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축제 22]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의 인생'을 읽고....

pumpkinn 2009. 5. 5. 05:36

 

 

저자 - 챨스 핸디에 대하여..

 

챨스 핸디는 성직자인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뜻을 잘 내조하며 섬겼던 엄마와의 사이에서 태어나 겸손과 정직과 성실함 그리고 검소함이 삶에 그대로 묻어있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그는 영국계 아일랜드 인으로 그런 그의 외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들로 인해 자신의 국적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릴 때부터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어쩌면 그가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하게 되는 것의 시작은 이미 그때부터가 아녔나 싶다.

 

그가 대학을 졸업후 셸에 들어간 것도 어릴 때 너무나도 검소하고 근면한 환경에서 자랐던 찰스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많은 것을 속으로 삼켜야 했기 때문이었음을 그는 책에서 표현하고 있다. 비록 그의 돈에 대한 열망(?)은 그다지 높은 것은 아녔으나, 어쨌든 그것이 그를 셸에 입사하게 했고, 그 당시 셀의 기업 방침인 몰입교육은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좋았던 좋아하지 않았던, 챨스에게 많은 경험의 기회를 안겨 주게 된다.

 

내게 있어 챨스 핸디는 아주 멀리 높은 곳에 있는 경영석학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어떤 그림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게 참으로 귀한 위로로 다가왔다. 그는 스스로가 관리자로서의 역할은 맞지 않음을 알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하다보니 이런저런 중요한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자신의 삶의 그림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은 우연하게도 셸에서 일하는 동안 임원교육 직책을 맡게 되어 그것이 천직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 직책을 떠나야 하는 전근을 해야 하는 제의가 들어오자 사직서를 내어 런던 경영대학원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고 슬론 재단의 후원금을 받기까지의 1년이란 과정을 미국 MIT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고.. 등등.. , 챨스 핸디는 어찌어찌 하다 보니 경영에 관심이 많음을 알게되어 천직이라고 느껴졌던 교육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가게 되는 과정이 내게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어떤 자신만의 정확한 나침반에 따라 처음부터 확고한 방향 설정을 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어렴풋이느껴졌던 그 무엇을 따라 하다 보니 셀의 몰입교육이론에 따라 여기저기 끌려다니다 보니 발견하게된 자신의 재능. (참조 P110~111)

 

물론, 평생 그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에게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주는 교수자리를 선뜻 내놓고 세인트 조지 학장으로 옮기는 그를 보며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를 삶 안에서 실천으로 보여주었음에 그의 용기가 정말 놀라웠고,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라도 쳐야 할 것 같은 감동 이었더랬다. 공부를 시켜야하는 십대 두 자녀가 있었음에도 그런 결정을 내릴수 있는 용기는 누구나 지닌 것이 아니기에 그의 용기는 더 빛나 보였다. 사실 그렇게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그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는 엘리자베스..그녀의 현명함이란

 

찰스가 자신의 가치 추구에 흔들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옆에서 지켜주며 성실한 대리인 역을 해주고 용기를 주고 자극이 되어준 엘리자베스가 찰스의 아내였다는 것은 찰스에게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성실한 신뢰와 존경을 부어주는 엘리자베스가 없었다면, 찰스는 자신의 능력을 그렇게 마음껏 발휘해 낼 수 있었을까.. 솔직히 나는 의문스럽다.

 

그들이 보여준 부부상은 그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가장 완벽한 부부상으로 내가 원했던 삶이었다. 물론 나의 삶은 끝나지 않았고 하느님이 계획을 바꾸시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온 만큼 더 살아갈 것이다. 내게 시간이 있다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어떤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내게 필요한 것은 용기요 지혜고 인내이다. 내가 원하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나는 계속 시도하고 인내하며 부딪혀 가야 할 것이다. 용기를 잃지 않고 지혜롭게

 

내가 챨스 저자 조사 부분에 아내 엘리자베스를 언급하는 것은.. 그의 뒤에 늘 그렇게 든든한 배경처럼 있어주고 솔직한 피드백을 해주고 그의 마인드를 열어주고 그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도와준 엘리자 없는 챨스는 과연 있을까..하는 의문 때문이다. 찰스도 엘리자베스를 아내로써, 동료로써, 대리인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의 엄마로써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고 있음이 그의 책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다.

 

... 저자조사인지 리뷰인지 내가 쓰면서도 살짝 혼동스럽다..^^;; 그는 영국에서 당시 생소하던 경영 교육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다 바쳤고, 사회철학을 구현하고 싶었던 그의 열정이 내 것이었음 했다. ^^;; 암튼.. 그가 여러 중요 경영 대학 설립과 교육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음은 그의 교육에 대한 열정으로 볼 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놀랄 일도 아닌 것 같다.

 

그의 중요한 저서로는 우리가 읽었던 포트폴리오의 인생과 함께, ‘코끼리와 벼룩’,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이책은 꼭 읽고 싶은 책이다. 코끼리와 벼룩과 함께), 그리고 헝그리 정신산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사람들등이 있다. 헝그리 정신과 산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사람들도 읽고 싶다. ^^

 

 

 

포트폴리오의 인생을 읽다가 리뷰

 

책을 읽기 시작하며…

챨스 핸디의 책은 첫 문장부터 나를 흥미 진진함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챨스 핸디씨가 정말 맞습니까?”라는 질문 속에 어떤 모습이 진정 자신의 모습인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풀어나가는 그가 너무나도 재밌게 느껴졌다. 정말 그 부분을 읽으면서 재밌어 죽겠는그런 느낌.. 나는 이런 식의 질문과 풀이를 너무나도 재밌어 한다. 그럴때면 나도 그 자리에 있으면서 함께 토론하고 싶은 바램이 들 정도다. 여러 방면에서 생각할 수 있고, 우리 삶이란 것은 한 방면으로만 해석되고 보아 질 수는 없는 것. 바로 그런 다방면 속에 자신의 모습을 놓아두고 분석하며 마치 재미난 무엇을 구경하듯 바라보며 풀어놓은 그의 글이 너무나도 재밌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찰스 핸디는 나를 시작부터 두근거리게 하며 그의 삶 속으로 데려갔다.

 

책을 읽다가.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일종의 뭔지 모를 위로와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유명한 저자들은 어릴때부터, 또는 좀 더 커서 갖게된 확실한 꿈과 비젼이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향해 정말 치열하게 삶에 임했고 그들의 비젼을 내 삶속으로 끌어내려왔다. 영웅전을 읽는 것처럼 정말 멋지고 드라마틱하고 쾌감이 일며 나도 손에 총칼 들고 뛰쳐나가야 할 것 같은 감동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 기껏해야 그들이 읊어냈던 멋진 구절 한마디를 내 가슴에 새기며 나도 그렇게 해보리라는 다짐남발의 연속이었을 뿐 너무 버겁게 느껴졌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그들은 그들 역시도 힘들었고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또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일궈냈다고 말을 해도 내게는 그것은 이미 이룬자의 성공담으로 다가와 기운이 빠지기는 매한가지였다. 가진자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 마치 그런 사람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특석티켓을 쥐고 태어난 듯한 느낌. (이 표현이 다소 억지스러블 한 것 임을 안다) 암튼. 조금 과정되어 표현되어졌는지는 모르지만 내게는 그만큼 너무나도 대단한사람들로 느껴졌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임을 알 것이다.

 

그런데 찰스 할아버지는 살짝 달랐다. 물론 그도 옥스포드 출신이고... 책을 읽으면서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곳곳에서 그 역시 학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가 무의식중에 옥스포드가 그에게 많은 위로와 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라는 인정을 받게 해주는 고마운 타이틀임에 기뻐했음이 느껴졌더랬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는 그런 사회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와진 그를 느끼긴 했지만. 적어도 젊었을때는 그는 그것을 즐겼음이 느껴졌다.

 

암튼, 그는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런 꿈이나 비젼은 없어보였고, 어찌어찌 삶이 이끌어주는대로 가다보니 것은 싫고 저것은 좋고정도의 느낌을 갖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시선을 돌리다보니 어찌어찌하여 임원 교육을 맡게되어 거기서 교육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천직임을 알게었고, 훗날 대학 교수가 되고 슬론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게 되고..그것이 자신의 온 정열을 다 바쳐 일하고 싶은 비젼을 갖게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그것이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처음부터 그가 뚜렷한 무엇이 있었음이 아니라는 것. 단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은 것을 앎으로 자심의 삶의 방햐을 잡아 나갔다는 것. , 목적지는 모르나 이 자리를 왜 떠나고 싶은지 그 이유는 명확히 알았던 것이 너무나도 반가왔다. 감히 비교하기 조심스럽지만 지금의 내 모습 같아서. 물론 내가 그처럼 어찌어찌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안일함에 젖어있기에는 너무 무모한 바램임을 아나..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야 함을 알고 있음에 그저 길을 가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그렇게 가다보면 산도 보고 물도 만날 것이고 시원한 개울물에 발도 담궈도 보고 비바람속에 추위에 떨다가 나른한 햇살에 낮잠도 자다보니 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라는 상상조차 내게 허용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아니잖나..

 

물론 찰스에게 그런 기회가 갑자기 감이 툭 떨어지듯. 그렇게 우연 속에 주어졌던 것은 아님을 너무나도 잘안다. 그가 대충대충 살았다면 그에게 다가오는 기회를 잡지도 못했을 것이며, 설사 기회가 왔어도 그게 기회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그 뒤에 변수로 작용하는 요소들이 물론 많았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은 그에게 맡겨진 일에 대한 성실함과 충실함이 아녔을까 싶다. (물론 그는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 있었음을 고백하고 있지만). 그가 단순히 운이 좋아 줄을 잘 섰다고 말하기에는 그에게도 고통이 있었고 아픔이 있었다.

 

햘스의 삶을 보면서 그를 그의 꿈으로 이끌어준 삶의 손길이 내게도 뻗쳐주었음..’ 하는 바램이 슬쩍 느껴졌다.. , 그는 뭘 딱히 원하는지 목적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단지 지금의 이것은 아니라는 떠나야 할 이유를 알았기에 떠날 수 있었던 그의 용기.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 때 그 옛날 누구에게도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직서라는 것을 낼 수 있는 용기를 지녔었다는 것. 나는 사직서를 낼 수 있는 용기는 없다. 왜냐면 사직서를 내고 안내고 할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 하지만 그 사직서를 낼 용기로 내 삶을 다시 바라보고 리부팅은 할 수 있음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물론 내 자신과 내가 속한 곳에 출혈은 따를 것이고 적응 기간은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변화와 혁신을 감행할 때 감당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곧 우리는 또 적응 할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행복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기다움이 행복이라는 것은 들었을 때의 충격 이상으로 정말 놀라울 정도로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마치며...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챨스는 자신의 실수나 모자름도 솔직하게 과장됨이나 얼버무림 없이 덤덤하게 표현하며 그가 세계적인 작가나 경영 석학이라는 어려운 사람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가까이 있는 옆집에 사는 따뜻한 성품의 지적인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책은 지적 감동이라기 보다는 인간적인 감성을 터치하는 감동이 느껴졌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하며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모이모니아그것은 결국 자기 다움이며,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정말 행복을 느낀다. 는 이번에 선생님의 자기다움에 관한 강연과 맛 물려 내게 더 깊이 강하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다.

 

인제 책이 두 권 남았다. 탈 벤 샤히르의 해피어와 스캇 팩의 아직도 가야 할 길하지만 아직 제출하지 못한 책이 두 권 더 남아있는 나. 남은 한 달 동안 나는 그야말로 내 안에 있는 치열함과 성실함을 모두 동원해내야 할 것이다. 요즘은 more and more 가 내 가슴안에 함께 한다. 조금 더 열심히, 조금 더 충실히, 조금 더 치열하게 힘해서 마지막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더 깊은 사랑으로 나를 도닥거리며 보등어 주어야겠다.

 

  포트폴리오 인생

 

찰스 핸디의 ‘포트폴리오의 인생’을 읽으며 - 초서

 

P13 그리스의 시인은 죽기 전까지는 누구도 행복하다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의 행복은 죽은 다음에야 판가름이 난다는 뜻이리라. 비슷한 논리로 죽기 전까지 완전한 자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 공감가는 부분이다. 누구도 영원히 행복하다..또는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눈을 감는 그 순간에 되돌아보며 진정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어땠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다가 문득 안쏘니 홉킨스와 브래드 핏이 함께 연기했던 ‘Meet Joe Black’ 영화가 떠올랐다. 마지막 안쏘니 홉킨스가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면서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연설하던 장면.. 후회 없는 멋진 인생을 살라는.. 자신은 그런 인생을 살았다며..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장면..(물론 그 곳에 있는 생일 축하객들은 그가 마지막 인사를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의 연설을 눈물을 흘리면서 들었다. 과연 몇 사람이 나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며 당신들도 나처럼 그런 인생을 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교만과 거만이 느껴지지 않는 마음 깊은 그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실이 그대로 전해지는 연설. 정말 깊은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브래드 핏의 12역도 색달랐고..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영화중의 하나이다.. 생각난 김에 이번 주에 빌려 봐야겠다. 내 죽음을 눈앞에 앞두었을 때, 내 삶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는 행복한 삶이었다고 나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죽음을 축복처럼 맞이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P13 자신을 길쭉한 8단 서랍장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던 친구가 있었다. 각 서랍이 자기 삶의 한 가닥씩을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서랍마다 온전한 자아의 각기 다른 일면들이 들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서랍 하나는 외부에서는 볼 수 없게 잠겨 있고, 또 하나는 자신조차 볼 수 없게 잠겨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조차 보지 못하는 서랍에는 그의 무의식이 담겨 있을 터였다.

 

>> 참 재밌는 설정이었다. 나는 무의식에 대해 관심이 많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엉뚱한 행동들이나 생각들로 나 스스로로 놀랄 때가 많다. 나의 무의식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어떤 형태로 어떤 식으로 엮여져 있는지 참 궁금하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아니면 부정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아니면 중성적인 상태에서 그것이 의식 세계로 튕겨져 나오면서 그때의 내가 처한 환경이나 감성상태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지는 건지..  그 모든 것이 궁금하다. 정말 너무나도 경이로운 경험이 아닐까 싶다. 무의식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은


P14 조하리의 창

 

본인 인식

본인이 인식하지 못함

타인이 인식

A

B

타인이 인식하지 못함

D

C

 

>> ‘조하리의 창이라는 이름은 몰랐지만, 이 네가지 유형의 인식 관점은 우리 모두는 이미 한 번쯤 생각해본 부분일 것이다. 늘 궁금했다. 내가 보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 그리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남도 모르는 나도 모르는 나는 어떤 모습을 감추고 있는지. 가끔 그런 경험을 하곤 한다. 나는 스스로 따뜻하다고 느끼는데 어느 누구는 차갑다고 말할 때, 나는 참 어수룩하다고 느끼는데 어느 누구는 나를 까다롭다고 느낄때,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어느 순간에 그런 행동을 보였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러한 경험은 내가 모르는 나의 어떤 면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내가 아는 내 자신이 아닌, 나는 모르는 내 자신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듣고 싶기도 하다. 나를 잘 아는 누군가로부터 그것이 아픔을 느끼게 할 지라도. 좋은 소리 발림이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말해주는 객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다.


P17 가끔 이들 인물사진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엘리자베스가 사진을 찍어준다면 어떤 자세로 세 장을 찍고 싶습니까? 어떤 사진을 맨 앞에 놓고 싶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사진의 내용이나 배치가 달라질까요? 당신을 아는 다른 사람들도 당신이 정한 배치에 동의할까요?

 

>> 나는 어떤 모습이 가장 자연스런 모습일까..?? 그 중 어떤 모습이 가장 나를 잘 나타내는 모습으로 느껴질까.. 생각해보았다. 세 장을 찍는다면.. 아마도 한 장은 컴 앞에 앉아있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일거고 또 다른 한 장은 가게서 일하는 모습일 것 같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애리와 리예와 앉아서 각자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거나 깔깔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싶다... 세 개를 합성해 놓으면 어떤 것이 가장 크게 보여질까.. 아마도 컴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겠다. 그 다음에 가게서 일하는 모습이고 그 다음이 애리와 리예와 함께 하는 모습이 아닐까..싶다.

물론 엄마니까 당연히 애리와 리예랑 함께 하는 모습이 가장 크게 클로즈업 되어야 할건데 내 삶 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그닥 그렇지만은 않다. 또한 아줌마가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는 모습이 빠진 것도 좀 그렇긴 하겠다. 하지만 솔직하게 표현되어야 하기에 과감하게 그 장면은 찍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를 아는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어떤 모습의 사진이 가장 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진이라 생각하며 찍고 싶을지, 또 그 중 어떤 모습이 가장 큰 그림 되어 중앙을 차지하게 될지 궁금하다. 혹시 멍 때리는 모습..?? ^^;; 멍 때린다는 표현이 어쩜 이리 재밌는지 모르겠다. 이 말은 처음 선생님 블로그에서 배운 표현인데 내가 넘 애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P18 여자는 상대방과의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일까? 아마도 모두가 진짜 모습이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한 가지 면만 볼 것이다. 어쩌면 자신조차 모르는 또 다른 모습이 숨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조하리의 창이 시사하는 바처럼 우리는 자신에게도 낯선 존재일 수 있으니까.

 

>> 절대 공감이다. 자신의 사진을 보여줄 대상에 따라 다른 사진을 고르는 우리들. 아마도 나 역시 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골랐을 것이다. 그 사진 분위기가 이 책에서 나온 바로 그런 분위기의 사진은 아녔어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우리 삶도 그런 걸까.. 누군가 에게는 여성스럽게 보여지고 싶고, 누군가 에게는 당당한 커리어 우먼으로, 누군가 에게는 지적이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나로 보여지고 싶고, 누구에게는 보호해주고 싶은 모습, 또 누군가 에게는 함께 웃고 떠들며 무엇이든 함께 나눌 수 있는 편안한 모습.. 생각해보니 정말 참 많은 모습을 각기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나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내가 때론 여성스러우면서도 때로는 어린 남자아이처럼 개구장이 모습도 지니고 있음을, 때로는 당당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꺼져 내리기도 하는 약한 나 일수도 있음을.. 지적으로 보이고 싶어 늘 책을 들고 다니고 읽으며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때로는 음식도 흘리고 먹고 공공장소에서 깔깔대고 크게 웃으며 떠들어대는 그런 푼수끼 가득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각기 다르게 느껴지는 한 사람의 모습. 과연 어떤 모습이 가장 내 자신에 가까운 모습일건가..?? 어떤 모습의 옷을 입을 때 나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내가 가장 편한 모습.. 그것이 내 본 모습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겠지. 그런데 정말 궁금해진다.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지.. 나 조차도 모르는 내 자신을 그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 것일까…?


P20 우정은 워낙 소중 한 것이라 섣불리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정과 일은 서로 중복되지 않을 때 가장 잘 돌아가는 법니다. 그래야 자신이 누구인지, 즉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 이것은 나도 철칙으로 삼고 있다. 친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딸 내지는 아들은 고용하지 않고 함께 거래하는 것 조차 원하지 않는다. 왜냐면 로 인해 좋았던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어떤 금전관계가 얽히게 될 때는 상황이 만드는 것이지 사람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는 드물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가끔씩 아는 분들이 부탁해 오실 때가 있다. 당신들의 자녀들을 데려다 필요할 때 경험두 쌓을 겸 일을 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 오시는 것. 그럴 때는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일단은 내가 아는 분의 자제기에 그 아이를 편하게 다룰 수 없어 불편하기도 하고, 나 또한 월급을 줄 때는 적어도월급만큼의 일을 해주기를 원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너무나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냥 도와드리는 건 모를까절대 공적인 일과 개인적인 관계를 섞지 않으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P22 지금도 가끔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하고 바랄 떄야 있지만, 더 이상 불가능한 소망에 헛되이 매달리지는 않는다.

>> 나는 찰스 핸디가 첫 구절을 읽는 순간부터 참 좋아졌다. 왜냐면 그가 그의 자신을 돌아보며 어느 모습이 진짜 챨스인지 진지함 속에 풀어가는 그의 시니컬한 물음들이 나를 아주 흥미진진한 관심속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너무나도 강한 것도 아니면서, 왠지 피터 드러커나 칼리 피오리나처럼 너무나도 강하고 완벽해서 너무나도 닮고 싶은 롤 모델이긴 하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지는 반면, 챨스 핸디의 이런 표현들은 왠지 좀 더 넉넉한 인간적인 약함도 느껴져서 더 푸근하게 느껴졌다. 왠지 옆집에 사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느낌


P25

 

>> 어쩌면 지금의 내 상태가 바로 찰스 핸디가 느꼈던 충분한 열정을 느끼지 않았다는 상태가 아닌가 싶다. 내게 주어진 삶.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다른 것과 대체될 수 없는 삶이라면 한번 온전히 몰입해보는 것 멋지지 않을까..? 내가 정말 멋진 삶을 살고 싶다면, 자꾸 엉뚱한 삶을 그릴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현주소에서 충실과 치열함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다짐남발은 그만 하고..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며..


P26그 여성은 결혼이라는 고상한 허울을 쓰고 남편과 13년을 살았다. 새로운 삶과 보다 온전한 정체성을 찾아 나설 계기가 되어 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나서야 공허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딸도 있다. 나태함과 어정쩡한 타협으로 지속되던 결혼생활로 결국 13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낭비했던 셈이다.

 

>> 외국 사람들이 쓰는 글 속에서 느껴지는 문화 차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차이가 바로 이 결혼과 이혼 부분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쓰여지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에 살포시 웃음이 나왔다. 물론 나는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약 한국였다면 이혼이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그것을 합당화 시키거나 그 이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조차도 마치 끼가 다분한 여자이며.. 정상적인 가정 주부가 상상한다는 것은 죄악이고 제대로된 가정 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한 행실 안 좋은 여성으로 손가락질 받을 상황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 찰스 핸디의 표현이 재밌다.

 

그 여성은 결혼이라는 고상한 허울을 쓰고 남편과 13녀을 살았다. 새로운 삶과 보다 온전한 정체성을 찾아 나설 계기가 되어 준 다른 남자를 만나고 나서야 공허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딸도 있다. 나태함과 어정쩡한 타협으로 지속되던 결혼 생활로 결국 13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낭비했던 셈이다. 이 얼마나 재밌는 표현인지..

 

물론, 간단하게 표현되어지고 단정되어질 수 없는 것이 부부관계다. 이렇다고 말하기엔 저런 것이 있고, 또 저렇다고 말하기엔 다른 무엇이 있음으로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들의 연속. 단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사랑밖에 없을 것이며, 그 사랑을 온전히 다 바치겠다고 하더라도, 때때로 허무함은 느껴질 것이고, 지칠때도 있을 것이고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을 것이다. 메튜 켈리의 말 처럼, 배우자는 불가항력의 것으로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이해될 대상이 아니라는 것. 가장 부부를 잘 표현한 말인 것 같다. 나 역시 그 문제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

 

암튼, 찰스 핸디의 이 구절은 다른 문화속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곱씹어보게 해준 좋은 주제였던 것 같다. 재밌었다. 너무 길어지기에 내 생각을 여기에 다 표현을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참 흥미진진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P26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허미니아 아이바라 교수는 행동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느 바를 알아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주장했다. 일단 행동하고 경험하고 질문하고 다시 행동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무어승ㄹ 할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P27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진정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삶이란 정체성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고, 우리는 사다리를 오르면서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발견해간다.

 

>>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무엇을 할 때 기쁘고 성취감을 느끼며 무엇을 할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끼는지.. 그 모든 과정은 결국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가 선택하는 경험들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가장 맞아 떨어지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느끼며 샘솟는 에너지 속에 행복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원하는게 무엇였는지 행복이 무엇인지, 내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죽게 된다면 그보다 더 슬픈 죽음이 있을까 싶다. 정말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나는 나를 알아가는 작업을 절대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며, 내가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느끼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삶을 부딪히며 직접 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정리를 하고 어떻게 내 비젼과 연관시킬 것인가..?? 나는 왜 내가 일을 적게 하려고 줄이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일까..?? 내가 없어도 가게가 제대로 돌아가길 나는 원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 여유로워짐 속에,.. 내가 원하는 일을 그 시간에 하고 있음에 왜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아직 뭔가가 우선순위에 따라 정리가 되지 않았기에 그런 걸까..??


P28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중년의 성공이란 바로 사다리에서 이런 단계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사다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우리네 인간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떻게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한다. 좋은 나쁘든 우리가 이곳에서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은 달라졌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사다리의 마지막 계단은 자신보다 큰 무엇을 향한 기여의 단계, 불멸을 위한 노력의 단계이다. 영원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오래 지속될 자신만의 기념물을 향한 여정, 누군가는 훌륭한 삶의 구성요소란 살고 배우고, 사랑하고, 유산을 남기는 것이라며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을 나름대로 바꾸어 표현했었다. 그 말이 마음에 든다. 내가 삶에서 이루려 했던 것을 집적해서 보여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P29 우리네 인간이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 거대한 세상에서 의미를 가지리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어쩌면 교만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교만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쓴 책들은 모두 버려져 재활용되고 생각들은 망각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글을 쓰고 가르친다. 왜일까? 창의 빈 고슬 메우고 싶기 때문에, 그리하여 죽기 전에 나의 모든 면모를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책 자체가 나의 완전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다. 변화해온 삶 속에 등장했던 여러 찰스 핸드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만나고 성찰하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내가 누구인지알고 있을까? 완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라 본다. 더구나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찰스 핸디도 있으리라. 많이들 인용하는 엘리엇의 시구처럼 모든 탐험의 끝은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당도하는 일이며, 처음으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일이다. 우리가 모험을 멈추는 것은 아마도 삶이 끝나는 순간이리라.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나의 모험은 계속될밖에.


P29곧 죽는다는 사실은 두렵지 않다만, 삶에서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다하지 못해 안타깝다.”

 

>> 이 부분을 읽다가.. 문득 또 번역가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맛갈스런 글의 표현들이 누구에 의해 번역이 되어진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혜정이었다. 정말 멋진 번역..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찰스 핸디의 이런 모든 사고 자체가 넘 맘에 든다. 우리는 끝없는 시도 속에 살아간다. 그 시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고.. 그 여정은 모두 나의 정체성을 향해 가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찰스의 표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P42 아무래도 나느 요즘 세계 어디서나 늘어가는 외국계인물이 될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본인의 충성심을 다수 국가에 쪼개어 바쳐야 하고, 때로는 이를 세계시민이라는 그럴 듯한 부류.

 

>> 찰스 핸디의 본인의 충성심을 다수 국가에 쪼개어 바쳐야 하는 입장에 놓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그의 이야기만은 아녔다. 나 역시 한국인이지만, 나는 브라질에 살고 있고, 나는 브라질에 세금을 납부하며,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와 축구 경기를 벌일 때는 죽어라(?)고 브라질을 응원한다. 그것은 팔이 안으로 굽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우리는 그렇게 목이 메라 응원하고 골을 잃을 때면 안타까와 하는 마음은 나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밥을 주는 나라에 대한 따뜻한 애정일 것이다.

단 괴로울 때는 한국과 브라질이 경쟁되어 싸울 때 이다. 그럴 때는 나를 낳아준 부모냐키워준 부모냐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 속에 싸이게 되는 것..

 

하지만 챨스가 느꼈던 내가 어느 나라 국민인가에 대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은 전혀 없다.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나온 내 나라인데 만약 내가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흐트러졌다면 그건 이해하기 힘든 소리일게다.


P44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조사연구 기관인 EIU 2004년 아일랜드가 삶의 질 면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긴가민가했지만 외부인들은 모두 그들을 부러워했다.

 

>> 이것은 역시 번역가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표현이 넘 재밌었다.. 하하하하~ ^^;; 정작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못 느끼고 있는데, 잡지나 신문에서는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통계결과가 나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은 정작 실감 못하고 있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 완전 코미디다.. 하하하하~ ^^


P45 Angela’s Ashes – Frank McCourt

 

>> 이 소설은 꼭 한번 읽어보고 싶다. 언젠가 영어 수업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정말 지루한 소설였다고 표현을 해서 별로 관심이 안 갔었는데, 찰스 핸디로부터 듣는 Angela’s Ashes는 왠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P46 저녁마다 하루를 마친 진정한 성취감을 맛보았고, 주말마다 감사하고 축하해야 할 지당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런 힘겨웠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볼 때 삶이 훨씬 단순했던 것만 것 사실이다. 삶은 그저 먹고사는 일이었고 그것으로 족했다.

 

>> 이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많은 글 속에서 내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삶에 충실했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날은 유학생활때라고 말했다. 정말 그렇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때 겪었던 모든 것을 우리 애리나 리예가 겪게 된다면하고 생각을 해보면 그건 아니다. 물론 우리 애리와 리예를 고생시키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다. 뭔가 부족한 상황에서 열정도 생기고 에너지도 생기고 자극도 되고 도전 의식도 생기기에 애리와 리예도 당연히 풍요로운 생활만을 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단지 내 딸들에게 어떤 능력이 있고 가능가능 보일 때 든든한 뒷 배경이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그 짐을 온전히 혼자 지게 하고 싶진 않다. 내가 그랬듯이.

 

가진 것이 없으셨던 우리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섭섭해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혼자 해내야 하는 동안 나는 많이 컸고 많이 성숙해졌고, 또 많이 둥글어졌고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배우며 칼 같이 날카롭던 나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애리와 리예가 살아가게 될 이라는 자동차에 조금의 시동이 걸릴 수 있는 기름을 넣어주고 싶을 뿐이다. 너무 지치지 않게... 그리고 울고 싶을 때 기댈 수 있는..뒤에 이렇게 든든하게 두 팔 벌리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엄마 아빠가 있음에 외롭지 않았음 하는 마음인게다.


P52 어떤 이에게는 자명한 진리가 다른 이에게는 명백한 거짓 또는 오류일 수도 있다. 그러니 법정에서 조금도 거짓 없는 온전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하는 사람은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누구도 특정 상황에 대한 온전한 진실을 알지 못하니까, 실제로 우리가 듣게 되는 것은 그들이인지하는 진리라는 사실을 우리도 알고 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시작했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기억하는 진실일 뿐이다.

 

>> 전적으로 공감한다. 굳이 진리라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본적이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주제를 떠나, 그냥 우리 눈 앞에 있는 사물이나 어떤 상황을 보고도 우리는 바라보는 관점이나 받아들이는 느낌이 전혀 다를 때도 있다. 서로 옳다고믿는.. 그것은 각자 자신에게는 옮고 맞는 것이나 자기와 다르게 바라본 사람에게는 그르고 틀린 것이니 과연 누가 맞고 누가 옳은 것인가. 결국 둘 다 맞고, 둘 다 틀린 것, 챨스가 말하듯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경험이나 배운 것들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들이 밑바탕에 깔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신이 진리라고 기억하는 그것에 의한 것임으로 결국 우리가 삶 속에 믿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진리고 모든 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그래서 우리는 내 주장만이 옳고 내 생각만이 바르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교만한 행동인 것인지..


P52 플라톤에게는 우리가 보거나 아는 모든 것이 참된 존재의 그림자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지하는 진실일 뿐이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란 언제나 볼가지로 남아있다 우리의 감각에 의존해 실제 존재를 인식할 수는 없다,

 

P53 물리적인 세계에서 관념이라는 영역으로 주제를 옮기면 진리는 한층 까다로운 문제가 된다. 달리 말하자면 삶은 하나의 커다란 가설이다. 더구나 완전히 끝날 때까지 옳음을 입증하기도, 오류를 증명하기도 어려운 가설.


P58 이 일로 내가 젊은 친구들이 아무리 주제넘어 보여도 그들의 생각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배웠다면 그것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이런 푹신한 스폰지 같은 마음 가짐이 나는 넘 좋다. 어떤 충격으로 떨어져도 푹신한 따뜻함으로 받아들여지는.. 푸근한 인상만큼이나 따뜻한 찰스 할아버지...


P59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통해 족하다개념을 처음 내게 알려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악의 정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덕이란 지나침과 모자람의 양 극단 사이 중간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 죄악이란 지나침과 모자람, ‘양 극단의 중간지점, 즉 중용을 넘어서는 데서 생긴다.’

 

>> 나이가 들어가면서 중용의 의미를 그 가진 깊은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확실히 알 것 같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중용이란 자신의 주장도 없이 개성도 없는 이것도 아닌 것이 저것도 아닌, 그런 모호한 것을 의미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닌, 극으로의 치우침 없는 감정의 평온함 상태를 말하는 거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이 균형 속에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되고, 그럼으로 인해 격화되는 감정의 동요 없이 잔잔함 속에 모든 것이 풀어져 나가는. 그럴 때 무슨 죄악스런 일이 발생 할 수 있을까.. 죄라는 것이 감정이 넘칠 때, 분노가 넘칠 때 발생되는 것임을 볼 때.. ‘죄악이란 지나침과 모자람, 양 극단의 중간지점인 중용을 넘어서는 데서 생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P60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좋은 삶이란 바로 에우다이모니아에 다름 아니었다. 이 복잡한 그리스어는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한테는 다른 의미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이란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었다. (…) 에우다이모니아는 번영또는 가장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함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P63  레지 버튼 교수 - ‘여러분의 답이 더 훌륭하다면 책에 나와 있는 답은 중요하지 않다.’ 그날 내가 얻은 교훈은 그것이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교훈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 정말 열린 사고와 따뜻한 성품을 가지신 멋진 교수님이시다. 사회에 공헌하는 훌륭한 사람 뒤에는 꼭 훌륭한 스승이 계심을 또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다.


P63 지금도 기억력은 썩 좋지 않지만 이제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요즘은 나쁜 기억력이 오히려 창조적 발상을 촉진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며, 어떤 아일랜드 사람이 했다는 말을 종종 인용한다. “내 말을 들을 떄까지는 나도 내 생각을 모른다니까.” 나는 혼자 하는 공부보다 대화와 토론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웠으며 때로 대화와 토론 과정에서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거ㅏ거의 지혜에 의지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거기서 탈피할 줄도 알 만큼 나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셈이다.

 

>> “내 말을 들을 때까지는 나도 내 생각을 모른다니까하하하하~ 표현이 넘 웃기면서도 무척 공감이 갔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한 그 아일랜드 사람처럼 철학적이지는 않지만, 내 생각을 표현해내는데 있어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 겉으로 내놓기 보다는, 말로 표현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면서, 선생님이 내게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 보다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스타일이라 말씀하셨을 때, 나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언뜻 이해가 안 갔었다. 말 뜻을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를 스스로도 몰랐다는 것. 그런데 와우를 하면서 내가 그런 사람이구나를 피부로 느낀다. 그래서 한번 글을 쓴다음 그 글을 날려버리면, 다시 같은 글을 써내려갈 수가 없다. 이미 글을 쓸때의 내 느낌은 바뀌어버렸기 때문에 같은 느낌의 글을 쓸 수가 없는 것.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 재즈 연주에 빗대어 말씀 하신 기억이 떠오른다. 재즈란 한번도 같은 연주법으로 연주되지 않음을.. 재즈는 그때그때 연주하는 분들의 느낌과 감성에 따라 같은 곡이라도 다르게 표현된다는 말씀..

 

내 말을 들을 때까지는 나도 내 생각을 모른다니까.” ß 표현이 너무 재밌었다. ^^


P64 옥스포드 인문학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설득력 있고 조리 있게 표현하고 자신의 추론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법을 배우니까. 셸의 면접관들이 내용에 상관없이 잘 단련된 머리라고 했을 때 의미한 것이 이것이 아닐까 싶다.

 

>> 나는 내 성격이나 성향이나 좋아하는 취향을 볼 때 그 무엇을 보아서도 인문학도에 가까운데 나는 어쩌자고 이과 선택을 했던 것일까..?? 챨스의 옥스퍼드 인문학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단지 여학생 대부분이 택하는 인문계’’ 싫어서 택했던 이과’. 그리고 나는 내 암기력을 어렸을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자신이 없었고 푸는 것이 좀 더 편했던 나에게 내 성향은 전혀 상관없이 이과를 택했던 것 같다. 더욱이 화학이 미치도록(?) 좋았던 나는, 이과가 대체적으로 여학생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과 단지 화학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선택했다는 것은.. 정말 참으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선택였던 것 같다. 물론 이과 저과를 몇 번이나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하며 배운 것이 많음을 부인 할 수는 없지만, 한 우물을 파지 않았으므로 해서 내게 주저지지 않았던 던 성취감은 나를 늘 허전한 그 무엇에 헐떡거리게 했고, 그 허전함을 메우려 배움에 목말라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


P71 현지 경험이 많은 그는 나의 눈이자, , 그리고 실무 담당자가 되어 주었다. 유능한 친구였지만 딱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위 말하는 매뉴얼대로일하는 사람이라 매뉴얼에 나오지 않은 변칙상황이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라는 점이었다. 매뉴얼에 뭔가를 추가하거나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업무의 일부라고는 생각조차 않는 눈치였다.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 따위는 그의 머릿속에 아예 없는 단어였고, 새로운 실험은 그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단어였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그 부분은 내가 담당하면 되니까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 하하하하~ 그의 표현이 넘 웃겼다. ‘새로운 실험은 그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단어였다.’ 하하하하~ 고지식하게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그에서 벗어나면 방향 감각을 잃게되어 두려움에 싸이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주로 고집이 황소고집이다. 앞뒤좌우상하 꼭꼭 막혀 함께 대화할 때 상대방의 숨을 조이는 듯한 꽉 막힌 사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 온다.

 

재밌는 것은 바로 이 부분에서다. 챨스는 하지만 괜찮았다. 그 부분은 내가 담당하면 되니까, 그런 읨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 아니겠는다?’ 라고 쓰고 있다. 내가 만약 챨스라면..?? 하고 나를 그 자리에 놓아보았다. 아마 몇 년전의 나라면 그를 바꾸던지, 내가 그만 두던지.. 뭐 그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나의 모습였을 것이다. 그런데 찰스의 말대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내 몸에 익혀지는 연륜. 그것은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맞는 일을 시키는 노하우를 갖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일하는 아이중에 그야말로 앞뒤좌우상하가 꽁꽁 막힌 남자아이가 있는데, 얼마나 충실한지 모른다. , 그 아이가 모른 것에 대해 (조조 복잡한 것)을 설명하려 할 때는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 인내를 나는 가지고 있질 않다. 암튼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꼭 슬픈 일만은 아니며, 삶에서 배우는 지혜는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요구 하는 것 같다.


P72 고속으로 달리다가 이런 통나무에 부딪혔다가는 꼼짝없이 악어들과 함께 수영을 해야 할 판이었다.

 

>> 하하하하~ 넘 웃겨서 돌아가시겠다. 하하하하~ 악어와 함께 수영을 해야 할 판이었다. 표현이 넘 재밌었다. 은근히 유머가 가득한 챨스 핸디. 난 이런 그윽한 유머를 가진 사람이 참 좋다. ^^


P77 보르네오에서 경험이 그가 생각하는 방향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분명 도움이 되었다 다른 것은 다 빼고라도, 남은 평생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무엇인가는 확실히 알았다. 누군가는 이를 부정적 학습이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유용한 결과라고 보았다. 살면서 시도하는 모든 일이 잘되면, 본인을 채찍질해 더욱 멀리 나가볼 유인을 찾기 어렵다. 대담하게 틀을 깨고 나가보면,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셸에 지원할 무렵 나는 거기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내가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얼마나 잘할지에 대해 아주 막연한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한층 뚜렷해졌다.

 

P79 문득, 학위란 계속해서 배우라는 일종의 증서, 즉 배움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80 어떤 주제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보라는 것이다. 청중보다 내가 많이 알고 있으므로 강연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을 테지만, 강연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밤늦도록 책과 통계자료를 살폈다. 이후로 나는 새로운 청중이나 독자를 위해 가연을 하고 글을 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보다 내가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P81 나는 앵무새처럼, 서글픈 후렴구를 반복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입니다.”

 

>> 하하하하하~ 넘 웃겨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나는 앵무새처럼 서글픈 후렴구를 반복했다. 서글픈 후렴구라는 표현이 얼마나 웃기던지하하하하하~ ^^ 정말 그랬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언급되어진 것만애서 벌써 몇번인데, 챨스가 직접 들은 것은 대체 얼마나 많았겠는가... 앵무새처럼 서글픈 후렴구... 하하하하~ ^^;;


P83 교전을 포함한 모든 작전 수행 뒤에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회의로 애초 목적이 무엇이고 설계 결과가 어떠했으며 왜 그렇게 진행되었는가, 이를 통해 배울 점은 무엇인가, 다음번에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을 파악하려는 취지다.

 

>> 성찰과 피드백..


P83누군가는 항상 최선을 알고 있다는 믿음을 버렸다. 대신에 나는 인간이 처한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모범답안이란 것이 없으며, 사람마다 다르므로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이를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기술적인 문제일 때만 전문가들이 좀 더 잘 알았다.


P93 슬론 재단에서 자금지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기업에서 선발한 중역들에게 안식년을 주어 교육시키는 그런 프로그램이지요.”

 

>> ‘슬론 재단을 여기서 만나니 너무나도 반가왔다. 나의 우상 칼리 피오리나가 떠올라서..


P94 누군가 자신의 잠재력을 그렇게 믿어준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믿음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 맞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는 사실은 때때로 부담이 느껴지기도 할 만큼 두렵기도 하다. 왜냐면 정말 내안에 그런 잠재력이 있는 것일까..??’ ‘정말 그분은 내 안에 그 어떤 잠재력이 있다고 믿고 계신걸까내지는 ..내 안에 그 분이 믿고 있는 잠재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는 등의 수많은 의문들과 물음들이 떠오르며 행여 나르 믿고 지켜봐주고 계시는 그 분을 실망시키게 될까 하는 불안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믿고 지켜봐 주는 따뜻한 시선을 느낄 때 나는 더 노력하게 되고, 그 믿음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찰스의 의견에 절대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점점 성장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 때때로 넘어지는 그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려고 내 자신을 추스리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P95현대의 연금술사는 창조적 정신을 가진 진취적 사업가들을 다룬 책으로 이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의미로 연금술사라고 불렀다. 이들 연금술사들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인생 초반에 존경하느 인물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입의 내요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에 이들은 과감히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해 연금술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책을 쓴 다음에야 프로이드가 이것을 황금의 씨앗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 그렇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그 뒤에 훌륭한 스승이 있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시간이 가면서 그것이 더 깊이 느껴진다. 내 안에 황금의 씨앗을 심어주는 선생님.. 그런데 훌륭한 선생님은 그들도 있었고 나도 있는데, 그들과 나와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나..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마음에 항상 그것을 담아두고 삶에 적용시키며 살아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이루어내는 그 황금 씨앗이 그냥 씨앗으로 남아 죽게 둔 것이 아니라 꽃피우게 한 것이었고, 나는 그 황금 씨앗을 소중하게 담아는 두었지만 그것이 꽃이 피울 수 있도록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주지 않았음이다. 다짐남발, 행동결여 가 바로 햇빛이 아닌 햇빛이 끼어들 수 없는 짙은 먹구름역할을 했음을,


P97 감사를 받든 못 받든, 행동이나 말을 통해 황금의 씨앗을 심는 일은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기분 좋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P97 황금의 씨앗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것이어야 한다.

 

>> 그야말로 당근의 말밥~ 지당하신 말씀인 당연한 이야기를 새삼스럽게강조하시는 챨스 핸디.큭큭~ ^^


P106

 

>> 이 부분을 읽다가 웃음이 나왔다, 스티븐 코비 박사의 아들 션 코비가 떠올라서. 그 역시도 아빠인 스티븐 코비 박사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고 있었으니. 글쎄, 실험대상인 당사자가 되었던 스스로는 그것이 기분 나쁜 상황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동전의 한 면만 본 것 아닌가 싶다. 실험이란건 바로 자식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부모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연습해보고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없으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나름의 자녀 교육의 방향이 잡히면 그 실험을 고수하는..

 

부모의 이런저런 실험대상이 되어보지 못하는 자녀들이 왜려 안쓰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나는 챨스와 그이 아내 엘리자베스가 둘의 의견을 모아 모든 상황을 함께 연구하며 성장하는 바람직한 부부상을 느끼게 해주어 그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자베스가 남편이 버겁다고 느낄정도로 쏟아붓는 믿음과 신뢰감. 참 멋진 부부다...


P107 셸은 동기부여ㅘ 자기통제를 통해 사람을 관리하는 Y이론 조직이 될 것임을 선포하는 내용이었다. 아마 X 이론적인 방법을 써서 Y 이론을 따르겠다고 선포하는 데서 오는 혼란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 하하하하하~ ^^;; 이것은 마치 내게 공산주의 이론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 로 들려서 얼마나 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이 챨스 할아버지가 이렇게 조용히 잔잔하게 넘어가다가 툭~ 던지는 이런 시니컬한 표현은 정말 나를 배꼽잡게한다. 독기가 없이 아주 부드러움마저 느껴지는 그만의 스타일.. 넘 웃겨죽겠다. 그런데 정작 재밌는 것은 그에게는 그것이 하나두 웃긴 것이 아닌 무지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을 글을 썼을 것 같은 상상이 되서 그게 넘 웃기는 것이다. 웃긴 얘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무지 심각한.. 나 웃겨서 절대루 걍 못 넘어간다..하하하하~ ^^

 


P115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다. 바로 그곳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수업과정이 끝나갈 무렵 나는 그 동안 공부한 것들의 중요한 대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 가야 했다. 그렇다고 당시 경험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적인 학습을 계속하면서 살고, 이를 통해 터득한 내용은 우리 머릿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런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배운 내용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 쉽게 꺼내 활용하려면 무의식 속의 배움을 의식 속으로 끌어내야 한다. MIT가 내게 해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실은 알고 있었음을 꺠닫는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 챨스는 자신이 MIT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공부가 끝나갈 무렵 느꼈지만, 결국 그 것을 알기 위해 그곳엘 가야 했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다는 것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도 몇 년의 공부가 결국 필요가 없었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나는 그것을 내 피부로 느끼기 위해 공부하기를 주저할 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나는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공부를 원한거고, 공부가 끝나가는 순간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공부하고 있었음을 느끼는 것은.. 나는 몰랐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거였구나를 배운 것이니 얼마나 귀한 정보인가. 그때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르기에 자신 없었던 것들이 인제는 안다는 확신과 자신감 속에 모든 상황 속에서 나의 지식을 적용시켜나갈 테니. 이것은 굉장히 큰 차이다. 해서 나는 챨스가 첨에 살짝 부정적으로 말했던 부분이 별로 마음에 안들었다. 하지만 끝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에 안 들던 부분이 살짝 누그러졌다..^^


P116 자신감은 내 교육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교육의 목적이란 결국 사람들에게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 절대 공감하는 말이다. ‘자신감모든 상황에서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 큰 차이를 이뤄낸다. 삶의 감성적인 부분에서나 실질적인 업무나 공부에서도. 자신감이 있을 때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맞서는 용기를 내게 하고, 중간에 포기하게 될 때 자극이 되어주고, 또한 두려움이란 녀석이 우리의 마인드를 블록시키려고 할 때 자신감은 그것을 막아준다. 때때로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두려움때문에 모든 상황에 대한 분석이 흐려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공부에서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지난 날의 나는 항상 당당해 보이고 자신감 넘쳐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더랬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나를 표현하는데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던 것 같다. 모든 것에 자신감이 넘쳐흘러 오만해보이는 정도는 아녔지만, 아마도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일궈내야 했기에 오기로 버팅겨 가던 시절이라 더욱 그런 분위기가 흘렀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넉넉함이나 부드러움을 가장하여 자신감을 놓아버렸는지.. 아마도 생활의 안일함에 빠졌을 때 부터가 아녔나 싶다. 그리고 내가 악악거리며 하지 않아도 앞서서 끌어가는 남편 뒤를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삶과 꿈은 그 안에 묻혀버렸기에 그닥 자신감있게 해야 할 일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일을 충실해 해내야 했을 뿐.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쓸 때마다 나에게 화가 난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의 삶을 그렇게... 부딪히기 싫다하여 놓아버렸을지.. 물론 지난 날 그야말로 고통스런 충돌이 있었고 그로 인해 내게 많은 자유가 주어지긴 했어도 그럼에도 나는 아직 내 삶이 내 삶 다울 수 있게 살아가기 위해 맞서야 함에 두려움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것이 내가 용기를 내야 할 부분...

 

암튼, 본론으로 들어와서, 자신감이 있고 없고는 많은 상황에서 극과 극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해서 내게 주어지는 팀을 이끌어가는 작은 책임이 주어져도 자신이 없는 나를 발견한다. ‘자신이 없다라는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아 여러 가지 그럴듯한 설명으로 둘러대지만 사실 그 밑에 깔려있는 감정은 자신이 없다인 것이다. 그런데 그걸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P116 경험과 학습은 같은 기간에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경험에 앞서 개념만 주입하는 것은 훗날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머릿속 창고 안에 지식을 쌓아두는 행위다. 하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창고에 쌓아둔 지식은 아주 빠른 속도로 부패한다. 막상 사용해야 할 시점에는 창고 안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를 배우려면 배운 직후 가능한 빨리 써먹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다른 것도 다르지 않다.

 

>> 그래서 선생님은 실천독서를 그렇게 강조하시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 기억 창고 안에서 썩어 없어질 지식으로 끝나지 않도록, 내가 읽고 듣고 배운 것이 온전히 내 삶 안에서 꽃 피워질 수 있도록.


P122 챨스 핸디의 19 세때 찍은 옥스포드 시절의 모습의 사진을 보며...

 

>> 사진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 지적이고 진지한 학구열이 느껴지는 분위기가 아주 맘에 들었다. 할아버지때와의 정말 다른 느낌.. 할아버지 챨스는 푸근하고 따뜻한 지성이 느껴지는데, 청년 찰스는 왠지 좀 고지식하고 너무 진지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자기 만의 세계를 갖고 있어 상상을 많이 하고.. 인문학도 답게 감성이 함께 하는 차가운 단호함도 느껴지고.. 하하하하~ 사진 한장으로 소설을 쓴다 소설을 써~ ^^;; 암튼, 챨스의 학생때 사진을 참 재밌게 봤다. 그런데 이 사진이 19세때 사진이라니... 30은 족히 넘어보이는데…^^;;


P123 나는 옥스퍼드에서 배운 철학적 사유를 경영대학원 프로그램에 포함시킬 방안을 찾고 싶었다. 대학시절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새록새록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스포드에 MIT 를 결합하면 진정 강력한 결합들이 탄생하리라고 생각했다.

 

>> 칼리 피오리나를 읽을 때도 그랬고, 인문학이 얼마나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지 점점 깊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옥스포드와 MIT의 결합. 정말 황홀한 탄생이 아녔을까 싶다..


 P127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등장하는 안티고네 이야기..

 

>> 칼리 피오리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소포클레스의 비극에 나오는 안티고네 이야기. 그 안티고네가 찰스 핸디의 책에서도 나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재밌었다. 둘 다 경영에서 일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인문서적과 철학을 좋아했고 많이 읽었던 공통점에 안티고네가 자신들의 사고영역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니. 나도 이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어쨌든 조직이나 사회가 모두 그렇게 그것이 당연하다고 흘러가는 환경에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고수해 나간다는 것은 진정한 용기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그토록 우리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127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을 어길 만큼 소중한 신념이 있는가? 선택을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개인적인 도의가 합법적인 권위보다 우선인가? 선량한 사람이 악법 또는 잘못된 명령에 복종해야 마땅한가?

 

>> 깊이 생각해보고 곱씹어 본 후에 대답 할 수 있는 질문들.. 하지만 꼭 멈춰서서 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들이 아닌가 싶다. 다른 무엇보다도.. 내게는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을 어길 만큼 소중한 신념이 있는지... 그것이 가장 나의 시선을 붙잡아 놓은 물음이었다.


P129 전문가들이 나보다 많이 알고 있더라도 내가 그들에게 적절히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쳤다. 때문에 경영대학원 학생들도 내가 준비한 강의를 통해 이런 교훈을 깨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마치 나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나는 전문가고 내가 신뢰감이 들으면 그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나의 신뢰의 표현이고 믿음의 표출이다. 하지만 때때로 이런 적절한 질문들로 행여 그들이 잘못 인식하고 분석하고 있을지도 모른 것을 건드려 보는 것..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우리 계리사와 그런 경우를 맞곤 하는데 확실히 내가 질문을 하고 그 문제 해결 방버에 의문을 제기할 때 더 좋은 해결 방법이 나왔음은 챨스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것임이 느껴진다.


P129 타인의 전문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결국에는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꼴이 된다.

 

>> 절대 공감 가는 말이다.


P130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판단에서 안이하고 나태한 태도를 보여준다. 전문가를 상징하는 흰색 가운을 입었거나 그럴듯해 보이는 신분증을 찬 사람이 시키는 일이면 따져 묻지 않고 요청받은 대로 하는 식이다.

 

>> 나도 그닥 다르지 않다.. 애석하게도…-_-;;


P134 세상은 용감하게 진실을 밝히는 사람을 존경과 감탄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아무도 그들을 고용하려하지는 않는다.

 

>>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진솔한 나의 의견을 묻는다면 나 역시 사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밖에서 떠벌리는 직원을 고용할 생각은 없다. , 여기서 그 사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어떤 테크닉 적인 (거래처 정보, 손님 정보등..) 것을 뜻하는 것이지 윤리적인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P135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읽히는 것도 괜찮았겠구나 싶었다.

 

>> ~ 파리대왕을 여기서 또 만나다니... 너무나도 반갑고 또 반가왔다. 내게 충격 그 자체로 다가왔던 소설.. 그에 대한 느낌은 지난 번 축제에서 상세히 썼음으로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


P139 내가 학생들의 우선순위를 무시했다면 나는 오만하다고 지탄을 받았을 것이고 어쩌면 이후 관리자교육 과정 자체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생들이 원치 않아도 skm 윤리를 공부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으면서도 결구은 포기했으니 나는 겁쟁이에 스스로를 배반한 사람은 아닐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물론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의견만 고집하느 것이 진짜 오만일 때도 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신감과 겸손함을 겸비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때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던 것이다.

 

P140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안티고네처럼 도덕성이 문제가 될 때는 결과는 참혹해도 결정을 내리기는 오히려 쉽다. 누구도 개인의 깊은 신념과 확신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하므로, 결정은 오롯이 자신만의 몫이다. 신념고수로 인한 고통 앞에서 신념을 부정했을 때 치러야 하는 개인적인 대가를 가늠하고 평가할 수 있는 주체가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현실 무제에서는 오히려 결정이 까다롭다. 위험성이 크지 않은 사안일 때, 과연 일을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할까? 자기 의견을 고수하고 자기 가치관과 신념에 따르는 것이 항상 치러야 하는 대가만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친구와 맞서야 하고, 주변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일때는. 반면 대세를 따르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다. 초기의 꿈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는 예외지만,

 

>> 너무나도 공감가는 얘기다. 내가 선택한 결과에 따른 온갖 고통 또는 불이익이 온전히 내 몫으로 끝난다면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도 그것을 선택하는 일이란 왜려 쉬울 것이다. 나 하나로 끝나니까. 그런데, 그것이 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또는 친구에게 영향이 미치게 된다면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나는 그런 상황에서 내 신념을 고수하겠다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고통 속으로 빠지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나는 신념을 고수하는 자기다움으로 가책 받는 양심에서 벗어나고 당당하게 내 삶으로 돌아온다지만, 그로 인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겪는 고통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자기다움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나로 인해 잃게 된다면..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 수는 있으나, 우리는 사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주 극단적인 감정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꼭 죽음을 눈앞에 두어야 극단적인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갈등 속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뿌연 안개 속에 싸이게 되는...

 

가만 보면 관계 속에 함께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너무나도 힘들고 복잡한 것 같다.


P143 최종 방영된 프로그램에 나온 내 모습을 꼭 박제된 펭귄 같았다.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며 의자에 부자연스레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 하하하하하~ 까르르르르르~ 돌아가시겠다~ 눈을 부릅뜨고 부릅뜨고 앞을 노려보며 앉아있는 박제된 펭귄같은 모습이라니어떻게 표현을 그렇게 한건지.. 하하하하~ ^^;;


P147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먼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가치관과 야망을 결정하는 대신, 남의 가치관과 야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잘못 된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P147 삶을 바꾸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별 볼일 없는 삶이 될 것이 뻔해도 그냥 익숙한 생활에 머무는 편이 훨씬 편하다. 삶을 바꾸려면 새로운 사다리의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 오르는 사다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가급적 빨리 새로운 사다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과 현실에서 결정을 실행하는 것은 별개다.

 

>> 내가 겪고 있고, 우리 와우들이 겪고 있는 성장통은 비단 우리의 것만이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분모.. 정말 내가 지금껏 살고 있던 삶에 변화를 준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며, 나를 잡아당기는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얼마나 피흘리는 노력이 필요한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물론 그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일궈내는 실천적이고 단호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나 같은 보통사람..)


P150 사후에 살펴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곡선의 변화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변화를 모색할 시기라고 권장하는 A 지점은 일이 잘 돌아가는 상승기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마냥 좋아 보일 시기다. 그러니 소를 잃기 전에는 좀체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사람들의 습성상 변화를 모색하기가 쉽지 않다.

 

>> 이런 경험은 사업을 해본 사람은 적어도 한번 쯤은 경험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있고, 브라질에 와서 열심히 일했고, 가져오는 물건들마다 힛트였고, 우리는 생각지 않은 사업성장으로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하향선은 무시하고 늘 그렇게 잘 될거란 생각였고, 달러 파동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었다. 모든 자금을 사업에 투자했기에 그 한번의 파동은 우리를 거리로 나앉게 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3년있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서 학교를 계속 하게 해준다는 약속은 당연히 지켜질 수 없었고, 그것은 신뢰 상실로 이어졌고, 모든게 엉망였던 상황... 지금 생각하면 그 암흑의 시간을 잘 견뎌낸 것은 우리의 힘이 아녔던 것 같다. 도저히 해결점이 보이지 않던 상황들이 신앙안에서 자연스럽게 풀어지기 시작헀고, “네탓이오내탓이오로 변하며 그 고통에 마침표를 찍었던 경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큰 산을 넘었다고 해서 계속 넓은 평원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은 야무진 꿈이라는 것이다. 넘고 넘고 넘어도 산은 여전히 내 앞에 그 위용을 드러내며 펼쳐져있고, 그 산은 내가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피할 수 없이 올라가야만 하는 관문 같은 것. 산을 하나씩 넘을때마다 우리는 노하우가 생기고, 장비도 든든해지고, 또 용기도 생기나, 너무나도 모순적인 것은 산은 그때마다 그 성격이 다르고 모양새가 다르다는 것이다. 해서 내가 준비한 장비는 쓸모 없는 것이되고, 그전의 산을 타며 배운 노하우는 세월따라 상황따라 적용가능한 것들이 아니며, 또한 내가 그동안 잘 해내었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는 그 산이 얼마나 험하고 높은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럼에서 오는 고통괏 상처는 더 클 수 밖에 없고,.

 

... 그렇기에.. A 곡선은 어떤 물질적인 상황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부분으로 이어질 수 도 있음에 그 골의 깊이를 과소평가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함에 가끔은 그것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게 있어 깨어있음긴장을 의미함으로..


P151 ‘A 지점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지난 후에 뒤돌아보았을 때를 배고는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난 뒤에 아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하지만 A 지점임을 짐작하는 실마리들은 있다, 편안함도 그 중에 하나다. 너무 편안하고 삶이나 일이 마음대로 된다 싶으면, 만족감 때문에 본인이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고 방심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개인의 삶에서든 사업에서든.

 

>> 읽으면서 ‘A지점에 있는 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질문과 함께 답이 나와있어 와우~” 했다. 넘 웃겼다. ^^ 내가 변화를 갖고 싶고 내 삶을 혁신해야 한다고 생각한 지접이 내가 바로 안일함에 젖어있다고 생각한 그 지점였으니.. 학교 시절 잘 써먹던 나의 통밥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또 나왔다. 그것이 통밥였든 내가 느껴야 했던 이던 나는 바로 지금이 그 A 지점에 있음을 알고 있으며 지금 바뀌지 않으면 나는 아마도 내 삶을 내 삶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다시는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인다.


P151 파티가 한창일 때 판을 깨고 일어서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어떤 확실한 자극이나 충격이 필요한 것이다. 한창 잘 되는 상황에서는 우리한테 지금처럼 좋은 다른 곡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이다. 새로 열리는 문은 과거 우리가 알아채지 못했거나 첫 번째 곡선 때문에 너무 바빠서 무시했던 문일 경우가 많다.


P154 물에 발을 담갔다고 해서 반드시 수영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 큭큭~ 어쩜 일케 맘에 쏙 드는 표현을~ 하하하하~^^ 글게... 발을 물에 담갔다고 해서 반드시 수영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냇물에도 담가보고 강물에도 담가보고 바닷물에도 발을 담가보며 다른 감촉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P161 윈저성 사람들은 왜 나한테 나쁜 소식을 전할 때마다 빙그레 웃는 것인가?

 

>> 하하하하~ 챨스 핸디를 순진하다고 봐야 하는 건지.. 하하하하하~ ^^


P174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일과 생활이 별개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트폴리오 인생이라는 사고방식에는 대부분의 생활이 일이며 어떤 것은 따분하고, 어떤 것은 돈이 되고, 어떤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 아니라 일의 균형이다.

 

P188내가 모든 시련을 견디고 일어나 다시 산다면 너도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작은 죽음 실패-을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죽음 앞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이를 거울삼아 한 발 더 나아갈 의지가 꺾여서도 안 된다. “용기를 갖고 지금 너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라.” 그리스도 상은 나에게 말한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해석이다.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알쏭달쏭한 새겸보다 훨씬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승ㅇ에서는 적어도 뭔가를 해볼 수 있으니까.


P190설교하지 말아요. 그리고 하나님을 문장의 주어로 쓰지 말아요, 사람들은 그런 표현을 싫어해요. 더구나 당신이 어떻게 하나님 생각을 알아요.”

 

>>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챨스도 엘리자베스도 참 멋져 보였다. 남편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녀의 말을 열린 사고로 듣고 받아들이는 챨스.. 정말 서로에게 진솔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느껴져 참으로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처럼 느껴지는 성장’.. 나 역시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살짝 동경마저 일었다.


P203 진정으로 원치 않는 뭔가를 제안하지 마라. 그리고 칭찬이나 확인을 애물러 유도하지 마라. 얻는 것이 없으리니.

 

>> 나도 가끔씩 이런 행동을 하기에 그의 말은 그냥 스쳐지나가지가 않았다. 겸손을 가장하여 떠보는 제안들.. 물론 전혀 가장한 것은 아니고 정말 그만 두고 싶어서 말씀을 드리는 거지만, 너무나도 흔쾌히 받아들이면 괜히 씁쓸한.. 설사 상대방이 내가 불편할까 나를 위해서 흔쾌히 받아줄지라도 가끔씩 그런 씁쓸함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 ‘붙잡으면죽어라고 도망가고 싶고, ‘안녕히 가세요하면 섭섭한.. 하하하하~ ^^;;


P205 포트폴리오 생활자 = 프리랜서, 그러니까 독립 생활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 나이 49에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다니.. 나와 별 차이 없는 나인데.. 나도 포트 폴리오 인생을 살겠습니다 하고 뛰쳐 나가볼까나..?? ^^;;


P206 쉽게 물드는 것이 분위기다. 자유에 대한 기대가 이제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 큭큭~ ^^;; 이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살짝 알 수 있다. 내가 그 느낌을 가졌을때는 물론 챨스처럼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상황이 아닌 혼자였을 때 였기에.. 저녁에 들을 수 있는 수업은 다 들었기에 아침으로 옮겨야 했을 때 나는 과감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아침으로 학교 수업을 바꿨을 때, 나는 내가 추구하는 소중한 의미를 주는 가치를 위해 그렇게 직장을 훌쩍 때려치울 수 있는 용기에 일종의 쾌감까지 느꼈던 시간. 정말 나는 자유스러움을 느꼈고,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는 학비는 커녕 곧 하루 세끼를 걱정해야 하는 생활고에 맞닥뜨려졌음에 내게 주어진 황홀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던 기억.

 

그럼에도 그때를 떠올리면, 내가 생각한 사고에 행동이 따라주는 나름 실행적인 삶을 살았음에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그렇게 버릴 수 있는 자유, 떠날 수 있는 자유, 그만둘 수 있는 자유..그리고 시작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던 그때가.. 절절히 그리운 것은 비단 지금 내게 주어진 어떤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느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매 순간 치열했던 그 순간이 사실상 그리운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비교되어지는 아직도 떠났다가도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있는 답답하기만 한 내 자신.. 그런 것이다. 내가 세운 실행방법을 제대로 이행하여 그 안의 느낌을 써보고 싶다.


P213 자유는 당연히 좋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묻는다면 대답이 쉽지 않았다. 서서히 사업적인 성공보다 자신만의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자유가 더욱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면 삶의 목적과 우선수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는 물리적인 생활공간을 정리하고 시간을 배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로 생활에서 철학이란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디서 또는 언제 그것을 할 것인가 등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 바로 지금의 나에게 하고 있는 질문들이며,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주제들이다.


P214 지금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면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중요한 진리를 깨우쳤다.

 

>> 나는 책을 읽고, 초서를 하고 리뷰를 쓰고 내 하루 일상을 올리고 느낌 단상을 올리며 음악을 고르는 일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 느낌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눈을 보고 얘기할 때 느끼는 그런 잔잔하면서도 깊은 행복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한 번도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단지 순간순간 느끼는 내 느낌들을 올리며 그 느낌을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도 좋다. 단순히 누군가가 내 느낌 글을 읽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함께 읽고 그 느낌을 함께 느낀다는 것.. 그것이 나를 너무나도 행복감에 젖게 만든다. 평생 이렇게 살다 죽었으면하는 생각애..~ 웃음이 나왔다. ‘나는 정말 이 작업을 좋아하는구나..’

 

생활고를 생각하지 않을 만큼 노후 대책을 마련해 놓으면, 내게 이런 삶이 축복처럼 주어지리라 생각하니, 또 생각이 막혀버린다..-_-;; 내가 나의 My Shining Star를 가졌을 때는 생활영위 목적이 아니라 나의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삶의 아름다움을... 사랑을... 나누는 것인데.. 히구.. 갈길이 멀다… (복권을 살까..?? ^^;;)


P216 어쩌면 돈은 일을 해야 할 다른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주어지는 보상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P217쉬잇! 말하면 안 된다. 여기 있는 SPG는 말이다. ‘Something Probably Grub”그러니까 음식 관련한 뭔가라는 말의 약자란다.”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 하하하하~ 넘 웃겼다~ 챨스 엄마의 입장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왜냐면 나도 그런 상황을 겪었더랬으니까.. ^^;; 사실 내가 생활비를 관리한지는 얼마 안 된다. 필요하면 남편에게 타 쓰고 쇼핑가서 필요한 걸 살때는 걸어다니는 뱅크가 함께 있으니 불편할 것 없고, 재정 관리 내가 안해도 되니 골치 썩을 것 없고, 나는 당체 돈 관리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귀찮아하는 케이스. 그래서 남편이 자기 회사는 물론 우리 가게 재정을 맡아 하고 생활비까지 맡아주는 것이 넘 고마웠다. 몇 번 내게 내가 운영하는 가게 재정과 생활비를 맡으라고 얘기해 왔으나 정말 그건 너무나도 싫었다. 왜냐면 나는 꼼꼼한 남편의 성향에 맞게 1센트도 차질 없이 맞춰낼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남편은 은행 tax까지 계산하여 ‘0’로 맞춰낸다. 나로써는 신기에 가까운 일. 그런데 작년부터 생활비만큼은 내가 맡기로 했다. 적어도 그것은 여자가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는 거였고 3가지 재정업무를 따로 관리한다는 것은 남편에게는 사실 짜증스러운 일였던 것.

 

물론 남편이 미국 사무실에 몇 달씩 지냈던 몇 년 전에는.. 그 모든 것을 내가 했다. 물론 남편처럼 장부가 꼼꼼하게 처리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별 불편함 없이 잘 지냈더랬다. 돈이 있음 있는 대로 없음 없는 대로..생활비를 쓰는 데서도 남편은 내게 회계 프로그램을 설치해주었다. 정말 싫었다..-_-;; 늘 뭔가를 빼먹고 입력을 하지 않아 차이가 났던 것. 그럴 때면 정말 화가 났다 내 자신에. 그리구 넘 철저한 남편에게도 화가 났다. 어차피 생활비는 우리가 한달 예상 지출을 잡은 것이고 그냥 그 돈으로 생활해 나가면 되는거 아닌가. 그런데 그걸 일일이 적어야 한다 생각하니.. 어휴.

 

이 글을 읽으면서 쟐스의 엄마의 성향이나 나나 비슷했던 것 같다. 영수증을 꼭 챙겨도 사소하게 쓰는 것은 적지 않으면 금방 덩어리 차액이 되어 기억이 나질 않아 골치덩어리. 그럴때면 나도 Despesa (잡다한데 쓴 금액)이라고 뭉뚱거려서 적어 놓곤 한다. 하하하하하~ 나 정말 회계는 싫어

 

그럼에도 공동체에서는 간혹씩 회계일이 내게 맡겨진다. 정말 싫은데도 불구하고.. 그건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라서 그런지 온 신경이 다쓰여 차곡차곡 기입하게 되는데, 역시 내 것이 아닐때는 더 신경쓰고 더 조심하게 되는데, 내 것일 때는 모자라도 그에 따른 결과는 내가 감당하면 되는 것이니,, 그래서 조금 안일해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에고.. 엉뚱한 얘기가 길어졌다. 챨스의 어머니의 SPG 넘 웃겼다. 하하하하~ ^^ 그리구 넘 귀여웠다.~ 하하하~ ^^


P218 아버지는 사람은 보수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의무라고 믿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보수가 충분하기를 바라기는 하되, 만약 충분하지 않으면 거기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고, 아버지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움직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P220 현명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수단보다 목적을 중요시하고 효용보다 가치를 선호하게 되는 때는 모두가 부유해진 다음이지만, 그런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탐욕, 폭리, 투기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의 신으로 추앙 받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들이 경제적 궁핍이라는 터널에서 밝은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 테니까.

 

>> 나도 케인즈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그 무엇이 충분히 충족되어지고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때 우리는 단순히 생존하는 그 무엇을 넘어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가장 쉬운 고민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아닌가 싶다. 물론 기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의 고통을 모르는 것 아니지만, 그것은 어떤 감정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갈증에서 오는 그것보다는 해결 방법이 더 쉬은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어도 자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감정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정신적인 문제나 영혼에 관한 문제는 정말 육체적인 그것에 비해 훨씬 더 고통스러운 것 아닌가 싶다. 


P223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보자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삶이 후렀니 간소하고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충분한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액으로 규정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규정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결코 진정 자유로울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자유롭게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표를 정할 수가 없다. 대신에 자발적으로 고용주의 노예가 되어 타인의 우선순위에 복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충분하다는 기준을 정한다는 의미는 돈의 다른 용도를 머릿속에서 폐기한다는 의미다. 돈은 이제 성공의 상징으로도, 스스로의 가치를 규명하는 방법으로도, 진정 원하는 삶을 포기한 것에 대한 변명 또는 보상으로도 가능하지 못한다. 그러려면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스스소를 어떤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은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등등을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생ㄱ가해봐야 한다. 나는 이미 그런 시도를 해봤고 나름의 결론도 있었다,. 경험자로서 이런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정직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정직한 반성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부한테는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P238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게 되면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성 아우구수티누스도 일찍이 이를 가장 큰 죄악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P246 우리는 공간을 우리의 필요에 맞춰 사용하려 했다.

 

>> 넘 맘에 들었다. 내가 공간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닌, 공간을 나의 필요에 의해 개조한다는 것. 이것은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이 아닐까..?? 이러면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공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놓을 수 있는 것인데.. 그들의 아이디어가 참으로 맘에 들었다. 물론 방을 내 식으로 꾸미는 정도야 다반사지만 이렇게 부엌을 이쪽저쪽으로 7번씩이나 옮기는 것은 누구나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들의 단순성과 실행력에 존경심이 일었다.


P248 나는 방방마다 놓을 수 있는 난로가 가족들을 흩어지게 한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 아마도 요즘엔 컴퓨터나 컴퓨터 게임일거고, 좀 더 이전엔 TV 였을게다. 그러데 그보다 더 이전의 영국에선 난로 였구나.. 재밌는 사실이다..^^


P249 우리 집 전면에 위치한 두 개의 멋진 방은 이제 우리 부부의 개인서재로 변모했다. 집을 찾는 방문자들은 물론 가족들한테도 출입이 금지된 사적인 공간이다. 부부가 모두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공동공간인 주방 못지않게 각자의 독립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너무나도 부러웠다. 집에서 가장 멋진 공간을 하나씩 나누어 각자 개인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니. 그것두 멋있어 죽을 지경인데, 그 공간이 오롯이 온전히 자신의 공간일 수 있도록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출입이 금지 되었다니. 이 얼마나 멋진 구상인가.. 나도 이런 공간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나만의 공간.. 나의 안식처.. 나의 도피성인 그 곳을.. 언젠가는 나도 그런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겠지..?? *기대기대~* ^^


P268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 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을 잊지 못한다. 책을 읽는 내내 아하!”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 허걱~!! 세상에~!! 나는 정말로 힘들게 읽었고 정말 독서 축제가 아녔더라면 끝까지 읽지두 못했을 책을 챨스 핸디는 너무나도 깊은 감명 속에 아하~!!’ 감탄사를 터뜨리며 읽었다니... 흐미... ’대체 그럼 나는 읽는 도안에 무엇을 놓쳤던 거지..??’ 이렇게 감명 속에 읽으며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억지루 읽었다느거.. 물론 관심사가 달랐기도 했겠지만 읽으면서 그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내가 놓쳤기에 그럴 수도 있는 것..

 

암튼, 그 모든 것을 떠나서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 언급되어진 것을 보고 무지 반가왔다. ^^ 내가 읽은 책들을 또 다른 책에서 발견하게 되면 어찌 그리 반가운지... 마치 몇 해 동안 못 만났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듯한 기쁨에 젖어 든다. ^^ 정말 넘 반가왔다.. ^^


P276 부모의 태도와 기대가 연금술사를 만드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린아이에게 맞는 책임감을 부여하고, 실험을 통해 본인의 호기심을 시험해볼 기회를 제공하고 실수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변화가 흥미롭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이런 것들이 모두 연금술사가 될 수 있었던 초기 씨앗들이었다.


P279 아내와 하는 늘 돈보다 일에 대한 흥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건 나도 동감이다. 돈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흥미로와 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로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돈은 자연스럽게 보너스로 따라올 테니까. 기간이 좀 걸릴지라도...


P279 항상 말보다는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 사람의 걸음걸이가 말투보다 기억에 남는 법이다.

 

>> 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앤과 내가 걸음걸이까지 똑같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걸음걸이가 글케 기억에 남는 거구나. 앞으로는 좀 우아하게 걸어야겠단 생각을 하니 더 웃음이 나온다. ^^;;


P282 오랫동안 서구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온 종교가 힘을 잃고 상대주의가 힘을 행사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준을 정하고 결정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사실보다 문제에 직면하면 어떤 주제 안에서든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는 오직 생각에만 집중한다. 말하자면 젊은이든 노인이든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 ‘최소한 두 가지 학문 분야에 정통하라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한 선생님이 블로그에 올리신 글이 떠오른다. 거기서 선생님은 신학,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역사학을 공보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심리학,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챨스의 글을 읽으며 철학도 공부하고 싶은.. 히구.. 욕심두 많어.. 아직 하나두 제대루 시작두 안했음서 욕심만 가득이다.


P285명심해라,. 너는 평생 사랑할 배우자하고만 결혼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가족 전체와 결혼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처신해야 한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단다.”

 

>> 이 글을 읽으면서 순간 찰스가 동양사람인가.??’ 했다. 특히,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함을 너무나도 주위에서 쉽게 보기 때문에 한 남녀의 결혼은 당사자만의 결합이 아닌 가족 대 가족과의 결합임을.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쪽이나 남편 쪽이나 그렇게 구속하고 옭매고 감 놔라 밤 놔라 하는 분들이 아니시기에 내 동생이나 다른 친구들이 겪는 시댁이나 시누와의 갈등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는 막내고, 더욱이 막내인 우리가 시부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기에 어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시어머님 시집살이보다 더 매섭다는 동서 시집살이도 없었고, 또 남편은 미국에 있는 시간이 브라질에 있는 시간보다 더 많았고, 혼자 달랑 떨어져 아무두 없이 시부모님 모시고 있는 나를 큰 아주버님께서 많이 위로해주셨던 것. 장남이 모시지 못함에 있어서 많이 미안해하셨다. 물론 그건 아들과의 문제가 아닌 형님의 의사가 많았지만.. 그만큼 시부모님은 정말 엄하고 어려운 분이셨던 것.

 

하지만 남편 없이 나이는 들어서 시집온 아이가 밥도 못하고 살림도 못해서 이쁜 구석 하나두 없는데, 그래도 서툴지만 모시겠다며 어머님 아버님께 대화를 많이 나눠드리며 나름 노력하는 것이 미워 보이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나름 갈등은 있었지만 딱히 고부간의 갈등이라기보단 그냥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런 갈등 정도로.. 나는 시댁으로 인한 심한 정신적 고통은 없었다고 느껴진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시부모님과 시누이에게 시달리는 미국에 있느 동생을 볼 때.. 나는 참 복두 많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 부부간의 당사자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방법이 있지만, 주위에서 보면 부부간의 문제보다는 그 뒷 배경으로 있는 가족들의 감정이 섞이게 될 때는 정말 해결되기 어려운 것을 많이 보아왔다. 가까이 참 괜찮은 친구도 가족으로 인해 이혼한 케이스고. 챨스가 아들에게 해준 조언은 삶에서 오는 정말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P290 우리는 누구나 벗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상대를 알았다 싶을 때까지는 자신을 보호하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한다.

 

>> 맞다. 나는 이것을 다른 이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보며 느낀다. 내 자신을 보호하는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나를.. 그것은 혼자 오랜 시간 타지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 본능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거의 동물적인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는 없다. 나는 단언컨데, 나의 보호 감각이 나를 많은 상황에서 옳은 선택을 하게 했고, 그 가면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역도 해 주었음을 알기에.. 그것이 나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가면으로 좀 더 빨리 가까워지는 것에 방해가 되었을지는 모르나, 나를 보호해주는 방패로 쓰였음도 부정할 수 없다.

 


P291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로 무조건 같은 가치관이나 관심사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고 항상 편안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항상 특별한 존재가 가족이다.

 

>> 정말 그렇다. 같은 뿌리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로 같은 가치관이나 관심사를 갖는 것은 아니고 피를 나눈

형제 자매라고 해서 모두가 내 삶의 가치관에 동의 하는 것도 지원하는 것도 아님을 안다. 그것은 나의 지난 아픈 경험으로 안다. 나는 아직 그것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가족이란 항상 특별한 존재다. 자꾸만 바라보게 하는...


P291 장기적인 이성관계를 고려할 때 열정이나 육체적인 매력에 휘둘리지 말고 언젠가는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그런 우정을 맺을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고 말하는..

 

>> 나도 우리 딸들에게 그렇게 말 해줄 것이다. 순간의 매력에 이끌리는 것이 아닌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그런 우정 같은 사랑을 하는 따뜻한 영혼을 가진 상대를 만나기를


P294 항상 함께하는 생활을 모든 부부가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런 생활을 사랑한다. 서로의 지인 중에 한 쪽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모든 경험을 공유하고, 혼자 보내는 밤이 없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계에서는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관계에서 새로운 친밀감을 발견한다. 열정보다는 상호 신뢰에 의해 유지되는 그런 친밀감이었다. 배우자가 같아는 저만 이 새로울 뿐, 이는 진정 새로운 결혼 생활이었다.

 

>> 겨우 떨어져 있는 시간이 슈퍼마켓에 가있는 40분의 시간이라는 말이 어떤 면에서는 내게는 갑갑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대목인데 챨스와 엘리자베스의 관계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은 자의에 의해서 함께 있는 것이고, 함께함은 서로에 대한 구속이 아니라 성숙한 두 인격이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 데 단지 같은 공간에 있게 되는상황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집에서 각자 다른 작업실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방은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의 방, 즉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고 그 두 부부는 그것을 온전히 존중하며 따로 또 같이를 아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음에 정말 멋진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는 만약 내가라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나에게 이렇게 따로 또 같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나도 굳이 내공간 내 자유;를 외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그들이 이런 열린 사고로 부부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으믄 (그 옛날에) 정말 존경ㅅ럽다.


P295 당황스럽게도 아이가 생기면 자연히 부모답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 이 짧은 문장안에 너무나도 많은 심오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아이를 낳아보고 길러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수 없는. 연습되어진 부모는 없는 것. 우리는 그래서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함께 커가는 것을 느낀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그래서 나의 정신 연력은 15, 13세이다. 호호~ ^^


P299 결혼 생활은 부부가 각자 별도의 공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부부로 결속되어 있을 때 가장 잘 돌아간다. 나와 아내는 밀접하게 지내면서도 무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 우리는 늘 함께하지만 지나치게 가깝지는 않다.

 

>> 이분에 별을 7개나 그려 넣었다. 완벽의 숫자. ^^ 바로 이거 아닌가 더 이상 붙일 말도 뺄 말도 없다, 바로 내가 생각하는 성숙하고 이상적인 부부 관계, 바로 이것 아니던가. 바로 이렇게 내가 P294 에서 느낌 단상을 올렸듯이 따로 또 같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우리는 정말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함께 성장하는 부부관계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사람들은 지지구 볶으며 서로 힘들어 하면서도 꼭 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서로의 시간을 갖고 자신의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부부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316 사람들은 신뢰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으로 얻어야 하는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다.

 

P336 복잡하게 앍히고설킨 세은 잠시도 멈추는 법 없이 끊임없이 내달린다. 이런 곳에서는 현상유지라는 것이 잇을 수 없다. 뭔가에 성공했는가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여 어서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산 넘어 산이랄까?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미친 듯 내달리고 있는 이 길의 끝이 어디인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아니 끝이 있기라도 한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온갖 풍파를 헤치며 나아가는 여정이 어쩌면 계속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보란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계속하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 온갖 풍파를 헤치며 나아가는 여정이 어쩌면 계속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고, 진보란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계속하는 수 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사실은 살짝 기운이 빠지면서도,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여행을 계속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라는 사실은 한편으론 위로가 된다.

 

때때로 내게 선택이 없다는 것은 미칠 것 같은 갑갑합과 죽을 것 같은 질식을 느끼게 하지만, 때때로 바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라는 같은 이유로 마음의 평저을 찾고 내가 있는 자리에 집중을 하게도 한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은 선택의 여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그 순간의 내 자세에 해단 문제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P343 계획은 영원히 살 것처럼 세우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라고들 말한다. 물론 후륭한 말이지만 궂은 날에는 그렇게 열심히 살기가 쉽지 않다.

 

>> 글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계획을 세우며 산다. 그 계획이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그게 참 우스꽝스럽게 느껴져도 말이다.


P344 아리스토네레스는 임종시험이라는 걸 해보라고 충고한다.

 

>> 임종시험과는 살짝 다를 수 있겠지만, 대학때 빅 베어 청년 연합피정에서 묘비명 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정말 숭고하기까지 한 거룩한 마음으로 임했던 작업이었고, 내가 죽고 나 후 내 묘비명에 쓰여질 구절을 생각하며 그렇게 쓰여지기 위해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가슴 깊이 파고든 무언지 모를 울컥함 속에 눈물로 써내려 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렇게 쓰여질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했었던,, 비록 착각였어도 행복하고 가슴터질듯한 어떤 감격이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지금 그때의 묘비명에 쓰여진 구절을 읽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느낌만 잔뜩였던 것 같다. 유치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정말 진지한 자세로 임했었던..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어지길 원하는 가...는 내 삶을 살아가는 방향을 잡아줄 화두로 늘 그 질문에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함을 느낀다.


P347 나도 죽은 뒤에 열어보라고 아내와 두 아이에게 써놓은 편지가 있다. (…) 매년 편지 sodymf 보충하면서 새로 쓴다. (…) 새의 마지막 순간을 예상하면서 남은 시간을 내가 상상하는 송덕문에 부합하게 살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 언젠가 했던 유서쓰기도 떠오른다. 그때 나는 내가 사랑했던 가족에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죽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때 참 열심히 유서를 써놓았던 기억이 있다. 있지도 않은 재산 분배가 아닌, 어쩜 내가 평소에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내가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나는 그때 쓰면서. 매해 작성하고 수정리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글을 읽기전까지 기억해내지 못하고 잊고 있었다. 나의 계획안에 유서쓰기를 집어 넣는 것.. 이것 역시 준비하는 삶이 아닐까 싶ㅍ다.  유서쓰기란 표현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뭔가 다른 표현이 있을 건데... ‘사랑의 편지쓰기같은 식상한 표현 말고.. 함 생각해 봐야겠다...


P348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고 싶은 대상도 줄어들 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본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서만 시간을 쓰게 된다. 성 아우구수티누스는 인생을 유혹의 사다리에 비유했다. 순서대로 한발 한발 밟으며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인데 단계마다의 유혹을 깨부수면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보통의 오르막길과는 반대로 인생의 사다리를 오르는 발걸음은 나이가 들고 성장할수록, 가벼워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유혹을 오래 전에 끊어버린 탓은 아닐까.

 

>> 우리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삶속에 우리가 추구하고 쫓아다녔던 것들이 많은 부분 허상이요 헛된 것임을 경험했기에 내게 다가오는 많은 유혹들이 더 이상 유혹으로 느껴지지 않기에 자기다움의 삶이 자연스럽게 우리 몸에 배이는 것 아닌가 싶다. 있는 내 모습 그대로, 가진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고 보여주면서.. 그래서 그때가 되서야 가벼워진 삶의 무게로 우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결국 자기다울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옳은 말씀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P350지금 있는 자리에서 지금 하는 일을 하게. 자네는 사제들이 결코 마나지 못하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위치를 활용해서 옳은 일을 하게, 자네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P351 아리스토텔레스 - “자신이 가장 잘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라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마라.

 

>> 역시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내가 잘 하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기다움을 잃지않고 자기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가라는 말씀.. 결국은 자기다움내가 잘 하는 것을 하기가 바로 우리 삶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우리가 많이 놓치고 살아가는 화두임이 깊이 느껴졌다.


P356 집필의 목적이 집필활동을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한동안은 책을 쓰는 이유가 팔리지 않는 데 대한 보상심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양자가 아무런 상관이 없어지자 집필 주제를 그야말로 순수한 주제로 마음껏 바꿨습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그런 내용이었죠.

 

>>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거둘 때 우리는 나 다워지고 그안에서 나는 행복해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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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리꼬 나까무라의 Lover 앨범에 들어있는 전곡...

올린다.

 

01. Missing U (여름향기)
02. All In Theme (올인 운명의 사랑)
03. 보고 싶다 (천국의 계단)
04. 처음부터 지금까지 (겨울연가)
05. 엄마의 피아노 (봄날)
06. Remember (발리에서 생긴 일)
07. 부탁 (아름다운 날들)
08. 당신이 미소짓는 날 (굳세어라 금순아)
09. 가려진 세월 (미안하다 사랑한다)
10. 얼마나 내가 (가을동화)
11. 프롤로그~다시 또 (슬픈연가)
12. 전설속의 사랑 (신귀공자)
13. Lovers - (앨범 오리지날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