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미사를 가기 위해 조금 일찍 나섰다.
미사 전에 고백 성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착하니 벌써 내 앞에 세 분이 계셨다
“이상하게 여기만 앉으면 많이 떨려...”
옆에 앉아 계시던 데레사 언니 말씀을 듣고는
‘나만 그런거 아니구나’
위로가 느껴졌다. ^^
조금 후, 언니가 고백실로 들어가시고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며 고백할 죄를 다시 잊을 새라 복습(?) 열공~^^;;
드디어 내차례.
열심히(?) 복습한대로 말씀드리면 되는 거였다.
오늘 내가 고백하고자 했던 죄는 3가지였다.
1번
2번
3번
순서에 맞추어 나의 고백 성사는 시작되었다.
1번을 고백하고는 2번으로 들어가는데,
흐미~ 2번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2번을 건너 뛰고 3번으로 이어졌다.
등에서 땀이 났다.
그렇다고 모른척하고 나올 수가 없어 끙끙대다가
자수하여 광명 찾자~!!
“신부님, 실은 죄가 3가지였는데 한 개를 잊어버렸어요~”
“@#$^%#@%$@@&”
쿡~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시는 듯한 느낌~ ^^;;
어린애도 아니고, 아줌마가 고백할 죄를 까먹고는 쩔쩔매는 모습이라니.. 아이구야~ -_-;;
암튼,
신부님께서는 죄가 몇 가지인지 잊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 죄를 다 알고 계시니.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냥 ‘죄인’이 아니라 ‘사랑받는 죄인’임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너무나 사랑하는 자매님’이라는 말씀에 그만 울컥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느님과 눈 맞추는 마음으로 미사에 임하라는 보속을 주신 신부님,
그렇게 온 마음으로 임한 미사는 너무나 은혜로웠다.
렉시오 디비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로 시작된 신부님의 강론은
가뭄에 단비처럼, 나의 메마른 영혼이 촉촉히 적셔지는 느낌이었다.
천사가 즈카르아 앞에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나오는 오늘의 복음 말씀은
당신에게 의문을 갖게 하셨던 부분이라시며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천사는 즈카르야에게도 나타났고, 성모님께도 나타났고,
두 분도 아들을 낳을거라는 예언을 들었으며, 두 분 모두 의문을 가졌다는 것.
천사가 나타난 것도, 아들에 대한 예언을 들은 것도 그리고 의문을 가진 것도 모두 같은데,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었고,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님이 되었다.
이 상충되는 부분이 당신께는 의문이 들었다는 말씀.
그러게, 글고보니 그랬다. 왜 달랐을까?
신부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그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야 물론 성경 말씀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니 깊은 묵상으로 이어지지 않은 거야 당연하긴 했다.
신부님의 오랜 물음과 묵상 속에 느끼신 것은,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벙어리가 됨으로써 지켜보는 사람이 된 것이라 하셨다.
선포하고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됨으로써
믿을 수 없는 하느님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역사를 지켜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통과함으로써, 즉 침묵 속에서 지켜봄으로써
하느님의 역사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
‘하느님의 언어는 침묵이다.'
성탄 때가 다가오면 항상 듣는 즈카르야와 성모 마리아님에 대한 복음 말씀...
놀랍게도 하는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냥,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된 게 당연했고, 성모 마리아님은 성모 마리아님이니까
모든 것은 당연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들으면서
온 마음으로 깊이 물고 빨고 핥으며 말씀을 읽을 때 어떤 깨달음이 일어나는지 새삼 느껴졌다.
언젠가 피정에서 신부님께서 하셨던 말씀...
“모르는 것은 죄입이다. 말씀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말씀을 알아야 하느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죄 고백 중의 하나가 말씀을 게을리함에 대한 고백이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마치 강아지가 뼈를 가지고 물고 핥고 빨고 하듯이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콕 와서 박혔다.
말씀에 게을렀던 나에게 말씀을 가까이하고, 심지어 그 안에 푹 빠지고 싶다는 꿈틀거림이 일어났다.
미사 후, 성령 기도회에서 함께 찬양하고 안수 기도까지 받고 나니,
감사함이 한가득이다.
올 한 해 처절했고, 치열했고, 두려움과 긴장 속에 연속이었던 그 모든 것이
오늘 하루의 은혜로운 마무리로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고백 성사와 함께 주어진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은혜로웠던 미사...
하느님과의 눈맞춤이 일어났음일까....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늘 감동을 주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영광 받으소서.
*
오늘 미사가 감동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연우(오른쪽)가 오늘 복사를 섰기 때문이다.
우리 반 제일 나이 어린 학생인 연우...
얼마나 진지하고 정성으로 임하던지, 귀여워서 돌아가실뻔 했다.
알고 보니 오늘이 복사 첫 날~
요셉 신부님께서 New Face라며 인사시켜주시고, 박수쳐주시고...
사랑이 많으신 신부님 곁에서 많이 배우고 많은 사랑 받으며
지금처럼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사랑스런 연우로 자라길 기도드린다.
.
.
꿈이 있는 자유 -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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