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축제13] 존 브록만의 <위험한 생각들>을 읽고...

pumpkinn 2008. 11. 25. 00:00

 

<위험한 생각>은 제목부터 위험스러운 분위기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체 어떤 내용들이 그 안에 있을까? 책을 펼쳐 들고 목차를 주루루 훑어보니 얼마나 많은 석학들의 글들이 실려있는지. 서문과 입문을 써준 존 브록만과 스티븐 핑거를 빼고도 110명의 글이 실려있었다. 제목을 슬쩍 흝어만 봐도 분위기가 만만찮다.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들. 이런 주제들을 놓고 그들은 어떤 ‘위험한 생각’을 펼쳐 나갈 것인지 가슴이 콩닥콩닥.

 

‘이번 리뷰는 어떻게 써야 할까..?? ’ 하다가 한 챕터를 읽으면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느낌을 올리는 것이 내겐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챕터를 쓰기는 좀 무리겠지만.. 느낌이 컸던 부분들을 그냥 편하게 적기로 했다. 그리고 챱터마다 전체의 글에 대한 느낌이 더 강한 글은 리뷰에 적었고, 부분적인 글에 대한 인상이 더 깊었던 글들은 초서에다 그 느낌을 적으며 리뷰와 초서의 반복을 피했다.

 


 

멀티 라이프 - 우리는 모두 가상이다 (클리퍼드 피코버)

 

이 시뮬레이션이 현실화된다면, 가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가상이 되는 이 혼돈 속의 삶 안에서 과연 우리는 끈끈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맛볼 수 있을까? 물론 자신이 꿈꾸는 상상의 세계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느껴지는 순간의 행복은 마약을 하며 맛볼 수 있는 순간의 쾌락 같은 것이 아닐까? 이렇게 각자의 세계 속에 빠져 살게 된다면 ‘관계’ 속에 이어지는 삶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왠지 내게는  ‘환상’으로 느껴지지가 않고 ‘Chaos’가 그려진다. 너무 부정적인 생각일까? 

그러면서도 한편, 나는 어떤 삶 속에 들어가고 싶을까. 내가 들어가고 싶은 상상 속의 10가지 삶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질주하는 소비주의페르미의 역설을 설명한다. (제프리 밀러)

 

‘질주하는 소비주의’라는 제목과는 무관한 내용이어 좀 의아스러웠다. 아니면 내가 연결을 못 시킨 건가.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많은 테마 중의 하나가 바로 ‘UFO’와 ‘우주인’에 관한 것이다. 학생 시절 UFO와 우주인에 관한 책 속에 푹 빠져 지냈던 적이 있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사강’을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며, ET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것은 내가 우주인을 보고 안 보고의 실경험과는 무관하다. 나는 하느님을 본 적은 없지만 그분의 존재를 의심의 여지없이 믿고 느낀다. 억지 비유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유독 ‘지구’에만 지적 생물을 만드셨다는 것은 왠지 하느님답지 않다. 이 지구를 사랑하셔서 이 곳에 지적 생물을 창조하셨다면, 역시 다른 행성 어딘가에도 역시 이런 지적 생물을 창조해놓으시지 않으셨을까. 

 

이 부분에서 굳이 ‘하느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수억만 개의 별들 중에 유독 지구에만 생물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억지스러우며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고 생각한다. 이 조그만 지구에도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이 전우주 Universe를 놓고 본다면, 두말하면 숨찬 상황 아닐까.

 

이 부분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는데, 정말 웃기고 배꼽 잡은 부분은 바로 우주인들과의 접촉이 왜 안되는지에 대한 그들의 상상 부분이었다. (그니까, 적어도 내게는) 우주인들의 자폭이라던가, 컴퓨터 게임에 빠져서라는 추측은 너무나도 내게는 황당한 상상처럼 들렸다. '이 방면에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고작(?) 그 정도의 상상력밖에 발휘할 수 없었던 걸까'하는 의아심마저 들고(전문지 식도 없는 내가 감히 이런 표현을 하다니.^^;;). 어쨌든, 내게는 너무나도 설득력 없어 보이는 가설들이었다.

 

그럼 나의 의견은? 내 생각에는 그들의 주파수와 우리 지구인의 주파수가 달라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것은 순수한 나의 생각은 아니다. 칼 사강이 그렇게 생각했고, 아담 스키 박사가 그렇게 생각했고, 기억은 안 나지만 또 다른 학자가 그렇게 생각하며 안테나를 우주에 향해 펼쳐놓고 있다는 글을 읽었는데, 내게는 그 가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분명히 그들도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지적 생물을 찾고 있을 거란 생각. 우리가 그렇듯이. 그런데 서로의 주파수가 맞질 않기에 서로 접촉 시도가 안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너무 앞서 있거나 또는 그들과 다른 채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

어쨌거나 스티븐 핑거가 얘기했듯이 아무리 황당한 생각이어도, 그것을 밖으로 표현해내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함께 연구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임을 이번 글을 통해 느꼈다.

 


 

리챠드 도킨스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자의 유전자를 벌하라 (리챠드 도킨스)

 

앞장에서 여러 번 언급된 리챠드 도킨스의 글을 직접 읽으면서 (짧은 글이지만) 그의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계몽적인 사고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가 망가지면 어떤 부분에 이상이 생겼는지 찾아 수리해서 사용하는 우리들. 한낱 사물에 지나지 않는 컴퓨터에는 그런 애정(?)이 베풀어지면서 왜 범죄자들에게는 ‘왜 그들을 수리나 부품 교체가 필요한 결함이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없는가?’ 그의 물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되새겨보게 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나의 위험한 생각은 우리가 마침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베이절 폴티가 자동차를 매질할 때 그를 비웃는 것과 똑같이,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비웃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계몽의 수준에 영원히 도달할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더욱 두렵기도 하다.’ 

 

그의 이런 두려움은 그 두려움의 깊이만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느껴져 감동이었다. 나는 나 먹고 살 기두 바쁘다. 나하나 제대로 성장하자고 무지 노력하면서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내 우주의 중심은 늘 ‘나’였다. 아니 ‘나’ 다. 나는 내가 내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할까 ‘두려운’것이고, 리쳐드는 이런 인간애가 가득 넘치는 계몽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까 ‘두려움’인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지구에 사는 두 인간의 사고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반성’을 해야겠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좌절감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인간에 대한 지식이 인간을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베리 스미스)

 

참으로 많은 학자들이 ‘마음’, ‘생각’ 또는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분야가 얼마나 ‘미지의 세계’인지를 보여주는 것일 게다. 우리가 느끼는 ‘의식’에서 비롯되는 행동들이 실은 그것을 우리가 미처 의식하기 전인 ‘무의식’에서 벌써 반응했으며, 그것이 잠시 후 ‘의식’을 통해 행동으로 표현되어 나온다는 사실은 정말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지그 지글러도 그의 책에서 ‘무의식’에 관한 언급을 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위험 속에 놓여있는지에 대해 풀어놓았던 그의 글이 떠오른다. 그는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이 ‘무의식의 세계’를 잘 이해한 사람 중의 하나였음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장은 읽으면서 매트릭스가 연상되었다. 가상과 현실에서 정체성의 혼동을 일으키는 앤더슨과 네오처럼 우리는 열심히 우리의 꿈과 이상을 향해 살기도 하고, 또는 그냥 삶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대로 살기도 하지만 결국은 우리는 이미 짜여있는 거대한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란 생각. 소름 끼친다. 그러면 여기서 ‘자유의지’라는 것은 우리의 착각인 것이다. 결국은 하느님의 선물인 그 자유의 지조차도 이미 프로그램에 의해서 실행되고 있다는 것. 가설이라고 해도 무섭다.

 

영혼은 없다. (존 호건)

 

존 호건의 우려가 이해가 가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뚝배기 배짱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나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다. 아무리 완벽한 Program이라 할지라도 ‘영의 세계’까지 지배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가설로 세우는 것조차도 내게는 터무니 없는 바보 같은 착각으로 느껴진다. 그 어떤 훌륭한 프로그램도 그것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만약,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그러면 컴퓨터가 고장 나 프로그램이 손상되었을 때 우리 영혼의 세계도 잠시 휴식을 취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의 영혼이 혼돈상태에 들어간다는 뜻일까. 싸이보그를 만들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조정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영혼’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임으로 여기서 논할 부분도 아니다. 

 


 

우리는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  (로드니 브록스)

 

로드니 브록스의 ‘우리는 우주에 홀로 존재한다’를 읽고는 왠지는 모르지만 로드니 브록스의 외로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옆에 있었으면 어깨를 도닥거리며 말해주고 싶었다. “로드니, 그렇지 않아요, 이 우주에는 절대로 우리만 존재하진 않아요, 어딘가에 ‘그들'이 있지요. 단지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뿐이에요.”라고 말이다..

 

이 유니버스 전체를 통틀어서 오직 지구에만 지적 생물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만약 '정말 그렇다면…'하고 생각해볼 때 참 쓸쓸할 것 같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형제 종족을 찾는 우리들, 설사 없다고 하더라도 ‘있을'거란‘가제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자극을 주고 또한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들과 만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할 것이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킬 것이고, 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 중에 지금껏 알지 못한 또 다른 많은 신기한 것들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없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모든 것은 중단될 것이고, 인간은 그쯔음에서 멈춰버릴 것이다.

 

어쩌면, 다른 행성에 지적 생물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정작 중요한 사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이란 글이 떠오른다. 그렇듯이, 그들이 존재한다는 희망을 갖고 준비하는 삶을 사는 생 안에서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존재 내부에 존재한다 (키스 데블린)

 

키스 데블린은 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극단적인 표현이 아닌 좀 더 따뜻한 인간의 본질적인 입장에서 다루며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의견은 찬성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그렇게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그 이면을 되짚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내가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같은 그이 유로 그는 그것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본질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며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게 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의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다는 것. 그럴듯한 이론이다. 그가 펼친 이론은 부드럽게 와 닿는다. 표현 방법이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삶을 바라보는 ‘자세’에 관한 어떤 방법론에 관한 부분인 것이지 그렇다 하여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곳곳에 폭탄이 존재한다. (프랭크 티 플러)

 

그가 쓴 제목처럼 아주 쉽게 구할 수 있는 연료와 장치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고, 또한 물질 100kg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1000메가톤의 핵폭탄에서 방출되는 것과 맞먹는 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행여라도 테러리스트들이 그것을 사용하여 인류의 존재가 멸망에 이르게 될까 봐 걱정이라는 프랭크 티 플러. 그러한 그를 보면서 ’ 우띠~ 그러면 그런 방법이 있다고 가르쳐주지 말지. 다 말해놓고선..’하는 투덜거림이 나왔다. 하긴, 그가 얘기 안 한다 하여 그쪽의 전문가인 테러리스트들이 모를까마는. 오싹한 상상이다. 

 

 

대니얼 길버트

 

 

선하고 옳은 말만 하는 사회 (대니얼 길버트)

 

대니얼 길버트의 ‘선하고 옳은 말만 하는 사회’는 아주 짧은 텍스트지만 콩트처럼 재밌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곱씹게 하는 글이었다. ‘생각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 지껄임이나 수다스러움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어리석음이나 소외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런 다양한 생각들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입장하는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말하는 대니얼. 또한 ‘상스럽고 모욕적이고 무식한 의견들이야말로 자유로운 사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같은 것’이라는 대니얼 (너무 다정하게 부르는 분위기다..^^;;)의 표현은 너무나도 재밌었고 맘에 쏙 들었다.

  

‘공적인 대화에서 사용하는 모든 말들이 공정하고 선하고 옳기만 하다면, 그때야말로 그 사회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할 때이다.’ 그럴 것이다. 우리 인간 내면 속의 진정한 감정을 숨기고 겉으로 포장되어 나와져야 하는 사회는 이미 인간미를 잃은, 순수함을 잃은 가식적인 사회로써 우리는 이미 우리 감성의 자유로운 표현이 용납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물론 꼭 욕을 하고 상스러운 소리를 해야 자유로운 사회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쯤은 모두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모든 상황에서 모든 여건에서 그래야 한다면 그것은 감성이 살아있는 사회가 아닌 이미 죽은 사회나 다름없을 것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도망쳐 나와야 한다. 우리의 감성표현이 자유로울 바로 그곳으로...

 

지구 온난화에 대한 투쟁은 패배했다 (폴 데이비스)

 

폴 데이비스의 지구 온난화에 대한 투쟁 이야기는 참 포용력 있게 다가왔다. 회색의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지금 현재의 우리의 자세에 대해 신중한 언급을 하는 그의 글에는 믿음이 갔다. 어두운 미래를 그려놓음으로 우리를 암울한 삶으로 몰아넣고 싶지 않은 희망적인 메시지가 들어있어서 읽으면서 푸근했다. ‘그래. 만의 하나 지구의 온난화가 발생되어도 우리 인간의 멸망을 뜻하는 건 아닌 거야.”하는 희망적인 메시지...

 


 

우리는 우주의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다 (로버트 샤피로)

 

로버트 샤피로의 ‘우리는 우주의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이유가 신에 대한 부정으로 연계시킨 그의 주장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문득, 신부님께 우주에 다른 생명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것인지 여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주 진화론은 빅뱅 이래 일어나 일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생명의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주장한다.
생명이 시작되는 데는 어떠한 기적이나 커다란 행운의 손길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지구 너머에 있는 생명체를 찾는 데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우리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다.(P179)

 

나의 생각은 간단하다. 전문가의 지식을 가진 나는 아니지만, 상상을 하는 데 있어서 꼭 박사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첫째. 이 수억만 개가 넘는 별들 중에 오직 지구에만 생물이 산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옹졸한 생각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환경적인 요소’를 운운하는데, 그 수억만 개를 다 조사하고 연구했나. 아니잖은가. 어딘가 과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몇 억 광년 저편의 거리에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별들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느 별에서는 새로운 생물이 그런 악적인 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는 적응력을 가졌을 수도 있다. 이렇듯, 내게 수많은 ‘If’가 꼬리를 물고 튀어나온다.

 

둘째, 하느님은 절대 옹졸한 분이 아니시라는 점이다. 전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이 유독 지구에만 생물을 만들어놓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을 너무 작은 틀 안에 가둬놓는 행위다. 하느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듯이, 온 우주를 사랑하시는 분. 그런데 왜 유독 지구에만 생물을 넣어놓으셨다고 생각하는 건지. 이런 단순한 상상이 내가 다른 행성에 지적 생물이 살고 있다고 믿게 하는 배경이 되는 나름대로의 이론이다.

 

내가 그러한 주장을 하는 그들을 볼 때 답답해 보이듯이, 하느님의 창조 운운하며 반대 의견을 펼치는 내가 그들에게도 답답해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일 거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슈퍼 거울 - 합리적 자율성을 의심하라 (마르코 야코보니)

 

마르코 야코보니의 ‘슈퍼 거울 – 합리적 자율성을 의심하라’는 여러 가지로 내게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다가왔다. 폭력적인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고, 또한 범죄영화를 보고 흉내 내는 모방범죄들도 종종 일어나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고, 동시에 희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폭력적인 것을 보면서 폭력적이 되어가는 사람들도 있다면,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을 보면 그런 폭력적인 것도 부드럽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내게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다가왔다. 훌륭한 위인전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였구나. 모방하고 싶어 지니까. 닮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여정에 들어서게 되니까. 그래서 '역할 모델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구나' 하는 수많은 이유들이 떠올랐다.

 

읽으면서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미국 동화 ‘큰 바위 얼굴’이 떠올랐다.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전설을 들은 전설로 전해져 오는 것처럼 꼬마 아이는 마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번창시켜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는데 매일매일 산 위의 큰 바위 얼굴을 쳐다보며 동경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바로 ‘큰 바위 얼굴’을 가진 바로 그 전설의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 우리 딸들에게 그 아이들의 꿈과 연결되는 역할 모델이 필요하듯이, 내게도 앞으로 남은 삶을 나의 꿈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 모델이 필요함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데니얼 골먼

 

사이버 횡포를 막을 수 없다. (데니얼 골먼)

 

조절 기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즉 상대의 응답을 실시간으로 피드백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러한 실시간 피드백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 뇌 속에 있는 충동 억제 회로를 당황하게 만든다. 
감시 신호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탈 억제, 즉 속박에서 풀려난 충동으로 나타난다. (P187)

 

대니얼 골먼의 ‘사이버 횡포를 막을 수 없다’를 읽으며, 이 사이버 횡포가 바로 실시간 피드백이 되지 않음으로 인해 뇌 속에 있는 충동 억제 회로의 불균형으로 탈 억제 현상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웠다. 그렇다면, 이 사이버 횡포를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우리는 너무나도 위험 속에 노출되어있고, 인제는 ‘인터넷’이라는 괴물(?)로 인해 우리는 소중한 ‘도피성’마저 잃어버렸다. 내게는 참으로 고마운 인터넷이 사이버 테러에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바로 고문 그 자체였을 것. 가까이 우리가 사랑했던 ‘최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녀가 살아있을 때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라곤 ‘질투’밖에 본 게 없다. 내게는 그냥 좋다 싫다도 못 느끼는 그냥 ‘텔런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죽음은 나의 감정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괜찮아요' '사랑해요’라는 말 한마디를 못해준 것이 한으로 남을 것만 같은 그런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나를 가슴 아프게 했다.

 

이렇게 사이버 횡포는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그런데,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또 다른 그들은 조금의 감정의 동요를 느끼고나 있을까. 그들이 한 짓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아주 작은 뉘우침이라고 갖고나 있을까. 최진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또 다른 그녀는 ‘그날’ 등산을 하며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을 그녀의 사이트에 올렸다는 소식은 경악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무감각하고 모든 것이 ‘나’만 중요하고, 모든 삶의 중심인 ‘나’이 세상. 너무 무섭고 슬펐다. 싸이버 불링에 시달리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의 너무나도 안타까운 죽음들.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피워보기도 전에 삶을 스스로 놓았다. 어린 청소년들을 삶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이 커서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을 때, 그 아이들이 그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까, 아니면 자기 자식만 중요하다고 기를 쓰고 달려들까. 과연 ‘느낌’이나 ‘뉘우침’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사전에 있기나 할까 하는 다소 극단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열명을 구하진 못해도. 지구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내 아이, 내 가족을 깊은 관심 속에 사랑을 하면서 그것이 주위로 뻗어나가게 하는 것. 그것만이 세상을 바꾸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오프 세상에서도 이미 많은 고통을 겪으며 생존해가는 우리들, 싸이버 상에서 마저 그런 횡포 속에 고통을 겪는다면 과연 우리의 도피성은 어디란 말인가. 슬픈 일이다.

 


 

 

익명성은 통제되어야 한다 (케빈 켈리)

 

‘프라이버시는 믿음에 의해서만 얻어지며, 믿음은 일관된 정체성을 요구한다’는 케빈 켈리의 말에 동의한다. 익명은 가면과도 같아서 커튼 뒤로 살짝 숨어 나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지만 상대방은 내가 누군지 모르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함께 따른다. 케빈 켈리가 언급했듯이, 힘이 약한 비주류파에게 힘을 주며 자신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장점도 있지만, 이 익명을 가장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는지. 사회성은 결여되고, 인간성을 잃어버린 오프 사회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들을 단지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횡포를 부린다. 인터넷의 발달 속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며, 우리의 안식처이며 피난처마저 잃어가고 있는지 시간을 더해감에 따라 강도 깊게 느끼고 있다.

 

대니얼 골먼이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이버 횡포를 막지 못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익명이 계속될 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겠지. ‘익명은 가능한 한 계속 제로에 가까워야 한다”는 케빈 켈리의 주장에 절대 찬성이다. 외국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체면 중시의 한국사회에서는 실명제가 많은 통제력을 발휘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참으로 비겁한 행위다. ‘나’가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감히 말 못 하고 우아한 척 온갖 고상 다 떨면서, 인터넷에서는 온갖 욕설과 도저히 인간의 소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황당한 글을 올리는 무리들. 온 세계의 중심이 ‘나’인 이기와 아집으로 찌든 무리들. 치졸한 비겁함과 극도의 이기심이 이런 행위를 불러오는 것인 게다.

 

의학 황금시대가 건강을 위협할 것이다. (폴 이왈드)

 

폴 이왈드의 의학에 관한 글을 읽는 내내, 브라질의 보건부 장관을 지낸 조세 세하가 떠올랐다. 쌍파 울 시장을 역임하였고 대통령에도 출마했지만 룰라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던 조세 쎄하. 누구나가 그렇듯이 그 역시 정치를 잘한 적도 있었고 약점을 드러낼 때도 있었지만, 아마도 세계 의학 역사상 (브라질이 아닌 ‘세계’) 그처럼 훌륭한 ‘보건부 장관’을 뽑아보라고 하면 모래알에서 다이아몬드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그가 보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그 당시 에이즈 환자 보유국 1,2위를 다투고 있던 브라질 국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에이즈 약을 배포한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결론만 보면 ‘뭘 그 정도를 가지고..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을 방해하려는 세계적인 제약회사와 그 뒤의 보이지 않는 큰 힘들을 상대로 조금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정면 돌격하며 싸웠다. 그리고 비밀리에 부쳐진 에이즈약을 브라질 자체 내에서 생산하는 데 성공시켜 자국민들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몇 년이란 세월을 끝까지 싸워 이겼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브라질 인들이 치유되었고 제 삶을 되찾았는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참 멋진 나라에 살고 있구나 하는 감사함에 뜨거움이 올라왔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 출마했을 때 내게 투표권이 없는 게 너무 속상했었다. 분명히 그를 찍었을 건데.

 

그때 알았다. 제약회사의 횡포가 얼마나 크고, 또한 그들을 움직이는 그 뒤의 그림자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들도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브라질에서는 그런 약들의 성분과 같은 제네릭 약을 판매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다.

 

뻑하면 파업에 들어가는 한국의 의사와 약사들과는 참으로 다른 면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노동자들이라면 또 몰라도. 바로 그들의 손에 한 인간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던 그들이 어떻게 파업에 들어갈 수 있는 건지. 이미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의 본질을 잃어버린 행동이다. 브라질은 비록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사는 나라고 치안마저 불안해 우리 모두 불안 속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가 모자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적어도 ‘의사나 약사들의 파업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료받기를 기다리다가 우리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태아 성별검사를 합법화하라 (다이앤 헬펀)

 

다이앤 헬퍼의 글은 찬성 반대를 떠나 참 많은 복합적인 문제를 동시에 짚어보게 했다. 그가 짚은 장단점은 현실적인 면에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태어나고 난 다음에 아기를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구별을 하여 갖는 것. 또한 딸만 가득하고 아들이 없어 슬픔 가득한 집안에 또 딸을 안겨주어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낼 딸아이에게나, 아들을 기다렸다 딸을 또 갖게 됨에서 오는 고통들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딸만 둘 가진 나지만 의아스러울 정도로 한 번도 아들을 갖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토록 아들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내게는 조금 의아스럽다. 이조시대도 아닌 현대에 사는 우리임을 볼 때..)

 

이 글에서 너무나도 흥미로왔던 것은, 남아선호 사상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녔다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하지만, 그렇게 대체적으로 남아를 선호하는 세상에서 구별하여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성의 불균형 속에 사회구조가 바뀌게 될 것임에 역시 위험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생각이다.  정말 이 위험한 생각들은 뭐가 이 리 두 복잡한지. 이런 위험한 생각을 알기 전에는 난 참 단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위험한 생각들을 접하면서 삶이 무지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_-;;

 

브라이언 그린

 

우주 너머에 여러 우주가 있다. (브라이언 그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너머에 또 다른 많은 우주가 있다는 생각, 즉 우리 우주는 다중 우주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실험이나 관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변적인 생각이지만, 지적으로 자극적이고, 우리 우주만이 유일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겸손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다중 우주론은 현재의 과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새로우면서도 모험적인 접근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P243)

 

나는 이런 가설을 참 좋아한다. ‘인간에게 영혼은 없다’ 같은 황당무계 하다 못해 ‘무식이면 용감하다’라는 표현을 절로 떠올리게 되는 그런 무모한 가설 말고, 브라이언 그린이 말했듯이 지적으로 자극적이고, 우리 우주만이 유일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겸손하기까지 한 가설. 맞고 그르다의 승패 관계를 떠나서 마음껏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며 나름의 이론을 펼쳐볼 수 있는 가설들이 참 좋다. 너무 재밌지 않은가..

 

다른 별에 지적 생물이 있다는 것에는 많은 생각도 해보고 한때 관심도 많아서 그에 관한 책을 많이 읽어보기도 했지만, 우리가 속한 우주 외에 다른 우주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의 첫 구절을 읽으면서 “와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읽으면서 ‘Lost’가 생각났다. 우리 한국 배우 김윤진이 출연해서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시리즈. 그들이 속해있는 세계와 또 그들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 구성은 마치 우리가 속한 유니버스와 또 그 유니버스가 한 부분으로 속해져 있는 또 다른 슈퍼 유니버스.. 정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여러 개의 거울 속에 무한대로 반사되어 비치는 사물처럼 유니버스란 무한의 무한을 거듭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해도 괜찮다. (마르첼로 글라이거)

 

그의 글의 첫 시작과 마지막 끝은 마치 성서의 창세기의 첫 시작과 끝을 읽은듯한 느낌이었다. 인간들이 그렇게 모든 의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교만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많이 닮았다. 만약에 ‘그들이 그렇게 증명하여 보여주려고 애쓰는 그 모든 것이 허위라면..’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맥 빠지게 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면 어떤가, 그것 때문에 과학이 더 약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인간적이 될 뿐이다.’라고 도닥거린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언젠가 보았던 ‘관객모독’이란 연극이 떠올랐다. 정말 ‘관객모독’이라는 타이틀대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관객들에게 온갖 모욕을 다하고 열 받게 해 놓고는 정작 자신은 매력적인 음유시인이 사랑을 남겨놓고 떠나듯 유유히 휘파람 불며 사라졌던 그 연극배우가 떠올랐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연극이 떠올랐던 것은 분위기가 닮았던 때문이었다. 

 

암튼, 마르첼로 그 라이저의 결론은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통쾌했다. 그래.. 모든 걸 다 알지 못하면 어떤가그것 때문에 과학이 더 약해지지도 않으며단지 더 인간적이 될 뿐일 뿐…

 


 

 

모든 물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루디 루커)

 

루디 루커의 ‘모든 물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찬반을 떠나 내가 듣고 읽고 배운 것들과 접합시켜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식물에도 사물에도 생명이 있다, 아프게 하지 마라고 들어왔다. 그러니 책상을 칼로 상처 내거나 하지 말고, 바위나 나무에 이름 같은 것 새기지 말라고. 읽으면서 생각했다. '생명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루디 루커는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일까. 또는.. 그들에게 작용되는 에너지를 그는 ‘마음’이라고 표현한 걸까..?? 우리는 여러 실험을 통해 알고 있다. 심지어 밥을 두 개의 병에 넣어놓고 한쪽엔 예쁜 말을, 다른 쪽에겐 나쁜 말(욕)을.. 하며 일주일을 보냈을 때 그 밥이 어떻게 변했는지.. 하나는 노란 예쁜 곰팡이가, 욕을 들은 병의 밥은 시커먼 더러워 보이는 곰팡이가 생겨있었음을.. 뭐.. 꼭 이 실험 말고도 그런 유사한 실험은 무지 많다. 화분이나 꽃 이야기들도 그들에 속할 것이다. 그런 사물에도 우리가 발하는 에너지는 우주의 에너지를 불러 모아 그것들에 영향을 끼친다니. 말로 표현되는 에너지가 얼마나 강렬한 생명력을 갖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에너지’라고 생각했다면, 혹시 루디 루커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과 ‘에너지’는 차이가 있지 않나. 마음은 자율적이고 주도적이라면, 에너지는 반응적이고 반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모든 물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라는 그의 생각은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자극을 주었음은 분명하다.

 

필립 앤더슨

 

특정 신이 존재할 확률은 상당히 낮다. (필립 앤더슨)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아는 모든 논리 체계를 동원해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의 확률 계산법으로 볼 때 신은 존재할 가능성이 극히 적다. (P275)

 

미처 느끼기도 전에 “FxxK~!!”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글 첫 시작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무모할 정도로 당당한 확신에 혀가 내둘러졌다. 계산법.. 과연 그는 마음의 느낌 정도를 계산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영혼의 세계의 무한함을 계산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정신세계를 그의 계산법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그가 설명한 피라미드 공식을 사용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의 주장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노벨 물리학상까지 수상한 사람의 지적 능력과 영적 능력의 언발란스에서 오는 이런 이론은 참 많이 안타깝다. 많은 과학자들은 연구 중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그 뒤에 존재하는 초자연의 힘을 보게 됨으로 인해 무신 교자도 신을 의식하게 된다는데.

그의 ‘위험한 생각'에 대한 견해를 읽으며 내게는 그의 생각이 더 위험스럽게 느껴졌다.

 


샘 해리스

과학은 종교를 파괴해야 한다. (샘 해리스)

 

‘과학은 종교를 파괴해야 한다’ 샘 해리스의 글 제목은 놀라우리만큼 과격하고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주장을 펴려고 이런 제목을 달아놓았는지. 그가 보는 ‘종교와 과학의 불일치’ 마치,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전처와 후처 사이의 갈등처럼 영원히 화합이 보이지 않는 관계. 마지막 장까지 읽고 보니, 왜 그가 그런 이론을 펼치는지 그 깊은 뜻을 알 것 같았다. ‘과학은 종교를 파괴해야 한다’보다는 차라리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가 그 밑에 깔려있음이 느껴졌다. 굳이 종교에 의지하지 않아도 우리는 나약하지 않고 강해지고, 종교적인 불화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가 그렇게 과격한 제목을 선정한 것은 종교를 초월한 사랑과 평화를 원하는 그의 간절한 바람에서 온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글엔 간절함이 묻어있었다.

 

 

과학은 신을 침묵시키지 못할 것이다. (제시 버링)

 

‘지금 여기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의 로버트 프로빈, ‘과학과 종교의 통합-신의 과학’의 스트빈 코슬린에 이어 ‘과학은 신을 침묵시키지 못할 것이다’의 제시 버링의 글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왜 과학자들은 그토록 신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

‘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

 

그들이 갖다 대는 온갖 이유들과 온갖 모함과 온갖 증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 그들이 느끼는 ‘신에 대한 두려움’이 보인다. 뭐가 그토록 두려운 걸까. 어쩌면 그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느끼는 ‘인간의 한계’때문이 아닐까. 증명할 수 없기에 인정을 하게 되는 신의 존재.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이유도 답을 줘야 하는 이유도 없고 그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처럼 자신의 고도의 지적 수준을 나타내고 인정받기 위해서 스스로 찾아 나선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 우주의 신비, 자연의 비밀들. 그들은 안다. 자신들이 이 모든 것에 확연한 답을 줄 수 없음을. 그때 느끼게 되는 절망감, 막막함. 왜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오만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너무 어린애 같은 고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다 하다 안될 때 울며불며 떼를 쓰는 어린아이들 같은. 그러고는 결국엔 게임이 안 되는 상대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옹졸하고 이기적이고 겸손치 못한 오만함에 구역질이 난다.

 

 

부모 면허 시대 (데이비드 리켄)

 

데이비드 리켄의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그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 깊은 우려에 내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그가 내세운 의견에 뭐라 딱히 동조한다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방법이 너무 의외여서.) 아이들에게 바람직한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은 그의 의지와 염려는 우리 주위에 그야말로 ‘널려있는’ 집 없는 아이들. 학대받는 아이들, 노동착취를 당하는 아이들.. 또는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은 수많은 다른 학대를 받는 아이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자극하는 글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특히, 이곳 브라질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거리의 아이들’이다. 아직 엄마품에서 젖 만지고 놀아야 하는 아이들이 거리에 버림을 당하고, 스스로 생존하며 마약과 온갖 범죄에 노출되어있는 것을 떠올리면 ‘부모 면허’는 바로 이 브라질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된다. 우리 모두 좀 더 깊은 관심과 사랑과 경각심을 가지고 ‘생각’만이 아닌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이다. 

 


 

스튜어트 브랜드

 

역사의 현실참여 - 응용 역사 (스튜어트 브랜드)

 

역사 가사이에선 미래에 관해서 결코 언급해서는 안되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다. 스튜어트 브랜드가 이어 설명을 해주었듯이 역사란 지나간 것을 다룬 학문인데 거기에 미래를 논한다는 것이 역사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새로운 사실였다. 하지만 살짝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사는 물론 과거를 되돌아보며 과거의 시간 속에 벌어진 사건들을 공부하는 학문이지만,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오늘을 이해할 수 있고, ‘오늘’로 이어지는 역사들이 바로 내일로 향해지는 사건이라면, 엄밀한 면에서 옳은 자세는 아닌 것 같다.

 

분명 ‘과거만’의 역사도 ‘오늘만’의 역사도, 또한 ‘내일만’의 사건도 없다. 모두가 진행 선사에 벌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임으로 분명 역사가가 미래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불문율인 것 같다. 스튜어트 브랜드의 의견에 나는 찬성표를 던진다..

 

어떤 것도 무보다 더 위험할 수 없다.

 

찰스 자이페의 ‘어떤 것도 무보다 더 위험할 수 없다’는 짧은 글이었지만 그 함축된 내용이 너무나도 시적이고, 철학적이라 그냥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거라도 ‘끄적거려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한 번도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뭐..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그렇듯이..^^;;) 그 지적은 참 흥미로왔다. 우리는 ‘무’를 두려워하여 공허를 싫어하는가..??

신학자들의 주장도 참 재밌다. 신이 최초로 한 행위가 무에서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공허를 몰아내는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 또한 재밌다. 신이 뭐가 아쉬워서 공허를 몰아내려고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을까..??  이 ‘우주’라는 개념을 어떠한 특정한 크기로 한정시켜놓은 부분도 재밌었고 (답답하긴 하지만) 신이 마치 심심해서 적선하듯 우주와 생물을 창조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겨 그것 또한 재밌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은 이 현대의 내놓으라는 학자 들으리 모습을 보며 이조시대 유교학자들의 공리공담으로 죽으라고 싸워대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한다. 결국엔 이조를 망하게 했던 장본인들..  난.. 우리는.. 지구가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는 학자들을 높이 올려놓고 마치 우리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선정해놓고 그들의 사상이 우리를 물들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이런 생각들이 정말로 ‘위험한 생각들’이 아닌가 싶다.

 

 

 

위험한 생각들을 조장하려는 생각이 위험하다. (랜돌프 네시)

 

랜돌프 네시의 생각은 옳다고 본다. 긴가민가하는 확실치도 않은 상태에서 ‘조장’을 하는 것은 때때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장이 큰 위험한 결과를 불러온다. 그리고 말은 밖으로 내뱉어지는 그 순간에 생명력을 발휘하게 됨을 믿는 나로서는 생각이나 말이나 똑같이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 재밌었던 부분은 바로 랜돌프의 말 게임 같은 표현들이었다. 문장을 여러 번 읽게 했다. 마치 ‘간장공장 공장장은 장공 자장이고~’ 같은 그런 류의 게임. 무척 멋있게 그럴듯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읽는 동안 헷갈리게 쓴 글로 여러 번 다시 읽어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위험한 생각들을 조장하려는 생각이 위험하다.라는 그의 주장엔 동의한다.

 

반중력  너무나 실용적인 의미에서의 카오스 이론 (카이 크라우제)

 

카이 크라우제의 ‘반중력’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며 ‘위험한 생각’에 대해 묻는 그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 일단 참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가는 동안, 글보다 그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결론은 바로 ‘개미탑은 각각의 개미가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할 때 설 수 있다. 각각의 개미는 사회적 행동이나 역할, 정해진 일을 완수한다.’ 즉, 다른 환경,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있는 곳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낼 때 (이것은 꿈을 가지지 말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사회는 바로 사회가 가야 할 바로 그곳으로 굴러갈 것이라는 것. 옳고 옳은 이야기다. 

 

인도의 아이들에게 미국의 소비주의 사회를 동경하게 하고, 남미의 빈민촌 아이들이 ‘킬빌’을 열광하게 하고, 보루네오 아이들이 미국에서 야구를 하기를 원한다면 세계는 무너질 것이다. 다양성은 각자의 다양성을 충실히 살리며 제자리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낼 때 다양성의 Union이 이뤄지고 하모니를 이루게 되는 것. 카이 크라우제가 차근차근 신중하게 펼쳐나간 논리는 우리가 깊이 되새겨보며 우리의 현주소를 다시 짚어보게 하는 일깨움을 주는 글이었다.

 

사회 상대성 이론 평등한 사회는 불가능하다 (토르 노레 트렌더스)

 

토르 노레 트렌더스가 말한 사회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가 표현한 ‘평등과 불평등’의 의미는 내가 느끼는 ‘평등과 불평등’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평등’과 ‘불평등’이 함께 섞여 살아지고 있다

 

그럼 어떤 게 평등하고, 어떤 게 불평등한 걸까.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과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운 사람들 중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면 이것은 평등한 걸까. 불평등한 걸까. 물론 평등한 거다. 그러면 우리는 사회 속에 잘살고 못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는가. 불평등이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여기서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게을러서라는 말은 절대 아님을 알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평등과 불평등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 빈곤’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아무리 내가 여유로운 안정적 위치에 있어도 상대적 빈곤을 느끼면 우리는 늘 뭔가 모자라고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에 우리는 욕망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충만감을 느끼기는커녕 벌어도 벌어도 또 벌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과 늘 뒤처지는 느낌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불만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게 되는 것. 

‘상대적 빈곤’은 우리 현대인이 앓고 있는 정신적인 Epidemic인 것이다.

 

로저 생크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로저 생크)

 

학교를 폐쇄하라는 강력한 구호를 외치며 펴 나간 그의 주장은 참 일리가  있었다. 그가 조목조목 따져간 학교의 비판적인 부분은 마땅히 짚어보아야 할 사안 들였고, 그가 그리도 분개해하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어쩌면 그래서 요즘 홈 스쿨링을 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장단점은 다 있는 것. 우리 아빠도 늘 말씀하셨다. 학교에서는 사회에 나와서 전혀 소용없는 것들만 가르친다고.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신 아빠가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 나로선 이해가 가질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아빠는 우리에게 한 번도 공부에 대해서 닦달하시지도 추궁하시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공부를 놀이처럼 즐겁게 하며 정작 사회에 나와 사용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우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갖는 바람일 것이다. 만약 그런 좋은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우리 애리와 리예가 아직 학생일 때 그런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길 바라본다.

 

맺으며...

 

읽으면서 정말 이 책에 들어있는  ‘위험한 생각들’로  많이 황당하고 많이 답답해하기도 하고 경악해하면서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에 대한 토론을 하는 분위기가 되어 아주 흥미롭고 재밌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 또 하나 알았다.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을 재밌어하는구나.. ’  하지만, 좀 더 젊었을 때 내가 가졌던 객관적인 시선이나 자세는 퇴색되었음을 느꼈다.  그때는 내 주장과 틀린다 하여도 ‘화가 나거나, 열 받거나’하는 일 없이 순수하게 내 의견을 말하며 상대방의 반대의견도 열린 마음으로 들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떤 부분에선 울화통이 치밀고 화가 나는 걸 느끼며, 못 말리는 아줌마의 무댓보 혈기가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가진 ‘위험한 생각’ 외로 또한 가지 놀란 것은. 그 유명한 학자들이 가진 분야별 타이틀이다. 심리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과학자, 철학자, 또한 과학 져널리스트 등등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불러 모은 이 책에 듣도 보도 못한 분야를 보고 그것 또한 놀라웠다. 그런 새로운 분야를 살짝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전체적으로 묶어서 리뷰를 쓰기엔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역시 숲을 보기보다는 나무에 더 익숙한 나의 성향 때문일 거다. 숲을 보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실은 나무가 더 친근하고 익숙한.. 그래서 나는 내게 익숙하고 편한 방법을 취했다. 느낌이 컸다거나, 그냥 한소리 안 하고는 못 넘어가겠는 챱터는 따로 리뷰를 하는 방식..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험한 생각들’은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지금껏 어떤 책보다도 참으로 진지하게 읽으며 (맨 끝 몇 부분만 빼고) 성실하게 실시간으로 초서를 해나간 책이었다. 

 

 

초서: ‘위험한 생각들’을 읽으며…

 

P9환상적으로 자극적이다. 전율토록 흥분시킨다. 생각의 세계에 뿌려진 한 웅큼의 코카인이다.”

>> 이제 책의 서문을 시작하는 내게는, 이 표현이 더 자극적이고 환상적이었다. 대체 어떤 내용이 들어있길래 이런 극찬을 했는지, ‘생각의 세계에 뿌려진 한 웅큼의 코카인이다.’ 와우~  코카인내 생각의 세계에 뿌려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흐미..흥분된다...


P21 이런 질문들을 읽고 있자면, 아마도 당신은 혈압이 높아질 것이다.사람들이 그런 일에까지,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오싹해지는 이도 있을 것이다.

>> 정말 그랬다. 스티븐 핑거가 거론한 질문들을 읽으면서 정말 그럴수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단순히 결과만 믿게 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이루어진 결과를 보고 가상의 결과를 그려보게 함으로써 그 근원을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다른 시각으로 그 원인을 되짚어 보게하는 질문들.. ‘위험한 생각들시작부터 너무 흥미 진진하다.


P22 이 질문들은 명백히 위험한 생각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위험하다고 비난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게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며, 그 질문들이 해로운 행동을 유발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들이 진정 위험한 까닭은 널리 퍼져 있는 도덕적인 질서를 교란하기 때문이다.

>> 충분히 공강가는 해석이다.


P25 환경 보호에 현재 유행하는 대중적인 생각들이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더 효과적인 환경 대책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지 그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 해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번역 해석이 아닌, 상황 해석이..) ‘필요성이 커지는 것이지, 그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 결국 우리는 우리 환겨에 맞는 올바른 방법을 만날때까지 끊임없이 포기하지말고 연구해야할 것이다. 에디슨이 그랬나..?? 지난번 축제에서 읽었는데 그새 가물가물하다.-_-;; 그 수많은 연구 실패를 두고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바로 그 실험방법이 옳지않았음을 알게된 또하나의 다른 성공이었다는 말.. 정말 동전의 어느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자세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다시한번 느껴보는 대목이다.


P25

어떤 생각이 위험한 것으로 변하는 이유는 대체로 밥그릇 싸움때문이다.

>> 원시적이면서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게 본능적인 Primitive한 인간심리를 표현한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P26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위험한 경우는 인간 본성과 관련될때이다. 필립 테틀록과 앨런 피스케는 어떤 인간관계는 흔들 수 없는 확신에 근거해서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자식과 부모를 사랑하고, 배우자들에게 충실하며, 친구들에게 진실하고, 공동체에 이바지하며, 우리가 속한 집단에 헌신한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까닭은 사전에 그것들이 어떤 가치와 장점이 있는지 따져보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가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지를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고민하는 사람은 위의 인간관계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드러낼 뿐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팔면 어떤 이익이 있는지, 배우자나 친구, 동료, 자신의 국가를 팔아넘기면 얼마나 이익이 발생하고 손실이 초래될지 따져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가능성 자체를 일축하고, 그런 생각을 아예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성한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따질 때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그런 경우에는 마땅히 개인과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P28 이 책에서 다루는 이슈와 관련된 모든 생각들은,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합리적으로 토론한다는 것은 오직 지적인 것에 근거해서 생각들을 평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생각 앞서 예로 든 화형대에서 사람을 태우거나 벼를 자르는 것 같은 생각 은 포기시켜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책에서 길버트가 주장했듯이) 생각을 단념시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도덕적으로 위험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 이 부분을 읽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마치 내가 무슨 비밀 결사대에 들어가 대의를 위해 막중한 임무를 띄고 비밀 회의를 하고있는듯한 그런 비장함이 느껴졌다. ‘비밀스러움두려우면서도 호기심이 발동되는... 그러면서도 왠지.. 마치 내가 무슨 대단한 일에 중요인물로 참여하고 있는 듯한 막중한 책임감..같은.. 이럴때면 꼭 내가 독립투사라도 된 기분이다..^^;;


P28 한편 위험한 생각은 개인적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견해는 옳은가?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어떠한 생각을 애초부터 포기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자기 모순적이고, 지극히 오만한 태도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옳고 선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평가 따위는 차단할 권리가 있다는 그릇된 믿음의 반영일 뿐이기 때문이다.


P28 또한 공적인 영역에서는, 설령 어떤 생각이 받아들이기에 불쾌하다고 해도, 그것을 무시하고 기만하기보다는 진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다. 좋은 일은 그것을 무조건 믿으면 이뤄지고 나쁜 것은 애써 무시하거나 사라지라고 기도만 해도 없어진다고 착각하는 것은, 어린아이나 정신이상자들의 마술적인 생각일 뿐이다.

>> 하하하~ 나는 혹시 스티븐 핑거가 숨어서 나를 보고 있었나..하고 순간 흠칫~ 했다. ^^;; 그의 표현이 너무나도 나와 흡사해서 얼마나 웃음이 났던지..^^ 난 정신이상자는 아니지만 어린아이같이 미성숙한 구석이 다분히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P29 이성을 가진 성인이라면 진실을 규명하려 해야 한다.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면 어떤 행동도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다. 더구나 상황을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논리학자들에 따르면, 생각의 체계 안에 모순이 포함돼 있고, 그 생각이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하나의 전술을 연역해 낼 수 있다고 한다.

>> 맞다. 이성을 가진 성인이라면, 진실을 규명하려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나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진실을 규명하고 싶은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것이라면 진실을 규명해야함에 있어 내 정직성과 싸워야 한다. 그때 그 갈등속에 개입되어 내 갈등의 기준에 선을 명백하게 그어주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다. 그래서 결정의 순간까지 겪어야하는 갈등은 원하지 않는 고통을 때떄로 안겨주지만, 그 후에 내가 맛보게되는 마음의 평화는 그 무엇에 비할 수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옳고 그름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며 대충 내게 유리한 쪽으로 넘어가게되는 갈림길에서 옳은 것을 기꺼이 택할수 있는 용기를 얻게되는 것 같다.


P30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미국 연방최고 재판소 판사였던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유명한 격언이다. 어떤 생각을 공개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그 생각의 잘잘못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뜻이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이 잘못됐다는 점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공개적인 토론과 논의를 피하게 되면, 결국 그것이 옳을 수도 있다고 묵시적으로 동의한 꼴이 되고 만다. 그리고 어떤 생각이 진실한 것으로 결론났다면, 우리의 도덕관념을 그것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거짓된 것을 신성화하는 곳에서는 결코 미덕이 나올 수 없다.


P31 이처럼 생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도덕적 질서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과학이 세계에 대한 기존 상식과 아무리 다른 사실을 내놓을지라도 우리의 도덕적 질서는 그 진실에 맞춰 살아남을 것이다.

>> 그래 맞다. 생각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상황판단이 명확하지 않아서, 때로는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때로는 배려라는 포장을 앞세운 소극적인 자세로 인해.

여기서 말하는 생각의 표현의 주제에서는 조금 벗어나긴 하지만... 나의 경우를 보면 배려라는 가면을 쓴 나의 소극적인 자세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실은 이멜을 드리고 싶은데... 사실은 만나자고 하고 싶은데... 사실은 그걸 보고 어떤 느낌이셨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그 말이 입에서 잘 안나온다.. 내것에 대한 표현은 솔직하고 쉽게하는 편인데, 누군가가 개입되는 상황이면 늘 그렇게 상대방이 어떤 느낌일지에 민감해지고 배려라는 얼굴을 앞세워 혼자 속으로 삭이고 마는 상황.. 어쩌면 그 뒤에는 그들의 반응이 두려운 것일것이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을때 아는 언니한테 전화드려서 만나자고 하고 싶어도 혹시 언니가 나올수 없다고 할때.. 내가 이미 느끼고 있는 외로움이 더 깊어질것 같아서

내 블로그글에 대한 말씀을 한국에 계신 분들을 통해 전해 들으시고 궁금해하시는 신부님의 얘기를 여러번 들었으면서도 한번도 내 싸이트를 보여드리지 못했다. 왜냐면 혹시 괜히 한말씀 하신걸 내가 착각한건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에

이라고는 말할수 없지만, ‘많은부분이 이런 식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완벽주의에 관한 강의를 듣고, 좀 용감해져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핫 세션 이야기.. ‘누구 일주일내내 내생각하신 분 계십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기억 안합니다..”라고 말씀하셨을때 뒤집어졌다. 넘 웃겨서.. 그러게 아무도 나의 실수나 챙피스러움은 오래 기억 하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도 없는데 괜히 나혼자 이러는거일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빙그레 웃음지어지며 나도 인제 좀 용감해지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 나는 또 얼마나 멋진 훈장을 달고 있는가..?? ‘아줌마라는.. 조금 실수하고 조금 챙피스러웠다해도.. ‘아줌마라는 방패는 많은 부분 커버해주지 않나... 좀 더 용감해지자..^^


P31 우선 우리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미리 예상하고 있을 경우엔, 행위에 따른 책임을 모두 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여기에서 행위란 공개적인 발언까지 포함하낟. 이 논거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는 아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들의 편협한 신앙이나 파괴 욕구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이용하려고 드는, 증오와 냉혹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자신들의 신앙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장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포착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P32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명료한 사고를 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누군가는 명료한 사고를 사소한 것 물고 눌어지기라고 깎아내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명료하게 사고할 수만 있다면 위험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올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도 유의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꺠달아야 할 교훈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라는 것이다.P33 우리는 위함한 생각에 도사린 위험이. 그 생각을 옹호하는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칠 때, 특별히 그 생각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P34 나는 중요한 생각들은 때때로 공표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에 더 동조하는 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생각들을 일단 드러내서 심사숙고하고 토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좋든 싫든, 과학은 기존의 사고 틀을 뒤집으면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P39 미래의 우리들은 10개의 시뮬레이션 라이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낮에 하는 일은 IBM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지만 퇴근 후에는 반짝거리는 갑옷을 입은 중세의 기사로서, 호화로운 연회에 참석하고 방랑하는 음유시인과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미소를 보낼 것이다. 다음날 밤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가의 별장에 머물면서, 몰떼새와 비울기, 왜가리 요리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P51 나의 위험한 생각은 이것이 이미 일어나고 잇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근본주의자들과 반소비주의를 주장하는 활동가들은 거대한 유혹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회피할 것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크리에티브 클레스의 인공세계와 에블퀘스트의 경제학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키고 있다. 그들은 인내심을 갖고, 적응을 위장한 나르시시즘이 소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실용적인 정신을 키워가는 이 사람들이 지구를 이어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들과 비슷한 정신을 가진 외계인들이 다른 몇 개의 행성을 이어받을 것이다. 이들이 마침내 접촉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소설을 ㅇ릭는 사람들이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만남과는 다를 것이다. 그것은 아주 진지하고 훌륭한 부모들간의 만남이 될 것이다. 이들은 원자폭탄뿐 아니라 Xbox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서로 축복하리라. 그들은 소프트 포르노가 상영되는 홀로테크에서가 아니라, 성스러운 분위기의 탁아소에서 건배를 하게 될 것이다.


P52  헬름홀츠는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였으나, 뒤에 신경과학 분야로 연구 방향을 전환한 인물이다. 그는 신경계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처음으로 측정했는데, 여기서 다소 이상한 현상을 꺠닫게 된다. 신경계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도, 구리선 같은 전선에 흐르는 전기처럼 빛의 속도로 전달되어야 할 것으로 추측했는데, 막상 측정을 해보니, 놀랍게도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초에 90미터를 가는 속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들이 외부 자극에 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실험해보았다. 그는 반응시간(자극이 주어진 시간부터 반응이 일어날 때까지 의식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은 감각기관이나 운동기관이 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다는 것을 발견했다.

>> 정말 놀라왔다. 이런 걸 측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헬름홀츠도 경이로와 보였고, 또한 그것을 측정하는 기구를 만들어내어 측정해냈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도 놀라왔다. 그들의 이런 호기심에 가득찬 연구로 우리 뇌를 관찰하고 그 신비를 하나하나 벗겨가게 되니..정말..과학자들이란..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수가 없다..


P54 만약 하나의 선택이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겠다고 결심하기도 전에,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결정된다면, 자유의지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이런 선택들은 뇌 속에서 미리 결정돼 있는 것인가?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자유롭게, 우리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에 불과 한 것인가? (…) 어떤 행동을 인식하는 것과 결정하는 것 사이에 시간 차이가 존재하는 까닭이 무엇이든지, 리베트의 발견은 다음과 같은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의 결정이, 자신도 의식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행해진다면, 그 결정에 대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 ‘만약 그렇다면.. ’이라는 전제는 소름끼치도록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긍정적으로 바라볼수도 있겠지만, 만약 우리 인간들의 매순간 매초 매찰라마다 결정되어지고  행해지는 우리의 행동들이 무의식 속에서 이미 결정되어진것에 대한 결과라면 그 무의식에 입력되어진 모든 정보들에 의해 계산되어지고 그에 따른 Output이 나온다는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과연 우리에 의한 것인지, 그 행동이 나오도록 유도한 그 누군가의 것인지, 그러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것인가..?? 그결과과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를 떠나, 무의식속에 행해지는 결과를 현실로 믿고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현실속에 살고 있는걸까..?? 마치 공상과학을 보는 느낌이다... 복잡하고 장을 더하면서 더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


P57 슈퍼사이징은 개인들이 가진 의식적인 판단력을 어지럽히려고 의도적으로 고안된 것이며, 실제로 잘 먹혀들고 있다. 패스트푸드 회사들은 질문의 틀(방식)을 바꾸면 우리의 분석력을 약화 우리가 가진 이런 약점은 행동경제학이나 진화심리학에서는 일상적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 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아냈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P58 우리는 남성들이 매력적인 여성의 얼굴 사진을 보고 나면 평소보다 더 공격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허걱~ 이런 일이~!! 그래서 울 신랑이 글케 헐크로 변하는건가..?? 넘 매력적인 여자랑 살아서..?? 푸하하하하하하~ ^^;; (걍 웃자고 한 야그니까~ 걍 넘어가주기 바람~!! *부끄부끄* ^^;;)

본론으로 들어가서.. 참 이색적인 연구결과다.. 매력적인 여성의 사진을 보면 로맨틱해질테고 그러다보면 Relax가 되어야 정상적인 반응 아닌가..?? 아님 동물적인 본능이 나타난다는 것일까..?? 내게는 정말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연구결과였다..


P60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더 많이 알아가면서, 자유의지에 관한 우리의 개념 그것은 자유의지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형성된 것이다 도 조만간 무너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낡은 개념과 새로운 이해가 충돌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자유의지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개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법적,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언젠가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모든 시스템이 이렇게.. 우리 뇌가 어찌 작동하는지를 치밀하게 계산한것을 적용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내린 결정이니 행동을 순수하게 내가 내린 나의 결정이고 행동임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 그 뒤에 따라오는 그 행동에 따른 결과나 책임는 누구에게 물을수 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생각에 두렵기까지하다..


P61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은 인간 지성이라는 기계에서 두 번째 지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유일한 요소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인 자각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사고나 느낌, 행동은 대부분 심사숙고하거나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다. 우리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고나 느낌들은 절차에 따르는 것이며, 자동적이고, 전적으로 사전에 정해진 조건에 따라 형성된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일을 왜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동인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식이나 판단이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옳지 않다는 걸 모르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행동은 종종 우리의 의도나 모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P62 시각적인 착각 속에서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과 행동에 관한 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역시 자기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이나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들은 우리의 의식 바깥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윤리 의식에 존재하는 한계들을 깨닫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과학이 그것들을 밝혀낼 때까지는 그 한계들은 드러나지 않는다.P62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30년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이기적인 유전자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그래야만 최소한 그들 (이기적인 유전자들)의 의도를 뒤집을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 이외의 다른 종들은 결코 꿈꿀 수 없는 일이다.”P63뱃사람은 어디가 북쪽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침반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썼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는 과학을 통해 새로운 분야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기록될 미개적 분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를 통해 다른 행성들 속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다른 종들 사이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본성까지도 알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P65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가장 큰 도전은, 우리가 사고하는 능력과 상상하는 능력, 우리의 생각을 드러내고 알리는 능력 이것들을 통해 우리는 과학을 탐구하고 이론을 설계한다 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초자연주의에 대한 과학의 최종적인 승리는, 인간이 가진 의식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완성될 것이다. 인지 과학과 뇌 과학은 이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만족할만한 완전한 이론을 얻기까지는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P65 인간으로서의 우리는, 경험의 중심이고, 자기 인식과 자유의지의 중심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믿음, 욕망, 희망, 공포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며,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안다. 신경과학의 연구 결과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행동들이 얼마나 자동적이고, 규칙에 따르며, 선험적으로 결정된 의식에 따라 움직이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일상의 사고 과정이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주도적인 역할은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자동주의나 미리 결정돼있는 의식이 아니라, 자신에 관한 믿음, 즉 자신이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중심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P66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단순한 기계로 대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인간은 기계적인 존재라는 것이 진실로 판명이 나더라도 말이다. 앞으로 과학이 아무리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더라도, 우리가 가진 자세에 대한 개념은 거의 그대로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과학적 사실과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방식이 앞으로도 지금과 큰 차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P66 우리는 신경과학이 밝혀내는 사실들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발전들과 그것들이 우리에게 응용되는 방식에 대해 놀라운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뛰어난 자연주의 철학자였던 데이비드 홉이 일찍이 말했듯이, 자연은 우리 속에 너무나 강하게 뿌리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친숙한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홉은 우리가 연구나 실험을 통해 우리 자신에 관해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나 비전을 찾아내더라도, 일상생활로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믿음과 습관도 되돌아오게 돼, 결국 이상한 사고나 의심을 버리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고 과정에 어떤 오류가 있고, 우리가 어떤 허구 속에 빠져 살고 있는지를 과학이 아무리 우리에게 가르치고 깨닫게 하더라도, 오류와 허구들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이 부분은 잔뜩 긴장한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듯 했다..마음이 푸근해졌다. 마치 안그래도 공포영화를 보며 잔뜩 긴장하여 보고있는데, 주인공을 덮치는 검은 그림자.. 알고보니 주인공을 구하러 온 영웅.. 그럴때 느끼는 안도감.. 그랬다. 어쩌면 이런 허구와 오류가 가득한 우리의 삶 안에서 우리는 바로 과학으로 설명할수 없는 인간의 끈끈한 정을 느끼며, 오류와 허구가 바로 우리 삶안에서 맛을 주는 조미료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한 때때로 코미디같은 삶속에 깔깔대게 만드는... 그런….


P72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취향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이 어디 근거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올바른 결론을 얻어낼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고, 정반대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P72 우리가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다소 으스스해진다. 물론 우리는 행동이나 생각의 동기나 이유를 대지 않으면서도 일상생활을 영워히나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것보다는 더 안전한 태도이다.

>> 이렇게 해석을 한다면 나는 안전지대에 있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6개월동안 와우축제를 통해 나는 분석적이고 전략적이기 보다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는것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나임을 알았다... 그것은 어쩌면 상황을 두고 왜 그럴까?”하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마치 사진을 찍듯이 그 상황이 그대로 마음에 와닿아 느껴지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나의 성향 때문인거겠지...그래서 왜요?’하고 따지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많이 불편함을 안겨주는것 같다. 물론 그 왜요?’가 더 진지한 토론으로 이끌어내기 위함 일때는 정말 신이난다.. 하지만, 코너에 몰아세우기 위해 수많은 를 끄집어내는 것은 질색인것도 어쩌면 이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P74 우리가 행동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서와 신호들을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결정된다.


P75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실험을 통해 피실험자가 자기도 모르게 무으식적인 목표를 설정하도록 조작할 수도 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해 좌절한 피실험자는 확신을 잃고 업무에서 이전보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가 보기에 더욱 위험한 진실은 이것들은 결코 고립된 실험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상에서도 일어난다. 사실 우리의 일상은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에 잠재해 있는 그러한 메커니즘은 사소한 일이든 아주 중요한 일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선택과 행동에 자동적으로 힘을 미치고 있다.

>>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연구결과다. 앞장의 글에서도 이미 표현했지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왠지 이 글에서는 긍정적인 느낌도 살짝 들었따. 삶속에서 목표잃은 사람, 또는 목표는 있는데 추진력이 떨어지는 사람, 좌절에 빠진 사람의 무의식속에 숨어있는 무의식의 보턴을 눌러주면 그 사람은 삶에 에너지와 열정이 솟으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될거란 생각.. 그런 국한적인 면에서 보니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어질수 있다는 것은 역시 결국엔 경악스런 결과를 가져올 것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는 것 같다.


P75

이제는 분명해진 사실이지만, 일상과 업무 과정에서 내가 결정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결정되며, 그 결정 과정에 관여하느 것은 하찮은 신호에 불과하다. 내 안에 있는 영리한 좀비가 이미 결정해 놓은 것이다. 추론은 그렇게 이미 결정된 것을 천천히 심사숙고하느 것에 불과하다. 좋은 뉴스느 이러한 메커니즘이 없다면 일상 생활을 매끄럽게 영워할 수 없으며, 추론도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하더라도 그 결정들이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는 점이다.P76 하지만 위험한 진실은 우리는 가능할 떄마다 그림으로부터 의식적인 선택을 잘라내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자유 의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의식적으로 심사숙고하는 것이 행동의 엔진을 어느 정도까지나 가동시킬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을 가동하면, 제대로 작동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우리가 알던 방식도 아니며, 우리가 그렇다고 믿었던 정도만큼도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아야 한다.


P78 두 발로 걷는 짐승은 생물 역학적으로 볼 때, 골반의 크기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갓난아기도 큰 두개골을 가지고 태어날 수 없다. 이것은 이전과는 달리 아기가 뇌의 발육이 덜 된 채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아기를 부모의 엉덩이에 매달 수 있게 돕는 밧줄이, 태아들이 훨씬 발육이 덜된 상태로 태어나도록 작용한 것이다.

>> 내게는 새로운 사실이다. 나는 시대가 변하고 점점 문명이 발달함으로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영리해져서 나오는줄 알았다. 그런데 뇌의 발육이 덜 된 채로 태어나게 된다니.. 놀라운 사실이다..


P80 인간의 뇌는 자연을 넘어설 수 있을 뿐 아니라 문화도 엄어설 수 있다. 그것은 낡은 명제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명제들을 설정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고금예쑬과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뇌가 가진 이런 과정 즉 신체의 한계를 극복한 도구를 만들어내고, 기억 장치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 예술과 과학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발달이 자유의지에 의해 지탱이 되고 있다.


P81 한편 미래에는, 가상현실 기계가 발달해, 부정적이고 암울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 기계들이 끊임없이 은밀하게 토해내는 문화적인 프로그래밍을 통해, 감수성이 강한 개인들을 무기력한 순응주의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하다고까지야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많이 보여지고 있다. 게임을 통해, 영화를 통해, 그리고 음악등을 통해서...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늘 꺠어있어야 할 것이다. 좋은 정보들을 자꾸 접하고 무의식에 입력시키면서


P82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작요은 우리 인간들에게 어마어마한 만큼의 능려과 지성과 잠재력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이러한 잠재력을 미래에는 더욱 실현하고 확장시켜서, 특히 과학과 예술 영역에서 우리의 판단력과 이해력을 높이도록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P82 그러나 문화적인 산물로서 뇌를 이해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 사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개조하고자 하는 이들 독재자와 권위주의 정권들 은 사람들의 뇌를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시도할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고수하는 것은 그것을 교묘한 방식으로 자유의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무력화하려는 권력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된다. 자유의지를 배앗긴다면, 인간은 미래에 가장 질 높은 슈퍼 로봇 이 로봇은 똑독한 공장 노동자이기도 하고, 온순한 소비자이기도 하며, ‘노련한 무기 수송 시스템이 될수도 있고, 순종적으로 권력의 앞잡이 노릇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인간이 자연의 역사를 통해 이룩한 특별한 능력, 즉 유전자와 문화의 상호협력이 소수 엘리트만의 자유를 위해 봉사하게 될 수도 있다.

>> 공감한다. 그들은 자기들 입맛대로 우리를 요리하려 들것이다.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고 세계를 정복하기위해.. 내가 하고 싶었지만 표현이 잘되어지지 않은 부분들을 티모시 테일러가 속시원히 말해주었다. 내가 관심많은 고고학을 연구하는 고고학자라는 것이 글을 읽으면서부터 관심이 끌렸는데, 나의 지적결여와 짧은 표현력으로 로 목에 걸려 뱅뱅돌며 나오지않은 느낌들을 대신  속시원히 해줘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P84 나는 또 사람들이 나를 실증주의자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는 모욕적인 말이다)라고 부를때, 아무런 죄의식이나 거리낌 없이 기꺼이, 나는 사실들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걸 믿지 않는다고 밝힌다. 이렇게 보면, 누군가에게 당신의 생각은 위험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에게 아첨하는 것과 다름 없는 셈이 된다.

>> 댄 스퍼버의 단호한 당당함이 참 마음에 들었고, ‘교양의 즐거움에서 처음 접한 구조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어 무척 반가왔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스트 들에게 실증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들에게 모독적인 표현이라는 것도 참 재밌었다..^^ 누군가가 만약 내게 너는 실증주의자지..??”라고 말한다면…”네맘대루 생각하세요~ ”하고 혼자 생각하며 웃을것이다.. 원래 모르면 감정적인 변화를 느끼지 않으니..^^ 암튼. 엘리트들은 모욕적인 표현도 참으로 고상하다..’ 생각하며 혼자 비실거리며 웃었다..하하하하~ ^^


P87 사회과학은 다양한 접근법으로 그 분야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기여해왔다.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적 접근법도, 그 속에 기존의 연구 방식과 다른 점은 다소 있지만, 특별히 환경받을 만하고 중요한 시도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당한 요구와 미래에 대한 약속은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삶들이 축적해온 능력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자연주의자들은, 엄밀히 말해 위험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존 연구의 유용성과 엄밀함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 이 분야의 책을 많이 읽기는 커녕 읽어보지도 않고 이제 겨우 그에 대한 맛보기식 글을 읽고 감히 내 주장을 펼수는 없으나, 한가지 그에 공감하는 것은 단지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론과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그것을 가지고 함께 연구과정을 나누고 또한 토론하고 정의하며 서로의 다른점을 존중해주는 것, 또 그럼으로서 너의 분야 나의 분야 할것 없이 진리로 통하는, 그들은 결국 같은 것을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모습은 정말 아름다울거란 생각..해보았다.. ..멀리 갈것두 없이 가까이 우리나라의 정민교수가 그런 분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연구작업을 모두 온라인에 올리며, 다른 학자들이 숨기고 연구하여 짠~하고 싶은 중요한 문서들을 함께 공유하는 학자의 자세.. 우리는 그런 분들을 존경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민 교수가 무지 좋다.. 뛰어난 저서를 낼뿐만 아니라, 그의 깊은 성품이... 그리고..외모가 우리 이모부를 닮았다는 사실도.. ^___^


P89 보복은 도덕적 원칙으로는 올바를 수 있지만,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인 관점과는 어긋난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인공 지능 컴퓨터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몰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본다. 우리는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킨다고 해서 컴퓨터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 손상된 부분을 찾아내고 수리하는게 상식이다. P90 왜 범죄가 자신이 아니라 범죄에 이르게 된 생리적, 유전적, 환경적 오인을 따져보다는 견해르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가? 왜 어린이를 살해한 사람, 혹은 파괴적인 약탈자들에게 감정적인 증오를 드러내는데만 몰두하는가? 그들을 수리나 부품 교체가 필요한 결함이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없는가? (…) 나의 위험한 생각은 우리가 마침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베이절 폴티가 자동차를 매질할 때 그를 비웃는 것과 똑같이, 범죄자 개인을 비난하고, 그에게 책임을 묻는 일을 비웃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계몽의 수준에 영원히 도달할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더욱 두렵기도 하다.

>> 물론 그런 대상으로 볼수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것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때때로 어떤 범죄자의 자라온 지배환경이나, 지배가치들을 보면서 그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에 대해 공감하는건 아녀도 그 마음이 충분히 느껴질때가 있다. 너무 복합적인 것이라 쉽게 표현되고 결론내려질 수없는 부분들.. 하지만 그런 모든 점을 수렴하고 받아들이겠다고 생가했더라 하여도 만약, 그 범죄가 와 연결되어진것라면 (상상도 하고 싶지않지만) .. 쉽게 그들을 수리나 부품교제가 필요한 결함이 있는 대상으로 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래야 합니다라고 이성적으로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가 과연 그 범죄가 그들..즉 나의 영역안에서 행해져, 그를 벌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지난 환경을 생각해보라며 그의 삶속의 손상된 부분을 설명하고 범죄자를 미워말고 그가 가진 유전자를 벌하십시오라고 말할수 있을까..?? (물론 그런 훌륭한 인격을 가진분이 있음을 나는 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나이외의 것으로 분리되어 결정되어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주체와 객체의 차이..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이 이해의 관점이 전혀 다른 시각으로 행해짐을 안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내게 다가온다. 그들의 범죄는 우아한 박애정신으로 다가갈수 있지만. 내가 속한 영역안에서 행해진 그것은 도저히 용서하기 쉽지 않다는 것


P93재판장님, 그것은 제 의뢰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의뢰인의 내부에 있는 진화된 살인 적응구조가 시킨 것입니다.”

>> 하하하하~ 정말 웃기는 짬뽕같은 이야기다. 베이젤 폴티가 멈춰버린 자기 차를 매질하는 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코메디같은 이야기.. 하지만 결코 웃고만 넘길수 없는 이야기


P93 많은 사람은 자기 집단 내부의 일원을 죽이는 것은 악이라고 간주하면서도 집단 바깥의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로 바라본다.P94 단순하게 말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족, 우리와 결속을 맺은 이들이 진화해 나가는 데 장애가 되는 대상을 악으로 간주한다. (…)


P94 칭기스칸은 가장 크나큰 즐거움은 당신의 적을 정복하는 것, 당신 앞에 있는 적을 추격하는 것, 적의 재산을 뺴앗는 것, 적이 사랑하는 이들의 눈물을 보는 것, 적의 말을 타고, 적의 아내와 딸의 배 위에서 자는 것이다.”

>> 표현이 너무 동물적이어서 속이 다 니글거렸다. 적군과 아군의 차이, 네편과 내편의 차이. 테러 행위도 자국민이 보면 애국행위지만 피해국에서는 테러 행위모든것이 이념과 어느쪽에 있는지 ‘Part’의 차이인것이 여실이 드러난다. 우스갯 소리로,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참 재밌는 표현이지만, 바로 그 행위가 이뤄지는 상황에 나는 그 행위를 가하는 쪽의 편인지, 아니면 상대쪽인지.. 내 시각이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라 행위의 본질에 대한 옳고 그름이 구분되어 진다는 것은 재밌는 현상이면서도 무서운 현상이다. 어쩌면 그래서 세상에는 전쟁 존재할수 밖에 없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P96 악한 행동을 범하는 사람들과, 영웅적인 행위를 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단지 보통사람이고 평균적인 사람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닮았다. 악의 평범함과 영웅주의의 평범함은 서로 유사하다. 둘 다 개인의 기질이나 성향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유발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들이 내면적으로 특별한 병리적인 질환을 앓거나, 영혼이나 유전자에 본래부터 선함이 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둘의 행동은 특정한 식에 특별한 상황에서 도출된 것일 뿐이다. 상황의 힘이 주도적 역할을 해서, 그들로 하여금 방관자에서 행동하는 자로 옮겨가도록 밀어붙인 것에 불과하다.P97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이 유발하는 강력한 힘에 사로잡히는 특별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상황이 유발하는 힘들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미칠 가능성을 증대시키거나, 다른 사람을 돕도록 유도한다. 그런 행동은 자기가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주의를 기울여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상황이 빚어내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서 충동적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빚어내는 힘이란, 집단이 가하는 압력이나 집단의 정체성일 수도 있고, 책임감의 발현일 수도 있다. 또 이후에 치러야 하는 비용이나 이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현재 이 순간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 타고난 영웅도 물론 있지만, 필립 잠바도의 말처럼 어느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상황이 빚어내는 힘에 의해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로서 군중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종종 본다. 말할줄 모른다면 몇번이나 꽁무니를 빼던 모세처럼정말 평범한 그들 안에 숨어있는 커다란 능력이 그들안에 숨어있었다면, 내안에도 그런 능력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워볼수는 없는걸까..?? 그래서 간절히 소원하건데, 나도 어느 특별한 상황에 내안에 잠재된 카리스마가 튀어나와 마땅한 때마땅한 능력을 발휘하여 태어날때부터 이미 내게 주어진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며 행복하게 살게 되길 바란다. 가 내게 다가올때까지..나는 준비하며 내 삶을 충실히 지키고 있으리라되새겨본다


P97 평범한 개인들도 순식간에 악행을 범하는 사람으로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 <파리 대왕>에도 잘 그려져 있다.

>> 여기서 <파리 대왕>을 만나다니.. 넘 반가왔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지금도 결코 잊을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다룬 소설.. 정말 충격속에 읽었던 소설이다. 인간의 심리가 상황속에서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여준 소설로.. 더욱 경악했던 이유는 그 변화의 자연스러움이었다. ‘절대 나는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따라 나도 악으로 변할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너무 무서웠더랬다. 그 충격속에 읽었던 <파리 대왕>을 이 글속에 언급되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정말 반가왔다. 잊은 친구를 만났던 것 처럼


P99 내가 보기에 위험한 생각은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영혼은 인간의 육체를 초월하고, 육체 너머에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근본적인 자율성과 개성, 존엄성을 부여한다. 한마디로 영혼은 이간을 이루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P102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개인을 컴퓨터처럼 프로그램화될 수 있다면, 아무도 영원불멸하고 신성한 여혼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여혼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폐기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영혼을 믿도록 프로그램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P103 나는 개인의 정체성이나, 자유의지, 의식 따위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과격한 주장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런 견해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보기에 너무 유별난 주장이다. 철학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주장은 실제 세계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위험하다느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 호호호~ 폴 볼룸의 시원한 표현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절대 공감한다~!! ^^ 폴 볼룸.정말 맘에 든다..^^;;


P106 그에 반해서, 널리 퍼져 있는 영혼 거부론은 도덕과 법의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주고 나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며, 자ㅣㄴ의 육체가 죽고 난 뒤에도 영혼만은 하늘로 오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포기하게 할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위험한 생각이 또 어디 있겠는가.

>> ‘널리 퍼져 있는 영혼 거부론이라는 표현이 나를 흠칫~ 놀라게 하였다. 나는 이 책에서 처음 대하는 영혼은 없다라는 가설이 실상은 이미 누군가는 진실로 믿고 있으면, 그것은 또한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왔다.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초서를 하면서 경악이란 단어를 참 많이 쓰게 되는것 같다. ‘위험한 생각들이 내게 반응케하는 모습의 표현일게다). 죽은 뒤 우리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생각이 없어진다면, 사후의 세계는 무의미하며, 내세의 안녕을 위해 오늘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며 선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한다는 종교의 가르침도 무의미해질 것이다. 결국.. 현실의 삶의 고통에 위로를 주고 희망을 주는 신앙은 사라지게 될것이다. 정말 소름 끼치는 상상이다..


P114 인간 게놈혁명이 진행되면서 인간 복제와 인간의 유전적 변형에 대한 우려와 위험을 알리는 목소리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이런 목소리들이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들이 인간 복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조건 반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복제는 부모를 꼭 빼닮은 쌍둥이, 즉 부모의 유전자가 혼합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또 영혼의 부활이나 재생 장기를 위한 원천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 유전자는 유익한 면도 있지만 아울러 불리한 면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들은 맞춤 아기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 ‘인간 복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조건 반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전제와 함께 이어진 보충 설명은..내겐 너무 순진한 착상 같았다.(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비판적이었나..) 대체적으로 이 책에 나오는 과학자나 심리학자 또는 철학자는 참으로 순수하고 순진(?)하고 박애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인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가설들이 부정적이기보다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녀서도 그렇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이 역이용되어 악으로 사용되어질거란 생각은 살짝 옆으로 밀어놓은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복제도 그렇다. 물론 여러가지 상황으로 장단점을 다 따져볼수 있지만, 폭력적이고 저돌적이고 엉뚱한 상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 앞으로 저지를 일들을 생각하면 나는 소름부터 끼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과학자도 철학자도 심리학자도 아닌 무지한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쩌면 그 이면의 결과들을 우리 보통사람들보다 더 잘알것임에도 너무나도 순진하고 착한 상상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정말 그들은 인류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인건지

그리고, 지금 막 떠오른 생각.. 만약 인간 복제가 허가되어진다 하더라도, 그 복제 아기가 커서 스스로가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고, 차갑게 복제되어 나온 아이란걸 알게된다면, 그아이가 받을 상처는.. 이미 태어나기도전에 상품화되어 나온 아기들불쌍하고.답답하기만 하다


P122 비록 내가 진화심리학에 매우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동기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원칙적으로 진화심리학 분야갸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 내가 비판적 이유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확실히 증명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과, 사변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이 분야를 과학이 아니라 신념에 관한 학문인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이 같은 엄밀함의 부족은 모든 진화 생물학 분야를 위태롭게 한다. 우리가 제대로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이 지식을 건설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엄밀한 연구를 통해 어쩌면 참된 것과 십중팔구 참된 것을 분간해야 한다.


P124 내가 생각하는 참되지만 위험한생각은 프랜시스 크릭이 노라운 가설이라고 부른 것이다. 즉 우리의 의식이 경험하는 것과,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전적으로 1000억개 비트의 젤리, 즉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인 뉴런 1000억개 비트가 활동안 결과라는 것이다. (..) 만약 이런 주장들이 비인간적인 것처럼 여겨진다면,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

>> 그래~!! 난 암것두 못봤다.~!!  -_-;;


P128 태양계에 인류만 홀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충격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태양계보다 훨씬 더 넓은 은하계와, 심지어 우주 전체를 통해 인간만이 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절망감을 느낄 것이고,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고 종교로 후퇴하지는 않을까.P129 위험한 생각은 이것이다. 즉 생명의 목적은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열역할 제2법칙이란 말을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 그것은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성질이며, 분산의 결과, 질이 좋은 것에서 질이 나쁜 것으로 형태를 바꿔버린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생태학자 에릭슈나이더가 지적한 것처럼, 자연은 경사를 몹시 싫어한다.P129 엄밀하게 말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변형된 햇빛, 즉 햇빛이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볼 떄, 그 흐름이 거쳐 가는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다. 열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생태계의 연속된 과저은 에너지의 포획과 감소를 극대화하는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35억 년에 거려 생며이 점점 더 복잡해지게 된 것은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자연선택의 결과만이 아니라, 햇빛을 더 많이 잡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생명체들은 에너지를 느리게 연소시킴으로써, 생태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안팎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존속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P131 생명을 에너지의 흐름으로 보는 것은 심원한 개념이다. 다윈이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의 세계와 근본적인 수준에서 결합시킨 것처럼, 열역학의 관점은 생명을 비생물체 세계와 단단하게 결합시킨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이해했던 이 위험한 생각은, 앞으로도 종교와 과학을 포함한 많은 분야로부터 큰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생명의 놀랄만한 다양성과 복잡성은 지적인 설계자의 창조물이 아니라, 물질세계에서의 에너지 흐름과 본질적으로 연결된, 자연현상일 뿐인 것이다.

>> 스콧 샘슨의 생명의 목적은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이다를 여러번 읽었다. 특히 이부분을.. 혹시.내가 잘못 이해했나..내가 어떤 조사라도 빠뜨리고 읽어서 문장해석에 오류가 있었나 해서. 물론 이책에서 만나는 많은 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펼치고, 또 다른 이론을 수용하느가 하면, 때로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반박하기도 한다. 그것은 건강한 토론이다. 그런데,  이 스콧 샘슨의 글은 물론 전문가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지만, 정말 영혼은 없다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생각이다.


P134 많은 사람이 신은 없고, 우주의 설계자도 없으며, 인간에겐 더 높은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위험하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이 우리를 의미나 도덕적 가치가 없는 공허한 삶으로 인도한다고 여기기 떄문이다. 그들은 그것이 절망에 가득 찬 생각이며, 삶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간주한다.

>>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P134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우리 자신이 신이나 설계자 같은 외부의 힘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되돌아보,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의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 것, 우주 속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의 고유함과 특별함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가진 것들을 매우 감사하게 여기게 한다고 믿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단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존재하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느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결과 강한 도덕률도 갖추게 될 것이다. 삶이란 존중해야 하고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 존재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 존재의 외부에 대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우리의 존재는 우주를 위한 어떤 목적도 없고, 우주 역시 우리를 위한 아무 목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 존재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에 관해 묻고 답해야 하는 것이다.P135 대부분의 과학의 발견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과학적 발견은 우리의 개인적, 정치적 선택에 따라 선과 악, 그 어느 쪽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내리는 결정이 21세기 과학의 성과가 유용할지 퐈기적일지를 결정할 것이다.

>> 바로 이점이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었는데


P137 아무리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고, 강도 높은 규제 정책을 시행하더라고, 과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은 언제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맞든 틀리든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절망적인 비판론으로 이어지고, 안전하고 공정한 세계를 보증하고자 노력하는 의지를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미래는 숙명론적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가장 잘 보호될 것이다. 그리고 이떄에 과학은 가장 올바르게 이요될 기회를 맞게 된다.

>> 마틴 리스가 내린 결론을 읽고는 내가 염려하는 부분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올바른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가장 잘 보호될 것이란 그의 자신감있고 선한 희망이 넘치는 결론은 나를 안심시키며 푸근함속으로 데려갔다. 그래.. 내가 걱정한것은 바로 구더기 무서워 장못담그냐라는 속담처럼.. 큰 대의가 작은 부작용때문에 연구되어지지않고 실천되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욱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것일게다. 그렇다. 이렇게 악이 판을 치고 난리 굿을 치는 이 세상이 그럼에도 불구하고파멸되지않고 이렇게 굴러가는 것은 어딘가 숨어서 기도하는 이들의 기도덕분이 아닌가. 자칫 악으로 쓰여질수 있는 과학.. 우리가 아무리 감시하고 강하게 처벌을 한다하더라도 어디선가는 분명 행해질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선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것은 선하게 쓰여지고 인류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게 될것 이다. 아멘~!!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마틴 리스에 경의를 표하며 감사를 전한다.


P142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위험한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각은 우리가 세상에 풀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래서 생각은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주의 깊게 고려하지 않고서 풀어놓으면 안된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몰랐으면 안했을 일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임으로해서 저지르는 많은 범죄들.. 그것들이 우리에게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CSI 같은 씨리즈를 보고 범죄가 더 치밀하고 지능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나도 위험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수 있는 생각들은 그냥 잠재워두는 것이 현명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그런데,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이다라고 한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의견을 들어보면 또 생각은 살짝 흔들린다. 위험한 생각일수록 밖으로 꺼내어 우리가 모두 머리 맞대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여 일어날수 있는 여러가능성을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 그말도 맞는것 같다. 사실 내가 말을 안하고 침묵하고 있다하더라도 모든 우리가 그러는 것은 아님으로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그 위험한 생각은 세상에 나올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생각을 받아들여 그것을 실현하려 들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시 위험한 생각은 밖으로 내놓아야 하는건가..?? 정말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P144위험하다는 것은 자극적이거나 대담부쌍한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다. 생각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침묵을 꺠고, 잡담을 하고, 어떤 의견에 동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참수당하고 수다스러움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어리석음이나 소회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다양한 생각들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입장하는 데 지불해야하는 비용이다. 증오에 차 있고, 모욕적이고, 편견에 사로잡히고, 상스럽고, 무례하고, 무식한 의견들이야말로 자유로운 사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바보들의 끊임없는 주절거림은 우리가 서로 하나라는 걸 알게 해주기도 한다.공적인 대화에서 사용하는 모든 말들이 공정하고, 선하고, 옳기만 하다면, 그때야말로 그 사회로부터 도망쳐 나와야 할 때이다P146 (지구가 온난해진다면) 약간의 나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면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사람이 아주 많이 살거나 비옥한 몇몇 연안 지역이 물에 잠길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으로 시베리아가 세계의 곡창지대가 될지도 모른다. 몇몇 사막은 지금보다 더 확대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사막은 더 줄어들 것이다. 어떤 곳은 더 건조해질 것이고, 다른 곳에는 비가 더 많이 내릴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사정이 전반적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없다.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적응해야 한다는 점이고, 적응은 언제나 힘들다는 것이다. 인구는 이동해야 할 것이다. 200년 이내에, 현재 인구밀도가 높은 몇몇 지역은 사막과 같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200년에 걸친 인구이동 또한 극적으로 이루어져 왔다.P146 지구 온난화에 대한 투쟁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런 지경에 이르지 말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온실 가스 방출을 줄일 자원과 기술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치적 의지일 따름이다.사람들은 입만 열면 지구 환경에 대한 책임 운운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 뿐, 정작 그런 문제에 기꺼이 돈을 투자할 자세는 좀처럼 되어 있지 않다. 지구 온난화는 결국 그리 나쁘지 않다는 것으로 밝혀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밖의 많은 환경파괴 행위 오존층 고갈, 열대우림파괴, 해양 오염 등 는 분명히 심각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를 단념하는 것은 추악한 선례가 될 것이다.


P159 나쁜 과학은 미래를 운에 맡겨 버린다. 더 나쁜 거은, 지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환경에 대한 판단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사람들ㅇ르 해치는 문제점보다 지구 건강의 사소한 문제를 강조하게 되면, 사람들은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변화를 피하는 것을 선호하게 된다.

>>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수 없다고 느끼는 너무나도 거대한 문제에 부딪혔을때 나타나는 반응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럼에도 50%의 승산을 보고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의 오기를 가지고 부딪히는 영웅적이 사람이 없지 않은것도 아니지만, ‘지구의 멸망같은 거대한 문제에 부딪히게되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것을 부정할수는 없는 것 같다.

나역시도 이런 나약한 부류중의 하나였음을 고백하지 않을수가 없다. 결혼후 얼마 안되었을때 그당시 사회적으로  지구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더랬다. 절대 아기는 갖지 않으리라고.. 내일 지구의 멸망이 와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나는 사과나무라면 나도 심을수 있지만 (물론 말한이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는게 아니다) 아이는 낳을수 없다.’ 라고 생각했다. 우리 아기가 이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그아이가 살아있는 동안에 지구의 멸망이 오고 어쩜 나는 그아이를 지켜줄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이 정말 너무나도 무서웠다. 지구의 멸망이 오더라도 우리 모두가 죽고난 다음에 내가 모를때 오면 차라리 좋겠다는 그런 이기적인 생각도 했더랬다.  그런데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무나도 사랑스런 두 딸아이를 키우며 그안에서 행복해하며 지내고 있다. 두 아이는 낳았으나 사과나무는 심지 않았다.


P165 진화심리학은 우리의 사고와 가치체계는 거의 2백만 년 전 홍적세기에 형성된 자연선택 및 성별 선택에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P166 진화론은 영원한 미학적 질문에 실질적인 대답을 준다. 진화론은 예술의 기원에 관하여 할 말이 많다. 예술이 단 한 번에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만 생긴 것 같지는 않다. 예술은 8만 세대에 걸친 홍적세 시기로부터 진화해왔는데, 두 가지 이유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나는 생존에 대한 관심(자연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짝을 찾는 것에 대한 관심 (성별선택)이다. 우리가 시각저으로 어떻게 보는지, 우리는 청각적으로 어떻게 듣는지, 우리의 리듬감, 예술적 표현에 대해 느끼는 쾌감, 관객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예술에 동참하는 즐거움, 예술이 보편적인 인간 감정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진화론적 미학에 의하여 조명되고 설명될 것이다.


P179 생명의 기원에 관해 성공적인 과학 이론이 나오게 된다면, 사람들은 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줄어들 것이다. 생명의 기원은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들의 자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이 후자의 사고는 우주 진화론의 생각과 일치한다. 우주 진화론은 빅뱅 이래 일어나 일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생명의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주장한다. 생명이 시작되는 데는 어떠한 기적이나 커다란 행운의 손길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우리는 지구 너머에 있는 생명체를 찾는 데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의 우리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체가 아니다.

>> 앞뒤좌우상하 꽉막힌 사고~ >_<


P180 생명이란 단지 오랜 기간 지속된 일련의 단계들이 축적된 결과 일뿐P182 매체에서의 폭력은 모방 폭력을 일으킨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생각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위험하다. 첫째, 그 생각은 언론 자유라는 문제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둘째, 그 생각은 우리의 합리적인 자율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P183 거울 뉴런은 뇌의 전운동 피질에 있는 세포들이다. 전운동 피질은 뇌에서 계획이나, 선택, 행동의 실행을 주관하는 부분이다. 전운동 피질의 배 부분에는 물건을 붙잡고, 쥐고, 입으로 가져가는 것처럼, 특정한 목표를 가진 운동 근육을 자극하는 세포들이 있다. 놀랍게도 이 세포들 중 일부분 이것을 우리는 거울 뉴런이라고 부른다 은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을 볼 때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따라하도록 자극한다. 이 세포들의 행동은 관찰자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는동안, 관찰자로 하여금 마치 자신의 행동이 거울에 비친 것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 같다.P183 우리 그룹은 몇몇 연구를 통해, 인간의 거울 뉴런 부분이 모방에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 신경계의 활성화는 상당히 자동적이라는 증거가 있는데, 이것은 신경계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기피한다는 걸 암시한다. 게다가 거울 뉴런들은 관찰된 행동이 어떤 의도와 관련돼 있는지를 암호화한다. 하지만 이떄 행동과 의도 사이에 11의 대응관계가 있느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곧 이 신경계가 단 하나의 행동만 관찰했다고 하더라도, 이어서 일어나는 일년의 행동들을 암호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P187 사이버 탈 억제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전부 전두엽의 억제 회로는 일반적으로 20대에 완전하게 성숙된다. 청소년기에는 발달이 지체되기 때문에 억제력이 떨어지고, 쉽게 감정적인 충도에 휩쓸리게 된다.P188 위험한 생각은 이것이다. 우리 뇌의 충동억제회로는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위험을 인터넷에서는 제대로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P194 우리가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도을 하느 것을 지켜볼 때, 마치 지켜보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 하는 행동을 하는 것처럼 뇌의 관련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이를 확대하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의도나 감정을 알 수 있는 것도 비슷한 기제 때문이다. 즉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그대로 흉내 냄으로써 우리 뇌 속의 특정 부위를 활성화시키고, 그 신호를 읽어 그 사람의 의도와 감정을 아게 되는 것이다. 리초라티가 표현하듯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까닭은 개념적인 추론 덕분이 아니라, 관찰한 사건을 거울 매커니즘을 통해 직접 흉내내기 때문이다P199 프라이버시는 믿음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믿음은 일관된 청체성 그것이 설사 유사 익명성일지라도 을 요구한다. 결국 신뢰가 많을수록, 더 좋다. 모든 독소처럼, 익명은 가능한 한 계속 제로에 가까워야 한다.


P202 쇼펜하워가 내세웠던 일반화 과정 - 진리는 처음에는 비웃음을 당하고, 그 다음에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고, 마지막에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진리가 인간 사회에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을 참 적절하면서도 재밌으면서도, 시니컬한 톤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


P209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은 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잇지만, 다른 약물들도 많이 시판되고 있다. 또 새로운 약물들이 개발 주이기도 하다. 이약물들은 감정을 통제하는 뇌 회로에 직접적으로 작용해 연약한 의지나 훈련으로는 거두지 못했을 효과를 얻는 데 성공하고 있다. 수백만명이 자신의 개성을 바꾸기 위해 매년, 끈임없이 복용하하고 있다.

>> 무서운 사실이다. 우울증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을때 도움을 주기 위한것이라면 또 몰라도, ‘개성을 바꾸기위한 장기복용이라니.. 그렇게해서 정말 성격이 바뀌어 진다는 건가..?? 단순하게 생각해도 너무 터무니 없는 처방책이다. 좀 더 바람직하고 따뜻한 방법들이 많은데, 왜 꼭 사람들은 그렇게 약물에 의지를 하는지 그것역시 너무 나약한 의지를 보여주는거 아닌가. 약을 먹을때는 강해지고, 약을 안먹을떄는 약해지고,,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두고 개성변화가 이뤄졌다고 확신을 할수 있는건지.. 갑자기 확~ 짜증이 나려고 한다. 사무엘 바론테스가 위험한 생각이라며 걱정하는 것은 정말 지극히 당연하고도 당연한 걱정이 아닐수 없다.


P222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은, 보답을 얻지 못하는 법이다.


P223 우리의 뇌는 결코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우리의 뇌가 우주를 이해하리라고 믿느다면,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 당근이다~!!


P223 왜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고 진화하고 움직이는지를 결국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야 하는가? 인간의 뇌가 복잡하고 놀라운 일을 많이 할 수 있기는 하지만, 우주의 복함성과 우리 뇌의 복잡성 사이에 어떤 일치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P225 그럼에도 우리가 과학 지식을 얻으려고 애써야만 하는, 유일하게 정당한 이유는, 과학 지식을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관점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추구해온 전통적인 관점과는 반대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이 왜 역설적인가.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는, 그러한 진보를획득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가 아니라, 우주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과정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그래서 만약 나의 위험한 생각ㅇ 인간의 뇌와 그 산물은 실제로 우주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이 옳다고 하지라도 그것이 우주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조금도 위촉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P239 자연법칙도 자연선택의 결과라느 것을 여전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그것이 그동안 이룩한 성과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미래에 대한 함축 때문이다. 즉 이것이야마로 앞으로 과학을 진전시키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제대로 흡수되고 이해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P239 나는 우리가 버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해,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규칙서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느 생각이 내포하는 의미를 언젠가는 분명하게 꺠닫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또, 이것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꺠닫게 될 떄, 아인슈타인과 다윈이 이제껏 과학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을 이룬 파트너라는 것을 우리가 진정 알게 될것이라고 믿는다, 두 과학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는 영원히 진화하는  관계들의 네트워크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다.


P241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너머에 또 다른 많은 우주가 있다는 생각, 즉 우리 우주는 다중 우주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실험이나 관찰이 뒷받침되지 않은 사변적인 생각이지만, 지적으로 자극적이고, 우리 우주만이 유일하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겸손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다중 우주론은 현재의 과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새로우면서도 모험적인 접근법을 제시하기도 한다.P242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우리 우주와 다른 힘들 핵력과 전기력 같은 힘들 을 가진 우주에서는,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을 이루는 기본 힘들이 다르면. 우주의 구조와 환경도 달라지고, 그런 조건에서는 지구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는 기본 힘들에 대해 더 깊은 설명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오직 우리는 그저 그 힘들의 크기가 조금만 달랐다면, 오늘의 우리 생명체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우연성을 새삼 확인하게 될 뿐이다.P243 분명한 것은, 자연현상 중 어떤 것은 다중 우주 가운데 우리가 사는 이 특별한 우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지만, 반면 심원한 물리법칙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다.P244 양자 역학은 우리의 현실 이해를 극적으로 바꾸ㅗ 있음이 틀림없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예컨대 물체가 분명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물체는 어떤 다른 것과 서로 작용할 때에만 위치를 갖는데, 어떤 다른 것에 대해서만 자신의 위치를 가질 뿐, 그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치가 없다.P245 상대성 이론은 바로 지금 안드로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고 묻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바로 지금은 우주의 어느 곳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느 우주에 뚝딱거리며 시간을 가리키는 거대한 시계가 있느 것처럼 계속 생각하고 있다. 또 우리는 바로 지금 우주의 현 상태같은 관용구가 무리적 넌센스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P245 나를 실소하게 하느 것은, 오늘날의 대담한 과학적 추론들 다차원, 다중 우주 등 중 많은 것이 실험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아직 완전히 소화시키고 있지도 못하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틀을 빌어 그것들이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 나는 그가 말하는 여러가지 주장과 또한 그에 반대되는 주장에 대해 감히 내생각은 이러니저러니 말을 할 수가 없다. (..’위험한 생각들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이론이 그렇긴 하지만..^^;;) 단지 내가 여기서 잠시 멈춘 이유는 바로 이구절에 써있는 카를로 로벨리의 표현이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중한 우려가 너무 시니컬하게 표현되어있어 그게 너무 재밌었다,..

왜냐면 그안에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뭔가 딴에 좀 그럴듯한 의견을 말하고 있을때,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살짝 곁들여 마치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는양 표현할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이 물어보면.. 할말없는.. 대략난감한 상황... 하하하하~^^;;


P247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시간과 공간이 약 140억 녀 전 빅뱅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생각헀다. 이 통설에 따르면, 우주는 소립자들로 이루어진 가스 상태에서 지금의 우주로 변화했다. , 간단한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는 진화 과저을 거쳐 워크에서 초은하에 이르는 우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사이에 무리학자들이 이와는 다른 특징들을 발견하면서 이 통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되었다.주범은 우주상수이다. 천문학자들의 측정에 의하면 우주상수는 미숙한 지식으로 예측한 것보다 훨씬 작다. 우주상수가 그렇게 작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주상수가 아주 작지 않다면 공간이 급속히 확장되어 은하계와 별들이 결코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표준적인 빅뱅 그림 안에서는 어떠한 이론적 틀도 그작은 값을 설명할 방법을 잧지 못했을 것이다.P248 나는 이 접근법이 두 가지 이유로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그것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범위 훨씬 너머에 있는 물리적 상태를 가정하기 떄문에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가 없다. 둘째, 그것은 불가피하게 과학을 억압하게 된다. 만약 다중 우주를 구성하는 우주들이 그렇게 서로 다르다면, 다중 우주 가운데 겨우 한구석에 자리 잡은 우리 우주에서, 임의로 선택된 무리적 특성들을 더욱 깊이 탐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것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생각이다.P249 최근에 몇몇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나이가 훨씬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이들에게 우주의 진화는 순환적이다. 빅뱅은 시간과 공간의 시작이 아니라, 우주의 진화주기에서 뜨거운 물질과 빛의 복사가 갑자기 만들어지느 한 주기의 시작점이다. 팽창과 냉각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각 주기는 1조 년 동안 계속될지도 모른다. 140억년은 물질과 복사가 마지막으로 주입된 이후의 시간을 나타낼 뿐, 우주의 전체 나이에 비하면 아주 미미하다. 각 주기는 약 1조 년 동안 지속하고, 과거에 있었던 주기의 수는 아마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거나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게다가 앞서 말한 완만한 이완 메커니즘을 사요하면, 웆상수가 어떤 주기에서 다음 주기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줄어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한 주기의 기간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우주상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시간은 충분하다. 물론 그 경우 감소율이 워낙 낮아서 우리가 우주상수를 추적하는 것은 더 힘들어진다. 따라서 다중 우주도 없고, 우리가 속한 우주 공간에만 특별한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전형적인 시간에, 전형적인 영역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생각은 과학적으로 시험 가능하다. 우주 초기에 형성된 중력파의 분포와 온도 및 밀도의 변화를 뚜렷하게 예측한다. 아울러 우주상수가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토록 느리게 진화하고 있다면, 우주상수의 변화를 찾아내려는 현재의 시도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선호하는 어떤 위험한 생각들에 대해 사색만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그 위험한 생각들 중 어떤 것이 옳다면, 결국 결정권을 가진 것은 자연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문제다.P253 우주의 기원 같은 궁극적인종류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과학자들이 헛수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의 기원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결합하는 시험 모형을 제안하면서, 그리고 이의의 양자 변동 떄문에 에너지가 필요 없는 모형을 제안하기 위해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얻은 지식을 이용하면서 힘들게 앞으로 나간다.P254 어떤 의미에서 과학은 우리의 과학일 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느 것처럼 보편적으로 진실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학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학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어쩄든 현재의 과학은 무언가를 해내기 떄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렇다고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면 어떤가. 그것 떄문에 과학이 더 약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인간적이 될 뿐이다.


P271 우리 모두는 지적인 정직은 정신 건강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 좋다고 믿으려 한다. 나의 위험한 질문은, 사람이 자유의지라는 문제에 관하여 지적으로 정직하면서 동시에 좋은 정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시작부터 너무나도 흥미진진하다. 오우~


P272 인간의 뇌와 육체처럼, 섭씨 37도에 있는 보통 크기의 물체에 대해서 결정론은 명백히 진실이다. 물리적 우주의 어떤 상태는 언제나 그이전 상태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리고 일정한 뇌 상태와 환경속에서 당신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오늘날 자유 의지 논쟁을 벌이고 있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놀랍게도 이 명백한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비록 당신의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을지라도, 미래에 대한 당신의 생가이나, 결정은 이전의 뇌 상태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P273 나는 의지의 자유에 관한 공개 토론회를 둘러싼 짜증과 심한 분노가 현재 검토 중인 선택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ㅓㅅ은 지관과 관계가 있다. 우리의 대답은 감정저으로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의식적인 자아모델을 통합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P277 선의에서 나온 많은 사람들의 신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비타협적인 종교적 지시는 여전히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엄청나게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종교적 관용이라는 것을 오호한다. 종교적 관용이 종교 전쟁보다느 확실히 더 좋긴 하지만, 관용은 그 책임이 따르지 않으면 무요지물이다. 종교적 증오심을 유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우리는 지금 명백히 불합리하고 적절하지 못한 생각을 비판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떄문에 또한 우리는 불가피하게 우리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그리고 최고 수준에서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합리성이 야립가능하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P278 종교와 과학사이의 충돌은 있을 수 밖에 없고, 제로섬 게임이다. 과학의 성공은 종교적 교의를 희생해야 가능하고, 종교적 교의는 언제나 과학을 희생함으로써 유지할 수 있다.P280 이 사상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과학자들과 기타 합리적인 사람들이 윤리와 영적 체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학과 종교의 구별은 세계에 관한 대화에서 윤리적 직관과 비정상적인 의식 상태를 배제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결론을 내느 과정에서 무엇이 합리적인가에 대해 우리가 좀 더 엄겨해지는 것의 문제이다. 불합리한 것을 비열하게 요인하지 말자는 감정적 요구를 충족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의 본질에 관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즉 종교에 기대지 않고도, 경건함이 요구되느 인간 생활의 여러 단계 출생, 결혼, 죽음 에서 어떻게 재식을 치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P281 자아란 항상 변화하느 믿음과 지각과 마음가짐의 집합체이며, 그것은 본질적이고 영속하는 실재가 아니라, 개념적 망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 철학자 흄 & 부처P283 과학과 형식 종교의 대립은 모든 사람의 삶에서 과학이 오늘날 종교가 행하는 역할을 대신할 때 끝날 것이다. 그런데 그 역할이란 무엇인가? 모든 과학은 자연의 비밀을 이해함으로써 더 큰 세계 속에서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알고, 느끼기 위한 깊이 있는 정신적인 질문이다. 그것은 더 위대한 불멸의 어떤 것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라는 점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더 고귀한 지성을 향한 종교적인 신앙과도 통한다. 그것은 또 자아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것이며, 자아의 바깥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아를 감싸고 보호하고 찬미하는, 더 위대한 무엇에 매혹되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문화에는 종교가 있다. 종교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P284 우리는 자아를 고양하기도 한다. 우리의 대본은 일상적인 정의를 확장하느 것이지만, 존재가 영원히 지속하리라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자아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를 둘러싼 물질들이 특별하게 연결된 것이지만, 그마저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자아는 에너지가 물질로 전환되어 우리 내부에서 각각 분리된 채 옹축된 것들의 총체인만틈 이미 태고 적부터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소림자들은 언젠가 에너지로 돌악ㄹ 것이고, 또 에너지에서 물질로 바뀔 것이다. 에너지든, 물질이든, 소립자의 변환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와 주위의 모든 것은 여원불멸하고, 서로 깊이 연결되어있다. 우리는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조에 또 수십 조를 곱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P285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의식(Ceremony)이다. 우리에게는 의식이 부족핟. 우리에게는 종교적 의식이 적고, 세례식, 공동 예배의 형제애가 결핍돼 있다. 정다운 성직자, ‘산들의 방식으로 신자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성직자가 없다. 열렬한 선교사, 충성스러운 사도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보듬어 안는 신성한 포용,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적인 미사 초대가 없다. 소외감으로는 마음을 따뜻하게 녹일 수 없다. 친교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 이부분을 첫번째로 읽었을때는 그녀가 말하는 의식이 당연하게 Consciousness 를 의미하는 줄 알았으나.. 두번째 다시 읽었을때 그녀가 말하는 의식‘Ceremony’였음을 알고 좀 의아스러웠다. 단순히 위의 구절을 보고 이렇다저렇다 말할수 없는 더 깊은 무엇이 있을거라는 이해심을 발휘한다하더라도, 설마 그녀가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직자와 선교자와 사도들의 행적을 다 조사해보고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녀의 무모함에 내 가슴이 다 쓸어내려졌다.

내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수도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위해 삶을 바치고 있나. 그들의 거룩한 삶을 안다면 절대로 저렇게 의식’(Consciousness 도 아니고 Ceremony를 운운하면서) 이세상에 충성스럽고 열렬한 수도자가 없다는 말은 못하리라.

몇년전 남미 선교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오신 수녀님을 모시러간 남편.. 다른 분들 오시는동안 잠시 요기를 하기위해 짜장면을 사드렸을때 굳이 안드시겠다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났더랬다. 왜냐면 짜장면이 싫어서가 아니라, 행여 볼리비아에 돌아가셨을때 짜장면이 생각날까.. 아예 유혹을 끊이시려 했던 수녀님.. 그만큼 수녀님께서 계신 곳이 얼마나 열약하고 눈물나는 환겨였는지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는 상황이라 목이 메어졌더랬다. 이 수녀님뿐만이겠는가...

그녀가 단순히 자신의 주장을 좀 더 극대화하기 위한 표현에 내가 괜스레 열을 내며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저런 표현은 조심스럽지 못했고 현명하지 못했다. 모든 수도자가, 사제들과 사도들이 그런거는 아니라는 약간의 틈은 남겨둬야 했을것이다.


P287 과학자는 흔히 자신의 앎의 방식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지적인 신의 존재를 믿거나, 구전을 통해 내려 온 것, 양피지에 옮겨 놓은 것들을 믿는 대신에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알아간다. 진리는 아마도 영원할 것이지만, 그 진리를 알아가는 인간의 지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한다. 즉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데이터들을 기록하고,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시험하며, 논쟁을 하는 가운데 앞서의 기록들을 수정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을 단지 또 다른 하나의 종교로 간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 나도 절대 동감이다. 어떻게 물리적인 것이 영적인 존재를 대신할수 있는 것일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논하자고 달려들때 느껴지는 황당함.. 그래서 어이없어 할말이 없는 상황. 바로 이럴때 갖게되는 느낌이다.


P291지금 여기가 존재하는 전부이고, 생명은 태어남으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난다.” 경험적으로 시험 가능한 이 생각은 위험하다. 이미 수백만 명의 인며을 희생시켰고 문명의 미래를 위헙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은 이 생각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서 온다. 그들은 바로 종교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경험적으로 있을 수 없는 내세와 하늘에 있는 존재의 우주론적 전망을 철저하게 옹호하고 방어한다. 호화로운 수식어와 더불어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은 그들에게 신학적 특권을 부여한다. 그들의 활력은 대단하다. 종교적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피와 땀뿐만 아니라, 내세에 이를 때까지 엄청난 헌금을 바친다. 헌금에는 만기라는 것도 없다. 추종자들에게는 사후가 철저하게 보장된다. 그래서인지 현실은 신학자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천국 성가대와 어울려 당신들 72인이 처녀를 부활시킬 것이다.”

>> 나는 카톨릭 신자다. ‘카톨릭이란 단어가 말해주듯인 보편적인 종교, 모든 것을 다 포용하며, 타종교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종교다. 내가 카톨릭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접싯물 깊이밖에 안되는 얕은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보편성이 띄는 포용성존중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가면을 쓰고 순진한 신자들을 농락하는 사이비 종교가 있음을 알기에 종교를 반박하는 것을 전혀 이해못하는바 아니나... 그들의 의견에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나가기 전에 그들은 과연 그들이 반박하는 종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연구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어떻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반박하며 저렇게 다구칠수 있는 건지. 그들의 용기가 참 부럽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또한 성경의 많은 말씀들은 비유임을 알지 못하는 그의 무지함.. 단순히 그들의 눈에 비쳐지고 보고싶지 않은 면들을 보았다해서 뭉뚱그려 밟아버리는 것. 그것은 과연 심리학자로서, 심리과학자로서 올바른 자세인가..?? 나는 결코 그런 치우침이 있는 심리학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기가 무서울것이다. 나약해진 상태의 내 심리를 어떤 길로 유도할지... 과학자의 입에서 이런 주장이 나왔다면 다소 이해가 갈수도 있었겠는데, 심리의 세계를 다루는 학자입에서 나온 주장이라 문뜩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가 말한 종교적 브랜드’.. 란 상업적 표현.. 그렇게 표현될수도 있구나.. 냉기가 도는 시니컬한.. 내게는 조금 놀라운 표현이었다...


P293 지금 여기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우리가 이 위험한 생각을 빨리 받아들일수록, 우리는 지구에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임무를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 여기가 존지하는 모든 것이다..라고 역설하는 것에 대한 이의는 없다.. 내게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고, 내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소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삶을 살라는 좋은 자극을 주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하는 힘을 느끼게되니.. ‘지금 내게 주어진 이순간을 치열히 살며 최선을 다하라로 받아들이면 그없이 더 좋은 표현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굳이 신을 부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달될수 있는 멧세지를 왜 그렇게 무모한 비유를 하며 강조를 하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수생각이 아닌 펌킨생각’ ^^)

P294 많은 학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결국엔 그들이 위험한 것으로 여길만한 생각이 있다. 그것은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많은 종교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결국엔 그들이 위험한 것으로 여길 만한 생각도 있다. 그것은 신이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 질서의 일부라는 생각이다.P301 나의 위험한 생각은 우리의 사고와 인식이 과학적 진보의 끝없는 하늘로 아무리 멀리 뛰어오른다고 해도, 그리고 이 진보의 효과가 아무리 눈부시다 해도, 신은 언제나 이를 악물고, 우리를 인도주의적 이상으로부터 내쫓으리라는 것이다. 난 솔직히 두렵다. 신이 다수를 변호하지 않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대부분 과학자들의 귀에서 신의 속삭임이 사라지는 날도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신은 관념도 아니고, 문화적인 발명품도 아니다. 신은 자연선택에 의하여 영원한 것이 되어버린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과학자로서 우리는 신을 침묵시키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은 더 분명하게 들으려고 우리의 귀를 잘라내는 것은 아닐까? 신 역시 생물학적 산물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할 떄까지, 우리가 이 지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양육할 때까지 신은 영원히 자기 불만을 큰소리로 외칠 것이다.


P302 과학이 인간과 인간의 의도(의지)를 우주 내의 부차적인 구성 요소로만 다루는 반면, 종교는 그것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과학은 죽음, 거짓고 기만, 갑작스런 불행, 고독과 사랑과 정의에 대한 동경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실존적 불안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과학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을 말해주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말해 줄 뿐이다. 종교는 번성한다. 사람들의 가장 깊은 감정적 열망과 사회가 기본적으로 바라는 도덕적 필요를 다루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가저이 줄어들고, 장기적이고 친밀한 환경으로부터 점점 분리되고 있는, 이 복잡하고 이동성이 활발한 사회에서도 더욱 그럴 것이다.

>> 그렇다. 스콧 아트란의 의견에 나는 적극 도의한다. 그의 표현대로 종교는 과학에 없는 희망이다.’


P313 나는 어린이를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것을 한번도 묵과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가 나의 인생에 무관하다는 것을 결코 믿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중요하지만, 배우자와의 관계또 똑같이 중요하다. 좋은 관계는 가자 상대에게 관심을 두고, 상대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서 기쁨을 얻는 관계이다. 좋은 관계는 한 사람의 중심 목표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바꾸는 것이 되는 관계가 아니다.


P315 내가 아는 가장 위험한 생가은 감성 지능이다.

>> ~!! 이건 또 뭔소리 토킹 어바웃~?? 궁금~궁금~


P315 인지 신경과학 혁명의 맥락에서 볼 때 심리학에서 감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주 유별난 것이다. 감성 지능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 감성 지능이 신경과학의 대사이라는 생각, 또 그것이 하나의 뇌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즉 두 개의 뇌 사이에 일어난다는 생각은 아주 유별나다.


P317 과학자들을 격려하여 위험한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게 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좋은 과학자란, 그 정의상, 모름지기 무엇에 대한 자기만의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좀처럼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어떤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생각을 고수하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사실 고집스러움과 반대로 생각하기는 과학 혹은 과학자를 위한 일조의 전제이자 용인 같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원하는 과학자는 하나도 없다. 과학자들은 항상 가상의 반대자를 세워놓고느 그들의 반대 논리를 가차 없이 깨부수기를 즐긴다. 만약 당신이 과학자들의 그런 태도를 비과학자들의 인습적인 지혜를 반대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면, 당신은 독특한 종류의 과학적인 자부심과 자신감의 비결을 얻게 될 것이다.

>> 과학자들이 교묘하게 숨겨놓은 지성을 가장한 교만한 성향을 적나라하게 군더더기없이 너무나도 속시원~~~~~하게 표현해놓아 정말 얼마나 신났더랬는지~


P317 과학자들이 도덕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떄, 오히려 과학자들은 그러한 생각에 주저하면서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사야 벌린이 지적한 것처럼, 서로 완전히 상충되는 선한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인간은 간단하고 명백한 해결책이 없는 갈등 상화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위대한 비극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진리와 도덕성이 서로 가치 경쟁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비극이지, 결코 자축할 일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에게는 겸손과 공감보다 자부심과 자신감이 더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바로 그 떄문에 겸손과 공감은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미덕이기도 하다.

>> 정말 오랜만에 겸손하고 정직한 과학자를 만난것 같다.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왔는지. 앨리슨 고프닉의 말처럼, 과학자들은 자부심과 자신감보다느 겸손과 공감이 앞서야 할 것이다. 교만과 거만,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오만한 과학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깨어있는 과학자가 우리와 함께한다는 사실은 무척 위로되고 안심되는 일이아. 얼마나 감사한지….


P319 미래에 관해서 결코 언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든 역사가의 불문율이다. 역사학은 지나간 사실만을 다루는 학문인데, 미래에는 그런 팩트가 있을 수 없기 떄문이다.P320 응용 역사가 잘못 활용되면 오히려 공공정책 입안을 마비시키고 역사학의 실천을 타락시킬 수도 있따. 그런 경우는 위험하다. 그러나 올바로 이용된다면, 의사 결정과 정책을 훨씬 더 정교하고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책 및 역사 연구가 더 높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P322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대하고 대우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설사 부족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의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나는 설익은 인류학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다.P323 어떤 것도 무보다 더 위험할 수 없다. 인류는 언제나 제로와 공허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았따.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둘을 부자연스럽고 비실재적인 것이라고 단언했다. 신학자들은 신이 최초로 한 행위가 무에서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공허를 몰아내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따, 중세의 사상가들은 제로와 기타 아라비아 숫자를 금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공은 우리 주위에 도처에 있다. 우주의 대부분은 공허이다. 우리가 난롯가에 모여 앉아 우주는 따뜻하고 충만하며 유혹적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낼 때, 무는 텅 빈 눈구멍으로 우리를 빤히 돌아본다.


P326 각 개인은 유일하다. 설사 그 유일함이 내적이고, 의식적인 자아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유전자와 밈, 환경이 특별하게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위험한 생각이 될 것이다. 당신은 내가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무의미한 우주에서 떠도는 밈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 난 이런 가설을 참 좋아한다. 언젠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가 한번 내뱉은 말은 사라지지않고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 그래서 어떤 기기(이름이 생각이 안난다)로 전 우주에 떠돌아 다니는 말들을 잡아내는 연구가 진행중이라는 글. 그렇게 되면 마틴 루터 킹의 연설도, 히틀러의 목소리도, 또한 과거의 성인들의 목소리나 말씀을 직접 들을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내용의 글. 정말 흥분되는 글이었다. 정말 그럴수 있다면. 일다는 우주에 떠돌아 다니는 말을 잡아내는 것도 넘 멋지고, 또한 과거의 유명했던,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분들의 강연을 직접 들을수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더랬다.

수잔 블랙모어가 비유한 내용과는 다른 것이지만, 이런 상상은 정말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것 같다.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런 날이 올까..?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P327 생각은 위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다운은 위험한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발명가와 혁신가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창조한 것들이 환경에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험한 생각들도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상가들은 치명적으로 위험한 생각들을 함부로 퍼뜨려서느 안 될 책임이 있다. 따라서 나는 아주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가을 안전한 방시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전에는 입을 봉할 것이다. P328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빠져 죽거나, 빠져 죽지 않을, 양자택일의 상태에 있다. 두 겨우 모두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나는 어떤 의미로, ‘빠져 죽는다. 익사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는가? 내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정보의 과포화 상태에 심리적으로 압도당하고, 제대로 맞서지 못하며, 그래서 결국 그것에 희생되리라는 것이다.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보의 범람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P331 미래에는 상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나는 우리 조상들이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흥미진진한 뜬소문이나 재산과 관련된 비밀 거래 같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들이 서로 같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따. 알아야 할 것도 많지 않았다.

>> 나는 이럴때면 늘 커피를 떠올리게 된다.. 전에는 블랙 커피와 밀크 커피로 내가 원하는 커피를 마실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많아진 커피의 가짓수.. 그나마도 그 많은 가짓수 안에서도 또 설탕을 넣겠느냐, 아니냐고 또 선택을 해야하는..그만큼 복잡해진 우리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보기좋은 예다. 그럼.우리 생활은 점점 더 편해지고 있는걸까..?? 아니면 더 복잡해지고 있는걸가..??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P334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위험을 끼칠 수 있는 생각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위험한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에게 위험이 미치는 생가에는 매혹되고 있다. 이것은 마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다.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은, 어떤 집단에서 표현이 강제로 금지된 생각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 생각을 드러내게 되면, 언제 어디서든, 말한 사람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생각의 부류가 있다는 말이다. 그 때의 위험은 인간 집단이 가진 본성 때문에 생긴다. 말로 해서는 안 되는 그러한 생각은 일종의 안티 밈이다. 밈은 흥미롭고 그것을 퍼뜨리는 사람에게 사회적 신용을 높여주기 때문에,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사회 속에서 밈의 전파 속도는 아주 빠르다. 하지만 말로 해서는 안 되느 생각은 안티 밈의 성격을 띠고 있어, 참되고 중요한 생가조차도, 전혀 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P337 위험한 생각? 당신이 원하는 게 위험한 생각인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놓는 위험한 생각들?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한 생각을 털어놓으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더 위험한 생각이므로, 위험한 생각의 목록에 올려야 하리라.

>> 하하하하하~ 왠지 한판의 KO를 터뜨린것 같은 느낌이었다. 맞다. 그야말로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이다~ 하하하하~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한 생각을 털어놓으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더 위험한 생각이므로 위험한 생가의 목록에 오려야 하리라. 하하하하~ 속 시원한 대답이었다~ 오우~ 증말 멋졌다~ ^^


P340 개미탑은 가각의 개미가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할 떄 설 수 있다. 각각의 개미는 사회적 행동이나 역할, 정해진 일을 완수한다.


P346 이 문제(비둘기의 귀소능력에 관한 문제) 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알려진 감각 양식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을 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복합 상호작용이론은 확실하고 세련된 것처럼 보인다. 애매하기 때문에 반박하기도 어렵다. 동물의 방향감각에는 새로운 과학 원리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 원리는 너무 애매해서 무엇이라고 딱 부러지게 확정할 수가 없기 떄문이다.

>> 루피드 셀트레이크의 표현 방법이 너무나도 웃겨서 배꼽을 잡았다. 그렇다. 때때로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무지 복잡한 이론들로 자신들의 사상을 표현하지만,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들떄가 있다. ‘저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고 있는걸까..??’ 하하하하~ ^^ 그런데 바로 이 루피드 셀트레이크가 너무나도 시니컬한 표현으로 내 간지러운 속을 긁어주었다.. ^^ 정말 복잡해서 세련된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은 너무 애매모호해서 반박도 쉽지않은, 뭐라 딱 부러지게 확정할수 없어 아주 위험한 논리들.. 정말 우리는 비둘기의 귀소방법뿐만이 아니라 참으로 많은 애매모호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애매모호한 세련됨, 뭔가 불분명해서 신비스럽고 멋있어 보이는하하하하하~ ^^


P350 감정입이란 ㅏㄷㅇ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민감해지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결국 집권하기 위해 적대자와 싸운”’적대자를 무찌른다라는 생각과 명백히 모순된다.


P350 감정이입하는 정치가는 아마 넬슨 만델라와 데 끌레르크 (남아공하국 대통령)을 본받을 것이다. 서로가 상대진영으로부터 테러리스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이비하려고 애쓰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런 행위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의 감정과 동일시함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 정말 우리가 본받아야할 리더의 모습이다. 책이나 영화에서나 나올것 같은 위인들이 내가 현재 숨을 쉬고 있는 이 순간 같은 하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때떄로 가슴벅찬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P364 나노 기술이 발전하면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생물학의 범위가 크게 확장될 것이다. 만약 혈액 세포 크기만 한 장치가 혈류 속에 들어가 치료를 수행하는 장면이 현실과 동떨어진 소설 속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나는 우리가 이것을 이미 동물을 대상으로 실현하고 있다느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P365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위험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더 현실적이다.

>> 이말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눈에 보이는 위험은 해결이 가능하다 그래서 위험스럽게 보이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은 정말 위험으로 느껴지기떄문에 우리에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P390 교육은 칭찬할 만한 것이지만,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도 교육을 통해서는 가르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스카 와일드 P391 하교는 어린이들이 관심이 있는 일을 배울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대체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은 흥미를 통해 배우게 된다. 어린이들의 학습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어린이들의 마음을 끌고, 어린이들로 하여금 가고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P301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결과, 우리는 어린이들의 타고난 기질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훈련시키느라 헛된 수고를 하고,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 몽테뉴

>> 무서웠다. 우리 애리와 리예가 갖고 태어난 강점기질을 무시하고 엉뚱한 것을 훈련시키느라 헛된 수고를 하고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고 있느 사람이 바로 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오싹하게 했다. 우리 애리와 리예가 가진 강점을 찾아내어 절대 이런 실수를 하는 일은 없어야하리라혼자 다짐하며 맹세까지 해본다


P391 교욱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생계를 꾸려가느 법을 가르치는 교육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 우리는 둘 다 가르쳐야 한다. – 존 애덤스 P392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교사를 기쁘게 하는 법을 배우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학생들을 양산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는 학창시절의 끔찍함이 떠오라 모든 배움을 회피하는 어른이 아니라, 배움을 사랑하는 어른들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든 어린이가 같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중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순한 용어 몇 가지로 복잡한 상화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어른이 아니라, 스스로 생가하는 힘을 가진 어른을 키워내야 한다.


P417 내가 내 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데, 어떻게 과학적인 업적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겠는가?

>> 이 구절을 읽는 순간 푸하하하하~” 웃음이 나오면서 일지매에 나왔던 미워할수 없는 역적 ~’이 생각났다. 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앵무새처럼 내뱉던 말 제 뜻이 그뜻이옵고, 제 말이 바로 그말이옵니다~” 나는 그가 이말을 할때마다 얼마나 배꼽을 잡았더랬느지..하하하하~

에른스트 퐈펠의 이 겸손한 고백을 들으면서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이거였다. “ 내 뜻이 그뜻이옵고, 내말이 바로 그말이옵니다~” 하하하하하~ ^^


P421 인류는 위험한 생각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하고 친밀한 것에 기대어 살아가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에 젖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이 생각들이 애초에느 충격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어제의 위험한 생각들이 오늘에는 정설이 되고, 내일은 진부한 것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렇게 ㅁ라하지 않았을까 아무도 그렇게 말한적이 없다면 내가 나서서라도 그렇게 말해야 하리라.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 서둘러서 그 말을 취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반화는 위태로운 비대치을 숨기고 있기 떄문이다. 뒤돌아보면 한떄 위험했던 생각들이 나중에 정설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위험한 생각들 모두가 결국은 방다들여질 가치가 있고, 받아들여져야만 한느 것은 아니다. 하나의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은 또한 올바르기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 역쉬~!! 도킨스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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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편안한 곡을 올려봤다..

위험한 생각들속에 파묻혀..

잔뜩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

마지막 그순간까지 희망이 우리와 함께 하리라는것을 우리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