하는가를 거짓 없이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P251 우리 열망을 건전하게 유지하려면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매력적이고 풍요로운 세게를 꾸준히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


P261 나는 햄릿을 열정적으로 탐구해왔다. 성인이 된 이후의 내 전반기 삶은 햄릿과 함께 했다. 나는 햄릿을 일고 또 읽었다. 배우로서 몇 번을 공연했고 직접 연줄하기도 했다. 또 설적지를 하고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과연 나는 이렇게 무언가또는 누군가에게 미쳐본 적이 있는가..? 물론 사랑할 때는 그렇게 미치지만, 내 삶의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광하고 탐구하고 공부하고 그런 적이 있나.. 나도 그렇게 미치고 싶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P266 자신의 작품을 탐구해서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을 에술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낟.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편견과 판단을 접어두고 자신의 작품을 냉정하게 분석해서 그안에 담긴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을 즐기며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작품을 ㅇ려린 자세로 탐구할 때 우리는 예쑬의 기술을 향상시키고, 예술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삶의 기쁨을 배가시킬 수 있다.

 

P273 현실을 읽어내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엔텔레키를 묻어비리고 사는 셈이다.

 

P278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깊이 파고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일거야 한다.

 

P292 19세기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찰스 리드는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달라지면, 습관을 바꾸면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성격을 바꾸면 우리의 운명이 달라진다.” 라고 말했다. 마음가짐이란 습관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엔텔레키로 곧장 안내한다.

 

P294 세상을 읽는 습관을 개발해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에술과 관게를 맺는 것이다. 아마추어 예술가로 예술을 취미로 삼으면, 어디에나 적용되는 에술의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넓은 의미에서의 감정가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이 연극이나 음악, , 시각예술, 문학 등과 같은 매체를 흔히 취미로 삼지만, 그런 매체만이 열정을 효과적으로 유지해주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몰입할 수 있고 에술 행위의 기술을 사용하도록 자극하며, 꾸준히 보상을 안겨주는 것이라면 어떤 매개체라도 상관없다.


P304 에릭의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실험..

 

>> 리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하루는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리예가 눈을 감고서는 더듬거리며 있는 것이다.. 왜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하는 말.. 만약 자기가 눈이 안보인다면.. 샤워할때 어떤 기분일까... 장님들은 어떻게 샤워를 하는 걸까..느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힘든데.. 장님들이 불쌍하다며 계속 눈을 감고 더듬거리며 샴푸를 찾기도하고 비누를 찾기도 했다. 순간 황당하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미끄러지면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그러고 나오긴 했지만.. 리예의 그런 모습이 참 재밌었다. 리예는 궁금하면 자기가 실습을 해본다.. 그러고 나서도 거실에서도 눈을 감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몇번 더 보았다.

 

에릭의 이야기를 들으며 리예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가만보니 리예는 여러가지를 관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쉽게 지나쳐 가는 것들.. 무심결에 지나쳐 가는 것들에 호기심을 갖는 리예.. 리예를 좀 더 관찰해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재밌을 것 같다..


P315 성공은 탁우러하게 그려낸 그림 자체에 있지 않고, 습관을 유지하는 데 있다.

 

P334 그저 당신의 마음을 끄는 것을 깊이 연구하고 탐구하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 흐름에 따라 몰입하면 된다. 도전 과제를 기꺼이 받아들여 만족할 만한 해결책과 일에 감추어진 의미를 찾아내라.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일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P337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면 그 일로 결코 성공할 수 없고, 행복한 삶을 살기도 힘들다. 한동안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돈도 벌겠지만 의미 있게 살아가지는 못한다.

P353 칼 융 – “부름을 받았든 못 받았든 신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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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재즈 같은 삶을...

살고 싶다..

 

Miles Davis의 연주로 들어보는..

Summer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