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06] 강대진의 ‘세계와 인간을 탐구한 서사시 오뒷세이아’를 읽고 / 호메로스 원저

pumpkinn 2013. 6. 4. 12:57

 

이 책을 펴면서 가장 먼저 들은 느낌은 ‘궁금함’이었다. 내용에 대한 궁금함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오뒷세이아를 풀이해줄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이었다.

 

‘오뒷세이아’는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우리 애리가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오뒷세우스처럼 용기 있고 지혜롭게 이 험난하고 경쟁 심한 세상에서 잘 헤쳐나가며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태교 차원에서 읽었었다. 

 

내게는 그저 재밌게 읽은 영웅담이었는데, 강대진 교수의 말에 의하면 단순히 ‘오뒷세우스’라는 트로이 전쟁의 한 영웅이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길에 겪게 되는 모험과 복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체 어떤 심오한 의미가 있으며, 삶의 어떤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궁금증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한다.

'오뒷세우스의 모험과 복수’라는 ‘신화’를
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작품 ‘오뒷세이아’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강대진 교수의 따끔한 한 마디. 나 같은 독자들을 향한 말씀이다. 내가 그랬다고 누가 아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뜨거워지며 벌게졌다. 시작부터 혼나는 중이다. 

 

‘대체 나는 읽으면서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이야기가 텔레마코스 이야기로 1~4권, 두 번째 부분은 오뒷세우스의 모험 부분으로 5~12권, 그리고 마지막이 오뒷세우스의 복수로 13~24권에서 펼쳐진다.

 

강대진은 말한다.

시인은 왜 굳이 아버지의 모험과 귀향 이야기에 아들의 성장담을 함께 묶은 걸까? 이 서사시 전체의 첫 단어는 직역하자면 ‘남자를’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한 인간의 전 생애를 보여 주려는 것이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이 책에서 다른 무엇보다 나를 솔깃하게 하며 새롭게 해석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페넬로페에 관한 부분이었다. 물론 다른 해석이 있기도 하지만, 내겐 현모양처요, 오로지 오뒷세우스만을 기다리며 그를 향한 사랑으로 그를 기다리는 여인 페넬로페. 구혼자들로부터 시간을 벌기 위해 낮에는 옷감을 짜고 밤에는 옷감을 푸는 ‘춘향이형’ 페넬로페가 실은 나름의 꿍꿍이가 있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남자들을 적절히 조종하면서 혹시 너무 일찍 결정해서 남편이 돌아왔을 때 수치를 당하는 사태를 피하면서도, 남편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서 남자들이 너무 멀어지게 문을 닫지도 않았다” (P60)

 

이 얼마나 흥미로운 해석인지. 정말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페넬로페 마음 안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의 상황을 보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관점에서 느껴지는 대로 해석을 내놓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재밌는지. 연구하는 학자들의 참 짓궂은 모습 같기도 하고.


그냥 한 영웅의 재밌고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읽었던 책인데, 그 무엇 하나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 없이, 하나의 놓침도 없는 치밀한 의도와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사실에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오뒷세우스의 모험 속에 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칼립소의 섬에 있는 네 개의 샘은 무엇을 뜻하며, 알키노오스의 궁전의 두 개의 샘은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저승 여행은 왜 영웅담의 단골 소재인지, 메넬라오스는 왜 텔레마코스에게 스파르타 여행을 권하면서 배가 아닌 마차를 주었던 것인지. 그 여행에 멘토르 아테네가 동행하지 않고 혼자 가게 된 것엔 어떤 의미가 숨어있는지. 또한, 텔레마코스의 여행과 오뒷세우스의 여행이 어떤 연계성을 갖는지 등등, 그 외 이어지는 수많은 장면에 보이지 않는 의도와 그 의도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의미가 담겨있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 호메로스는 천재 시인이었다.

 

호메로스는 그 수많은 상징들을 어떻게 짜냈을까? 아무리 민담과 서사의 복합적인 서사시이며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들을 모아 묶어서 하나의 서사시로 엮어냈다고 하지만, 그 빈틈없는 치밀한 구성이라니. 내가 느끼는 이 놀라움을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이 내게 없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해설집을 읽는 것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장면 저 상황 속에 구석구석 숨어있는 수많은 의도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해석을 풀이하여 내놓는 학자들의 상상력은 참으로 짓궂기까지 하다.

 

 

 

고백 건데, 나는 영웅담을 읽다 보면 꼭 느끼게 되는 게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등감'이다. 그것은 부족한 용기 때문도 아니요, 모자라는 지혜 때문도 아니다. 물론 그것들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 그것들은 이차적인 문제다. 만약, 내가 영웅담 속에 나오는 영웅이라면 난 분명 Mission Impossible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 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나의 짧은 암기력 때문이다.

 

여신들로부터 신탁을 받거나, 또는 예언자들로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어떤 방법을 듣게 될 때 (그것들은 주로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다) 마다 나는 그들은 어떻게 그 복잡하고 긴 Tip들을 한 번에 다 알아들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들은 딱 한번 듣고 잊어버리지도 않고, 그대로 하나하나 잘 실행하여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거나,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는 것일까. 

 

나라면 분명 종이에 1, 2, 3 번호를 매겨서 적어야 했을 것이며, 분명 적어놓고도 어디다 놓았는지 기억을 못 해 결국 해법을 이행하지 못하고는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기는커녕 내 목숨도 하나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짧은 기억력 때문에 책 속에서 나마라도 영웅이 되어 주인공을 해보는 것도 애초에 글렀다. 생각하면 열은 좀 받지만 그게 현실이고 그게 나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내가 몽테뉴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하다. 

 

몽테뉴도 자신의 짧은 기억력 때문에 "나는 온몸에 금이 가서 사방에서 새어 나간다"며 자신의 기억력을 찾아볼 수 있는 흔적이 거의 없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위로되는 상황인가 말이다.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강대진 교수의 정감 가는 구수한 표현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서러워하는 아들을 달래며, 얼른 빛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모든 것을 얘기해 주라고 이른다. 이 집은 고부간의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P159) 

 

진지하게 읽어 내려가다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고부간의 이야기에 웃음이 빵 터졌다.

어디 그뿐인가.

 

“이 집 부부는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로 한 것인지, 오뒷세우스가 잠드는 순간 페넬로페가 깨어난다.” (P243) 

 

완전 죽음이었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아테네는 오뒷세우스를 타이른다. 제우스께서 노여워하시기 전에 다툼을 그치라고. 그는 복종하고, 아테네는 그들 사이에 서서 맹약을 세운다. 대서사시의 결말로는 싱거울 수도 있지만, 많은 대하소설들도 이런 식으로 끝나니 너무 섭섭해할 것도 없다.” (P278)

 

이렇듯, 이 해설집을 신명 나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로, 바로 이러한 강대진 교수의 구수하고 맛깔스러운 표현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오뒷세우스이 마치 실제 인물처럼 표현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특정 행동에 영향을 끼쳤을법한 심리묘사를 하는 부분들에서는 “그가 정말 그랬을까?” 읽는 나도 같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생각해 보게 되는 실감 나는 표현들로, 강대진 교수가 그려낸 오뒷세우스는 단순히 책 속의 영웅 주인공이 아닌, 삶 속에 살아있는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에서도  나오지만, ‘오뒷세이아’에서도 다시 한번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인간의 운명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신들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인지.

 

인간의 운명은 신이 내린 것인가,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인가? 하는 문제다. 여기서 신들이 내린 운명은 인간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와 일치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작품의 윤리적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P261)

 

다시 '오뒷세우스'를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적어도 인제는 단순히 ‘트로이 전쟁의 영웅인 오뒷세우스가 귀향길에 만나게 되는 모험담과 복수’만으로 읽히진 않을 것 같다.

 

해설본을 읽는 재미는 무엇보다 ‘깊이 있는 읽음’이 된다는 것일 게다. 작가는 독자들이 모르고 지나갔을 법한 장면들을 하나하나 건져내어 그 안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왜 그렇게 사건들이 이어졌는지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설명을 따라가며 함께 환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느끼게 되는 짜릿함은 마치 오뒷세우스를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가며 그 모험에 함께 하는 듯, 엔돌핀이 온몸을 싸고돌며 감동으로 몰아넣는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게 됨을 체험하는 귀한 순간이 되었다. 

 

아주 재밌게 읽었다. 고전이 주는 의미와 맛을 좀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왜 오뒷세우스나 일리아스가 그렇게 불멸의 명성을 지니고 있는지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느낄 수 있었던 시간, 고전이 주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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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of the Mohicans를 보았던 그 순간 그 감동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Vangelis의 음악을 찿다가 우연히 만난 The Last of the Mohicans 주제 음악....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감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온 몸을 전율시킨 그 감동을 이야기 한다는 것

감히 그럴 수 없었다. 그 느낌이 퇴색버려질 것 같아서...

나는 또 그렇게 며칠을 끙끙거리며 앓아야만했다...

 

우연히 찿은 The Last of the Mohicans...

Vangelis의 연주로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