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독서리뷰 100] 쟝 도미니크 보비의 ‘잠수복과 나비’를 읽고 / 양영란 옮김

pumpkinn 2013. 4. 22. 03:32

쟝 도미니크 보비

 

 

나는 점점 멀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항해 중인 선원이
자신이 방금 떠나 온 해안선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광경을 바라보듯이,
나는 나의 과거가 점점
희미해져 감을 느낀다.
예전의 삶은 아직도
나의 내부에서 불타오르고 있지만
점차
추억의 재가 되어 버린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 엘르의 능력 있는 편집장으로 자상한 아빠이며 멋과 삶을 즐기고, 우아함을 사랑하며 책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장 도미니크는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다가온 Locked in Syndrome이라는 뇌일혈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마치 꽉 조이는 잠수복에 갇힌 듯 옴짝달싹도 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끔찍한 상황 속에 갇혀있는  도미니크. 그는 점점 멀어지며 희미해져 가는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며 잠수복 안에 갇힌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을 받는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꿈을 꾸는지를 책 속에 덤덤하게 담아낸다.

 

<잠수복과 나비>는 장 도미니크가 그렇게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눈 깜박 거림으로 알파벳을 맞추고 단어 하나하나 그려내며 쓰인 책이다. 

 

사랑하는 아들 테오필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셀레스트와의 행복했던 한때. 사진 찍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장 도미니크의 사진이라 더 귀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쓰고 싶은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나의 열 손가락, 사랑하는 가족을 안아줄 수 있는 나의 두 팔, 가고 싶은 곳이 어디든 자유롭게 데려다줄 수 있는 튼튼한 나의 두 다리가 있다. 비록 안경은 쓰지만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두 눈이 있으며,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입술이 있고, 또한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다. 그 외에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욕심이다.

 

지금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의식적으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은 장 도미니크에게는 모든 신들의 기도를 모으고 자신이 죽을힘을 다해 최선의 최선을 다하더라도 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모든 것이 나의 의사가 아닌 남들의 의사대로 움직여져야 하는 상황들, 자신을 돌보아 주는 많은 이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고마운 사람, 반감이 들게 하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신의 느낌들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단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눈 깜빡임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장 도미니크, 그의 깜빡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집중을 쏟아부으며 받아 적는 클로드. 사랑과 염원 없이는 해내지 못했을 작업이었을 것이다. 

 

<잠수종과 나비> 영화의 한 장면

 

 

나는 차라리 두꺼비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볼까?

그래. 차라리 두꺼비가 되면 자유롭게 뜰과 정원을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었으리라. 나오려는 눈물을 꾹꾹 눌러댔으나 참을 수 없는 감정의 북받침은 언제나 나의 의지보다 강하다. 

 

“동원되는 유일한 군인인 나는, 20주 사이에 몸무게가 30 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사고를 당하기 1주일 전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놀라운 체중 감소 효과를 기대하진 않았다. “(P26)

장 도미니크는 자신을 자아 연민의 대상으로 제물 삼아 불쌍하고 초라한 처지에 놓아두며 훌쩍대지 않았다. 글 한편 한편 읽어 내려가는 동안 담담하면서도 차근차근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종종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그의 익살스러운 표현에선 웃음이 터트리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이라니. 유쾌하고 매력적인 도미니크. 강인한 영혼을 가진 자들은 아름답다.

 

“이 낯익은 풍경을 대하며,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되어 생각에 잠긴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P174)

몸을 죄어오는 잠수복을 열어줄 열쇠가 지구에는 없으니, 그것들을 찾아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눈에 잔뜩 고인 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부릅뜨고 있다가 결국엔 커다란 축축한 동그라미를 책 위에 그려내고야 말았다.

 

그렇게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97년 3월 9일 그의 흐늘거리는 육체를 옥죄던 잠수복을 벗어던지고 나비가 되어 날아갔다. 자유로운 그만의 세계로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고 자유를 찾아 떠난 것이다. 지구별에서의 휴가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어쩌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처럼 나비가 되어 은하수에 춤추러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장 도미니크 보비와 클로드 망 디빌

 

책을 읽는 동안 먹먹한 가슴, 울먹거려지며 자꾸만 한가득 고여지는 눈물, 눌러도 눌러도 자꾸만 차오르는 감정을 어쩌질 못하고 애꿎은 하늘만 자꾸만 바라보게 되던 며칠이었다.

 

장 도미니크 보비. 그가 지구별에서의 휴가를 끝내고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남긴 사랑의 메시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 아름다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그런 사람이 지구 상에 살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남긴 <잠수복과 나비>라는 그의 짧은 책 한 권이 나의 온 감성과 영혼을 이리도 뒤흔들어놓다니.

 

꼼짝도 할 수 없이 꼭 죄듯 무거운 잠수복이 가두어 놓은 것이 장 도미니크의 흐들거리는 몸이었다면, 그 형벌 같은 고문스런 잠수복 안에 가두어진 것은 바로 나의 마음과 영혼이었다. 지난 며칠을 내내 그 안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후유증이 깊었다.

 

 

그가 고통 속에 보낸 15개월, 삶이 꺼져가는 마지막 2개월 동안 써내려 간 28편의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느낌들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잠수복 안에 갇혀버린 그만이 알 수 있는, 그만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는 한 번도 지금의 삶을 소중하게 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순간도 당신이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뿐이었다. 자기 바로 코 앞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테오필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조차도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깊은 슬픔이었는지. 귀를 아프게 하는 TV를 끌 수 없음에 고통스러운 밤을 보내야 했는지.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커튼을 닫아줄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그저 말해주었을 뿐이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자신의 잠수복을 열어줄 열쇠는 없는 것인지 그래서 인제는 그곳을 찾아 떠나야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마치 내일이면 나도 내 영혼이 갇힌 잠수복을 열어줄 열쇠를 찾아 다른 별로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혹시나 소중한 무엇을 무심결에 지나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꾸만 감정이 북받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도미니크가 느끼게 해 준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것인지.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내가 사랑한다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하게 듣게 되는 음악도, 커피를 마시러 스타벅스에 내 발로 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그리고 내 생각을 잘 표현해내지 못한다고 키보드를 두들기며 투덜대는 것조차도 얼마나 아름다운 자유이고 벅찬 행복인지를. 

 

아름다운 것은 슬프다. 언제나 슬픈 그림이다. 그래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것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함께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몇 번이나 책을 내려놓아야 했던 까닭이다. 

 

나도 자유롭게 훨훨 날아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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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00번째 독서리뷰가 '잠수복과 나비'였다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내 삶의 터닝포인틀 만들어준 책....'이라고 먼 훗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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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 도미니크 보비가 좋아했던 Beatles A Day In The Life...

특히, 도미니크가 좋아하는 피아노가 쿵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는 오케스트라 버젼을 올릴까했지만...

그보다는 Alexi의 음악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AlexiThrough the D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