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소중한당신

<참소중한당신 10월호> 내 기억 속의 엄마와 아빠...

pumpkinn 2016. 11. 17. 05:21




내 기억 속의 엄마와 아빠...

 

어린 시절을 가만 돌아보면 엄마는 좀 극성이셨던 것 같다, 학교에 가기 전 꼭 공부를 시키셨는데, 먼저 일어나는 녀석은 스쿨버스를 태워 보내시고 나중에 일어나는 아이는 일반 버스를 태워 보내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빠가 먼저 학교에 간걸로 봐서 그날은 내가 늦게 일어난 날이었다. 엄마와 공부를 끝내고 학교엘 가려고 하는데 내 운동화가 없어진 것이다. 엄마가 새로 사주신 범표 운동화였는데 오빠가 신고 가버린 게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 듯, 그때도 지금처럼 네 것 내 것 섞어 쓰는 것을 싫어했던 나는 오빠가 내 운동화를 신고 갔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연년생으로 고만고만한 체구에 사이즈도 같았기에 그날 하루만큼은 오빠 운동화를 신었어도 되었는데, 내 신발을 내놓으라고 울며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가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빨리 학교 가서 내 신발을 가져오라며 막무가내였다. 학교 시간은 다 되어가고, 애는 울고불고 난리니 참으로 난감하셨을 터. 아빠는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학교에 데려 주겠다는 매혹적인 제안을 하셨다. 그 당시 오빠와 나에게는 아빠 자가용으로 학교에 가는 게 꿈이었는데 아빠는 절대로 학교에 태워주지 않으셨다. 아이들 버릇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특별하게 비쳐지는 것이 교육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빠의 솔깃한 제안에 그쯤에서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요란하게 시작된 땡깡이다 보니 그쯤 멈추는 것이 머쓱하여 내친김에 그냥 고집을 계속 부리고야 말았다. 결국 나는 아빠에게 엉덩이를 한 차례 맞고서야 훌쩍거리며 오빠 신발을 신고 학교엘 갔다. 이렇듯 나는 늘 끝내야 할 쯤에서 끝내질 못해 때때로 그렇게 없는 화를 사곤 했다.


나는 아빠가 화내시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혼내는 분은 주로 엄마셨다. 다섯 남매가 자라면서 아빠에게 호되게 혼나 본 아이는 나 하나뿐이다. 아빠가 그토록 크게 화를 내셨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고집스런 아이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마도 내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고 버릇없는 아이들에게 인내심이 없는 것은 내 자신이 그랬기에 무의식 속에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건지도 모른다.

아빠는 나의 우상이셨다.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자리에 회색 줄무늬가 있는 아이보리 색 가디건을 입고 책을 읽으시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밝고 명랑하시지만 감성적인 엄마와는 달리 조용한 미소에 이성적인 아빠는 내게 참 지적이고 멋져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사이에는 앙케이트가 유행했는데, 일종의 설문조사로 좋아하는 친구들의 개인적인 성향과 꿈들을 함께 공유하는 재밌는 작업이었다. 앙케이트에는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상형이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친구들이 이상형으로 멋진 영화배우나 가수들을 적을 때 나의 이상형 란에는 아빠라고 적혀있었다. 늘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되었을 때 아빠의 약한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내겐 늘 든든하고 자랑하고 싶은 분이셨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들이 얼마나 귀한 가르침이었는지 느껴지곤 한다. 엄마가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으로 우리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면, 아빠는 올바른 인간성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특히 강조하셨던 부분은 어른들께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를 드리는 것과 약속을 지키는 것, 그리고 내가 택한 선택과 한 말에 대해 져야하는 책임감에 대해서였다. 물론 부끄럽게도 내가 그 가르침들을 모두 다 잘해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의식 안에 깨어있음으로 그것들을 지키려 노력했고, 때때로 넘어지긴 하지만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양심의 울림으로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안겨주었다.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변명 뒤에 숨을 때는 깊고 깊은 늪에 빠진 듯한 축축하고 질퍽한 공허감을 대가로 치르게 함으로, 내 잘못을 덤덤히 인정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우게 했다.


고집 센 딸래미로 마음고생이 많으셨을 부모님들, 엄마가 나의 엄마시고, 아빠가 나의 아빠이셨음은 하느님이 내게 내려주신 축복이고 선물이다. 혼탁한 삶 속에 앞서 길을 가시며 바른 방향을 비춰주는 등불이 되어주신 분들. 두 분께서 일상 속에서 내게 해주신 말씀들을 떠올리면 인제 부모의 역할 속에 있는 나의 현주소를 바라보게 된다. 나도 우리 애리와 리예가 살아가면서 갈림길에 서있을 때나 갈등 속에 있을 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그런 엄마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하며 떠올리게 되는 그런 엄마였음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그런 엄마가 먼저 되어야겠지. 늘 내 안에 함께할 기도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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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이 딸래미를 품에서 떠내며 부른 이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보았다.

우리 애리와 리예가 내일 내 품을 떠나는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보았더랬다...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 그러셨겠지..

우리 애리와 리예가 떠나는 날 내 마음이 그렇겠지...

들을 때 마다 똑같은 감동으로 눈물 흘리게 하는 장면....


세 아빠 후보들인 콜린 퍼스, 피어스 브로스넌, 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배위에서 부르는 Our Last Summer와 함께 

맘마미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Slipping through My Finger...