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33] 폴 오스터의 ‘빵굽는 타자기’를 읽고 / 김 석희 옮김

pumpkinn 2015. 2. 18. 00:25

 

 

 

에밀 아자르의 작품에 이어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 타자기’를 읽고 보니 그러려고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닌데 우연스럽게도 김영하의 팟캐스트 ‘책 읽는 시간’에서 만난 책들이었다. 작가 김영하에 따르면 폴 오스터는  다른 현대 소설가와는 달리 우연이나 운명의 장난을 과감하게 소설에 집어넣으며 스토리 전개가 그 우연의 연속적인 맞물림으로 이어지는 것이  폴 오스터 플롯의 원형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재미는 물론 억지스럽지 않고 그러한 우연이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폴 오스터 작품에 나타나는 작법의 특징이라는 것. 그렇게 우연을 좋아하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김영하’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우연스럽게 집어 든 것도 참 재밌는 우연이었으니, 삶이란 얼마나 재밌는 장난꾸러긴지.

 

<빵 굽는 타자기>가 소설인 줄 알고 집어 들은 나는 픽션이 아니라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임에 조금 놀랬다. 내가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마도 <빵 굽는 타자기>라고 붙여진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작품 속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부모님의 다른 성향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번역자로서 평론가로서 그리고 시인이자 작가로서의 가난했던 삶을 있는 그대로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덤덤하게 들려주고 있다.

 

결코 경제적인 것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했고, 조직적으로 짜여있는 생활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는 돈을 벌며 꽉 짜인 일상에 얽매이기보다는, 특별히 물질적으로 원하는 게 없었기도 했지만, 그는 글을 쓰는 시간적 자유를 원했다. 경제적 여유와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간과 바꾼  로맨티시스트 폴 오스터.

 

그의 삶을 보면 부모님의 성향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가 가난에 나름 초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음은 그가 부유하게 자라 고생을 몰라서 경제적인 것에 거의 무개념 상태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부모를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일을 했고 돈을 벌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모았다. 물론 늘 그는 ‘만약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번번이 계획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상황으로 허덕거려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궁핍한 생활을 투덜대기보다는 어떤 조직에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얽매이지 않는 것에 행복해하며 지냈다. 그가 그렇게 기본적인 생활비를 벌면서도 만족하며 그 삶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검소하고 절약적인 아빠의 성향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제관념이 부족하고 있는 것을 쓰며 사는 것은 엄마의 성향을 닮은 것은 아닐까 싶다.  

 

흥미로운 것은 급기야 이혼으로까지 몰고 간 부모님의 전혀 반대되는 성향이 폴 오스터에게는 나름의 긍정성을 지니고 함께 어우러져 그의 삶을 지배했음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폴 오스터와 첫 눈에 반한 그의 아내 시리 허스트베트,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멋진 두 부부도 모자라 두 부부가 모두 미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소설가란 사실...

 

 

내 눈에 비친 폴 오스터는 낭만적이고 지적인 보헤미안이었다. 9 to 5 Job을 하느니 생활은 좀 궁핍하더라도 시간적 여유를 즐기며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폴 오스터. 그는 진정한 보헤미안이었다. 겉으로는 아닌척하면서 속으로는 부를 동경하며 그런 삶을 꿈꾸는  초라하고 비굴해 보이는 보헤미안과는 거리가 아주 먼 순수한 영혼을 가진 보헤미안이었다.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잡문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결국 그것 때문에 인생의 낙오자가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낭만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나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선언하고, 훌륭한 인생에 대한 일반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P62) 

낭만적인 보헤미안 폴 오스터의 고백이다.

 

 

끼니를 굶고 있던 그에게 마지막 끼니였던 새 껌둥이가 된 양파 파이를 보고 비참해하면서도 그가 웃을 수 있었고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가 기꺼이 되어있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내 삶을 바칠 수 있는 일을 하는 그에게 배고픔이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아니었으며, 왜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함이었을 것이다. 온갖 고통을 이겨내고서라도 하고 싶은 무엇이 있는 이들, 그들은 행복하다. 내겐 부러움이다.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 나는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각오도 되어있었으니까, 불만은 없었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물질적으로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었고, 내 앞에 가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겁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P6)

 

물론 어느 순간에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 생존의 기회를 바라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는 전부가 된 적도 있었지만, 그는 그가 하고자 하는 그 일을 결코 놓지 않았다.

 

작가가 ‘액션 베이스볼’이라는 스포츠 카드게임을 발명한 것도 참 이색적인 경력이다. 비록 그렇게 되기까지는 생활고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상황이었고, 그토록 간절한 상황이었음에도 판매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면 푹 빠져버리는 그의 성향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그의 책이라곤 달랑 <빵 굽는 타자기> 하나였고, 김영하가 읽어준 <빨간 공책>이 다지만, 그의 글에는 여유와 낭만과 유머가 느껴져 그의 멋진 외모 속에 묻어나는 개구진 미소가 그대로 느껴진다. 김영하가 말하는 ‘폴 오스터스러운’ 수많은 우연의 일들, 그 거짓스러운 우연을 나는 믿는다. 바로 나는 그것을 ‘삶의 우연성’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삶의 우연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삶의 우연성이 필연처럼 일어날 때 나는 얼마나 전율하는지. 아마도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가난 속에 유머를 누릴 줄 알았던 폴 오스터, 삶의 고통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음에서 오는 생활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행복을 느낄 줄 알았던 폴 오스터. 말없이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며 불평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했던 폴 오스터. 끝까지 자신이 삶 속에 간절히 원했던 그 목적을 잊지 않았고 삶의 쓰나미 속에 쓸려 보내지 않았든 폴 오스터. 작가로서의 그도 존경스러웠지만, 한 인간으로서 무한한 존경심이 나를 온통 감싸 안았다.

 


폴 오스터, 이 멋짐을 우짜문 좋아~ ^^;;

 

지나가는 한 마디...

 

폴 오스터의 사진을 보고 놀랐다.

"흐미~ 뭐 이렇게 겁나게 잘생긴 작가가 다있는겨?" 싶었던 것. ^^;; 

그의 부인 리디아는 또 어떻고, 딸내미 소피도 아주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검색을 해보니 폴 오스터는 의외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았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그 아름다운 가정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그리고,

번역이 '김 석희'여서 또한 반가웠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나로 하여금 얼마나 열광하게 했는지. 

모두 김석희 번역가의 섬세하고 맛깔스러운 번역 때문이었으니.

 

영어, 불어, 일어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김석희 선생님.

우리가 좋은 책을 좋은 책이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우리 감성에 맞게 옮겨주신 번역가들 덕분이기에

좋은 번역서를 읽을 때마다 그분들에게 감사함이 가득 느껴진다.

 

그나저나, 나는 지금까지 번역가 김석희가 '그'가 '그녀'인 줄 알았다는...^^;;

좋은 번역에 감사드리며

그분을 통해 훌륭한 역서를 접하게 되는 우리 독자들을 위해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Reneé Dominique - I w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