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함께

박성준 세례자 요한 신부님과 함께 한 성령묵상회~

pumpkinn 2018. 8. 21. 09:27


성령묵상회 포스터...

카리스마 넘치는 리드로 지도해주신 박성준 세레자 요한 신부님과 

깊으면서도 구수한 강의를 주신 감현조 스테파노 회장님..

(내 카메라를 잃어버려 사진을 고루고루 많이 찍질 못했다. 아쉬운대로 올려본다.)

 

2018814 () ~ 818()


우리 브라질 성 김대건 한인 성당에서는

지난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5일 동안 성령 묵상회가 열렸다.

보통 성령 세미나든 묵상회든 피정은 주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피정의 집에서 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신자 분들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도록 성당에서 열리게 되었다.

매해 기록을 경신하며 바닥으로 치닫는 불경기에 심신이 지쳐버린 신자분들을 위한

주최측의 배려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문제와 스트레스로 가득한 일상에서 떠나 푹 침잠할 수 있는 피정이었으면 했다.

어쩌면 피정을 핑계로 그저 떠남이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일터에서 골머리 쌓고 일에 치이다가 저녁에 성당에서 와서 할렐루야~ 하자니

마치 나의 양면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불편할 것 같았고,

그러다보니 신청 기간 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다가 가지말자로 마음이 굳혀지다가

묵상회가 시작하기 며칠 전에 떠난 차에 매달려 타고 참여하게 되었다.

 

성령 묵상회를 신청하는 마음가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듯이

내 신앙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었고, 바위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려

내 힘으로 안 되니 피정이나 묵상회를 통해 하느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셨음 하는 간절함도 없었다.

그만큼 잡초도 나지 않을 만큼 메말라 있었던 것이 내 신앙의 현주소였다.


그런 가운데 성령 묵상회는 시작되었다.

지도 신부님이신 박성준 사도 요한 신부님은 아주 젊은 신부님이셨는데

신부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카리스마를 보며 조금 놀라운 느낌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확신에 찬 뜨거운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나. 그러니 이 지구 반대쪽 브라질에 성령 묵상회를 지도하러 오신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연한 분위기가 내게는 마치 사차원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도 그토록 내 마음이 차갑게 굳어있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성령묵상회 신부님을 보고 세 번 놀랐다.

너무 잘생기셔서 놀랐고, 또 너무 젊으셔서 놀랐다.

가장 놀랐던 것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시는 확신에 찬 카리스마 때문이었다.




첫 날, 성가와 율동으로 인해 마음이 촉촉해지긴 했지만

그것은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감성적인 터치였지 영혼의 울림은 아니었다.

그렇게 맹맹하게 이틀이 지났다. 그만큼 내 마음은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셋째 날인 금요일, 안수 예절이 있던 날

안수를 받는 순간, ‘뜨겁다고 표현 할 수는 없지만

마치 꽁꽁 얼어붙어 있던 내 몸과 마음과 영혼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마치, 괜찮다고 어루만져 주시는 듯한 느낌

그랬다.

 

그렇다. 하느님은 나를 결코 잊으신 적이 없으심을 일상 속의 체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리는 것도 나고,

게으른 것도 나고,

뒤늦게 죄송함에 눈물을 흘리는 것도 나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나에게 감동을 주시는 하느님

그렇게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 내리자 그 차가웠던 얼음덩어리는

눈물 되어 흘러내렸다.

너무 감사해서 자꾸만 흐르게 되는

 

성가마다 하느님의 손길이 느껴졌고..

우리는 누가 뭐라할 것도 없이 손을 들어 찬양을 드렸다.

 

-       축복의 하느님이 나의 하느님

-       당신은 하느님의 사람

-       생명의 빵

-       미지막 날에

-       그 사랑 얼마나

 

나에게 하염없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성가들이었다.

특히, ‘축복의 하느님이 나의 하느님성가는

마치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나의 영혼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시는 듯

따뜻한 온기가 나를 둘러싸며 하느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를 느끼게 해준




은혜로운 성가와 함께하는 율동 봉사자들... (너무 수고하셨구요 넘 은혜로웠어요~)

율동봉사자들과 함께 제대에서 율동을 함께하고 계시는..

'율동 신동 (^^;;)' 박성준 세례자 요한 신부님~

쪼오기 뒤로 우리 박진규 요셉 신부님도 보인다.. 

조성광 바오로 주임 신부님은 율동 봉사자 뒤에 가리셨네~ ^^;;


 

마지막 날이었던 토요일엔 낮에 시작되었고

강의와 함께 조 나눔과 은혜의 밤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날 은혜의 밤에서는 체험담 나눔이 있었는데..

하느님은 그렇게 한 분 한 분에게 그에 맞는 방법으로 다가오심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성령 묵상회라고 해서 전혀 몰랐던 새로운 내용을 만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을 그 순간에 하느님의 터치로 우리는 깨닫게 되고

지금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일상 속에 그 분의 현존을 느끼며 그것이 감동으로 다가오고

다시 반성하고 회개하며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번 성령 묵상회를 통해 가장 내 가슴을 치고 들어왔던 부분은.. 

다음 여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의 몰랐던 내 모습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라 올릴 수는 없지만, 신부님의 개인 체험에 관한 부분은..

지난 날,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아빠는 내게 무엇을 요구한 적도 없으셨고, 엄하게 대하셨던 적도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늘 나를 지지해주셨고 내가 잘 홀로 설 수 있도록 바라봐주시며 응원을 주셨엇다.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나를 울타리에 가둬놓고 엄하게 대했는지

좀 더 자유롭게 놓아두었어도 괜찮았는데

그것은 바로 나를 그렇게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돌아가신 아빠 생각에 눈물이 났더랬다.

 

하느님의 공간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하느님의 공간에 대한 말씀 또한

가슴을 치고 들어왔던 부분이다.

 

인간 안에는 하느님께서만 채우실 수 있는 절대적인 공간이 있습니다. – 성 어거스틴

 

이 공간은 다른 무엇으로 채울 수 없는 하느님 만의 공간이기에

오로지 하느님께서만 채우실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때때로 느껴지는 공허함은 바로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였다.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할 때 그 공허함은 더욱 커지고, 방황하게 되는 우리

 

하느님은 잠시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데..

눈을 맞추지 않고 딴짓을 하며 방황을 하고 스스로 광야로 빠져버리는 우리

 

지금 내 신앙의 현주소를 느끼게 하며..

다시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는 귀한 말씀이었다.

 

하느님의 현존의 순간

 

하느님의 현존은 바로 우리가 의식하고 인식하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내가 또 한번 깨닫게 해주시는 부분이었다.

 

남편은 이름 없는 순례자를 읽고 그 책에 나오는 예수 기도에 대해 전해준 적이 있다.

예수 기도를 매순간 떠올리며 드리는 것은 입으로만 중얼거리는 의미 없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예수님을 떠올리게 되고,

그 순간은 바로 하느님의 현존을 함께 하는 순간이라는 것

 

신부님이 예수 기도를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신부님의 입을 통해 확인되고 분명해지는, “~~”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묵상기도 쓰기

 

기도에 늘 게으른 나는, ‘기도말씀부분만 나오면 한 없이 작아진다.

순간적으로 쏘아 올리는 감사기도와 화살기도는 늘 하지만,

진득하게 앉아서 드리는 기도는 늘 나에겐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런데 토요일에 강의를 주신 김현조 스테파노 회장님의 강의를 듣다가

묵상기도 쓰기에 대한 말씀에 귀가 솔깃 했다.

물론 묵상기도 쓰기를 어디 한 두 번 들어봤을까..

단지 지금까지 나는 묵상을 드리고 느낀 점을 글로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니..

기도 시간도 너무 길 것 같고, 뭔가 근사한 묵상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지레 짐작으로

안그래도 기도가 게으른 나와는 머나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성경 구절을 읽다가 와 닿는 구절에 대한 느낌을 써 내려가다 보면..

성령님께서 인도해주실 거라는 것. 그게 바로 기도가 된다는 말씀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게 한 게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초서하고, 그 밑에 내 삶에 비추어 단상을 쓰던..

바로 그 방법이고, 그것은 내게 익숙하고 또한 좋아하는 방식이니..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그런 시도를 해보겠다고 생각하게 된 그 자체가

내겐 기쁨이었고 감사함이었다.

 

성체조배

 

성체조배는 신앙이 깊은 분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성체조배를 한 번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멀뚱멀뚱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때때로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귀한 체험을 한 적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운 좋게 복권 당첨된 경우인거지

내가 성체조배라는 것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성체조배에 대한 나의 생각은 그랬다.

 

그런데 그냥 앉아만 있기만 하라는 게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이쁘겠냐는 것.

64살 차이 나는 당신 손자를 보면 바라보기만 해도 이쁜데

하물며 2018년 차이 나는 우리는 하느님 눈에 얼마나 이뻐보이겠냐는 말슴에 웃음이 빵 터졌다. ^^

 

그렇게 계속 하다보면, 좀 더 깊이 들어가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들어가는 관문의 턱이 높지 않으면

좀 더 쉽게 시도해 볼 수 있게 되는 것 아니겠나..

 

암튼, 어렵고 거룩하게만 느껴졌던 성체조배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부드럽게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시간이었던 '용서'에 대한 강의를 주고 계시는 신부님~


 

용서

 

마지막으로 은혜의 밤 앞에 있었던 마지막 강의였던 용서에 관한 부분은

이번 성령 묵상회의 가장 핵심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용서를 못하는 것은, 내가 받은 상처를 통해 마음이 오그라들어서 그런 것이지,

내가 못되서, 악한 사람이어서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따뜻하고 위로되는 말씀이었다.

물론, ‘용서라는 것이 대상이 누가 되었던

 

대상이 누가 되었건 누구에게나 용서는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용서하기 힘든 대상은 바로 내 자신이 아닐까..

남에게 실망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것이 가장 아픈 고통이고 상처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절대 나에게서는 느껴선 안 되는 옹졸함, 쫀쫀함, 비열함을 느끼게 될 때

그 옹졸함과 쫀쫀함이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만으로 용납하기 힘든 상황

 

그런데 그것이 내가 못되서가 아니라,

단지 상처로 인해 내 마음이 오그라들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얼마나 따뜻한 위로였는지

.

.

 

큰 기대도 바람도 없이 참가했던 성령 묵상회

뜨겁고 열정적으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은은하면서도 깊이 나를 들여다보게 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감사했다.

 

활활 타서 꺼져버리는게 아니라..

은은하게 조금씩 진득하게 가게 하는그런 따스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가고 싶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다가 쉽게 식어버리지 않도록

조나눔에서 한 약속을 매일매일 지키면서..

이번 묵상회를 통해 받은 은총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깨어있음으로 이어가겠다고..

정말 조심스럽게 다짐해본다..

 

* 그리고 한 마디




넘 은혜로운 성가를 연주해주시고, 불러주셨던 음악 봉사자님들~

(흑~ 요셉 아저씨가 가려졌네~-_-;; )



이번 묵상회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음악 봉사자님들과 율동 봉사자님과 프로그램 진행 봉사자님들 모두..

신부님과 봉사자분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며 준비를 했는지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었다.

..

장장 5일 동안 연속으로 진행되는 피정 프로그램이

신부님과 완벽한 호흡으로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하게 진행되어..

그 분들의 숨어 있는 노고가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율동신동(^^) 신부님께서 봉사자들과 함께 율동하시며 리드해주시니..

우리도 얼마나 신이나고 즐거웠는지… ^^

생각지 않게 많은 은혜를 넘치게 받았던 시간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영광 받으소서~!!

.

.


'축복의 하느님이 나의 하느님'을 올리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버젼을 찾지 못했다...


역시나 내 마음을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채워주었던 성가..

'그 사랑 얼마나'...

피아노 연주곡으로 올려본다..


그 사랑 얼마나 by Jerry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