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04] 헤르만 헷세의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 박환덕 옮김

pumpkinn 2013. 5. 21. 10:55

 

 

헤르만 헷세의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읽고... 

 

헤르만 헷세의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읽게될 세계 문학들에 앞서 읽게된 책이다. 우리가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바람직한 방향과 마음 가짐 또는 자세, 그와 함께 우리의 사랑스런 도서관엔 어떤 책들로 채워야할지에 대한 Tip이 가득 들어있는 안내서였다. 물론 그 안에는 독일 작품을 비롯해 전 유럽과 러시아를 비롯하여 중국의 명서들이 가득하다.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다독가로 알려진 헤르만 헷세의 신중하면서도 사랑가득한 시선으로 전개되는 안내는 세계의 문학작품을 알게되는 재미를 넘어서 내게 많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그는 첫 문장부터 나를 감동케했다.

진정한 교양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향한 교육이 아니고, 그것은 완전성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이 그러하듯, 그 자체 안에 의미를 갖고 있다. 육체적인 힘에 대한 추구나 민첩성 또는 미에 대한 추구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거나, 유명하게 또는 강하게 해주는 어떤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생명감과 우리의 자신감을 향상시키고 그리고 우리를 더 즐겁게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며, 보다 높은 차원의 안전감과 건강의 느낌을 갖게 함으로써, 그 자체 안에 보상이 주어져 있듯이, <<교양>>의 추구, 다시 말해 정신 및 영혼의 완성에 대한 추구도 역시 어떤 한정된 목표를 향한 힘에 겨운 행로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행복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확장해주며, 우리의 삶과 행복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일이다. (P13)

, “교양의 목표는 한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를 향상시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도우며, 과거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도움을 주고, 미래에 대하여 두려움 없는 대비로 맞서도록 도와준다. 그러한 교양으로 인도하는 여러 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세계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P14) 고 강조하고 있다.

그랬다. 내가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은 이유였다. 물론 마음 저 깊이 밑바닥엔 나의 지적 허영과 지적 사치를 만족시키고 싶은 속물근성이 묻어있지 않은 것은 아니나, 또 다른 구석에는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의 의미를 통찰력있는 성찰로 이끌어내며, 미래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고 싶은 간절한 바램이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해서 삶에 찌든 억세고 거친 고집스런 할머니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포근하면서도 지성적인 할머니의 분위기로 나의 지나간 세월을 따뜻한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런 할머니가 될 수 있도록 인문학이 도와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말하고나니 마치 내 삶의 목적이 할머니가 되는 것 같지만(^^;;), ‘할머니’라는 단어에 많은 함축된 의미가 담겨있음을 모를리 없을게다. 할머니의 아름다움에는 결코 성형 수술로가 아니라 삶의 연륜이 보여주는 것이니. 그렇게 당당하고 충만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 바램이 아니겠나. 게다가 나의 지적욕구까지 충족시켜준다면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어찌 행복하지 아니할까?

헷세는 말한다. “위대한 사상가나 문호의 작품을 철저히 통찰하는 일은 하나의 성취이며,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의식과 오성에 대한 행복한 체험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능한한 많이 읽고 많이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명작들을 자유롭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직접 선정하여 일과 후 그것에 완전히 몰입함으로써, 인간들이 생각하고 추구한 것들의 너비와 깊이를 깨닫고, 총체적인 것 그 자체에, 즉 인류의 삶과 심장의 고동 소리에까지, 생동감 넘치고 공명하는 관계에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이 얼마나 가슴벅찬 일상인지. 일과 후 위대한 명작들 속에 몰입함으로 인간들이 생각하고 추구한 것들의 너비와 깊이를 깨닫고, 인류의 삶과 심장의 고동 소리에까지 생동감 넘치고 공명하는 관계에까지 이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휴식이다. 물론 때때로 책보다는 영화를 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히, 머리속에 시끄러운 생각들로 가득할때) 책은 내게 정신적인 휴식, 영혼의 휴식을 안겨준다. 책을 통해 삶의 교훈을 얻게되고, 지혜를 배우며, 때때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게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안겨주곤 한다. 그뿐인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며 무료함에 빠져있던 나에게 삶의 렌즈를 끼워주고 섬세한 부분을 보게한다. 그렇게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을 보여주고는 이렇게 네 삶이 감사하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그래서 살아볼만한 삶이라고 도닥거리며 따듯한 가르침을 안겨주는 것이다.

헷세는 말한다. 독자는 의무가 아닌 애정의 행로를 따라가야 한다고. 어떤 책이 유명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안 읽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독서를 과도하게 가르쳐서는 안된다고. 좋아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독서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누구든 한 편의 문학, 한 편의 노래, 한 편의 보고 문학 또는 한 편의 성찰문이 그의 마음에 들게 되는 그 곳에서 비로소 인연은 시작된다. 거기서부터 그는 다른 유사한 것들을 찿으면 되는 것이다. (P20)

우리의 독서가 그러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니 이것을 좀 더 알고 싶고, 저 책을 읽으니 저 분야에 관심이 생기고, 그러면서 우리의 관심의 영역과 독서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넓혀지는 것. 그와 함께 우리의 사고력도 깊어져 독서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되는 것.

“평생 열두 권의 책만을 읽었어도, 훌륭한 독서가가 된 독자도 있다. 모든 책을 다 섭렵하고 모든 것에 대해 참견할 지식을 쌓았지만 그러한 노력이 허사가 된 독자들도 있다. 왜냐하면 교양이란 무엇인가를 형성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말하자면 하나의 개성 또는 하나의 인간성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실체 없는 교양이 어느 정도 공허하게 쌓이는 곳에, 물론 지식은 생기겠지만, 애정과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애정이 없는 독서, 경외심 없는 지식, 가슴이 없는 교양은 정신에 대한 가장 추악한 죄악 중 하나이다. (P20)

애정이 없는 독서, 경외심이 없는 지식, 가슴이 없는 교양은 정신에 대한 가장 추악한 죄악 중 하나이다라는 그의 말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독서를 해야하고 지식과 교양을 쌓아야하는지에 대한 엄격하고도 따끔한 가르침이었다.

헷세가 가르쳐준 도서관을 머리속으로 떠올리며 나는 나만의 도서관을 그려보았다. 내 한쪽벽을 꽉 채우고 있는 나의 책장을 보며 나의 도서관을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겟으나, 분명 그 안에는 헷세가 언급한 ‘모든’책은 아니어도, ‘많은’ 책들이 그 위상을 당당히 드러내며 자기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

헷세의 책 소개를 읽으면서 웃음이 나왔던 부분은 바로 그의 다정한 눈길 때문이었는데, 괴테의 교우 써클의 작가 (-스틸링, 마티아스 클라디우스)들의 책이 괴테의 책 옆에 나란히 꽂혀져야 할 것이라는 그의 표현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노신사도 이렇듯 귀여울 수 있구나 싶었다. 딱딱하게 목록순서에 따라 진열되는 것도 아니고, 분야에 따라 꽂혀지는 것도 아닌, 친구의 책들끼리 나란히 꽂혀지는 나만의 도서관은 얼마나 다정다감하고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날까? 생각만해도 행복하고 흐뭇하다. 그 거장들의 교우 클럽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 그 안에 함께하며 그들 속에 둘러싸여 그들의 책을 읽고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기만해도 울컥하니 감정이 치고 올라오는게다.

헷세의 리스트에 올려진 많은 작가들은 내가 이름조차도 처음 들어보는이들이었지만, 그 낯선 이름들 틈에서 발견한 몇몇의 아는 이름들을 만났을 때는 어찌나 반가웠는지.

“우리는 이 아름다운 우리의 세계문학 도서관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 학자나 혹은 세계적 심판자로 상승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보다 우리에게 열려있는 문을 통해 거룩한 정신 영역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뿐이다. 각자는 스스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 보다 높은 의미의 독서법을 배우는 일은, 신문이나 우연히 집어든 오늘의 문학이 아니라, 오직 명작들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P83)

내가 세계 문학을 읽고 싶고 읽어야 하는 이유다. 교양을 쌓고 삶에 반영하며, 거룩한 정신 영역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

“명작이란 우리에게 읽힘으로써 그 진가를 증명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어떤 명작을 읽는 것인가로 우리 자신들의 진가를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P84) - 아멘~!!

 

마치며...

헷세가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독일어의 아름다움을 배우기 시작했고, 점점 그의 귀와 언어의식이 날카로워져갔다는 부분을 읽는 순간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정도로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나는 너무 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쯤에 서점에 있던 책을 거의 모두 읽었던 적이 있다. 삶의 무상함과 무료함을 책을 읽음으로 조금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내가 그 공간에서 만난 책들은 좋은 양서들보다는 주로 소설이었다. 물론 그 중에서 좋은 책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나의 삶에 깨달음이나 성장을 안겨주는 책들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아마도 그것이 내가 소설을 터부시하게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이럴때면 나는 늘 위로한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이렇게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놓쳐버린 시간에 대해 아쉬워말고, 내가 누리고 있는 기회에, 앞으로 내가 축복처럼 누리게 될 경험들에 감사해야지라고 말이다.

참 작은 책이었지만, 참으로 큰 책이었다. ‘작은 거인’이 아니라 ‘작은 거서’ 라고 불러야 할까? 읽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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