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준비되지 않았던 여행....

pumpkinn 2013. 1. 20. 10:11

 

 

여행을 다녀왔다.

 

순례 여행...’

평소 가던 여행과는 성격이 다른 여행이었고, 생각지 않게 가게된 여행이었다.

 

생각지 않게 가게된 여행...’

바로 그랬기에 늘 사소한 것에도,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의미를 붙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가고자 계획했던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내게 어떤 표지를 보여줄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희망을 안고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대나 설레임으로 부푼 여행은 아니었다.

그렇게 설렘과 두근거림 속에 기대에 부풀어있기에는...

자리를 비우는 18일 동안의 일을 미리 끝내놓기 위한 나의 일상이 너무나도 바빴기에..

그런 낭만적인 감정이 끼어들 새가 없었던게다.

 

그렇게 떠난 여행.

돌아온지 겨우 며칠밖에 안지났건만...

내가 여행을 다녀온건가..? 싶을 만큼 느낌의 부재상태다.

이럴 수도 있는건가..?

 

내 발길이 닿았던 곳은...

어렸을 때부터 설레며 꿈꾸던 이집트...

예수님의 발자취를 쫓았던 이스라엘...

그리고 어른이 된 후 가고 싶은 나라 목록 상위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탈리아였다..

 

그런데 느낌의 부재상태라니...

어떤 설렘도 두근거림도 느낌도 감동도 없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꿈에 그리던 이집트를 갔음에도 그 어떤 두근거림도 설렘도 없었다는 것은...

내겐 슬픔이었다...

물론 여행을 다니며 재밌는 대화 속에 깔깔대기도 했고...

중간 중간 눈물을 흘리게 하고 깊은 감동으로 몰고 간 곳도 있었다.

 

특히, 이집트 가이드의 해박한 지식과 이집트 신화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성서 해석은..

듣는 내내 나를 열광시켰고...

예로니모 성인과, 프란시스코 성인, 그리고 오상의 비오 성인은...

그들의 하느님에 때한 뜨거운 사랑과 소명의 발견, 그리고 열정적인 순종으로 나를 부러움과 감동으로 몰고 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전체를 두고 보면 너무나도 메마름 속에 다녔던 여행으로 기억된다는 것이...

무엇에든 쉽게 감동하는 나로서는 지금의 내 상태가 놀랍기만 하고 어색하기만 할 따름이다...

 

왜 그랬던걸까..?

 

아마도 나의 느낌이 강요당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유를 두고 보고 느끼고 맛보고 만져보고 하며...

그 순간을 만끽해보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가야하고 멈춰야 하고 보아야 하고 떠나야 하는 상황에...

감성의 출구가 막혀버린듯한 느낌...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어떻게 느끼도록 강요당하는 것...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때엔 내가 뭐라도 잘못이라도 한 듯한 느낌을 가져야 했다는 것...

느낌의 자유가 없다는 것...

그것은 이미 여행의 의미를 상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눈에 의해 계속 끌려가는 느낌이...

여행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어쨌든,

이러한 여행은 내게 맞지 않는 여행임을 이번 여행을 통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건 극히 나의 개인적인 문제다.

내가 그랬다는 것이지 함께 가신 모든 분들이 나와 같은 느낌을 가지셨다는건 결코 아니다.

다들 모두 강행군으로 힘은 들어하셨지만 좋아하셨고..

또 많은 것을 깨닫고 기도 응답을 듣고 돌아오셨다..

어쩌면 내게는 준비되지 않았던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번 순례 여행을 떠나며 지향으로 두었던 것은..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과 내 안의 소명을 발견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물론 매일 이어지는 미사와 기도 속에 나의 지향 기도를 잊지 않았지만...

깊이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지향으로 둔 그것들을 느끼고 돌아오진 못했지만,

여행 동안 가족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안고 돌아왔다.

여행을 떠나면 집도 가족도 일도 잊어버리는 철부지 아지매인 내가...

이번 여행에선 가족이 몹시도 보고싶어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쩌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곳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곳인지...

지금 내가 함께하고 있는 이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이들인지를 깨닫기 위해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 여행을 다녀오면서...

나의 신앙이 좀 더 깊어지고 뜨거워지기를 원했지만...

이 역시 나의 바보같은 바램이었다.

신앙이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외부적인 조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비록 지금의 나의 느낌은 이렇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하느님은 내게 맞는 방법으로 나를 깨우쳐 주실 것이라는 것을...

 

장희만 신부님의 마지막 강론 말씀...

"순례 여행은 영화같은 것입니다...

비록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는 이해가 안가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놓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삶 속에 하나하나 되돌아 볼 떄, 이해가 가고 놓쳤던 것들을 깨달아 알게 되지요..."

 

그 말씀이 위로가 되었다.

지금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영원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삶 속에서 놓쳤던 것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깨닫게 되고...

나의 때에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

 

오늘에서야 사진을 컴에다 옮겼다...

여행을 떠올리면 거의 매일같이 가방 싼 기억만 나는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참으로 많은 곳을 다니긴 했구나 싶다...

사진 속의 나는 마냥 웃고 있다...

참으로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

.

 

Lost someone...

김 영하가 들려준 고혹적인 음악이었다...

처음 듣는 순간 웅산의 yesterday를 들었을 때 느꼈던 깊은 우울함이 느껴졌다.

 

누군가를 잃어버린 여행은 아니었지만...

느낌을 잃어버린 여행이었다...

Lost fee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