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킨의 하루

또 하나의 이별...

pumpkinn 2013. 4. 29. 09:52

 

 

 

 

성당을 가려고 준비하는데 남편이 놀란 얼굴로 자기에게 온 카톡을 보여준다.

대체 이거 무슨 소리니?”

 

보니 우리 회계사의 딸인 Rosana가 보낸 카톡이다.

아빠인 Renato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번엔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는 둘다 멍했다. 제대로 온 메세지가 맞는건지.

진짠지 장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멍하게 쳐다보다 진정하고는 다시 읽었다.

 

Ola.... Meu pai Renato Yufo Okuma faleceu ontem....

Ele será velado a partir das 11:00 no Cemiterio Vila Alpeno. E será creado as 14:00.

Rosana Okuma

(안녕하세요, 아빠 헤나또 유포 오꾸마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11시부터 빌라 알삐노 묘지에서 시신을 모십니다. 그리고  2시에 화장을 합니다.)

 

역시였다.

어느 영화 대사처럼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애리와 리예를 성당에 데려다주고 우리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불과 며칠 전에 만났는데...

시간내서 같이 커피마시자며 그렇게 웃으며 안부를 주고 받았는데...

그의 죽음을 통보받다니...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찰라적인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오가게 했다.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거대한 우주의 법칙 앞에서 손가락 하나 반항하지 못하고 온전히 복종해야하는 우리.

우리는 운명이라는 시간 앞에 과연 어떤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것인가?

 

오늘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오늘이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시간인지...

나는 오늘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종종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내 자신.

나는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다 오늘을 보내고 싶은 것인지.

좀 더 거룩한 곳에 의미를 두고 마음을 넓게 쓰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며 지내자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행복한 일들로 채우며 살자고 말이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Dona Marie와 두 딸들 Roberta Rosana가 우리를 맞았다.

도나 마리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직 와닿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그래. 나라도 그랬을게다.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떠난 남편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받아들임과 함께 그 빈자리의 슬픔도 점점 더 크게 느껴지겠지.

 

사실 헤나또네 가족과 우리는 회계사와 손님이라기 보다는.

일뿐만 아니라 가족의 경조사도 함께 나누는 그런 가족같은 친구의 관계였다.

그와는 우리가 브라질에 오면서부터 18년동안 함께 일해왔다.

 

조그만 사무실에서 시작했던 그.

조그만 아웃렛 쇼핑에서 시작했던 우리.

지난 18년동안 그와 우리는 함께 성장해왔다.

서로의 성장을 바라보며 그렇게 함께 기뻐하고 함께 행복해했더랬다.

 

그는 남편에게 큰 형같은 존재였다.

우리가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우리와 함께 걱정을 해주고,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가족보다 더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축하를 해주던 그였다.

어떠한 사심도 흑심도 끼어들지 않은 좋은 친구가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겐 축복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가게 문제로 어려운일을 당했을 때도

마치 자기 가족 일처럼 함께 고민하고 아파하며 도움을 주고싶어했던 그였다.

그랬기에 우리가 마음에 드는 새로운 장소를 잡았을 때도 그는 우리만큼이나 기뻐했다.

 

남편은 Renato에게 새로운 매장이 그 모양새를 갖추어져가는 것을 보여주려했다.

헤나또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지만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영원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때때로 부부끼리 함께 저녁을 먹으며,

브라질의 썩은 정치에 울화통을 터뜨리기도 했고,

딸들의 커가는 모습을 보며 대견스러워하기도 하고

때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으며 위로를 주고 받기도 했었다.

 

좀 더 자주 만나자고 했지만,

그들도 우리도 서로 바쁜 일상으로 좀 더 함께하지 못했다.

언젠가처럼 덧없는 표현도 없다.

또 다시 내게 다가온 이별이었다.

 

이제 62세였다.

너무 빨리 가셨다.

 

유독 많은 죽음을 경험하는 요즘이다.

구본형 선생님이 그랬고,

쟝 도미니크 보비가 그랬고,

헤나또가 그랬다.

 

2시 예정이던 화장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시작이 되었고,

그쯤엔 가족들만이 남았다. 그들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들만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남편은 아직 그의 죽음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 듯.

다음 주에 만나려고 했는데...’

새로운 매장을 꼭 헤나또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개업식때 꼭 헤나또가 함께 했어야 했는데...’

정말 좋아했을텐데...’

 

그러고보니 헤나또와 찍은 사진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이제와 보니 아쉬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또 그렇게 슬픔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다가

우리는 관계 속에서 우리가 주는 사랑보다 늘 받는 사랑이 더 크고 많음을 느꼈다.

관계의 소중함과 감사함이 느껴지는 순간.

우리 주위에 함께하는 고맙고 감사한 분들과의 관계를 소중한 마음으로 가꿔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또해야 했다.

큰 아주버님 생신.

죽음과 탄생을 하루에 맞고 있는 듯한 느낌.

묘한 느낌이었다.

 

아주버님께도 형님께도 우리가 함께할 때 잘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분들...

우리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그 분들께도...

죽음은 슬프지만, 소중한 교훈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

있을 때 잘해야해....

 

헤나또.

그대는 우리에게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힘들때마다 그저 함께함으로 위로가 되어주었던 참 좋은 친구.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기쁠때나 슬플때나 추울때나 따뜻할때나 언제나 함께 해준 그대

우리는 영원히 그대를 기억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품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그대를 그리며...

친구 루도비꼬 & 안젤리카 드립니다.

.

.

 

 

Karla Bonoff - The Water is 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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