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11]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고 / 안 삼환 옮김

pumpkinn 2013. 8. 18. 12:13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읽으며 전반적으로 나를 엄습해온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작품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의 성격과 개성들은 하나같이 너무나도 독특했고, 이야기 흐름 속에 나타나는 그들의 심리상태만 제대로 연구해도 심리학 논문을 거뜬히 써낼 수 있을 것 처럼 그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가 나의 온 관심을 사로잡았다.

 

매력적인 등장 인물들

 

순수한 사랑, 예술적인 감성과 고귀한 영혼을 가졌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고 경제적 관념도 부족한 빌헬름, 이성적이고 차갑지만 현실적이면서 사업적 마인드를 가진 친구 베르터, 순결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던 가엾은 마리아네, 밝고 감성적이고 변덕스럽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미워할 수 없는 필리네, 첫 사랑의 고통스런 경험으로 여성을 신뢰하지 못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라에르테스, 미지의 소녀이자 자신을 구해준 빌헬름을 마음 속으로 애타게 사랑하는 소녀 미뇽, 슬픈 운명 속의 하프를 치는 노인, 럭비공같이 가늠할 수 없는 철 없는 프레드리히.

어디 그뿐인가. 야르노라는 인물도 참 독특했다. 빌헬름에게 셰익스피어를 읽게한 장본인으로 시니컬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그의 삶에 대한 통찰력과 자기 중심적으로 보이이기까지 하는 그의 솔직한 행동들은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로타리오는 어떤가? 마치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고귀한 품성과 따뜻함과 지성으로 여자들 뿐만 아니라 남자들까지 매료시키는 인물로, 개혁적인 귀족으로 배려있고 존경받는 리더의 모습 그 자체다. 게다가 뜨거운 가슴까지 있으니, 어쩌면 모든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이 아닐까?

지적이고 이성적이며 또한 경제적 관념이 투철하고 정당하고 성숙한 품성으로 빌헬름과 로타리오 두 멋진 남성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현명한 데레제도 매력적인 캐릭터. 그런가하면 ‘우리의 친구 빌헬름의 아마존 ‘나탈리에’는 한 여성으로서 받을 수 있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찬사가 부여되고 허락된다. 그녀에게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혼이 지닌 고귀한 품성, 자애로움 그리고 뜨거운 사랑과 따뜻한 배려는 마치 천상의 여인처럼 느껴진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

그들 뒤에 숨어있는 삶의 이야기들과 배경, 그리고 서로가 알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삶들이 여러가지 삶의 우연으로 얽혀져있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놀라움을 넘어선 놀라움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하나 하나 그렇게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지키면서, 이야기 속에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해내며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그저 경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현실에서의 우리가 그렇듯, 모두 하나같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해서든 우연하게든 인생의 한 길로 들어서게되고, 그들은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가다가 어떤 우연한 계기로, 또는 운명의 필연적인 장난으로 만나 삶의 한 부분을 같이 보내게 되며, 그렇게 각자 서로 다른 개성과 삶 속에 서로의 다름을 알게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되고, 그러한 경험들 속에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며 그 의미를 깨닫는 가운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목이 보여주듯 우리는 그 성장의 단계를 빌헬름의 여행을 통해 겪게 되는 경험과 함께 배우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흥분되고 재밌는 것은 ‘괴테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괴테를 책의 온 전체에서 느낄 수 가 있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제를로의 입을 통해서, 때로는 ‘아름다운 영혼’의 숙부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야르노를 통해, 로타리오의 입을 통해서 괴테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당연한것 같기도. 그 모두 괴테가 탄생시킨 인물들이니...

한 작가의 손을 통해 이토록 수 많은 인물들이 탄생되며, 각각의 개성이 또렷하게 구분되어 표현되어지는 것에 놀라움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펴면서 상대를 이해시키는 여러 대화 장면들이 결국 한 작가를 통해 표현되어진 것이라는 것에 나는 전율했다. 위대한 작가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 1편 & 2편의 느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편을 읽는 동안의 느낌은 불안함이었다. 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청년 빌헬름이 내눈에 별로 정숙해보이지 않는 여배우 마리아네에게 빠져 정신을 놓고 있을때, 어떻게 자신의 첫사랑의 상처에 그 슬픔을 이겨낼지에 대한 불안감. 그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필리네에게 행여나 자신의 감성을 농락당하고 또다시 상처를 받게되지나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 기껏 돈을 챙겼으면 빨리 아버지에게도 돌아가지 스토리가 돌아가는걸로 보아 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곳에 연극단과 남기로 결정을 한 것일까?에 하는 극도의 긴장감이 나를 불안에 떨게했다.

그런가하면 왜 그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미뇽을 받아들여 괜한 짐을 지려는 것인지. 하프 키는 노인은 또 어떻고. 게다가 필리네에 눈이 멀은 프레드리히를 거둔 것은 또 어떤가 말이다. 마치 이 마음 착하고 고귀한 영혼을 가진 빌헬름은 고생을 사서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뿐인가? 그들의 성공을 도적당하고 정작 자신은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부상까지 당했는데 왜 그가 그 모든 것을 책임지려 했는지. 왜 그는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을 ‘끝까지’ 지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는지 그 무모한 책임감에 속상하기까지 했다. 그가 그렇게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했던 연극단원들은 정작 자신들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들처럼 비쳐졌기에 더욱 분통이 터졌다. 이럴땐 ‘이건 소설이야’ 하고 위로를 하는 수 밖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2편을 읽으면서 가장 첫 장에 배치된 ‘어느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 부분을 읽으면서는 의아스러웠다. 1편의 마지막 부분과 다소 동떨어지는 내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뒤로 나가면서 작가의 의도를 알 수가 있었다. ‘어느 한 아름다운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탈리에를 자연스럽게 언급했고, 중간쯤 가면서 곧 아마존이 ‘나탈리에’일 것임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나탈리에가 바로 로타리오의 동생일 것이라는 것. 곧 로타리오와 나탈리에 그리고 아름다운 백작 부인과 프레드리히가 남매지간일 지도 모른다는 그려보는 것은 마치 퀴즈놀이 같아서 그 상상놀이는 읽는 내내 내게 그 재미를 더해주었다.

1편은 첫부분이 조금은 진부한 내용으로 몰입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면, 2편은 1편과는 달리 책을 손에서 뗄수가 없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궁금해서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단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책 표지가 스포일러 역할을 자처했다는 것인데, ‘빌헬름과 나탈리에와의 결혼을 알지 못했다면 더욱 긴장과 흥미로움 속에 읽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책의 결말을 책에 달지 말아달라고 출판사에 부탁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자살골이 아닌가 말이다.

 

다른 문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바로 그들의 자유로운 사랑이었는데, 책을 읽으며 그들의 자유로운 감성의 표현과 사랑과 결혼에 대한 문화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좋고 나쁨’의 차이가 아니라 ‘다름’의 차이. 물론 책은 현실과 다를 수 있지만 그 사회를 반영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이는 없을게다.

그들의 사랑에 있어서 지난 날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자식이 있다해도 그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것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것은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종종 보게되는 요즘의 사랑의 경박함과는 다른 색깔이다. 물론 웃기고 황당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빌헬름이 테레제에게 청혼을 했으면서도 나탈리에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런가하면 데레제는 빌헬름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로타리오를 향한 사랑을 그가 이해해줄거라고 말하는 부분은 참으로 황당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내게는 정직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시선으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들의 ‘감정의 상태’만을 두고 본다면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고 순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다 알리고 알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더 성숙한 관계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화의 차이가 같으니 다르니해도, 사랑은 사랑인 것. 사랑의 본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내가 느끼는 사랑은 그렇다. 쟁취하여 얻는 것도 투쟁해서 싸워 얻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 아니다. 그렇게 한쪽으로 강요된 사랑은 언젠가 변질될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흘러서 서로가 같은 감정 속에 일치를 느낄 때, 또는 설사 그것이 나 혼자만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사랑 그 자체로 순수하게 있을 수 있을때 그것이 진정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니 누군가의 공감과 동감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려두고 싶다.

 

고전주의 & 낭만주의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재미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넘나드는 괴테기에 이 책은 어떤 형식에 의해 쓰여진 것일까? 어떤 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거장 괴테는 이 책을 쓰는 시점에 어떤 사조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까하고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물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후 20년 후 쓰여진 작품이고 그동안 삶의 경험을 많이 한 괴테로서는 자신의 열정과 감정에 휘둘러졌던 질풍노도 시대의 청년 괴테가 아니었다. 당연히 절제와 책임과 균형이 따라야함은 이미 삶으로 깊이 경험을 했을 터. 이 소설이 고전주의의 성향을 띄는 것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많은 부분 낭만주의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마치며...

바르바라 노파가 빌헬름에게 마리아네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펠릭스가 바로 마리아네가 낳은 빌헬름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 막을 수 있었을까? 비록 그에게 순결하진 못했지만, 그를 사랑한 이후 그에게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친 마리아네. 만약 그런 빌헬름이 마리아네에게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 둘은 그런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는 교양 서적을 만나지 못했을뿐더러, 빌헬름은 자신 안에 심어진 고귀한 영혼의 원석을 다듬어 빛내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성숙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경제관념은 여전히 붕뜬 상태였을터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 아름다운 아마존 나탈리에를 만나지 못했겠지.

삶은 가끔씩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어가는 듯하지만 우리에게 생각지 못한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기도 한다. 괴테는 이 책속에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우연이던 운명이던, 그것이 도전하고 개척하는 사람의 모습이던, 우연히 어느 길을 가다보니 만나진 운명의 우연성이던 말이다.

나는 삶의 우연성을 좋아한다. 그런면에서 빌헬름이 자신이 계획한 것은 아니나, 자신에게 다가온 삶에 가슴이 시키는대로 살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에 충실하다보니 삶이 그에게 선물을 준 것처럼 느겨진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약하고 불쌍하고 자신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결국 그 모든 것은 삶의 씨앗이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얻게 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는 것.

삶 속에 여행속에 우연하게 만났지만, 실은 그 모든 것에는 끈끈하게 이어진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다는 부분에서 나는 미치 엘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는 알게모르게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한 영향을 주며 살아가게 되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고귀한 영혼을 가진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보며 크리틱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혼의 말처럼, 그들이 되었으면 하는 그 모습으로 대해주고, 그들의 장점을 보면서 그들의 장점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 들어 나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영혼이 될 수 있기를. 그 소망을 조심스레 내 가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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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noise - Morning in Madr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