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축제 1] 파커 팔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때'를 읽고..

pumpkinn 2008. 7. 13. 05:38

                                                                                     작성일: 2008년 6월 9일              

 

Parker J. Palmer는 시카고 교외의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맥스 팔머는 50년 동안 도자기 회사에서 일을 했고 나중에는 그 회사 사장이 된 사업가다. 하지만, 파커 팔머는 성장하는 동안 아버지로부터 삶의 깊고 큰 은총과 자비와 동정에 관한 것에 대해 배우기를 원했다. 파커의 아버지 맥스는 비록 파커가 자신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압력을 한 번도 주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미네소타의 칼튼 컬리지를 거쳐 파커는 목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뉴욕의 연합신학대학엘 들어가지만 곧 그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그것이 아님을 느끼고는 버클리 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는다. 당시 버클리는 그 당시 전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빛과 그늘이 함께 어우러져있는 혼돈 속에 있었는데, 그는 책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60년대의 버클리는 놀랄 만큼 빛과 그늘이 혼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많은 청년들이 그늘에 유혹당하기보다는 희망과 공동체 의식,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당시 사회환경에서 비롯된 빛의 이끌림을 받았다. (P37)  

 

버클리에 있는 동안 그는 가르치는 일을 매우 좋아하는 자신의 자질을 알게 되어 그의 삶의 중요한 자신의 의미를 주게 될 ‘가르침’에 대해 깨닫게 되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하지만, 또한 그곳에서의 경험은 파커가 대학에서 경력을 쌓는 것은 한낱 도피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주며 그를 떠나게 한다. 그리고 그는 워싱턴으로 건너가 커뮤니티의 조직자가 된다. 파커가 ‘소명’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바로 커뮤니티 조직자로 일하면서인데, 파커는 소명이야말로 한 사람이 진심을 다해 분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 역시 파커가 찾고 있던 삶이 아녔다.  무언가를 조직하는 일의 난폭성과 조직적인 과격함 속에  예민한 성격을 가진 파커는 참자아에 대한 자각보다는 도시 위기를 위해 일 해야 한다는 ‘의무’에 쫓기는 생활로 결국 그는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된다. 

 

나 자신의 한계와 능력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에고와 도덕관념에 나를 맡겨 내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끌려 간 것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들이 그를 ‘우울증’이란 어둠으로 이끌게 된다. 그 어둠을 통해 그는 자신을 만나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 깊은 여정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팬들힐’에서의 생활이다. 퀘이커 교도로서 펜들 힐에서의 공동체 생활은 그에게 삶이 무엇인지, 참 자아가 무엇인지, 내 참자아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소명은 어떻게 부여받는 것인지를 깊이 느끼고 깨닫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느끼고 배우고 깨우친 것을 훗날 사회에서 적용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바로 그의 책을 통해 세미나를 통해 우리에게 함께 나누는 것들이다.

 

우울증은 나를 안전한 땅,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땅 위로 내려서게 하는 친구의 손이었다.

 

파커의 고백은 자신의 깊고 깊은 어둠을 바닥까지 내려가 깊이 만나고 그 안에서 처절한 고통을 끌어안으며, 그 모든 것을 숭고하게 받아들이고 포용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그래서 경건하기까지 한 영혼의 울림으로 들린다.

‘소명’ 이란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갖고 있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에 우리는 ‘삶이 내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귀 기울이고 들음으로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것을 알아내야 한다고 파커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내 참 자아와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선생님들의 선생님’ ‘위대한 스승’’영성가’ 등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그는 지금까지도 교육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교육자들을 교육하며 우리에게 커뮤니티의 중요성, 소명 그리고 리더십과 영성에 대한 세미나와 경연을 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 ‘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비롯하여, 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필독서가 된 ‘가르칠 수 있는 용기’는 우리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외에 ‘낯선 사람과 함께하기’, ‘남들에게 비친 나의 모습 바로 알기’등이 있다. 

 

책을 읽으며,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유산을 남기는 것, 바로 파커 팔머의 삶이 그러지 않나 싶다. 물론 위대한 많은 분들이 그랬고 앞으로 많은 분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도 내게 주어진 삶 안에서 살며, 사랑하고, 또 배우고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유산을 남길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읽는 내내 가슴에 따뜻한 기운이 함께함을 느꼈다. 


 

 

 

1. 인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   2. 이제  자신이 되다

 

내가 ‘소명(Vocation)’에 대한 의문에 눈뜬 것은 삼십 대 초반의 일이다. 그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다. (P11)

 

파커 팔머처럼  ‘소명에 대한 의문에 눈이 떠져서’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텀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이 구절은 나에게 지난날의 기억을 또렷이 떠올려주었다.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보다 이해심 많고 착한 두 딸들, 이 불황기에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게.. 겉으로 보기엔 예쁜 그림인데..  그렇게 내 영혼은 텅 비어 오랜 시간을 방황 속에 헤매던 기억.

 

그럴 때면, 부끄럽게도 아직도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나는, 나의 텅 빈 영혼을 감당할 수가 없어 택시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빠울리스따 거리까지 가서는 그렇게 방황을 하고 다녔더랬다. 그렇게 지치도록 걸어 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면 또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그렇게 지난 몇 년을 방황했더랬다. 그렇게 내 삶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언젠가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가 아프도록 느낀 텅 빈 공허감은 내 삶 안에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무언가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쯤에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 ‘소명’에 대해 깊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정기적으로 내 이멜함에 전달되어오던 보보 님의 드림레터는 방향 잃은 내 삶에 방향을 보여주었다. 내 삶에 색깔을 입혀주었고, 죽은 감성에 호흡을 불어넣어주었다. 글 중에 쓰여있던 ‘구본형 선생님’의 ‘마흔세 살에 시작하다’에서 발췌된 한 구절은 모든 감성이 죽었다고 생각한 나를 꿈틀거리게 했고. 마흔세 살,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은 나이, 정확히 내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의 경계선에 서 있던 나는 용기가 생기고 조금씩 열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망이 생겼고 그날의 꿈틀거림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내가 찾아내고 알아낼 수 있다면, 나의 남은 삶을 그 소명을 위해 산다면 눈을 감는 그 순간에 나는 ‘후회감’이 아니라 ‘감사함’ ‘충만감’ 속에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임에. 나를 가슴 뛰게 할, 나는 아닌데 안 하고는 못 견딜 그런 소명은 무엇일까?  

 

되돌아보면 나는 얼마나 헛된 것에 노력을 했는지. 온전한 나 자신을 찾기에 앞서, 내가 그려놓은 이상형에 나를 꿰맞추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지. 내가 아닌 내가 되려고 노력하며 느꼈던 상실감, 비교감, 엉뚱한 경쟁심.. 그리고 낭패감.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지난날의 나는 그렇지 않았음에 그런 내 모습은 나를 당황하게 했고 더 나아가 자아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너무나도 아픈 고통이었다. 지난 시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나를 자꾸만 채찍질하며 궁지로 몰아넣었던 시간들.  하지만 정말 그런 모습은 내 안에 없었던 것일까?

 

 

 

어느 날 남편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하는 이렇게 말했다. 

 

"OO이 네안에는 분명 그런 모습이 있어. 하지만 네가 뚜렷한 목표 안에서 생활할 때는 네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온전히 몰입 속에 앞만 보았기에 미처 네가 못 느낀 거야. 지난날의 너를 봐봐. 하지만 지금은 네 모습은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니야. 그때의 모습은 당당하고 자신감 넘쳤지.  지금은 사소한 것에 매달려 너를 들끓게 하고 있어. 난 그때의 네 모습이 참 좋았다. 전처럼 목표를 가져봐." 

 

나의 아픈 곳을 콕 찌른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밤새 울었지만, 남편의 말은 나를 다시 한번 ‘지난날의 내가 어땠었나’  되돌아보게 했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당당했고 뭐든 열심였고, 자신감이 넘쳤었다. 하지만 이해심 많고 배려있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 그건 온실 안에서의 단순한 인간관계 속에 굳이 내가 부딪히며 견뎌야 하는 상황이 아녔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내 안에도 치졸함

이 있었고, 질투심이 있었고 경쟁심이 있었고, 더 나아가 뿌리가 깊도록 깊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그 몇 년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간디도 소심한 성격이라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의 목표인 ’ 평화적인 투쟁’이란 대의 앞에 그의 소심하고 날카로운 성격은 자연스레 한쪽으로 묻혔다 하지 않나.  내 삶의 분명하고 확실한 비전을 향해 달려간다면 온 사방으로 뻗쳐있는 안테나는 내 ‘목적과 비전’을 향해 한 곳으로 모아 지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하는 희망이 내 안에 싹트고 나는 무엇을 목표로 정해야 하는지, 내 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나는 방향 잃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소명을 찾아가는 여행’으로 인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의 안테나는 각 곳으로 주파수를 던지며 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과연 나의 타고난 모습대로 살아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의 타고난 본모습은 어떤 모습인 걸까? 나의 내면으로의 여행은 힘들기만 하다. 내가 하느님 앞에 서면 “왜 너는 안젤리카 답게 살지 못했느냐”라고 하시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지.  내게 선물로 주어진 ‘소명’은 무엇일까?

 


 

 

3. 길이 닫힐 때  &   4. 모든 길은 아래로 향한다.

 

길이 닫힐 때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하라. 길이 열릴 때 당신의 재능을 믿고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하라.’ (P58)

 

‘길이 닫힐 때’란 표현은 나를 오랜 시간 기억 속에 잠기게 했다. 아빠의 길이 닫혔을 때 우리는 이민을 떠나야 했고, 그 특수환경에서 나는 ‘수많은 길 닫힘’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나 혼자였을 때의 길 닫힘은 내게 왜려 자극이었고 동기유발이었다. 그리고, 오기를 부리며 내 목표까지 달려가게 하는 ‘행동 촉진제’였고 내 목표를 매 순간 기억케 해주는 ‘목표 상기 자극제’였다. 그래서 내가 넘치도록 가졌던 풍요로운 것 중에 아쉬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헝그리 정신’이다. 모든 것이 부족해서 고통스러웠던 상황.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풍요로운 삶이었다. 살아 꿈틀거리며며 나를 미치게 하는 꿈이 있었고, 열악한 환경에서 오는 부족함이 그 꿈을 더 선명하게 내게 인식시켜주고 내 정신에 각인시켜주었으니까. 

 

그러나 결혼해서의 ‘길 닫힘’은 내게 있어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왜냐면 나하나만의 꿈과 욕심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 거쳐야 할 수많은 상황들, 과정들, 그리고 내가 감수해야만 하는 많은 부분들이 지난날 불도저처럼 밀고 나가던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리고 점점 굴복되어갔다. 

 

굳이 변명을 늘어놓자면 아내는 남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란 나로서는 내 뜻이던 아니던 나를 포기해야만 했고, 그것은 그 후에 내가 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고통 속으로 몰아넣게 되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음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학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뜻을 따라 브라질에 왔을 때 겪었던 처음 몇 년의 생활은 내 삶이 끝나는 듯한 어둠 속의 생활이었다.

 

 그때 느꼈던 아픔은  ‘숨 쉬는 것조차 형벌’이라 느껴질 만큼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게 ‘역할’에 대한 깨우침을 안겨 주었고, 뿐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Shift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내로서의 책임보다는 나의 꿈을 먼저 내세웠던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던 나 자신.  ‘길 닫힘’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아직 어린 두 딸아이의 엄마로서  순간 우선순위에 올려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을 뜨게 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바로 그 이유가 지금은 하느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삶은 봉봉 초콜릿처럼 맛을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Surprise 투성이란다’라고 했던 영화 Forest Gump에서 그의 엄마의 말처럼 삶은 정말 그렇게 재밌는 일로 가득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고통스럽다고 헉헉대면서도 따뜻한 햇살 속에 느껴지는 행복감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게 되나 보다.

 

그리고 길이 닫히고 문이 닫혀 내가 등을 돌려야 했던 그 반대쪽에 있던 그 공간이 내게는 새로운 길이었고, 새로운 문이 내게 열려있던 것이었음을 알았다.  내 삶의 패러다임은 바뀌어 꼭 공부를 해야만 그 ‘무엇’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것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인제 고집부리기를 그만두고 남편의 사업을 도우며 점점 내 삶에 적응하며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그것에 내 열정을 쏟아부었다. 

 

어떤 특별한 재주도 없는 나는 다행히도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일단 배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그것이 내겐 또 다른 배움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고,  책 들고 공부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의 공부 또한 재밌었고, 내게 맡겨진 ‘매장’이라는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삶의 현장에서 나는 행복을 느껴가기 시작했다. 

 


 

5.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다    &    6.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제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P106)

 

그렇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약점도 나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넉넉함이 생겼다. 나는 내 안에 나쁜 점들은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해야 했지만,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더 깊은 나를 어둠의 고통으로 빠져들었고 내 안의 이중성을 없애기란 불가능한 것임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았다. 

 

왜냐면 나는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고 그것은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닌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인 것.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를 채찍질 하지 않고 내몰아 다구 치지 않으며 너그럽게 나 자신이 가진 약함과 강함, 양점과 재능, 그리고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나의 타고난 양면성을 포용할 줄 알게 되며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도 그때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실직이 내게 필요한 일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길 막혔음’이라는 표지 덕분에 내가 방향을 돌려 가야 할 길로 들어서게 되었음을, 회복 블능이라고 느꼈던 손실 덕분에 내가 진짜 알아야 할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을. 표면상으로는 인생이 작아지는 듯 보였지만, 언제나 소리 없이 그리고 풍부하게 새 생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P146)

 

얼마나 많은 ‘길 막혔음’이 있었나. 마치 내 인생은 길 막힌 도로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길 막혔음’ 표지는 내게 ‘오기’를 내게 했고 ‘도전’하게 했고, 그 ‘길 막혔음’ 이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강하게 하는 열에너지가 되었음을 어떻게 내가 부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좀 더 나이 들어서의 ‘길 막혔음’은 내게 내 역할에 충실하는 법을 배우게 했고, 내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내가 가겠다고 하는 길만이 길이 아님을,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해서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와졌음을 나는 부인할 수 있을까.? 절대로 부인할 수 없다. 지금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그 길에는 늘 그분이 함께하셨고, 나는 그분의 손길을 느꼈으며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던 은총의 시간이었다.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총이고 축복이었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때

 

C. 마음에 닿은 구절:

P11 내가 소명vocation’ 대한 의문에 눈뜬 것은 삼십대 초반의 일이다. 그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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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팔머처럼  소명에 대한 의문에 눈이 떠져서였던것은 아니지만, 그즈음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나의 영혼은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가족을 끔찍히도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보다 이해심 많고 착한 애리와 리예, 불황기에 손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게.. 겉으로보기엔 예쁜 그림인데.. 그렇게 영혼은 비어 방황속에 있었다.

부끄럽게도 아직도 운전을 할줄 모르는 나는, 나의 영혼을 감당할수가 없어 택시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빠울리스따 거리까지 가서는 방황을 하고 다녔더랬다. 그렇게 지치도록 걸어다니다가 집에 들어오면 눈물속에 잠이 들고.. 그렇게 방황을 했더랬다. 그렇게 삶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언젠가 눈을 감게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때쯤에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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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당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기울여라.” (중략)

젊은 시절 나는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 보아라.”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내가 상상할 있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내어 그것이 것이든 아니든 우격다짐으로 나의 인생에 꿰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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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 아니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내게는 우상 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닮고 싶은 우상. 고등학교때부터 대학때까지는 생의 한가운데   ‘니나였고, 결혼 후에는 조앤 였다. 그리고 지금은 우상이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닮고 싶은 민정 선생님이시다. 그렇게 어떤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도달하려 달리는. 물론 그것이 내게 배움으로의 자극을 준것은 좋은 것이었으나그들의 가면을 쓰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지.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그들 흉내내기에 바빴었다. 나는 나를 아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이것도 나인것 같고 저것도 나인것 같고, 또는 이것도 아닌것 같고 저것도 아닌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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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5 내가 믿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우리의 자아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함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부여된 강제의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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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문제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의 그럴듯한 가면을 위한 추구로 내자신에 대한 폭력인지, 아니면 그것이 내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추구인지, 그것조차 분간할줄 몰랐다는 것이다. 단지 그것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해서 그것이 내가 그렇게 이루어야만 하는건줄 알았다. .. 그래야 내가 그럴듯 보이고 내가 생각하기에 멋진 나로 느껴질것이기에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그렇게 해야하는줄 알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사회의 성공이 삶의 성공이라 생각하게 했던 교육을 받았기도 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많은 고생을 하시던 부모님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수 있는 길은 능력있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단호한 결심을 하게 했던것 같다. 특별한 재주가 없던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모든것을 해결해주는 방법이라 생각했던것은 그당시의 내겐 최선의 길로 보였던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였는지도 모르겠다. 내자신의 합리화일까..?? 암튼.. ‘소명이란건 지금까지 별로 생각해본적 었던터였다.. 그리고는.. 그렇게 나는 방황을 했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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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6 소명의 의미 이면에는 때로는 소명이 에고의 영역을 침범하기 때문에 에고가 소명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는 진실이 숨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상에서 의식하는 (에고)’와는 다른 인생을 가지고 있다. 타고난 그릇으로서의 살아가고자 하는 인생 말이다. 대대로 전해 오는 모든 지혜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나의 에고가 보호 마스크와 이기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로써 나를 정의하려는 방식과 나의 참자아의 실체 사이에는 바다를 사이에 것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P 20 영혼은 야생동물과 같아서 거칠고 활달하며 노련하고 자립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수줍음을 탄다. 야생동물을 보려면 숲에 들어갈 절대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오라고 불러대선 된다. 오히려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서 시간 정도 나무 밑에 앉아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그때 우리가 기다리던 동물이 모습이 나타내고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야생의 모습을 만날 있게 된다.

P 21 우리 인생의 의미를 헤아리도록 도와 주는 것은 언제나 침묵이다. 또한 말로는 결코 건드릴 수조차 없는 깊은 의미를 깨닫게 주는 것도 역시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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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침묵할줄 모르는 그렇게 시끄러운 생활속에 나를 묻고 있다. 왜려 훨씬 어렸을때 나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삶속에서 느끼려 했던것같다. 어린 시절 나의 정신세계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던 루이제 린저가 니나의 입을 통해 말했던 사람과 사람이 가까와지는데는 침묵속의 공감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표현을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더이상 침묵할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질 못하다. 시끄러움속에 갇혀 있는 . 이제는 사람과 가까와지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나와 가까와지기 위한 침묵, 가면을 쓰지않은 진짜 나를 알기 위한 침묵 배우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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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2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듣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어떤 목표가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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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내게 어떤 소명을 선물로 주신걸까?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와우팀을 통해 소명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자신을 알아감으로 내안에 숨겨져있는 선물이 어떤것인지 나는 알게 것이다. 그리고 소명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하느님 앞에 서는 그날 사도 바오로처럼 저는 갈길을 달렸습니다고백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것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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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4 사람이 본연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과정에서 자기 것이 아닌 남의 얼굴을 가면처럼 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면 깊은 곳의 정체성을 발견하기까지 우리의 에고는 얼마나 많이 녹아 내려야 하며 흔들림을 겪어야 하는가!

P 25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내가 깨달은 소명 개념은 왜곡된 것이었다. 소명이란 자신을 향해 외부에서부터 들려오는 도덕적인 요구의 목소리에서 시작된단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뭔가 지금의 자기 모습보다 훌륭하고 자신을 초월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을 그리고 있었다. (중략)

소명이란 성취해야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주어지는 선물이다. 소명의 발견이란 얻기 힘든 상을 바라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안에 가지고 있는 참자아의 보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P 26 하시디즘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백발이 성성한 랍비 주즈야의 말이다. “신은 내게 왜너는 주즈야답게 살지 못했느냐?”라고 물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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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책을 읽었을때 내게 가장 가슴에 깊이 박혔던 구절중의 하나다. 두번째 읽는 지금도 구절은 내게 감동 그자체로 많은 깨달음을 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면을 바꿔쓰며 투덜대었던 나였나... 나름 멋진 가면을 골라쓰면서도 내안의 참자아는 그것은 얼굴이 아니라고 귀뜸해주었고, 그것을 느낄때마다 이중성을 지닌 내자신이 얼마나 싫었고 용납이 안되었었나. 하느님은 내게 안젤리카, 너는 조앤 리처럼 살지 못했느냐라고 묻지 않으실것임에 얼굴엔 미소가 만연했지만, 순간너는 안젤리카답게 살지 못했느냐?”라고 물으신다 상상했을때, 과연 어떻게 사는게 나답게 사는 것인지, 막막해졌다. 어떨때는 가면이 아닌 본얼굴을 쓰고 있었음에도 그것이 내얼굴인지 가면인지 조차 모르는 나인데..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마치 망망대해에 떠있는 조각배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것은 와우라는 등대를 찾았기에 인제 내가 어느 곳을 가야하는지 앞으로 배워나갈것임에 나에겐 희망이 있고 기대에 열망이 솟음에 감사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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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8 우리는 인생의 전반부를 살면서 본래 타고난 재능이 있었음을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혹시라도 눈을 뜨고 깨달아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되면 나머지 후반의 인생을 바쳐 원래 갖고 있던 선물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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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모습.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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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2 모세가 되기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주즈야로 땅에 살고자 비로소 참된 소명을 발견할 있다. 소명에 대한 가장 깊은 질문은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아니다. 더욱 본질적이며 어려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타고난 본성은 무엇인가? 이다.

P 33 우리의 가장 깊은 소명은  그것이 우리가 되고자 하는어떤 이미지에 맞든 맞든 자기의 진정한 자아를 향해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기쁨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진정 우리가 길을 발견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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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파커가 우려하는대로 소명 목표 혼돈했었다. 그리고 내가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든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이든 그곳에는 남들 보기에그럴듯한 포장으로 싸여있었고 그리고 그런 멋진 포장으로 치장 해놓은 나를 상상하면서 나름 흐뭇해하곤 했는데, 바로 그것이 영혼을 고통스런 방황으로 이끌었음은 깊은 홍역을 치루고 난후에야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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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3 진정한 소명은 자아self 봉사service 하나로 결합한다. 프레더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한 있다. 뷰크너의 정의는 소명이란 자아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요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현명하게도 소명의 시작 지점을 제대로 것이다. 소명의 시작은 세상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본성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자아에게 신이 창조한 선물로 땅에 태어났음 꺠닫는 크나큰 기쁨을 안겨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P 35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세월 엉뚱한 곳을 헤매는 여행을 하고 나서야 자아와 소명의 개념에 눈을 뜬다. 하지만 여행은 아무 걱정 없는 패키지 여행 상품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옛날의 고난과 어둠, 위험이 가득한 성지 여행이나 순례 여행과 흡사하다.

P 44 내가 팬들 힐에 가기를, 그곳에 있기를, 그곳에 살기를 원했느냐고’? 그렇다고 말할수는 없다. 분명한 팬들 힐의 경험은 내가 하지 않을 없는어떤 일이었다.(중략) 마음 깊은 곳의 소명은 이렇게 말하는 아니라, ‘이건 내가 하지 않을 없는 일이야. 남에게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자신도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동기 유발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은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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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깊은 깨달음을 주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점점 파커 할아버지 좋아지기 시작했다. 깊은 감성속에 파고드는 파커. 이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다. 대학때 스타인백에 대해 공부하며 그의 작품 ‘Travel with Charlie’ 대해 함께 나누는 , 설명중에 교수님이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을때, 순간 나도 모르게 알수 없는 치밀어오르는 슬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많은 책을 읽었던건 아니지만, 한권의 책을 읽었어도 내안에 그가 그렇게 깊이 자리하기에는 충분했던 것이었다파커의 책을 읽으며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그만큼 그는 아빠처럼 내안에 가득했기 때문.

나도 남에게 이유를 설명도 할수 없고 자신도 이해가 안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하만 하는 . 그런 욕구와 열정이 내안에 자꾸만 솟구쳐 해야만 하는 무엇을 알아내고 싶다. 그것을 발견하는 , 그것을 느끼는 나는 내게 선물로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게 됨에 기쁨의 눈물속에 성실함으로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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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6 건물에서 뛰쳐나온 나는 숲속으로 들어가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순간이 소명을 향한 여행의 핵심이 어둠으로의 추락, 나중에 다시 언급하게 병적 우울증에 빠져 바닥까지 떨어지는 추락을 촉발한 같다. 아무튼 순간에는 내가 배워야 , 그리고 어둠에 빠져 봐야만 배울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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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으로 추락하게된 이유야 달랐지만 아마 내가 느꼈던 느낌이 바로 파커의 그것과 같지 않았을까? 때늦은 유학생활. 내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던 치열하고 때때로 처절했지만, 내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던 생동감있는 유학 생활. 그것을 접고 남편의 꿈을 위해 브라질에 오며 포기해야만 했던 나의 . 바쁜 일상속에 꿈은 묻혀갔지만 우연히 보게된 죽은 시인의 사회 보며 그들의 삶에 대한 열정과 캠퍼스 라이프는 내게 잊혀진 공부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게 했고, 어쩌면 의미없는 삶으로 장삿꾼’(사업은 내꿈이 아녔으므로) 으로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아 상실감으로 이어져 나를 첫번째 우울증으로 몰고 갔다. 비록 나중에는 그것이 엄마 아내 위치를 망각했던 이기적인 발상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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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6  내가 도망친 진짜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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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삶을 살아오면서 많은 부분 치열함 속에 당당히 부딪히기도 했고, 또한 상당 부분 도망치기도 했다. 당시 여러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들며 나를 합리화했지만 그것은 바로 두려움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교묘하게 숨겨놓고 있었지만, 파커의 고백이 나를 그것을 인정하게 했다. 처음의 목표를 향해 당당하게 성취했을때, 그때는 행복하고 우쭐하며 기분 좋았지만, 다음을 두려워했다. 나를 인정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기대치에 못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나는 항상 빛날때 자리를 떠났던것 같다. 대학을 옮길때는 그런 용기를 내는 내가 특별해보이는 같았고, 직장을 옮길때는 조앤 여사 흉내를 내며. ‘모든 것이 익숙해졌을때가 그만둘때야..’하면서 그렇게 멋있는 하면서 그만두었더랬다하지만 깊은 바닥에는 한가지 얼굴 두려움때문이었다. 기대에 못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랬을경우 스스로에게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내게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다. 나의 한계를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뒤에 닫히는 문을 맞닥뜨리는 용기를 내기보다는 나는 할수 있었지만 내가 안한거였어..’하며 비겁한 가능성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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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9 문제가 저쪽 바깥뿐만 아니라 여기 내면 이음을 알고 나면 해결책은 분명하다. (중략) 어떤 문제가 생겨도 자신 외에 아무도 탓하지 않으며 내가 소명이라고 믿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지 않을 없다.

여기 참자아와 소명을 발견할 있는 단서가 하나 있다. 사람들과 상황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 부정적인 예측을 모두 거두워들이는 것이다. 그런 예측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는 쓰인다.

P 50 하지만 내가 거센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깨달은 대로, 그런 그들의 재능이 내게는 없으며 그렇다고 나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내가 누구인지, 세상과 올바르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진실이자, 진정한 소명을 향한 생태학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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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포근하고 멋진 표현인지. 깊은 고뇌와 성찰을 통해 발견된 나의 한계를 따뜻하게 품어안는 모습. 나에게는 그런 지혜가 지금까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있다는건 아니다. 하지만..다른 것은 인제는 보고싶지 않은 나의 모습도 받아들일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슈퍼맨, 원더 우먼도, 요술쟁이 세리도 아니면서 나는 모든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내게 능력 발휘를 요구하는 부탁을 해오면 상황에 따른 ‘No’라면 모르지만, 그것이 아닌 능력이 안되어 ‘ I can’t do it’ 표현하는 것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었고 죽는것만큼 싫었다. 언제나 그랬던건 아니지만 때때로 모름 포장하기위해 뒤에서 밤새 공부하며 눈가림을 하곤 했다.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않았던 또다른 어둠속의 내얼굴... 나를 찾고싶어 떠나는 여정에서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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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2 이상 분리되지 않는삶을 것을 결심한다. 이상 내면에 깊이 간직한 진실과 상반되는 외면의 방식을 가장하며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진정한 자아를 주장하며 그것을 표출하며 것을 결심한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은 사회 변혁의 파문을 일으킨다. 수백만 명의 자아를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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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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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5내가 사십 넘게 스스로를 가두었던 감옥 비하면, 돌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당신네 감옥이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나는 이제 인종차별이라는 제도를 거부함으로써 감옥에서 빠져 나온걸요.” 참자아를 주장하다가 받는 처벌이 아무리 호되다 해도, 참자아를 주장하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내리는 처벌보다는 견디기 쉽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남이 주는 어떤 보상도 자기 스스로의 빛을 밝히며 살아가는 데서 얻어지는 보상만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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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가둬버린 감옥. 결혼전 나는 스스로 정해놓은 수많은 규율들로 나를 창살없는 감옥에 가둬 놓았더랬다. 한참 예민한 시기에 이민을 갔던 나는 이민사회라는 특수환경으로 모든 행동들이 마치 보이지 않는 ‘Big Brother’ 의해 감지되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스스로의 행동에 많은 제약을 두었더랬다. 나는 좋은 부모밑에서 제대로된 가정교육 받은 양가집 규수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만든 엄격한 규율속에 나를 가두는 생활은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이어졌던것 같다. 미국으로의 유학은 (물론 선명한 목표와 꿈이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자유롭고 싶은, 해방되고 싶은마음이 적지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인정하려들지 않았았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랬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떠나 혼자있는 나를 자유로와지지 않았다. 왜려 나를 더욱 많은 규율속에 가둬버렸다. 행여라도 엄마 아빠없이 혼자 있는 여학생. 작은 실수로라도 흠잡히게 될까봐. 언제나 그렇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나를 보호했다. 엄마 아빠를 결코 실망시켜드릴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아래가만 생각해보면, 어쩌면 스스로 만들어놓은 규율속에 그안에서 보호받음을 느꼈고 나름 자유를 느꼈는지 모르겠다. 행동에 제약은 있었을지 모르나 양심의 자유를 느끼며 스스로 만족해했던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규율이란 것에 스스로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그안에서 안정감을 느꼈던건지도 모르겠다. 암튼..나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내가 만든 브라더를 등에 업고 그렇게 군대생활을 하듯 보냈다. 결국 그로인해 풍요로울수 있었던 관게속의 행복을 나는 많이 잃을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  ‘ 나를 놓아줄수도 었는데... 내게 주어진 자유를 누릴수도 있었는데... ‘ 아쉬움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나, 당시의 나에게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던 삶의 선택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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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7  어떤 여정은 곧은 직선으로 뻗어 있고 어떤 여정은 빙빙 애두르는 길이다. 어떤 여행은 영웅적이고 어떤 여행은 두려움과 혼란 투성이다. 하지만 모든 여행은 정직하게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의 진정한 기쁨이 세상의 절실한 요구를 만나는 어떤 지점으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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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삶의 여정은 곧은 직선이 아니고 빙빙 애둘린 여정이었다. 내가 진정 공부하고 싶은(좋아할수 있는) 전공 과목을 알기까지 나는 3번이나 대학을 바꿔야 했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대륙을 세번을 돌고서 브라질까지 와야만 했다. 물론 그것이 내게 있어서 시간 낭비 결코 아녔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헤매는 시간을 줄일수 있었고 꿈을 이룸에서 오는 성취감 또한 느끼는 기쁨을 맛보았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이 깨어있었더라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그런 한번의 힘든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슬픈 일은 그렇게 삶이 빙빙 애둘러오며 여러가지 깨우침의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안에서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할수 있고 내안에 숨겨진 나의 달란트를 여전히 모른다는 것이다. 이젠 전공 아닌 삶의 소명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내게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 몰라 이러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그리 행복하게 느껴지는 일은 아니다. 아니. 매우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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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8 길이 닫힐때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하라. 길이 열릴 당신의 재능을 믿고 인생의 가능성에 화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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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닫힐때, 그러니까 학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뜻을 따라 브라질에 왔을때 겪었던 처음 몇년의 고통은 내게 있어 삶이 끝나는듯한 어둠속의 생활이었으나, 그것은 결국  내게 역할 대한 깨우침을 주었고, 또한 내게 주어진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수 있도록 나의 패러다임을 Shift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내로서의 책임보다는 나의 꿈을 먼저 내세웠던 지독히도 이기적이었던 내자신.  ‘길닫힘 한남자의 아내로서, 두딸아이의 엄마로서 우선순위에 올려져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뜨게 했다. 아이러니컬한것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했던 바로 그이유가 지금은 하느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래서그래서 삶은 봉봉 쵸콜렛처럼 맛을 보기전에는 알수없는 Surprise 투성이란다라고 영화Forest Gump에서 그의 엄마의 말처럼 삶은 정말 그렇게 재밌는 일로 가득한것 같다. -----------------------------------------------------------------------------------------------------------------------------

P 61  ‘믿음은 갖고 있어.’ 나는 혼자 생각했다. ‘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는 거지.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서 중년에 접어들 텐데, 나는 아직도 소명의 길을 찾지 못했어. 이제까지 내앞에 열렸던 길은 모두 잘못된 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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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푸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누가 모르나? 언젠가 열릴거야 나두 알고 있지. 문제는 그때까지 기달릴 시간이 없다는거지.’  바로 그거였다. 어쩌면 그리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가 했는지. 우리 둘이 통하는게 많은것 같다. 흠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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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62 인생에 일어나지 않은 , 그리고 일어날 없는 일들이 일어날 있는 , 일어난 일보다도 많은 것을 알려 주는 길잡이가 수도 있는 것이다.

P 72 세상에는 그렇게 되어야 의무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능력 밖의 일인 경우가 있는 법이다. 만약 내가 본연의 나와 상관없는 어떤 훌륭한 일을 하려고 하면, 한동안은 남에게나 나에게 근사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결국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맞는다. 자신과, 남을, 우리의 관계를 왜곡시키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좋은일을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해악을 끼치고 것이다. 내가 나의 본성. 관계의 본성이 아닌 어떤 일을 하려고 덤빈다면, 순간 나의 뒤에서 길이 닫힐 것이다.

P 75 내가 가지고 있지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다면 나는 잘못되고 위험한 선물,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돌보기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내세우려는 필요에서 나온 선물이다. 그런 베풂에는 사랑도 믿음도 없으며, 사랑의 전달 통로는 말고는 없다는 오만과 착각에서 나온 것이다.

P 75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는 소위 탈진이라는 상태이다. 대개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는 데서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나오는 결과이다. 탈진은 분명 공허함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주는 데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주려고 해도 아무 것도 없음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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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까지, 그러니까 보보의 드림레터 내머리를 호되게 후려치기전까지, 나는 영혼의 탈진 상태에 빠져있었다. 카톨릭 신앙의 근본인 사랑이 내안에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내안에 내자신을 위로할수조차도 없는 주체할수 없는 사랑의 고갈상태에 빠져있는 내가, 단지 신앙인이라고 해서 내가 갖고 있지않은 사랑 사랑의 계명아래 의무로 줘야했음은 나를 더욱 심한 고갈 상태로 몰고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사랑이 많은 ~’ ‘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사는 ~’ 하면서 점점  ‘척척박사 되어갔고, 그것은 나를 깊고 깊은 탈진 상태로 몰아 넣었던 그때의 생활이 . 파커 할아버지의 탈진 대한 정의는 너무나도 명확하고 분명해서 ! 내가 바로 그랬던거야~’ 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깨달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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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7 신은 단지 우리가 창조된 본성, 즉 우리의 능력과 한계를 그대로 존중하기를 요구한다. 우리가 그렇지 않은 삶을 살려 할 때 현실의 힘이 우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신이 우리를 인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바로 우리 등 뒤에서 길이 닫히는 것이다. (중략) 신은 도덕보다는 현실의 근원, 되어야 하는어떤 모습이 아니라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의 근원이다.

P 78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출애굽기 3:14)” 모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신은 도덕 규범이 아닌 본질적인 존재 isness’ 와 자아에 가까운 본이었던 것이다. 내가 믿는 바대로 우리가 신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면 우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우리 역시 똑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함으로써 신과 함께 산다. 본성이 아닌 것을 따르는 사람은 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현실의 실체는 신께 속한 것이니, 거스르지 말고 그대로 존중하며 따를 일이다.

P 80 하지만 이런 약점이 내 강점의 대가라는 걸 이해하고 나면 새로운 해방의 기운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나는 더 이상 내 약점을고치려고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와 함께 춤추고 싶어하지 않을 때는 솔로로 춤추는 법을 배운다. 왜냐하면 자칫 그것은 내 재능을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나와 춤추기를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더 품위 있게 대응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내한계를 그들 탓으로 돌리는 대신 나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이다.

P 81 문이 열리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나는 계속 닫힌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 걱정에 가려 숨겨진 비밀을 보지 못할 뻔 했다.

P 81 등 뒤에서 길이 닫힐 때 단지 그것을 어떤 전략상의 실수에서 빕어진 결과로 치부해 버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내가 더 똑똑했더라면, 내가 더 강했더라면 문이 그렇게 쾅 닫혀 버리지 않았을 텐데, 그러니까 내가 더 노력하면 닫힌 문을 쳐부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것은 위험한 유혹이다. 길이 닫히는 것에서 어떤 안내를 얻지 못하고 계속 저항한다면 내 본성에 있는 한계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가 타고난 재능을 무시하는 것이며 참자아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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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 아니 이해가 안간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내 경험과 지식을 혼돈상태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파커가 말한내뒤에서 문이 닫힐 때란 물론최선을 다한후 문이 닫혔을 때를 의미하는 거겠지만, 이따금 나는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에 의문을 가질때가 있다. 정말 마지막 0.0001% 까지 나는 나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는가. 한점의 의혹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수 있는건지. 물론 학생때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좀 복잡하다. 물론 최선을 다한 상황에서도 기대한 결과과 나오지 않았을때는 그것을 그냥 삶의 한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늘다른 방법이 있었을건데하는 아쉬움. 그리고 때때로 그 다른 방법으로 나는 다른 길을 찾았던 것도 부인할수 없다. 그리고 또 끝까지 그것에 매달리다가 실망과 고통을 더 크게 만든적이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암튼.. 받아들임과 다시한번 밀고 나가는 것의 경계선은 어디쯤인건지. 우리가 배워온 칠전팔기는 참자아를 거스르는 방법이란 뜻이었나? 조금 혼돈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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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82 내 눈앞에서 쾅 닫혀 버리는 문들 때문에 고민하던 그 자리가 바로 나의 세계가 활짝 열리는 자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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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내가 내 꿈을 잃다고 몸부림치며 반항하던 바로 그자리가 내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임을 홍역을 깊게 알고 난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후 내꿈에 대한 열정은 사업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내가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울 제쳐놓으면서까지 이뤄야할만큼 정말 그렇게 나의 꿈이 진정 내 삶에 의미를 주는것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만약 그런것이 아니라 그저 내 생각에 멋있어보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어떤 허상을 쫓아다녔던건 아니었던건지 나는 다시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보며. 결국 내가 공부를 계속해야한다고 고집 부렸던 그 진정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무런 특별한 재주가 없던 나였기에 기껏 내선에서 할줄 아는것은 공부였고 그것은 공부=안정된 생활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마존을 지키겠다는 원대한 꿈도, 독수리 5형제가 되어 세계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원대한 꿈은 아니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한다는 엄마로서의 책임감은 엉뚱한곳에서 길을 내겠다고 난리였던 것이다. 아무런 재주도 능력도 없는 나는 전공이라도 있어야 행여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을 책임질수 있느 대비가 될수 있었던것. 불안감이 그토록 나를 공부라는 것에 매달리게 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주저할것인가..? 단지 학교가게라는 다른 얼굴로 변했고 바로 싫다고 반항하며 얼굴을 돌리고 있던 그 장소가 인제는 내삶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바로 새로운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었음을 그제야 알게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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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90 겸손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서 있어도 안전하고 넘어져도 괜찮은 땅이다. 겸손은 그 안에서 더 확고하고 충만한 자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P 91 우울증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것이 수동적인 행동이거나 포기는 아니다. 낯설어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의 힘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다림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귀 기울이는 것, 고통을 겪어내는 것,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가능한 대로 자기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P 100  오랫동안 그런 해야 하는 것들이 내 인생의 추진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상에 나를 맞추지 못하자 나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믿지 못할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P 101 우울증은 나를 안전한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빛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위로 내려서게 하는 친구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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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울증을 통해 고상한척~ 우아하게 남의 것을 내것인양 쓰고 있던 나의 가면은 급기야는 벗겨졌고, 그안에는 비겁함의 얼굴, 치졸함의 얼굴, 이기심의 얼굴, 시기심의 얼굴이 있었음에 충격이었고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내자신 절대 용납할수 없었다. 절대로 그얼굴이 내얼굴이라고 받아들일수 없었다.하지만 그것이 내얼굴이었음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너무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죽고싶었다. 하지만 상처는 시간과 함께 아무는 법. 나는 그런 내 본모습을 인정하게 됨으로 인해 받아들임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고, 불면에서 해방되어 편히 잠들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덤으로 주어진 선물은 전에는 절대로 이해못해하는 남들의 많은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왜냐면 내자신도 그들이 갖고 있는 절대로 이해못하는그 부분을 갖고 있었으니까. 이 또한 얼마나 이기적인 모습인건지. 내가 안그럴땐 이해 못하고, 인제 내가 그러니 이해 되고. 스스로에게 비웃음이 나오는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남들을 그들의 눈으로 바라볼줄 아는 넉넉함이 생긴것은 고통을 통한 성숙이었고, 그건 내가 감사해야 할 부분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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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03참자아는 우리를 우쭐거리게 부풀리고 싶어하거나, 또 다른 형태인 자기 왜곡으로 우리를 위축시키고 싶어하는 에고가 아니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허공을 떠돌고 싶어하는 지성도 아니며, 추상적인 규범에 따라 살기를 바라는 도덕적 자아도 아니다. 그것은 신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할 때 우리 안에 심어 놓은 바로 그 자아이다. 그 자아는 우리게에 더도 덜도 원하는 것이 없다. 우리가 타고난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참자아는 참된 친구이다. 그 우정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일 뿐이다.

P 104 땅 밑 세계는 위험하지만 우울증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고 가 잠재적인 생명을 준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아란 분뤼되거나 특별하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선과 악, 어둠과 빛의 혼합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인간다운 정을 나눌 수 있게 한다.

P 105  겸손에 이르는 길은 모든 가식과 방어력을 읽고 낮아지고 힘없는 상황, 스스로 기만당한 느낌과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느낌만 남은 상태에서 겸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겸손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낮아진 부식토에서 땅 위로 다시 자라나게 한다. 겸손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이끈다. 그곳 서 있어도 안전하고 넘어져도 괜찮은 땅이다. 결국 겸손은 그 안에서 더 확고하고 충만한 자아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P 106 이제 나는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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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이제 자신의 약점도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일줄 아는 넉넉함이 생겼다. 나는 내안에 나쁜 점들은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들을 바꾸기 위해 힘든 노력을 해야했지만,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깊은 나를 어둠의 고통으로 빠져들었고 내안의 이중성을 없애기란 불가능한 것임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았다. 왜냐면 나는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고 그것은 내가 나쁜 사람 아닌 정상인것임을 깨우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나를 채짹질하지 않으며 너그럽게 나자신이 가진 약함과 강함, 양점과 재능, 그리고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나의 타고난 양면성을 포용할줄 알게되며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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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10내적 여행을 계속 하라. 에고를 지나쳐 참자아에 이르라, 그러면 자아도취에 빠져 헤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따르는 책임감을 좀더 늠름하게 간직한 채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P 113 우리 내면에는 의식의 아르키메데스의 지점이 있다. 내적인 어떤 부분을 누르면 우리를 짓누르던 거대한 돌덩이를 들어올릴 수 있는 지렛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변화를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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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의식의 아르키메데스의 지점은 어디쯤일까? 나의 어떤 부분을 누르면 거대한 돌덩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지렛대가 생겨나고 그래서 내가 변화되고 결국엔 내 삶이 획기적으로 변하게 될까? 나는 꼭 찾아 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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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24 왜 사람들은 위압적이고 험난한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려 하느냐고? 왜냐하면 자기가 처한 내적인 상황에서 빠져 나올 방법이 그것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안으로, 아래로 향하는 영ㅈ적 여행길의 과정 속에 있다.

P 128 내적 여행의 과정에서 ㅇ우리가 받는 선물은 세상은 영원히 함께 작용함을 깨닫는 통찰력이다.

P 130 내적 여행에서 우리는 혼돈이 창조성의 전조라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모든 창조 신화에 있듯이 인생도 무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창조된 것도 때때로 혼돈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욱 생기 있는 형태로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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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 창조성의 전조라는 글귀를 읽으니 몇달전 보좌신부님께서 언어 연수 떠나시기전 마지막으로 주신 강론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땅은 비온뒤에 더욱 굳어진다는 사실을. 하지만 굳어지기전에 거쳐야하는 과정은 발로 진흙탕이라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집니다. 진정한 행복과 성숙되어짐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는 고뇌와 고통속에서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혼돈 상태에서 힘들어하지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 진흙탕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 계실때 힘들어하며 고통속에 계시지 마시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잘 견디어 낼때, 우리는 굳은 마른땅처럼 더욱 강해지고, 더욱 단련되어지고, 더욱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비온뒤의 굳은 마른땅 이야기는 수없이 여러가지 버젼으로 많이 들었지만 이런 비유는 처음이었고, 몇달전까지 나역시 진흙탕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안에서 뒹굴고 있었기에 그 말씀이 내게 그대로 와닿았다. 그럼 지금 난 완전히 마른땅이 되었을까? 단단하게 굳어진 마른땅이 되었을까? 아직 눅눅하고 축축하니 완전히 마르지 않은 진흙땅이 곳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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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5 이런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은, 관계를 맺되 그 안에서 서로 혼자일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역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남을 구하려 들 때 흔히 범하는 무의식적인 폭력을 피해야 한다. 그 신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지탱하도록 돕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을 채워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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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으로 공감되는 표현이다. 관계속에 서로의 거리를 존중하면서 함께 있되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서 어우러지는 관계. 사랑이 순수한 그 사랑의 의미를 지닌채 유지될수 있는 관계는 바로 이런 거리의 존중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어쩌면 내가 누구에게 간섭받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고 나역시 남을 간섭하는것을 좋아하지않고 혼자 있음에 느끼는 자유를 사랑하기때문에 그렇게 느껴왔는지도 모르겠다. 좋다고 맨날 만나며 어느 순간 서로에게 얽메어지는 관계보다는 자주는 아녀도 어쩌다 만나며서 만남의 기쁨이 느껴지는 그런 관계가 좋다. 남들이 보는 무척 사교적인 성향을 지닌 나의 진짜 모습과는 달리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안에서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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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41 비유는 물론 문학적 산물 이상의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긴 하지만 자기 인생의 경험을 애기하는 데 비유를 사용한다. 이런 개인적 비유는 단순한 현실 묘사 이상의 작용을 한다. 우리가 가진 가장 생생한 능력중의 하나인 상상력을 발휘하면 비유는 곧잘 현실이 되며 언어에서 우리 생활속에 살아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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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말의 중요성은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말의 힘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바로 내 자신의 경험으로 느끼며 말을 더욱 조심히 하게됨을 느낀다. 특히 한창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써 이 자성에언의 중요성은 늘 가슴에 새기며 아이들의 아름답게 피어날 성향을 죽이게 될지도 모르는 무서운 행동을 행여라도 무의식적으로 하게되지 않기를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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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46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도 그때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인다. 실직이 내게 필요한 일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길 막혔음이라는 표지 덕분에 내가 방향을 돌려 가야 할 길로 들어서게 되었음을, 회복 블능이라고 느꼈던 손실 덕분에 내가 진짜 알아야 할 의미를 깨닫게 되었음을. 표면상으로는 인생이 작아지는 듯 보였지만, 언제나 소리 없이 그리고 풍부하게 새생명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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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게도 얼마나 많은 길 막혔음이 있었나. 마치 내 인생은 길 막힌 도로로 연결되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길 막혔음표지는 내게 오기를 내게 했고 도전하게 했고, 길 막혔음이 새로운 길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강하게 하는 열에너지가 되었음을 어떻게 내가 부인할수 있을까. 그리고 좀 더 나이 들어서의 길 막혔음은 내게 내 역할에 충실하는 법을 배우게 했고, 내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내가 가겠다고 하는 길만이 길이 아님을,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그럼으로해서 내 삶이 좀 더 풍요로와졌음을 나는 부인할수 있을까..?? 절대로 부인할수 없다. 지금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그 길에는 늘 그분이 함께하셨고, 나는 그분의 손길을 느꼈으며 그분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수 있었던은총의 시간이었다. 어느 성인의 말씀처럼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총이고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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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50 “겨울 속으로 뛰어들어가지 않으면 겨울 때문에 미쳐버릴 겁니다.”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움 속으로 대담하게 들어서기 전까지는 그 두려움이 우리 인생을 지배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안으로 똑바로 걸어 들어가면 우정이나 내적 훈련, 또는 영적 인도라는 따뜻한 보호장구를 껴입고 동상에 걸리지 않은 채 그들이 전해 주는 가름침을 배울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계절의 순환이 믿을 만한 것이며 생명을 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발견한다.

P 152 선물을 받았을 때 그것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은 움켜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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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읽으며 얼마나 가슴이 뜨끔했더랬는지. 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런데 예외인 2가지. 그것은 내가 샀건 선물로 받았건 아직까지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것은 바로 책과 음악 CD이다. 결혼한지 15년이 지난 지금 역시도 남편이 내 책이나 CD를 빌려(?) 갈때는 내게 물어보고 가져간다. 안그러면 뒷감당이 안되니까. 해서 서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각자 한권씩 가지고 있다. 그렇게 책꽂이에 같은 제목의 책들이 꽂혀있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온다. 특히 스티븐 코비 박사의 책 씨리즈는 영락없이 두권씩 보인다. 암튼 그렇게 유별나게 구는 나를 이해해주는 남편이 고맙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 함을 안다. 책과 CD는 내게 있어 단순한 ‘CD’가 아니라, 배고팠던 학창시절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었고, 나와 함께 했던 그들이라 나는 아직도 강한 집착을 버리지못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건 와우팀과의 여정중에 집착에서 벗어나는 연습은 내겐 또 하나의 축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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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내면의 여행으로 데려가준...고마운 파커 할아버지... 그분께..China Roses를 선물한다.. 

Enya의 China Ro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