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25]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하는 글쓰기’를 읽고...

pumpkinn 2014. 7. 10. 04:55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하는 글쓰기를 읽고...

 

조르바를 춤추게하는 글쓰기는 이번 달에 내가 읽을 책 리스트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뜻 손에 집은 이유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라는 제목이 나를 사로잡았고, 그보다 더 우선되는 이유는 바로 종이배님께서 이 책을 보시면서 펌킨이 생각났다는 말씀에 읽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윤기는 내가 존경하는 번역가로, 그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번역책을 여러권 읽었고,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스승을 통해 여러번 들었기에 내겐 관심이 많이 가는 분이었다. 언어의 천재라는 별명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는 분. 그 분이 어떤 분인지가 궁금했던 것은 당연한 이치였을게다.

솔직히 고백컨데, 나는 이윤기가 작가인지 몰랐다. 나는 그저 번역가로서의 이윤기만 알고 있었지, 그가 시를 너무 사랑해서 시를 쓰지 못하는 감성적이면서도 문학상까지 수상한 소설가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책 표지에 멜빵바지를 입고 그 사람 좋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를 보면 마치 옆집 아저씨 같다. 어딘가 모르게 모건 프리만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지적이고 따뜻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것엔 엄격한 품성을 지닌 분. 그러면서도 열림 마인드로 여러 사고를 어우르면서도 자기 색을 잃지 않는. 믿음가고 신뢰가 저절고 부여되는. 그런 든든한 분. 두고두고 삶의 멘토로 곁에 함께 하고 싶은 그런 분이었다.

수 많은 얼굴을 가진 이윤기.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껴졌던 이윤기는 마치 뜨개질을 하는 남자같았다. 그의 풍성한 감성들은 나를 얼떨떨하게 했다. 리진의 시를 읽으며 울고 웃는 이윤기, 미당의 시를 읽는대로 외우는 이윤기. 친구와 서로 쪽지를 주고 받으며 두근대어 하는 소녀의 감성을 지녔던 이윤기. 한국에 나온 어느날 택시 안에서 노래를 듣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사내.  그런 깊은 감성을 지닌 사내가 이윤기였다.

그런가하면 그는 언어 표현에 참으로 엄격한 잣대를 갖다대는 그런 엄한 모습을 지닌 선생님이시기도 하고 학자기도 했다. 해서 딸은 때로는 혼자 TV를 보고 싶었다는 귀여운 고백을 서문에서 하기도 했다. 이윤기가 사랑한 한국어. 그의 한국어 사랑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한국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인게다.

그런가 하면 그의 학구열은 대단하다. 평생 학생같은 자세로 그는 언어와 문학을 대한다. 이미 4사때 천자문을 떼고 사서오경을 탐독했던 그. 학교를 다니면서는 한국 문함과 일본 문학에 심취하고,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가서는 영문학에 심취하며, 그는 언어 국경을 자유로이 넘어다녔다. 그러니 그는 그 좋은 문학책들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것 아녔을까?

번역에 대한 부분은 참으로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물론 나는 번역가가 아니다. 하지만 번역가가 되고 싶었던 한 때가 있긴했다. 이윤기 작가가 번역가의 자세와 어려움을 이야기 할 때 고개가 절로 끄덕이며 공감을 했더랬다. 내가 번역을 포기했던 것은 바로 나의 짧은 한국어 때문이었다. 이윤기가 걱정했던 바로 그 부분.  물론 나의 한국어 실력이 소통에 불편함이 있는 정도는 아니나, 작가가 표현한 그 단어의 뉴앙스를 그대로 옮겨놓을 만큼의 어휘력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이민 생활이 오래여서가 아니라, 독서를 게을리 함에서 온 표현 능력의 부재, 묘사의 결핍, 명사와 형용사에 대한 역량 부족등, 결국 나의 한국어의 표현 능력 결핍에 대한 깊은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무척이나 아쉬운 부분이지만, 한편 독자들을 위해선 참으로 다행스런 결정이 아니었을런지. 그 부족한 어휘로 훌륭한 책을 망쳐 놓으면 우짤뻔 했나. 알랭 드 보통이 가장 염려했던 부분이 바로 번역 아니었던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섬세한 어휘들을 번역자가 제대로 번역하질 못해 그 표현의 묘미를, 매력을 퇴색시켜 버리는 것. 그래서 독자들이 자신이 느꼈으면 하는 바로 그 느낌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 그는 그것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했다. 나역시 급공감하는 부분이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글에 쓰여지는 단어 하나를 심혈을 기울여 고른다고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글의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예기치 않는 순간에 터져나오는 시니컬한 유머인데, 그는 바로 이러한 유머를 표현하기 위해 쓰여지는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지, 해서 그는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질때 이러한 섬세한 부분이 제대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지가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라고 했다. 그러니 원어로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에게있어 번역가의 위치란 얼마나 중요하고도 조심스러우면서도 위험한 자리인겐지...

내가 읽고 있는 수 많은 번역서들, 그 책들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고, 공감하며, 때론 울고 웃고하는 그 귀한 배움과 느낌들은 바로 번역자의 훌륭한 작업때문이 아니던가? 내가 리뷰를 올리며 때때로 번역하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는 바로 그 이유다. 내가 그리스인 조르바에 미친듯이 빠져들 수 있었음이 이윤기 선생 덕분이었음에 새삼 감사를 드리고 싶다.

스스로를 조르바로 불리는 것을 좋아했던 이윤기 선생. 그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찿았을 때 신발을 벗고 절을 하며 경의를 표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그렁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나도 결심을 했더랬다. 언젠가 크레타 섬에 가게되면, 꼭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갈 것이고, 이윤기 선생청럼 나도 꼭 신발을 벗고 절을 하며 나의 깊은 예우를 다하리라..고 말이다.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었다.

 

초서.

P89 “겨울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매우 혹독한 계절이다. 풀은 말라야 하고 나무는 자라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계절이다. 새들은 배를 곯아야 하고 산짐승은 먹을 것이 없어서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이 오거든 보라.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살아난다.”

>> 별일이다. 왜 이부분에서 눈물이 난건지. 아마도 읽으면서 순간 떠오른 애리와 리예 때문일 것이다. 애리와 리예가 삶 속에 실패를 했을때, 실패의 경험을 축하해주고 위로해 줄 수 없는 시간, 바로 나의 죽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내가 죽는 것은 결코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특히 애리와 리예가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는 둥지가 없어졌음에서 오는 슬픔을 달래줄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 당황스러웠다.

 

P170 리진의 [우리말]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내가 잇고 난 피도

문제가 아니라고

하기로 하자.

나를 낳아 축난 땅 앞에

갚아야 할 그 빚도 또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기로 하자

 

그러나 어쩌면 좋니

이 마음의

온갖 정과

이 마음 한구석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의

목 쉰 소리는

오직

우리말로만 울리잖느냐?

 

>> 읽다가 그만 울음이 터졌다. 내가 리진 시인처럼 망명 중인 것도 아니고, 조국에 버림받은 나도 아니건만 북받치는 눈물에 책 위로 뚝뚝 물이 떨어지며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그려냈다. “그러나 어쩌면 좋니 이 마음의 온갖 정과 이 마음 한구석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의 목 쉰 소리는 오직 우리말로만 울리잖느냐그 안에 있을 때는 모르다가 그 자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지면 그 안에 있었을 때는 몰랐던 많은 것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곤 한다. 우리 말도 그 중의 하나다.

지금 내 나이 오십을 넘겼고, 나는 한국에서 17살에 떠났다. 한국에서 산 날보다 외국에서 산 날이 인제 배가 되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이나라 저나라 떠돌며 낯선 문화 속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온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왔다. 아빠를 따라나선 이민 생활에선  스페니쉬를 죽어라고 배워야 했고, 자기 꿈을 잡아보겠다고 유학을 가서는 영어로 끝을 맺나했더니, 계획에도 없던 브라질에와서는 폴츄기스와 그렇게 씨름중이다.

그렇게 잘 알아듣지도, 느낌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외국어로 책을 읽다가 만나게 된 한국어 책.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한국어로 책을 읽고 한국어로 공부하는 선물이 내게 주어지다니. 외국어로 늘 긴장 속에 공부를 하던 내가 인제 내가 편한 언어로 공부를 하게되었을 때의 감격이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감동을 넘어선 감동이다.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거부할 수 없는 격한 감정. 내가 그랬다. 와우를 했을 때.

그렇다. 시인 리진이 느꼈을 그 절절한 그리움의 한국어의 의미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적어도 리진이 담담함 속에 토해낸 이 마음 한 구석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의목 쉰 소리는 우리말로만 울리잖느냐?” 이 느낌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종이배님께...

종이배님, 행복한 순간을 선물로 주셔서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울고 웃고 난리 부르쓰를 추며 좋아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늘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 넘쳐나는 날들되시길 바라며...

펌킨 드립니다.

.

.

이윤기 선생은 어떤 음악을 좋아하실까...

이윤기 선생의 글에 어떤 음악을 올려야 할지가 살짝 고민이 되었다.

기왕이면 선생께서 마음에 들어하실만한 곡을 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그토록 사랑하신 선생께 존경을 표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한국적인 음악을 택했다.

 

법정스님께서 암자로 산행하시는 뒷모습을 보고

작곡가 김영동 선생이 만들었다는 곡...

 

김영동의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