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31]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양윤옥 옮김

pumpkinn 2015. 1. 30. 06:08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벌레 먹은 잎사귀가 갈바람에 서럽게 서걱거리듯, 때때로 가슴에 시린 바람 불어 그렇게 마음이 추워질 때면 따뜻한 이야기로 마음을 데우고 싶어 진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2012년 중앙 공론 문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일본의 추리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참혹한 살인 사건이나 악의를 묘사할 때도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놓아버리는 일이 없었다. 오래도록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이유일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옮긴이의 말이다. 그의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으며 옮긴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 타고난 인간의 선함을 믿는 작가. 설사 범죄자라도 그 저면엔 선함이 존재함을 믿는 작가. 내가 그리도 이 작품에 푹 빠졌던 것은 이 책이 안겨주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독특한 구성과 재미난 이야기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작가의 그러한 정신에 깊은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참으로 엉뚱하다. 세명의 도둑, 쇼타, 고헤이, 아쓰야가 도둑질을 하고는 역시 훔쳐 타고 도망치던 차가 시동이 꺼져버리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 아침까지 몸을 숨기기 위해 어느 폐가에 숨어들었다가 생기게 되는 이야기다. 바로 그 폐가가 ‘나미야의 잡화점’이다. 지난날, 잡화상 주인이었던 나미야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인해 시작하게 된 고민 상담. 할아버지는 그 어떤 짓궂은 질문에도 늘 정성껏 답변을 해주셨고, 어느 날부터 진지한 고민을 해오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뉴스에도 나올 만큼 유명해진 곳. 그곳이 바로 나미야 잡화상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렇게 잠시 몸을 피하고자 빈 잡화상에 숨어든 그들은 우연하게 박스에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안에서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 편지에 쓰여있는 상담 내용을 읽다가 그냥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답장을 해주게 되면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벌어진다. 배움도 학력도 모자란 그들이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을 들어주며 나름의 생각으로 답신을 주게 된다. 재밌는 것은 고민 상담자들은 자기식대로 해석을 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우리 모습을 꼭 닮아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이미 무엇을 할지,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다. 단지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는 나의 선택을 확인받고 싶을 따름이라는 것. 물론 상담을 듣고 선택의 방향을 바꿀 때도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이미 우리가 정한 선택의 길을 간다.


고민을 상담해오는 이들은 본명을 쓰면 작은 동네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탄로 날까 봐 상담자들은 편지에서 닉을 쓴다. 그들이 쓰는 별명들도 재밌다. ‘달 토끼’,  ‘길 잃은 강아지’ ‘ 생선가게 뮤지선’, ‘백 점짜리 꼬마’, ‘폴 레논’, 등등~비록 그들은 상담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었지만, 고민 문제에 대한 그들의 순수하고 단순 명료한 해석과 풀이는 직접적으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했고, 문제를 직시하게 한다. 그들은 가차 없다. 빙빙 둘러대지 않고 바로 핵심을 바라보게 하고, 그들 감정 안에 고이 감춰놓은 그들의 진짜 얼굴을 바라보게 하며 가면을 벗겨버린다. 말하자면, “올림픽이라고 해봐야 결국 운동회를 좀 화려하게 하는 것뿐이잖아.” (P63) 이런 식이다. 그러니 좀 화려한 운동회에  참가하자고 자기 입으로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람 곁에 있지 않고 훈련에 참가하는 게 옳은 선택이 아니겠냐는 게다.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고민을 털어놓는 상담자들보다는 바로 이 세 도둑 들이었다. 고민을 털어오는 이들의 편지를 읽으며 서로 고민을 하며 투닥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우리네 모습과 닮았던지. 고만고만한 나이의 사고의 폭이 느껴져 나오는 웃음을 막기가 힘들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명쾌하고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는지. 비록 도둑질을 하지만, 그들 마음속 깊이 깔려있는 선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했다. 사실 마지막 부분에서야 나오지만, 그들이 도둑질의 이유도 사실은 자신들을 보살펴주고 키워준 환경원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있는 나미야 잡화점. 그리고 그 상담자들은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두 ‘환광원’과 어떤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있다. 환광원을 지은 부잣집 딸이었던 여선생님과 이루지 못할 사랑을 했던 나미야 유지, 곧 나미야 잡화점 할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이에 끈이 되어주었던 것이었을 게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했지만 그 사랑은 높은 신분의 벽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고만고만한 거리에 환광원을 지어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여선생님과 나미야 할아버지와의 사랑... 그들의 이뤄지지 않은 사랑은 어쩌면 그들의 품 (잡화점과 환광원)에 사는 이들이 삶 속의 고민들을 함께하고 도와줌으로써 할아버지와 선생님의 사랑은 그들의 연결고리 속에서 그렇게 이뤄지며 이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미야 잡화점의 마지막 상담 편지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빈 편지였다. 나미야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고민이 있는 것은 적어도 삶 속에 원하는 어떤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 즉, 지도를 가지고 있는 거지만, 아무런 내용도 쓰지 못하고 빈 편지지를 보냈다는 것은 그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막막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 어떤 지도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리는 지도가 바로 나의 지도라는 것. 마치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물론,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나 역시 지난 삶 속에 아쓰야처럼 대체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가고 싶은지, 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할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던 기억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바로 그런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적어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내 안에 많았던 부풀었던 꿈들은 거짓 열망이었음을.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게 맞지 않는 것들이었음을 알게 되고 하나하나 가지치기를 해나감으로써 자연스럽게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삶의 레슨인지. 나는 안다. 삶 속에 경험하는 모든 것들 중 내게 배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좋은 경험은 좋은 경험대로, 안 좋은 경험은 안 좋은 경험대로 내게 수많은 Life Lesson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추워진 마음을 따끈하게 데우고 싶어 읽었는데, 역시나... 나의 시린 마음은 따뜻한 온기로 따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감동이었고, 그리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였다.

 

과거의 현재를 오가는 편지를 보면서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The Lake House’가 떠오르기도 했고, 미치 앨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도 떠올랐다. 물론 서로 다른 이야기고, 다른 구성이지만, 내가 무심결에 하든 진지한 고민 속에 행하든, 내가 택한 선택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있는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삶 속에 동그란 물무늬를 일으키며 퍼져나가는 그림이 비슷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재밌는 고백 하나.
어렸을 때, 선생님께서 국어 성적이 좋지 않아서 어머니를 불러 부탁을 하셨단다. 만화책만 읽게 하지 말고 책 좀 읽게 집에서 지도해달라는 말씀. 그때 게이고 어머님의 대답 “우리 애는 만화책도 안 읽어요~”. 하하하하~ ^^일본 최고의 추리 소석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책은커녕 만화책도 읽지 않던 학생이었다니. 이 얼마나 희망적인 메시지인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희망적인 존재가 아닐까?

 

 

 

 

 

 

 

 

 

Kitaro MIr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