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킨의 하루

'너의 의미'를 듣다가...

pumpkinn 2018. 1. 22. 03:46




애리는 친구들과 나가고,

남편은 방에 쉬러 들어가고,

나는 거실에서 지난 학기 강의안을 정리하다가 

유튜브에서 흘러나온 너의 의미’... 

문득 지난 날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머리에 피똥이 마르지 않았던 학생시절부터

머리에 피똥이 제법 마른 지금인 50 중반의 나이까지 변하지 않은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의미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미에 살고 의미에 죽는~

 

내게 있어 늘 의미는 중요했다.

어점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힘들었던 일상 속에서

내가 미소지으며 깔깔대고 박장대소 할 수 있는 행복을 안겨준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싶다.

 

암튼, 유튜브에서 아이유와 김창완의 듀엣으로 흘러나온 너의 의미를 듣다가

재밌는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숫자가 갖고 있는 의미로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

내가 처음 한국을 떠나 살았던 곳은 파라과이었다.

그 곳에서는 버스를 타면 운전 기사 아저씨가 승차비를 받고 버스표를 주셨는데

그러면 그 버스표를 내릴 때까지 갖고 있어야 했다.

중간중간 검사원이 올라타서 돈을 안 내고 버스를 탔는지 아닌지를 검사를 하는게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버스표에는 숫자가 적혀있는데,

각 숫자에 담긴 의미를 친구로부터 전해듣고는

나는 끝에 적힌 숫자를 보며 그 날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를 그려보곤 했다.

정말 재밌었다.

 

당연히 재미로 하는 것이지만, 버스표를 받을 때의 두근거림이란

'이번엔 무슨 숫자가 나올까...?'

내가 좋아하는 숫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버스를 타는 것은 짜릿한 놀이였다.

 

그럼, 대체 호박탱이는 왜 그렇게 숫자에 목숨을 걸었을까..?

숫자의 의미를 살짝 엿보자...(내 기억이 틀리지 않기를...^^;;)


1 – Noticia (소식을 듣는다)

2 – Separación (이별)

3 – Encuentro (만남)

4 – Noviazgo (연애를 하게 됨)

5 – Disgusto (기분 나쁜 일이 생김)

6 – Carta (편지를 받음)

7 – Pienso en ti (너를 생각해)

8 – Celoso (질투)

9 – Lo Verás (그를 봄)

0 – Te ama (너를 사랑해)

 

각각의 숫자가 이러한 의미를 지녔는데,

물론 이건 한창 멋진 이성을 만나고 싶었던 사춘기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던 놀이였다.

 

어쨌거나, 뭔가에 필이 꽂히면 푹 빠지던 나는,

얼마나 열심히 이 숫자의 의미에 매달렸더랬는지...

내가 좋아하던 숫자는 0. 4. 7 이다. 하하하하~

이 세 숫자 중의 하나가 나오면 하루가 행복해지며 내 입가엔 함박 웃음이 한 가득~ ^^;;

 

숫자대로 그대로 이러지는 것도 아니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6번이 나오는 날엔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의 편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했고,

9번이 나오면 혹시 내가 은근 속으로 짝사랑하는 그 애를 보게되지 않을까 두근거렸고,

7번이 나오면 어쩌면 나는 알지 못하는 어떤 멋진 아이가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혼자 쿡쿡 좋아라 하곤 했다... 

0번이 나오면 혹시 내게 멋진 남자친구가 생기는걸까..? 설렘 속에 하루를 맞게 되고...아이구야~


'오늘 길을 지나다 혹시 그 아이 뒷모습이라도 보게 될까..?'

'그 애도 한번씩 나를 생각할까..?'

'혹시 그 아이는 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을까?'


그렇게 버스표에 쓰여진 숫자와 함께 나의 짝사랑을 그리곤 했다.

지금은 그 짝사랑이 내 옆지기가 되었다. ^___^

어차피 내 짝궁이 될 줄 알았음 그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내가 제일 싫어한 숫자가 5번이었는데,

그것은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는 뜻을 지녔으니 그날 운수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하하하~

재밌는 것은,

지금도 5번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리고 지금도 0번이나 7, 4번이 나오면 내 입가엔 미소가 피어오른다. ^^

물론, 지금의 의미는 '멋진 남자 친구'가 아니라, '기분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의미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오늘, '너의 의미'를 들으면서...

그당시 짝사랑의 대상이던 남학생을 떠올리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버스표를 두근거림 속에 받았는지...

아마도 버스 운전 기사 아저씨는 모르셨을 것이다. 하하하하~^^;;

 

너의 의미를 듣다가..

문득 학창시절 생각에 웃음이 피어나 끄적거려 보았다.

 

참 맑고 순수했고, 그 무엇하나 소중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잊지못할 추억으로 그려지는 거겠지....

.

.


나를 추억속으로 떠나보낸..

'너의 의미' 


김창완의 목소리가 그때처럼 여전히 맑아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워 찾아간 어린 시절의 동네...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겨준 듯한 느낌이랄까.... 


산울림 속에 얼마나 많은 추억이 함께하는지...

우리 시절의 사람들에겐 그렇겠지...

 



산울림 - 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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